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은 시몬성 밖에서 삼황자를 만났다. 지금 서경태자인 그는 상국사람들을 매우 증오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면, 녹분성의 일이 매우 골치 아파질 것이다.송석석은 외조부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이미 회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릉관을 지키고 있었다. 경성으로 돌아와 편안히 지낼 수도 있는데 말이다.보통 무장들은 이 나이가 되면 물러나는 것이 마땅했다. 송석석은 황제가 젊은 무장들을 기용하려는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지만, 근래 몇 년간 중책을 맡을 만한 자들은 별로 없었다. 황제는 또 사여묵의 병권을 회수했다. 서경과 사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장군였으니 그가 병권을 쥐고 있으면 사방을 진정시킬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안정된 시기라 왕표에게 병권을 맡겨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겠으나,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왕표로는 부족할 것이다. “일찍 쉬어. 이 사건은 경조부로 넘어갈 것이니, 내일 경조부에서 와서 두루 물을 거야. 그러면 황제께서도 궁으로 부르실지도 몰라.”장군부에 다녀온 후 송석석은 마음이 어딘가 찝찝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전북망이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을 때는 정말 우스꽝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다행히 사여묵이 진성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폭발했을 것이다. 다음 날은 날이 좋았다.막 떠오른 해는 하늘을 비단으로 아름답게 물들였다. 준비를 마친 송석석이 서우가 왜 오지 않는지 물으려는 그때, 보주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심 아가씨께서 서우 도련님을 서원에 보내셨습니다.”“이렇게나 이른 시간에 말이냐?” “네, 심 아가씨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훈련하셨고, 서우 도련님은 어제 배운 것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일찍 가서 훈장님께 물어보겠다고 하셨습니다.”“오? 첫날부터 이렇게 어려운 것을 가르쳤단 말인가?”송석석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제는 훈장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물어보는 것을 깜빡 잊었다. “노
한창 이야기하던 중에 송석석이 물었다. “그 귀걸이, 상태는 어떻습니까?”“어머님께서 이미 사람을 시켜 금경루에 맡긴 상태입니다. 아마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소중한 물건은 그냥 두는 게 좋겠습니다. 밖은 위험할 수 있으니깐요.”귀걸이 하나 때문에 그토록 마음 쓰는 그녀의 모습에 그 귀걸이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그러자 이석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다만 어제는 위국이를 서원으로 보내는 날이라 귀걸이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함께 위국이를 서원에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혼인할 때 평생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걸 알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정말로 버텨내기 힘들더군요.”송석석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연민 중 반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고, 반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이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왕비님처럼 강한 분은 저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겠지요.” 아마도 이석은 오랫동안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다. 혹은 그녀의 남편이 송국공의 휘하에 있었고, 송국공의 일곱 용사들이 남강 전장에서 희생되었기에 그녀는 마음속의 고통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는 큰 뜻도 없었고, 재능이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닙니다. 둔하고, 일을 할 때도 결단력이 없지요. 하지만 제 남편은 달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영웅이 되었고 외모도 출중하였으며, 게다가 후작부의 명문가 출신이었지요. 그런 그가 누군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같이 평범한 여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열일곱에 그와 혼인하였고, 지금 스물다섯입니다. 혼인한 지 팔 년이 되었으나, 그동안 거의 함께하지 못해 아이를 낳지 못하였지요. 다행히 지금은 위국이 있으니, 친자식은 아니지만
시몬성. 왕표는 이미 매우 짜증이 나 있었다. 네 번의 협상 동안, 빅토르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서몬을 내주어야만 치석을 돌려보내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포로들은 이미 교환되었지만, 그마저도 손해였다. 두 나라 포로 인수도 맞지 않았고, 사국의 포로는 송씨 가문의 두 배에 달했다. 포로 숫자가 맞지 않았으니, 그들이 얼마나 많은 포로를 죽였는지를 알 수 있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이제는 치석 한 사람의 목숨으로 시몬성을 맞바꾸겠다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는 것이다.얼마 전 북명왕이 와서 협상을 지연시키라고 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빅토르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방천허와 제린도 치석이 남강 수복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계속해서 말했지만, 왕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 송 씨 가군 명단에는 치석이라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병참 정보에 누락되었다고 하더라도, 치석 한 사람만으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따라서 그는 치석이 가져온 정보는 단지 전방의 정찰병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협상은 이미 너무 오래 끈 상태라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포로들은 이미 교환되었고, 치석이 충신이라면 자신 한 사람 때문에 조정이 서몬을 내어주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황제가 사여묵을 보내 협상에 참여하게 했고, 사여묵이 도착한 후 협상을 지연시키라는 명을 내리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왕표는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치석를 희생시키게 된다면, 그 비난의 화살을 자신이 맞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사여묵이 모습을 들어내지 않으니, 여전히 그가 협상의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치석를 희생시키거나 서몬성을 버리거나 그 중의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백성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대상은 그가 될 것이고, 사여묵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그
진성. 송석석은 자객이 장군부에 침입한 지 나흘 만에 궁으로 소환되었다. 경조부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경위와 순방영에서도 오지 않았다. 송석석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군부의 정보를 토대로 경조부와 순방영이 조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상태에서 황제께 보고드린다. 그제서야 황제께서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물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편, 송석석이 궁에 들어갈 즈음, 전북망은 며칠간의 부상 치료 끝에 침상에서 겨우 일어나 이방에게로 갔다.그는 며칠 동안 감정을 억누르느라 고통스러웠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였으나, 검에 맞은 터라 침상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다. 무장이 병으로 몸져누우면 그 가치는 완전히 사라지고, 경위조차도 할 수 없게 된다.이방도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상처는 가벼워서 진작 일어날 수 있었으나, 그녀는 침대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이가 그녀를 원수로 보고 있었고 하인들조차도 그녀를 두려워하면서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루 세 끼에 약은 끊기지 않았으나, 황제께서 내린 혼례였기에 이방을 쫓아낼 수도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녀는 전북망이 마음을 완전히 닫았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정 또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여 전북망이 분노에 가득 차 방으로 들어왔을 때, 이방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북망은 그녀를 침대에서 거칠게 끌어 올리고 분노와 울분이 가득한 얼굴로 고함쳤다. “어떻게 나를 밀어서 칼을 피할 생각을 한 것이오?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신이 내린 결정이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오? 이것이 당신이 계획한 우리 미래요?”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객의 목표는 당신이 아니기에 밀어냈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로 저를 대신해 죽으라고 밀쳤겠습니까? 그날 밤 자객은 저를 노리고 왔고 당신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전북망
전북망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빈정거렸다.“당신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우리의 미래만을 생각한다고 내게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믿었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은 개를 믿을지 언정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속였소. 녹분성 사건도 내가 몇 번이나 물어보았건만 당신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나에게 숨기더니 이젠 나를 부추겨 송석석을 의심하게 하다니?”그는 이방에게 몸을 숙이며 다가가 냉담하게 말했다.“내가 당신을 믿을 것 같았소? 혹시 그날 밤의 추태를 기억하오? 당신은 혼자 살자고 곧장 문희거로 달려가 왕청여와 두 시녀를 문밖에 막고 그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지. 아니, 내가 잘못 말한 것 같소. 그건 추태가 아니라 당신의 이기심과 냉혹함이었소. 당신이 왕청여에게 했던 말을 모두가 믿을 줄 알았소? 틀렸소. 난 한 글자도 믿지 않소. 오월과 유월, 그리고 그 시위들은 원래 죽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었소. 당신이 문희거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싸웠다면 우리가 자객에게 죽더라도 나는 원한이 없었을 것이오.”그는 천천히 허리를 펴며 계속 말했다.“하지만 당신은 문희거로 도망을 갔고 저택에 누를 끼치는 쪽을 선택했지. 왜? 당신의 목숨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은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오월과 유월도 여자인데 여자에 대한 당신의 위대한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이오? 큰소리를 칠 땐 언제고 정작 닥치니 아주 매섭게 변하더군. 그게 바로 당신의 진정한 모습이었소. 이기적이고 뱀처럼 독한 사람.”이방의 얼굴은 순간 경직되었다. 그녀는 이젠 전북망도 속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방은 콧방귀를 뀌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뭐라고 하든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깊게 생각할 것입니다. 송석석이 어떻게 장군부에 위험이 있는지 알고 구하러 온 것인지. 그녀가 무인이라 예전의 원한을 품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의 일가족을 구하러 왔다는 헛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위험을 무릅쓰고?” 전북망은 경멸하는
전북망은 왕청여를 바라보며 그녀의 잃은 두 시녀가 떠올라 괴로운 말투로 말했다.“오월과 유월의 일은 미안하오. 내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소.”“말 돌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에서 난 어떤 위치인지 물었습니다.”왕청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집착하여 물었다.전북망은 옆에 있던 나무를 붙잡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제야 화를 가라앉히고 가볍게 말했다.“말을 돌리지 않았소. 다만 그들의 죽음에 대해 유감스럽고 안타까움을 표현했을 뿐이오. 그리고 당신은 내 마음속에서 당연히 본처의 위치에 있지 않겠소?”“그냥 본처의 자리뿐입니까?”왕청여는 눈을 붉히며 끈질기게 캐물었다.“당신은 나에게 흔들린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입니까?”그녀의 말을 들은 전북망은 멍해져서 왕청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들의 혼사는 목씨 부인이 중매한 것이고 황제의 뜻이기도 하니 두 사람이 서로 존경하고 공경하면 된다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왕청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그는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는 왕청여가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볼 줄은 몰랐다.그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본 왕청여는 그의 뜻을 알아채고 참담하게 웃었다.“그러니까 사랑은 조금도 없고 부부의 정 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전북망은 힘겹게 말했다.“난 당신의 부군이니 당신을 존경하고 지켜줄 것이오.”“자객이 오월과 유월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고 할 때 당신이 목숨을 걸고 날 구하러 온 게 책임감 때문이었습니까?”왕청여는 한 발짝 물러서더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책임뿐이었습니까?” “난…… 당신은 내 부인이니 당신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도리요.” 전북망은 자신이 송석석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다시금 떠올라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왕청여는 실망이 극에 달한 듯 손을 뻗어 눈물을 훔쳤다. “내가 당신의 집에 시집와서 가문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누이를 참으며 당신의 그 추하고 악독한 평처까지 참아줬는데 이제 와서 나에게 조금도 애정이 없다고 하시
송석석은 밤에 무기를 가지고 나간 데다 장군부에 자객이 침입할 것을 미리 알고 찾아간 것이니 황제의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리 현갑군의 부지휘사라고 하지만 그래도 함부로 밤중에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니 자객의 행방을 안다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제는 그녀가 곳곳에 정탐꾼을 분포했다고 의심했고 그녀를 의심하는 건 곧 북명황실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송석석은 눈을 들어 직언했다. “황제폐하께서도 송씨 가문이 멸문을 당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우를 찾아온 후부터 저는 그가 변을 당할까 걱정이 되어 사저에게 상경한 사람 중 행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에 상경해서 롱주에 묵은 몇 사람이 있었는데 무공도 대단한 데다 객잔에 입주한 후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아 서우를 해칠까 봐 사람을 붙여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날 밤 그들은 야행복을 입고 롱주의 2층에서 뛰어내렸는데 황실이 아니라 청작거리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묵 승상과 태부의 저택이 그쪽에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이 중신에게 해를 가할까 봐 쫓아갔는데 그들이 청작거리로 간 것이 아니라 장군부로 향할 줄은 몰랐습니다.” 숙청제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웃으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넌 장군부와 원한이 있을 텐데 왜 구하려 나섰느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무고한 생명이기도 하고 장군부와 사람을 죽일 만큼의 원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갑군의 지휘사이기도 하니 못 본 척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숙청제는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 “너의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날 밤 자객의 목표가 이방이었다는 건 알고 있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 “그건 모릅니다. 제가 그들의 손과 발을 부러뜨리자 전 씨 둘째 어르신께서 그들을 묶었고 필명이 경위들을 데리고 달려와 저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숙
전쟁 후로부터 사국의 변성에는 줄곧 중병이 주둔해 왔다. 특히 지금은 상국과 협상해서 인질로 시몬성을 바꾸려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인질을 가둔 감옥에도 중병을 파견해서 지키고 있었다. 사여묵 등인이 변성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들은 드디어 척사가 갇힌 곳을 알아냈는데 변경의 관문을 지키는 위소였는데 금성탕지처럼 견고했다. 그리고 그 높은 벽 안의 감옥 구조도 낱낱이 밝혀졌다. 왕표에겐 5일의 기한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일이 5일 기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몰랐다. 사여묵은 내일 빅토르가 왕표와 다시 협상할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5일의 기한은 모르지만 사여묵은 왕표가 그의 명령을 듣지 않고 협상을 미루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여묵은 내일 빅토르가 아당산으로 협상하러 가는 동안 척사를 구출해 낼 예정이었다. ‘빅토르의 신변에는 고수들이 많아서 아당산으로 갈 때 대부분의 고수들을 데리고 갈 것이야. 전쟁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북명군에게 패배를 당해서 빅토르는 북명군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가지고 있지. 아당산에 가서 협상을 하는데 만약 왕표가 직접 거절한다면 빅토르는 오래 머물지 않고 다음날 밤늦게라도 돌아올 것이야. 하지만 왕표가 협상할 때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하는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빅토르를 잡고 있으면 모레쯤 돌아올 것이야. 그럼 구조 시간은 충분할 텐데.’ 염 선생은 구출 전략을 세웠다. 한 명은 밖에서 호응하고 세 명은 침입해서 사람을 구하는 전략이었다. 밖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장대성으로 정하고 시간은 내일 밤 유시로 정했다. 유시로 정한 이유는 그 시간에 수비를 바꾸기 때문이었다.세 사람은 비록 무공이 높지만 금성탕지처럼 높은 벽을 뚫고 지하 감옥까지 들어가 사람을 구출하기에는 난도가 높았다. 하지만 사여묵과 그의 사부님은 밤을 틈타 몇 번이나 침입했었다. 비록 지하감옥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지형에 익숙하고 수비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승산은 있었다. 한편 변성 인근 벨강 옆 통나무집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그날 밤, 연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다.솔직히 지금 상황은 연왕의 오랜 계획과 차질이 조금 있었다. 지방 지역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진성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진성까지 쳐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연왕과 무상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일단 병사들을 일정한 수량까지 늘이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진성 일대로 전이하여 병사들을 안치한 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땐 사온이 진성에서 계략을 짜고 있을 것이고 많은 세가들의 지지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전에 고부진의 딸들을 세가에 시집 보냈기에 세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나서 적절한 시기만 잘 고르면 반드시 성공한다. 진성에 전란이 일어나고 산적과 유랑민들이 판을 칠 때 연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성내로 쳐들어가 바로 궁 전체를 포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대석촌에 일이 터져 버려 사청엽이 체포된 탓에 연왕은 급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너무 낮았기에 연왕도 망설였던 것이며 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진성까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물론 백성들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수군거리겠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과 격문을 그저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사국에서 남강을 공격한다고 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사국에서 오래 전부터 호시탐탐 야망을 보였기에 황제가 나랏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직 사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패했다는 소식도 없기에 상국 무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태평한 상황에서 연주도 꽤 부유한 땅이었기에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모두 그저 연왕이 언제 잡히는지, 언제 역모죄로 목이 잘릴지를 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국에는 사국 사람들을 물리친 북명왕이 있기에 다들 역적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연왕이 왜 역모를 일으키
무상이 아니라는 말에 연왕은 회왕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화들짝 놀란 회왕이 변명하려던 그때, 연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왕일 리는 없어.”회왕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연왕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한편, 연왕은 당연히 회왕을 의심할 리가 없었다. 회왕은 무일푼으로 연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성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따내지 못했으며 사온의 비교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었다.회왕이 연주에 온 뒤로 연주 백성들은 회왕을 만나면 겉으로는 왕야라고 부르며 인사를 올리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아니꼽게 생각했다.때문에 회왕은 절대 마총우를 명령하지 못한다.조금씩 차분해진 연왕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다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총우 그자가 귀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가?”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무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마총우가 귀순한 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왕야께서 격문을 보낸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병력은 대여섯 군데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의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조정에서 절대 쉽게 조사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마총우 그자를 찾아서 귀순 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날 일부러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그럼 그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연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연왕이 몇 년 동안 끌어 모은 사람들 중에 황제의 친인척과 세도가들도 있지만 친왕은 연왕과 회와 두 사람밖에 없었다.연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었다. 연왕의 부하들 중에서 황제의 친인척들이 제일 무능하고 멍청했으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의심되는 상대는 여전히 무상이었다.하지만 역모의 마음을 품은 연왕이 무상을 끌어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무상은 강한 충성심을 보였고 심지어 평소에 연왕에게 쓸만한 제안도 가장 많이 하고 계책
사청엽의 자백과 함께, 사온이 죽기 전에 남겼던 ‘오라버니를 도와 반역을 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반성문으로 인해 연왕의 역모는 확실해졌다. 이에 숙청제는 명령을 내려 연왕에게 진성으로 돌아와 사죄하라고 지시했다.그리고 연주지부에 또 다른 명령을 내렸는데 바로 연주에서 연왕을 제압해서 진성으로 압송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젠 연왕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사람들 앞에서의 위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 함께 역모를 꾸민 자들은 모두 패기와 결단력을 갖춘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연왕을 대신하기를 바랐다.아마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무상이 알려준 것이었다. 무상이 요즘 회왕과 비밀리에 돌아다닌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연왕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전에 남강 부장이 사국인과 결탁하여 사국 사병을 남강으로 들여보내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각지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산적과 도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을 점령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조정에 대한 성토가 끊임없이 쏟아지자 연왕은 분노하며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는 황제가 어리석다고 비판하며, “무장은 무능하고 간신이 정권을 장악했으니, 내가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고 정의를 바로잡겠다. 뜻을 함께하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고 외쳤다.하지만 격문이 나가고 반기도 일으켰지만 몇 곳의 산적들만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사병도 삼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연주에 있는 오 백부병도 삼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옹현에서 이전한 사병은 약 35000명으로 마총우가 통솔하고 있었는데 전에 한 약속에 따르면 그가 격문을 보내 성토를 하면 마총우가 군사를 이끌고 소씨, 송씨, 가씨 세 저택을 점령하는 것이었다.왜냐하면 이 세 곳은 강남의 경비소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3만 명의 병력이 세 곳을 점령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
이튿날, 두 사람은 정오가 돼서야 깨어났다. 눈동자가 마주치자 사여묵은 잠을 자고 나니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아 그녀를 끌어안고 입술로 그녀의 귀를 비볐다.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일어나야지요.” 보주는 밖에서 인기척을 듣고 그들이 다시 잠이 들까 봐 급히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태비께서 사람을 세 번이나 보냈습니다.” 사여묵은 작은 산봉우리에 올려놓았던 손을 거두고 맹렬한 눈빛으로 포악하고 오만하게 말했다. “지금은 당신 말 듣고 밤에는 내 말 듣도록 하오.” 어젯밤엔 사여묵이 너무 늦게 돌아와서 태비마마에게 인사드리러 가지 않았다. 예전에 태비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심지어 전쟁터에 나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쟁터의 위험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태후께서는 항상 자신의 아들이 천하무적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저택 반 이상의 인원이 출동했고 모두들 긴장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그녀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송석석이 돌아왔지만 사여묵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궁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를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을 보냈는데 몇 번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태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조화가 없을 때도 두 사람은 모두 진시에 일어났기에 태비는 그들이 그렇게 까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혜 태비는 근심걱정을 하는 게 무슨 느낌인지 이제야 알았다. 마침내 그들이 손을 잡고 나타난 것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두 사람은 광소매 옷을 입고 왔는데 남자는 위풍이 당당했고 여자는 늠름함이 느껴졌다. 혜태비는 그들이 예의 바르게 절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앉으라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이번엔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절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문안을 드린 후, 두 사람은 먼저 각각 대리사와 경위부로 돌아갔다. 오늘은 사청엽을 심문하는 날이었다. 사청엽은 말라서 온몸
숙청제는 사여묵이 고생한 것을 알면서도 그를 남겨놓고 병부상서와 시랑, 그리고 방시원을 궁으로 불러들여 의논을 했다. 왜냐하면 반드시 상황을 종합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추정한 뒤 기존 병력에 맞춰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건 여전히 남강이었지만 사여묵이 서경의 수란석을 언급했을 때 그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국과 서경을 동시에 결탁할 능력은 없어.” 상국은 서경에게 끝까지 당당하지 못했다. 협상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 그들은 서경에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대체 얼마나 잠복해 있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냐는 것이었다. 병부 이덕회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각지의 지도를 반복해서 보았다. 그 지형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익숙해졌다. ‘젠장. 이런 곳에 도적이나 사병이 있다면 토벌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사여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도적들에 대한 책략은 무엇입니까?” “발견하는 대로 정리하는 것이지.” 그러자 이덕회는 얼떨떨해져서 사여묵이 그런 수준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누가 그걸 몰라? 문제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왕야님, 이게 다인가요? 다른 사병은 있습니까?”“있다. 옹현의 사병이 대체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 내가 보기엔 일단 흩어져서 반란을 일으킬 때 다시 모일 계획일 것 같아. 그러니 찾을 필요가 없이 분란을 일으키면 사병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지.”병부의 관리들은 지도를 보고 병마의 분포에 대응했다. 남강과 성릉관의 병마는 움직일 수 없고 경외 주둔군들도 움직일 수 없으니 광신과 강남의 병마만 움직일 수 있었다.숙청제는 들으며 연왕이 반란을 일으킬 것은 걱정하지 않고 상릉관과 남강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을 했다.그는 문득 자신이 사여묵을 경계하고 있는 동안 역적은 끊임없이 책략을 쌓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성릉관에 도착한 전북망은 수부로 찾아가서 생신 선물을 드렸다. 그는 혼날 준비를 다 했는데 결국 소 씨 가문에서는 사람을 보내 선물만 받아가고 그들을 안치해서 며칠 쉬었다가 남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의뢰로 아무도 그를 욕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혼내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피곤한 발걸음을 끌고 나갔다. “이 성릉관의 수부는 우리가 남강에 있을 때의 수부와 비교가 되지 안 되는군. 넓긴 하지만 너무 소박하고 누추해서 변변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수부를 나서자 그와 함께 온 병사 양관이 말했다. 그러자 전북망은 한 마디만 했다. “왕 원수와 소대장군을 비교하지 마라.” 그리고 그는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더 했다. ‘왕표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양관은 원수를 비난하지 말라고 하는 줄 알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대영에 안치되어 대통포에 묵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더 일찍 남강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들 넷은 아무도 남강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왕표는 그들에게 이곳에서 소 씨 가문의 연병술을 배워서 설 후에나 남강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런 문서도 주지 않아 그들은 여전히 남강의 병사들이었다. 그러니 여기에 남아 있는다면 이곳의 장수들도 아마 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다.게다가 전북망은 자신의 명성이 성릉관에서 얼마나 구린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우선 머물면서 천천히 방법을 강구하여 내년 초봄까지 머물다가 남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온 날은 3월 15일이라 청명이 지났다.매산 사람들은 이미 매산으로 돌아갔다. 무소위는 원래 진성에 가서 며칠 묵고 싶었지만 그들이 바쁘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가면 그들이 불편할까 봐 가지 않았다.진성에 도착한 후 사여묵은 먼저 사청엽을 대리사에 가둔 후 입궁해서 복명하고, 송석석은 먼저 저택으로 돌아갔다.염 선생은 피로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을 보고 급히 사람을 시켜 따뜻한
그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야 고청우는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그의 옷을 움켜쥐고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얼굴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 밑에는 냉랭한 혐오감이 감돌았고 방금 전의 애처로움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녀는 눈앞의 늙은이를 미워했고 그녀의 미모와 몸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녀는 바둑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심을 얻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길이 없었다. 장사꾼에게 시집을 가자니 그 고생은 못할 것 같고, 그러니 이용당하더라도 편히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진성을 떠나 며칠 동안 정처 없이 돌아다닌 후, 그녀는 자신이 영원히 부귀영화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왕표가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승낙했던 것이었다. 그때의 그녀에게 있어서 그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녀는 자신의 출신은 귀족에게 정식으로 시집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량소가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살 길을 열어주지 못했고 결국 첩으로만 살았다. 오기도 없는 량소를 생각하자 그녀는 아직도 재수가 없는 것 같았다. 왕표의 본질은 량소와 같았다. 현모양처가 있는데도 잘 대해주지 않고 제대로 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최 씨가 자신 때문에 왕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민감하고 나약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의부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사실이라면 우리 세 가족이 전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조금 힘들어도 관인과 아들이 제 곁에 있다면 전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 당신 말 들으마.” 왕표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만약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가 원수고 뭐고 다 버리고 당신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게.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 손엔 은자가 조금 있으니 그렇게 힘들지
시부인이 바로 그날의 고청우였다. 산후조리를 마친 그녀는 얼굴에 빛이 났고 몸집은 붓기가 하나도 없었으며 여전히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남강에는 모래바람 때문에 겨울엔 아주 추웠지만 그녀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저택의 좋은 물건은 모두 그녀가 사용했다. 매일 낙타젖으로 제비집을 삶고 양젖으로 목욕을 했는데 진성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그녀는 조금도 절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양을 하니 적어도 왕표의 눈에는 지극히 고귀한 존재로 보였고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의 마음도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국색천향의 미인, 매력이 있는 미인, 온유한 미인 등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여우 같은 고청우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방천허마저도 그녀의 신분이 의심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표는 그런 말을 듣고 오히려 욕을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청우는 진작에 자신의 신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이곳에 와서 살 길을 찾고 싶었을 뿐 그에게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왕표에게 엄격한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고청우가 왕표를 유혹한 게 아니라 왕표가 끝까지 쫓아가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왕표는 그녀를 갖기 위해 많은 방법을 썼는데 처음엔 그녀를 수양딸로 삼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부부가 된 후에도 고청우는 밤에 가끔씩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왕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한 것 같았다.그는 아들이 생긴 데다 아름다운 부인을 보면서 심지어 여생을 남강에서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최 씨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 몇 년 동안 그녀가 중책을 맡아 집안의 재산을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가 밖에서 군사를 이끌 기에 백작 부인인 그녀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사여묵은 원래 누군가가 연왕의 배후에서 조종을 한다고 여겼지만 목종욱이 함부로 추측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실증도 없었으니 연왕을 죽였다면 황제는 황숙을 이유 없이 죽인 혼군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 아닌가? 그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구실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지. 반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의 세력이 이 정도까지 확장되었으니 누군가 깃발을 들것이다. 그를 연주로 보낸 이유는 그가 애초에 사온이 접촉했던 인맥과 다시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야.” 그러자 목종욱이 말했다. “그런 것이군요.” “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이 거사를 일으키려 한다면 분명 각지에서 트집을 찾아 봉기를 일으킬 것이니 조심해야 하네. 특히 강남은 우리 상국의 공창과 상회의 땅이니 그곳을 빼앗긴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여묵이 재차 당부하자 목종욱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그들이 강남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모두 인계한 후 사여묵도 진성으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그는 지금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사청엽이 진성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평생 체면에 신경을 썼는데 이젠 호위가 앞뒤 좌우에서 호송하는 건 흔치 않으니 이번 생에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중간에 휴식할 때 송석석은 강철 바늘을 팔찌에 넣었다. 사병을 소탕할 때 팔찌의 강철 바늘을 다 썼는데 정말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산악전에서는 적이 분산되어 있어서 일단 발견하면 강철 바늘이 멀리까지 쏠 수 있어서 경공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그녀가 산에서 몇 번 넘어져서 팔찌가 약간 변형해서 사여묵이 역관에게 공구를 빌려 수리해 주었다. 복구하지 않으면 각도에 문제가 생겨 정확하게 발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진성으로 돌아갈 때 남강에 있던 전북망도 마침내 성릉관에 도착했다. 왕표가 특별히 그들 몇 명을 성릉관으로 보내 소대장군에게 생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전북망을 따라갔던 세 사람은 모두 전북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