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6화

Author: 유애
수란키의 차가운 눈빛에 전북망은 등골이 서늘했다.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수란키도 그와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복잡한 얼굴을 했다.

“송 장군, 서경 정탐꾼이 장군의 가문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건 내가 아니오. 그들이 녹분성의 여러 마을이 이방이 이끈 군대에 의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정탄꾼의 우두머리가 직접 내린 명령이오. 서경의 폐하께서 국경의 문제 때문에 양국의 백성을 학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고한 뜻을 밝혔소. 물론 그쪽 무장이 협정을 어기고 학살을 했으나 서경 정탐꾼도 잘한 게 없다는 걸 잘 아오 그래서 내가 대신 송 장군에게 사죄하고 싶소.”

옆에서 듣고 있던 전북망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오?”

수란키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폐하와 공신들은 송회안 원수님을 매우 존경했소. 일찍이 군을 이끌고 서경 전쟁을 했으나 양국의 협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나라의 백성을 해치지 않으셨지요. 전쟁을 벌일 때마다 국경선을 엄격히 지키셨오. 그래서 송씨 가문의 참사에 저도 큰 죄책감을 느꼈소. 서경이 송씨 가문에 큰 빚을 진 거요.”

잠시 침묵하던 수란키가 말을 이었다.

“오직 송씨 가문에 진 빚이란 말이오.”

그는 끝까지 서경 태자가 이방에게 모욕을 당해 자살을 했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이방이 민가를 침입해 백성을 학살한 것만 문제로 삶았다.

서경인은 상국에 빚을 진 게 아니었다. 서경인은 송씨 가문에 빚을 진 것이다.

이방은 무장의 신분으로, 병사의 신분으로 녹분성의 백성을 죽였다.

그러나 송씨 가문 역시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부 죽임을 당했다.

수란키는 서경의 황자가 이방에게 잔인한 학대를 당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송씨 가문과 연관된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수란키는 송석석에게 뒤늦은 사과라도 했으나, 그들의 황자는 이방의 사과를 받기도 전에 떠났다.

남강 전쟁에서 상국 병사를 죽인 것을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7화

    수란키와 3황자가 10만 명의 서경 병사들을 이끌고 떠났다. 송석석이 전북망에게 말했다.“이 장군을 구하고 싶으면 심복(心腹)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세요.”혼자 가라고 하는 이유는 이방에게 최소한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서경 태자가 당했던 수치를 그들이 그대로 겪었다면 눈 뜨고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송석석의 배려다.그러나 전북망은 산에 남아있을 서경 병사들이 걱정돼 현갑군을 같이 데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송석석이 전북망을 잠시 쳐다봤다. “진심입니까?”전북망은 그녀의 눈빛이 가슴이 떨렸다. “이방이 백성을 학살한 게 사실이오?”“수란키 장군에게 왜 안 묻고...” 송석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장군을 직접 만나서 물으세요. 수란키 장군이 이 장군을 죽이진 않았을 겁니다.”전북망은 이방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는 수란키가 한 말을 곱씹었다. 모욕과 학살에 관한 얘기는 잠깐 했고 나머지 대화는 송석석에 대한 사과뿐이었다.만약 이방이 마을 사람을 학살한 게 사실이라면 송씨 가문의 멸문에 이방이 간적접으로 관여한 것이다. 이방은 송서석의 가족을 죽이고 송석석의 지아비를 빼앗았다.전북망은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 한 켠을 꾸욱 짓누르는 것 같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믿을 수 없어, 직접 물어볼 거야.’“수란키 장군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소. 송 장군이 나랑 같이 가주시게. 이방이 인정하면...”전북망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이방이 인정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지?’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고 되찾을 수 없는 목숨이다.송석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전북망은 수란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서경인이 산에서 매복하고 빈틈을 노릴 수 있었기에 현갑군도 동행하게 했다.그는 포로들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몇 대 얻어맞았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현갑군까지 대동해 산에 올랐다.그러나 송석석은 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8화

    이방은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수란키에게 목을 졸렸다. 생사를 오갔고 몸, 얼굴, 귀가 한 조각씩 잘려있었다. 그래서 전북망의 품에 안겼을 때, 이방은 구조되었다는 안도감에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그러나 전북망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를 안고 나가면 그녀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봤다.그녀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얼굴이 파랗게 질린 전북망은 그제야 송석석이 두 차례 확인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심복 한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송석석에게 화가 난 전북망은 밖으로 나가며 송석석을 흘겨봤다. 이방이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수란키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이방과 송석석 사이에서 발생했던 일을 믿고 싶지 않았다.송석석은 전북망이 겁먹은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전북망의 의견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다른 포로들을 구하라고 명을 내렸다.안에 있는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이 들어갔다. 오두막에는 횃불을 켠듯한 흔적이 있긴 했으나 서경인들은 하산을 하기 전 그것들을 전부 꺼버렸다.그들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얼어 죽지 않은 것은 오두막의 온기가 그들의 목숨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어떤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솜옷을 벗어 포로들에게 입힌 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시몬으로 돌아가 군의관을 청했다. 전북망은 직접 이방에게 탕약을 먹였다. 악취 나는 그녀의 몸을 씻기고 입안의 똥을 조금씩 퍼냈다. 그 과정에 몇 번이나 구역질했는지 모른다.그리고 다리 사이의 상처를 감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는 눈을 돌리고 약가루를 마구 뿌렸다. 그곳을 제외한 다른 상처들은 세심하게 치료했다.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천할 '천(賤)'자는 불에 달궈진 쇠로 지져서 없앴다.그녀의 얼굴을 절반 흉측하게 만들지언정, 글자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이방은 상처를 치료받으며 정신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9화

    그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이방을 바라보았다.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던 이방과 다른 사람 같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악귀처럼 보였다.그는 오롯이 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전공을 포기하고, 송석석을 저버렸다.세상에서 가장 멍청했다.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나가서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시절 대의를 논하던 이방의 눈에는 지금과 달리 총기가 있었다.허탈해진 전북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미친 듯이 폭소했다.깜짝 놀란 이방은 전북망의 몸을 잡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장군님... 왜 이러세요? 무섭게 왜 이래요.”전북망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한참이 지났을까, 전북망은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내리고 이방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송 장군 일가를 몰살하고 포로를 괴롭히고 마을의 백성을 학살한 게 당신이었군.”이방은 그의 눈빛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서경인들이 죽인 겁니다. 저랑 상관없어요.”“왜 이런 사람이 되었소? 언제부터 이리 잔인해진 것이오? 무고한 백성을 왜 죽인 거요?”이방은 여전히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서경 무장이 민가에 숨어 있었고, 그를 찾기 위해... 장군님, 왜 절 잔인하게 여기세요? 마을 사람들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도 서경의 백성입니다.”“양국은 교전 중 백성이나 포로를 죽이지 않소.” 전북망은 핏기가 보이는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건 우리와 서경이 맺은 협정이오. 성릉관 전쟁 전에 내가 수차례 말했고 당신도 알겠다고 했잖소.” 전북망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말해보시오, 왜 지키지 않았는지. 포로를 학살한 것뿐만 아니라 민가의 백성까지 학살했소. 사람이긴 하오?”무섭게 다그치는 그의 모습에 이방은 깜짝 놀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0화

    전북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방은 초조해서 해명했다. “절 때렸지만 절대 유린을 하지 않았어요. 맹세코 절대 그런 일 없었어요. 믿기지 않으면 그들에게 물어보세요.”전북망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물어야 하오? 부끄럽지도 않소?”“절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전북망이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 믿겠소? 내게 한 말 중에 진실이 있긴 하오? 성릉관에 대해 물었을 때, 북명왕이 전쟁터로 직접 출두한다는 거짓말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수란키가 철수를 했다고? 이렇게 큰일도 내게 숨겼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겠소?”“제가 말하지 않은 건 장군께서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방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을 굴리며 변명을 했다. “장군께서 양국의 백성을 절대 해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들이 민가에 숨어든 게 확실한 상황에서 포기할 수 없잖아요? 녹분성에 온 이상, 반드시 수확이 있어야 합니다. 전 그저 마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서경인들이 죽인 병사들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전북망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우리가 녹분성에 왜 갔소?”“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기 위해서요.” 이방이 말했다.“내가 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러 가면 후방 지원을 맡아달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 젊은 장수를 왜 쫓아간 것이오? 우리가 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는 사이 서경 병사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지는 생각지도 않은 것이오?”“하지만 제가 공을 세웠잖아요.” 이방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더는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장군님과 전 생각이 다릅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장군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얘기는 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줍니다. 그런 일로 부부 사이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 있나요? 이 얘기 그만 해요.”전북망은 그녀에게 실망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적을 했지만, 그녀는 서경 백성의 목숨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더는 그녀와 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화

    송석석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털털한 모습에 사여묵은 눈썹을 들썩이며 키득거렸다.“그나저나 서경 태자가 녹분성에 왜 왔어요?” 서경 태자는 현명하고 용맹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로 유명했다.그런 사람이 녹분성에 나타났으니, 송석석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하물며 태자는 무장이 아니다. 직접 전쟁에 나올 만큼 싸움 실력이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다.여러모로 태자의 행보는 수상했다.“서경 황실에 내란이 일어났고 2황자가 꾸민 모략에 의해 어쩔 수없이 전쟁에 나오게 됐소. 수란키는 태자를 위험천만한 곳에 차마 보낼 수 없어 안전한 녹분성에서 몸을 피신하게 했지. 헌데 그곳에서 이방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2황자가요?” 송석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자가 죽었으니 남은 황자들끼리 자리 쟁탈을 하겠네요. 2황자가 차기 태자로 선발되면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예요.”서경의 2황자는 상국을 향한 적대감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송석석은 2황자가 서경의 다음 태자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수란키는 3황자쪽에 섰소. 3황자와 돌아가신 태자는 태황후의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이기에 명분이 확실하오. 그러나 3황자는 아직 태자가 될 정도로 뛰어나지 않소. 황제도 병세가 심해져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 같소만...”송석석은 그제야 태자의 신분으로 위험한 전쟁에 나온 상황이 이해되었다.“2황자와 수란키에게 이번 기회는 전환점이 되겠군요. 그들은 태자의 복수를 한 뒤 신속히 철수하여 내란에 맞설 생각으로 여기 온 거였어요. 그간 태자의 죽음을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게 바로 명분을 만드는 것 때문이었네요. 이제 서경으로 돌아가 태자의 부고를 온 세상에 알리고 자신들이 추대한 3황자가 친형인 태자의 복수를 한 사실을 알려 민심을 달래고 3황자의 입지를 굳건히 만드는 게 수란키의 계획이었네요.”“무수한 이유들 중 하나겠지오. 한 나라의 내정을 우리가 어찌 다 파악하겠소? 서경 같은 대국은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사여묵의 말에 그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2화

    남강을 수복했다는 승전보가 진성 곳곳에 퍼졌다. 승전보를 들은 황제는 눈물을 주룩 흘렸다. 황제는 만조 문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온 나라가 흥에 겨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어느 나라나 그러하듯, 마을에는 황실이나 민간의 소문을 전하는 설화 선생이 존재한다. 진성의 설화 선생도 인맥이 넓었다. 벼슬아치 댁에서 일하고 있는 몸종들은 설화 선생에게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팔아넘겼다.이번에도 사람들은 공을 세운 게 북명왕, 사여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리와 시몬을 수복한 여장군이 있다는 소문도 순식간에 퍼졌다. 그녀가 현갑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를 모아 사국인을 내쫓았다는 것도 모두가 알게 되었다.설화 선생은 영웅 서사를 가장 좋아했다. 이번에도 송석석을 천하의 여전사로 만들어 이야기를 팔았다.고난 속에서 사여묵 휘하의 여전사가 용맹스럽고 지혜롭게 적군 수장의 목을 베냈다는 소문은 진성 곳곳에 퍼졌다.설화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전사는 아주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백성에게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다방(茶房)이나 주막(酒館), 시장 거리,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이 여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이 여장군의 출신 배경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여장군을 이방으로 추측했다. 이방은 일찍이 성릉관에서 공을 세웠고 전북망과 함께 원군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기 때문이다.현갑군을 이끌고 성을 무너뜨린 여장군은 이방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졌다.그러나 명문 세가나 정5품의 관료들은 이런 민간설화를 믿지 않았다.다방이나 주막에서 나온 소리 중 절반은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장군부의 사람들은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헛소문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은 이방이 큰 공을 세운 줄 알았다.전북망의 어머니, 김순희는 아들 내외가 출정한 뒤로 줄곧 염불을 올리며 그들이 군공을 세워 금의 귀환하기를 바랐다. 바람대로 아들 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3화

    김순희는 병부 시랑(侍郎)의 두 부인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병부의 상서(尚書) 부인에게도 보냈지만, 상서 부인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랑 부인은 무조건 올 것이다. 김순희는 부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부인들이 모이면 전쟁의 대략적인 상황과 병부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 어떤 상을 내리는지에 관해 물어볼 계획이었다.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됐음에도 부인들은 오지 않았다. 심지어 품계가 높은 관료의 부인들은 하나같이 오지 않았다. 제 시간에 모인 사람들은 정5품, 정6품, 정7품의 부인들이었다.어떤 사람들은 초대 명단에도 없었지만, 기어코 온 바람에 김순희는 기가 차면서도 배가 아팠다. 그녀는 이번 차례를 위해 집안의 재산을 쏟아부었다. 아들 내외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병부의 여러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산을 거덜냈다. 집으로 돌아간 부인들이 아들 내외에 관한 칭찬을 부군들에게 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값진 물건을 전부 팔아 성대한 차례를 준비했다.조정은 여러 관료와 백성들의 외침을 무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다행히 차례에 참석한 부인들 사이 여장군을 찬양하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덕분에 높은 관료의 부인들이 오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던 김순희는 조금씩 평정을 찾았다. 자기 아들과 이혼한 송석석이, 국공부의 아씨가 된 게 배 아팠던 그녀는 이방과 전북망이 공을 세웠단 소리를 듣게 되자마자 국공부보다 잘 나가게 될 장군부의 창창한 앞날이 기대되었다.유일하게 살아남은 국공부와 실권을 가진 장군부 중, 사람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은자를 쏟아부어 준비한 차례에 낮은 품계의 관료 부인들만 온 탓에 손님들과 같이 있기 싫었던 김순희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며 민씨에게 자리를 맡겼다.‘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밖에 소문이 파다하거늘, 어찌 다른 부인들이 오지 않은 걸까?’자기가 부른 정2품 상서 부인들이 오지 않은 이유가 급이 안 맞아서인 것을 몰랐다.설령 전북망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4화

    설화 선생이 말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라고 짐작하던 사람들은 김순희가 주최한 차례에 높으신 분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 의심을 했다.장군부의 소식을 알게 된 설화 선생은 입맛을 다시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장군부의 노부인이 연 차례에 병부의 두 시랑 부인께서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 것 같소? 병부의 다른 관료 부인들도 참석하지 않았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바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오.”다방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사람들의 토론 주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장군에 관한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 전북망의 현 부인과 전 부인이 함께 전쟁에 나갔다는 소문도 퍼졌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전북망의 전 부인이 남강에서 희생된 진국공 송회안의 딸 송석석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아직도 송석석의 얘기가 나오면 숙연해졌다. 진국공 송회안의 일가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성은 송씨 일가의 얘기만 나와도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송씨 가문의 모든 사내가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송씨 가문에 있던 노약자와 여인,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몰살 당했다. 국공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송석석이다. 송석석은 7, 8살이 되었을 때부터 매산의 만종문에 가 무예를 배웠었다. 송석석은 무공이 있었고 무장 출신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은 남강 전쟁에서 그들의 복수를 했다. 동시에 자기가 남편을 빼앗아간 이방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여러모로 송석석이 돋보였다.이 소문은 삽시에 장군부까지 전해졌다.이 말을 들은 김순희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났다. “송석석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전쟁터에 나가 싸웠을 것이지, 장군부에 시집와 나 같은 늙은이 시중을 왜 들어?” 가노(家奴)의 입단속을 못한 탓에 노부인의 말은 자연스레 밖으로 퍼졌다.어떤 사람들은 노부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가 정

Latest chapter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0화

    이튿날 아침, 송석석은 경위부로 돌아갔는데, 회왕비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이번에 회왕이 진성으로 잡혀왔을 때, 그의 아들은 아직 잡히지 않았기에 목종욱은 여전히 병사들을 이끌고 회왕의 아들을 수색하고 있었다.회왕비는 자신의 아들도 왕표처럼 요참형에 처형당할까 봐 걱정되어 급하게 송석석을 찾아온 것이다.사실 전에 회왕이 진성으로 압송되었을 때에도 회왕비가 란이를 찾아가 송석석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시켰지만 란이는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심지어 송석석 앞에서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송석석도 석소 사저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회왕비가 재빨리 송석석에게 다가가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석석아! 이모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일단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까?”“지금 처리할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송석석이 돌아서서 떠나려고 하자 회왕비는 얼른 두 팔을 활짝 벌려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다.“몇 마디만 하면 돼. 네가 네 사촌 오라버니를 좀 살려주면 안 돼? 네 사촌 오라버니는 아무 잘못이 없어.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전부 걔 아버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제발 네가 좀 구해줘!”송석석은 눈시울이 붉어진 회왕비를 보며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진성으로 돌아와 관아에 갇혀 있었을 때 회왕비가 단 한번도 외할아버지를 보러 가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송석석은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나약한 회왕비와 단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으며 회왕비를 슬쩍 피해 경위부 안으로 들어갔고 경위대에게 회왕비를 쫓아내라고 지시했다.이때 등 뒤에서 회왕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석석아, 너 어찌 이리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느냐? 네가 어렸을 때 이모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벌써 다 잊은 거야?”송석석이 뒤도 안 돌아보자 회왕비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송석석, 네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하고 아꼈다! 네가 날 이렇게 모른 척하면 분명 네 어머니 상심이 클 것이다!”자신의 어머니가 언급되자, 걸음을 멈춘 송석석은 싸늘하게 굳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9화

    한편, 송석석은 서재에서 편지 한 장을 쓴 뒤, 편지를 염구진에게 주면서 사람을 시켜 남강에 있는 사여묵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송석석은 현재 남강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빅토르는 병사들만 끌어 모을 뿐 공격도 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은 채 대치를 하고 있었다. 빅토르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남강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황제에게 먼저 얘기한 빅토르는 전쟁을 이기지 못하면 군령에 의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서까지 썼지만 사청엄이 반역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빅토르에게 성을 나눠줄 수 없었고 빅토르도 공을 세울 수 없었다.이대로 섣불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이 쓴 서약서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빅토르는 초원과 연합하여 자신의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초원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초원은 애초부터 전쟁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끼어 마음을 졸이면서 어렵게 생존하고 있었기에 반드시 중립을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만약 둘 중 한 나라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초원은 반드시 상국을 선택할 것이다.전에 사제가 송석석에게 보낸 서신에 의하면 남강 병사들은 빅토르를 확실하게 공격하여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송석석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그때, 시만자가 문을 두드렸다.“석석아!”“들어와.”송석석의 말에 시만자가 최숙심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최씨께서 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최숙심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왕비님,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송석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전 여색을 즐기지 않으니 몸으로만 갚지 않으시면 됩니다.”송석석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농담을 하자, 흠칫하던 최숙심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시만자는 잠깐 앉아있다가 왕경루로 가야 한다고 방을 나섰다. 종문파와 시씨 가문 사람들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8화

    오후 3시 정각, 커다란 판대기가 처형장에 올라왔다. 철로 만들어진 판대기는 매우 단단했으며 상국에서 요참형에 쓰이는 유일한 판대기였기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문엄 황제 때 요참형이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가 많았기에 죄가 아무리 중한 범인이라고 해도 요참형을 내리지 않았다.하지만 이 형이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반역자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다.요참형을 처형할 때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국정을 어지럽히고 역적들과 손을 잡고 나라를 배신한 건 역천 대죄이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왕표는 이내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고 관원 부하 두 명이 왕표를 판대기에 눕혀 어깨를 꾹 누른 뒤 꿈쩍도 못하게 제압했다.공포에 질린 왕표는 순간 정신을 잃은 채 기절했고 망나니가 대도를 치켜 들자 대부분 사람들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구경꾼들과 달리 영군오아과 연왕 등 사람들은 전방을 직시하게 고정되어 있었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었고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연왕은 그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망나니가 대도를 든 순간 눈을 꽉 감은 연왕은 심지어 비명까지 질렀다.하지만 겁을 먹은 사람들과 달리 추몽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전방만을 직시했다.망나니의 대도가 왕표의 허리를 자른 순간에도 추몽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왕표에 이어 고청우가 처형당할 때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비명소리나 흐느끼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왕표와 고청우가 발버둥 치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빤히 지켜 보았다.한편, 왕청여는 왕표가 처형되기 전에 노부인을 데리고 이미 처형장을 떠났고, 최숙심은 처형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최숙심은 결국 왕표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왕표가 죽었다는 말에 그제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가족들이 시체를 거둬가지 않으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7화

    경위대가 노부인과 최숙심 그리고 왕청여를 처형장 안으로 호송했고 다리에 힘이 쫙 풀린 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이 멍청한 놈아! 넌 우리 집안 조상님들과 네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면 어떻게 마주하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그러고는 노부인은 엉엉 울면서 왕표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한편,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영혼이 나간 왕표는 어머니를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리를 질렀다.“어머니, 저를 구해주세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전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요!”“네가 이렇게 큰 죄를 저질렀는데 내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해? 황제 폐하께서 너를 얼마나 중히 여기고 믿어줬는데 네가 어찌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어머니, 저 정말 잘못했어요. 제 죄를 다 뉘우쳤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게요. 제발 이 아들을 살려주세요!”왕표가 오열했지만 노부인은 그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곁에 서있던 최숙심이 직접 만든 음식과 술을 꺼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과 나 사이에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어머님과 아이들은 제가 잘 돌볼게요. 그러니 걱정 말고 떠나세요.”왕표는 담담하게 말을 하는 최숙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 서방을 배신한 천박한 년! 감히 나에게 부부의 연을 운운해?”“그래요. 저희는 이제 부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앞으로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좋겠지요.”“나쁜 년!”왕표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외치자, 이를 들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최숙심을 불쌍하게 여겼다.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왕표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낳고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시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저런 말을 듣다니.뒤로 한 걸음 물러난 최숙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고청우는 왕씨 가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모여 있는 백성들을 자세하게 쓱 훑었다. 이제 곧 죽을 텐데 정말 아무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6화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나서야 눈물을 그친 노부인은 결국 왕표를 구하는 일은 포기했지만, 그의 형이 집행되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직접 먹일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노부인의 눈은 퉁퉁 부었고, 목소리도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형이 집행되기 전에 범인은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이것만 하게 해줘. 아들이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고 길을 떠날 수 있게 해줘.”노부인은 다시 최숙심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며느리 너도 자식이 있으니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거야. 세상 사람들 눈에 걔가 백 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한없이 어린 아이일 뿐이야.”한참동안 침묵하던 최숙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 형이 집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집행장에서 아들이 요참형을 당하는 모습을 정말 직접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네가 가서 북명 왕비에게 부탁을 좀 해보거라. 난 감옥에 가서 아들을 만나고 싶다.”노부인의 말에 고청락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참 말씀을 쉽게 하시네요. 어머님께서 부탁하면 왕비님께서 무조건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시는 겁니까?”“어머님, 전 그런 부탁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왕비께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최숙심이 대답하자 노부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말했다.“집행장이라도 갈 것이다. 절대 내 아들을 굶겨서 하늘나라로 보낼 수는 없어.”“어머니, 오라버니는 안 굶어요. 형이 집행되기 전에 감옥에서 오라버니에게 맛있는 밥을 준비해줄 거예요. 심지어 술도 준비해준다고 들었어요.”왕청여의 말에도 노부인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그건 달라!”최숙심이 계속 한숨을 살짝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곁에서 지켜보던 모종윤이 고청락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행 당일 날이 되었고, 하늘은 한없이 맑았다.문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5화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최숙심의 딱한 사정을 운운하면서 그녀의 선한 마음씨 또한 찬양했다.그녀의 삶도 이토록 엉망진창인데 힘든 사람들에게 죽도 나눠주고 갈 곳 없는 여인들을 소주방에서 지내게 도와준 사실들을 일일이 읊으면서 감탄했다. 솔직히 숙청제에게는 지금 최숙심처럼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바로 어명을 내려 그녀에게 순금 백 냥과 집 한 채까지 하사했다. 그리고 유방 당했던 왕씨 가문 남자들도 남강 전쟁만 끝나면 북명왕과 함께 진성으로 돌아오는 것에 허락했다.그렇게 최숙심은 죽을 고비를 넘어 인생 역전까지 이뤄냈다!한편, 왕표에게는 요참형이 내려졌고 역적과 손잡고 왕표를 선동한 고청우에게도 똑같은 형을 내렸다. 그러자 숙청제는 예전에 고씨 가문 여인들을 살려준 일이 후회되었다. 고청우를 진작 감옥에 가뒀다면 남강에 이렇게 큰 화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이후 숙청제는 척귀에게 걱정되니깐 암자에 가끔 가보라고 했는데, 이는 실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송석석은 척귀를 보자마자 황제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사람을 보내 고씨 여인들에게 고청우의 형이 집행될 때 고청우와의 옛정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말라고 확실하게 당부했다.한편, 소주방에 있는 노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왕표가 결국 체포되었고 요참형을 받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채, 죄 없는 왕청여와 최숙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화풀이를 했다. 노부인은 두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며, 서방인 왕표를 배신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점점 더 흥분하다가 결국 최숙심과 왕청여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그리고는 지금 당장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왕표를 구해내라고 억지를 부렸다.최숙심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노부인에게 노여움을 풀라고 빌었지만, 노부인은 오히려 점점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최숙심도 더 이상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 주막에서 칼을 가져오더니 바닥에 툭 던졌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4화

    왕표는 중범죄자이기에 바로 대리사로 이송되어야 하지만, 송석석은 그를 일단 경위부로 압송했다. 경위부에서 심문을 마친 후, 어전에 보고를 올리며 최숙심의 공을 황제에게 잘 얘기한다면,왕준과 현이 하루 빨리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고청우도 아직 경위부에 갇혀 있기에 왕표와 고청우가 만난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그렇게 고청우와 왕표는 같은 곳에 갇혔으며, 중간에 나무 울타리 하나를 세워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청우와 왕표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왕표가 먼저 이를 갈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천박한 놈! 결국 네 놈 꼴도 이렇게 되었구나! 드디어 벌을 받은 게야!”그러자 고청우가 실눈을 살짝 뜨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내가 천박한 년이면 왕표 너는 뭔데? 나도 벌을 받았지만 너도 결국 이렇게 갇혀 있잖아! 넌 뭐 다를 것 같아?”“이게 다 네 놈 때문이야!”왕표가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고청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뒤로 살짝 물러난 고청우는 오아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버러지 같은 놈!”“네 놈이 감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네 놈이 역적과 손잡고 날 꼬셔서 야반 도주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난 지금 남강 원수의 신분으로 잘 살고 있었을 거야! 절대 이런 꼴을 당할 리 없었을 거라고!”왕표가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자 고청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널 꼬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넌 결국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넌 내가 무엇인가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아이까지 낳으니 이제 날 곁에 묶어 둘 수 있겠다고 확신한 거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네 본처처럼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줄 알아? 가족애라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거야. 그딴 걸로 날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멍청한 놈! 내가 널 버리고 갈 때 분명하게 얘기했잖아. 넌 무능하고 무술 실력도 보잘것없는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3화

    한편, 송석석은 시만자를 데리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한 채 직접 보화사로 향했다. 보화사에 도착한 뒤 절을 올리고 초를 꽂고는 주지 스님을 찾아 신분을 밝힌 뒤, 여람 스님에 관해서 물었다.주지 스님은 바로 지객 스님을 불러왔다. 각지 스님들이 보화사에 찾아와 며칠 묵고 갈 때마다 지객 스님이 그자들을 모셨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보화사는 진성 3대 절 중의 하나일 정도로 꽤 유명했기에, 매년 보화사에 찾아와 경을 들으면서 며칠동안 이곳에 묵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 수련의 경지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원칙대로라면 이곳에서 지낼 수 없는데 몇 년 전부터 남강에서 죽은 이의 영혼들을 제도했기에 그 자비로운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덕행도 많이 쌓았기에 지객 스님은 의례적으로 여람 스님을 받아준 것이다.“며칠동안 매일 여람 스님께서 밖에 돌아다니셨습니다. 진성 내에 전란이 일어나 사상자가 많았기에 여람 스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제도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송석석은 그런 지객 스님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을 뿐, 반박하지는 않았다.그러고는 지객 스님에게 여람 스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여람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돈을 기부하며 여람 스님을 위해 따로 절 하나를 지어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다.한편, 지객 스님은 송석석과 시만자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기품이 넘쳐 흘렀기에 모 훈작 세가의 부인이나 아가씨일 것이라고 추측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왕표에게 말을 전했다.왕표는 자신을 찾아온 자가 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가 절을 만들어주며 돈까지 기부하겠다는 소식에 바로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평서백이었던 왕표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절에 돈을 기부하는 명문 가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2화

    이내 표정을 숨긴 최숙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얼른 가십시오. 돈을 구하면 바로 서방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요즘 진성 순찰이 삼엄하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십시오.”왕표는 자신을 걱정하는 최숙심의 말을 듣자, 그녀가 밖에서 아무리 대단한 여인이라고 불려도 결국 자신에게 만큼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뿌듯함에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최대한 3일 안에 마련해주면 고맙겠소.”그러자 최숙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그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어떻게 3일 안에 그 큰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우리 딸 지아가 지금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난 부인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소. 부인의 소식을 기다리겠소. 그리고 내가 부인을 찾아왔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오. 어머니와 왕청여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되오!”말을 마친 왕표는 삿갓을 쓰고는 돌아서서 빠르게 떠났다.표정이 확 어두워진 최숙심은 그를 얼른 따라갔지만 골목 밖에도 순찰하는 경위대가 보이지 않았기에 섣불리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왕표는 궁지에 몰린 순간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어떻게든 진성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왕표가 진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를 찾아내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최숙심은 빠른 걸음으로 소주방에 돌아와 석소를 구석으로 불렀다.“석소 아가씨, 얼른 왕비에게 찾아가서 왕표 그자가 보화사에 여람 스님 신분으로 위장하여 숨어있다고 전하시오.”“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그렇게 석소가 돌아서서 소주방을 떠나려던 그때, 최숙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 왕비님께 너무 대놓고 보화사에 왕표를 잡으러 가지는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몇 사람만 데리고 가서 상황만 파악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하세요.”현재 수색이 삼엄해서 왕표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이는 최숙심이 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고 단번에 확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