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는 심재경의 아이 때문에 엄청 힘들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울고 싶었다. 겨우 그 집에서 벗어났는데 또다시 그 집에 들어가서 가정부를 하라고 하니 너무 난감했다.“비비안 씨.”가정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비비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여자는 베이비시터에 불과해요. 심 대표님이 제일 좋아하고 아끼는 건 그의 딸입니다. 만약 심 대표에게 관심이 있으시면 그의 딸에게 공을 들이시는게...”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비안은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뭐라고요?”비비안의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지금 나를 가르치는 거예요?”옆에 있던 남자가 손아귀 힘 강도를 높이자, 가정부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갈게요. 오늘 바로 갈게요.”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비비안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진작에 그렇게 나오시죠.”비비안이 다시 눈치를 주자 남자는 가정부를 풀어줬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비비안은 은행 카드를 들고 흔들며 말했다.“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전에 말했던 금액의 두 배를 줄게요.”가정부는 남자가 졸랐던 목을 만지작거렸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죽을 뻔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서서히 사라지고 골목에 가정부 혼자 남게 되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빠져나왔는데 또 들어가게 생겼네.”그녀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이제 막 오후 1시였는데 계산해보니 마침 아이가 잠잘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인데 비비안이 준다고 한 돈만 생각하려고 했다.“그래,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한번 해보지 뭐.”혼자 중얼거리며 그녀는 익숙한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심재경은 고급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 입구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가정부가 심재경 집에서 한 달 정도 일했었기에 경비원이 그녀를 막지 않아서 쉽게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밖으로 나오는 안이슬을 만났다.아이가 어젯밤에 잠을 설쳐서 오전에 계속 잠만 자고 또 집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안이슬은 집을
안이슬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전에 그 아주머니시잖아요?”사람은 누군지 알아봤지만, 여전히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이미 떠났으면서 왜 또 온 거지?’“대표님이 다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여기에 이제 안 오셔도 되는데 왜 또 오셨어요?”이 가정부가 자기 아이를 대하던 일을 생각하더니 안이슬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이봐요, 아가씨 이름은 뭐예요?”가정부가 가까이하며 친해지려고 했다.“가만히 보니 나이가 많지 않은가 본데,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 아이의 엄마인 줄 알겠어요.”“그만해요.”가정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이슬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비록 가정부가 하는 말은 자기와 친해지기 위한 말인 줄은 알지만, 방금 아이 엄마 같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용주 집의 아이예요. 저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자기가 조금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은 안이슬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부러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도 아주머니와 같이 심 대표님에게 고용된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이러시지 말고 심 대표님을 찾아가세요.”가정부가 자기와 친해지려는 것을 느낀 안이슬은 이 사람이 심재경을 설득해달라고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런데 이 가정부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이의 친 엄마가 아니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절대 아이 옆에 두고 싶지 않을 것이다.“아가씨, 사람이 왜 그렇게 몰인정해요?”안이슬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자 가정부는 화가 났다.“예쁘장하게 생겨서는, 사실 우리 둘 다 일하는 입장에서 저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집에는 노인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는데 자식들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서 온 가족의 생활을 모두 제가 책임져야 해요. 이 가정부의 일마저 잃으면 저의 집 식구들은 모두 굶어 죽게 생겼어요.”안이슬에게 강한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느낀 가정부는 감정을 토로하여 안이슬의 동정심을 유발하려 했다.“게다가 아가
“아가씨, 제발 부탁해요.”가정부는 심지어 눈물까지 보였다.“나 정말 이 일을 잃으면 안 돼요. 이 일을 잃으면 우리 가족들은 살 수가 없어요. 다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도와줘요. 앞으로는 아이 돌볼 때 꼭 집중하고 집안일도 전부 내가 도맡아 할게요. 그래도 안 되겠어요?”간혹 지나가던 사람들이 안이슬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사람 그만 좀 창피하게 하면 안 돼요?”안이슬은 고개를 숙여 억지 부리는 가정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심 대표님이 사시는 이 주택은 부처에서도 제일 좋은 주택이에요. 여기에 사람은 모두 부자가 아니면 귀족들인데 정말로 여기서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싶어요?”그녀의 말에 가정부는 놀라 하며 표정이 굳어졌다. 그 틈을 타 안이슬은 황급히 다리를 뺐는데 품에 있던 아이도 뭔가 느꼈는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아가야, 괜찮아.”안이슬은 서둘러 아이를 토닥거렸는데 아이가 안정을 되찾자 바로 다시 가정부를 보며 말했다.“충고하는데 여기서 이런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심 대표님 이런 당신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대표님을 설득할 거라는 생각은 접어요. 당신이 아이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러지 못했을 거예요.”가정부가 좋은 태도로 잘못을 인정했다면 안이슬이 도움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 전의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는 절대 아이 옆에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돌아서려다가 안이슬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말했다.“아, 그리고 이 아파트는 거의 모두 부자들이 사는데 원래는 당신의 이력서로 다른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오늘 이렇게 소란을 피운 사실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아마 이제 여기에 다시는 들어올 수 없을 거예요.”안이슬은 할 말을 다 하고는 아이를 안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가정부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다.“네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 들어?”그러고는 안이슬을 향해 침을 뱉었다.“그냥 애나 보면서? 아이의 친 엄마도
‘보기에는 총명해 보이는데 왜 사람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거지?’“말로 안 되면 돈을 주든가요.”어차피 돈 벌려고 그 집에 들어갔을 거니까, 돈으로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돈이요?”가정부가 더듬거렸다.“그런데 제가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비비안은 심호흡하며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오늘 저녁에 다시 한번 찾아가서 4천만 원 이내로 해결해 봐요. 두 사람 얘기가 끝나면 내가 당신 카드에 송금해 줄게요.”4천만 원!가정부는 금액을 듣는 순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알았어요.”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바로 다시 찾아갈게요.”전화를 끊고 가정부는 기뻐서 흥얼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상대방이 4천만 원 이내에서 해결이 되면 자기도 조금 뜯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주위 사람들의 의아해하는 눈빛은 신경 쓰지 않고 입구로 향했다. 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입구 옆에 영유아용품 가게가 있었는데 베이비시터가 거기로 갔을 거로 생각했다.한편, 영유아용품 가게에서.안이슬이 아이를 안고 들어가자, 점원이 바로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안녕하세요. 어떤 것이 필요하신지요?”이 근처는 모두 부자들이 사는 곳이기에 물건 사는 사람도 모두 부자였다. 때문에 안이슬이 들어오자, 점원은 아주 열정적으로 맞이했다.“고객님 따님이세요? 너무 예쁘네요.”점원이 웃으면서 안이슬의 품 안에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고객님을 똑 닮으셨네요.”안이슬은 표정이 순간 멈칫했는데 예전 같으면 아이와 닮은 데가 많았을 텐데 지금은...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는 유아용품들을 바라봤다.“아이의 옷이 있어요?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데 전에 입던 옷은 통기가 잘 안돼서요.”점원이 서둘러 열정적으로 소개를 했지만 모두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 안이슬은 미간을 찌푸리며 요즘 점원들은 모두 이렇게 열정적인가 생각하며 아이 옷은 자기가 직접 고르기로 했다. 그녀는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간단하고 편안한 걸로 하기로 했다.
“아가씨...”점원이 옷을 가지러 간 틈을 타서 가정부가 안이슬의 앞에 나타났다.“제발 부탁인데 저 좀 도와줘요.”그녀는 심지어 쪼그리고 앉아 안이슬의 허벅지를 껴안았다.“제발 계속 그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줘요. 이제 절대로 잘못하지 않을 거예요.”밖을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아주 평범한 옷차림의 중년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수군거렸다.“지금 무슨 상황이죠?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사람을 어떻게 저 정도로 괴롭히는 거죠?”“찍어서 인터넷에 올릴까요?”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안이슬은 재빨리 고개를 숙여 약간 당황한 가정부의 눈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이렇게 해요. 심 대표님 이제 곧 퇴근할 시간인데 돌아오시면 제가 심 대표님께 전화해서 당신의 상황을 설명 드릴게요. 심 대표님만 동의하신다면 저는 당연히 다른 의견 없을 거예요.”계속 이런 식으로 맞서면 사람들이 오해해서 더 큰 일이 일어날까 봐 가정부는 안이슬의 말을 듣고 바로 일어섰다.“고마워요. 걱정하지 말아요. 대표님이 저를 만나주시기만 하면 다시는 절대 아가씨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가정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그때 점원이 아이 옷을 가지고 나타나자, 가정부가 웃으며 받았다.“제가 들게요.”“괜찮아요.”안이슬이 냉정하게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안이슬은 마음속으로 가정부가 정말로 일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의심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아이의 물품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유아용품 가게를 나올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정부는 계속 안이슬을 따라갔는데 아파트로 들어가려던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저기 앞에 차 세워!”심재경은 회의가 끝나고 모니터를 살펴봤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자, 당황해하며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새로 오신 베이비시터인가 봐요?”기사가 안이슬의 모습을 보고 물었지만, 심재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속도를 늦추더니 바로 안이
“아앙...”무심하게 움직이던 아이의 작은 손이 안이슬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움켜쥐었다.“우리 아가 착하지!”잠에서 깨어난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이슬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괜찮아요.”두 사람은 모두 그 가정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아파트 입구니까 아이랑 바람도 쐴 겸 걸어서 갈게요.”가정부가 떠나는 안이슬을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안이슬은 재빨리 앞으로 걸어가서 가정부의 손을 피했다.심재경이 그것을 보고 잽싸게 가정부의 손을 잡아 뿌리치자, 가정부는 넘어질 뻔했다.심재경이 냉정하게 말했다.“월급은 정산했으니 이제 다시 이 아파트에서 보이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제 말뜻 아시죠?”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재경의 눈빛을 보더니 가정부는 겁에 질려 꼼짝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심재경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앞으로 걸어갔다.그와 동시에 안이슬은 아이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이상하네!”문을 열 때 안이슬은 조금 의아했다.“평소에는 매일 회사에서 늦은 밤까지 일하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온 거지?”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따뜻한 불빛이 쏟아졌는데 그녀는 아이에게 사준 옷을 내려놓고 아이를 요람에 눕혔다.“우리 아가 착해라.”안이슬은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잠깐만 기다려, 분유 타올게.”전에 먹던 분유 캔은 다 먹었지만, 아직 많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새 분유통을 꺼낼 때 현관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이슬이 분유통을 가지고 거실에 나오자, 심재경이 들어왔다.“대표님.”안이슬은 얼굴에 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심재경에게 인사를 했다.“분유 먹을 시간인가요?”심재경이 안이슬을 보며 물어보고는 바리 고개를 돌리자, 안이슬은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심재경이 겉옷을 벗어 소파에 던지자, 안이슬이 다시 집어서 걸어놓았다.심재경은 집 안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며칠 안에 새 가정부를 찾을게요.”그러고는 딸의 방으로 향했다.“저기...”그의 뒤에
아이는 아직 깨어 있었는데 방금 바람을 쐬러 나간 것 때문인지, 신이 나서 작은 손과 발을 계속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조그마한 얼굴을 보고 있는데 너무 귀여웠다.“그렇게 좋아?”아이를 보는 순간, 심재경의 얼굴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부드러움이 보였다.그때 안이슬이 분유 병을 건넸고 심재경이 받아서 아이에게 먹이려 했다. 분유 병에 닿은 아이는 작은 손으로 잡고 분홍빛 작은 입으로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젖꼭지를 찾았다.그때 심재경이 갑자기 물었다.“선생님,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데도 따로 방법이 있어요?”그가 물어보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이슬이 아이를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자 잠시 멈칫하더니 서둘러 직접 움직였다.“이렇게 하면 돼요.”말하면서 안이슬은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지금 아이는 침대에서도 좋아하기에 굳이 안을 필요 없어요. 하지만 자세가 잘못되면 아이가 목이 막힐 수도 있기에 방심하면 절대 안 됩니다.”심재경은 안이슬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챙기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이가 젖꼭지를 입에 넣고 힘차게 분유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안이슬은 미소를 지었다.“장하네!”안이슬은 고개를 숙여 아이의 얼굴을 만져주려 했는데 손이 거의 얼굴에 닿으려던 순간 뒤에 있는 사람이 생각났다. 자기는 베이비시터일 뿐인데 너무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동작을 멈췄다.“오늘 어땠어요?”심재경은 안이슬의 움직임을 무시한 채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며 물었다.“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잘 먹고 잘 마시고 했어요. 중간에 한번 열이 나긴 했었는데 금방 가라앉았어요.”그녀는 옆에 있는 곰돌이 인형을 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대표님, 비록 아이가 정식 이름이 있다고 하지만, 평소 집에서 어릴 때 부를 아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안이슬은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며 며칠 동안 생각을 했었지만, 딱히 예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에 계속 아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일이어서 친근
‘그래도 뜻이 담겨 있네. 좋아, 모든 게 바뀌었으니 이제 과거의 일에 더는 연연하지 말자고. 심재경도 아이 때문에 예전의 일을 떠올릴 리가 없을 테고...’“네...”바운서 안의 아이는 우유를 마셔서 그런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안이슬은 아이를 위해 땀을 닦아줬다.아이의 손에 든 젖병이 빈 걸 발견한 안이슬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가 우유는 잘 마시네요. 물론 지금은 아이가 한창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할 때죠. 그만큼 아이가 건강하다는 걸 증명하기도 하고요.”아이는 쉽게 졸린다. 우유를 마신 후 안이슬은 아이를 안고 겨우 몇 번 달래줬는데 샛별은 벌써 눈을 감았다.“샛별아...”안이슬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안이슬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면서 달래는 장면을 보고 심재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오늘 그는 일찍 퇴근했기 때문에 아직 식사를 하지 못했다.부엌에서 먹을 음식이 있나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가 부엌에 들어설 때 안이슬은 이미 아이를 재우는 데 성공했다.“대표님, 혹시 아직 식사를 하지 못하셨나요?”안이슬이 잠깐 고민하더니 부엌으로 다가갔다.“오늘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일찍 돌아왔어요. 밖에서도 밥을 먹지 않았거든요.”스크린에 안이슬과 아이의 모습이 잡히지 않아 심재경은 걱정된 나머지 다급하게 차를 타고 돌아온 것이다.집에 돌아오니 아이와 안이슬이 모두 안전한 걸 확인하고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집에 먹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달걀과 소면 빼고는 집에 음식이 아무것도 없었다.띵동!이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누구지?”시계를 올려다봤는데 벌써 저녁 여덟 시가 거의 다 되어갔다.이미 늦은 시간인데 누가 찾아온 거지?띵동!초인종이 또 한 번 울렸다.심재경이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안이슬이 문을 열러 갔다.“대표님!”문이 열리자 밖에 있던 비비안이 손에 작지 않은 도시락을 든 채 들어오려고 했다.“대표님, 오늘 사내 식당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