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불빛 아래 고다정은 큰 눈을 부릅뜨며 눈앞에 있는 그 말도 안 되게 잘생긴 여준재의 외모에 푹 빠졌다.그 시각, 둘 사이의 거리는 무척 가까웠고, 공기 중에는 고다정이 금방 먹은 과일주 냄새와 그녀만의 특유의 살 냄새가 풍겼다.여준재 또한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며 끓어오르는 충동을 억제하고 있었다.그 순간 고다정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리더니 여준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진짜 예쁘게 생겼네. 어떻게 나보다도 더 예쁘지? 사람이 이렇게 예쁘게 생길 수 있어요?”그러고는 여준재의 이마에서부터 턱까지 손이 내려갔다. 그 상황으로 보아서는 아마 더 아래로 내려갈 듯한 기세였다.그녀의 손이 흰색 셔츠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갑자기 여준재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러고는 약간의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가만히 있어요. 안 그러면 나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요.”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고다정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뭔 짓을 할 수 있는데요?”“내가 뭔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죠.”고다정의 도발에 여준재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 깔끔하게 몸을 뒤집어 조금 전의 자세에서 남자가 위에 있는 자세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위에서 품속에 있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고다정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여준재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순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녀의 그런 눈빛에 여준재는 조금 전까지 들었던 생각이 말끔히 사라지며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결국, 그는 좌절감에 고개를 숙인 채 고다정의 턱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지금 다정 씨에게 마음이 약해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거죠?”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에게 되돌아오는 건 고다정의 괴로움에 호소하는 소리였다.게다가 고다정 또한 여준재가 조금 전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여준재는 그녀가 아파하는 소리에 바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러고는 그녀의 턱
이튿날 아침, 고다정은 술에서 깼지만,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파 났다.하지만 그것보다 더 쪽팔리는 일은 어제저녁 자신이 여준재에게 한 모든 언행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할수록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는 여준재에게 구라쟁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턱이 물린 후, 마치 쓰다듬어 달라고 들이대는 고양이처럼 그에게 턱도 내주었으니 말이다.“아, 술이 문제야. 다음부터는 집에서라도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네!”고다정은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진정하려고 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붉어져 있었다.이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문밖에서는 여준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선생님, 일어났어요?”“아니요, 그러니 문 그만 두드려요!”고다정은 자신의 답한 게 얼마나 멍청한 대답인지를 인지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어서 그녀는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그러니까 제 뜻은 저 조금 더 잘 거니까 저 신경 쓰지 말라고요.”그 말을 남긴 뒤 그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침대로 돌아가 조금 전 그 멍청한 대답을 피하고만 싶은 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문 앞의 여준재는 잠시 멈칫하더니 방문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는 고다정의 현재 기분이 어떨지 눈치채고는 사려 깊게 답했다.“그럼 좀 더 자요. 저 사람 시켜서 해장국이랑 아침밥 데워놓으라 할게요. 일어나서 먹기만 하면 될 거에요.”그가 말을 마친 뒤에도 방안에서는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하지만 여준재는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 있는 두 아이와 강말숙은 그가 혼자 내려오는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아저씨, 엄마는요?”“너희 엄마 조금 더 자고 싶대. 일단 우리끼리 먼저 아침 먹자. 이따 아저씨가 학교로 데려다줄게.”여준재는 웃으며 설명해줬다.두 아이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얌전히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다.30분 뒤, 두 아이는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빌라를 떠났다.할머니는 눈인사로 그들을 보낸 뒤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
“어르신, 어쩐 일이세요?”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신수 노인이 단도직입적으로 답했다.“다른 게 아니라 내 오랜 친구가 중병에 걸렸어. 그래서 내가 한번 가서 봐줬으면 하는데 나도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이참에 너도 같이 가서 봐줬으면 하는데, 너 시간 괜찮니?”“당연하죠.”고다정은 망설임 없이 그 말에 승낙했다.잘 알아야 할 게 그녀는 신수 어르신의 보살핌 덕분에 오랫동안 운산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이어서 고다정이 되물었다.“그럼 일단은 만나서 같이 가는 거예요? 아니면 주소를 저한테 보내주시는 거예요? 주소 보내주면 제가 그 주소대로 갈게요.”그 질문에 신수 노인은 바로 대답해주지 않고 그녀에게 설명했다.“그게 내 친구가 진성 시에 있거든. 거기서 하루 자고 와야 하는데 너 괜찮니?”“네, 문제없어요.”고다정은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 아니라는 듯 답했다.때마침 이 기회를 빌려 여준재와 잠시 떨어져 지내면서 할머니가 했던 그 말들도 잘 생각해보려 했다.신수 노인은 그녀의 승낙에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내가 지금 너 데리러 갈게. 그리고 둘이 같이 진성으로 가면 될 거야.”“네, 알겠어요. 근데 그 친구분 병세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필요한 약재가 있으면 준비도 해갈 겸요.”고다정은 바로 업무 상태로 빠져들었다.신수 노인도 속일 거 없이 그가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부 말해주었다.전화를 끊은 뒤, 고다정은 도우미한테 정원으로 가서 할머니를 찾아오라고 알린 뒤, 위층으로 올라가 짐과 약재를 싸기 시작했다.몇 분 후 강말숙이 고다정을 찾아왔다. 그녀는 고다정의 발 옆에 놓인 트렁크를 보며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신수 어르신이 친구분을 치료하기 위해 저보고 같이 가자고 초대해주셨어요. 그 장소가 진성인지라 거기서 하룻밤 자고 올 거예요. 그러니 오늘과 내일 할머니 혼자서 집 봐줘야 할 거 같아요.”고다정은 사실대로 일의 자초지종에 관해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강말숙 또한 별문제 없이 동의했
그 질문에 고다정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여준재가 빌라에 같이 살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에게 방 하나를 남겨주었고, 만약 같이 산다고 하면 이걸 어떻게 설명해나가야 할지 곤란했다.고다정은 일부러 신수 노인의 그 예리한 질문을 피해 대화 주제를 돌려보았다.“이럴 게 아니라, 저희 어르신 친구분 병세에 대해 얘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그 모습에 신수 노인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 답했다.“보아하니 내가 말한 게 틀린 말은 아닌가 보네. 그럼 둘이 같이 살면서 왜 진지하게 만나지는 않는 거야?”“...”그 말에 고다정은 난처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외할머니뿐만 아니라 어르신까지 그녀와 여준재 일에 대해 이렇게나 호기심이 많다니?그녀가 하는 수 없이 대답하려던 찰나 신수 노인이 이어서 말했다.“준재 그놈이 책임을 안 진다기에는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내가 봤을 땐 네가 문제인 것 같은데.”“제 문제 맞아요. 저 아직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저와 여 대표님 사이의 일 또한 어르신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저희 사이에 또 많은 일이 엮여 있거든요.”고다정이 다소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그 모습에 신수 노인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참지 못하고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너와 준재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인생에 후회 남길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아무리 큰 문제라도 해결방법은 있을 거니까 언제나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눈앞에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거고.”그 말에 고다정은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신수 노인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눈앞에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라...그녀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깊게 감명받았다.그날 저녁, 여준재는 퇴근 후 빌라에 도착했다.큰 대문에 들어서 보니 아이들은 두 마리 야옹이와 마왕이를 데리고 정원
신수 어르신의 그 말에 실내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랐다. 거기에 고다정까지도 말이다.그녀는 당황한 듯 신수 노인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조수로 온 거잖아요. 같이 어떻게 치료할지 방법을 생각해보자면서요? 왜 갑자기 저 혼자 치료하는 거로 됐어요?”“그렇게 안 말하면 네가 따라오지 않을 거잖니?”신수 노인은 두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그 모습에 고다정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이때 갑자기 웬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르신, 제가 어르신의 안목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 아가씨가 일단 보기에도 너무 젊은데 저희 할아버지 병을 고칠 수나 있겠어요?”그 젊은 여성은 원경하였다.그녀는 고다정과 같은 동성이라 그녀를 배척하려는 느낌인지, 아니면 고다정이 너무 예쁘게 생겨 알 수 없는 불친절과 질투심인지 알 수 없었다.원경하의 말에 원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그 뜻인즉 그들도 원경하의 말에 동의한다는 암묵적인 뜻 같았고, 고다정이 보기에도 젊어 보일 뿐만 아니라 별로 실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신수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약간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지만 고다정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녀의 의술을 의심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고다정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원경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저는 할아버지 손녀로서 할아버지가 질병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에요. 어르신이 오시기 전에도 저희는 이미 세계 최고의 의료팀을 집에 불렀지만, 여전히 할아버지 병을 고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그런 좋은 실력이 있어 저희 할아버지 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거든요.”그 말을 하면서 원경하는 오만하게 고다정을 쳐다봤다. 고다정의 체면을 그 자리에서 깎았으니 당연히 고다정이 화가 나 있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여기 이 아가씨가
남자의 말을 듣고도 고다정은 여전히 의혹이 가시질 않았다.하지만 남자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던 터라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던 그녀의 기분도 조금은 풀린 듯싶었다. 그리곤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동생분이 절 의심하실 수도 있죠. 신수 노인에 비하면 제 나이가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못하실 거예요.”Comment by 정승미: 조사 오류Comment by 정승미: 거예요, 거에요 구분 “다정 씨가 이해해 주셔서 저야 너무 고맙죠. 다정 씨가 저희 할아버지 좀 살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들어 자주 편찮으시거든요. 손주로서 할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Comment by 정승미: 가독성을 위하여 삭제하였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중복Comment by 정승미: 어역이 너무 낮아 수정하였습니다남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도 절박해 보여 고다정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일부러 능청스레 물었다.“제 의술이 부족해 할아버님의 병이 더 위중해 지실 수도 있잖아요?”Comment by 정승미: 허접하다상황상 어울리지 않습니다.“신수 노인의 안목을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다정 씨는 그런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다른 건 신경 쓰시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Comment by 정승미: 보건대문장 상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아 중의적인 표현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Comment by 정승미: 주체, 주어를 남용하지 않도록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꼭 확인해주세요말을 끝내며 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고다정의 눈빛에 맞섰다. 고다정은 살짝 의외였다. 마침 이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원경하가 화가 나 펄쩍 뛰었다. Comment by 정승미: ‘그러다’의 사용이 다소 어색합니다그녀는 고다정을 째려보며 급히 말을 이었다.“오빠, 진짜 이 여자한테 할아버지를 맡길 생각이야? 이 여자 말대로 진짜 할아버지 병이 더 위중해지면 어
신수 노인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고다정은 이미 진맥을 하고 있었다. 신수 노인은 방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어떠냐? 뭐 좀 알아냈느냐?”Comment by 만든 이: 진단해내다어색한 표현말소리를 들은 원가 노인과 원진혁은 신수 노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고다정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노인의 맥박에만 신경을 쏟았다. 고다정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신수 노인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Comment by 만든 이: 입을 닫았다더는 열지 않았다따페이 잘 맞춰주세요막 입을 떼려 하는 원가 노인에게도 조용히 하라고 사인을 보냈다.Comment by 만든 이: 에게도, 한테도 적절히 잘 섞어서 사용해야 합니다. 상황마다 어울리는 것으로요이렇게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고다정의 진단 결과만을 기다렸다.불빛 아래 고다정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찼다. 진중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그녀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가 흐르는 듯싶었다.원진혁은 고다정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약간의 설렘이 그를 감쌌다. 3, 4분쯤 흘렀을 때 고다정은 진맥을 멈추고 원가 노인의 팔목에서 손을 뗐다.“어떠냐?”신수 노인이 급히 물었다.원가 노인과 원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급함이 표정에 다 드러났다.Comment by 만든 이: 어색한 문장. 수정했습니다고다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Comment by 만든 이: 진맥을 마치고 처음 입을 연 거니까 ‘말을 이었다’는 적절하지 않습니다“오는 길에 말씀하셨던 것보다 더 심각하네요. 간의 염증이 이미 곪기 시작했고 벌써 폐까지 영향을 줘서 상황이 조금은 골치 아프게 됐어요.”Comment by 만든 이: 맞춤법Comment by 만든 이: 조사 누락“고칠 수는 있어요?”원진혁이 급히 물었다.고다정도 솔직히 대답했다.“고칠 수 있긴 하죠. 하지만 3일 내내 치료해야 해요. 침구와 한약 처방을 함께 진행해 어르신의 간에 있는 곪은 물을 체외로 배출해야
핸드폰을 받아 든 하윤이가 급히 물었다.“엄마, 분명히 하루만 지나면 온다고 해놓고 왜 갑자기 며칠이나 더 있어야 하는 거야? 하윤이가 엄마 보고 싶으면 어떡해?”“할아버지가 생각보다 더 아프셔서 며칠 더 있어야 해. 엄마가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하면 되지.”고다정의 자상한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하윤이는 속상했지만 더 떼쓰지 않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여준재는 고다정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하윤이가 너무 신나 하는 것 같아 조용히 기다렸다.하준이가 여준재의 표정을 보고는 뭔가 눈치챘는지 동생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어른스레 말했다.“됐어, 하윤아. 이미 얘기할 만큼 했잖아? 이제 아저씨 바꿔줘. 엄마는 아저씨가 보고 싶으실 거야.”“...”‘아니, 하나도 안 보고 싶어.’고다정이 속으로 부정했다.그러나 고다정은 여준재가 이미 핸드폰을 들고 있음을 눈치 챘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침묵이 흘렀다.핸드폰 너머로 이따금 들려오는 숨소리가 아니었다면 전화가 끊겼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적막이었다.장시간 침묵을 유지하던 고다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 여 대표님, 별일 없으시면 이만 끊습니다.”“누가 별일 없대요?”여준재의 특유의 저음이 들려왔다.‘볼 일 있는 사람이 말도 안 하고... 이 사람 괜찮은 거 맞아?’“대표님, 무슨 일이실까요?”“몸 잘 챙겨요. 누가 다정 씨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나한테 얘기하고요.”여준재가 짧게 당부했다.짧은 한마디였지만 심장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어색한 말투로 우물거렸다.“내가 뭐 애도 아니고.”여준재는 대답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뭐 아무튼 몸 잘 챙겨요.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요. 애들이랑 할머니는 나한테 맡겨요.”“알겠어요.”부자연스럽게 대답한 고다정은 누가 찾는다며 거짓말을 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정말로 밖에서 고다정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가의 하인이었다.“선생님, 도련님이 내려와서 식사하시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