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은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수란키에게 목을 졸렸다. 생사를 오갔고 몸, 얼굴, 귀가 한 조각씩 잘려있었다. 그래서 전북망의 품에 안겼을 때, 이방은 구조되었다는 안도감에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그러나 전북망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를 안고 나가면 그녀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봤다.그녀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얼굴이 파랗게 질린 전북망은 그제야 송석석이 두 차례 확인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심복 한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송석석에게 화가 난 전북망은 밖으로 나가며 송석석을 흘겨봤다. 이방이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수란키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이방과 송석석 사이에서 발생했던 일을 믿고 싶지 않았다.송석석은 전북망이 겁먹은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전북망의 의견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다른 포로들을 구하라고 명을 내렸다.안에 있는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이 들어갔다. 오두막에는 횃불을 켠듯한 흔적이 있긴 했으나 서경인들은 하산을 하기 전 그것들을 전부 꺼버렸다.그들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얼어 죽지 않은 것은 오두막의 온기가 그들의 목숨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어떤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솜옷을 벗어 포로들에게 입힌 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시몬으로 돌아가 군의관을 청했다. 전북망은 직접 이방에게 탕약을 먹였다. 악취 나는 그녀의 몸을 씻기고 입안의 똥을 조금씩 퍼냈다. 그 과정에 몇 번이나 구역질했는지 모른다.그리고 다리 사이의 상처를 감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는 눈을 돌리고 약가루를 마구 뿌렸다. 그곳을 제외한 다른 상처들은 세심하게 치료했다.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천할 '천(賤)'자는 불에 달궈진 쇠로 지져서 없앴다.그녀의 얼굴을 절반 흉측하게 만들지언정, 글자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이방은 상처를 치료받으며 정신을
그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이방을 바라보았다.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던 이방과 다른 사람 같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악귀처럼 보였다.그는 오롯이 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전공을 포기하고, 송석석을 저버렸다.세상에서 가장 멍청했다.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나가서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시절 대의를 논하던 이방의 눈에는 지금과 달리 총기가 있었다.허탈해진 전북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미친 듯이 폭소했다.깜짝 놀란 이방은 전북망의 몸을 잡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장군님... 왜 이러세요? 무섭게 왜 이래요.”전북망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한참이 지났을까, 전북망은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내리고 이방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송 장군 일가를 몰살하고 포로를 괴롭히고 마을의 백성을 학살한 게 당신이었군.”이방은 그의 눈빛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서경인들이 죽인 겁니다. 저랑 상관없어요.”“왜 이런 사람이 되었소? 언제부터 이리 잔인해진 것이오? 무고한 백성을 왜 죽인 거요?”이방은 여전히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서경 무장이 민가에 숨어 있었고, 그를 찾기 위해... 장군님, 왜 절 잔인하게 여기세요? 마을 사람들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도 서경의 백성입니다.”“양국은 교전 중 백성이나 포로를 죽이지 않소.” 전북망은 핏기가 보이는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건 우리와 서경이 맺은 협정이오. 성릉관 전쟁 전에 내가 수차례 말했고 당신도 알겠다고 했잖소.” 전북망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말해보시오, 왜 지키지 않았는지. 포로를 학살한 것뿐만 아니라 민가의 백성까지 학살했소. 사람이긴 하오?”무섭게 다그치는 그의 모습에 이방은 깜짝 놀랐
전북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방은 초조해서 해명했다. “절 때렸지만 절대 유린을 하지 않았어요. 맹세코 절대 그런 일 없었어요. 믿기지 않으면 그들에게 물어보세요.”전북망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물어야 하오? 부끄럽지도 않소?”“절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전북망이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 믿겠소? 내게 한 말 중에 진실이 있긴 하오? 성릉관에 대해 물었을 때, 북명왕이 전쟁터로 직접 출두한다는 거짓말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수란키가 철수를 했다고? 이렇게 큰일도 내게 숨겼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겠소?”“제가 말하지 않은 건 장군께서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방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을 굴리며 변명을 했다. “장군께서 양국의 백성을 절대 해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들이 민가에 숨어든 게 확실한 상황에서 포기할 수 없잖아요? 녹분성에 온 이상, 반드시 수확이 있어야 합니다. 전 그저 마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서경인들이 죽인 병사들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전북망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우리가 녹분성에 왜 갔소?”“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기 위해서요.” 이방이 말했다.“내가 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러 가면 후방 지원을 맡아달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 젊은 장수를 왜 쫓아간 것이오? 우리가 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는 사이 서경 병사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지는 생각지도 않은 것이오?”“하지만 제가 공을 세웠잖아요.” 이방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더는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장군님과 전 생각이 다릅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장군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얘기는 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줍니다. 그런 일로 부부 사이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 있나요? 이 얘기 그만 해요.”전북망은 그녀에게 실망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적을 했지만, 그녀는 서경 백성의 목숨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더는 그녀와 대
송석석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털털한 모습에 사여묵은 눈썹을 들썩이며 키득거렸다.“그나저나 서경 태자가 녹분성에 왜 왔어요?” 서경 태자는 현명하고 용맹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로 유명했다.그런 사람이 녹분성에 나타났으니, 송석석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하물며 태자는 무장이 아니다. 직접 전쟁에 나올 만큼 싸움 실력이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다.여러모로 태자의 행보는 수상했다.“서경 황실에 내란이 일어났고 2황자가 꾸민 모략에 의해 어쩔 수없이 전쟁에 나오게 됐소. 수란키는 태자를 위험천만한 곳에 차마 보낼 수 없어 안전한 녹분성에서 몸을 피신하게 했지. 헌데 그곳에서 이방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2황자가요?” 송석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자가 죽었으니 남은 황자들끼리 자리 쟁탈을 하겠네요. 2황자가 차기 태자로 선발되면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예요.”서경의 2황자는 상국을 향한 적대감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송석석은 2황자가 서경의 다음 태자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수란키는 3황자쪽에 섰소. 3황자와 돌아가신 태자는 태황후의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이기에 명분이 확실하오. 그러나 3황자는 아직 태자가 될 정도로 뛰어나지 않소. 황제도 병세가 심해져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 같소만...”송석석은 그제야 태자의 신분으로 위험한 전쟁에 나온 상황이 이해되었다.“2황자와 수란키에게 이번 기회는 전환점이 되겠군요. 그들은 태자의 복수를 한 뒤 신속히 철수하여 내란에 맞설 생각으로 여기 온 거였어요. 그간 태자의 죽음을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게 바로 명분을 만드는 것 때문이었네요. 이제 서경으로 돌아가 태자의 부고를 온 세상에 알리고 자신들이 추대한 3황자가 친형인 태자의 복수를 한 사실을 알려 민심을 달래고 3황자의 입지를 굳건히 만드는 게 수란키의 계획이었네요.”“무수한 이유들 중 하나겠지오. 한 나라의 내정을 우리가 어찌 다 파악하겠소? 서경 같은 대국은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사여묵의 말에 그녀
남강을 수복했다는 승전보가 진성 곳곳에 퍼졌다. 승전보를 들은 황제는 눈물을 주룩 흘렸다. 황제는 만조 문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온 나라가 흥에 겨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어느 나라나 그러하듯, 마을에는 황실이나 민간의 소문을 전하는 설화 선생이 존재한다. 진성의 설화 선생도 인맥이 넓었다. 벼슬아치 댁에서 일하고 있는 몸종들은 설화 선생에게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팔아넘겼다.이번에도 사람들은 공을 세운 게 북명왕, 사여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리와 시몬을 수복한 여장군이 있다는 소문도 순식간에 퍼졌다. 그녀가 현갑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를 모아 사국인을 내쫓았다는 것도 모두가 알게 되었다.설화 선생은 영웅 서사를 가장 좋아했다. 이번에도 송석석을 천하의 여전사로 만들어 이야기를 팔았다.고난 속에서 사여묵 휘하의 여전사가 용맹스럽고 지혜롭게 적군 수장의 목을 베냈다는 소문은 진성 곳곳에 퍼졌다.설화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전사는 아주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백성에게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다방(茶房)이나 주막(酒館), 시장 거리,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이 여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이 여장군의 출신 배경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여장군을 이방으로 추측했다. 이방은 일찍이 성릉관에서 공을 세웠고 전북망과 함께 원군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기 때문이다.현갑군을 이끌고 성을 무너뜨린 여장군은 이방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졌다.그러나 명문 세가나 정5품의 관료들은 이런 민간설화를 믿지 않았다.다방이나 주막에서 나온 소리 중 절반은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장군부의 사람들은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헛소문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은 이방이 큰 공을 세운 줄 알았다.전북망의 어머니, 김순희는 아들 내외가 출정한 뒤로 줄곧 염불을 올리며 그들이 군공을 세워 금의 귀환하기를 바랐다. 바람대로 아들 내
김순희는 병부 시랑(侍郎)의 두 부인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병부의 상서(尚書) 부인에게도 보냈지만, 상서 부인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랑 부인은 무조건 올 것이다. 김순희는 부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부인들이 모이면 전쟁의 대략적인 상황과 병부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 어떤 상을 내리는지에 관해 물어볼 계획이었다.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됐음에도 부인들은 오지 않았다. 심지어 품계가 높은 관료의 부인들은 하나같이 오지 않았다. 제 시간에 모인 사람들은 정5품, 정6품, 정7품의 부인들이었다.어떤 사람들은 초대 명단에도 없었지만, 기어코 온 바람에 김순희는 기가 차면서도 배가 아팠다. 그녀는 이번 차례를 위해 집안의 재산을 쏟아부었다. 아들 내외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병부의 여러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산을 거덜냈다. 집으로 돌아간 부인들이 아들 내외에 관한 칭찬을 부군들에게 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값진 물건을 전부 팔아 성대한 차례를 준비했다.조정은 여러 관료와 백성들의 외침을 무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다행히 차례에 참석한 부인들 사이 여장군을 찬양하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덕분에 높은 관료의 부인들이 오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던 김순희는 조금씩 평정을 찾았다. 자기 아들과 이혼한 송석석이, 국공부의 아씨가 된 게 배 아팠던 그녀는 이방과 전북망이 공을 세웠단 소리를 듣게 되자마자 국공부보다 잘 나가게 될 장군부의 창창한 앞날이 기대되었다.유일하게 살아남은 국공부와 실권을 가진 장군부 중, 사람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은자를 쏟아부어 준비한 차례에 낮은 품계의 관료 부인들만 온 탓에 손님들과 같이 있기 싫었던 김순희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며 민씨에게 자리를 맡겼다.‘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밖에 소문이 파다하거늘, 어찌 다른 부인들이 오지 않은 걸까?’자기가 부른 정2품 상서 부인들이 오지 않은 이유가 급이 안 맞아서인 것을 몰랐다.설령 전북망과
설화 선생이 말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라고 짐작하던 사람들은 김순희가 주최한 차례에 높으신 분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 의심을 했다.장군부의 소식을 알게 된 설화 선생은 입맛을 다시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장군부의 노부인이 연 차례에 병부의 두 시랑 부인께서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 것 같소? 병부의 다른 관료 부인들도 참석하지 않았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바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오.”다방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사람들의 토론 주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장군에 관한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 전북망의 현 부인과 전 부인이 함께 전쟁에 나갔다는 소문도 퍼졌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전북망의 전 부인이 남강에서 희생된 진국공 송회안의 딸 송석석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아직도 송석석의 얘기가 나오면 숙연해졌다. 진국공 송회안의 일가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성은 송씨 일가의 얘기만 나와도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송씨 가문의 모든 사내가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송씨 가문에 있던 노약자와 여인,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몰살 당했다. 국공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송석석이다. 송석석은 7, 8살이 되었을 때부터 매산의 만종문에 가 무예를 배웠었다. 송석석은 무공이 있었고 무장 출신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은 남강 전쟁에서 그들의 복수를 했다. 동시에 자기가 남편을 빼앗아간 이방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여러모로 송석석이 돋보였다.이 소문은 삽시에 장군부까지 전해졌다.이 말을 들은 김순희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났다. “송석석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전쟁터에 나가 싸웠을 것이지, 장군부에 시집와 나 같은 늙은이 시중을 왜 들어?” 가노(家奴)의 입단속을 못한 탓에 노부인의 말은 자연스레 밖으로 퍼졌다.어떤 사람들은 노부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가 정
진성의 다방에서 설화 선생은 송석석이 군을 이끌고 성지를 뚫은 사적(事迹)을 아주 경이롭게 설명하고 있었다. 백성은 송석석을 숭배했다. 전북망과 헤어지던 그때, 송석석에게 했던 악독한 말들은 전부 잊은 듯 진심으로 그녀를 찬양했다.곧이어 회 왕비가 송석석을 근처에 얼씬 못하게 했다는 사실도 퍼졌다.회 왕비의 딸이 시집갈 때, 송석석은 사람을 보내 혼례를 도우려 했으나 왕비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주변인들은 송석석이 철이 없다고 꾸중했다. 이혼한 아녀자가 새각시의 혼례에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날, 새각시가 그녀 때문에 액운이 붙을까 두려웠다.이 일을 알게 된 회왕은 화를 내며 왕비의 뺨을 때렸다. “당신의 조카요. 하늘에 계신 언니가 원망하는 게 두렵지도 않소? 이모가 되어서 어찌 친조카를….”회왕은 한량처럼 지내는 친왕이다. 그는 유약하고 가진 권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진성에서 머물 수 있었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졌을 때, 회왕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감히 둘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혼례를 하사받아 강제로 부부가 되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전부 황제의 성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왕은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회왕은 송석석이 자기 딸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송석석의 호의를 내치는 게 아니라 받았을 것이다. 다만 딸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뺨을 맞은 회 왕비가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송석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왕야께서 심기 불편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전쟁에 나가는 것조차 몰랐지 않소. 이모라는 작자가 조카가 먼 길 떠나는데 배웅은커녕, 생각이 짧아 내쳤다는 것이오? 그건 무자비한 것이오.”회 왕비가 억울해하며 말했다. “저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잖아요.”“아랫사람을 보내도 되지 않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 아니잖소.”
그녀는 결코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비루하게 살아남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녀는 사람이 평생토록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여장군이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충분히 강인하게 버틴다면 한 자리라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하지만 전북망은 그저 그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탈출 경로를 짜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번에 서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아시오? 합치면 백여 명이고, 시위만 해도 최소 예순 명이오. 내가 구해낼 수 있을 리 없잖소.”“혼자 할 필요 없으십니다, 장군님. 북명왕부가 도와줄 겁니다.” 이방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북망도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소리였다. “제가 서경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반드시 소승도 함께 데려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북명왕부는 소승을 못 본체 하지 않을 겁니다. 장군님은 단지 그들이 소승을 구할 때 저를 구해내면 됩니다.”전북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온몸이 서늘해졌다. “뭐라고 하였소? 무슨 수로 서경 사람들이 소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다는 거요?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작정이오?”이방은 그를 흘겨보며 비웃었다. “알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 일을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를 구해 주시면 장군님과 저 사이의 빚은 깔끔하게 청산되는 겁니다. 앞으로 제가 죽든 살든 장군님과는 아무 상관없게 될 것입니다.”“아니, 난 받아드릴 수 없소.” 전북망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도와줄 수 없소.”“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송석석이 남아 있겠지요. 장군님은 결국 저를 저버린 셈이 되는 겁니다.”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데도 저는 장군님을 위해 진술까지 바꿨습니다. 정말 조금의 정마저도 잊
담판을 앞둔 전달 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회동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대리사 역시 밤새 재판을 진행했다. 형부에서는 이방이 자백한 이후로 줄곧 전북망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무릎을 꿇고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방이 형부에 들어온 후 이렇게까지 약해진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택은 담판이 끝난 후 이방이 서경 사신에게 인계될 것이며 죽음도 쉽게 맞지 못할 잔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형수도 죽기 전에는 가족을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그는 오늘 밤 둘의 만남을 허락했다. 물론, 그 또한 감옥에서만 허용되었다. 이택은 전북망을 감옥으로 데려오라 명령하였다. 아전들이 감옥 문을 열어주자 전북망이 안으로 들어갔고 이택은 밖에서 대기했다. 당연히 전북망은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아 어떠한 날카로운 물건도 지니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방이 자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이방은 현재 여성 수감자용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택은 엄중한 병력으로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작은 등불이 두 사람의 초췌한 얼굴을 비추었다. 성릉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의 그 당당함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초라함, 그리고 절망과 혼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장군님을 위해 제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방은 눈앞의 이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의지가 꺾인 모습에 그녀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다소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그들에게 성릉관 일은 장군님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니 장군님은 무사하실 것입니다.”전북망이 대답했다.“그건 사실이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소.” “하지만 장군님께서 개입하시기 전에는 소승이 모든 일의 주동자였습니다.”“그 말은 성립되지 않소. 황제와 형부는 믿지 않을 것이오.”이방의 얼굴이 더욱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상관없습니다. 서경이 이
수란석이 반사적으로 반박했다."말도 안 되오! 송석석이 아무리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우리 서경에서 제일 뛰어난 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이오!" 장공주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손쉽게 제압했다지 않습니까? 서경의 고수가 권력에 눈이 멀어 스스로 무술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과 달리 송석석은 어릴 적부터 만종문에서 무술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만종문이 어떤 곳인지 모르십니까?""그냥 하나의 무림 문파 아니오? 대체 뭐가 특별하단 말이오?"소란석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말했다. 비록 정영수가 송석석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눈에 선했지만, 그는 여전히 송석석의 무술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했다. 만약 정영수를 이긴 게 북명왕이었다면 그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한 문파의 여제자가, 그것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양안도 여성이 그렇게 강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말을 했다.냉옥 장공주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어휴, 이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그들의 불신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무지함은 그들의 자만에서 나온 것이었다.그들은 여성이 조정에 들어가 관직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상국뿐만 아니라 서경에서도 삼년에 한 번만 여성을 뽑아 조정에 들이는 데, 수많은 여인들이 단 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밤새도록 노력하고, 나태함은 한순간도 용납되지 않으며, 매일 세 시진밖에 자지 못한 채 긴장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음을 그들이 알리 만무했다.상국에만 하더라도 현재 여관은 단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다. 그녀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현갑군의 지휘관을 맡을 수 있었겠는가?그녀는 심지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운 바도 있었다.물론 그들의 눈에는 이런 모든 것이 북명왕이 그녀를
사여묵은 그가 충동적이고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이 판은 쉽게 풀렸고 그들은 즉석에서 정영수를 붙잡았기에 수란석은 충분히 회왕을 의심하고 회왕이 그들과 함께 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란석은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말을 삼켰다. 그는 비록 충동적이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진 소경, 계속 심문하거라." 사여묵은 전혀 실망하지 않고 진이에게 명령을 내린 후 왕정에게 말했다. "수 대인을 회동관으로 모시고 이 일을 장공주께 보고하거라.""예!" 왕정은 명령을 받고 수란석에게 말했다. "수 대인, 가시지요."수란석은 정영수를 한 번 보더니 손을 내밀어 소매 주머니를 정리했다. 그 안에는 황제의 성유가 들어 있었고, 정영수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정영수는 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는 이미 버려진 졸개가 되었다. 비록 현장에서 붙잡혔지만 서경에서의 협상이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모든 책임을 혼자서 떠안아야 했다.수란석은 대리사를 떠나며 손과 발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고 마음속엔 계속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말로 매복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세 명만 있었던 걸까?’ 정영수의 몸에는 채찍 자국이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한 사람에게만 맞은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를 붙잡은 사람은 십여 명이 세 명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즉 북명왕은 미리 이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고 그저 정영수와 사사들이 싸움에서 밀렸을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수란석은 이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세 명이라면 그것은 마부와 여종, 그리고 북명왕비의 조합일 텐데, 그런 조합이라면 사사들이 없다 해도 정영수를 이길 수는 없다.아니다, 마침 그때 경위가 나타났다는 건 미리 준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 경위들이 정영수를 붙잡은걸까?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했다.경위와 금군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그중에는 무공이 뛰어난 자는 거의 없었다.
약왕당 외에 두 개의 등불이 걸려 있었다. 사여묵 일행이 말을 타고 도착했을 때 송석석은 막 시만자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그녀가 나오자 수란석의 몸은 굳어졌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말 실패한 걸까?’그는 분노로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회왕이다. 분명 회왕이다. 회왕이 서경과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이 아닌, 상국이 보낸 첩자가 분명했다.송석석의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상처 입은 팔은 이미 붕대를 감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분명 누군가 그녀의 집에 가서 옷을 가져온 것이다.사여묵은 즉시 말에서 내리더니 약간 흔들리는 등불 아래를 급하게 걸어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소?"송석석은 불만과 억울한 기운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팔이 떨어져 나갔을 겁니다. 정 대인은 저와 무슨 큰 원한이 있기에 사람까지 데려와 저를 해치려고 하는 겁니까?"그녀는 화를 내면서도 사여묵의 손을 꼭 잡고 가볍게 손끝으로 두드리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였다.그 말을 들은 수란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몇 번이나 쳐다보며 그녀가 진짜 북명왕비가 맞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금 정영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그런 짓을 했다니, 말도 안 됩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손을 꽉 잡고 몸을 돌려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대리사에 가서 확실하게 확인해 봅시다."수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북명왕이 왕비를 말에 태우자 그 옆의 여종이 능숙하게 말에 올라 기민한 동작을 보였다. 이는 평범한 여종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밤늦게 대리사에 도착했지만 대리사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잡혀 온 정영수와 다섯 명의 사사는 아직 감옥에 가두어지지 않았고 소경인 진이가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심문실에서 정영수를 본 수란석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그는 온몸이 엉망이었고 머리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굵은 채찍 자국이 얼굴을 거의
정신을 차린 수란석은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1층에는 몇 명의 호위 복을 입은 사람들이 계산대 근처에 서서 보고하러 온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들어왔을 땐 주인장과 하인밖에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건지 궁금했다. 보고하러 온 사람은 왕정이었는데, 그는 세 명의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수란석을 보자 그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수 대인, 서경은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감히 송 대감에게 암살 시도를 하다니요?"수란석은 송석석이 보이지 않자 어쩌면 이것이 덫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십여 명을 이끌고 고작 세 명을 상대하는 일이니 정영수가 절대로 실패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정영수는 무공이 매우 높아 만약 그들이 미리 대비했다면 최소한 붙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송석석은 이미 잡혀갔고 그들은 그것을 서경에서 했다고 추측하여 이곳에서 그를 속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는 더욱 분노하며 사여묵을 향해 돌아서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북명왕,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연극을 꾸며서 우리를 모함하려는 겁니까? 내일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겁니까? 너무 비열하지 않습니까?"사여묵은 그에게 대꾸하지 않고 왕정에게 눈짓하며 말했다."왕비가 다쳤다고 했소? 그럼 괜찮은 건가?""큰 상처는 나지 않았고, 팔을 다치고 지금 약왕당에서 치료 중입니다. 치료가 끝난 뒤에는 대리사로 갈 예정입니다."사여묵은 왕비가 정말로 다쳤다는 말에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서경의 정영수가 한 짓이라고 확신하는게요?"왕정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합니다. 정영수 외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있었습니다. 송 대감이 몇 명을 처치했고 나머지는 모두 대리사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의 입속에는 독이 있었지만 송 대감이 모두 제거했습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음해하려 한다면 내일 협상은 필요 없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왕경루는 아직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입구에는 "영업 종료"라는 글자가 적힌 양각등 두 개가 걸려 있었다.3층의 별실은 원래 차를 마시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술 한 주전자와 몇 가지 안주가 놓여 있었다.사여묵는 호위와 함께 오지 않았고 수란석도 단 한 명의 하인만 데리고 왔는데 하인은 문 앞에 서 있었다.술은 이미 절반을 마셨고 두 사람은 내일 있을 협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수란석은 그를 이곳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명확했기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작전은 이미 끝났기에 반드시 잡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반면, 사여묵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내일의 협상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북명왕이 아주 대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했지만 막상 수란석은 단 몇 마디만으로 그를 속일 수 있었다.그렇다고 경계를 푸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의 협상은 상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길 것이고, 자기들이 불리하다는 걸 알기에 자국의 조건을 탐색하려 할 것이다.그가 웃긴다고 생각한 것은 북명왕은 마치 광대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그는 북명왕의 오만함이 참을 수 없어 웃으며 말했다."왕야께서는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허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황제께서 왕야에게 군권을 넘길까요? 제가 알기로는 귀국의 황제는 왕야를 두려워하시기에 다시 군을 맡길 리가 없습니다."사여묵은 담담히 대답했다."그건 상황을 보고 결정할 문제지 폐하의 뜻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상황요?" 수란석은 여전히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면 왕야는 군을 이끌고 나가서 과연 전세를 돌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다만...""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사여묵의 눈빛에 담긴 자신감은 수란석의 걱정을 일으켰지만 그들이 이미 선수를 친 상태에서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