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의 다방에서 설화 선생은 송석석이 군을 이끌고 성지를 뚫은 사적(事迹)을 아주 경이롭게 설명하고 있었다. 백성은 송석석을 숭배했다. 전북망과 헤어지던 그때, 송석석에게 했던 악독한 말들은 전부 잊은 듯 진심으로 그녀를 찬양했다.곧이어 회 왕비가 송석석을 근처에 얼씬 못하게 했다는 사실도 퍼졌다.회 왕비의 딸이 시집갈 때, 송석석은 사람을 보내 혼례를 도우려 했으나 왕비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주변인들은 송석석이 철이 없다고 꾸중했다. 이혼한 아녀자가 새각시의 혼례에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날, 새각시가 그녀 때문에 액운이 붙을까 두려웠다.이 일을 알게 된 회왕은 화를 내며 왕비의 뺨을 때렸다. “당신의 조카요. 하늘에 계신 언니가 원망하는 게 두렵지도 않소? 이모가 되어서 어찌 친조카를….”회왕은 한량처럼 지내는 친왕이다. 그는 유약하고 가진 권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진성에서 머물 수 있었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졌을 때, 회왕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감히 둘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혼례를 하사받아 강제로 부부가 되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전부 황제의 성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왕은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회왕은 송석석이 자기 딸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송석석의 호의를 내치는 게 아니라 받았을 것이다. 다만 딸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뺨을 맞은 회 왕비가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송석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왕야께서 심기 불편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전쟁에 나가는 것조차 몰랐지 않소. 이모라는 작자가 조카가 먼 길 떠나는데 배웅은커녕, 생각이 짧아 내쳤다는 것이오? 그건 무자비한 것이오.”회 왕비가 억울해하며 말했다. “저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잖아요.”“아랫사람을 보내도 되지 않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 아니잖소.”
송석석은 진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몰랐다.전쟁이 끝난 지 꽤 되었지만 아직 군을 완전히 철수할 수 없었다.너무 추웠던 날씨 탓에 전군이 행군하는 것은 위험했다.게다가 다년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남강의 여러 곳을 재건해야 했다. 그들이 철수하면 일손이 부족해진다.이방이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했단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이방이 아무리 부인을 하더라도 오두막의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이방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비밀이 아니었고 숨길 수도 없었다.이방은 사촌인 이진흥을 찾아가 증언해달라고 했지만 이진흥은 아무런 증언도 할 수 없었다. 이진흥도 폭행과 거세를 당했다. 오두막에서 죽다 살아났던 그는 이방이 어떤 처지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이방에게 마음이 돌아선 그는 그녀와 말 섞기도 싫었다.오두막에 갇혀 있던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공을 세우고 상을 받을 땐 둘도 없는 형제였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이방이 아군을 배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언젠간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방은 남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텼다. 상처를 잘 치료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다. 정신력이 너무 강해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이방이 자결할거라고 생각했던 수란키의 짐작과는 달리 그녀는 아주 끈질기게 버텨냈다. 수란키가 그녀를 과소평가한 셈이다.수란키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극노할 것이다. 서경의 태자는 그녀에게 모욕을 당해 자결을 했으나, 이방은 끈질기게 목숨줄을 붙잡고 있다.병사들은 이방의 면전에서 그녀와 관련된 소문을 떠들었다.처음엔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의 몸은 깨끗하다며 얼굴만 망가졌을 뿐이라고 변명했다.그러나 날이 지나도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전북망이 줄곧 그녀를 냉대했다.자신을 둘러싼 억측이 끊이질 않자, 이방은 언제부터인가 변명하기를 포기했다.이방은 오히려 송석석을 찾아가 비아냥거
봄이 오면서 쌓였던 얼음과 눈이 녹았다. 장병 일부를 남긴 뒤, 나머지 병사들은 진성으로 돌아가는 행군길에 오르기로 했다.시만자는 진성으로 갈 것인지, 매산으로 갈 것인지 한참이나 고민했다.몽동이가 말했다. “매산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진성에 금의 귀환하는 건 이번 생에 다시 없을 기회야. 사람들이 환호하며 우리를 반겨줄 거라고.”그들은 큰 뜻이 없었다. 평생 바라는 게 있다면 무공을 잘 연마해 적수를 만나면 제대로 혼내주는 것뿐이다. 천하무적은 바라지도 않았다.하루아침에 남강을 수복한 전쟁 영웅이 되었다. 갑자기 모든 이들에게 칭송을 받자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이방은 곤장을 맞아야 했다.전북망은 이방을 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녀를 도왔다.이방이 곤장을 맞아야 한다는 소식에, 전북망은 사여묵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간청을 올렸다. 그러나 사여묵은 전북망을 만나주지 않았다.전북망은 어쩔 수 없이 송석석을 찾아가 사여묵에게 잘 말해달라고 청했다.“내 부탁이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모두 진성으로 돌아가야 할 몸 아니오? 이방이 곤장을 맞은 채로 돌아간다면 행군의 고난을 견디지 못할 것이오. 전부 내 잘못이오, 내가 송 장군을 저버린 것이니….”송석석이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무례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어요? 내 가족이 누구 때문에 몰살당했는데?” “세상에서 누구보다 이방이 죽기를 바란 게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한테 누굴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제정신이세요?”그녀의 반박에 전북망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말문이 막힌 전북망을 송석석이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전북망의 뇌리로 초야를 치르던 날, 붉은 천 뒤로 드러난 송석석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떠올랐다. 복숭아꽃처럼 붉고 밝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여인이 아니었다.전북망은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내가 잘못했소. 당신을 저버린 건 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장대성이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여묵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대성을 째려보자, 장대성이 넉살 좋게 웃었다. “소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밖으로 나간 장대성은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앉으시게!”사여묵이 송석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여묵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입구를 힐끔 쳐다보았다. 밖에서 엿듣고 있는 장대성에게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송석석도 장대성이 밖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며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사여묵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시오.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송석석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진성에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희생된 곳에 다녀와도 될까요?” “우리와 함께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비의 유골은 이미 진성으로 돌려보내졌다.그러나 그들의 영이 아직 이 땅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던 그녀는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 가족들을 만나고 알려주고 싶었다.사여묵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가능은 하다만, 송 장군이 직접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이미 내가 다녀왔소. 그곳에서 가장 큰 나무를 베어와 위패(牌位)를 조각했소. 이 위패를 가지고 진성에 돌아가시게.”사여묵은 조금 전 천으로 가렸던 물건을 꺼냈다. 그곳엔 이미 조각된 위패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 송회안의 위패다.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이미 오래전, 송씨 가문의 신루(神樓)에 송회안의 위패를 모셔뒀음에도 그녀는 제사를 지낼 때면, 감히 고개를 들어 위패를 볼 수 없었다. 그 위패를 마주하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차마 볼 수 없었다. 송석석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손
다음날, 전북망이 이방을 대신해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이 영지에 퍼졌다.이방이 포로로 잡힌 이후로, 두 사람에 관한 일은 언제나 화젯거리였고 남강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이방은 상처가 나은 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소문은 나날이 무성해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해지자, 이방은 결국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숨어버렸다.전북망도 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었다. 그도 영지에 돌고 있는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대답이나 설명을 하지 못했다.성릉관 전쟁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방이 서경인들을 학살하는 바람에…그러나 전북망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수록 사태만 더 심각해질 뿐이다.병사들은 이 장군이 군령을 준수하지 않고 몰래 주력부대를 이탈해 적군을 따라가다가 되려 포로로 잡힌 것만 알고 있었다.성을 공격할 때, 이방이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든 탓에 현갑군의 계획에 방해되었고 하마터면 작전에 실패할 뻔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병사 중 아무도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여겼다.전북망이 이방 대신 곤장을 맞은 것 때문에 그나마 전북망을 따르던 부하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다만 북명군과 남강에 있던 장병은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남자라면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고, 국가를 지키고 강토를 지키는 게 그들의 대의였다. 물론 그들도 자신의 가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북망을 용서할 수 없었다.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북망이 집에서 일 년 동안 부모님을 모셨던 부인을 버렸다는 사실에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북망은 가정을 버린, 부인을 버린 남자였다.더군다나 남강에 주둔했던 여러 장군들은 모두 송회안과 함께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송석석에게 마음이 더 쏠리는 수밖에 없었다.5월 초에 이르러서야 사여묵은
‘장군령’이라는 노래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다.북소리가 강하게 울리자 모든 이가 숙연해졌다.사여묵은 송회안의 위패를 안고 성에 들어갈 때, 위패를 높게 들었다. 위패가 먼저 들어간 뒤에 사여묵이 들어갔고, 이에 다른 사람들이 뒤따랐다. 손에 위패를 든 사람들은 숙연해졌다.진성에 들어서자마자 사여묵이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신, 송회안 장군이 이끌던 장병과 함께 남강을 수복했사옵니다. 상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승리했사옵니다.” 성문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목소리는 진성 도시 전체에 떠다녔고, 백성의 환호성과 감격 어린 눈물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눈시울이 붉어진 황제는 직접 사여묵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황제는 사여묵의 품에 안긴 송회안의 위패를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몇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성지를 받들라! 짐은 고생한 세 군에게 상을 하사하느니라!”“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여묵이 말했다.황제는 송석석의 앞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펴고 곧게 선 그녀의 품 안에 오라비의 위패가 있었다. 송석석은 눈을 내리깔고 감히 황제를 쳐다보지 못했다. “송 장군!” 황제가 불렀다.“예, 폐하!” 송석석이 큰소리로 답했다.행군하며 비바람을 맞은 그녀는 얼굴이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감출 수 없었고, 두 눈은 검은 진주처럼 밝게 빛났다.황제는 송석석을 마주하자 죄책감이 들었다. 전에 그녀가 입궁해 원군이 되겠다고 청할 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송석석이 사여묵의 마음을 이용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여겼다.그러나 전쟁에 나간 송석석의 실력은 뛰어났다. ‘송회안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았구나. 의연함과 오만한 태도마저 그를 똑 닮았으니.’ “그대의 가문도, 그대도 정말 잘했다!” 황제는 여러 관료들과 백성 앞에서 선포했다. “송 장군과 북명왕은
보주는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아씨, 아씨…!”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보주를 쳐다보았다. 보주는 눈물을 흘리면서 입은 정작 웃고 있엇다. 기괴한 모습으로 달려오는 보주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송석석과 같이 앉아있던 사여묵이 보주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보주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맞소?”“기억하십니까?”송석석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당연하죠.” 사여묵이 미소를 지었다. “만종문에 갔을 당시, 저 계집이 대추나무를 흔들고 있는 걸 나와 사형이 목격했었소. 우리를 보았는지 저 아이가 놀라서 나무에서 떨어지더군요.”“만종문에도 가셨어요?”“그렇소. 남강 전쟁에 가기 전까지 1년에 한 번씩은 다녀왔댔소.”6월의 뜨거운 햇빛이 그의 눈가에 비치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던 사여묵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론 가본 적 없소.”“왕야님을 뵌 기억이 없네요.” 송석석이 의아한 눈빛으로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왜 매년 만종문에 가시는 겁니까?”“그대 사부님과 사숙에게 무공을 배우러 갔소. 난 줄곧 만보재(萬寶齋)에 묵었소. 송 장군은 어렸을 때, 거기를 피해 다녔었죠?”송석석은 숨이 턱 막혔다. ‘만보재를 피해 다닌 것도 알고 있다고?’ ‘사부님과 사숙께서 왕야님 앞에서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자주 했나 보네.’만보재는 사숙의 거처였지만 안에 암방(暗房)이 있었다. 그녀는 매번 실수할 때마다 암방에 갇혔었다. 그래서 만보재에 갈 일도 없었다.만종문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사숙이었다. 사숙의 차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절로 오금이 저렸고, 만종문 사람들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사부님조차 사숙의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송석석은 사여묵이 매년 만종문에 수련하러 온 사실을 몰랐다.왕야는 그녀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자신에게 옛일을 꺼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거리를 다 돌고 난 뒤, 예부 시랑(禮部侍郎)은 그들을 데리고 경축연으로 향했다.경축연에는 명부에 이름이
이방은 진성에 돌아오는 길이 많이 피곤했다.그도 그럴 것이, 전북망은 그녀와 거리를 두고, 그녀의 부축을 받지 않았으며 신체적인 접촉을 꺼려했었다. 그녀와 함께 포로로 잡힌 이들조차도 그녀를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같이 잡힌 포로들이 거세를 당한 이유를 이방은 잘 알고 있다. 이방이 서경 태자를 거세하고 모욕을 주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서경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보복당한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입 밖에 차마 꺼낼 수 없어, 이방에게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여, 아무도 이방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전부 이방과 거리를 뒀다.이방이 위풍당당하게 나갈 때만 해도 분명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으나, 이방은 반쪽 얼굴이 망가져서 왔다. 심지어 누구도 이방을 존경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방은 이런 것들은 견딜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송석석이 병사들의 숭배를 받고, 송석석이 장병들의 보살핌을 받는 사실이다. 북명왕조차 송석석을 입이 닳게 칭찬했다.특히 진경에 돌아왔을 때, 송석석은 어연을 타고 백성의 환영을 받으며 궐에 들어가 경축연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방은 아무 초대도 못 받고 홀로 집에 돌아와야 했기에 심기가 불편했다.이방은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장군부에 들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이방은 찬찬히 살펴보았다.송석석보다 원래 못났던 이방은 반쪽 얼굴까지 잃는 바람에 얼굴 피부가 검게 괴사해 촌 동네에서 궂은일을 하는 아녀자 같았다. 자신감 넘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부녀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장군이 날 무시하는 건, 내가 포로로 잡혔을 때, 성적 모욕을 당했다고 여기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깨끗해.’이방은 자신의 얼굴에 있는 흉터 자국을 쳐다보았다. 전북망이 직접 그녀의 얼굴을 치료했었다.‘내 외모를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야. 외모를 보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훨씬 예쁜 송석석과 이혼했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