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을 찾아 가기로 했다. 더 이상 다투기 싫었고, 대화로 풀어 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방 안으로 들어오자 보이는 것은 이방이 이불을 덮고 귀비탑에 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여전히 검은 색 면사포를 뒤집어 썼다.그녀는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난 뒤로 여러 색깔의 면사포를 만들었다. 또한 외출을 할 때 면사포나 모자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투계를 떠올릴 만큼 금방이라도 자신과 싸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몸이 좋지 않은 탓에 전북망을 보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있던 하인이 입을 열었다.“장군님, 오셨습니까. 부인께서 이틀 동안 아프셔서 소인이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그는 부의를 불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지금은 괜찮은 가?”이방은 몸을 돌려 버렸다.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은 통한 모양이다.전북망은 의자에 앉아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국공부가 돈을 달라고 찾아 왔었소.”이방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하인이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고 있던 사실이다.“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ㅋ 제가 국공부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는 점을 지적하시고 싶으신 거지요?”전북망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국공부에 왜 간거요?”검은 색 면사포 밑으로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또 다른 목적이 있겠습니까. 시몬에서 날 왜 구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장군과 저의 사이가 멀어져서 또 다른 부인을 들이게 된다고 말한 것 뿐입니다.”그는 다급해졌다.“그때 내가 다 말해주지 않았소.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산을 넘어서 자네를 구할 수 있었겠소? 서경의 병사들이 모두 산 위에서 기회를 보고 있었고, 그때 올라간 거는 그냥 죽으러 가는 길 밖에 되지 않소.”“아직도 그분께 마음이 있으신가 봅니다.”전북망의 안색이 나빠졌다.“그게 무슨 말이오?”“애석하게도.”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불을 끌어와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쪽만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 분께
전북망은 저택에서 나왔다. 순간 국공부로 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송석석에게 입을 맞추어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지도 알고 싶었다. 송석석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어도, 전쟁에서 송석석의 단호한 태도에도, 당시 아내였던 송석석을 내쫓았어도 알고 싶었다.그는 송석석이 이렇게 빠른 시간내에 자신을 잊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난 것이고, 혼인 초의 약속을 어겨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움이 있다면 아직 바꿀 만한 기회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덕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미 끝난 사이고, 송석석을 찾아가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에게 작은 감정이 남았다고 해도 곧 북명왕의 아내가 된다. 그리고 자신은 왕가의 아가씨와 혼인하여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었다. 전북망은 천천히 서재로 돌아갔다. 그는 서재 의자에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송석석을 부인으로 맞이한 그 날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빨간 면포를 들어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았던 그 시간을 떠올리자 아직도 가슴이 두근 거렸다.하지만 그 여인은 결국 다른 사내와 손을 잡게 된다.이때, 전소환이 세게 문을 두드렸다.“오라버니, 오라버니!”그는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무슨 일이냐?”“오라버니, 마음에 드는 비녀가 있어서 사고 싶습니다. 은 좀 주시렵니까?” 전북망은 코웃음을 쳤다.“우리 집에 은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혼인 할 때 써야 한다.”전소환은 발을 동동 굴렀다.“이미 한번 갔다 온 여인에게 왜 은을 줘야 하는 겁니까, 가마 타고 들어 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요 며칠 뒤에 가의 군주가 상화연을 연다고 합니다. 저도 초대를 받았지만 하고 갈 장신구가 하나도 없습니다.”전북망이 문을 열었다.“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 이제 곧 네 새언니 되실 분이야. 그리고 가의 군주 같은 사람들이랑 놀면 결국 네 체면까지 구겨질 거야.”전소환은 코웃음을 쳤다.“새언니요
뺨 한대에 전소환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볼에 손을 대고 한참이 지나서야 눈물이 흘러 나왔다.“왜 때리시는 겁니까? 송석석 같은 그 천한 여인 때문에 저를 때리시는 겁니까? 지금 바로 모친께 알릴것 입니다.”그녀는 얼굴을 부여잡고 바로 자리를 떴다. 전북망은 주먹으로 서재의 문을 쳤다.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다.‘송석석이 깨끗하지 않다고? 아니, 송석석은 깨끗해.’이유는 그가 송석석을 건드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에서야 마음을 깨달았지만 단 한번도 송석석을 안은 적이 없었다.‘만약 잠자리를 가졌다면 달랐을 까… 그렇다면 이방을 첩으로 받아 들였어도 이렇게 쉽게 화리 하지는 않지 않았을 텐데.’ 잠시 뒤, 노부인이 그를 불렀다.전북망이 입을 열기도 전에 노부인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내 생각 하기에 소환의 생각이 옳구나, 난 지지 하겠어.장공주가 혜 태비에게 추천만 해준다면 북명왕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전소환은 옆에서 전북망을 째려 보기 바빴다. 노부인의 말을 듣고 전북망은 고개를 흔들었다.“북명왕이 어떻게 소환을 마음에 들어 하시겠습니까.”노부인은 어렴풋이 상황을 파악했다.“왜 그렇게 소극적인 것이냐, 북명왕은 버림 받은 아내도 마음에 들어 하시는 데, 우리 장군부의 딸을 무슨 이유로 싫어 하시겠냐 말이다. 네 여동생은 어미가 애지중지 키웠다. 집 안에서만 성질을 살짝 부리지만 밖에서는 칭찬이 자자해, 게다가 혜 태비의 선택만 받게 되면 북명왕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더냐.”전북망은 여동생과 비슷한 모친의 고집에 더 이상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북명왕부를 들어 가는 것이 마냥 좋거나 혹은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가의 군주에게 한 번 당해봐야 제정신을 차릴 것이다. 자신의 일 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더 이상 다른 일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섣달 초하루, 혜 태비가 한녕 공주를 데리고 북명왕부에 도착했다. 궁에서 부터 자신을 따르던 하인들을 모두 왕부로 데려 온 덕에 조용했던 왕부가
송석석도 혜 태비의 행사에 참여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송서우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그녀는 부모 형제들이 살아 생전 썼던 군사 방어 지도와 전술 훈련도 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송석석의 부모 형제들은 성릉관, 남강 모두 진수한 적이 있었다. 과거에 그들은 익숙하게 군사 방어 지도를 여러 장 그려 보곤 했다.아무 일도 없을 때는 사람을 시켜 주위를 검사하라고 시키고, 관외내의 작은 시설 모두 정확하게 지도에 담아냈다.글씨가 너무 날리고, 어지럽긴 하지만 송석석은 그들의 지도를 토대로 새롭게 그릴 생각이다. 하지만 양이 많아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 그녀는 부모 형제들이 그린 지도를 보면서 2-3개월은 걸릴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대사형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은 예리하기 그지 없어서 한번 본 모습은 뇌리에 남아 바로 지도에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보는 것만 해도 눈이 아파서 2-3일을 해도 완성을 할 수 없었다. 사여묵은 송서우가 말을 할 수 있고 나서 딱 한번 찾아 왔었다. 보아하니, 대리사는 어려운 직위가 아닐 수 없거나, 그와 맞지 않아 천천히 배워야 하는 단계 일 수도 있었다.저번에 찾아왔을 때, 상법을 계속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체벌, 추방, 감옥 등의 법에 대한 내용이었다.송석석은 혼이 빠진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억지로 상법을 외우는 것 보다 병사들과 함께 기술을 늘리면 더 좋았을 것이리 생각했다.안타까운 마음에 그에게 외우지 말고 책에서 찾으면 되지 않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대리사의 주부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사여묵은 진정성 있게 말했다.“대리사가 되어 법도 모른다고 하면 그건 독직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지요.”송석석이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황제께서 장군님을 싫어 하시나 봅니다.왜 하필 대리사 직위를 원하시는 걸까요, 사건을 조
송석석은 흥분 한 채 그의 팔을 잡고 질문하기 바빴다.“대사형, 어디서 오셨습니까? 매산에서 혼자 오신 겁니까? 스승님이나 사형들은 어디에 계십니까?”심청화는 그녀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총애가 잔뜩 담겨져 있다.“매산 말고 성릉관에서 돌아왔어, 그리고 네 사형도 며칠 뒤에 도착 할 거야. 아마 사국에서 올 거야, 듣자하니 사국에서 여러 기밀들을 입수 한 모양이야.”“사형도 오십니까? 너무 기쁩니다.”송석석의 얼굴에 활짝 웃음 꽃이 피었다.곧이어 진복이 가져온 외투를 송석석에게 덮어 주려 했지만 정청에서 신나게 떠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문 앞에서 서서 전설로 내려오는 ‘심청화’ 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감동에 겨워 당장이라도 문방사보를 가져와 그에게 친필을 부탁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문의 보물이 된다.안타깝게도 송석석도 흥분하기 바빠 그를 보지 못했다. “다른 분들도 대사형이 이곳에 왔다는 걸 아십니까? 진성의 높은 직위들도 대사형을 존경 하고 있습니다. 황제도 그러합니다. 만약 진성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국공부의 문을 부서서 들어 올 지도 모릅니다.”“들어올 때 도움을 받기는 했는데 경호들은 아마 나를 몰라 봤을 거야.”그는 송석석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눈빛에는 송석석에 대한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다.집안에 생긴 일을 스승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스승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하여 방문도 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심청화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에 잔뜩 섞인 애교와 앙탈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이 나라에 나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지? 그럼 네가 이 사실을 퍼뜨려 줘. 국공부로 오면 만날 수 있다고 전해. 마침 성릉관에서 그림을 많이 그려왔어.”송석석은 잠시 멈칫했다. 심청화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접대다.그리하여 그림도 팔지 않고, 누군가를 초청하여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달라는
송석석은 혜 태비가 자신을 초대 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제 부터 초청이 시작 되었는 지도 모른다.그런 그녀가 사형을 보고 물었다.“언제 진성에 오신 겁니까? 우연은 아니겠지요?”심청화가 웃었다.“온 지 꽤 됐어. 진성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비우고 있었어, 오자마자 네 조잘 거리는 목소리는 듣기 싫었거든.”“네? 진성에 오고서 바로 저를 찾지 않으셨다니요? 너무 하십니다!”“잘못하면 울겠네, 울겠어.”심청화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차를 반쯤 마시고 고개를 들자 송석석의 눈시울이 붉어진 걸 발견했다.그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네 이야기를 아무것도 안 하니까 내가 이렇게 찾아 온 것이 아니더냐. 잘 지내는 지, 못 지내는 지 정도는 알아야 우리도 마음이 편하지.”“사형, 저는 괜찮습니다.”송석석은 그의 옆에 앉아 전부터 그랬듯이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더한 애교는 하지 못했다.“서우를 되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곧 북명왕과 혼인을 치룹니다. 제게 아주 잘해 주십니다.”“그 자가 어떻게 감히 너를 천대 하겠나.”대사형은 역시 품위가 달랐다.“그 자는 매년에 딱 한달 정도만 가서 수련을 하기 때문에 사숙이 쉽게 들어 오게 하지 않았지. 아마 본 적이 없을 거야.”“저는 몰랐습니다. 역시 대화가 잘 통해야 하나 봅니다.”송석석이 눈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사여묵을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이 났다.“왜? 이제서야 사형인 척 행동하려는 것이냐. 경고 하지만 사숙은 이 후배를 제일 중요시하게 보고 있어. 괴롭히면 큰일 나, 그리고 만종문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바로 그 자야. 너는 선천적인 재능이 있지만 게으르고, 상대방은 선천적인 재능과 함께 성실하기도 하지. 해마다 딱 한달만 단련한다고 해도 네보다 훨씬 잘해.”송석석은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았다.“그 사람이 강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질투보다는 영광 스럽기 까지 합니다.”“낯짝 두꺼운 건 변함이 없네.”심청화가 그녀를 한번
혜 태비의 연회 날, 내외 명부, 진성의 집권자들의 자녀들까지 모두 북명왕부로 향했다.다 같이 눈을 보기 위해 초대 되었지만 눈이 내리지 않았다. 게다가 만원의 매화도 다른 곳으로 옮겼기에 꽃도 없었다.사여묵이 개선을 했다고 할 지라도 꽃이 잔뜩 핀 곳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실 오늘 이 자리는 혜 태비가 자랑을 하기 위해 주최한 연회 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녀는 자홍색의 큰 연꽃같은 치마를 입고, 하얀 여우 모피를 걸치고 나왔다. 하얀 몇 가닥 머리카락만 묶여서 능운계로 만들었고, 붉은 보석의 장신구를 차고 나와 귀티가 났다. 오늘 장공주도 신경을 써서 사람들 앞에 섰다. 그저 혜 태비의 귀티를 따라 가지는 못했다. 오랜 시간 동안 궁 안에서 걱정 없이 몇 년 동안 산 덕에 귀태비의 피부는 하얀 색의 붉은 빛이 띄었다.그녀의 눈썹 사이에는 주름이 없었지만 오히려 장공주의 눈 주위 주름은 자글자글했다.게다가 겨울이라 그런 지 바른 분이 말라서 얼굴을 더 노안 처럼 만들어 버렸다. 두 명의 귀태비는 춥다면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명부와 관직들은 무조건 와야 했으며, 혜 태비의 체면을 구겨서는 안되었다.혜 태비의 체면은 곧 북명왕의 체면이다.아부를 떨며 혜 태비의 비위를 맞춰 주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 연회에는 가의 군주도 있었다. 가의 군주는 전소환을 데리고 왔다. 예쁘게 입은 채로 옷과 장신구 모두 가의 군주가 골라 준 것이다.이번 년도 겨울에 제일 유행하는 옷을 입고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전소환은 오늘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했다. 혜 태비는 동안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점을 떠올리고, 인사를 하면서 잠시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송구합니다. 마마의 피부가 마치 어린 소녀와 같아 잠시 멍을 때렸습니다.”혜 태비는 그녀의 말을 듣자 미소가 번졌다.“어느 집 아가씨 입니까? 입이 아주 달콤합니다. 내 올해로 마흔 살이 넘었는데, 어떻게 소녀와
그 질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국공부의 송석석이 연회에 오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다.곧 집안 사람이 될 사람이 자리에 없자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이때, 혜 태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연회는 모든 사람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무슨 뜻 인지 이해했다. 혜 태비는 미래의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송석석이 공을 세우고 그녀의 집안이 아무리 좋아도 이혼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여묵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 평양후부의 노부인은 이러한 혜 태비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은 이해한다.하지만 이미 혼인 날짜가 잡혔다면 표면상으로는 화목한 척을 하는 게 상대방의 대한 예의가 아니던가.그녀는 자신의 며느리인 가의 군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며느리는 전씨 집안의 계집과 대화를 하면서 계속 고개를 젓고있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과거 저 모녀는 송석석의 코를 부러뜨리기 위해 이상한 소문까지 만들어 결국 안 좋은 결과를 맞이했었다.송석석과 북명왕의 혼인날이 점차 다가오는 중에 고분고분하고 장군부 집안의 아가씨를 혜 태비에게 소개시켜주는 행동에서 단숨에 알 수 있었다.평양후부의 노부인은 더 이상 참견하지 않고 군것질과 차를 즐겼다. 먹는 것에 까다로운 혜 태비의 다과 선택은 항상 옳았다.원래부터 아부를 떠는 사람이 많았지만 혜 태비의 이러한 발언 때문에 다 같이 송석석을 흉을 보았다.장공주의 계획인지 잘 모르겠으나 혜 태비를 무작정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 겉으로는 송석석이 세운 공을 칭찬했지만 자신이 송석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진짜 뜻이 숨겨져 있었다.고부 간 사이가 완전히 뒤틀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말에 혜 태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겉으로 드러났다. 어떻게든 고부 간을 이간질시켜야만 했다.장공주는 그만하면 됐다며 가의 군주에게 눈치를 주었다.
연왕은 그제서야 자신이 정말로 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입술을 덜덜 떨었고,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듯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당황함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밀려와, 역대 왕조들 중 역정의 후과를 떠올리니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이전에도 비록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기껏해야 자신의 목숨을 끝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포로가 되어 비녀까지 빼앗겨 산발이 된 채로 이곳에 갇혀 버렸다. 세 면이 창살이고 한쪽만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단했지만 머리를 박는다고 해도 죽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감옥 밖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어, 박는다고 해도 아프기만 할 뿐 고생할 것이 뻔했다. 그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지?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 곁엔 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야 하건만, 지금은 곁에 사람은 있지만 한마음이 아니다.’ 그러고는 분노와 증오가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날 배신하고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느냐? 결국은 나와 함께 갇힌 죄수가 되지 않았느냐? 사청엄이 너희를 구해준다더냐?” 죽음이 두려운 회왕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상의 곁으로 가서 그의 소매를 덥석 잡았다. “대체 무슨 상황이오? 그들이 우릴 구하러 오긴 온 단 말이오…? 말 좀 해 보오. 죽더라고 이런 건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무상이 거칠고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우릴 구하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추몽과 하상지가 모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성 밖에서 매복 공격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보름 동안 포위되어 소식이 늦으니 아마도 목종욱은 일찍 각처의 대란을 평정하고 매복해 있었을 것입니다.”무상의 말을 들은 회왕의 눈빛은 절망으로 변했다. ‘어쩐지 그들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지 않더라니, 지금 보니 목종욱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거지? 애초에 사청엄의
야외에서의 전쟁 또한 싸우면서 물러설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기만 하면, 상황은 쉽게 되돌릴 수 있었다.그래서 방시원은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길 때까지 그들이 도망갈 수 없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한편, 연주 성내에서 무상도 붙잡혀 연왕 등의 사람들과 함께 갇혔다.그 모습에 회왕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무상 선생, 당신은 대체 왜 잡힌 것이오? 추몽이 전패했소?”무상의 옷은 엉망진창이 됐고 온몸에 상처가 났으며 입가의 고인 피는 굳어 낭패하기 그지없었다.연왕은 아직도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 밤새도록 왜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지 걱정만 했다. 그러고는 추몽을 바랄 수는 없는 것 같으니,하상지라도 오길 바랐다. 왜냐하면 하상지는 반드시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무상까지 갇힌 것을 보자,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져 버렸다.그는 이전에 자신의 몸으로 적을 성으로 유인하려고 할 때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반면, 회왕은 아니었다. 그는 줄곧 추몽과 하상지가 도착하기만 하면 경군을 모조리 섬멸할 수 있다고 했기에, 무상이 갇히는 것을 보고 당황해하며 말했다.“어서 말해보시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추몽이 전패한 것이오, 아니면 오지 않는 것이오?”무상은 입을 오므리고 있었는데, 그의 눈 밑에는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기색이 띠었다.그는 결국 두괴산으로 도망치기로 결정했고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곧장 진성으로 달려가 영군왕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두괴산은 이미 경군에 의해 봉쇄되어 도망칠 수 없었기에, 무상은 그렇게 그들에게 체포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회왕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말을 안 하는 걸 보니, 정말 추몽이 안 왔다는 말이오?! 추몽이 왔다면 하룻밤 만에 전패하지는 않을 것인데. 우린 그들에게 속은 것이오… 무상, 모두 당신 때문이오. 당신이 영군왕에게 의탁하고 셋째 형을 배신하라고 하지 않았소? 우린 당신과 영군왕에게 속은 것이오!
김수덕도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나도 모르겠소. 분명히 추몽 선생이 직접 말씀하셨는데 말이오.” 그러자 무상은 점점 두려움이 앞섰다. 추상이 평소에 시간을 정하면 일찍 오면 왔지 늦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도중에 매복이라도 당했단 말이오? 그럴 리가 없소. 전에 조사한 바로는 목종욱의 병마가 분리되어 비적을 토벌하고 있다고 했소. 지금쯤 이미 월지로 갔으니 돌아올 리가 없소.” “만약 병마가 도중에 가로막았다면 추몽 선생은 바로 사람을 보내 통지할 것이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들에게 정탐꾼이 있는 것 같소.” 김수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공포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무상 선생, 이제 어떡한 단 말이오? 우리는 경군을 이길 수 없소.” 무상은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 진정하고 말했다. “그러니 지금 우린 탈출하여 추몽과 합류할 수밖에 없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연주는 함락될 것이오.” 김수덕이 조급해져서 말했다. “가족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탈출한 단 말이오? 그들이 성문을 막고 있는 탓에 두괴산으로 밖에 도망갈 수 없소. 노약자와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찌 두괴산으로 도망간단 말이오?” 그러자 무상이 연황실의 하인과 호위를 지휘하며 말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소. 일단 우리 먼저 탈출하고 다시 계획을 짜봅시다. 방시원은 평민을 죽이지 않으니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오.” 김수덕이 급히 뒤뜰로 달려갔는데, 측비 김 씨는 이미 소식을 들은듯 짐을 싸고 있었다. 그녀는 무상의 분석을 듣지 않아도 지금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왕의 아들 딸들 또한 모두 놀라서 비싼 물건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하인들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는 장신구를 모두 빼앗아 뒷문으로 도망쳐 버렸다. 김수덕이 검을 들고 연달아 몇 명을 죽이고 나서야 하인들이 더 이상 날뛰지 않았다. 측비 김 씨가 오라버니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얼른 사람을 파견해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보호해 주
두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 무소위는 이미 무림인들을 데리고 영주에 도착했다. 시간까지 모두 잘 맞춰져 있었는데 이때쯤이면 영주에 일을 결정지을 만한 사람이 없었고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은 거의 출동하여 천 명의 사람과 관아의 관리만이 남아서 영주를 지키고 있었다. 무소위는 영패를 들고 곧장 지부의 관아로 가서 지부를 파면하고 관아를 차지했다. 그와 동시에 시 씨 가문의 가주는 직접 여러 표국과 상회의 호위들을 이끌고 왔다. 노 휘왕의 영패가 있어 영군황실이 모두 봉쇄되었기 때문에 영주는 가장 공략하기 좋은 곳이었다. 더불어 영군황실에는 더 이상 노휘왕의 사람은 없었고 예전의 사람들은 모두 마을로 쫓겨난 상황이었다. 무소위는 관아를 점거한 후, 사람을 이끌고 영군황실로 가서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고 고문 끝에 그들이 연락하는 암호를 모두 알아냈다. 게다가 추몽이 기르던 전서구까지 모두 챙겼다. 전서구는 정해진 노선이 있었는데 그중 몇 마리는 특별히 영군왕에게 연락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추몽이 대승하면 전서구의 다리에 붉은 비단을 묶고 실패하면 전서구의 다리에 흰색 비단을 묶었다. 만약 전황이 교착되어 승부를 가리기 어렵다면 전서구의 다리에 아무것도 묶지 않고 보내 소식을 알린 것이었다. 그리고 각종 은밀한 언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전서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참모들이 제출한 암어록에는 암어의 뜻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돼지, 개, 소, 말, 늑대, 호랑이, 뱀, 여우 등의 호칭이 있었는데 참모들의 진술에 따르면 모두 지정된 상대가 있다고 했다. 돼지는 연왕, 개는 회왕, 뱀은 숙청제, 늑대는 송석석, 호랑이는 사여묵, 그리고 용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중 승상과 육부상서는 그들만의 호칭이 있다고 했다.그리고 영군왕과 역모를 꾸민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찾아냈는데 그중 많은 단어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시 씨 가주와의 서신 왕래는 명확했는데 생명을 구해준 은혜로 그
무상이 직접 보내 연왕과 회왕은 함께 성문에서 압송되었다. 회왕은 인수할 때 무상이 자신을 풀어줄 줄 알고 있엇는데, 경군들이 그들을 억류할 때까지 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당황해서 허우적거리며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안심하라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그를 묶어 놓고, 나중에 같이 나간다고 했지만 결국엔 셋째 형만 넘겨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무상이 자신까지 경군에게 넘기는 것을 본 회왕은 그가 자신까지 진성으로 보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자 당황해서 크게 소리쳤다. “나는 무죄요! 내가 연왕을 체포한 것이니 난 놔주오!” 그러자 방시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리석긴.” “무상…!” 회왕의 얼음처럼 차가워진 눈빛으로 무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나운 표정에서 이내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상 선생, 당신은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얼른 방 장군에게 말해주시오!” 하지만 무상은 눈을 내리깔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 황제폐하께서 유무죄를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희 황제폐하’라는 말을 힘 있게 말하자 회왕은 일말의 희망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때가 되어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경군의 목숨은 모두 연주에 남게 될 테니 난 당연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무상이 왜 미리 말하지 않는 것이지?’ 그는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어. 그들이 정말로 날 버린 것이라면 직접 죽이겠지 왜 방시원의 손에 넣겠어? 내가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성을 포위해서 습격할 것을 말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무상을 바라보자, 무상이 그를 향해 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되었든 경군은 연주를 떠
연왕은 이번 협상이 단지 허위 계략일 뿐이며, 자신이 결국 방시원에게 넘겨져 그를 성 안으로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역시나 몰랐다.방시원이 협상에 동의하며 단독으로 이동했고, 무상 또한 단독으로 이동했다. 양측 뒤에는 호위병이 따랐으나 모두 열 장 떨어진 거리에서 머물렀다.무상은 자신과 연주의 대다수 관리들이 연왕의 반란 계획을 알지 못했으며, 설령 알았던 사람들이라도 연왕의 세력에 눌려 감히 말하지 못했음을 설명했다.그러나 방시원은 이를 믿지 않았다. 방시원은 그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음모를 꾸민 자들이라고 단언했었기에, 그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으며, 이는 무상에게 그가 영군왕의 배후와 비밀 병력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었다.무상은 그의 태도를 통해 확인하려 했을 뿐 아니라 추몽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이 신뢰와 존경은 그가 시씨 가문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무상과 연왕은 오랫동안 시간 시씨 가문을 공략했었지만, 시철진은 결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연왕을 배신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점에서 영군왕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무상은 참모이니 자연히 승산 있는 자를 따라야 했다. 연왕은 이미 몰락하였으니 그를 따라 계속 반란을 도모한다면 죽음뿐이었다.협상 과정 자체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의 목적은 성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단지 각자 계산이 다를 뿐이었다.무상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추몽이 요구한 대로 해가 지기 전, 방시원의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진 남짓이었다.그래서 협상은 오래 지연되지 않았다. 무상은 연왕을 그들에게 넘기기로 동의했지만, 방시원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켜 진성으로 돌아간 뒤 관대한 처분을 황제께 청할 것을 요구했다.사실 연왕을 넘기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 방시원의 경계를 느슨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수장이 없으면 방시원은 그들이 더는 큰일을 벌일 수 없다고 생각할
방시원은 이미 첩자의 보고를 받아 몇몇 신비한 부대가 영주 밖에서 합류하여 연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보다 더 일찍, 그는 염선생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통해 연왕이 항복하는 척하며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한 뒤, 안팎에서 협공을 가하려 한다는 정보를 받았었기에, 연왕이 단지 영군왕의 한 수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았다.방시원은 오랫동안 정보 첩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 이런 두세 개의 정보만으로도 실제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편, 노홍과 제방은 원래 진성에 남아 있어야 했지만, 어제 갑작스럽게 연주 밖에서 그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방시원은 처음에 진성이 가장 위험할 때에 왜 이 둘을 보낸 건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송대감의 사부이자 만종문의 문주가 직접 진성에 왔고, 심지어 많은 무림인을 데리고 내려와 지원 중이라는 제방의 설명을 듣고 이내 안심했다.일반적으로 무림인은 조정의 다툼에 관여하지 않지만, 만약 반란이 발생하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방시원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만종문의 문주 임양운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면서 묵가의 기술에 능했고, 특히나 기계 무기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육안통 또한 그의 손에 의해 개량되었으니 말이다.그가 진성을 지키고 있으니 영군왕은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틀 후, 정말로 염선생의 말대로 연주 성벽 위에서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방 장군, 우리는 이미 역적 연왕과 사청엽, 회왕과 사청엄을 붙잡았습니다. 많은 관리와 병사들은 그들에게 미혹당했을 뿐 반역할 의도는 없었으며, 지금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공적을 세움으로써 죄를 보상하려하니 방 장군께서는 성에 들어와 상의해 주시길 바랍니다.”소리치는 사람은 김수덕으로, 측비 김씨의 오라버니였다.방시원은 천리경을 들어 확인해보았다. 김수덕 옆에는 무상이 서 있었고, 연왕과 회왕은 온몸이 결박된 채 대검이 그들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
밤이 되자, 김수덕이 첩자를 데리고 돌아와 급히 보고했다."왕야, 하상지가 이미 흩어져 있던 병력을 모두 소집하였으며, 시씨 가문의 군마 500필을 얻었습니다. 지금 돌아오는 중으로, 걸음 속도로 보아 사흘 뒤 도착할 것입니다."연왕은 벌떡 일어나며 크게 기뻐했다."정말인가?!""정말 확실합니다! 첩자가 바로 문밖에 있으니 왕야께서 직접 물어보십시오 .""어서 들여 라!"연왕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병력을 모두 소집하게 되었지만, 시씨 가문에서 군마 500필이 나온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만자의 사건 이후로 시씨 가문과는와는 이미 갈라선 사이였는데 말이다.그때 첩자가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왕야, 하대감께서 소인을 보내 보고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병은 모두 소집되었으며, 영군왕의 참모인 추선생도 5천 병력과 500필의 군마를 이끌고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단, 영군왕의 요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 휘왕을 구출하는 것입니다."연왕은 영군왕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전에도 영군왕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했고,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영군왕을 배제한 상태였다.이번에는 오히려 처음에는 동조했던 사람들이 모두 발을 뺀 상황에서 영군왕이 나서준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아버지인 노 휘왕은 진성에 있었지만, 실상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청엄이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그는 사청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의젓한 군자였고, 효심이 깊어 그의 효성은 강남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노 휘왕이 홀로 진성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사청엄도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연왕은 즉시 사람들을 소집하여 사흘 뒤의 계획을 논의했다.그는 거짓 항복 계략에 동의했다.무상이 처음 이 계략을 제안했을 때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안팎으로 협공만 할 수 있다면 방시원을 속여 성 안으로 유인해 잡는 것이 가능할 것 같
노 휘왕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뒤따라갔다.의원이 진찰한 결과, 정삼숙의 두 다리는 부러졌고 이가 세 개나 빠졌으며 얼굴의 여러 뼈에도 골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노 휘왕을 향해 웃으려 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몰골이었지만 끝내 웃음을 잃지 않으며, 게속 괜찮다고 했다.노 휘왕은 순간 마음이 아파져 고개를 돌렸다.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 이런 참혹한 꼴을 당했으니,그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그의 영패는 이미 영주에 있을 때 하나 더 만들어 두었었다. 이는 혹시 누군가가 후에 영패를 훔쳐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다른 영패를 사용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쓰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편, 수로 작업의 혼란은 빠르게 진정되었고, 김창명은 관리 소홀의 책임으로 체포되어 황실 감옥에 갇힌 탓에 이후 수로 작업은 선평후가 직접 감독하게 되었다.하도사의 다른 관리들도 모두 직무 태만의 문제로 교체되었다.이렇게 모두 겉으로는 김창명이 수로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듯 보였지만, 숙청제와 송석석은 실제로 이미 내부에 또 다른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창명이 죽는다고 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었기에 사청엄은 조금도 급하지 않았다. 그는 추몽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만 있었다.연주에서의 연왕은 이미 마음이 불안해진듯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방시원이 성을 포위한 지 2주나 넘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나, 공격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기에더욱 초조해진 것이다. 성을 포위했다는 말은 외부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또한, 각지에 퍼뜨린 도적들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목종욱이 방시원과 합류했는지, 그리고 진성의 상황이 어떤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포위된 상황에서도 소식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산길을 타고 밀림을 넘어가면 연주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즉, 만약 소식이 도착했다면 그것은 열흘 전의 상황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