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이라고?’임지영은 확실히 많은 말을 했다.고현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차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순종했다.감정이 깊어질 때 그녀는 남자가 괴롭히다시피 자극하는 유혹을 참으며 진지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아마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괜찮아, 난 기억했고 당신과 가까이했었어.’“삼촌, 삼촌을 좋아하고, 좋아한 지 오래요. 제가 고씨 가문에 왔을 때 삼촌이 저를 곤경에서 구해줬고 그때부터 몰래 삼촌을 지켜봤어요. 삼촌이 저를 신경 쓰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난... 음... 정말... 사랑해요.”임지영은 16살 때 고씨 가문에 왔다. 그때 류하는 그녀를 마치 공물을 바치는 인형처럼 꾸며줬다.당시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되는 미니멀한 옷차림을 몰랐던 류하는 딸을 예쁘게 꾸며서 고씨 가문에 데려가려고 했으나 공교롭게도 웃음거리가 됐다.모두 임지영을 봉황을 쫓는 닭에 비유하며 비웃었으나 겁이 많은 류하는 하인조차 반박하지 못했다.이때 고현이 나타났다.훤칠한 키에 검은색 롱 코드를 입은 그는 현관에 서서 손에 담배를 쥐고 연기를 내뿜었다. 하얀 연기는 그의 얼굴을 몽롱하게 가렸으나 그의 등 뒤에서는 흰 눈이 쏟아졌다.그저 담담하게 서 있었을 뿐이지만 위험해 보여 가정부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해 23살밖에 안 된 그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였지만 이미 경성에서 소문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하게 할 만한 ‘대표님’이었다.그는 임지영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네.”임지영은 이 세글자를 오랫동안 기억했다. 그 때문에 그날 고현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몇 년이 지났어도 그녀는 여전히 똑똑히 기억했다,나중에 우연히 삼촌을 만날 수도 있었다.봄날의 화원, 반에서 등수가 떨어져 애타게 울고 있을 때 정자에 기대에 담배를 피우던 그는 시험지를 힐끗 보며 말했다.“미련하군. 펜을 가져와.”여름의 수영장, 고현은 수영을 배우려다 다리에 쥐가 난 그녀를 구해주려고 수영장에 뛰어들었고 사지가 부실하다고 말했다.가을 거
임지영이 고현의 새 양복에 토하자 그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마침내 다 토한 임지영은 온몸이 나른해져 차에 기댔는데 진성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대표님, 제가 부축할게요.”고현은 아예 외투를 벗어버렸다.“괜찮아.”고현은 얄미운 눈빛으로 임지영을 바라봤지만 그래도 그녀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곧장 욕실로 향했다.싱크대에 걸터앉은 그는 손을 들어 구토물에 범벅이 된 그녀의 옷을 벗겼다.“안돼요! 안돼요!”임지영은 그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허약한 그녀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고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옷을 다 벗겨버리자 어젯밤의 흔적이 불빛에 그대로 드러났다.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던 임지영은 손을 들어 고현의 눈 앞을 가렸지만 그에게 손목이 잡혔다. 그의 뜨거운 손바닥이 몸에 닿자 임지영은 고개를 쳐들었는데 마침 고현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고현은 임지영에게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무릎을 벌리더니 그녀의 몸에 밀착했다.임지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거부했으나 고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세면대에 놓은 수건을 들고 손을 닦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난 방금 토한 여자에게 흥취가 없어.”이 말을 들은 임지영은 막 숨을 돌리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진 듯 곧장 고현의 가슴에 쓰려졌다.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허약해 보이는 임지영을 보고 고현이 물었다.“위가 아직도 불편해?”고개만 끄덕일 뿐 말조차 하지 못하는 임지영을 보며 고현이 낮은 소리로 불평했다.“쓸모없어.”임지영은 어지럽고 메스꺼워 몸이 아래로 처지는 것만 같아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현이 잘 대해주기를 바라지 않지만 임지영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문득 임지영은 얼굴이 뜨거워지며 따뜻한 수건이 그녀의 얼굴과 몸을 스쳐 지나갔는데 이 따뜻한 온기에 임지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꿈틀댔다.갑자기 손동작이 멈추더니 그녀의 정수리에서 냉랭한 말소리가 들려왔다.“오늘은 봐줄게.”곧 임지영은 몸이 가벼워지더니 고현에게 안겨 침대로 옮겨졌다.정신을 차렸을 때
임지영이 막 기숙사 밖으로 나오자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몸을 돌리자 한 학생이 숨을 헐떡이며 강의동 방향을 가리켰다.“임지영, 오 선생님께서 널 사무실로 오라고 했어.”“알았어.”임지영은 몸을 돌려 강의동으로 걸어갔는데 길에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악의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또 말썽이 많아지겠구먼.’...사무실.임지영이 들어가 보니 안에는 오 선생님 외에 다른 사람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현과 송연아였다.고현의 독사 같은 눈빛이 곧 임지영을 독살시킬 것만 같았다.저도 모르게 숨을 고르던 임지영은 주먹을 쥐어서야 발걸음을 안정시키고 다가갔지만 고현의 눈빛은 그녀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이때 가냘픈 그림자가 다가왔는데 이 사람은... 전생의 꼭두각시 친구 심유나였다.심유나는 예전에 임지영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졌을 때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 때문에 임지영은 항상 그녀를 믿었고 심지어 말을 잘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가난한 학생인 심유나와 부잣집 아가씨인 송연아가 진작에 손잡았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심유나는 임지영의 신변에서 항상 양 탈을 쓴 늑대 역할을 했다.임지영이 오자 심유나는 예전처럼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임지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앞질러 말했다.“지영아, 빨리 송연아 학생에게 사과해. 네가 공모전 정원을 위해 인터넷에 송연아 학생을 비방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이 일이구나.’임지영은 담담하게 심유나를 쳐다봤는데 눈빛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불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지영아, 너 왜 그래? 난 다 너를 위해서야. 지금 사과하고 공모전 참가 정원을 송연아 학생에게 돌려주면 대표님과 선생님도 너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거야.”전생에 심유나는 권세가 있는 사람을 건드릴까 봐 걱정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송연아가 그녀더러 임지영이 고현의 침대에 올라가 결혼하고도 강요했다는 루머를 퍼뜨리라 했는데 임지영이 그 사실을 인정하게 하고 싶어서였다.임지
임지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사무실을 떠났다.고씨 가문에서 소동을 피운 후 그녀는 송연아를 위해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송연아가 고현에게 울며 전화를 걸어 모욕을 당했다고 말할 때 임지영은 송연아와 심유나가 함께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일기책을 비롯해 심유나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많았다.그녀가 고현과 하룻밤을 잔 후 온라인에는 그녀가 약을 쓰며 기어코 고현과 관계를 맺었다는 일기장이 떠돌았는데 이것은 무조건 심유나가 한 짓일 것이다.그래서 임지영은 일찌감치 일기장을 바꿨다.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왔는데 바로 심유나였다.심유나는 말을 하고 싶어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는 그저 임지영의 눈치를 살폈다.오히려 임지영은 아주 차분했는데 배신당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곧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심유나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임지영의 팔을 잡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미안해. 너도 알다시피 난 집이 가하고 담도 작아. 난 정말 송연아를 거역할 수 없었어. 겁을 주니 어쩔 수 없었어.”아직 심유나와 송연아가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을 보지 못한 임지영은 섣불리 심유나와 관계를 끊을 수 없어 한숨을 쉬며 슬퍼하는 것처럼 말했다.“유나야, 난 정말 너를 친구로 생각했는데 넌 방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송연아가 이렇게 말하라고 나에게 강요하며 아니면 나더러 졸업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서 어렵게 공부를 시켰어. 만약 졸업하지 못한다면 난 정말 죽을 죄를 짓는 거야. 날 믿어주겠어?”심유나는 임지영의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임지영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유나야, 난 당연히 널 믿어. 하지만 앞으로 조심해야 해.”심유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멍해서 물었다.“무엇을 조심하라는 거야?”임지영은 곁눈질로 고급 차에서 내려오는 누군가를 흘끗 바라보며 타일렀다.“유나야, 대표님은 송연아의 남자야. 넌 절대 헛된 생각을 하면 안 돼
임지영의 심장이 세차게 뛰며 튀어나오려고 하던 찰나 고현이 고개를 돌려 나무 뒤에 있는 커플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싸늘한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고현임을 알아본 커플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저희는 바로 가겠습니다.”이 커플이 빠른 걸음으로 떠나자 임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현을 밀쳤지만 오히려 손목이 잡혔다.“짐을 챙겨 나와. 진성이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널 아파트까지 데려다줄 거야.”나지막하게 말했지만 의논할 여지 없는 명령 어조였다. 몸이 굳어진 임지영은 긴 속눈썹을 떨며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삼촌의 마음속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말을 잘 듣는 인형만 원할 뿐인데 말을 잘 들을수록 마음대로 갖고 놀다가 함부로 버릴 뿐이야.’임지영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그의 품속에서 벗어났다.“그럴 필요 없어요. 만약 걱정 된다면 한 달 후에 병원에서 검사할 수 있어요.”임지영이 반항할 줄 생각지도 못했던 고현은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 눈 밑에는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분위기가 얼음처럼 굳어질 무렵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마침 송연아가 걸어온 전화였다.임지영은 이 틈을 타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차분하게 말했다.“삼촌, 먼저 일 보세요. 저는 그만 갈게요”미련 없이 돌아서는 임지영을 보고 고현의 그윽한 눈빛은 그녀의 뒷모습에 고정된 것처럼 변하지 않았다.휴대전화가 한참을 울려서야 고현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고현 씨, 기자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요.”송연아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곧 갈게.”고현이 떠나는 낌새를 눈치챈 임지영은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황급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였다.‘삼촌을 이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건 송연아뿐이야.’임지영은 쌀쌀하게 웃으며 떠나갔다.한편.송연아는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앞에서 지나가는 커플의 대화를 들었다.“대표님이 이렇게 마음이 급한 줄 몰랐어. 수림에서 막... 하지만 그 여자가 누구일까? 그렇게 지켜줄줄
시선을 알아차린 임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고현이었다.차가운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이마 모서리에 닿아 있고, 핏빛 반지가 햇빛 아래서 핏기 어린 냉기를 띠고 있다.그의 몸은 송연아에게 기대어 있었는데 송연아는 무슨 말인가 하는 듯 가까이 다가섰고 고현의 표정도 부드러웠다.임지영은 시선을 거두며 짐짓 담담하게 손을 놓았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남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며 말했다.“고현 씨죠? 약혼녀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나 봐요. 직접 데려다주다니.”‘그렇겠지.’고현의 송연아에 대한 편애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유독 전생의 그녀만 바보처럼 그를 기다리고 사랑했다.임지영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류하가 끌어갔다.“만났으니 빨리 가서 삼촌에게 인사드려.”“안 가요.”임지영은 손을 뿌리치고 떠나가려 했다.“이 녀석이...”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연아의 느닷없는 목소리에 끊겼다.“둘째 사모님, 지영아, 우연이네요. 이분은...”송연아는 고현의 팔짱을 끼고 임지영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훑어보았다.류하는 원래 송연아가 여우 년이라 여겼는데 고씨 가문에서 소란을 피운 후 송연아에 대한 불만이 더 커졌다.그녀는 남자 곁으로 다가와 자랑스럽게 말했다.“조씨 가문 도련님 조권 씨예요. 외모나 능력이 뛰어나 우리 모두 마음에 들어요.”‘우리’라는 두 글자는 의미심장했다.임지영은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고 순간 마주 보는 눈빛이 어두워졌다.조권은 예의를 갖춰 한걸음 나서 인사했다.“고현 씨.”고현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임지영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입꼬리를 씩 올리고 가벼운 비웃음을 지었다.“우리요?”그러고 나서야 의미심장하게 조권을 바라보며 말했다.“출중하네요.”임지영은 등이 뻣뻣해졌는데 손에 온통 식은땀이 났고, 가볍게 한 말인데 치명적인 재난을 당한 듯 숨 막힘이 느껴졌다.송연아는 조권을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남자는 고현 앞에서 개뿔도
조권에 의해 뒤로 끌려간 임지영은 의식이 흐려질 때 주먹을 불끈 쥐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며 정신을 다잡았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구해야 했다.임지영은 문고리를 잡고 몸을 가누며 도망칠 기회를 탐색했는데 센터 콘솔의 크리스털 장식품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하지만 그녀가 손을 뻗었을 때 거리가 조금 부족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조권의 힘에 저항하며 손끝을 조금씩 수정 장식품으로 향했다.미끄럼 방지 매트에서 잡아 올리는 순간 그녀는 뒤로 힘껏 내리쳤다.쿵 소리와 함께 조권은 끙끙거리더니 임지영에게서 손을 떼었다.임지영은 그 틈을 타 차 문을 눌러 잠금을 해제했고 허둥지둥 차 안에서 나왔다.가을밤, 달빛은 무르익었지만 바람은 마치 예리한 칼처럼 임지영의 몸을 매섭게 스쳐 갔다.그녀는 힘겹게 앞으로 달렸다.막 두 걸음을 뛰었을 때,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목을 조르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반항했지만 그에게 붙잡혀 차 문에 머리를 부딪쳤다.한바탕 현기증이 난 그녀가 아래로 쓰러지자 조권은 내친김에 그녀를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차 문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이마의 피를 마구 닦던 그의 눈에는 이전의 부드러움과 자상함이 사라진 채 이를 갈며 한마디 했다.“네가 예쁘지 않았다면 너랑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았을 거야.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는 건 침대를 묵인했다는 건데 지금 가려는 거야? 날 놀리는 거야?”이대로 쓰러지고 싶지 않았던 임지영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조권의 접근을 막았다.그러자 조권은 그녀의 발목을 덥석 잡아 하이힐을 벗기고 발등을 따라 조금씩 위로 쓸어올렸다.임지영은 갑자기 살갗에 뱀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 오한을 느꼈다.그녀는 자신의 두 발을 빼려고 몇 번 발을 걷어찼지만 오히려 조권에게 두 다리를 벌리는 기회를 주었다.조권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임지영의 두 다리에 몸을 밀어붙이고 치맛자락 밑의 살갗을 더듬었다.그는 즐기듯 임지영의 몸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향긋하고 부드러웠다.임지영은 매우 아
임지영이 깨어났을 때 침대 옆에는 제복을 입은 여경이 앉아 있었다.그녀가 살며시 웃으니 순간 마음이 안정되었다.“깼어요? 물 마실래요?”여경이 일어나 그녀에게 물을 한 잔 따랐다.“임지영 씨는 피부 외상이니 괜찮아요.”“감사합니다.”임지영은 몸을 일으켜 잔을 받았다.아직도 그녀는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여경은 그녀를 바라보며 바로 묻지 않았다가 점차 진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물었다.“조권 씨도 괜찮아요. 두 사람이 하는 얘기가 달라서 임지영 씨의 진술이 필요해요.”임지영은 물을 마시다가 멈칫했다.“얘기가 다르다니, 무슨 뜻이죠?”이렇게 뻔한데 왜 얘기가 다르다는 걸까?여경은 솔직히 말했다.“조권 씨가 술을 많이 마셔서 갑자기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외국의 정신감정서를 내밀었는데... 임지영 씨가 자발적으로 자신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갔기 때문에 임지영 씨가 자신과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대요.”임지영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가슴이 아파졌다.“상대방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묵인하는 것일까요? 어디 규정이래요? 전 거절했어요!”“임지영 씨, 조권 씨가 그러는데 지영 씨의 어머니도 동의하셨대요.”여경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임지영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여경은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위로했다.“지금 임지영 씨의 증언이 중요해요. 우리가 반드시 조사해 낼게요.”임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조권의 차가 개조된 것이고 이번이 결코 처음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여경은 일일이 메모를 한 뒤 물었다.“더 추가할 게 있어요?”임지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천천히 한 마디 내뱉었다.“고현 씨, 송연아, 그들이 보았어요.”여경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난감한 기색을 띠었다.임지영은 황급히 따져 물었다.“무슨 문제 있어요?”여경은 녹취록을 덮고 눈살을 찌푸렸다.“물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