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영을 사랑하는 류하와 고성민이 이 소식을 알고 준비해줄까 봐 일부러 공모전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이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줄 사람은 단 한 명뿐인데 바로 고우진이다.어제 고우진은 특별히 전화해서 응원했는데 오늘은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줬다.룸메이트들이 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자줏빛을 띤 실크 롱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가슴 부분에는 수제로 구슬을 박았는데 크기가 들쭉날쭉한 구슬들이 조명 아래에서 영롱하고 은은한 광택을 보였다.허리부터 아래까지는 두 겹의 엷은 실크로 만들어졌는데 옅은 색과 짙은 색을 오묘하게 결합해 몽환적인 색상을 표현했다.“와, 이 드레스는 기숙사의 조명에서도 이렇게 빛나는데 무대에 서면 얼마나... 반짝일까?”김지민이 개그맨처럼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웃을 시간이 없어. 빨리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도 해야 해.”“...”한 시간 후, 치장을 마친 임지영은 인형처럼 룸메이트들에게 보였다.“너무 예뻐. 지영아, 여자인 나도 너에게 반할 것 같아.”“지영아, 하이팅. 넌 우리 과에서 1등이야.”“지영아, 우린 널 믿어.”임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를 걸치고 출발했다.룸메이트들은 현장에 가고 싶었지만 갓 인턴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도저히 휴가를 낼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격려를 받은 임지영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40분 후에 공모회장에 도착했다.이번 신인 디자인 공모전에서 한 심사위원은 국내에서 이름난 디자이너인데 그녀의 스튜디오는 국내외에서 매우 유명했다.이번 공모전에서 1등 하면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은 햇병아리가 대선배에게 직접 배울 기회이니 일반 인턴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이번 공모전은 크게 열렸고 기자도 유달리 많았다이때 송연아와 고현이 인터뷰를 받고 있었다.송윤아는 큐빅이 박힌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고현의 옆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도도한 공주 같았다.늘씬한 고현은 여전히 검은색 양복을 입었고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준수했
규정에 따르면 화장장에서 가족은 화장 과정을 볼 수 없다.임지영은 돈을 들여 차가운 철침대를 짚고 화장터로 들어갔다.공기 중에는 뜨거운 기운이 맴돌았고 햇빛에 재가 날리는 것도 보였는데 어쩌면 유골일지도 모른다.곧 그녀의 아이도 이렇게 될 것이다.임지영은 블랙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초췌한 몸매를 감추지 못했다.빨갛게 부어오른 두 눈은 지금 이 순간 유난히 차분해졌다.그녀는 손을 뻗어 흰 천 아래의 창백하고 뻣뻣한 작은 손을 만져보고 딸의 손에 분홍색 종이로 접은 별을 두 개 넣었다.“별아, 엄마 기다려.”시간이 되었다.화장장 직원이 다가가 임지영을 밀어내고 흰 천을 들치자 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여덟 살이 됐는데도 앙상하게 여위어 있었고 뚜렷한 갈비뼈 아랫부분이 움푹 패어 있었다.움푹 팬 곳을 노려보는 임지영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가 별이를 잘 지켜내지 못했다.화장장 직원들이 낮은 소리로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적어도 따님이 떠난 후 신장을 남겨 다른 아이를 구했잖아요. 그 아이가 따님을 대신해서 행복하게 살 거예요.”임지영의 눈 밑에 냉기가 감돌더니 피식 비웃었다.“그럼요. 그 아이는 제 남편의 사생아이고 지금 세 식구가 그 아이를 위해 성대한 생일파티를 벌이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은 내 딸의 생일이기도 해요.”직원들은 멍해져서 눈앞의 이 절망적인 여자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임지영은 별이를 바라보며 창백한 미소를 지었다.“태워요. 좋은 시기를 그르치지 말고. 내 딸이 다음 생에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직원들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고개를 저으며 시신을 소각로 앞에 내려보냈다.동정심 때문인지 직원은 그 과정을 가렸다.별이가 아픔에서 해탈되었다는 생각에 임지영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더는 별이의 아버지에게 매일 미움을 받을 필요도 없다.“엄마, 아빠는 왜 날 안 좋아해요?”“엄마, 아빠는 왜 연아 이모의 아들을 좋아하죠?”“엄마, 아빠는 나 때문에 엄마를 좋아하지 않
그녀가 돌아왔다!그녀가 뜻밖에도 돌아왔다!임지영은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힘껏 꼬집었다.아픔이 온몸을 휩쓸고 가자 그녀의 눈에는 순간 눈물이 가득 고였다.“울긴 왜 울어! 우리 고씨 너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야?”위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다가 고재호의 언짢은 눈빛을 마주했다.이내 고개를 숙인 그녀는 한결같이 얌전한 모습을 보였지만 몸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주위에서 가볍게 키득거리는 소리와 수군수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어린 나이에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고현에게 약을 먹여 침대에 오르게 했다고 소문이 자자해. 분명 고현을 협박해서 책임지려고 한 것인데 이제 와서 감히 인정하지 않는다니 집안 어른들이 어떻게 가르쳤는지 모르겠어.”“우리 가문이랑 어떻게 비교하겠어. 우리 고씨 가문에서는 이렇게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 나올 수 없어. 인터넷에서 저 여자가 고현이를 짝사랑하는 일기가 모두 공개됐는데 내용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래. 고씨 가문이 돈까지 주며 대학에 보냈더니 배은망덕하게 나오네.”“아무나 집에 데려오지 말라고 했잖아. 이건 분명 늑대를 끌어들인 거야. 분명 고현에게 바가지를 뒤집어씌운 건데 배운 건지, 아니면... 유전인지 알 게 뭐야.”말하면서 사람들은 구석에 서 있는 임지영의 어머니 류하를 향해 곁눈질했다.류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임지영을 힐끗 보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터질 정도로 깨물었지만 감히 한마디 대꾸하지 못했는데 이는 임지영의 신분이 너무 특별했기 때문이다.류하는 재가하면서 고씨 가문에 들어왔는데 어머니는 고현의 둘째 형에게 시집갔다.그래서 촌수로는 고현을 삼촌이라고 불러야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왜냐하면 그녀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전생에 임지영도 이들의 비난에 허리 숙여 사과하며 고현에게 약을 먹이고 침대에 오르게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묵인했다.나중에 임신해서 고현이 그녀와 결혼하도록 강
송연아,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딸.3년 전 고현은 송연아와의 연인 관계를 예고 없이 공개했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약혼식까지 열면서 송연아를 경성에서 가장 부러운 여자로 만들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아름답고 마음이 착하며 고귀하고 우아하다고 생각하지만 임지영만이 송연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디자이너가 아니었으면 그녀는 반드시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송연아의 계략을 임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고현의 혼기가 3년이나 늦어져서 고씨 가문에 시집가지 못할까 노심초사했다.아니나 다를까...송연아는 곧장 걸어 나와 임지영가 있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어르신, 접니다! 제가 지영이와 몸매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해서 오해를 받은 것 같아요.”말이 끝나자 옆에서 누군가 따져 물었다.“하지만 인터넷에 임지영의 짝사랑 일기가 올라왔는데, 어림잡아 5, 6년이 된 것 같았어. 너랑 고현이는 안 지 3년밖에 안 되잖아?”송연아는 진정성 있는 연기를 잘했다.“제가 먼저 고현 씨를 짝사랑했어요. 다 제가 쓴 일기인데 누가 들춰 냈는지 모르겠어요.”두 줄기의 맑은 눈물, 애틋한 눈빛, 볼의 홍조까지 지금 상황에 잘 맞았는데 누가 봐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전생에 참담하게 패배한 임지영은 담담하게 말했다.“삼촌이 연아 씨와 약혼한 지 오래됐으니 삼촌이 위험에 처했을 때 연아 씨가 도와준 것도 당연한 일이에요. 파파라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일부러 이런 기사를 낸 것 같아요.”주변에서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임지영은 이제야 전생에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를 깨달았다. 조심하며 열심히 살려고 애쓴 것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이런 한가한 어느 날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이곳에서 그녀는 매 순간이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임지영은 한발 물러서며 씁쓸하게 말했다.“이미 일이 밝혀졌으니 고씨 가문이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게요. 어르신, 여러분, 전 먼저 물러
고현의 싸늘한 눈초리에 임지영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하지만 전생 8년의 고통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끝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몰래 임신하려고?”임지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곁눈질로 류하를 힐끗 바라보았다.약은 류하가 샀는데, 설마 아직도 고현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못 버렸단 말인가.그러나 류하는 고현의 냉랭한 빛 속에서 이미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류하는 어르신보다 고현이 더 무서워하니 고현의 눈앞에서 손쓸 용기가 없을 것이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임지영은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방의 시선을 느꼈다.이들 중 한 눈빛이 유난히 특이했는데 바로 송연아였다.그녀의 입술은 웃는 듯 마는 듯하여 임지영은 좋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아니나 다를까 곧 송연아는 여러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임지영의 손을 잡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지영아, 미안해. 고현 씨와 할아버지를 속일 수 없어서 고백했어. 하지만 나를 이용해 여론을 무마하고 몰래 임신을 꾸밀 줄은 몰랐어. 내가 너를 위로하려고 갔다가 너의 계획을 듣지 않았더라면 너 오늘 성공했겠지? 만약 네가 정말 임신했다면 난 고현 씨랑 어떻게 해?”말을 마친 송연아는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사람들은 송연아를 대신해 불평을 늘어놓으며 분노했다.“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아? 당연히 연아를 대체하고 싶은 거겠지! 지영이가 정말 임신하게 한다면 자식을 미끼로 고현이 결혼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 되면 우리 고씨 가문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질 거야.”누군가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내 평생 이렇게 상스러운 수단을 본 적이 없어. 다행히 연아가 똑똑해서 속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지영이 때문에 헤어지지 않았을까?”“고현아, 임지영을 남겨두면 안 돼.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사람들이 뱉은 말은 구구절절 날카롭게 임지영의 심장을 찔렀다.전생에서처럼 모두가 송연아를 감싸며 그녀를 한 푼
홀은 넓었지만 고현의 음침한 분위기가 극에 달해 모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었다.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화가 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그는 담뱃갑을 꺼내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불을 붙였다.흰 연기를 내뿜으며 그의 얼굴을 뒤덮자, 그는 이렇게 흐릿한 연기를 뚫고 임지영을 보며 알 수 없는 눈빛을 지었다.“꺼져”.그러자 고재호도 불쾌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류하는 황급히 임지영을 일으켜 세웠다.임지영은 손을 뿌리치고 홀에 똑바로 서서 또박또박 말했다.“여기에 있는 것이 불편하니 지금 당장 떠날게요. 할아버지, 여러 해 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녀는 가더라도 떳떳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다시는 전생처럼 소심하고 겁먹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 임지영은 말을 마치고 나서 돌아서서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에 떨어진 고현의 눈빛은 위험하고 매서웠다....홀을 나서자 피임약 여러 알이 가져온 위장 반응이 몰려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임지영은 몇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는데 기절해 버렸다.임지영은 깨어나자 류하가 침대 옆에 앉아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걸 보았다.그녀가 깨어나니 다가와서 따귀를 때렸는데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간지럼 태우는 것 같았다.“날 놀라게 하려는 거지? 그 약을 함부로 먹어도 되는 거야?”“엄마, 소용없어요. 제가 그 약을 먹지 않으면 평생 고씩 가문을 벗어날 수 없어요.”임지영이 허약하게 말했다.“너... 팔자가 사나워. 일찍 부잣집 자식을 만나 시집을 잘 가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었지?”류하가 타일렀다.“엄마처럼요?”이게 어디 편안한 삶이란 말인가?류하는 말을 하려다가 그쳤다.그때 문이 열리며 고성민이 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깨어났으면 죽이라도 조금 마셔.”고맙다고 말하려던 순간 임지영은 고성민의 귀가 찢어진 것을 발견했는데, 긁힌 자국으로 보아 무슨 날카로운 물건에 맞은 것 같았다.분명 고재호의 짓일 것이다.그는 줄곧 그들을 사람 취급 하지 않았고, 둘째 아들이
‘어젯밤이라고?’임지영은 확실히 많은 말을 했다.고현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차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순종했다.감정이 깊어질 때 그녀는 남자가 괴롭히다시피 자극하는 유혹을 참으며 진지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아마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괜찮아, 난 기억했고 당신과 가까이했었어.’“삼촌, 삼촌을 좋아하고, 좋아한 지 오래요. 제가 고씨 가문에 왔을 때 삼촌이 저를 곤경에서 구해줬고 그때부터 몰래 삼촌을 지켜봤어요. 삼촌이 저를 신경 쓰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난... 음... 정말... 사랑해요.”임지영은 16살 때 고씨 가문에 왔다. 그때 류하는 그녀를 마치 공물을 바치는 인형처럼 꾸며줬다.당시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되는 미니멀한 옷차림을 몰랐던 류하는 딸을 예쁘게 꾸며서 고씨 가문에 데려가려고 했으나 공교롭게도 웃음거리가 됐다.모두 임지영을 봉황을 쫓는 닭에 비유하며 비웃었으나 겁이 많은 류하는 하인조차 반박하지 못했다.이때 고현이 나타났다.훤칠한 키에 검은색 롱 코드를 입은 그는 현관에 서서 손에 담배를 쥐고 연기를 내뿜었다. 하얀 연기는 그의 얼굴을 몽롱하게 가렸으나 그의 등 뒤에서는 흰 눈이 쏟아졌다.그저 담담하게 서 있었을 뿐이지만 위험해 보여 가정부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해 23살밖에 안 된 그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였지만 이미 경성에서 소문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하게 할 만한 ‘대표님’이었다.그는 임지영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네.”임지영은 이 세글자를 오랫동안 기억했다. 그 때문에 그날 고현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몇 년이 지났어도 그녀는 여전히 똑똑히 기억했다,나중에 우연히 삼촌을 만날 수도 있었다.봄날의 화원, 반에서 등수가 떨어져 애타게 울고 있을 때 정자에 기대에 담배를 피우던 그는 시험지를 힐끗 보며 말했다.“미련하군. 펜을 가져와.”여름의 수영장, 고현은 수영을 배우려다 다리에 쥐가 난 그녀를 구해주려고 수영장에 뛰어들었고 사지가 부실하다고 말했다.가을 거
임지영이 고현의 새 양복에 토하자 그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마침내 다 토한 임지영은 온몸이 나른해져 차에 기댔는데 진성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대표님, 제가 부축할게요.”고현은 아예 외투를 벗어버렸다.“괜찮아.”고현은 얄미운 눈빛으로 임지영을 바라봤지만 그래도 그녀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곧장 욕실로 향했다.싱크대에 걸터앉은 그는 손을 들어 구토물에 범벅이 된 그녀의 옷을 벗겼다.“안돼요! 안돼요!”임지영은 그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허약한 그녀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고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옷을 다 벗겨버리자 어젯밤의 흔적이 불빛에 그대로 드러났다.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던 임지영은 손을 들어 고현의 눈 앞을 가렸지만 그에게 손목이 잡혔다. 그의 뜨거운 손바닥이 몸에 닿자 임지영은 고개를 쳐들었는데 마침 고현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고현은 임지영에게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무릎을 벌리더니 그녀의 몸에 밀착했다.임지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거부했으나 고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세면대에 놓은 수건을 들고 손을 닦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난 방금 토한 여자에게 흥취가 없어.”이 말을 들은 임지영은 막 숨을 돌리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진 듯 곧장 고현의 가슴에 쓰려졌다.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허약해 보이는 임지영을 보고 고현이 물었다.“위가 아직도 불편해?”고개만 끄덕일 뿐 말조차 하지 못하는 임지영을 보며 고현이 낮은 소리로 불평했다.“쓸모없어.”임지영은 어지럽고 메스꺼워 몸이 아래로 처지는 것만 같아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현이 잘 대해주기를 바라지 않지만 임지영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문득 임지영은 얼굴이 뜨거워지며 따뜻한 수건이 그녀의 얼굴과 몸을 스쳐 지나갔는데 이 따뜻한 온기에 임지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꿈틀댔다.갑자기 손동작이 멈추더니 그녀의 정수리에서 냉랭한 말소리가 들려왔다.“오늘은 봐줄게.”곧 임지영은 몸이 가벼워지더니 고현에게 안겨 침대로 옮겨졌다.정신을 차렸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