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내 침대 옆에 앉아 계속 자기 일만 해댔다.그런 형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었기에 나도 방해하지 않았다.한편.태연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팩을 붙이고는 잠깐 눈을 붙이려 했다.이틀 동안 병원에서 환자를 케어한다는 게 힘든 일이었으니까.태연이 입은 실크 슬립을 입고 있었지만, 완벽한 콜라병 몸매를 다 가리지는 못했다.한참 뒤, 태연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그 시각 옆집.왕정민은 사실 아까 전 문 사이로 태연이 돌아온 걸 확인하고 난 뒤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애교와 남주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왕정민은 지금 베란다를 통해 태연의 집에 넘어갈 수 있었다.태연의 매력적인 몸매를 떠올리자 왕정민은 너무 흥분해 베란다를 살금살금 넘어 태연의 방에 몰래 잠입했다.태연도 방문을 잠그지 않은 터라, 왕정민은 문틈 사이로 방 안 광경을 몰래 볼 수 있었다.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남자를 끌어당기는 태연의 매력에 왕정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특히 태연이 입고 있는 슬립 원피스와 서로 겹쳐 있는 늘씬한 두 다리를 보자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다.왕정민은 살금살금 태연에게 걸어가더니 급기야 손으로 태연의 다리를 탐욕스럽게 문질렀다.“완전 하얗고 부드럽잖아!”“아, 누구야?”잠에서 놀라 깨자마자 왕정민을 본 태연은 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왕정민 씨, 왜 우리 집에 있어요?”왕정민은 피둥피둥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뭐 좀 빌리러 왔는데 아무리 노크해도 대답이 없어 베란다로 넘어왔어요.”“뭘 빌리러 왔죠?”태연은 왕정민이 저를 보는 눈빛을 보자 너무 무서웠다.특히 말하면서 옆에 슬쩍 안는 모습에 더욱 불안했다.여자의 직감이 말해주건대, 왕정민은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태연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긴 외투를 걸치며 말했다.“거실에서 얘기하죠.”태연은 말하면서 거실로 걸어갔다.그나마 거실이 침실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니까.만약 왕정민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면 재빨리 문을 열고 도
“태연 씨, 사실 나도 동성 말이 맞다고 봐요, 여자는 아무래도 남자의 손길을 타야 하니까. 안 그러면 빨리 늙어요. 동성은 태연 씨와 이혼하고 싶지 않고 또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도움 청한 거니 이게 오히려 두 사람 결혼생활에 더 좋을지도 몰라요.”왕정민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왕정민은 태연과 몸을 섞고 싶지만 본인이 지배자의 위치에서 태연이 스스로 몸을 바치기를 원했다.태연은 왕정민의 그런 태도에 구역질이 나 싸늘하게 말했다.“우리 결혼은 그런 방식으로 유지할 필요 없어요.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할 테니까 그만 가주세요.”이에 왕정민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태연 씨, 남의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여기 한 번 오는 게 쉬운 줄 알아요? 그런데 나를 이렇게 쫓아낸다고요?”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포기할 기미가 없는 듯한 왕정민의 태도에 태연은 어이가 없었다.왕정민이 저한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없었으니까.심지어 눈살 찌푸려지는 말까지 하며 말이다.결국 태연은 어두워진 얼굴로 문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고 왕정민을 쫓아냈다.“그만 가세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왕정민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 어두운 표정으로 문 앞에 걸어갔다.그러다가 갑자기 태연의 팔을 잡아당겨 제 품에 껴안고는 문을 닫아걸었다.그 순간 태연은 너무 놀라 버럭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 경고하는데, 그만둬요.”왕정민은 태연의 풍만한 몸매에 순간 반응했다.“뭐 하긴, 당연히 하려고 그러지. 동성이 태연 씨를 나한테 줬어요. 그러니 날 제대로 모셔요.”“어디서 순진한 척은, 욕구 불만인 주제에 남자 손 한동안 안 탔으면 저도 안달 났을 거면서.”왕정민은 몸집이 커다란 데다 힘까지 세서 힘도 들이지 않고 태연을 소파 쪽으로 끌어와 힘껏 밀었다.그 순간 태연의 몸은 소파에 세게 부딪히면서 가슴이 흔들렸고, 치마마저 말려 올라가며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태연 씨, 우리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동성도 태연 씨 생각해서 이러는 건데. 사실 동성은 태연 씨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데 자기가 만족시켜 주지 못해 영향을 줄까 봐 나한테 도움 처한 거예요.”“내가 방금 표현이 좀 과격해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 다시 제대로 설명해 줬잖아요, 그리고 강요할 마음도 없어요.”‘강요할 마음이 없다고?’‘당장이라도 겁탈할 것처럼 달려들었으면서 잘도 뻔뻔한 소리를 하네.’태연은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다. 태연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판단이 있기에 왕정민의 말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그저 눈앞의 남자를 보면 볼수록 역겹고 구역질 난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왕정민은 태연이 제 말에 설득된 줄 알고 슬그머니 태연의 손을 더듬었다.만약 거절하지 않으면 태연도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그러면 다시 제대로 공략하면 그만이다.심지어 남자의 손길을 오랫동안 타지 않은 여자, 특히 태연처럼 욕구불만인 여자는 분명 남자를 원할 거라고 확신했다.그걸 제대로 불붙여주면 태연을 손에 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하지만 생각 밖으로 태연은 왕정민의 손이 닿자마자 바로 쳐냈다.“손대지 마요. 왕정민 씨, 잘 들어요. 우리 남편 무슨 말을 했든 절대 정민 씨랑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태연 씨, 나랑 동성은 오랜 친구예요. 내가 친구 도와주자고 발 벗고 나서는데,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태연은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정말 그럴싸한 변명이네요. 나를 겁탈하려 하면서 도와준다고? 그것도 말이라고!”“아니에요, 난 정말 태연 씨를 돕고 싶어요.”“본인 아내도 오랫동안 방치했으면서, 왜 애교는 도와주겠다는 말 안 해요? 자기 아내한테도 무관심한 사람이 친구 아내를 걱정한다고? 무슨 속셈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요?”왕정민은 또 다시 얼굴을 구겼다.“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나랑 애교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알고 있으니까 방금 정민 씨 말이 역겹다는
태연은 바로 동성에게 전화해서 울먹였다.“진동성, 대체 뭐 하자는 거야?”[왜 그래? 무슨 일이야?]동성은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했다.“어설픈 연기 그만해. 왕정민이 사실대로 다 말했으니까. 나를 왕정민한테 팔아넘겼다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이 개자식아!”태연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동성은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솔직히 태연이 아주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가질 줄은 몰랐다.동성의 경솔함이 일을 완전히 그르쳤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해 봤자 소용은 없다. 때문에 동성은 끝까지 잡아떼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자기를 왕정민한테 팔아넘기다니? 자기는 내 아내인데 그럴 리 없잖아. 왕정민이 무슨 짓 했어? 이 개자식! 역시 그 자식이 더러운 마음 품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어쩐지 나더러 자기와 교대하라고 하더라니, 다 꿍꿍이가 있었네.]그 말에 태연은 바로 눈물을 그쳤다.“그게 무슨 말이야? 왕정민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응, 난 또 우리 부부를 생각해 주는 줄 알았지, 누가 뒤에서 자기를 노릴 줄 알았겠냐고. 설마 무슨 일 당한 건 아니지?]태연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내가 애교를 내세워 협박하니까 아무 짓도 못 하더라. 지금 맹세해. 정말 왕정민과 짜고 나 팔아넘긴 거 아니지?”태연은 동성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태연과 동성은 왕정민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그런 왕정민이 정말 태연을 어떻게 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지금껏 기다릴 이유가 없다.때문에 동성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동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맹세해. 절대 왕정민과 짜고 치지 않았어. 내가 거짓말하면 앞으로 남은 평생 남자구실 못할 거야.]‘독하네, 이런 맹세까지 하다니.’결국 태연은 그대로 넘어갔다.“그래, 이번 한 번만
하지만 방금 전 동성의 말에 태연은 너무나도 구역질이 났다.태연이 제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자기의 남편이 이미 변했다는 것이다.이기적이고 밑바닥까지 없는 인간으로.때문에 태연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자기 남편의 이미지가 그보다 더 밑바닥일까 봐.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동성과 앞으로 살아갈 자신조차 없어지게 될까 봐.“왜? 왜 이렇게 됐지?”태연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애초에 동성을 만나고 결혼까지 결심한 건 분명 동성의 정직함이 마음에 들어서였다.동성 가은 남자와 살아야 착실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사실 결혼한 지 몇 년 동안 동성은 늘 태연에게 잘해줬다.크고 작은 명절과 기념일이면 선물을 사다 주고 월급 카드도 태연에게 맡기고, 심지어 결혼한 뒤 산 집도 태연의 명의로 해줬다.게다가 세금 납부를 제때에 하고 매일 제 시간에 귀가하고 시간만 나면 태연과 함께 있어줬다.태연은 자기가 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하지만 2년 동안 회사 압력이 점점 처지면서 동성의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도 점점 커갔고 부부 생활에 전처럼 신경 쓸 수 없게 되었다.그것도 태연은 모두 받아들였다.정 안 되면 시험관 아기라도 가져보겠다는 생각을 안고.아무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현 상황을 해결할 생각뿐이었지 동성과 이혼하려는 선택지는 태연에게 없었다.하지만 오늘 그런 일이 벌어지고 동성에 대한 태연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애초에 태연을 알뜰히 보살피고 아껴주던 남자는 언제부터인가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왕정민처럼 이기적으로 변했다.태연의 마음은 너무 심란하고 복잡했다.‘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병원.비몽사몽한 상태로 잠자고 있던 나는 어렴풋이 들리는 형의 통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은연중에 태연이라는 이름을 들어 나는 단번에 형이 형수와 통화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형은 통화 내내 뭔가를 해명하고 있었고 상태도 조금 이상해 보였다.전화를 끊은 형을 보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형이 방금 뭐라고 그랬지?’‘왕정민이 형수를 안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형수는 형의 아내인데, 자기 아내를 남의 남자에게 바친다고?’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더욱이 항상 정직하기만 하던 형이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내 마음은 복잡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너무 고민되었다.저 남자는 분명 내 형인데. 분명 내가 어릴 때부터 친형처럼 따르던 형인데.나는 당장이라도 형한테 달려가 왜 이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형이 평소에 나한테는 정말 잘해줬으니까.때문에 나는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형은 왕정민과 통화를 끝낸 뒤 떠났지만 나는 화장실 문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어쩐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니.’형수를 생각하니 왕정민에 대한 증오가 극에 치달았다.‘이 쓰레기가 애교 누나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형수까지 넘봐?’나는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죽이고 싶었다.‘절대 이렇게 왕정민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할 수 없어.’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왕정민이 형수를 노린다는 걸 애교 누나에게 말했다.게다가 화가 잔뜩 나서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누나, 왕정민과의 이혼을 서둘러요. 그렇지 않으면 왕정민 그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리고 누나랑 남주 누나도 조심해요. 왕정민은 인간도 아니에요.]그 시각, 남주와 함께 법무사 사무소에서 명의이전 절차에 관해 물어보고 있던 애교는 저한테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남주는 애교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그러자 애교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남주에게 건넸다.그걸 본 남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왕정민 이 개 같은 자식, 이건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난 그래도 왕정민이 어느 정도 선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
“전에 나한테 집 명의이전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오늘 집 나서면서 모든 자료 준비했으니 그냥 와서 사인만 하면 돼.”‘사인은 개뿔.’애교와 남주가 짜고 자기에게 덫을 놓은 걸 알고 있었던 왕정민은 이를 갈았다.‘이 두 여편네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려는 걸 모를 줄 알고.’왕정민은 당연히 갈 리 없다. 물론 집 한 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애교에게 그냥 주는 건 너무 싫었다.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애교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계속 잡지 못해 아직은 애교와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된다는 거다.이에 왕정민은 거짓말로 무마하려 했다.“나 지금 밖에 있어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에 하자.”“지금 어디 있는데?”왕정민은 애교가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일부러 먼 곳을 댔다.하지만 애교는 여전히 제 뜻을 고수했다.“지금 보는 일 스톱하고 여기 와서 사인해. 그러고 나서 일 보러 다시 가. 집 명의 이전해 주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설마 지금 후회해?”“그럴 리가. 당신한테 주겠다고 했으면 당연히 줘야지. 하지만 나 지금 정말 너무 바쁜데.”이윽고 뭐라고 더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문 앞에서 철컥거리는 문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왕정민은 너무 놀라 소파에서 펄쩍 뛰어 일어났다.‘뭐야? 이애교가 돌아왔나?’‘설마 아예 문제를 단절하려고 진작 준비해 두었나?’‘안 돼. 이대로 잡힐 수 없어, 안 그러면 내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돼.’결국 왕정민은 다급히 베란다를 넘어 애교네 집으로 넘어갔다.그리고 얼마 뒤,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애교가 아니라 남주였다.남주는 일부러 소리를 죽인 채 몰래 들어와 증거를 잡으려 했다.하지만 놀랍게도 집안에는 왕정민이 없었다.결국 남주는 이곳 상황을 애교에게 알려주었고, 잠깐 생각하던 애교는 끝내 입을 열었다.“아직 안 갔을 거야. 태연 집에 가서 찾아봐.”“그렇지. 너희 집이 태연네 집과 이어졌지. 이 개자식이 분명 베란다로 넘어갔을 거야. 당장 가볼게. 좋은 소식 기다려.”남주는 곧장 태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온종일 노크했는데 왜 문은 안 열어? 설마 혼자 집에서 했어?”남주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그에 반해 태연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말 한번 제대로 하는 걸 못 봤네. 우리 집엔 왜 왔어?”“왕정민 너네 집에 있어?”남주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태연은 심장이 철렁해 거짓말했다.“미쳤어? 왕정민이 왜 여기 있어?”남주는 얼른 태연의 팔짱을 끼고는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애교가 왕정민 집을 자기 거로 명의이전 하려고 하거든, 하지만 그 개자식이 계속 숨어서 나타나지 않아. 애교랑 내가 모두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밖에서 일 본다고 하더라고.”“아까 애교 집에 쳐들어갔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 여전히 뜨거운 걸 봐서는 멀리 못 간 것 같은데. 너희 집이랑 애교네 집 베란다가 연결되어 있으니 분명 여기로 넘어왔을 거야.”“만약 왕정민이 여기 있으면 절대 숨겨주면 안 돼. 우리 수호한테서 들었거든, 왕정민이 너한테 몹쓸 짓 하려고 했다면서? 그런데 뭐 하러 감싸줘?”남주의 말을 듣는 내내 애교는 마음이 흔들리고 복잡하고 무거웠다.자기가 왕정민한테 당할뻔한 일이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졌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고, 다음으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애교와 남주의 목표는 아주 명확하다. 왕정민을 절대 편하게 살게 두지 않는 거.‘하지만 나는?’태연은 마치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방향을 잃고 앞길이 막막해 도무지 선택할 수 없었다.‘아예 왕정민과의 관계가 틀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지, 아니면 먼저 참고 동성과의 혼인을 ㅇ지할지.’“네가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베란다에서 직접 찾아보지 뭐.”남주는 말하면서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그때, 태연은 뜻밖에도 왕정민이 애교의 방문 뒤에 숨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 위치는 노출되기 매우 쉬웠다.그때 왕정민이 태연에게 손짓을 하며 당장 남주를 쫓아버리라고 명령했다.하지만 태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직 막막했으니까.그때
음식을 먹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목이 멜 뻔했다.다행히 물을 마셔 겨우 음식을 삼켜버렸다.나는 다급히 고수연을 바라봤다.“지금 장난해요? 저더러 아이들 아빠를 하라고요? 무슨 생각인 거예요?”고수연은 서둘러 설명했다.“제 아이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혼해서 아빠의 사랑이 부족하게 클까 봐 그래요. 매일 같이 있어 줄 필요는 없어요. 가끔 가서 아이한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면 돼요.”나는 힘껏 손사래를 쳤다.“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당분간 속일 수 있다고 평생 속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모든 걸 알게 되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사장님이 아이 아빠가 아니라는 거 알려줄 거예요.”“이건 억지잖아요.”고수연은 너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어쩐지 식사 대접까지 하면서 살갑게 군다 했더니 목적이 있어서였다.나는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밥은 됐어요. 그건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사장님, 우선 가지 마요.”고수연은 내 손을 잡았다.그 순간 나는 고수연의 손을 뿌리쳤다.“그만해요. 무슨 말을 하든 동의 안 해요.”“알았어요. 아무 말 안 할게요. 식사마저 해요.”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고수연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수연이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고수연은 계속 내 손을 잡아당겼다.“얼른 앉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요.”나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게 싫어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이내 경고를 날렸다.“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앞으로 하지 마요. 안 그러면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고수연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도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받을까 봐 그래요.”“다른 방법 많아요. 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 안 돼요. 그리고 나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마요.”고수연은 형수 동생이다. 그런데 내가
진용진이 나를 미워하는 건, 내가 전에 형수와 함께 그를 모함했기 때문이고, 고수연을 미워하는 건 아무 이유가 없다.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이혼할 때 원수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고수연과 진용진이 그런 축에 속했다.재판 현장에 나도 따라갔다.진용진은 바람피운 사실을 인정하고 고수연에게 보상해 줄 것도 약속했지만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양육권을 무조건 가지겠다고 요구했다.고수연이 아무리 발악해 봐도 달리 방법은 없었다. 이건 법률로 규정된 것이니까.“변호사님, 정말 방법이 없나요?”고수연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그 말에 연재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없어요. 인제 그만 싸워요. 의미 없어요.”고수연은 이를 악물고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결국 고수연은 진용진과 재산을 분할하고 아이도 한 명씩 키우기로 결정 났다.이건 가장 좋은 결과였다.고수연의 권익도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힘들게 살 필요도 없으니까.그리고 진용진이 고아다 보니 일 때문에 아이를 볼 여력이 없는 걸 고려해, 법원에서는 평소 고수연이 아이를 대신 돌봐주라고 판결했다.이렇게 되니 고수연은 자기가 받아야 할 재산도 받고, 아이도 동시에 키울 수 있게 되었다.재판이 끝난 뒤, 고수연은 나에게 4백만 원을 이체했다.“사장님, 이건 전에 빌린 돈이에요.”“힘들 텐데 먼저 써요. 전 급하지 않아요.”“아니에요. 쓸 거 충분해요. 진용진이 그동안 돈을 그렇게 많이 번 줄도 몰랐어요. 이혼하면서 받은 위자료만 해도 몇천만 원이에요.”진용진이 지금 사는 집을 고수연은 갖지 않았지만 모두 현금화해서 계산했다. 때문에 위자료와 집값을 합치면 족히 1억 6천만 원 정도 된다.이건 고수연한테 큰돈이나 다름없다.고수연은 연재혁에게 변호사 비용을 준 뒤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나섰다.“저는 됐어요. 따로 일이 있어 앞으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네. 그럼 조심히 살펴 가세요.”연재혁이 떠난 뒤, 고수연은 나를 바라봤다.“사장님, 우리끼리 식사하러 갈까요?”“
윤지은은 끝까지 나한테 관심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지만, 매번 삐지거나 화를 낼 때면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내곤 한다.부잣집 귀한 아가씨라 나처럼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만 윤지은의 마음을 알면 그만이다.윤지은은 아직 건드리지 않은 아침을 보며 살짝 망설였다.“그럼 이따 서지예가 와서 물어보면 어떡해?”“지은 씨가 먹은 건 지은 씨 거고, 내가 서지예 씨 걸 실수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할게요. 그럼 저를 탓하지 지은 씨를 의심하지 못할 거예요.”“그래. 그렇게 해.”윤지은은 그제야 아침을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맛없어. 길가에서 산 거야?”“저기요. 입원한 사람이 무슨 음식을 그렇게 가려요?”윤지은은 음식을 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일부러 반대로 말한 거다.윤지은은 평소 혼자 있을 때 항상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컵라면을 대충 먹곤 한다.하지만 이번에 입원해 있으면서 내 덕에 오히려 하루 세 끼 꼬박 챙겨 먹었고, 오늘 아침 식사도 사실 맛이 괜찮았다. 다만 윤지은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워낙 예쁨 받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라,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했으니까.윤지은이 한창 먹고 있을 때 서지예가 들어왔다.“어? 내 아침은 어디 갔지?”나는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실수로 떨어뜨렸어요. 직접 내려가서 사 먹어요.”서지예는 화가 나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봤다.“정수호, 일부러 그랬지?”“이런 걸 왜 일부러 그러겠어요? 정말 실수였어요...”“그럼 아가씨 잘 보살펴.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서지예는 씩씩거리며 병실을 나섰다.그 순간 눈이 마주친 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우리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서지예가 돌아온 뒤 나는 바로 병원을 떠났다.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몸이니까.그때 고수연이 법원에 혼자 가기 무섭다며 전화를 걸어왔다.고수연은 가게 직원이기도 하고 형수 동생
“왜 또 이러는데요? 내가 또 지은 씨 심기 건드렸어요?”나는 윤지은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어쩜 사람 기분이 이렇게 변덕스럽고 얼굴이 수시로 변하는지.그때 윤지은이 이상야릇하게 말했다.“넌 잘못한 거 없어. 내가 쓸데없는 희망을 품지 말았어야 했어.”“말 좀 제대로 해줄 수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저 지금 지은 씨 때문에 어지러워요. 내가 뭐 말실수했어요? 아니면 뭐 잘못했어요?”아마 대부분 남자는 나처럼 감정이 둔하고 여자처럼 섬세하지 못할 거다. 때문에 여자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삐질 때 남자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그동안 윤지은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기에 나도 어느 정도 윤지은의 성격을 파악했다. 윤지은은 화를 내지 않을 때는 속내를 알기 쉬운데, 삐지거나 화를 내면 분명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그것도 대부분 너무 작아서 예상치도 못한 이유.나는 방금 내가 한 행동을 모두 떠올려봤다.내가 서지예와 함께 나가기 전까지 윤지은의 태도는 그나마 좋았다. 그런데 내가 서지예와 얘기하고 돌아오니 윤지은은 이렇게 되었다.‘설마 내가 서지예와 몰래 나가서 얘기해서 삐졌나?’나는 웃으면서 윤지은 옆에 앉았다.“또 질투해요?”윤지은은 단번에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누가 질투했다고 그래? 내가 넌 줄 알아?”“모르죠. 제가 볼 때 지은 씨 분명 질투해요. 서지예 씨를.”나는 일부러 윤지은을 놀려댔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홱 쏘아봤다.“자기애가 대단하네! 얼굴이 벽보다 더 두꺼워.”“맞아요. 저 얼굴이 원래 벽보다 더 두꺼워요. 그래서 아무리 쫓아내도 안 갈 거예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사 올게요.”사내대장부는 여자와 싸우지 않는다고,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윤지은한테 따질 필요는 없었다.윤지은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보지 않았다.“안 먹어. 앞으로 네가 산 건 다 안 먹어.”“그럼 서지예 씨더러 사 오라고 하고 저는 여기서 지은 씨 돌봐 줄게요.”“네가 돌봐 줄 필요 없다고. 꺼져!”“안 가요. 난 지은 씨
윤지은의 상처는 제때 치료된 편이라 감염의 흔적은 없었다. 때문에 안정을 취하면 그만이었다.“이봐, 잠깐 와 봐. 할 말 있어.”서지예는 나를 병실 밖으로 불러냈다.한편 윤지은은 내가 오자마자 서지예에게 불러 나가자 기분이 언짢았다.다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서지예를 따라 나갔다.“무슨 일이죠?”“내가 아빠한테 얘기했어. 아빠가 오늘 오후 우리 언니를 강북에 데려온대.”“아, 그럼 도착하면 우리 한의관으로 와요.”나는 덤덤하게 말했다.그러자 서지예가 미간을 팍 구겼다.“우리 언니가 협조를 안 해. 우리 아빠가 이쪽에 별장 하나 빌렸거든, 그래서 그동안 수호 씨더러 그 별장에서 우리 언니 치료했으면 해.”“우리 미리 말했잖아요. 그쪽 언니를 우리 한의관에 불러서 치료받게 하자고.”나는 무엇보다 서씨 가문 사람과 비밀리에 접촉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서지예는 분명 약속했으면서 이제 와서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서지예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나도 약속 지키고 싶었는데 우리 언니 상황 알잖아. 언니가 사람 만나는 걸 거부해. 우리 언니가 환자인 걸 봐서 사정 좀 봐줘.”내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서지예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이 사람은 강북 서화계의 거장이야. 아래에 제자들도 많고. 오랫동안 허리로 고생했는데, 만약 이분 눈에 들면 강북 전체 서화계 쪽 유명 인사들이 수호 씨 고객이 될 거야.”서지예는 나를 잘 안다는 듯 너무나도 달콤한 제의를 해 거절할 수 없었다.나는 명함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 서지예가 손을 피하며 생글생글 웃었다.“우선 내 요구부터 응해. 내 요구에 응하면 명함 줄게.”나는 너무 어이없었다.“다른 선택지가 있어요? 언니가 오면 위치 보내줘요.”“좋아. 약속한 거야.”서지예는 곧바로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명함을 확인해 보니 위에 연상철이라고 적혀 있었다.“또 연씨네?”연승호도 연씨고, 연재혁도 연씨인데, 또 연상철이라니?‘설마 이 세 사람이 무슨 관
이게 바로 내 계획이다.오늘 조금 받아내고, 내일 조금 받아내면 결국 이 영감도 감당하지 못할 거다. 그러다가 서윤기와의 사이가 틀어지고 서윤기의 평판도 따라서 더러워질 거고.그럼 나는 그 사이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셈이다.사실 돈은 내 목적이 아니다. 때문에 일전한 푼 손댈 생각도 없다.다만 어릴 때부터 이런 짓을 해본 적 없는 나인지라, 오늘은 내 한계를 시험한 셈이었다.시간을 확인했더니 때가 이미 늦어 나는 현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민우는 그동안 자지 않고 우리를 기다렸다.“두 사람 뭐 하러 갔어? 왜 이제 와?”나는 현성과 눈빛을 교환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거짓말했다.“가게 내 약재를 정리했어.”현성의 거짓말에 민우가 뚫어져라 우리를 바라봤다.“진짜야? 그런데 왜 나는 안 불렀어? 너희 둘 설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가게 직원한테 들었는데 두 사람이 점심에 사무실에서 뭔 얘기했다며?”나는 손을 뻗어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쓸데없는 생각 그만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야. 늦었는데 얼른 자.”나와 현성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누웠다.민우는 여전히 우리를 의심했지만 딱히 증거가 없으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음날, 나는 현성을 일찍 깨워 두 번째 계획을 실시했다.민우는 깨어나자마자 현성이 보이지 않자 나에게 물었다.“현성은?”“몰라. 아침부터 안 보였어.”나는 거짓말했다.현성은 혼자 중얼거렸다.“이 자식 설마 또 선영이 보러 간 건 아니겠지?”현성이 꼭두새벽부터 큰일을 도모하러 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나는 현성이더러 맞은편 한약관이 문을 열기 전에 문 앞에 ‘가짜 약’, ‘사기’, ‘사기꾼’ 등과 같은 글을 붙여 놓으라고 했다.그 한약관의 평판을 무너뜨리려면 비열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인 걸 모르게 처리해야 한다.그리고 그중에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나와 민우가 천수당에 도착했을 때, 맞은편 가게 문 앞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만 그중
나는 손가락 5개를 폈다.“5백만 원.”이런 일은 조금씩 불려야지 처음부터 크게 부르면 상대가 놀랄 수 있다.5백만 원쯤은 이 영감이 요즘 번 수익에 비하면 아마 새 발의 피일 거다.결국 영감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래, 받아.”그러면서 핸드폰으로 나한테 계좌 이체를 해주려 했다.“계좌 이체는 됐고, 난 현금만 받아.”이건 나중에 꼬투리 잡힐 일 만들지 않으려는 수단이었다.영감은 이맛살을 구겼다.“여기 현금이 어디 있다고? 요즘은 다 카드 아니면 카카오페이를 사용하지...”“당신네 아파트 단지에 ATM 기계가 있던데. 24시간 오픈이라 그곳에서 현금 인출하면 되잖아. 여기서 기다릴게.”영감은 나를 째려보더니 결국 밖으로 나갔다.현성은 문소리가 나자마자 얼른 복도에 숨었다. 그사이 나는 조용히 집에서 기다렸다.그때 그 요염한 여자가 또 나타나더니 허리를 씰룩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오빠, 물 마실래요?”여자는 말하면서 내 옆에 앉았다. 그 순간 여자의 몸에서 나는 자극적인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냄새가 너무 독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하지만 여자는 자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를 꼬시려 들었다.아마도 그 영감이 평소 만족시켜 주지 못해 나를 노리는 모양이었다.나는 차가운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며 톡 쏘아붙였다.“싸게 굴긴.”여자는 순식간에 얼굴색이 변하더니 버럭 소리쳤다.“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싸 보인다고?”“아닌가? 속살 다 보이게 옷 입고 향수도 이렇게 독한 걸 쓴 게 꼬시려는 거 아니야? 당신 내 누에 안 차.”나는 여자를 단번에 밀쳤다.그 말에 열 받았는지 여자의 가슴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여자가 볼 때 나는 단지 서윤기 아래에서 일하는 똘마니였기에, 자기가 손가락만 까딱이면 내가 걸려들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여자는 비록 사장 영감의 돈이 탐나지만, 남자로 볼 때 나처럼 젊고 힘 있는 남자가 더 취향이었다. 어쨌든 젊은 그녀를 늙은 영감이 만족시켜 줄 리 만무했으니까. 하지만 여자는
밤 10시까지 기다리니 맞은편 가게도 손님이 점점 적어졌다.한약관 사장은 너무 좋아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그 사장의 차가 떠난 뒤 나와 현성은 바로 따라붙어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그의 집 문 앞까지 따라갔다.나이도 먹은 양반이 아내는 젊고 예뻤다. 심지어 몸매도 좋고 피부도 뽀얀 데다 아주 요염하고 섹시했다.“헐. 늙은 영감이 저렇게 젊은 아내를 얻었다니.”현성은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다만 나는 그 여자가 남자의 아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정부면 모를까.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준비됐어?”내가 현성에게 물었다.현성은 갑자기 불안한지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처음 이런 일을 하려니까 무서워. 어떡해?”“마음 다잡아. 이와 온 김에 반드시 성공해야지.”현성은 다급히 가슴을 내리치며 마음을 진정했다.“그럼 나 간다.”현성은 심호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남자의 집 문 앞에 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안에서 늙다리 사장의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배달이요.”영감은 문 앞에 다가와 경계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배달시킨 적 없는데, 잘못 온 거 아니에요?”“서윤기 씨가 보냈습니다.”나는 진작할 말을 생각해 두었다.영감은 서윤기라는 이름을 듣자 얼른 문을 열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서 사장님이 보낸 분이셨군요. 얼른 들어와요.”나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영감은 나에게 예의를 지키며 뜨거운 차까지 따라주었다.그사이 붉은 옷을 입은 여자는 침실 문에 기대선 채 나를 바라봤다. 마치 내가 두 사람의 좋은 분위기를 깨뜨렸다고 원망하듯이.그러자 영감은 얼른 달려가 여자더러 침실 안에서 기다리게 한 뒤 거실로 다시 돌아왔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서 사장님께서 배달을 다 보내시고. 너무 고생하시네요.”영감은 말하면서 주위를 살폈다.“배달한 물건은 어디 있죠?”나는 다리를 꼰 채 앉아 차갑게 웃었다.“제가 서 사장님 사람인 건 맞지만, 물건 배달하러 온 건 아닙니다.”영감의
민우는 우리 셋 중에서 인내심이 가장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게, 민우는 가장 돈에 쪼들렸기에 가게가 망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들어가.”나는 민우를 강제로 밀며 약재 정리를 시켰다.건너편 약방은 여전히 가격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고객 유입도 점점 많아졌다.나도 정 사장님처럼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사실 나도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서윤기는 나를 괴롭히는 게 목적일 테니, 이렇게 쉽게 맞은편 가게의 가격 전쟁을 끝내지 않을 거다.만약 이대로 간다면 우리 가게는 버티지 못한다.때문에 무조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가게로 돌아온 나는 현성을 내 사무실로 끌어들였다.“잠깐 와 봐. 너랑 할 얘기 있어.”“뭔데 이렇게 비밀스럽게 얘기해? 민우는 왜 안 부르고?”“민우는 성격이 불같아서 말하면 못 참을 것 같아. 그리고 이 일이 조금 위험한 거라 우리 셋이 한꺼번에 무슨 일을 당하면 안 돼. 한 명은 가게에 남아야지.”현성은 내가 큰일을 벌일 거라는 걸 눈치채고 곧장 물었다.“무슨 계획 있어?”“맞은편 가게 뒤에 누군가가 있어. 우리 가게를 일부러 우리를 겨냥하는 거야.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수 없어.”“혹시 상대가 가짜 약 쓴다는 거 까발리려고?”현성이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이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너무 번거로워. 나는 간단하지만 거친 방법을 사용할 생각이야.”현성은 더 흥분했다.“무슨 방법인데? 얼른 말해 봐.”나는 현성의 귓가에 대고 내 계획을 말했다. 그러자 현성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정말 이렇게 일 크게 벌이려고?”“일 크게 벌이지 않고 그 사람들 어떻게 혼내?”사람이 독하지 않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이 바닥에서 지내려면 그만큼 수단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현성은 조금 걱정하는 듯 말했다.“그러다가 잡히면 형벌 받아.”“무서워?”나는 현성을 보며 물었다.현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현성은 조금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