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영의 심장이 세차게 뛰며 튀어나오려고 하던 찰나 고현이 고개를 돌려 나무 뒤에 있는 커플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싸늘한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고현임을 알아본 커플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저희는 바로 가겠습니다.”이 커플이 빠른 걸음으로 떠나자 임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현을 밀쳤지만 오히려 손목이 잡혔다.“짐을 챙겨 나와. 진성이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널 아파트까지 데려다줄 거야.”나지막하게 말했지만 의논할 여지 없는 명령 어조였다. 몸이 굳어진 임지영은 긴 속눈썹을 떨며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삼촌의 마음속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말을 잘 듣는 인형만 원할 뿐인데 말을 잘 들을수록 마음대로 갖고 놀다가 함부로 버릴 뿐이야.’임지영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그의 품속에서 벗어났다.“그럴 필요 없어요. 만약 걱정 된다면 한 달 후에 병원에서 검사할 수 있어요.”임지영이 반항할 줄 생각지도 못했던 고현은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 눈 밑에는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분위기가 얼음처럼 굳어질 무렵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마침 송연아가 걸어온 전화였다.임지영은 이 틈을 타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차분하게 말했다.“삼촌, 먼저 일 보세요. 저는 그만 갈게요”미련 없이 돌아서는 임지영을 보고 고현의 그윽한 눈빛은 그녀의 뒷모습에 고정된 것처럼 변하지 않았다.휴대전화가 한참을 울려서야 고현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고현 씨, 기자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요.”송연아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곧 갈게.”고현이 떠나는 낌새를 눈치챈 임지영은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황급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였다.‘삼촌을 이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건 송연아뿐이야.’임지영은 쌀쌀하게 웃으며 떠나갔다.한편.송연아는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앞에서 지나가는 커플의 대화를 들었다.“대표님이 이렇게 마음이 급한 줄 몰랐어. 수림에서 막... 하지만 그 여자가 누구일까? 그렇게 지켜줄줄
시선을 알아차린 임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고현이었다.차가운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이마 모서리에 닿아 있고, 핏빛 반지가 햇빛 아래서 핏기 어린 냉기를 띠고 있다.그의 몸은 송연아에게 기대어 있었는데 송연아는 무슨 말인가 하는 듯 가까이 다가섰고 고현의 표정도 부드러웠다.임지영은 시선을 거두며 짐짓 담담하게 손을 놓았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남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며 말했다.“고현 씨죠? 약혼녀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나 봐요. 직접 데려다주다니.”‘그렇겠지.’고현의 송연아에 대한 편애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유독 전생의 그녀만 바보처럼 그를 기다리고 사랑했다.임지영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류하가 끌어갔다.“만났으니 빨리 가서 삼촌에게 인사드려.”“안 가요.”임지영은 손을 뿌리치고 떠나가려 했다.“이 녀석이...”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연아의 느닷없는 목소리에 끊겼다.“둘째 사모님, 지영아, 우연이네요. 이분은...”송연아는 고현의 팔짱을 끼고 임지영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훑어보았다.류하는 원래 송연아가 여우 년이라 여겼는데 고씨 가문에서 소란을 피운 후 송연아에 대한 불만이 더 커졌다.그녀는 남자 곁으로 다가와 자랑스럽게 말했다.“조씨 가문 도련님 조권 씨예요. 외모나 능력이 뛰어나 우리 모두 마음에 들어요.”‘우리’라는 두 글자는 의미심장했다.임지영은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고 순간 마주 보는 눈빛이 어두워졌다.조권은 예의를 갖춰 한걸음 나서 인사했다.“고현 씨.”고현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임지영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입꼬리를 씩 올리고 가벼운 비웃음을 지었다.“우리요?”그러고 나서야 의미심장하게 조권을 바라보며 말했다.“출중하네요.”임지영은 등이 뻣뻣해졌는데 손에 온통 식은땀이 났고, 가볍게 한 말인데 치명적인 재난을 당한 듯 숨 막힘이 느껴졌다.송연아는 조권을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남자는 고현 앞에서 개뿔도
조권에 의해 뒤로 끌려간 임지영은 의식이 흐려질 때 주먹을 불끈 쥐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며 정신을 다잡았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구해야 했다.임지영은 문고리를 잡고 몸을 가누며 도망칠 기회를 탐색했는데 센터 콘솔의 크리스털 장식품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하지만 그녀가 손을 뻗었을 때 거리가 조금 부족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조권의 힘에 저항하며 손끝을 조금씩 수정 장식품으로 향했다.미끄럼 방지 매트에서 잡아 올리는 순간 그녀는 뒤로 힘껏 내리쳤다.쿵 소리와 함께 조권은 끙끙거리더니 임지영에게서 손을 떼었다.임지영은 그 틈을 타 차 문을 눌러 잠금을 해제했고 허둥지둥 차 안에서 나왔다.가을밤, 달빛은 무르익었지만 바람은 마치 예리한 칼처럼 임지영의 몸을 매섭게 스쳐 갔다.그녀는 힘겹게 앞으로 달렸다.막 두 걸음을 뛰었을 때,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목을 조르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반항했지만 그에게 붙잡혀 차 문에 머리를 부딪쳤다.한바탕 현기증이 난 그녀가 아래로 쓰러지자 조권은 내친김에 그녀를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차 문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이마의 피를 마구 닦던 그의 눈에는 이전의 부드러움과 자상함이 사라진 채 이를 갈며 한마디 했다.“네가 예쁘지 않았다면 너랑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았을 거야.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는 건 침대를 묵인했다는 건데 지금 가려는 거야? 날 놀리는 거야?”이대로 쓰러지고 싶지 않았던 임지영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조권의 접근을 막았다.그러자 조권은 그녀의 발목을 덥석 잡아 하이힐을 벗기고 발등을 따라 조금씩 위로 쓸어올렸다.임지영은 갑자기 살갗에 뱀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 오한을 느꼈다.그녀는 자신의 두 발을 빼려고 몇 번 발을 걷어찼지만 오히려 조권에게 두 다리를 벌리는 기회를 주었다.조권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임지영의 두 다리에 몸을 밀어붙이고 치맛자락 밑의 살갗을 더듬었다.그는 즐기듯 임지영의 몸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향긋하고 부드러웠다.임지영은 매우 아
임지영이 깨어났을 때 침대 옆에는 제복을 입은 여경이 앉아 있었다.그녀가 살며시 웃으니 순간 마음이 안정되었다.“깼어요? 물 마실래요?”여경이 일어나 그녀에게 물을 한 잔 따랐다.“임지영 씨는 피부 외상이니 괜찮아요.”“감사합니다.”임지영은 몸을 일으켜 잔을 받았다.아직도 그녀는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여경은 그녀를 바라보며 바로 묻지 않았다가 점차 진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물었다.“조권 씨도 괜찮아요. 두 사람이 하는 얘기가 달라서 임지영 씨의 진술이 필요해요.”임지영은 물을 마시다가 멈칫했다.“얘기가 다르다니, 무슨 뜻이죠?”이렇게 뻔한데 왜 얘기가 다르다는 걸까?여경은 솔직히 말했다.“조권 씨가 술을 많이 마셔서 갑자기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외국의 정신감정서를 내밀었는데... 임지영 씨가 자발적으로 자신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갔기 때문에 임지영 씨가 자신과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대요.”임지영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가슴이 아파졌다.“상대방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묵인하는 것일까요? 어디 규정이래요? 전 거절했어요!”“임지영 씨, 조권 씨가 그러는데 지영 씨의 어머니도 동의하셨대요.”여경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임지영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여경은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위로했다.“지금 임지영 씨의 증언이 중요해요. 우리가 반드시 조사해 낼게요.”임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조권의 차가 개조된 것이고 이번이 결코 처음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여경은 일일이 메모를 한 뒤 물었다.“더 추가할 게 있어요?”임지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천천히 한 마디 내뱉었다.“고현 씨, 송연아, 그들이 보았어요.”여경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난감한 기색을 띠었다.임지영은 황급히 따져 물었다.“무슨 문제 있어요?”여경은 녹취록을 덮고 눈살을 찌푸렸다.“물었는데
고재호는 원래 짜증이 났는데 아들이 못난 걸 보니 더 화가 치밀었다.그는 고성민의 머리를 때리며 호통쳤다.“내가 어떻게 너 같은 쓸모없는 아들을 두었지? 머리도 없어! 여자한테 끌려 생각도 없어! 네가 조금이라도 총명했다면 오늘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야!”고성민은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문고리를 잡은 임지영은 손을 놓았다. 이렇게 나가면 고성민의 체면만 깎일 뿐이다.아저씨는 그녀에게 항상 잘해 주셨는데 그녀는 차마 나갈 수 없었다.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차갑고 쓸쓸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왔는데 침착하고 준수한 얼굴에는 조금도 동요가 없고, 눈 밑에는 냉기가 서려 있다.“아버지, 조권은 괜찮아요. 둘째 형을 욕하는 건 의미 없어요.”“어디 욕만 하겠느냐? 지금 조씨 집안에서 이런 더러운 일이 알려지면 우리 고씨 가문의 체면을 어디에 두겠어? 이러니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화근까지 들여 온통 남자한테 치근덕거리는 일만 하다니!”고재호는 정색하고 류하를 힐끗 쳐다보며 뜻이 분명했는데 화근은 임지영이라는 말이다.류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반박하고 싶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고현은 냉랭한 기색으로 침착하게 말했다.“이 일은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임지영이 합의하려고 하면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조사하게 될 텐데 조권은 탈탈 털리게 될 것이고 때가 되면 우리가 그들과 협력하려 해도 그쪽에서 협력을 부탁해야 할 거예요.”이 일은 똑똑한 사람이라면 듣자마자 조권이 여러 번 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계속 조사하면 조권은 머리가 깨지는 정도로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조씨 가문 사람들도 모두 따라서 화를 입을 것이다.조씨 가문이 조권이 맞은 것을 빌미로 떠드는 것은 협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사업상의 일은 이야기하기 쉽다.고재호는 만족스럽게 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해.”고성민은 주먹을 불끈 쥐며 반박했다.“안 돼요. 그 짐승한테 당할 뻔했는데... 지영이에게
경찰의 업무 처리 효율은 매우 높았다. 임지영이 먼저 합의를 승낙하자, 뒤이어 그들이 합의서를 가지고 왔다.그중 한 명은 임지영에게 자백을 받아낸 여경이었다.그녀는 호의적으로 귀띔했다.“생각 잘하신 거죠?”임지영은 펜을 잡은 손을 살짝 떨며 대답했다.“잘 생각했어요. 이렇게 해요.”그녀는 지금 다른 사람의 손의 개미일 뿐이니 어쩌겠는가.후회할 틈을 주지 않고 임지영은 재빨리 서명했다.여경이 한숨을 쉬며 합의서를 들고 가자 류하는 도시락을 들고 병실로 들어갔는데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안해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지영아...”“다 알아요. 아저씨는 괜찮아요?”임지영이 물었다.류하는 눈물을 닦고 나서 죽을 덜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괜찮아. 조금 혼났어. 어르신 성격을 너도 알잖아. 다 조권 탓이야. 나쁜 놈!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이런 사람이라니.”임지영은 힘겹게 한마디 뱉었다.“엄마, 저 시집가기 싫어요.”류하는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어쨌든 지금 여론이 송연아를 향하고 있어 우리와는 상관이 없어. 시집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마. 가족들이 볼 때 네가 시집가지 않는 게 넘보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마음을 품었을까 걱정해서 그래.”말을 마치자 그녀는 죽을 임지영에게 내밀었다.입맛이 없었던 임지영은 류하의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엄마, 무슨 여론이 또 돌고 있어요?”“인터넷에 드디어 눈이 뜨인 사람이 생겼어. 송연아가 결혼을 강요하려고 해서 이렇게 큰 소동을 피운 거래. 지금은 모두 송연아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욕하는 사람들뿐이야. 송연아가 고현 씨와 함께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질투를 일으켰는지 몰라. 지금 약점이 잡혔으니 혼내지 않겠어? 내가 그랬지? 송연아는 여우 같은 년이라고.”류하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임지영은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휴대전화를 들고 인터넷을 살폈다.그리고 정말 많은 네티즌이 송연아는 조심성이 없고 시집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비하하고
이른 아침 대학교 문 앞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피곤한 임지영은 고현에게 끌려 차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눈을 들어보니 그제야 고현이 고양이 놀리듯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치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의 시선을 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피곤한 임지영은 아예 팔을 늘어뜨렸다. 고현은 그녀를 앞으로 끌어당긴 후 고개를 들어 올리며 빨갛게 된 이마를 만져주었다.“기억력은 여전히 안 좋은가 봐. 왜 퇴원했어?”고현이 무심코 말하는 모습은 마치 병원 밖에서 화해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그가 아닌 것처럼 편해 보였다.임지영은 두 생을 함께 했어도 여전히 알아볼 수 없는 고현을 뚫어지라 쳐다봤다.임지영이 말하지 않자 고현은 그녀의 턱을 힘껏 움켜줬는데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듯 마음대로 다루는 것 같았다.굴욕을 느낀 임지영은 그의 손을 깨물며 힘껏 때렸는데 이 ‘퍽’ 하는 소리는 조용한 차 안에서 요란하게 울렸다.삽시에 차 안 전체가 조용해졌고 고현의 하얀 손에는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났다.임지영은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삼촌,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바쁘신데 방해하지 않을게요.”말을 마친 임지영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으나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에는 잠금이 걸렸다.차 밖에서 차 문이 잠긴 소리를 들은 진성은 눈치 빠르게 몸을 돌렸다.밀폐된 공간에서 임지영은 문득 조권에게 몸이 눌린 굴욕적인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고현은 자리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는데 곧 차 안에는 자옥한 안개가 피어올라 그의 안색을 알아볼 수 없게 했다.“제가 아니에요.”임지영이 어쩔 수 없는 말투로 반박했다.“증거.”“...”그녀에게는 증거가 없었다.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고현의 방에 나타났는지도 몰랐다.그리고... 결국 그녀도 거절하지 않았다.임지영의 사랑과 안타까운 심정은 결국 그녀를 겨냥하는 화살로 변해버렸다.고현은 연기를 내뿜으며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임지영은 억지로 고현을 따라 송연아의 아파트에 왔다.갓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바닥에는 핏자국이 보였고, 문에는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모든 것이 매우 놀라웠다.임지영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고현은 아파트로 뛰어들었는데 곧 남자의 비명과 송연아의 울음소리가 함께 들려왔다.“고현 씨! 나 너무 무서워요! 무서워요...”흐느끼는 소리에 정신을 되찾은 임지영도 재빨리 오피스텔에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손에는 비수를 쥐어 든 채 험상궂은 표정으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보였다.맞은편에서 송연아는 피를 흘리는 팔을 감싸며 고현에 품에 나른하게 안겨져 있었는데 예쁜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남자는 아직도 송연아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천한 년! 어차피 침대에 잘 기어오르는 주제에 내가 놀면 왜 안 돼? 넌 원래 천한 년이야!”송연아는 흐느끼며 말했다.“난 아니야... 아니야...”남자는 낄낄거리며 웃었다.“장난치지 마. 인터넷에 다 떴어. 누군가가 그러는데 넌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자고 매일 너의 방을 들락날락하는 남자가 수없이 많다고 했어. 고상한 척하기는!”송연아는 고현의 옷깃을 잡으며 놀란 듯 말했다.“너, 너... 감히 날 감시해? 내 방을 드나드는 사람은 고현 씨 밖에 없는데 왜 나를 모함해?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있어 다 찾아볼 수 있어!”남자는 눈빛이 굳어지더니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고현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진성.”진성은 쏜살같이 나타나서 남자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의 얼굴을 바닥에 눌렀다.“말해, 누가 보냈어?”남자는 입이 무거웠는데 피를 뱉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지영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남자의 시선이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아마 전생에 너무 많은 걸 당했는지 임지영은 높은 경각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남자의 시선을 보는 순간 임지영은 아불싸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가방끈을 꼭 잡고 저도 모르게 고현을 보았다.고현은 보물을 다루듯 송연아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