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선생이 말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라고 짐작하던 사람들은 김순희가 주최한 차례에 높으신 분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 의심을 했다.장군부의 소식을 알게 된 설화 선생은 입맛을 다시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장군부의 노부인이 연 차례에 병부의 두 시랑 부인께서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 것 같소? 병부의 다른 관료 부인들도 참석하지 않았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바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오.”다방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사람들의 토론 주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장군에 관한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 전북망의 현 부인과 전 부인이 함께 전쟁에 나갔다는 소문도 퍼졌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전북망의 전 부인이 남강에서 희생된 진국공 송회안의 딸 송석석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아직도 송석석의 얘기가 나오면 숙연해졌다. 진국공 송회안의 일가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성은 송씨 일가의 얘기만 나와도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송씨 가문의 모든 사내가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송씨 가문에 있던 노약자와 여인,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몰살 당했다. 국공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송석석이다. 송석석은 7, 8살이 되었을 때부터 매산의 만종문에 가 무예를 배웠었다. 송석석은 무공이 있었고 무장 출신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은 남강 전쟁에서 그들의 복수를 했다. 동시에 자기가 남편을 빼앗아간 이방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여러모로 송석석이 돋보였다.이 소문은 삽시에 장군부까지 전해졌다.이 말을 들은 김순희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났다. “송석석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전쟁터에 나가 싸웠을 것이지, 장군부에 시집와 나 같은 늙은이 시중을 왜 들어?” 가노(家奴)의 입단속을 못한 탓에 노부인의 말은 자연스레 밖으로 퍼졌다.어떤 사람들은 노부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가 정
진성의 다방에서 설화 선생은 송석석이 군을 이끌고 성지를 뚫은 사적(事迹)을 아주 경이롭게 설명하고 있었다. 백성은 송석석을 숭배했다. 전북망과 헤어지던 그때, 송석석에게 했던 악독한 말들은 전부 잊은 듯 진심으로 그녀를 찬양했다.곧이어 회 왕비가 송석석을 근처에 얼씬 못하게 했다는 사실도 퍼졌다.회 왕비의 딸이 시집갈 때, 송석석은 사람을 보내 혼례를 도우려 했으나 왕비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주변인들은 송석석이 철이 없다고 꾸중했다. 이혼한 아녀자가 새각시의 혼례에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날, 새각시가 그녀 때문에 액운이 붙을까 두려웠다.이 일을 알게 된 회왕은 화를 내며 왕비의 뺨을 때렸다. “당신의 조카요. 하늘에 계신 언니가 원망하는 게 두렵지도 않소? 이모가 되어서 어찌 친조카를….”회왕은 한량처럼 지내는 친왕이다. 그는 유약하고 가진 권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진성에서 머물 수 있었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졌을 때, 회왕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감히 둘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혼례를 하사받아 강제로 부부가 되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전부 황제의 성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왕은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회왕은 송석석이 자기 딸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송석석의 호의를 내치는 게 아니라 받았을 것이다. 다만 딸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뺨을 맞은 회 왕비가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송석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왕야께서 심기 불편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전쟁에 나가는 것조차 몰랐지 않소. 이모라는 작자가 조카가 먼 길 떠나는데 배웅은커녕, 생각이 짧아 내쳤다는 것이오? 그건 무자비한 것이오.”회 왕비가 억울해하며 말했다. “저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잖아요.”“아랫사람을 보내도 되지 않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 아니잖소.”
송석석은 진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몰랐다.전쟁이 끝난 지 꽤 되었지만 아직 군을 완전히 철수할 수 없었다.너무 추웠던 날씨 탓에 전군이 행군하는 것은 위험했다.게다가 다년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남강의 여러 곳을 재건해야 했다. 그들이 철수하면 일손이 부족해진다.이방이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했단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이방이 아무리 부인을 하더라도 오두막의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이방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비밀이 아니었고 숨길 수도 없었다.이방은 사촌인 이진흥을 찾아가 증언해달라고 했지만 이진흥은 아무런 증언도 할 수 없었다. 이진흥도 폭행과 거세를 당했다. 오두막에서 죽다 살아났던 그는 이방이 어떤 처지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이방에게 마음이 돌아선 그는 그녀와 말 섞기도 싫었다.오두막에 갇혀 있던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공을 세우고 상을 받을 땐 둘도 없는 형제였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이방이 아군을 배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언젠간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방은 남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텼다. 상처를 잘 치료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다. 정신력이 너무 강해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이방이 자결할거라고 생각했던 수란키의 짐작과는 달리 그녀는 아주 끈질기게 버텨냈다. 수란키가 그녀를 과소평가한 셈이다.수란키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극노할 것이다. 서경의 태자는 그녀에게 모욕을 당해 자결을 했으나, 이방은 끈질기게 목숨줄을 붙잡고 있다.병사들은 이방의 면전에서 그녀와 관련된 소문을 떠들었다.처음엔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의 몸은 깨끗하다며 얼굴만 망가졌을 뿐이라고 변명했다.그러나 날이 지나도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전북망이 줄곧 그녀를 냉대했다.자신을 둘러싼 억측이 끊이질 않자, 이방은 언제부터인가 변명하기를 포기했다.이방은 오히려 송석석을 찾아가 비아냥거
봄이 오면서 쌓였던 얼음과 눈이 녹았다. 장병 일부를 남긴 뒤, 나머지 병사들은 진성으로 돌아가는 행군길에 오르기로 했다.시만자는 진성으로 갈 것인지, 매산으로 갈 것인지 한참이나 고민했다.몽동이가 말했다. “매산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진성에 금의 귀환하는 건 이번 생에 다시 없을 기회야. 사람들이 환호하며 우리를 반겨줄 거라고.”그들은 큰 뜻이 없었다. 평생 바라는 게 있다면 무공을 잘 연마해 적수를 만나면 제대로 혼내주는 것뿐이다. 천하무적은 바라지도 않았다.하루아침에 남강을 수복한 전쟁 영웅이 되었다. 갑자기 모든 이들에게 칭송을 받자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이방은 곤장을 맞아야 했다.전북망은 이방을 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녀를 도왔다.이방이 곤장을 맞아야 한다는 소식에, 전북망은 사여묵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간청을 올렸다. 그러나 사여묵은 전북망을 만나주지 않았다.전북망은 어쩔 수 없이 송석석을 찾아가 사여묵에게 잘 말해달라고 청했다.“내 부탁이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모두 진성으로 돌아가야 할 몸 아니오? 이방이 곤장을 맞은 채로 돌아간다면 행군의 고난을 견디지 못할 것이오. 전부 내 잘못이오, 내가 송 장군을 저버린 것이니….”송석석이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무례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어요? 내 가족이 누구 때문에 몰살당했는데?” “세상에서 누구보다 이방이 죽기를 바란 게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한테 누굴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제정신이세요?”그녀의 반박에 전북망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말문이 막힌 전북망을 송석석이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전북망의 뇌리로 초야를 치르던 날, 붉은 천 뒤로 드러난 송석석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떠올랐다. 복숭아꽃처럼 붉고 밝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여인이 아니었다.전북망은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내가 잘못했소. 당신을 저버린 건 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장대성이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여묵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대성을 째려보자, 장대성이 넉살 좋게 웃었다. “소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밖으로 나간 장대성은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앉으시게!”사여묵이 송석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여묵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입구를 힐끔 쳐다보았다. 밖에서 엿듣고 있는 장대성에게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송석석도 장대성이 밖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며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사여묵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시오.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송석석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진성에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희생된 곳에 다녀와도 될까요?” “우리와 함께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비의 유골은 이미 진성으로 돌려보내졌다.그러나 그들의 영이 아직 이 땅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던 그녀는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 가족들을 만나고 알려주고 싶었다.사여묵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가능은 하다만, 송 장군이 직접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이미 내가 다녀왔소. 그곳에서 가장 큰 나무를 베어와 위패(牌位)를 조각했소. 이 위패를 가지고 진성에 돌아가시게.”사여묵은 조금 전 천으로 가렸던 물건을 꺼냈다. 그곳엔 이미 조각된 위패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 송회안의 위패다.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이미 오래전, 송씨 가문의 신루(神樓)에 송회안의 위패를 모셔뒀음에도 그녀는 제사를 지낼 때면, 감히 고개를 들어 위패를 볼 수 없었다. 그 위패를 마주하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차마 볼 수 없었다. 송석석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손
다음날, 전북망이 이방을 대신해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이 영지에 퍼졌다.이방이 포로로 잡힌 이후로, 두 사람에 관한 일은 언제나 화젯거리였고 남강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이방은 상처가 나은 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소문은 나날이 무성해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해지자, 이방은 결국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숨어버렸다.전북망도 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었다. 그도 영지에 돌고 있는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대답이나 설명을 하지 못했다.성릉관 전쟁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방이 서경인들을 학살하는 바람에…그러나 전북망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수록 사태만 더 심각해질 뿐이다.병사들은 이 장군이 군령을 준수하지 않고 몰래 주력부대를 이탈해 적군을 따라가다가 되려 포로로 잡힌 것만 알고 있었다.성을 공격할 때, 이방이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든 탓에 현갑군의 계획에 방해되었고 하마터면 작전에 실패할 뻔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병사 중 아무도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여겼다.전북망이 이방 대신 곤장을 맞은 것 때문에 그나마 전북망을 따르던 부하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다만 북명군과 남강에 있던 장병은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남자라면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고, 국가를 지키고 강토를 지키는 게 그들의 대의였다. 물론 그들도 자신의 가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북망을 용서할 수 없었다.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북망이 집에서 일 년 동안 부모님을 모셨던 부인을 버렸다는 사실에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북망은 가정을 버린, 부인을 버린 남자였다.더군다나 남강에 주둔했던 여러 장군들은 모두 송회안과 함께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송석석에게 마음이 더 쏠리는 수밖에 없었다.5월 초에 이르러서야 사여묵은
‘장군령’이라는 노래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다.북소리가 강하게 울리자 모든 이가 숙연해졌다.사여묵은 송회안의 위패를 안고 성에 들어갈 때, 위패를 높게 들었다. 위패가 먼저 들어간 뒤에 사여묵이 들어갔고, 이에 다른 사람들이 뒤따랐다. 손에 위패를 든 사람들은 숙연해졌다.진성에 들어서자마자 사여묵이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신, 송회안 장군이 이끌던 장병과 함께 남강을 수복했사옵니다. 상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승리했사옵니다.” 성문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목소리는 진성 도시 전체에 떠다녔고, 백성의 환호성과 감격 어린 눈물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눈시울이 붉어진 황제는 직접 사여묵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황제는 사여묵의 품에 안긴 송회안의 위패를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몇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성지를 받들라! 짐은 고생한 세 군에게 상을 하사하느니라!”“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여묵이 말했다.황제는 송석석의 앞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펴고 곧게 선 그녀의 품 안에 오라비의 위패가 있었다. 송석석은 눈을 내리깔고 감히 황제를 쳐다보지 못했다. “송 장군!” 황제가 불렀다.“예, 폐하!” 송석석이 큰소리로 답했다.행군하며 비바람을 맞은 그녀는 얼굴이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감출 수 없었고, 두 눈은 검은 진주처럼 밝게 빛났다.황제는 송석석을 마주하자 죄책감이 들었다. 전에 그녀가 입궁해 원군이 되겠다고 청할 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송석석이 사여묵의 마음을 이용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여겼다.그러나 전쟁에 나간 송석석의 실력은 뛰어났다. ‘송회안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았구나. 의연함과 오만한 태도마저 그를 똑 닮았으니.’ “그대의 가문도, 그대도 정말 잘했다!” 황제는 여러 관료들과 백성 앞에서 선포했다. “송 장군과 북명왕은
보주는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아씨, 아씨…!”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보주를 쳐다보았다. 보주는 눈물을 흘리면서 입은 정작 웃고 있엇다. 기괴한 모습으로 달려오는 보주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송석석과 같이 앉아있던 사여묵이 보주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보주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맞소?”“기억하십니까?”송석석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당연하죠.” 사여묵이 미소를 지었다. “만종문에 갔을 당시, 저 계집이 대추나무를 흔들고 있는 걸 나와 사형이 목격했었소. 우리를 보았는지 저 아이가 놀라서 나무에서 떨어지더군요.”“만종문에도 가셨어요?”“그렇소. 남강 전쟁에 가기 전까지 1년에 한 번씩은 다녀왔댔소.”6월의 뜨거운 햇빛이 그의 눈가에 비치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던 사여묵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론 가본 적 없소.”“왕야님을 뵌 기억이 없네요.” 송석석이 의아한 눈빛으로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왜 매년 만종문에 가시는 겁니까?”“그대 사부님과 사숙에게 무공을 배우러 갔소. 난 줄곧 만보재(萬寶齋)에 묵었소. 송 장군은 어렸을 때, 거기를 피해 다녔었죠?”송석석은 숨이 턱 막혔다. ‘만보재를 피해 다닌 것도 알고 있다고?’ ‘사부님과 사숙께서 왕야님 앞에서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자주 했나 보네.’만보재는 사숙의 거처였지만 안에 암방(暗房)이 있었다. 그녀는 매번 실수할 때마다 암방에 갇혔었다. 그래서 만보재에 갈 일도 없었다.만종문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사숙이었다. 사숙의 차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절로 오금이 저렸고, 만종문 사람들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사부님조차 사숙의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송석석은 사여묵이 매년 만종문에 수련하러 온 사실을 몰랐다.왕야는 그녀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자신에게 옛일을 꺼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거리를 다 돌고 난 뒤, 예부 시랑(禮部侍郎)은 그들을 데리고 경축연으로 향했다.경축연에는 명부에 이름이
그녀는 결코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비루하게 살아남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녀는 사람이 평생토록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여장군이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충분히 강인하게 버틴다면 한 자리라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하지만 전북망은 그저 그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탈출 경로를 짜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번에 서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아시오? 합치면 백여 명이고, 시위만 해도 최소 예순 명이오. 내가 구해낼 수 있을 리 없잖소.”“혼자 할 필요 없으십니다, 장군님. 북명왕부가 도와줄 겁니다.” 이방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북망도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소리였다. “제가 서경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반드시 소승도 함께 데려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북명왕부는 소승을 못 본체 하지 않을 겁니다. 장군님은 단지 그들이 소승을 구할 때 저를 구해내면 됩니다.”전북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온몸이 서늘해졌다. “뭐라고 하였소? 무슨 수로 서경 사람들이 소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다는 거요?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작정이오?”이방은 그를 흘겨보며 비웃었다. “알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 일을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를 구해 주시면 장군님과 저 사이의 빚은 깔끔하게 청산되는 겁니다. 앞으로 제가 죽든 살든 장군님과는 아무 상관없게 될 것입니다.”“아니, 난 받아드릴 수 없소.” 전북망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도와줄 수 없소.”“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송석석이 남아 있겠지요. 장군님은 결국 저를 저버린 셈이 되는 겁니다.”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데도 저는 장군님을 위해 진술까지 바꿨습니다. 정말 조금의 정마저도 잊
담판을 앞둔 전달 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회동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대리사 역시 밤새 재판을 진행했다. 형부에서는 이방이 자백한 이후로 줄곧 전북망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무릎을 꿇고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방이 형부에 들어온 후 이렇게까지 약해진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택은 담판이 끝난 후 이방이 서경 사신에게 인계될 것이며 죽음도 쉽게 맞지 못할 잔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형수도 죽기 전에는 가족을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그는 오늘 밤 둘의 만남을 허락했다. 물론, 그 또한 감옥에서만 허용되었다. 이택은 전북망을 감옥으로 데려오라 명령하였다. 아전들이 감옥 문을 열어주자 전북망이 안으로 들어갔고 이택은 밖에서 대기했다. 당연히 전북망은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아 어떠한 날카로운 물건도 지니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방이 자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이방은 현재 여성 수감자용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택은 엄중한 병력으로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작은 등불이 두 사람의 초췌한 얼굴을 비추었다. 성릉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의 그 당당함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초라함, 그리고 절망과 혼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장군님을 위해 제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방은 눈앞의 이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의지가 꺾인 모습에 그녀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다소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그들에게 성릉관 일은 장군님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니 장군님은 무사하실 것입니다.”전북망이 대답했다.“그건 사실이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소.” “하지만 장군님께서 개입하시기 전에는 소승이 모든 일의 주동자였습니다.”“그 말은 성립되지 않소. 황제와 형부는 믿지 않을 것이오.”이방의 얼굴이 더욱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상관없습니다. 서경이 이
수란석이 반사적으로 반박했다."말도 안 되오! 송석석이 아무리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우리 서경에서 제일 뛰어난 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이오!" 장공주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손쉽게 제압했다지 않습니까? 서경의 고수가 권력에 눈이 멀어 스스로 무술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과 달리 송석석은 어릴 적부터 만종문에서 무술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만종문이 어떤 곳인지 모르십니까?""그냥 하나의 무림 문파 아니오? 대체 뭐가 특별하단 말이오?"소란석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말했다. 비록 정영수가 송석석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눈에 선했지만, 그는 여전히 송석석의 무술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했다. 만약 정영수를 이긴 게 북명왕이었다면 그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한 문파의 여제자가, 그것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양안도 여성이 그렇게 강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말을 했다.냉옥 장공주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어휴, 이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그들의 불신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무지함은 그들의 자만에서 나온 것이었다.그들은 여성이 조정에 들어가 관직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상국뿐만 아니라 서경에서도 삼년에 한 번만 여성을 뽑아 조정에 들이는 데, 수많은 여인들이 단 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밤새도록 노력하고, 나태함은 한순간도 용납되지 않으며, 매일 세 시진밖에 자지 못한 채 긴장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음을 그들이 알리 만무했다.상국에만 하더라도 현재 여관은 단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다. 그녀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현갑군의 지휘관을 맡을 수 있었겠는가?그녀는 심지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운 바도 있었다.물론 그들의 눈에는 이런 모든 것이 북명왕이 그녀를
사여묵은 그가 충동적이고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이 판은 쉽게 풀렸고 그들은 즉석에서 정영수를 붙잡았기에 수란석은 충분히 회왕을 의심하고 회왕이 그들과 함께 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란석은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말을 삼켰다. 그는 비록 충동적이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진 소경, 계속 심문하거라." 사여묵은 전혀 실망하지 않고 진이에게 명령을 내린 후 왕정에게 말했다. "수 대인을 회동관으로 모시고 이 일을 장공주께 보고하거라.""예!" 왕정은 명령을 받고 수란석에게 말했다. "수 대인, 가시지요."수란석은 정영수를 한 번 보더니 손을 내밀어 소매 주머니를 정리했다. 그 안에는 황제의 성유가 들어 있었고, 정영수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정영수는 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는 이미 버려진 졸개가 되었다. 비록 현장에서 붙잡혔지만 서경에서의 협상이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모든 책임을 혼자서 떠안아야 했다.수란석은 대리사를 떠나며 손과 발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고 마음속엔 계속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말로 매복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세 명만 있었던 걸까?’ 정영수의 몸에는 채찍 자국이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한 사람에게만 맞은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를 붙잡은 사람은 십여 명이 세 명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즉 북명왕은 미리 이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고 그저 정영수와 사사들이 싸움에서 밀렸을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수란석은 이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세 명이라면 그것은 마부와 여종, 그리고 북명왕비의 조합일 텐데, 그런 조합이라면 사사들이 없다 해도 정영수를 이길 수는 없다.아니다, 마침 그때 경위가 나타났다는 건 미리 준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 경위들이 정영수를 붙잡은걸까?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했다.경위와 금군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그중에는 무공이 뛰어난 자는 거의 없었다.
약왕당 외에 두 개의 등불이 걸려 있었다. 사여묵 일행이 말을 타고 도착했을 때 송석석은 막 시만자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그녀가 나오자 수란석의 몸은 굳어졌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말 실패한 걸까?’그는 분노로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회왕이다. 분명 회왕이다. 회왕이 서경과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이 아닌, 상국이 보낸 첩자가 분명했다.송석석의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상처 입은 팔은 이미 붕대를 감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분명 누군가 그녀의 집에 가서 옷을 가져온 것이다.사여묵은 즉시 말에서 내리더니 약간 흔들리는 등불 아래를 급하게 걸어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소?"송석석은 불만과 억울한 기운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팔이 떨어져 나갔을 겁니다. 정 대인은 저와 무슨 큰 원한이 있기에 사람까지 데려와 저를 해치려고 하는 겁니까?"그녀는 화를 내면서도 사여묵의 손을 꼭 잡고 가볍게 손끝으로 두드리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였다.그 말을 들은 수란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몇 번이나 쳐다보며 그녀가 진짜 북명왕비가 맞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금 정영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그런 짓을 했다니, 말도 안 됩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손을 꽉 잡고 몸을 돌려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대리사에 가서 확실하게 확인해 봅시다."수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북명왕이 왕비를 말에 태우자 그 옆의 여종이 능숙하게 말에 올라 기민한 동작을 보였다. 이는 평범한 여종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밤늦게 대리사에 도착했지만 대리사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잡혀 온 정영수와 다섯 명의 사사는 아직 감옥에 가두어지지 않았고 소경인 진이가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심문실에서 정영수를 본 수란석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그는 온몸이 엉망이었고 머리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굵은 채찍 자국이 얼굴을 거의
정신을 차린 수란석은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1층에는 몇 명의 호위 복을 입은 사람들이 계산대 근처에 서서 보고하러 온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들어왔을 땐 주인장과 하인밖에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건지 궁금했다. 보고하러 온 사람은 왕정이었는데, 그는 세 명의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수란석을 보자 그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수 대인, 서경은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감히 송 대감에게 암살 시도를 하다니요?"수란석은 송석석이 보이지 않자 어쩌면 이것이 덫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십여 명을 이끌고 고작 세 명을 상대하는 일이니 정영수가 절대로 실패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정영수는 무공이 매우 높아 만약 그들이 미리 대비했다면 최소한 붙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송석석은 이미 잡혀갔고 그들은 그것을 서경에서 했다고 추측하여 이곳에서 그를 속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는 더욱 분노하며 사여묵을 향해 돌아서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북명왕,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연극을 꾸며서 우리를 모함하려는 겁니까? 내일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겁니까? 너무 비열하지 않습니까?"사여묵은 그에게 대꾸하지 않고 왕정에게 눈짓하며 말했다."왕비가 다쳤다고 했소? 그럼 괜찮은 건가?""큰 상처는 나지 않았고, 팔을 다치고 지금 약왕당에서 치료 중입니다. 치료가 끝난 뒤에는 대리사로 갈 예정입니다."사여묵은 왕비가 정말로 다쳤다는 말에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서경의 정영수가 한 짓이라고 확신하는게요?"왕정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합니다. 정영수 외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있었습니다. 송 대감이 몇 명을 처치했고 나머지는 모두 대리사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의 입속에는 독이 있었지만 송 대감이 모두 제거했습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음해하려 한다면 내일 협상은 필요 없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왕경루는 아직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입구에는 "영업 종료"라는 글자가 적힌 양각등 두 개가 걸려 있었다.3층의 별실은 원래 차를 마시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술 한 주전자와 몇 가지 안주가 놓여 있었다.사여묵는 호위와 함께 오지 않았고 수란석도 단 한 명의 하인만 데리고 왔는데 하인은 문 앞에 서 있었다.술은 이미 절반을 마셨고 두 사람은 내일 있을 협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수란석은 그를 이곳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명확했기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작전은 이미 끝났기에 반드시 잡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반면, 사여묵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내일의 협상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북명왕이 아주 대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했지만 막상 수란석은 단 몇 마디만으로 그를 속일 수 있었다.그렇다고 경계를 푸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의 협상은 상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길 것이고, 자기들이 불리하다는 걸 알기에 자국의 조건을 탐색하려 할 것이다.그가 웃긴다고 생각한 것은 북명왕은 마치 광대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그는 북명왕의 오만함이 참을 수 없어 웃으며 말했다."왕야께서는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허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황제께서 왕야에게 군권을 넘길까요? 제가 알기로는 귀국의 황제는 왕야를 두려워하시기에 다시 군을 맡길 리가 없습니다."사여묵은 담담히 대답했다."그건 상황을 보고 결정할 문제지 폐하의 뜻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상황요?" 수란석은 여전히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면 왕야는 군을 이끌고 나가서 과연 전세를 돌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다만...""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사여묵의 눈빛에 담긴 자신감은 수란석의 걱정을 일으켰지만 그들이 이미 선수를 친 상태에서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