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송석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엎어진 물을 밟은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허리를 숙여 귀에 속삭였다.“수란키의 복수를 다 보시고도 정신을 못 차리셨습니까? 당신이 이 세상 유일한 여장군 같으십니까? 이방 장군,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북망은 그저 새로운 것에 취해 혼인을 약조 했을 뿐, 만약 정말 사랑했다면 첩이 아니라 본처로 맞이 했겠지요.”이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건 장군께서 저에게 기회를 준 겁니다.”송석석이 이방의 멱살을 잡고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이어서 한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저를 보시지요, 제가 그 사람의 체면을 생각 한 적이 있습니까? 기회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당신은 얻은 게 무엇이 있습니까. 여기 오셔서 그저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고, 저를 모함하려고 오신 거 아닙니까?”그녀는 이방의 턱을 세게 잡았다. 곧이어 밀려오는 고통에 이방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죽이는 건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를 철저히 무시하고, 제 힘들었던 혼인 생활도 무시하신 거 보면 언젠간 꼭 똑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실 거라고 장담하지요.”이방은 몸부림 쳤다.“이거 놓으시죠.”하지만 송석석은 놓지 않았다. 자신의 시선에 맞게 턱을 치켜 올렸다.“저를 참으로 만만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빠르게 이혼을 하여 만만하게 보시는 것인지 아니면 전북망이 위대한 지아비감인 마냥 저에게 자랑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또 평서백부는 못 찾아가고 할 수 있는 거로는 저를 찾아와 난동을 피우는 것 뿐이지요. 그거 아십니까? 평서백부의 노부인과 아씨도 저에게 예의를 차립니다.”“송 장군, 당신..”이방은 그녀의 눈빛에서 차가움을 느꼈다.‘정말로 단 한번도 전북망이 생각 나지 않았던 것인가?’하지만 생각도 잠시, 분명 전북망이 그립지만 북명왕을 만나 감정을 숨겼을 뿐이라 여겼다.“성릉관의 일과 송가 집안의 멸망은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이방의 기세가 전보다 훨씬 작
‘천하다’라는 말이 이방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송석석의 배를 발로 찼다. 하지만 송석석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이방의 종아리를 내려쳤다. 곧이어 뼈가 부러질 듯한 고통에 이방의 비명소리가 들렸다.송석석은 그녀의 멱살을 다시 잡고 의자가 있는 곳으로 끌었다. 그리고 살기 서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감히 저희 집에서 저에게 손찌검을 하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오늘 오신 목적이 무엇 입니까?”이방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곧이어 면사포가 바닥에 떨어지고 못생겨진 반쪽 얼굴이 드러났다.송석석이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이방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당신 때문입니다. 오늘 찾아 온 이유는 당신에게 죄를 묻기 위함입니다. 그때 당신은 병사를 데리고 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하러 오는 전북망의 길도 막았었지요. 송 장군, 당신은 저를 미워하는 게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수란키가 저를 공격 한 것이지요. 이래도 인정 안하시는 겁니까?”이방이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 때문입니다.당신이 저희 부부 사이를 다 망쳐 놨습니다. 전북망은 저를 건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때 말리지만 않았어도 제가 이런 결과를 맞이 했을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수란키랑 이미 말을 맞추고 같이 짠 계획이 분명합니다, 얼른 전북망에게 사실대로 말하세요!”“송 장군, 당신은 장군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부하들이 수란키의 포로가 되어도, 어떠한 짓을 당해도 도와주지 않는 자가 어떻게 장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이래도 찬양 받는 송가 집안이 얼마나 역겨운지 아십니까?”송석석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손은 여전히 이방의 멱살을 잡고 있었고 곧이어 고개를 돌려 보주에게 말했다.“가서 서우를 살펴, 절대로 나오게 하지 말고.” 보주도 이방을 계속 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송석석의 말에 답했다.“네, 지금 가겠습니다.”그리고 서둘러 자목원으로 달려갔다. 한편, 이방은 송석석의 동공을 보고 겁을 먹었다. 머리
송석석은 이방의 다리를 차서 무릎을 꿇렸다.“어떻게 죽은 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의 몸에서18개의 칼 자국이 있더군요, 왜 18개 인지는 이방 장군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아닙니다!”이방의 얼굴이 창백 해졌다. 침을 꼴깍 삼키고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곧이어 서경 황실의 병사가 자신을 잡으려고 하여 18개의 칼 자국을 낸 기억이 떠올랐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서경의 사람이 한 짓 입니다. 서경의 정탐꾼들이 죽인 겁니다! 저랑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그리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송석석이 그녀의 어깨를 계속 짓누르고 있었던 탓에 움직이지도 못했다.“제 작은 조카도 놓치지 않으셨지요. 몸이 약해 약을 먹으면서 지낸 작은 아이의 몸에 18개의 칼집을 남기셨습니다. 결국 피부가 너덜너덜해져서 피가 바닥에 흥건했습니다. 진북후부에 피비린내가 안나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게 모두 당신이 한 짓 입니다. 이방 장군, 당신이라면 제가 어떻게 당신이 밉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송석석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이방은 몸에 힘이 풀리고 여전히 묘비는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다. 몸이 갑작스럽게 차가워지고 호흡이 점점 어려워졌다.마치 송석석에게 목이 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공포가 밀려와 그녀의 관자놀이를 눌려왔다. 이방은 계속 중얼거렸다.“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네 가족을 죽인 건 서경의 정탐꾼들이라고, 나랑은 전혀...”“아무런 연관이 없어. 그래, 난 잘못한 게 없어.”침을 꼴깍 삼키고 기어서 나가려고 하자 송석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 다섯 번째 새언니도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기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번 칼로 매도질을 당했습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이에게 향했고요. 그 자리는 피로 흥건했고, 결국 아이의 바로 앞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이방은 깜짝 놀라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때의 장면이 뇌리를
이방은 남강 전쟁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사실 여러 일들이 일었지만 항상 믿지 않고, 여러 변명을 하는 게 그녀의 습관이었다. 제일 큰 이유는 북명왕이 송석석을 도와주려 하는 것에 질투를 느낀 것이다. 서둘러 그녀의 공로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하지만 송석석은 세세하게 분석하여 이방이 변명하게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송석석의 뒤로 연화등이 켜져있는 지라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이방 장군은 그래도 살아는 있지 않습니까, 만족 하세요.”송석석의 말이 이어졌다.“하지만 제 가족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 당신 때문이지요. 제가 어떻게 당신을 안 미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랜 시간 참고 견뎌왔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도 제 발로 찾아 오시다니요. 성릉관에서 세운 공만 보면 저는 당신을 존경했을 겁니다.”그녀가 서서히 다가가자 이방의 몸에 그림자가 졌다.“하지만 진상은 어떻습니까? 제 가족을 모두 죽여서 공을 세웠다는 점이 참으로 추악스럽습니다. 무슨 낯짝으로 제 앞에서 위세를 떨치며, 무슨 낯짝으로 저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너그러우신 분이 왜 저의 혼수를 하나씩 신경 쓰시는 겁니까? 탐욕스러운 모습이 천하기 그지 없으며 지금의 얼굴보다 몇 배는 더 괴상스럽습니다.”이방은 두 손을 바닥에 두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그만... 그만...”송석석은 다시 허리를 숙여 입꼬리에 비웃음을 담은 채를 그녀를 향해 말했다.“겨우 이만한 것도 못 참는 분이 무슨 용기가 생겨서 저를 찾아 오신 겁니까? 전북망에게 부탁을 해달라고요? 이방 장군,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보아하니 두 사람이 말한 사랑도 그저 불장난에 불과하군요. 다 돌려 받는 거라고 생각하십시오.”이방의 입술이 떨렸다. 반항을 하고 싶어도 앞서 전북망과 싸웠던 이유가 모두 혼인 때문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송석석의 동공이 다시 검게 물들었다.“이방 장군, 똑똑히 기억 하십시오. 제 가족은 모두 당
이방은 더 이상 송석석의 눈을 똑바로 주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칼날 같았기 때문이다.송석석의 말은 듣기 싫지만 정작 틀린 말은 없었다. 자신은 그저 공을 세우는 것에 눈이 멀었던 것 뿐이다.성릉관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적장의 목을 베지 않았는 가, 그 이후로 더 이상 병사의 딸이 아니라 이방 장군이 되었다.안하무인하여 상대를 업신 여기는 게 일쑤였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남을 향한 자격지심이 차고 넘쳤다.이방이 초반에 세운 공로로는 전북망의 본처 자리에 앉을 수 없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전북망을 좋아 하기도 하고 공을 세우지 않았다면 장군부에 발도 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녀는 집안 싸움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가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사실 전북망을 유혹하기 위한 거짓말 이었지만 그는 그대로 그녀를 믿어버렸다. 어느 순간, 그녀를 향한 눈빛이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전북망에게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이후에는 그녀의 바람대로 장군부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한편 본처인 송석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집안 좋고, 예의가 바르지만 약하기 그지 없어 재미와는 거리가 먼 여인이기 때문이었다.고작 혼수를 많이 가져 온 것 뿐이고, 만약 자신이 자리를 잡게 된다면 본처인 그녀를 누를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송석석의 진짜 모습은 고양이가 아닌 숨어있는 호랑이라는 것을.이방이 여러 생각을 하던 중에 진복이 청구서를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곧이어 인주를 건네 주고는 차갑게 말했다.“손 찍으시요.”그녀는 은 52개 냥의 청구서를 받고는 송석석을 노려 보았다. 곧이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마음 한 구석이 떨려왔다. 그리고 서둘러 손을 인주에 찍고 나서 자리를 떴다. 진복은 청구서를 받고나서 복도에 있는 여인을 향해 눈을 돌렸다. 살의 가득한 눈빛은 사라지고, 슬픔만이 가득했다.곧이어 그가 다가와
이틀 뒤, 진복이 두 명의 호위를 데리고 장군부로 향했다. 어제 이방은 부로 돌아와서 고열이 나 고생을 했다. 그리고 늦은 저녁에 부의를 불러 약을 처방 받았다.그 덕에 오늘은 어제 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방은 은 52냥의 청구서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송석석이 자신을 놀리려는 수작 인 줄 알고만 있었다.‘은 52냥, 그 적은 돈을 어떻게 받으러 오겠어?’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진복과 그의 일행이 도착했다는 말이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이방은 보고를 받자마자 몸 둘 바를 몰랐다. 곧이어 몸이 다시 또 뜨거워 지는 느낌이 들었다.전북망은 오늘 근무를 하지 않았기에 저택에 있었다. 그는 이방이 국공부에 가서 소동을 피웠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밖으로 나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툭하면 다투는 바람에 전북망은 거의 서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로 돌아 온 것도 새로 맞이할 부인을 위해 연기 한 것 뿐이다. 곧이어 국공부의 사람들이 청구서를 들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친을 피해 사람을 시켜 진복을 서재로 들였다. 진복은 청구서를 그에게 건넸다. [장군부 귀첩인 이방이 국공부의 꽃병을 깨 돈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그 다음 날 돈을 내겠노라 약조한다.]안에는 손 도장도 찍혀 있다.전북망은 청구서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무슨 말이냐? 이방이 언제 국공부로 간 거야? 꽃병을 깨트렸다는 것도 무슨 말이더냐?”진복은 차가운 얼굴을 하며 답했다.“장군님의 귀첩 분께서 며칠 전 국공부로 와서 저희 아가씨를 찾으셨습니다. 소동을 피우시면서 물건을 부수었고 그 중에 꽃병이 포함 되었습니다. 꽃병의 가격은 은 52냥 입니다. 몇 없는 귀한 물건이기에 갚겠다는 약조를 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 바람에 소인이 찾아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국공부에 가서 소동을 피웠다고?”전북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방이 그런 미친 여인 인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아가씨는 거절 의
하지만 국공부의 사람들이 돈을 찾으러 왔다는 사실이 노부인의 귀에 들어왔다. 노부인은 바로 전북망을 불러 상황 설명을 시켰다. 전북망은 숨기고 싶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기 때문에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상황 설명을 듣고 노부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대체 어디서 그런 여인을 데리고 온 거야? 대체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첩으로 들이고 싶었던 거냐고. 부내에서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국공부 까지 찾아가는 게 이해가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어딜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국공부를 건드려, 그 전에 거울 좀 보고 정신 차리라고 하지 그랬어. 결국 우리 체면도 구기는 거야.”노부인은 욕을 하면서 가슴팍을 움켜 쥐었다. “잘못됐어, 한참 잘못됐어. 분명히 송석석을 찾아갔을 거야. 가서 왕가의 혼인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겠지.”전북망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방이 아무 이유없이 송석석을 찾아 가 소란을 피울리가 없었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 처럼 왕가와의 혼인 문제 때문인 건가.’하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실 그 혼인은 강요 당한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그는 일 때문에 집안의 일은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게다가 이방과 다투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성릉관의 일을 알고 나서 자신이 이방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 차렸다.이방이 무서워졌다.하지만 큰 형수님은 소심한 성격 탓에 집안을 제대로 관리 하지 못했다. 모친의 병을 간호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승상부인이 알려주기 전에는 혼인을 생각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승상부인이 중매가 되어 주었고 당연히 승상의 허락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즉, 승상의 눈에 들어 왔다는 뜻이다. 그 후로 평서백부의 신씨 아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씨 아가씨는 방시원의 아내다. 방시원이 전쟁에서 죽고 나서 방씨 집안이 그녀를 다시 친가로 보낸 것이다.이미 한번 갔다 왔다는 말에 그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하
전북망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을 찾아 가기로 했다. 더 이상 다투기 싫었고, 대화로 풀어 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방 안으로 들어오자 보이는 것은 이방이 이불을 덮고 귀비탑에 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여전히 검은 색 면사포를 뒤집어 썼다.그녀는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난 뒤로 여러 색깔의 면사포를 만들었다. 또한 외출을 할 때 면사포나 모자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투계를 떠올릴 만큼 금방이라도 자신과 싸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몸이 좋지 않은 탓에 전북망을 보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있던 하인이 입을 열었다.“장군님, 오셨습니까. 부인께서 이틀 동안 아프셔서 소인이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그는 부의를 불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지금은 괜찮은 가?”이방은 몸을 돌려 버렸다.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은 통한 모양이다.전북망은 의자에 앉아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국공부가 돈을 달라고 찾아 왔었소.”이방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하인이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고 있던 사실이다.“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ㅋ 제가 국공부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는 점을 지적하시고 싶으신 거지요?”전북망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국공부에 왜 간거요?”검은 색 면사포 밑으로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또 다른 목적이 있겠습니까. 시몬에서 날 왜 구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장군과 저의 사이가 멀어져서 또 다른 부인을 들이게 된다고 말한 것 뿐입니다.”그는 다급해졌다.“그때 내가 다 말해주지 않았소.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산을 넘어서 자네를 구할 수 있었겠소? 서경의 병사들이 모두 산 위에서 기회를 보고 있었고, 그때 올라간 거는 그냥 죽으러 가는 길 밖에 되지 않소.”“아직도 그분께 마음이 있으신가 봅니다.”전북망의 안색이 나빠졌다.“그게 무슨 말이오?”“애석하게도.”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불을 끌어와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쪽만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 분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