한창 이야기하던 중에 송석석이 물었다. “그 귀걸이, 상태는 어떻습니까?”“어머님께서 이미 사람을 시켜 금경루에 맡긴 상태입니다. 아마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소중한 물건은 그냥 두는 게 좋겠습니다. 밖은 위험할 수 있으니깐요.”귀걸이 하나 때문에 그토록 마음 쓰는 그녀의 모습에 그 귀걸이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그러자 이석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다만 어제는 위국이를 서원으로 보내는 날이라 귀걸이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함께 위국이를 서원에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혼인할 때 평생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걸 알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정말로 버텨내기 힘들더군요.”송석석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연민 중 반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고, 반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이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왕비님처럼 강한 분은 저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겠지요.” 아마도 이석은 오랫동안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다. 혹은 그녀의 남편이 송국공의 휘하에 있었고, 송국공의 일곱 용사들이 남강 전장에서 희생되었기에 그녀는 마음속의 고통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는 큰 뜻도 없었고, 재능이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닙니다. 둔하고, 일을 할 때도 결단력이 없지요. 하지만 제 남편은 달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영웅이 되었고 외모도 출중하였으며, 게다가 후작부의 명문가 출신이었지요. 그런 그가 누군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같이 평범한 여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열일곱에 그와 혼인하였고, 지금 스물다섯입니다. 혼인한 지 팔 년이 되었으나, 그동안 거의 함께하지 못해 아이를 낳지 못하였지요. 다행히 지금은 위국이 있으니, 친자식은 아니지만
시몬성. 왕표는 이미 매우 짜증이 나 있었다. 네 번의 협상 동안, 빅토르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서몬을 내주어야만 치석을 돌려보내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포로들은 이미 교환되었지만, 그마저도 손해였다. 두 나라 포로 인수도 맞지 않았고, 사국의 포로는 송씨 가문의 두 배에 달했다. 포로 숫자가 맞지 않았으니, 그들이 얼마나 많은 포로를 죽였는지를 알 수 있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이제는 치석 한 사람의 목숨으로 시몬성을 맞바꾸겠다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는 것이다.얼마 전 북명왕이 와서 협상을 지연시키라고 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빅토르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방천허와 제린도 치석이 남강 수복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계속해서 말했지만, 왕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 송 씨 가군 명단에는 치석이라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병참 정보에 누락되었다고 하더라도, 치석 한 사람만으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따라서 그는 치석이 가져온 정보는 단지 전방의 정찰병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협상은 이미 너무 오래 끈 상태라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포로들은 이미 교환되었고, 치석이 충신이라면 자신 한 사람 때문에 조정이 서몬을 내어주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황제가 사여묵을 보내 협상에 참여하게 했고, 사여묵이 도착한 후 협상을 지연시키라는 명을 내리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왕표는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치석를 희생시키게 된다면, 그 비난의 화살을 자신이 맞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사여묵이 모습을 들어내지 않으니, 여전히 그가 협상의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치석를 희생시키거나 서몬성을 버리거나 그 중의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백성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대상은 그가 될 것이고, 사여묵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그
진성. 송석석은 자객이 장군부에 침입한 지 나흘 만에 궁으로 소환되었다. 경조부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경위와 순방영에서도 오지 않았다. 송석석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군부의 정보를 토대로 경조부와 순방영이 조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상태에서 황제께 보고드린다. 그제서야 황제께서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물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편, 송석석이 궁에 들어갈 즈음, 전북망은 며칠간의 부상 치료 끝에 침상에서 겨우 일어나 이방에게로 갔다.그는 며칠 동안 감정을 억누르느라 고통스러웠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였으나, 검에 맞은 터라 침상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다. 무장이 병으로 몸져누우면 그 가치는 완전히 사라지고, 경위조차도 할 수 없게 된다.이방도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상처는 가벼워서 진작 일어날 수 있었으나, 그녀는 침대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이가 그녀를 원수로 보고 있었고 하인들조차도 그녀를 두려워하면서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루 세 끼에 약은 끊기지 않았으나, 황제께서 내린 혼례였기에 이방을 쫓아낼 수도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녀는 전북망이 마음을 완전히 닫았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정 또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여 전북망이 분노에 가득 차 방으로 들어왔을 때, 이방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북망은 그녀를 침대에서 거칠게 끌어 올리고 분노와 울분이 가득한 얼굴로 고함쳤다. “어떻게 나를 밀어서 칼을 피할 생각을 한 것이오?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신이 내린 결정이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오? 이것이 당신이 계획한 우리 미래요?”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객의 목표는 당신이 아니기에 밀어냈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로 저를 대신해 죽으라고 밀쳤겠습니까? 그날 밤 자객은 저를 노리고 왔고 당신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전북망
전북망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빈정거렸다.“당신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우리의 미래만을 생각한다고 내게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믿었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은 개를 믿을지 언정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속였소. 녹분성 사건도 내가 몇 번이나 물어보았건만 당신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나에게 숨기더니 이젠 나를 부추겨 송석석을 의심하게 하다니?”그는 이방에게 몸을 숙이며 다가가 냉담하게 말했다.“내가 당신을 믿을 것 같았소? 혹시 그날 밤의 추태를 기억하오? 당신은 혼자 살자고 곧장 문희거로 달려가 왕청여와 두 시녀를 문밖에 막고 그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지. 아니, 내가 잘못 말한 것 같소. 그건 추태가 아니라 당신의 이기심과 냉혹함이었소. 당신이 왕청여에게 했던 말을 모두가 믿을 줄 알았소? 틀렸소. 난 한 글자도 믿지 않소. 오월과 유월, 그리고 그 시위들은 원래 죽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었소. 당신이 문희거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싸웠다면 우리가 자객에게 죽더라도 나는 원한이 없었을 것이오.”그는 천천히 허리를 펴며 계속 말했다.“하지만 당신은 문희거로 도망을 갔고 저택에 누를 끼치는 쪽을 선택했지. 왜? 당신의 목숨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은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오월과 유월도 여자인데 여자에 대한 당신의 위대한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이오? 큰소리를 칠 땐 언제고 정작 닥치니 아주 매섭게 변하더군. 그게 바로 당신의 진정한 모습이었소. 이기적이고 뱀처럼 독한 사람.”이방의 얼굴은 순간 경직되었다. 그녀는 이젠 전북망도 속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방은 콧방귀를 뀌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뭐라고 하든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깊게 생각할 것입니다. 송석석이 어떻게 장군부에 위험이 있는지 알고 구하러 온 것인지. 그녀가 무인이라 예전의 원한을 품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의 일가족을 구하러 왔다는 헛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위험을 무릅쓰고?” 전북망은 경멸하는
전북망은 왕청여를 바라보며 그녀의 잃은 두 시녀가 떠올라 괴로운 말투로 말했다.“오월과 유월의 일은 미안하오. 내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소.”“말 돌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에서 난 어떤 위치인지 물었습니다.”왕청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집착하여 물었다.전북망은 옆에 있던 나무를 붙잡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제야 화를 가라앉히고 가볍게 말했다.“말을 돌리지 않았소. 다만 그들의 죽음에 대해 유감스럽고 안타까움을 표현했을 뿐이오. 그리고 당신은 내 마음속에서 당연히 본처의 위치에 있지 않겠소?”“그냥 본처의 자리뿐입니까?”왕청여는 눈을 붉히며 끈질기게 캐물었다.“당신은 나에게 흔들린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입니까?”그녀의 말을 들은 전북망은 멍해져서 왕청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들의 혼사는 목씨 부인이 중매한 것이고 황제의 뜻이기도 하니 두 사람이 서로 존경하고 공경하면 된다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왕청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그는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는 왕청여가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볼 줄은 몰랐다.그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본 왕청여는 그의 뜻을 알아채고 참담하게 웃었다.“그러니까 사랑은 조금도 없고 부부의 정 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전북망은 힘겹게 말했다.“난 당신의 부군이니 당신을 존경하고 지켜줄 것이오.”“자객이 오월과 유월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고 할 때 당신이 목숨을 걸고 날 구하러 온 게 책임감 때문이었습니까?”왕청여는 한 발짝 물러서더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책임뿐이었습니까?” “난…… 당신은 내 부인이니 당신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도리요.” 전북망은 자신이 송석석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다시금 떠올라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왕청여는 실망이 극에 달한 듯 손을 뻗어 눈물을 훔쳤다. “내가 당신의 집에 시집와서 가문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누이를 참으며 당신의 그 추하고 악독한 평처까지 참아줬는데 이제 와서 나에게 조금도 애정이 없다고 하시
송석석은 밤에 무기를 가지고 나간 데다 장군부에 자객이 침입할 것을 미리 알고 찾아간 것이니 황제의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현갑군의 부지휘사라고 하지만 그래도 함부로 밤중에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니 자객의 행방을 안다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제는 그녀가 곳곳에 정탐꾼을 분포했다고 의심했고 그녀를 의심하는 건 곧 북명황실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송석석은 눈을 들어 직언했다. “황제폐하께서도 송씨 가문이 멸문을 당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우를 찾아온 후부터 저는 그가 변을 당할까 걱정이 되어 사저에게 상경한 사람 중 행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에 상경해서 롱주에 묵은 몇 사람이 있었는데 무공도 대단한 데다 객잔에 입주한 후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아 서우를 해칠까 봐 사람을 붙여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날 밤 그들은 야행복을 입고 롱주의 2층에서 뛰어내렸는데 황실이 아니라 청작거리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묵 승상과 태부의 저택이 그쪽에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이 중신에게 해를 가할까 봐 쫓아갔는데 그들이 청작거리로 간 것이 아니라 장군부로 향할 줄은 몰랐습니다.” 숙청제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웃으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넌 장군부와 원한이 있을 텐데 왜 구하려 나섰느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무고한 생명이기도 하고 장군부와 사람을 죽일 만큼의 원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갑군의 지휘사이기도 하니 못 본 척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숙청제는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 “너의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날 밤 자객의 목표가 이방이었다는 건 알고 있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 “그건 모릅니다. 제가 그들의 손과 발을 부러뜨리자 전 씨 둘째 어르신께서 그들을 묶었고 필명이 경위들을 데리고 달려와 저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숙
전쟁 후로부터 사국의 변성에는 줄곧 중병이 주둔해 왔다. 특히 지금은 상국과 협상해서 인질로 시몬성을 바꾸려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인질을 가둔 감옥에도 중병을 파견해서 지키고 있었다. 사여묵 등인이 변성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들은 드디어 척사가 갇힌 곳을 알아냈는데 변경의 관문을 지키는 위소였는데 금성탕지처럼 견고했다. 그리고 그 높은 벽 안의 감옥 구조도 낱낱이 밝혀졌다. 왕표에겐 5일의 기한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일이 5일 기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몰랐다. 사여묵은 내일 빅토르가 왕표와 다시 협상할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5일의 기한은 모르지만 사여묵은 왕표가 그의 명령을 듣지 않고 협상을 미루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여묵은 내일 빅토르가 아당산으로 협상하러 가는 동안 척사를 구출해 낼 예정이었다. ‘빅토르의 신변에는 고수들이 많아서 아당산으로 갈 때 대부분의 고수들을 데리고 갈 것이야. 전쟁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북명군에게 패배를 당해서 빅토르는 북명군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가지고 있지. 아당산에 가서 협상을 하는데 만약 왕표가 직접 거절한다면 빅토르는 오래 머물지 않고 다음날 밤늦게라도 돌아올 것이야. 하지만 왕표가 협상할 때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하는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빅토르를 잡고 있으면 모레쯤 돌아올 것이야. 그럼 구조 시간은 충분할 텐데.’ 염 선생은 구출 전략을 세웠다. 한 명은 밖에서 호응하고 세 명은 침입해서 사람을 구하는 전략이었다. 밖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장대성으로 정하고 시간은 내일 밤 유시로 정했다. 유시로 정한 이유는 그 시간에 수비를 바꾸기 때문이었다.세 사람은 비록 무공이 높지만 금성탕지처럼 높은 벽을 뚫고 지하 감옥까지 들어가 사람을 구출하기에는 난도가 높았다. 하지만 사여묵과 그의 사부님은 밤을 틈타 몇 번이나 침입했었다. 비록 지하감옥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지형에 익숙하고 수비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승산은 있었다. 한편 변성 인근 벨강 옆 통나무집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6월 18일 저녁, 열 사람은 찬물이 담긴 그릇을 들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차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변성에서 찻잎은 사치품이라 그들은 살 수 없었고 탁주는 저렴하긴 했지만 그들은 술에 취해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죽음을 당할까 봐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 그들이 유일하게 술을 산 것은 송원수와 여섯 명의 소장군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는데 그들은 술을 사서 땅에 부어 원수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이불속에 숨어 밤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들이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룻밤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땐 남강을 수복하기 전이라 다음날에도 눈물을 닦고 불바다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남강을 수복한 후 빅토르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와 이곳을 지키고 있어 그들은 더 이상 남강으로 소식을 전할 수 없었고 국경 출입도 아주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정보를 보낼 때 식량과 상품을 호송하는 대열에 섞여 시몬에 갔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그들도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남강을 수복한 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계속 궁리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 실수로 장 씨가 인질로 잡혀간 것이었다. 장 씨가 체포된 후 고문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국 병사들이 찾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의지가 굳센 장 씨는 죽을지 언정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도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그들은 모두 짚신을 걷어차고 일제히 허리를 굽혀 새로 만든 헝겊신을 신었다. 그리고 누더기 같은 옷을 버리고 야행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 열 벌의 야행 옷은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그들은 모두 칼과 검을 들고 전장에 나가 적을 물리치던 장사들이니 여자들이 하는 바느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옷을 살 돈이 없어 혼자 천으로 옷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부근에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보며 배운 것이었다.그들도 한때는 무기가 없었다. 포로 진영에서 나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