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동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순간 자신의 부인도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을 수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여기에서 노아금만 결혼하지 않았는데 그는 방시원 어머니의 친정 조카로서 처음 전쟁에 참여해 고작 병사에 불과했다. 왕두와 왕오는 수주 출신으로 아금과 장태같은 평범한 병사들이고, 제방은 제육공자의 형으로서 추진화가 주워 온 아들이었다. 공부는 못하지만 무술을 좋아해서 전쟁터에 나가 몇 년을 단련해 포로로 잡히기 전엔 이미 백 부장이 되어 있었다. 제방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약혼을 했지만 그의 희생 소식이 전해지면 약혼녀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갈 것이고 덕망이 높은 제씨 가문은 약혼녀에게 기다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방도 약혼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다만 그는 방시원이 불쌍해졌다. 몇 년 동안 방시원은 힘들 때마다 부인을 언급하며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장 씨도 자신의 부인이 겁이 많아 자신이 희생했다는 걸 알면 분명 오랫동안 슬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 씨는 자신이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부인이 선평후부에 있지 말고 친정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몇 년 동안 정말 위험했는데 언제든지 잡힐 수 있었고 잡히기만 하면 살 길이 없었다. 그들은 충성을 택하고 의를 저버렸으니 자신이 먼저 부인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계와 진잠은 예부상서의 아들이었는데 진계는 적자였고 진잠은 서자였다. 그들 위에 형이 세 명 더 있었는데 모두 공부를 해서 벼슬에 들어갔고 그들 두 형제만 무술을 익혀 전쟁터로 나갔다. 그들이 ‘희생’했다고 했을 때 진상서는 예부좌시랑의 자리에 있었는데 두 아들의 전공에 자신의 근면함까지 더해 예부상서 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다. 사여묵과 송석석의 결혼식 역시 진상서가 주관했다.방시원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더니 간신히 웃으며 눈가의 눈물을 애써 참고 말했다. “차라리 잘 된 것 같습니다. 시집갔으니 더 이상 외롭게 지내지 않아도 되겠
날씨가 점점 더워져 황실에서는 이미 얼음을 쓰기 시작했다.송석석은 사여묵이 지금까지 편지 한 통도 보내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사숙과 함께 간 것이긴 하지만 인질을 구하기 위해 사국 변성에 침입한 것이고, 사국 병사들이 변성에 집결되어 있어 아주 위험했다.홍시가 탐지해 온 소식에 따르면 장군부 사방에 사복을 입은 경위가 밤낮으로 교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보아하니 황제께서도 누군가가 이방을 해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서경 쪽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이상서가 진성으로 돌아와 멸문 사건을 이미 알아냈다고 보고 했다. 바로 누군가가 그 부인에게 구혼선충을 이용해 이성을 잃게 만들었는데, 그들 일가족을 해친 사람은 그 지역의 도만이라는 상인이라고 했다.범인도 이미 자백했다. 살해 동기는 바로 두 집이 같은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죽은 일가가 모든 장사를 빼앗아가 원한을 품고 있던 중 마침 도만이라는 낭자가 선충을 다룰 줄 안다고 해서 허 씨를 매수하여 선충을 사용해 량 씨를 이성을 잃게 해서 가문을 멸살해버린 것이었다.흠차는 먼저 참수하고 나중에 보고할 권한이 있어 범인이 죄를 인정한 후 이택은 필주 관부에 도만 부부를 참수하여 참사한 피해자를 위로하라고 명령했다.그렇기에 이 사건은 다시 대리사에 회부하여 재심할 필요가 없었다.송석석이 이 일을 알게 된 것도 청작이 돌아와서 알려준 것이었다. 청작은 범인이 법정에서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일시적인 충동으로 벌인 일이라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상서는 그의 자식을 연루시키지 않고 두 사람만 참수해서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이 일이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장사판에 싸우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살인사건도 적지 않지만 이건 분명히 면밀한 계획 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선충을 사용하는 법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도만 낭자가 알고 있다고 해도 허 씨를 매수해 독을 타고 선충을 이용해 살인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도 차질이 있어
송석석이 문제가 있다고 하자 시만자는 당연히 증거를 찾아 나섰고, 그녀는 홍시를 찾아가 회왕을 감시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홍시에게 어떤 흔적도 드러내지 말고 아무에게도 회왕부를 감시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장군부에 자객이 나타나 석석이 나서서 구출을 했을 때도 궁으로 불려 들어가 한참을 성명했었지. 황제가 북명황실에 대해 의심이 있으니 모든 일에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더니 마침 전소환이 평양후부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작은 가마가 폭우를 무릅쓰고 평양후부의 각문으로 들어갔는데 전소환은 마땅한 혼수가 없어 가마에 오르기 전까지 전북망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평양후부로 들어간 그녀는 가의 군주에게 차를 대접했지만 평양후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평향후 노부인은 더욱 그녀를 만나지 않고 단지 평범한 옥팔찌 한 쌍을 그녀에게 주며 추양각을 하사했다. 그녀는 원래 친정에서 두 하녀를 데리고 왔는데 평양후부에 들어서자마자 장군부로 돌려보냈고, 가의 군주가 하녀를 몇 명 보내 그녀를 시중들게 했다. 그녀는 첩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억울했지만 그래도 이곳이 평양후부이니 참아야 하고 장군부에 있을 때처럼 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녁에 그녀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곱게 차려입었다. 그녀는 오늘 첫날밤이니 평양후가 자신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정까지 기다려도 평양후부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비녀를 제거하고 이불속에 숨어 억울한 마음이 들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음 날 알아보니 평양후는 어젯밤 란 부인의 방에서 잤다고 했다. ‘란 부인은 평양후의 유일한 측 실이었는데 자녀도 있고 게다가 지금은 임신 중이어서 평양후의 시중을 들기에 적합하지 않을 텐데 평양후께서 거기로 갈지 언정 나한테 오지 않으려 하다니..’전소환이 시집간 후 장군부는 갑자기 많이 평온해진 것 같아 보였다. 전북망은 장군부 밖에서 지키고 있는 경위를
시만자와 몽동이는 모두 단번에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서경의 정세는 분명 크게 변할 것이다. 태자가 즉위하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이 녹분성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는첫 번째 이유는 복수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정권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세 번째는 변경선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전북망이 왕청여에게 조금이라도 연민이 남아 있다면 왕청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는데 자신의 가문을 지키려고 왕청여를 장군부에 붙잡아놓고 왕표가 장군부를 위해 나서도록 강요한다면 그와 이방은 모두 뼛속에서부터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다.’ 시만자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방긋 웃었다. “전북망이 왕청여를 친정으로 보내는지 내기할래? 나는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봐.” 몽동이는 전북망을 경멸했지만 그래도 그가 전쟁터에서의 용맹함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보내지 않을까? 전쟁터에서는 그래도 책임감이 있어 보이던데.” 그러자 두 사람은 함께 송석석을 보며 물었다. “넌 어느 쪽을 선택할 거야?” 그러자 송석석이 답했다. “사실 나도 전북망을 잘 몰라.” 시만자는 천 냥짜리 은표를 꺼내며 건넸다. “그래도 선택해야지. 우리 천 냥 내기하자꾸나!” 몽동이는 그렇게 큰돈으로 내기하자는 말을 듣고 놀라 고개를 저었다. “난 안 할 거야.” ‘이기면 몰라도 천 냥을 잃으면 돌아가서 사부님께 맞아 죽을 게 분명해.’ “만자야, 그렇게 큰돈 말고 열 냥으로만 내기하는 건 어때?” “그럼 넌 어떤 걸로 할 거야?” 시만자는 몽동이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은표를 보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 송석석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 생각엔 그가 자신의 양심이 찔리지 않게 왕청여에게 물어보기는 하는데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것 같아. 만약 왕청여가 이혼을 선택하지 않는 거라면 자기가 강제적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니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보기엔 넌 그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다만 너의 생각을
6월 19일이 되자, 왕표가 방천허와 제린에게 삼천 병력을 이끌고 서몽성 밖 산으로 나가, 북명왕과 치석을 맞이하라고 명하였다. 구출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사람을 보내는 것은 필수라 생각하였다.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여야만 그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북명왕이 구출에 실패하여 사국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그것은 그의 운명일 뿐이니, 왕표가 사국 국경에 병력을 보낼 일은 없었다.제린과 방천허는 병사를 이끌고 시몬성 밖 가장 높은 산에 도착했다. 그들은 병사 천 명을 남겨둔 뒤, 이천 명을 이끌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되도록 빨리 북명왕과 접선하려는 것이었다.그렇게 또 하나의 산을 넘은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 너머는 초원이라 몇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들어간다면 전쟁이 나 버릴게 분명했다. 사실 북명왕 초원만 넘으면 사국도 함부로 나서기 어려울 터이니, 고수들 몇 명만 쫓아가게 할 생각이였다. 적들의 머릿수가 적으면 상처 입지 않은 상태의 북명왕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방천허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해 제린의 제안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기다리는 건 한계가 있소. 내가 부하들과 함께 산을 넘어가 상황을 봐야겠소. 치석을 구출하는 도중에 혹시라도 다치셨을까 걱정되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겠소."그러자 제린이 반문했다."너무 성급해 하지 마시오. 부하 십여 명만 으로는 소용 없을 것이오. 산이 너무 크고 곳곳이 밀림이라 곧장 통하는 길도 없으니, 북명왕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오.""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방천허는 마음이 조급했다.“원수께서 이렇게 많은 병력을 여기에 배치해 둬도 아무 소용이 없소. 만약 북명왕께서 초원을 지났다면 안전하다는 뜻이고 우리가 삼천 명이든 일천 명이든 간에 초원을 지나 산을 넘는 건 절대 불가능 하오."제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방천허와 제린은 결국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병력은 그대로 남겨두되, 국경을 넘지 않고 초원부락의 침범하지 않은 선에서 백 명만 여러 차례에 걸쳐 이동하게 했다.그렇게 그들은 초원의 척후병의 주의를 피해 우미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산 정상에 올라 동정을 지켜보았다. 비록 우미산은 넓었지만, 그들이 더 높은 곳을 점령한 덕분에 어떤 움직임이든 모두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우미산은 사국과 초원이 양쪽으로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충돌이 일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이성적으로는 그리 판단하였으나, 그들은 상황을 바로바로 알리라고 당부한 뒤 일부 병사만 남겨두고 방천허와 제린은 각각 열 명 정도의 병사만 이끌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같은 시각, 사여묵 일행은 이미 우미산 아래에 다다랐다. 우미산을 넘기만 하면 곧 초원이었는데, 그들은 열여 명밖에 안 되어 초원에 진입해도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빅토르도 여기까진 감히 따라오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쉼 없이 도망치느라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사여묵은 문제없었으나 다른 이들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듯하였다. 더구나 구출 과정에서 몇 사람이 부상을 입었고, 방시원도 처음에는 걸을 수 있었으나 차츰 부축임을 받아야 했고, 결국에는 업히게 되었다. 사여묵은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나, 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탓에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다. 오직 그의 스승, 무소위만 아무렇지 않았다. 하여 우미산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쉬어야 했다. 향 한 자루가 탈 정도로 쉬었을 때쯤, 무소위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눈을 감고 한동안 귀 기울이고는 다시 눈을 뜨며 말하였다. "따라온 것 같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면 분명히 빅토르가 보낸 고수들일 것이다. 우리는 즉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그러자 사여묵은 재빨리 약병을 꺼내 부상당한 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장문
추격병이 뒤에 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눈빛을 교환하던 무소위와 사여묵은 가장 원초적이지만 유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업어 날아오르는 것이다. 장대성과 염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열한 명을 모두 업어야 하기에 최소한 다섯에서 여섯 번을 왕복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극도로 지친 상태였고, 기도 많이 소진된 터라, 그야말로 목숨을 건 일이다. “스승님, 정말 죄송하옵니다.” 너무나도 죄송스러워하는 사여묵을 보던 무소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제자는 너 하나뿐인데 매산에서 가장 골치 아픈 아가씨와 결혼까지 했으니 내가 너를 아끼지 않으면 누가 너를 아끼겠느냐?”사여묵은 덕분에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슬픔 어린 스승의 눈빛에 말문을 닫았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우선 무사히 올라가야 했다. 또한 사여묵의 스승은 고집이 세신 분이라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금방 발끈하시기에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사여묵은 제방을 업고, 무소위는 방시원을 업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장문수를 돌보며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사여묵이 제방에게 말했다. “단단히 붙잡되,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사여묵의 목에 팔을 두른 제방은 곧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사여묵은 무사히 작은 나무를 잡았으나, 완전히 그 나무에 의지할 수는 없었고, 몇 차례나 더 왕복해야 했기에 그는 무릎으로 절벽을 받쳤는데. 잠시 발판을 찾을 수 없었던 발이 옆으로 약간 옮겨졌다. 다행히도 약간 튀어나온 곳이 있어 살 수 있었다. 그는 힘을 모아 다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이동하여 나무를 잡아야 했다. 그가 손을 뻗는 그 순간,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손에 땀을 가득 쥐었다.각도상 그가 나무를 잡지 못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나무를 잡아챘을 때, 모두들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반면 무소위는 다른 경로를 선택하였다. 다른 경로라 할지라도 역시 작은 나무들을 이
모두가 입을 틀어막고 경악에 찬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대로라면 떨어질 게 분명했다. ‘하늘이여!‘바로 그 순간, 무소위와 장대성이 동시에 몸을 날려 사여묵의 한쪽 손을 잡아당겼고, 두 사람의 다른 손은 작은 나무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거리가 꽤 멀었기에 사여묵을 잡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네 명의 무게를 두 그루의 나무가 견디고 있는 상황이니 너무나도 위험했다.바로 그때, 방시원이 재빨리 쇠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내려주었고 정확히 사여묵의 오른손까지 닿았다. 그와 눈빛이 마주친 장대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놓았다. 사여묵이 오른손으로 밧줄을 잡자 무소위도 손을 놓았고, 사여묵은 왼손으로 밧줄을 꽉 잡았다.사여묵의 두 손이 밧줄을 잡은 상태라 이제는 그들이 위에서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무에 감기기에는 밧줄의 길이가 짧았다. 방시원이 쇠갈고리 끝을 내려보낸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쇠갈고리가 아니라 밧줄이었다면 힘 없이 흔들려서 사여묵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에 걸지 못한 이상, 사람의 힘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부상당하지 않은 이들도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들이 이를 악물었지만 겨우 한 장 끌어올렸다.그 사이 염 선생은 무사히 올라갔다. 하지만 장대성과 무소위는 감히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들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밧줄이 풀리기라도 하면 그들이 즉시 손을 써야 했다. 위에서는 더 이상 당길 수 없고 사여묵은 발 디딜 곳이 없었으며 장문수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있었다. 이는 그의 부상을 악화시킬 뿐이었다.방시원은 초조하게 주변을 살피며 덩굴을 찾았지만, 이곳의 덩굴들은 손으로도 한 번에 끊어질 정도로 얇아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황이 점점 더 위급해지자, 그는 자신의 등에 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태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아 그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다.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결국엔
그날 밤, 연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다.솔직히 지금 상황은 연왕의 오랜 계획과 차질이 조금 있었다. 지방 지역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진성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진성까지 쳐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연왕과 무상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일단 병사들을 일정한 수량까지 늘이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진성 일대로 전이하여 병사들을 안치한 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땐 사온이 진성에서 계략을 짜고 있을 것이고 많은 세가들의 지지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전에 고부진의 딸들을 세가에 시집 보냈기에 세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나서 적절한 시기만 잘 고르면 반드시 성공한다. 진성에 전란이 일어나고 산적과 유랑민들이 판을 칠 때 연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성내로 쳐들어가 바로 궁 전체를 포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대석촌에 일이 터져 버려 사청엽이 체포된 탓에 연왕은 급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너무 낮았기에 연왕도 망설였던 것이며 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진성까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물론 백성들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수군거리겠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과 격문을 그저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사국에서 남강을 공격한다고 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사국에서 오래 전부터 호시탐탐 야망을 보였기에 황제가 나랏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직 사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패했다는 소식도 없기에 상국 무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태평한 상황에서 연주도 꽤 부유한 땅이었기에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모두 그저 연왕이 언제 잡히는지, 언제 역모죄로 목이 잘릴지를 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국에는 사국 사람들을 물리친 북명왕이 있기에 다들 역적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연왕이 왜 역모를 일으키
무상이 아니라는 말에 연왕은 회왕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화들짝 놀란 회왕이 변명하려던 그때, 연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왕일 리는 없어.”회왕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연왕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한편, 연왕은 당연히 회왕을 의심할 리가 없었다. 회왕은 무일푼으로 연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성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따내지 못했으며 사온의 비교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었다.회왕이 연주에 온 뒤로 연주 백성들은 회왕을 만나면 겉으로는 왕야라고 부르며 인사를 올리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아니꼽게 생각했다.때문에 회왕은 절대 마총우를 명령하지 못한다.조금씩 차분해진 연왕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다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총우 그자가 귀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가?”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무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마총우가 귀순한 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왕야께서 격문을 보낸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병력은 대여섯 군데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의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조정에서 절대 쉽게 조사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마총우 그자를 찾아서 귀순 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날 일부러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그럼 그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연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연왕이 몇 년 동안 끌어 모은 사람들 중에 황제의 친인척과 세도가들도 있지만 친왕은 연왕과 회와 두 사람밖에 없었다.연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었다. 연왕의 부하들 중에서 황제의 친인척들이 제일 무능하고 멍청했으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의심되는 상대는 여전히 무상이었다.하지만 역모의 마음을 품은 연왕이 무상을 끌어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무상은 강한 충성심을 보였고 심지어 평소에 연왕에게 쓸만한 제안도 가장 많이 하고 계책
사청엽의 자백과 함께, 사온이 죽기 전에 남겼던 ‘오라버니를 도와 반역을 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반성문으로 인해 연왕의 역모는 확실해졌다. 이에 숙청제는 명령을 내려 연왕에게 진성으로 돌아와 사죄하라고 지시했다.그리고 연주지부에 또 다른 명령을 내렸는데 바로 연주에서 연왕을 제압해서 진성으로 압송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젠 연왕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사람들 앞에서의 위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 함께 역모를 꾸민 자들은 모두 패기와 결단력을 갖춘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연왕을 대신하기를 바랐다.아마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무상이 알려준 것이었다. 무상이 요즘 회왕과 비밀리에 돌아다닌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연왕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전에 남강 부장이 사국인과 결탁하여 사국 사병을 남강으로 들여보내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각지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산적과 도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을 점령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조정에 대한 성토가 끊임없이 쏟아지자 연왕은 분노하며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는 황제가 어리석다고 비판하며, “무장은 무능하고 간신이 정권을 장악했으니, 내가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고 정의를 바로잡겠다. 뜻을 함께하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고 외쳤다.하지만 격문이 나가고 반기도 일으켰지만 몇 곳의 산적들만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사병도 삼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연주에 있는 오 백부병도 삼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옹현에서 이전한 사병은 약 35000명으로 마총우가 통솔하고 있었는데 전에 한 약속에 따르면 그가 격문을 보내 성토를 하면 마총우가 군사를 이끌고 소씨, 송씨, 가씨 세 저택을 점령하는 것이었다.왜냐하면 이 세 곳은 강남의 경비소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3만 명의 병력이 세 곳을 점령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
이튿날, 두 사람은 정오가 돼서야 깨어났다. 눈동자가 마주치자 사여묵은 잠을 자고 나니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아 그녀를 끌어안고 입술로 그녀의 귀를 비볐다.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일어나야지요.” 보주는 밖에서 인기척을 듣고 그들이 다시 잠이 들까 봐 급히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태비께서 사람을 세 번이나 보냈습니다.” 사여묵은 작은 산봉우리에 올려놓았던 손을 거두고 맹렬한 눈빛으로 포악하고 오만하게 말했다. “지금은 당신 말 듣고 밤에는 내 말 듣도록 하오.” 어젯밤엔 사여묵이 너무 늦게 돌아와서 태비마마에게 인사드리러 가지 않았다. 예전에 태비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심지어 전쟁터에 나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쟁터의 위험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태후께서는 항상 자신의 아들이 천하무적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저택 반 이상의 인원이 출동했고 모두들 긴장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그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송석석이 돌아왔지만 사여묵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궁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를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을 보냈는데 몇 번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태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조화가 없을 때도 두 사람은 모두 진시에 일어났기에 태비는 그들이 그렇게 까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혜 태비는 근심걱정을 하는 게 무슨 느낌인지 이제야 알았다. 마침내 그들이 손을 잡고 나타난 것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두 사람은 광소매 옷을 입고 왔는데 남자는 위풍이 당당했고 여자는 늠름함이 느껴졌다. 혜태비는 그들이 예의 바르게 절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앉으라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이번엔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절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문안을 드린 후, 두 사람은 먼저 각각 대리사와 경위부로 돌아갔다. 오늘은 사청엽을 심문하는 날이었다. 사청엽은 말라서 온몸
숙청제는 사여묵이 고생한 것을 알면서도 그를 남겨놓고 병부상서와 시랑, 그리고 방시원을 궁으로 불러들여 의논을 했다. 왜냐하면 반드시 상황을 종합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추정한 뒤 기존 병력에 맞춰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건 여전히 남강이었지만 사여묵이 서경의 수란석을 언급했을 때 그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국과 서경을 동시에 결탁할 능력은 없어.” 상국은 서경에게 끝까지 당당하지 못했다. 협상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 그들은 서경에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대체 얼마나 잠복해 있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냐는 것이었다. 병부 이덕회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각지의 지도를 반복해서 보았다. 그 지형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익숙해졌다. ‘젠장. 이런 곳에 도적이나 사병이 있다면 토벌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사여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도적들에 대한 책략은 무엇입니까?” “발견하는 대로 정리하는 것이지.” 그러자 이덕회는 얼떨떨해져서 사여묵이 그런 수준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누가 그걸 몰라? 문제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왕야님, 이게 다인가요? 다른 사병은 있습니까?”“있다. 옹현의 사병이 대체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 내가 보기엔 일단 흩어져서 반란을 일으킬 때 다시 모일 계획일 것 같아. 그러니 찾을 필요가 없이 분란을 일으키면 사병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지.”병부의 관리들은 지도를 보고 병마의 분포에 대응했다. 남강과 성릉관의 병마는 움직일 수 없고 경외 주둔군들도 움직일 수 없으니 광신과 강남의 병마만 움직일 수 있었다.숙청제는 들으며 연왕이 반란을 일으킬 것은 걱정하지 않고 상릉관과 남강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을 했다.그는 문득 자신이 사여묵을 경계하고 있는 동안 역적은 끊임없이 책략을 쌓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성릉관에 도착한 전북망은 수부로 찾아가서 생신 선물을 드렸다. 그는 혼날 준비를 다 했는데 결국 소 씨 가문에서는 사람을 보내 선물만 받아가고 그들을 안치해서 며칠 쉬었다가 남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의뢰로 아무도 그를 욕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혼내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피곤한 발걸음을 끌고 나갔다. “이 성릉관의 수부는 우리가 남강에 있을 때의 수부와 비교가 되지 안 되는군. 넓긴 하지만 너무 소박하고 누추해서 변변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수부를 나서자 그와 함께 온 병사 양관이 말했다. 그러자 전북망은 한 마디만 했다. “왕 원수와 소대장군을 비교하지 마라.” 그리고 그는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더 했다. ‘왕표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양관은 원수를 비난하지 말라고 하는 줄 알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대영에 안치되어 대통포에 묵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더 일찍 남강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들 넷은 아무도 남강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왕표는 그들에게 이곳에서 소 씨 가문의 연병술을 배워서 설 후에나 남강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런 문서도 주지 않아 그들은 여전히 남강의 병사들이었다. 그러니 여기에 남아 있는다면 이곳의 장수들도 아마 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다.게다가 전북망은 자신의 명성이 성릉관에서 얼마나 구린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우선 머물면서 천천히 방법을 강구하여 내년 초봄까지 머물다가 남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온 날은 3월 15일이라 청명이 지났다.매산 사람들은 이미 매산으로 돌아갔다. 무소위는 원래 진성에 가서 며칠 묵고 싶었지만 그들이 바쁘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가면 그들이 불편할까 봐 가지 않았다.진성에 도착한 후 사여묵은 먼저 사청엽을 대리사에 가둔 후 입궁해서 복명하고, 송석석은 먼저 저택으로 돌아갔다.염 선생은 피로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을 보고 급히 사람을 시켜 따뜻한
그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야 고청우는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그의 옷을 움켜쥐고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얼굴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 밑에는 냉랭한 혐오감이 감돌았고 방금 전의 애처로움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녀는 눈앞의 늙은이를 미워했고 그녀의 미모와 몸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녀는 바둑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심을 얻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길이 없었다. 장사꾼에게 시집을 가자니 그 고생은 못할 것 같고, 그러니 이용당하더라도 편히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진성을 떠나 며칠 동안 정처 없이 돌아다닌 후, 그녀는 자신이 영원히 부귀영화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왕표가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승낙했던 것이었다. 그때의 그녀에게 있어서 그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녀는 자신의 출신은 귀족에게 정식으로 시집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량소가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살 길을 열어주지 못했고 결국 첩으로만 살았다. 오기도 없는 량소를 생각하자 그녀는 아직도 재수가 없는 것 같았다. 왕표의 본질은 량소와 같았다. 현모양처가 있는데도 잘 대해주지 않고 제대로 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최 씨가 자신 때문에 왕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민감하고 나약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의부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 세 가족이 전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조금 힘들어도 관인과 아들이 제 곁에 있다면 전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 당신 말 들으마.” 왕표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만약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가 원수고 뭐고 다 버리고 당신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게.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 손엔 은자가 조금 있으니 그렇게 힘들지
시부인이 바로 그날의 고청우였다. 산후조리를 마친 그녀는 얼굴에 빛이 났고 몸집은 붓기가 하나도 없었으며 여전히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남강에는 모래바람 때문에 겨울엔 아주 추웠지만 그녀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저택의 좋은 물건은 모두 그녀가 사용했다. 매일 낙타젖으로 제비집을 삶고 양젖으로 목욕을 했는데 진성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그녀는 조금도 절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양을 하니 적어도 왕표의 눈에는 지극히 고귀한 존재로 보였고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의 마음도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국색천향의 미인, 매력이 있는 미인, 온유한 미인 등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여우 같은 고청우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방천허마저도 그녀의 신분이 의심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표는 그런 말을 듣고 오히려 욕을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청우는 진작에 자신의 신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이곳에 와서 살 길을 찾고 싶었을 뿐 그에게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왕표에게 엄격한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고청우가 왕표를 유혹한 게 아니라 왕표가 끝까지 쫓아가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왕표는 그녀를 갖기 위해 많은 방법을 썼는데 처음엔 그녀를 수양딸로 삼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부부가 된 후에도 고청우는 밤에 가끔씩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왕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한 것 같았다.그는 아들이 생긴 데다 아름다운 부인을 보면서 심지어 여생을 남강에서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최 씨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 몇 년 동안 그녀가 중책을 맡아 집안의 재산을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가 밖에서 군사를 이끌 기에 백작 부인인 그녀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사여묵은 원래 누군가가 연왕의 배후에서 조종을 한다고 여겼지만 목종욱이 함부로 추측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실증도 없었으니 연왕을 죽였다면 황제는 황숙을 이유 없이 죽인 혼군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 아닌가? 그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구실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지. 반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의 세력이 이 정도까지 확장되었으니 누군가 깃발을 들것이다. 그를 연주로 보낸 이유는 그가 애초에 사온이 접촉했던 인맥과 다시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야.” 그러자 목종욱이 말했다. “그런 것이군요.” “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이 거사를 일으키려 한다면 분명 각지에서 트집을 찾아 봉기를 일으킬 것이니 조심해야 하네. 특히 강남은 우리 상국의 공창과 상회의 땅이니 그곳을 빼앗긴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여묵이 재차 당부하자 목종욱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그들이 강남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모두 인계한 후 사여묵도 진성으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그는 지금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사청엽이 진성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평생 체면에 신경을 썼는데 이젠 호위가 앞뒤 좌우에서 호송하는 건 흔치 않으니 이번 생에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중간에 휴식할 때 송석석은 강철 바늘을 팔찌에 넣었다. 사병을 소탕할 때 팔찌의 강철 바늘을 다 썼는데 정말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산악전에서는 적이 분산되어 있어서 일단 발견하면 강철 바늘이 멀리까지 쏠 수 있어서 경공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그녀가 산에서 몇 번 넘어져서 팔찌가 약간 변형해서 사여묵이 역관에게 공구를 빌려 수리해 주었다. 복구하지 않으면 각도에 문제가 생겨 정확하게 발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진성으로 돌아갈 때 남강에 있던 전북망도 마침내 성릉관에 도착했다. 왕표가 특별히 그들 몇 명을 성릉관으로 보내 소대장군에게 생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전북망을 따라갔던 세 사람은 모두 전북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