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장대성이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여묵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대성을 째려보자, 장대성이 넉살 좋게 웃었다. “소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밖으로 나간 장대성은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앉으시게!”사여묵이 송석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여묵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입구를 힐끔 쳐다보았다. 밖에서 엿듣고 있는 장대성에게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송석석도 장대성이 밖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며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사여묵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시오.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송석석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진성에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희생된 곳에 다녀와도 될까요?” “우리와 함께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비의 유골은 이미 진성으로 돌려보내졌다.그러나 그들의 영이 아직 이 땅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던 그녀는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 가족들을 만나고 알려주고 싶었다.사여묵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가능은 하다만, 송 장군이 직접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이미 내가 다녀왔소. 그곳에서 가장 큰 나무를 베어와 위패(牌位)를 조각했소. 이 위패를 가지고 진성에 돌아가시게.”사여묵은 조금 전 천으로 가렸던 물건을 꺼냈다. 그곳엔 이미 조각된 위패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 송회안의 위패다.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이미 오래전, 송씨 가문의 신루(神樓)에 송회안의 위패를 모셔뒀음에도 그녀는 제사를 지낼 때면, 감히 고개를 들어 위패를 볼 수 없었다. 그 위패를 마주하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차마 볼 수 없었다. 송석석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손
다음날, 전북망이 이방을 대신해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이 영지에 퍼졌다.이방이 포로로 잡힌 이후로, 두 사람에 관한 일은 언제나 화젯거리였고 남강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이방은 상처가 나은 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소문은 나날이 무성해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해지자, 이방은 결국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숨어버렸다.전북망도 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었다. 그도 영지에 돌고 있는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대답이나 설명을 하지 못했다.성릉관 전쟁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방이 서경인들을 학살하는 바람에…그러나 전북망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수록 사태만 더 심각해질 뿐이다.병사들은 이 장군이 군령을 준수하지 않고 몰래 주력부대를 이탈해 적군을 따라가다가 되려 포로로 잡힌 것만 알고 있었다.성을 공격할 때, 이방이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든 탓에 현갑군의 계획에 방해되었고 하마터면 작전에 실패할 뻔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병사 중 아무도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여겼다.전북망이 이방 대신 곤장을 맞은 것 때문에 그나마 전북망을 따르던 부하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다만 북명군과 남강에 있던 장병은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남자라면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고, 국가를 지키고 강토를 지키는 게 그들의 대의였다. 물론 그들도 자신의 가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북망을 용서할 수 없었다.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북망이 집에서 일 년 동안 부모님을 모셨던 부인을 버렸다는 사실에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북망은 가정을 버린, 부인을 버린 남자였다.더군다나 남강에 주둔했던 여러 장군들은 모두 송회안과 함께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송석석에게 마음이 더 쏠리는 수밖에 없었다.5월 초에 이르러서야 사여묵은
‘장군령’이라는 노래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다.북소리가 강하게 울리자 모든 이가 숙연해졌다.사여묵은 송회안의 위패를 안고 성에 들어갈 때, 위패를 높게 들었다. 위패가 먼저 들어간 뒤에 사여묵이 들어갔고, 이에 다른 사람들이 뒤따랐다. 손에 위패를 든 사람들은 숙연해졌다.진성에 들어서자마자 사여묵이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신, 송회안 장군이 이끌던 장병과 함께 남강을 수복했사옵니다. 상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승리했사옵니다.” 성문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목소리는 진성 도시 전체에 떠다녔고, 백성의 환호성과 감격 어린 눈물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눈시울이 붉어진 황제는 직접 사여묵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황제는 사여묵의 품에 안긴 송회안의 위패를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몇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성지를 받들라! 짐은 고생한 세 군에게 상을 하사하느니라!”“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여묵이 말했다.황제는 송석석의 앞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펴고 곧게 선 그녀의 품 안에 오라비의 위패가 있었다. 송석석은 눈을 내리깔고 감히 황제를 쳐다보지 못했다. “송 장군!” 황제가 불렀다.“예, 폐하!” 송석석이 큰소리로 답했다.행군하며 비바람을 맞은 그녀는 얼굴이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감출 수 없었고, 두 눈은 검은 진주처럼 밝게 빛났다.황제는 송석석을 마주하자 죄책감이 들었다. 전에 그녀가 입궁해 원군이 되겠다고 청할 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송석석이 사여묵의 마음을 이용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여겼다.그러나 전쟁에 나간 송석석의 실력은 뛰어났다. ‘송회안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았구나. 의연함과 오만한 태도마저 그를 똑 닮았으니.’ “그대의 가문도, 그대도 정말 잘했다!” 황제는 여러 관료들과 백성 앞에서 선포했다. “송 장군과 북명왕은
보주는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아씨, 아씨…!”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보주를 쳐다보았다. 보주는 눈물을 흘리면서 입은 정작 웃고 있엇다. 기괴한 모습으로 달려오는 보주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송석석과 같이 앉아있던 사여묵이 보주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보주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맞소?”“기억하십니까?”송석석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당연하죠.” 사여묵이 미소를 지었다. “만종문에 갔을 당시, 저 계집이 대추나무를 흔들고 있는 걸 나와 사형이 목격했었소. 우리를 보았는지 저 아이가 놀라서 나무에서 떨어지더군요.”“만종문에도 가셨어요?”“그렇소. 남강 전쟁에 가기 전까지 1년에 한 번씩은 다녀왔댔소.”6월의 뜨거운 햇빛이 그의 눈가에 비치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던 사여묵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론 가본 적 없소.”“왕야님을 뵌 기억이 없네요.” 송석석이 의아한 눈빛으로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왜 매년 만종문에 가시는 겁니까?”“그대 사부님과 사숙에게 무공을 배우러 갔소. 난 줄곧 만보재(萬寶齋)에 묵었소. 송 장군은 어렸을 때, 거기를 피해 다녔었죠?”송석석은 숨이 턱 막혔다. ‘만보재를 피해 다닌 것도 알고 있다고?’ ‘사부님과 사숙께서 왕야님 앞에서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자주 했나 보네.’만보재는 사숙의 거처였지만 안에 암방(暗房)이 있었다. 그녀는 매번 실수할 때마다 암방에 갇혔었다. 그래서 만보재에 갈 일도 없었다.만종문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사숙이었다. 사숙의 차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절로 오금이 저렸고, 만종문 사람들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사부님조차 사숙의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송석석은 사여묵이 매년 만종문에 수련하러 온 사실을 몰랐다.왕야는 그녀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자신에게 옛일을 꺼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거리를 다 돌고 난 뒤, 예부 시랑(禮部侍郎)은 그들을 데리고 경축연으로 향했다.경축연에는 명부에 이름이
이방은 진성에 돌아오는 길이 많이 피곤했다.그도 그럴 것이, 전북망은 그녀와 거리를 두고, 그녀의 부축을 받지 않았으며 신체적인 접촉을 꺼려했었다. 그녀와 함께 포로로 잡힌 이들조차도 그녀를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같이 잡힌 포로들이 거세를 당한 이유를 이방은 잘 알고 있다. 이방이 서경 태자를 거세하고 모욕을 주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서경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보복당한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입 밖에 차마 꺼낼 수 없어, 이방에게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여, 아무도 이방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전부 이방과 거리를 뒀다.이방이 위풍당당하게 나갈 때만 해도 분명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으나, 이방은 반쪽 얼굴이 망가져서 왔다. 심지어 누구도 이방을 존경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방은 이런 것들은 견딜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송석석이 병사들의 숭배를 받고, 송석석이 장병들의 보살핌을 받는 사실이다. 북명왕조차 송석석을 입이 닳게 칭찬했다.특히 진경에 돌아왔을 때, 송석석은 어연을 타고 백성의 환영을 받으며 궐에 들어가 경축연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방은 아무 초대도 못 받고 홀로 집에 돌아와야 했기에 심기가 불편했다.이방은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장군부에 들어섰다. 그리고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이방은 찬찬히 살펴보았다.송석석보다 원래 못났던 이방은 반쪽 얼굴까지 잃는 바람에 얼굴 피부가 검게 괴사해 촌 동네에서 궂은일을 하는 아녀자 같았다. 자신감 넘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부녀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장군이 날 무시하는 건, 내가 포로로 잡혔을 때, 성적 모욕을 당했다고 여기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깨끗해.’이방은 자신의 얼굴에 있는 흉터 자국을 쳐다보았다. 전북망이 직접 그녀의 얼굴을 치료했었다.‘내 외모를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야. 외모를 보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훨씬 예쁜 송석석과 이혼했
잠시 넋이 나갔던 이방이 얼른 답했다. “누가 그럽니까? 제가 모욕을 당했다고 누가 그럽니까?”“넌 대답이나 하여라.” 김순희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밖에 소문이 널리 퍼졌다. 누가 말했느냐고? 사람들 전부 다 알고 있다.”이방은 남강의 일이 이렇게 빨리 진성까지 퍼질 줄 몰랐고, 머리가 큰 돌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닙니다. 포로로 잡힌 것은 사실이나 매질만 당했습니다.”“증인을 찾아 오너라. 너와 포로로 잡힌 자들이 있지 않느냐? 증언을 해달라고 하여라.” 전기가 나섰다.이방은 같이 포로로 잡혔던 자기 사촌 오라비와 병사들이 떠올랐지만 달리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전북망이 그들을 찾아가 여러 번 물었지만, 그들 모두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오두막에 같이 갇혔던 자들이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그러나 그들 입에서 다른 말을 들을 수 없었던 전북망은 이방이 성적인 능욕을 당했다고 여기는 수밖에 없었다.이방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줄 사람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방은 쌀쌀맞게 대꾸했다. “전 결백합니다. 입이 바르지 못한 자들이 헛소리하는 겁니다. 전 신경 쓰지 않습니다.”“네가 신경 안 쓴다고 우리 장군부가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잖느냐? 외출할 때면 매일 남들에게 손가락질당한다. 얼마나 우스운 처지가 됐는지 아느냐?”김순희는 목까지 붉어지며 화를 냈다. “네가 이 집에 시집올 수 있었던 건, 네가 우리 장군부에 도움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명성을 훼손하라고 데려온 게 아니다.”이방이 성릉관에서 큰 공을 세웠기에 앞날이 창창할 줄 알았으나, 남강에서 이렇게 맥없이 돌아올 줄 몰랐다. 이방 때문에 장군부의 위세가 흔들리고 있다.전씨 가문에는 아직 시집과 장가를 못 간 아이들이 있었다.전북삼과 전소환은 나이가 찼음에도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고 줄곧 미뤄왔다. 원래는 전북망 아들 내외가 남강에서 공을 세워 돌아오면 제대로 된 가문을 골라 시집과 장가를 보낼 생각으로 기다렸었다. 하지만 지
잠시 고민하던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송석석은 국공부의 아씨라 전북망과 다시 혼인해주면 장군부도 체면이 설 것이다. 전에는 이방과 전북망 사이가 급작스럽게 발전한 바람에 아들을 나무랄 시간이 미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장군부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언제 농간을 당했을지 모르는 여자를 며느리로 둔 탓에 가족들 혼사도 영향을 받았다. 만약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합친다면 전북삼과 전소환의 혼사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송석석이 돌아온다면 재물도 자연히 따라올 것이고, 장군부도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다. 김순희는 사실 차례를 연 이후로 약조차 사 먹을 돈이 없었다.송석석은 효심이 지극했다. 그러니 시부모님도 끔찍이 모실 것이다. 게다가 송석석이 예전에 그들에게 태후와의 친분을 자랑하지 않은 탓에 덕을 못 봤지만, 큰 공을 세운 송석석이 다시 며느리로 돌아와 주면 진성의 권세가들은 자연스레 장군부를 추앙할 것이다. 김순희는 아무리 생각해도 송석석에게 이득 본 것만 떠올랐다. “전에 그렇게 소란을 피웠는데 송석석이 다시 들어오려 할까요?”전기가 말했다. “말하지 않았소? 효심이 깊은 아이이기도 하고, 북망에 대한 애정도 있을 것이오.” 김순희가 턱을 살짝 괴었다.“그렇긴 하지만, 군공을 세워 어깨가 올랐갔을 텐데, 장군부로 들어와 우리 시중드는 게 싫다면 어쩌죠?” “당신이 시어머니이니 효심으로 잘 모셔야죠. 그리고 그 아이는 돈과 아랫사람도 있잖소. 직접 못 돌보겠으면 사람을 부려도 되는 일이잖소?”“그렇긴 하지만, 며느리는 자연히 시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전에도 군말 없이 잘했잖습니까.”“이방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땐, 왜 지적하지 않은 것이오?”“둘이 같은 사람입니까?” 김순희는 고분고분하게 명령에 따르던 송석석의 순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방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여자라면, 송석석은 효심이 지극한 여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굳게 박혔다. 이방이 시중을 들지 않는 것은 괜찮아도 송석석이 시중을 들지 않는 건
그리고 그 제안을 송석석이 동의하면 좋은 일이지만, 만약 거부한다면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한참이나 고민하던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둘째를 불러 먼저 얘기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둘째가 거부하면 그때 다시 얘기하시지요.”김순희는 도저히 송석석을 먼저 찾아갈 수 없었다. 설령 송석석이 전북망과 재회하기를 바란다고 해도 시어머니로서 체면을 잃을 것 같았다.장군부는 이방 한 명으로 충분히 곤욕을 치렀다. 송석석 때문에 또다시 입방아에 오를 수 없었다.김순희가 망상에 빠져있을 무렵, 송석석은 지안궁에서 태후를 만나고 있었다.50살도 안 된 태후는 관리가 잘 되어 눈꼬리의 주름만 빼면 여전히 젊었을 때 미모를 유지했다.흰 머리가 몇 가닥 나이긴 하지만 뚜렷하지 않았다.그녀는 매우 우아하고 화려했다. 태후가 부드러운 미소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한마디 말도 없이 전쟁에 나가다니.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으면 내 네 모친을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이냐?”태후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녀는 송석석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린 땐, 마음 한구석이 콕콕 쑤셨다.“걱정을 끼쳐 송구하옵니다, 마마. 그럴 의도는 아니었사옵니다.”송석석이 얼른 잘못을 인정했다.“이리 오너라, 네 얼굴이 보고 싶구나.” 태후가 그녀를 자애롭게 쳐다봤다.송석석은 태후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러나 태후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 “그냥 옆에 앉도록 해.”송석석은 양반집 규수의 모습을 하고 적절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살포시 앉았다.태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벌거숭이가 따로 없구나. 매산에서 돌아올 때 봤던 벌거숭이랑 똑 닮았어.”태후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진성에 돌아와 머물던 그때, 피부가 얼마나 윤기 흘렀는지 아느냐? 지금 네 꼴을 보아라, 손톱에도 때가 가득하구나.”송석석이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돌아오는 길이 긴박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환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