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저녁, 열 사람은 찬물이 담긴 그릇을 들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차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변성에서 찻잎은 사치품이라 그들은 살 수 없었고 탁주는 저렴하긴 했지만 그들은 술에 취해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죽음을 당할까 봐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 그들이 유일하게 술을 산 것은 송원수와 여섯 명의 소장군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는데 그들은 술을 사서 땅에 부어 원수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이불속에 숨어 밤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들이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룻밤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땐 남강을 수복하기 전이라 다음날에도 눈물을 닦고 불바다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남강을 수복한 후 빅토르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와 이곳을 지키고 있어 그들은 더 이상 남강으로 소식을 전할 수 없었고 국경 출입도 아주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정보를 보낼 때 식량과 상품을 호송하는 대열에 섞여 시몬에 갔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그들도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남강을 수복한 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계속 궁리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 실수로 장 씨가 인질로 잡혀간 것이었다. 장 씨가 체포된 후 고문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국 병사들이 찾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의지가 굳센 장 씨는 죽을지 언정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도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그들은 모두 짚신을 걷어차고 일제히 허리를 굽혀 새로 만든 헝겊신을 신었다. 그리고 누더기 같은 옷을 버리고 야행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 열 벌의 야행 옷은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그들은 모두 칼과 검을 들고 전장에 나가 적을 물리치던 장사들이니 여자들이 하는 바느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옷을 살 돈이 없어 혼자 천으로 옷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부근에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보며 배운 것이었다.그들도 한때는 무기가 없었다. 포로 진영에서 나
사여묵은 그들을 보자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왜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난 거이지? 게다가 갈고리 밧줄을 이용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면 무공도 별로인 것 같은데. 대체 위소로 온 목적이 무엇일까? 그들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오늘 밤의 구조계획은 물거품으로 될 것이다.’그들이 숨어있는 곳은 어두운 곳이라 상대방이 빠르게 벽을 타고 와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에라 모르겠다. 수비가 끝나기 전에 무조건 쳐들어가야 해.’방시원도 앞에 세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두운 곳에 숨어있었는데 머리까지 뒤집어쓰지는 않았지만 검은 야행복을 입고 있어 적인지 아군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그들이 가벼운 몸집으로 자신이 가려고 했던 곳으로 날아가자 방시원은 어리둥절해졌다.‘혹시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인가?’하지만 방시원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그럴 리 없을 거야. 비록 그쪽과 연락을 취할 수 없지만 원수가 바뀌었고 지금의 원수는 왕표 뿐이야.’방시원은 왕표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왕표는 왕청여의 오빠라 방시원에겐 형님이었다. 무장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고 탁상공론에만 능했는데 그렇다고 또 실력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다만 왕표는 성격이 오만해서 장단점을 따져봤을 때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었다.협상과 구출, 방시원은 왕표가 분명히 전자를 택하지,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손을 들어 잠입 의사를 표시했다.위소는 매우 커서 모두 열두 채의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지하 감옥은 열한 동과 열두 동 사이에 단독으로 된 방이 있었는데 그 방으로 내려가면 지하 감옥이었다. 하지만 거긴 분명 많은 병력이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모든 곳이 방어 태세를 바꾸고 있어 그들이 이리저리 숨어 다니면 무사히 열한 동에 도착할 수는 있을 것도 같았다. 그들은 벽에 붙어 살금살금 걸어가 지하감옥 입구에 병사들이 얼마나 있는지 보려고
세 줄기의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날아갔다. 사실 적절한 시기라는 건 없다. 작은 방 주변에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대낮처럼 밝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떤 물체나 사람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수백 개의 시선 아래에서 그들이 아무리 빠르고 경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작은 방 앞에 서서 문을 부숴야 지하 감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하 감옥에 들어가면 그들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전에 사여묵과 무소위가 이미 조사해 봤기에 이런 상황이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원래 계획은 무소위와 염 선생이 호위에게 달라붙어 시간을 끌고 사여묵이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 사람을 구출한 후 재빨리 장대성에게 넘긴 뒤 다시 돌아와 무소위와 염 선생을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방시원이 있어 호위들을 더 쉽게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여묵의 그림자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문은 철로 되어 있어서 부수기 쉽지 않았지만 사여묵은 쇠도 진흙처럼 쉽게 깎을 수 있는 칼을 꺼냈다. 칼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칼날은 아주 날카로웠다. 그가 진기를 담아 칼날을 몇 번 내리치자 철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발로 걷어찬 후 뒤를 돌아보자 사부님이 긴 칼을 들고 대문을 지키고 있었고 염 선생은 수비 병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는 사부님을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염 선생이 걱정되었는데 염 선생의 무공은 최고는 아니었지만 경공이 좋아 경공으로 적들을 지치게 한 후 반격할 기회를 노리기만 하면 되었지만 위험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방시원 등인이 쳐들어온 것을 본 사여묵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많으니 철문만 지키고 있으면 내가 지하 감옥으로 가서 사람을 구출할 수 있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곳은 감옥이 아니라 밀실과 지하 통로였다. 여긴 전쟁에서 사국이 이기지 못한다면 주장들을 옮기거나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진 지하 밀실이었다.하지만 사여묵은 이 땅굴과 밀실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래층으로 들어가면 갈
낮에 아당산에서 열린 상담에서 왕표의 태도는 무척 단호했다. 협상 전에 방천허와 제린은 모두 그에게 빅토르 앞에서 북명왕을 언급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왕표는 그들이 북명왕의 부하였으니 북명왕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승낙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계산이 있었다. 앞서 여러 차례 협상할 때 그는 금이나 곡물, 포목, 비단 등으로 척사를 바꾸자고 흥정했지만, 빅토르가 동의하지 않아 협상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왕표의 인내심은 바닥이 드러났다. 그는 이미 척사를 위해 많은 양보를 했다고 생각했다. 5천 냥에서 만 냥으로 오른 것도 모자라 식량 3천 석, 비단 2천 필까지. 이런 대가로 인질을 바꾸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표는 그들이 너무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시몬성으로 바꾸는 건 절대로 안 돼. 북명왕이 힘겹게 되찾아온 시몬성을 내 손으로 내놓으면 난 모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들 게 분명해.’ 이번 협상이 시작되자 그는 다시 한번 식량을 5천 석으로 늘렸지만 빅토르는 여전히 거절했다. 그러자 왕표는 화가 치밀어 올라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성의가 없는 것 같군. 난 이미 최대한 양보를 했는데 아직도 만족을 하지 않다니. 그렇다면 이 협상도 계속할 필요가 없겠군.” 번역관이 그의 말을 번역하자 빅토르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 협상하지 않을 건가? 정말로 당신들의 정탐꾼을 희생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러자 왕표가 말했다. “성의가 없는 건 당신들이지. 협상할 성의가 없다면 안 하면 된다. 이것 또한 북명왕의 뜻이니 마음대로 하게.” 방천허와 제린은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분명 왕야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북명왕이란 세 글자는 빅토르도 알아들을 수 있어 번역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긴장해서 물었다. “북명왕? 북명왕이 왔다는 건가?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왜 그가 협상하러 오지 않았는가?”번역관이 빅토르의 말을 번역했다
왕표는 두 사람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보고 협상하라고 해놓고 내가 분명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 두 사람이 빅토르를 막아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남강을 수복한 후에야 통병이 되어서 장성들이 원래 불복했다. 그런데 협상마저 실패한다면 그의 위엄을 손상시킬 테니 그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방천허와 제린에게 명령했다. “그만 돌아오너라.” 그리고 번역관에게 말했다. “빅토르에게 말하거라. 그쪽에서 성의가 없으니 협상 종료하겠다고. 협상할 성의가 있다면 내가 말한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번역관이 말을 전하자 빅토르는 왕표를 보았는데 그의 표정에는 이미 인내심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어 명령했다. “당장 성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제린과 방천허는 쫓아가 빅토르를 계속 막았다. 제린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말했다. “빅토르 원수님. 왕 원수님은 척사를 모르니 그에게 정이 없어서 시몬성과 바꾸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흰 척사와 함께 전장에 나간 적이 있어 매우 중히 여깁니다. 그러니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희가 가서 왕원수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빅토르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설득할 수 있었다면 벌써 설득했겠지. 그리고 너희 북명왕이 시몬성과 인질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협상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 “아닙니다. 저희 왕야님은 시몬으로 오시는 길이니 며칠 후면 도착할 것입니다. 왕야께서도 척사를 매우 중시하시니 그가 오면 이 일은 분명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북명왕이 여기로 오고 있다고?” 빅토르는 말하며 제린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자 제린을 고개를 끄덕이며 진정성이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며칠 후면 도착할 겁니다.” 방천허는 물러나 왕표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원수님, 진정하십시오. 비록 우리가 협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지만 협상시간을 최대한 오래 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
제린과 방천허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성의 없이 협상을 해서야 어떻게 빅토르를 붙잡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지금 왕야께서 빅토르가 돌아가기 전에 척사를 구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여묵이 장 씨를 구출해서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큰 싸움이 벌어졌고 방시원 등인마저도 부상을 당했다. 그나마 사부님이 계셔서 아직은 큰 손해를 보진 않았다. 하지만 적의 수가 점점 많아져 지금 당장 후퇴해야 했다. 그는 뛰쳐나와 십여 명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을 보고 경공으로 번개처럼 날아서 업고 있던 사람을 장대성에게 맡겼다. 그러자 장대성은 그 사람을 업고 어둠을 틈타 재빨리 떠났다. 그리고 사여묵은 경공을 펼쳐 그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만약 한 명을 구하려다 여러 명이 잡힌다면 이번 구출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여묵은 손에 금착도를 들고 염 선생의 곁으로 날아가 칼을 휘둘러 순식간에 염 선생을 에워싼 병사들을 물리쳤다. 무소위는 고수와 맞섰다. 빅토르가 적지 않은 고수들을 데려갔지만 여전히 십여 명의 고수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무소위는 이미 사람을 구출해 내 더 이상 철문을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되자 마음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무소위는 제자인 사여묵과 손을 잡으니 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 두 사람은 빠져나오기 쉬워도 다른 사람들은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포위망을 풀어 한 명씩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빅토르가 돌아올까 봐,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도착할까 봐 걱정되어 조금도 우유부단해하지 않고 칼에 진기를 주입해서 돌풍 적인 속도로 한 번에 여러 명씩 처리했다. 이렇게 하면 진기를 더 빨리 소모할 수는 있지만 그들을 물리치고 빨리 도망갈 기회를 찾기는 어려웠다.무소위는 그가 무릅쓰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협력하여 사람들을 데리고 조금
그 묘지는 엄청 컸는데 희생된 병사 대부분이 거기에 묻혀 있었고 묘지의 입구에 아주 큰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묘지기가 사는 방이 몇 칸 있었는데 묘지기는 이미 그들에게 제복 당해 갇혀 버렸다. 온몸이 묶인 채 입까지 틀어 막혀 있어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들은 구조하러 가기 전에 식량과 물을 단단히 비축해 놓았다. 물을 비축한 이유는 척사가 고형을 받았을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는데 사국은 전패해서 분명 척사에게 분풀이를 할 것이고 척사의 부상이 심할 경우엔 바로 산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은 척사를 구출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라 준비한 분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장대성은 이미 척사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사여묵은 방시원을 내려놓고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약과 거즈를 사부와 염 선생에게 건네주었다. “우선 상처부터 치료합시다.” 방시원은 등을 다쳐서 겨우 뛰다가 묘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사여묵은 알약을 부숴 물과 함께 그에게 먹여 주었다. 그리고 옷을 찢었는데 어깨뼈에서 허리까지 뼈가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가 나 있었다. 미리 지혈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출혈이 심해져 죽었을 것이었다. 혈을 봉인한 지 너무 오래되어 그들은 손상이 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였다. 상처를 치료한 후 사여묵은 눈앞의 남자들을 바라보았는데 방시원 말고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척사도 아무리 봐도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방시원은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손을 들었다. “방시원 출석.” 공기가 잠깐 멈춘 듯 조용하더니 모두 보고하기 시작했다. “제방 출석.” “진계 출석.” “진결 출석.” “왕두 출석.” “왕오 출석.” “장태 출석.” “노홍 출석.” “노아금 출석.” 그러자 사여묵은 얼굴을 돌려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감정을 억제하고 말했다. “내가 송가군을 대표해서 당신들의 복귀를 환영한다.”
모두 동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순간 자신의 부인도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을 수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여기에서 노아금만 결혼하지 않았는데 그는 방시원 어머니의 친정 조카로서 처음 전쟁에 참여해 고작 병사에 불과했다. 왕두와 왕오는 수주 출신으로 아금과 장태같은 평범한 병사들이고, 제방은 제육공자의 형으로서 추진화가 주워 온 아들이었다. 공부는 못하지만 무술을 좋아해서 전쟁터에 나가 몇 년을 단련해 포로로 잡히기 전엔 이미 백 부장이 되어 있었다. 제방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약혼을 했지만 그의 희생 소식이 전해지면 약혼녀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갈 것이고 덕망이 높은 제씨 가문은 약혼녀에게 기다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방도 약혼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다만 그는 방시원이 불쌍해졌다. 몇 년 동안 방시원은 힘들 때마다 부인을 언급하며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장 씨도 자신의 부인이 겁이 많아 자신이 희생했다는 걸 알면 분명 오랫동안 슬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 씨는 자신이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부인이 선평후부에 있지 말고 친정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몇 년 동안 정말 위험했는데 언제든지 잡힐 수 있었고 잡히기만 하면 살 길이 없었다. 그들은 충성을 택하고 의를 저버렸으니 자신이 먼저 부인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계와 진잠은 예부상서의 아들이었는데 진계는 적자였고 진잠은 서자였다. 그들 위에 형이 세 명 더 있었는데 모두 공부를 해서 벼슬에 들어갔고 그들 두 형제만 무술을 익혀 전쟁터로 나갔다. 그들이 ‘희생’했다고 했을 때 진상서는 예부좌시랑의 자리에 있었는데 두 아들의 전공에 자신의 근면함까지 더해 예부상서 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다. 사여묵과 송석석의 결혼식 역시 진상서가 주관했다.방시원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더니 간신히 웃으며 눈가의 눈물을 애써 참고 말했다. “차라리 잘 된 것 같습니다. 시집갔으니 더 이상 외롭게 지내지 않아도 되겠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