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봤어요?”여인이 묻자, 남편이 제지했다.“우리 여기는 포도 농장이야. 뭘 봤다고 그래? 그냥 큰 포도 농장을 봤겠지!”강세헌은 여자의 말에서 포인트를 잡았다.‘뭘 봤냐고? 이 말은 여기에 보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포도 농장은 그냥 페이크일 뿐인가?’그런데 이 부부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면 강세헌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부부는 좋은 사람이다.“두 분이 저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만약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여인은 더는 말하기가 무서워 조심스레 남편의 옷을 당겼다. 눈빛으로 이 사람을 한번 믿어보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남편은 부인처럼 아무나 믿지 않고 신중했는데 아내에게 아무나 믿으면 안 된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바구니를 들고 말했다.“같이 나가자.”그는 강세헌이 도망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첫째로 이곳은 워낙 외진 곳이라 걸어서 나갈 수 없었고, 둘째는 강세헌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설령 눈이 멀쩡한 정상인이라도 길을 찾을 수 없는데 시각장애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강세헌이 한마디 더 했다.“최근의 뉴스를 한번 보세요.”부부는 고개를 돌려 강세헌을 한번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갔다. 여인은 남편을 따라 나갔는데 점심때 다시 돌아와서 저녁을 하곤 했다. 강세헌은 그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여인이 가져온 음식을 시름 놓고 먹었다.여인은 여느 때처럼 남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는데 남편이 포도나무 아래에 앉아서 포도를 먹으며 휴대폰을 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휴대폰은 일반적으로 그쪽 사람들과 연계할 때만 사용했는데 매번 남편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여인은 가슴을 졸였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인을 보고 남편이 손짓하자, 여인은 가까이 다가가서 음식을 내려놓았는데 안 좋은 소식이 있을까 봐 두려웠다. 그런 여인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남편은 여인을 옆에 앉으라고 하고 휴대폰을 보여줬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에 송연아의 표정이 희열과 격동으로 변했다.“세헌 씨?”이어서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세헌 씨 맞아요?”“응, 나 괜찮아.”송연아는 순식간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는지 힘없이 벽에 몸을 기대고 눈시울을 붉히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지금 어디예요? 그쪽으로 갈게요.”심재경과 임지훈도 소리를 들으려고 그녀 옆에 붙었다. 강세헌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나 여기에 일이 있는데 당신이 걱정할까 봐 전화하는 거야.”강세헌의 말에 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휴대폰이 끊어졌다. 송연아는 불안해하며 곧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가 들어가자마자 그쪽에서 바로 끊어버렸다.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심재경이 송연아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하지 마.”송연아가 물었다.“왜요?”“뻔하잖아. 지금 세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일 거야. 만약 자유롭다면 왜 자기 위치를 말하지 않고 그냥 걱정하지 말라고 했겠어. 세헌이가 전화를 한 것은 주요하게 너에게 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일 거야.”송연아가 심재경을 바라봤다.“지금 무슨 위험에 처한 걸까요?”송연아는 초조해서 옷깃을 꼭 움켜쥐었는데 손등에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심재경이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세헌이가 얼마나 총명한데 꼭 방법을 생각해서 빠져나올 거야.”송연아는 여전히 안심할 수가 없어 물었다.“휴대폰으로 위치 추적은 안 돼요?”“위치 추적은 전화가 통했을 때만이 가능해. 이제 소식이 왔다는 건 좋은 시작이야. 분명 다시 우리에게 연락이 올 거야.”하지만, 송연아는 도저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그럼, 우리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우리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세헌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거야.”심재경은 송연아의 어깨를 다독였다.“진정해.”송연아는 입술을 깨물었다.…그 남자는 강세헌을 믿기로 하고 가족에게 무사하다는 전화를 하게 했지만, 강세헌이 말을 많
강세헌은 마음속으로 다급했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했다.“저한테 요구할 거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강세헌은 그 남자가 아직도 자기에게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는 강세헌의 눈빛을 보더니 조금의 희망을 보는 것 같았지만, 자기 아들을 구해 달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그는 강세헌이 아들을 구하지 못하고 일을 크게 만들면 오히려 자기들 가족에게 더 큰 해가 될까 봐 두려워서 모험하기 싫었다. 이번에 강세헌을 보내는 것은 확실히 강세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저는 당신이 여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바랍니다.”남자는 강세헌이 이곳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았다. 강세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곳은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 걸어서 나가려면 적어도 하루 이틀은 걸리겠지만 차를 타고 들어온 사람들은 훨씬 빠를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먹을 것과 물을 준비시켰는데 아내는 모든 준비물을 가방에 넣어서 건넸다.“조심해서 다녀와요.”남자는 아내의 이마에 뽀뽀하고 말했다.“금방 돌아올게.”그는 아내 혼자서 무서워할까 봐 걱정했다. 남자는 키가 크고 푸른 눈동자에 수염이 덥수룩했고 머리는 모두 하얗고 아내는 통통하고 하얀 피부였다. 남자는 젊었을 때 아주 잘생겼을 거라는 알 수 있었고 여자는 너무 이쁘지는 않았지만 아주 상냥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남자는 강세헌에게 걸을 때 주위를 살필 수 있게 지팡이를 준비해 주고 배낭을 멨다. 그러고는 또 다른 조금 짧은 막대기를 준비했는데 한쪽은 그가 쥐고 다른 한쪽은 강세헌에게 쥐여주었다.“신발 바꿔 신어요.”여인은 남편이 깨끗하게 세탁한 신발 한 켤레를 건넸다. 강세헌의 신발로 산길을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세헌은 보이지 않았기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때 여인이 눈치채고 말했다.“깜빡했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여인은 신발을 강세헌 앞에 놓고 말했다.“바로 앞에 있어요.”강세헌이 허리를 굽히자 바로 손에
남자는 즉시 경계하며 물었다.“정말요?”강세헌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정말입니다.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해서 좋을 거 없잖아요?”강세헌은 남자가 그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명 나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조심하자는 뜻에서 주의를 환기해 준 것이다. 발각되면 그 역시 생명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과 풀, 그리고 새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청각이 아주 예민하다는 말을 생각하고는 강세헌의 말을 믿기로 했다.“여기서 잠깐 쉬어가면 어떨까요?”그 사람들은 차로 이동하기에 곧 이 지역을 떠날 것 같아서 제안했다. 그리고 남자가 오늘 떠나자고 한 것도 그 사람들이 오늘 다녀갔기에 지금이 제일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강세헌이 대답했다.“좋아요.”그런데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모두 잡초여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앞에 강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서 잠깐 쉬죠?”강세헌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 옆까지 가는 과정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두 남자가 나타났는데 두 사람을 보자마자 남자는 당황했다.“진짜 사람을 숨겼어?”둘 중 한 명이 흉측한 얼굴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나쁜 놈은 모두 못생긴 것 같다. 금방 나타난 두 명도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흉측하게 못생겼다. 다른 한 명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두 사람 사는데 이런 물건이 있을 수가 없다고.”말하면서 그는 커프 링크를 꺼내 흔들었다. 그건 강세헌의 셔츠에 있었던 건데 부부가 강세헌을 구할 때 옷에서 떨어졌었고 부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나쁜 놈들이 오늘 발견하고 주운 것이다.“이 커프 링크는 꽤 비싸 보이는데!”한 명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면서 강세헌을 힐끗 쳐다봤다.“게다가 한국 남자네.”강세헌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손에 쥔 나무 막대기를 꽉 움켜쥐었다. 그는 두
지금 상황에서 남자는 강세헌이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모든 사실을 말했다.“내 아들이 저 사람들 손에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저들을 위해 일을 하는 거예요. 아까 시체가 곧 발견될 것이어서 저는 아내 구하러 돌아가야겠어요. 이제 당신 가족에게 연락해서 당신을 구하러 여기로 오라고 해요.”남자는 강세헌의 눈이 안 보이기에 세심하게 지난번에 강세헌이 걸었던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어 넘겨주고는 한마디 남기고 총을 가지고 떠났다.“꼭 안전하게 돌아가요.”남자가 떠나자, 휴대폰에서 송연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헌 씨.”강세헌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차분하게 말했다.“진정하고 내 말 들어. 원우더러 이 휴대폰 위치를 추적해서 이리로 오라고 해. 그리고 여기 위험하니까 절대 혼자 오지 말고 꼭 충분히 준비해서 와야 해.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마지막 말은 송연아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송연아는 옆에 있던 임지훈을 붙잡고 강세헌의 말을 전달하며 재촉했다.“서둘러요.”임지훈은 곧바로 강세헌을 찾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던 차에 있는 위치추적 장비를 작동시켰다. 송연아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휴대폰을 꼭 쥐고 목소리까지 떨었다.“괜찮아요?”“응.”저쪽에서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송연아는 바람 소리를 듣고 물었다.“지금 밖에 있어요?”“응.”강세헌 쪽의 신호가 너무 약해서 데이터가 느리게 움직이자, 임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송연아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강세헌에게 말했다.“지훈 씨가 지금 세헌 씨 위치를 추적하고 있어요.”강세헌은 눈이 보이지 않기에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배터리 부족으로 전원이 꺼지면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송연아가 걱정할까 봐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응.”앞에서 운전하는 심재경이 재촉했다.“아직 안 됐어요?”임지훈이 말했다.“거의 다 됐어요.”그들은 두 번째 장소로 가고 있었는데 심재경은 위치 확정이 안 된 상태에서
전화가 통하자마자 임지훈은 진원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우리 지금 먼저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거기가 아주 위험하다고 하니까 사람들을 준비해서 와. 주소는 문자로 보낼 거니까 빨리 와야 해.”진원우가 말했다.“알았어.”전화를 끊고 그는 인터넷으로 위치를 검색했는데 아주 외지고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대표님, 설마 산적들한테 잡혀간 건 아니겠죠?”임지훈의 말에 심재경이 비웃었다.“지금 어느 시대인데 산적이에요. 노르웨이의 법과 질서도 있는데 산적이 왜 있겠어요?”“위치를 봐요. 그리고 대표님 전화주신 휴대폰도 본인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 거잖아요. 그럼, 그 산속에 있는 사람은 뭔데요?”심재경은 황당해서 말대꾸도 하기 싫었다. 순간 그는 강세헌이 왜 임지훈을 여기에 보내고 진원우를 옆에 뒀는지 알 것 같았다. 임지훈의 사고방식은 정말로 단순했다.임지훈은 심재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왜 말을 안 해요?”심재경은 임지훈을 쳐다보며 말했다.“임지훈 씨하고 할 얘기가 없어요.”“궁금하지 않아요?”‘사람을 구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여기서 아무 의미 없는 추측을 하고 있지?’임지훈이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을 이었다.“정말 재미가 없는 사람이네요. 시간을 보내자는 거잖아요.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분위기 얼마나 우울해요.”말하면서 그는 송연아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온통 걱정뿐인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임지훈은 한숨을 쉬더니 심재경을 재촉했다.“좀 더 빨리 가요.”“충분히 빨리 가고 있어요.”‘이건 자동차지 비행기가 아니라고.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고!’“나는 안 급한 줄 알아요?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아요.”“심 선생님이야말로 짜증 나게 하지 말아요.”차는 평탄한 도로에서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느리게 느껴져서 가능하다면 날개를 달고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었다. 그 사이에 연료도 떨어져서 도로 옆의 주유
“젠장. 차에서 내리죠.”임지훈이 차가 너무 눈에 띄었기에 계속 차에 있다가 발각되면 모두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했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조용히 숲속에 숨어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주위에 놈들이 있을까 봐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송연아가 심재경의 팔을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총소리 우리와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세헌 씨 괜찮겠죠?”심재경이 그녀의 손등을 다독였다.“걱정하지 마, 우리 제대로 찾아왔으니까 곧 세헌이 찾을 수 있을 거야.”송연아는 마음속의 불안감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들렸던 총소리 후에는 주변 사람의 호흡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임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무와 풀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풀이 아주 높이 자라있었기에 앉아 있으면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다닐 수 없어서 임지훈이 제안했다.“제가 혼자 다닐 거니까, 두 분은 저와 떨어져서 오세요. 제가 대표님을 부르면서 갈 건데 다른 사람들한테 발견되더라도 두 분은 못 보게요.”심재경이 말했다.“제가 할게요. 임지훈 씨는 연아랑 같이 있어요.”“됐어요. 지금 상황에서 대표님을 찾는 게 중요하니까 여기서 싸우지 말아요.”결정적인 상황에서는 그래도 임지훈이 믿음직스러웠다.“알았어요. 조심해요.”심재경은 임지훈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송연아를 데리고 떠났다. 송연아는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무언가를 건넸다.“이거 가지고 있어요.”임지훈이 고개를 숙여보니 송연아가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메스였다.“저에게 주면 연아 씨는요?”“또 있어요.”임지훈은 메스를 받고는 허리를 굽혀 먼저 떠났다. 그는 심재경과 송연아와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다음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보이지 않자, 강세헌을 이름을 부르며 찾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송연아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바로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송연아와 심재경이 뒤로 후퇴할 때 갑자기
강세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는데 그의 얼굴에는 아직 추락하면서 생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송연아는 그의 얼굴과 눈썹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세헌 씨를 이제 겨우 찾았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가요?”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저기 있는 부부가 나를 구해줬는데 그냥 놈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그럼 같이 가요.”강세헌의 생명의 은인이면 그녀의 은인이기도 했다. 그때 심재경이 한마디 했다.“우리 일단 여기서 나간 다음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우리 모두 위험해질 수 있어!”강세헌이 생각해 보더니 심재경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금 눈이 보이지도 않기에 진원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또 지금 무작정 놈들과 마주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했다.“그래, 우선 안전한 곳을 찾고 다시 그 부부를 어떻게 구출할 건지 의논해 보자.”그러고는 차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모두 그쪽으로 움직였다. 송연아는 강세헌의 팔을 붙잡고 걷는 과정에서 그의 발걸음에 망설임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올려다보았는데 강세헌이 자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강세헌은 그녀의 의혹을 느꼈는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나 괜찮아.”송연아는 조금 전까지 다시 만난 기쁨에 겨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그의 눈이 길을 보지 않고 초점 없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안 좋은 예감에 가슴을 조이며 조심스레 손을 들어 강세헌의 눈앞에서 흔들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심재경도 깜짝 놀랐다.“세헌아...”심재경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송연아가 고개를 흔들며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세헌은 원래 자신을 위장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기에 비록 지금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매우 예민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고 강세헌을 챙겼는데 그 역시 그런 송연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