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 씨, 사실 나도 동성 말이 맞다고 봐요, 여자는 아무래도 남자의 손길을 타야 하니까. 안 그러면 빨리 늙어요. 동성은 태연 씨와 이혼하고 싶지 않고 또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도움 청한 거니 이게 오히려 두 사람 결혼생활에 더 좋을지도 몰라요.”왕정민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왕정민은 태연과 몸을 섞고 싶지만 본인이 지배자의 위치에서 태연이 스스로 몸을 바치기를 원했다.태연은 왕정민의 그런 태도에 구역질이 나 싸늘하게 말했다.“우리 결혼은 그런 방식으로 유지할 필요 없어요.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할 테니까 그만 가주세요.”이에 왕정민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태연 씨, 남의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여기 한 번 오는 게 쉬운 줄 알아요? 그런데 나를 이렇게 쫓아낸다고요?”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포기할 기미가 없는 듯한 왕정민의 태도에 태연은 어이가 없었다.왕정민이 저한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없었으니까.심지어 눈살 찌푸려지는 말까지 하며 말이다.결국 태연은 어두워진 얼굴로 문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고 왕정민을 쫓아냈다.“그만 가세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왕정민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 어두운 표정으로 문 앞에 걸어갔다.그러다가 갑자기 태연의 팔을 잡아당겨 제 품에 껴안고는 문을 닫아걸었다.그 순간 태연은 너무 놀라 버럭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 경고하는데, 그만둬요.”왕정민은 태연의 풍만한 몸매에 순간 반응했다.“뭐 하긴, 당연히 하려고 그러지. 동성이 태연 씨를 나한테 줬어요. 그러니 날 제대로 모셔요.”“어디서 순진한 척은, 욕구 불만인 주제에 남자 손 한동안 안 탔으면 저도 안달 났을 거면서.”왕정민은 몸집이 커다란 데다 힘까지 세서 힘도 들이지 않고 태연을 소파 쪽으로 끌어와 힘껏 밀었다.그 순간 태연의 몸은 소파에 세게 부딪히면서 가슴이 흔들렸고, 치마마저 말려 올라가며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태연 씨, 우리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동성도 태연 씨 생각해서 이러는 건데. 사실 동성은 태연 씨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데 자기가 만족시켜 주지 못해 영향을 줄까 봐 나한테 도움 처한 거예요.”“내가 방금 표현이 좀 과격해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 다시 제대로 설명해 줬잖아요, 그리고 강요할 마음도 없어요.”‘강요할 마음이 없다고?’‘당장이라도 겁탈할 것처럼 달려들었으면서 잘도 뻔뻔한 소리를 하네.’태연은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다. 태연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판단이 있기에 왕정민의 말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그저 눈앞의 남자를 보면 볼수록 역겹고 구역질 난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왕정민은 태연이 제 말에 설득된 줄 알고 슬그머니 태연의 손을 더듬었다.만약 거절하지 않으면 태연도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그러면 다시 제대로 공략하면 그만이다.심지어 남자의 손길을 오랫동안 타지 않은 여자, 특히 태연처럼 욕구불만인 여자는 분명 남자를 원할 거라고 확신했다.그걸 제대로 불붙여주면 태연을 손에 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하지만 생각 밖으로 태연은 왕정민의 손이 닿자마자 바로 쳐냈다.“손대지 마요. 왕정민 씨, 잘 들어요. 우리 남편 무슨 말을 했든 절대 정민 씨랑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태연 씨, 나랑 동성은 오랜 친구예요. 내가 친구 도와주자고 발 벗고 나서는데,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태연은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정말 그럴싸한 변명이네요. 나를 겁탈하려 하면서 도와준다고? 그것도 말이라고!”“아니에요, 난 정말 태연 씨를 돕고 싶어요.”“본인 아내도 오랫동안 방치했으면서, 왜 애교는 도와주겠다는 말 안 해요? 자기 아내한테도 무관심한 사람이 친구 아내를 걱정한다고? 무슨 속셈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요?”왕정민은 또 다시 얼굴을 구겼다.“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나랑 애교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알고 있으니까 방금 정민 씨 말이 역겹다는
태연은 바로 동성에게 전화해서 울먹였다.“진동성, 대체 뭐 하자는 거야?”[왜 그래? 무슨 일이야?]동성은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했다.“어설픈 연기 그만해. 왕정민이 사실대로 다 말했으니까. 나를 왕정민한테 팔아넘겼다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이 개자식아!”태연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동성은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솔직히 태연이 아주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가질 줄은 몰랐다.동성의 경솔함이 일을 완전히 그르쳤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해 봤자 소용은 없다. 때문에 동성은 끝까지 잡아떼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자기를 왕정민한테 팔아넘기다니? 자기는 내 아내인데 그럴 리 없잖아. 왕정민이 무슨 짓 했어? 이 개자식! 역시 그 자식이 더러운 마음 품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어쩐지 나더러 자기와 교대하라고 하더라니, 다 꿍꿍이가 있었네.]그 말에 태연은 바로 눈물을 그쳤다.“그게 무슨 말이야? 왕정민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응, 난 또 우리 부부를 생각해 주는 줄 알았지, 누가 뒤에서 자기를 노릴 줄 알았겠냐고. 설마 무슨 일 당한 건 아니지?]태연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내가 애교를 내세워 협박하니까 아무 짓도 못 하더라. 지금 맹세해. 정말 왕정민과 짜고 나 팔아넘긴 거 아니지?”태연은 동성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태연과 동성은 왕정민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그런 왕정민이 정말 태연을 어떻게 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지금껏 기다릴 이유가 없다.때문에 동성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동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맹세해. 절대 왕정민과 짜고 치지 않았어. 내가 거짓말하면 앞으로 남은 평생 남자구실 못할 거야.]‘독하네, 이런 맹세까지 하다니.’결국 태연은 그대로 넘어갔다.“그래, 이번 한 번만
하지만 방금 전 동성의 말에 태연은 너무나도 구역질이 났다.태연이 제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자기의 남편이 이미 변했다는 것이다.이기적이고 밑바닥까지 없는 인간으로.때문에 태연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자기 남편의 이미지가 그보다 더 밑바닥일까 봐.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동성과 앞으로 살아갈 자신조차 없어지게 될까 봐.“왜? 왜 이렇게 됐지?”태연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애초에 동성을 만나고 결혼까지 결심한 건 분명 동성의 정직함이 마음에 들어서였다.동성 가은 남자와 살아야 착실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사실 결혼한 지 몇 년 동안 동성은 늘 태연에게 잘해줬다.크고 작은 명절과 기념일이면 선물을 사다 주고 월급 카드도 태연에게 맡기고, 심지어 결혼한 뒤 산 집도 태연의 명의로 해줬다.게다가 세금 납부를 제때에 하고 매일 제 시간에 귀가하고 시간만 나면 태연과 함께 있어줬다.태연은 자기가 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하지만 2년 동안 회사 압력이 점점 처지면서 동성의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도 점점 커갔고 부부 생활에 전처럼 신경 쓸 수 없게 되었다.그것도 태연은 모두 받아들였다.정 안 되면 시험관 아기라도 가져보겠다는 생각을 안고.아무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현 상황을 해결할 생각뿐이었지 동성과 이혼하려는 선택지는 태연에게 없었다.하지만 오늘 그런 일이 벌어지고 동성에 대한 태연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애초에 태연을 알뜰히 보살피고 아껴주던 남자는 언제부터인가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왕정민처럼 이기적으로 변했다.태연의 마음은 너무 심란하고 복잡했다.‘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병원.비몽사몽한 상태로 잠자고 있던 나는 어렴풋이 들리는 형의 통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은연중에 태연이라는 이름을 들어 나는 단번에 형이 형수와 통화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형은 통화 내내 뭔가를 해명하고 있었고 상태도 조금 이상해 보였다.전화를 끊은 형을 보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형이 방금 뭐라고 그랬지?’‘왕정민이 형수를 안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형수는 형의 아내인데, 자기 아내를 남의 남자에게 바친다고?’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더욱이 항상 정직하기만 하던 형이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내 마음은 복잡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너무 고민되었다.저 남자는 분명 내 형인데. 분명 내가 어릴 때부터 친형처럼 따르던 형인데.나는 당장이라도 형한테 달려가 왜 이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형이 평소에 나한테는 정말 잘해줬으니까.때문에 나는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형은 왕정민과 통화를 끝낸 뒤 떠났지만 나는 화장실 문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어쩐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니.’형수를 생각하니 왕정민에 대한 증오가 극에 치달았다.‘이 쓰레기가 애교 누나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형수까지 넘봐?’나는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죽이고 싶었다.‘절대 이렇게 왕정민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할 수 없어.’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왕정민이 형수를 노린다는 걸 애교 누나에게 말했다.게다가 화가 잔뜩 나서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누나, 왕정민과의 이혼을 서둘러요. 그렇지 않으면 왕정민 그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리고 누나랑 남주 누나도 조심해요. 왕정민은 인간도 아니에요.]그 시각, 남주와 함께 법무사 사무소에서 명의이전 절차에 관해 물어보고 있던 애교는 저한테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남주는 애교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그러자 애교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남주에게 건넸다.그걸 본 남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왕정민 이 개 같은 자식, 이건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난 그래도 왕정민이 어느 정도 선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
“전에 나한테 집 명의이전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오늘 집 나서면서 모든 자료 준비했으니 그냥 와서 사인만 하면 돼.”‘사인은 개뿔.’애교와 남주가 짜고 자기에게 덫을 놓은 걸 알고 있었던 왕정민은 이를 갈았다.‘이 두 여편네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려는 걸 모를 줄 알고.’왕정민은 당연히 갈 리 없다. 물론 집 한 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애교에게 그냥 주는 건 너무 싫었다.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애교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계속 잡지 못해 아직은 애교와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된다는 거다.이에 왕정민은 거짓말로 무마하려 했다.“나 지금 밖에 있어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에 하자.”“지금 어디 있는데?”왕정민은 애교가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일부러 먼 곳을 댔다.하지만 애교는 여전히 제 뜻을 고수했다.“지금 보는 일 스톱하고 여기 와서 사인해. 그러고 나서 일 보러 다시 가. 집 명의 이전해 주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설마 지금 후회해?”“그럴 리가. 당신한테 주겠다고 했으면 당연히 줘야지. 하지만 나 지금 정말 너무 바쁜데.”이윽고 뭐라고 더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문 앞에서 철컥거리는 문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왕정민은 너무 놀라 소파에서 펄쩍 뛰어 일어났다.‘뭐야? 이애교가 돌아왔나?’‘설마 아예 문제를 단절하려고 진작 준비해 두었나?’‘안 돼. 이대로 잡힐 수 없어, 안 그러면 내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돼.’결국 왕정민은 다급히 베란다를 넘어 애교네 집으로 넘어갔다.그리고 얼마 뒤,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애교가 아니라 남주였다.남주는 일부러 소리를 죽인 채 몰래 들어와 증거를 잡으려 했다.하지만 놀랍게도 집안에는 왕정민이 없었다.결국 남주는 이곳 상황을 애교에게 알려주었고, 잠깐 생각하던 애교는 끝내 입을 열었다.“아직 안 갔을 거야. 태연 집에 가서 찾아봐.”“그렇지. 너희 집이 태연네 집과 이어졌지. 이 개자식이 분명 베란다로 넘어갔을 거야. 당장 가볼게. 좋은 소식 기다려.”남주는 곧장 태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온종일 노크했는데 왜 문은 안 열어? 설마 혼자 집에서 했어?”남주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그에 반해 태연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말 한번 제대로 하는 걸 못 봤네. 우리 집엔 왜 왔어?”“왕정민 너네 집에 있어?”남주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태연은 심장이 철렁해 거짓말했다.“미쳤어? 왕정민이 왜 여기 있어?”남주는 얼른 태연의 팔짱을 끼고는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애교가 왕정민 집을 자기 거로 명의이전 하려고 하거든, 하지만 그 개자식이 계속 숨어서 나타나지 않아. 애교랑 내가 모두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밖에서 일 본다고 하더라고.”“아까 애교 집에 쳐들어갔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 여전히 뜨거운 걸 봐서는 멀리 못 간 것 같은데. 너희 집이랑 애교네 집 베란다가 연결되어 있으니 분명 여기로 넘어왔을 거야.”“만약 왕정민이 여기 있으면 절대 숨겨주면 안 돼. 우리 수호한테서 들었거든, 왕정민이 너한테 몹쓸 짓 하려고 했다면서? 그런데 뭐 하러 감싸줘?”남주의 말을 듣는 내내 애교는 마음이 흔들리고 복잡하고 무거웠다.자기가 왕정민한테 당할뻔한 일이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졌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고, 다음으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애교와 남주의 목표는 아주 명확하다. 왕정민을 절대 편하게 살게 두지 않는 거.‘하지만 나는?’태연은 마치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방향을 잃고 앞길이 막막해 도무지 선택할 수 없었다.‘아예 왕정민과의 관계가 틀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지, 아니면 먼저 참고 동성과의 혼인을 ㅇ지할지.’“네가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베란다에서 직접 찾아보지 뭐.”남주는 말하면서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그때, 태연은 뜻밖에도 왕정민이 애교의 방문 뒤에 숨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 위치는 노출되기 매우 쉬웠다.그때 왕정민이 태연에게 손짓을 하며 당장 남주를 쫓아버리라고 명령했다.하지만 태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직 막막했으니까.그때
남주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담이 10개라도 내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걸. 우리 남편이 죽지 못해 살게 해줄 테니까. 그 인간이 정말 너네 집에 안 왔어? 내가 아까 꼼꼼히 살피지 못했나? 다시 찾아볼게.”“내가 도와줄까?”“그래, 찾아면 나랑 같이 끌고 법무사 사무소로 가자고.”태연은 외투 한 벌을 챙겨 남주와 함께 문을 나섰다.남주를 밖으로 유인하는 동시에 왕정민이 숨을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게다가 집에 남아 있다가 왕정민이 또 저를 노리면 큰일이니까.‘남자는 정말 하나 같이 믿으면 안 된다니까.’결과는 당연하게도 왕정민을 찾지 못했다.결국 남주는 풀이 죽어 애교에게 전화했다.“다 찾아봤는데 없어, 언제까지 숨어 지내는지 두고 보자고.”...왕정민은 태연의 집에 숨어 있다가 태연과 남주가 떠난 뒤 몰라 애교의 집을 떠났다.하지만 집도 소희한테도 아닌 호텔로 향했다.그러고는 동성에게 전화해 방법을 생각하도록 닦달했다.“방법 좀 제대로 생각해 봐. 우리 지금 상황 엄청 불리해. 애교는 나더러 진심을 증명해달라며 월급 카드를 바치라고 하고, 집 명의도 제 명의로 이전해달라고 해, 심지어 우리 회사까지 노리고 있다고.”“나 더 이상 못 기다려. 당장 우리 와이프가 바람피운 증거 찾아. 네 동생더러 오늘 밤에 움직이라고 해.”전화 건너편에서 동성은 순간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전에 분명 수호가 안 되면 나더러 나서라고 했으면서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데?’‘아직도 왕정민과 아내 바꾸기 게임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 왜 또 이러는 건데?’‘내가 오늘 내 마누라까지 바칠 뻔했는데, 뭔가 좀 성의 표시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동성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수호가 다리를 다쳐서 아마 힘들 것 같아. 낮에 나더러 시도해보라고 했잖아, 나도 돼? 아니면 내가 해볼까?”“왜? 너 설마 우리 마누라한테 침 흘리고 있었어?”왕정민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 말에 동성은 얼른
“네놈이 형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진동성 난 단지 진실을 원해.”나는 진동성을 빤히 주시했다.진동성은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내 눈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진실은 바로 그 교통사고는 단순 사고였어. 나도 네 형수가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 몰랐어.”“좋아!”나는 더 이상 진동성과 말씨름하기 싫었다. 이런 인간과 얘기하는 건 입만 아프니까.나는 두말없이 육교 가장자리로 차를 이동했다.그때 윤지은의 차가 내 차를 따라잡았다.“정수호, 명령하는데 당장 차 세워!”나는 윤지은을 무시한 채 반대쪽 차선으로 차를 돌렸다.육교의 양쪽은 모두 공중에 떠 있어 어느 쪽으로 부딪히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진동성, 빌어!”나는 액셀을 밟으며 난간 쪽으로 부딪혔다.“아! 정수호, 이 미친놈! 말할게. 말할게!”차 바퀴는 이미 난간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고 공중에 반만 둥둥 떠 있었다.정신을 차린 뒤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알아챘다.방금 1초만 늦었어도 나와 진동성은 아래로 떨어졌을 거다. 솔직히 나도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물었다.“말해. 그때 상황이 어땠어?”진동성의 얼굴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제야 내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만약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육교 아래로 돌진했을 거다.진동성의 목소리는 떨림이 가득했고 몸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난, 난 그냥 네 형수랑 좀 다투다가 실수로 떨어진 거야.”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역시 그 사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하지만 고작 이게 다라고?고작 몇 마디 다툰 거로 차가 통제력을 잃고 육교 아래로 떨어졌다면 왜 운전석에 앉은 진동성은 고작 찰과상만 있고 형수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걸까?“진동성, 한꺼번에 다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같이 여기서 떨어질
우연히 그림자를 통해 진동성이 벽돌을 휘두르는 걸 발견한 나는 재빨리 피해 진동성을 세게 걷어찼다.진동성은 내 발에 차여 연신 뒷걸음치더니 이내 벽돌을 던져버리고 도망쳤다.그 순간 나는 곧바로 뒤쫓았다.그러자 진동성이 도망치면서 소리쳤다.“정수호, 이 개자식아. 꼭 나를 죽여야만 해?”“내가 네 놈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네 놈이 죽으려고 설치는 거잖아.”“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수호야. 우리 그래도 형제처럼 지냈잖아. 그러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봐줘.”나는 진동성의 말을 무시한 채 그를 잡자마자 또 주먹질했다. 그러고는 그의 다리를 잡은 채 질질 끌어 다시 원래 자리로 끌고 갔다.그 모습을 본 윤미화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수호 씨가 이런 거야?”“윤 사장님, 지은 씨, 왕정민은 두 분한테 맡길게요. 난 우리 형을 데리고 교통사고를 체험하러 가야 해서요.”말을 마친 나는 진동성을 끌고 차에 올라탔다.차를 금방 샀을 때만 해도 나는 이게 내 애마라고 애지중지했었다. 비록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산 인생 첫 차였으니까.하지만 지금은 단지 진동성을 태운 채 교통사고 체험을 시켜주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조수석에 앉은 진동성도 형수처럼 세게 다칠지 확인하고 싶었다.진동성을 차에 밀어 넣은 뒤 나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그러자 진동성은 겁을 먹었는지 버럭 소리쳤다.“수호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빨리 밟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나는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다.“맞아. 사고 내려는 거야. 이따가 육교에서 떨어지면 네 놈도 정말 형수처럼 크게 다칠지 확인해야겠어.”진동성은 다급히 조수석 위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정수호, 너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멈춰. 당장 멈춰!”나는 차를 멈춰 세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진동성은 핸들을 잡으려고 버둥댔지만 나는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그래. 잡아. 더 빨리 죽고 싶으면.”진동성은 형수가
나는 두 사람한테서 모든 빚을 천천히 받아낼 작정이었다.나는 한참 때리다가 손이 힘들어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어찌 됐든 형수가 혼수상태가 된 게 진동성 짓이라고 확신했으니까.그렇게 나는 힘이 모두 빠져서야 동작을 멈추었다.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진동성이 도망칠까 봐 그의 옷을 잡고 있었다.나도 내가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그저 형수가 혼수상태라는 생각만 하면 분노가 차올라 힘도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진동성에 대한 미움도 더해져 진동성을 죽여서라도 형수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시뻘게진 눈으로 반쯤 죽은 듯 누워 있는 진동성을 보며 또다시 물었다.“형수가 저렇게 된 거 너랑 관련 있는 거 맞지?”진동성은 여전히 잡아뗐다.“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사고였어.”나는 또다시 진동성을 주먹질했다.“말 안 해도 괜찮아. 내가 싹 다 조사할 거니까. 진동성, 만약 이 일이 네놈 짓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그 순간 진동성이 나를 보는 눈빛에 두려움이 더해졌다. 그는 내가 이토록 살기를 내뿜는 눈빛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진동성은 겁에 질려 머리를 마구 저었다.“정말 아니야. 정말 나 아니라고.”나는 진동성을 발로 걷어차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 왕정민은 어디 있는데?”“나, 난 왕정민 대신 물건 가지러 왔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나한테 연락한다고 했어.”“물건은 가졌어?”내가 따져 물었다.그때 윤지은과 윤미화도 다가왔다.진동성은 전전긍긍하며 목을 움츠렸다.“서, 서류야.”진동성은 대충 얼버무렸다.“무슨 서류?”윤미화가 따져 물었다.그 옆에서 윤지은이 보충했다.“혹시 모든 핵심 서류를 챙겨 오라고 했어?”그 서류만 챙기면 왕정민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윤지은은 평소 차갑기만 하고 사업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릴 때부터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나와 윤미화보다 맥을 더 잘 짚었다.그때
나는 다급히 일어섰다.“그런다고 이렇게 나간다고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때 윤미화가 뒤에서 말했다.“분명 계획이 있을 거야. 따라가 보자.”윤지은이 이미 계획이 있다니 순간 궁금했다.나와 윤미화는 윤지은을 따라 왕정민 회사 입구에 도착했다.현재는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매우 조용했다.순간 문득 궁금해 물어보려던 그때 그림자 하나가 살금살금 수풀 뒤에서 걸어 나왔다.하지만 그 사람은 왕정민이 아니라 진동성이었다.진동성은 우리를 발견하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냉소를 지었다.“정수호, 설마 이런다고 왕정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이를 갈며 진동성을 바라봤다.“왕정민은 언젠가 잡혀. 계속 왕정민과 협력하면 분명 불똥이 튈 거야. 진동성, 이제 벼랑 끝이니 그만 멈춰.”“벼랑 끝? 하하, 정수호.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진동성은 나를 비아냥거렸다.“넌 나랑 다를 것 같아? 너도 여자 덕에 여기까지 왔잖아. 넌 뭐 대단한 것 같아?”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해 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까.“마음대로 말해. 왕정민은 어디 있어?”내 질문에 진동성은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나는 두말없이 진동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내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건 진동성뿐만 아니라 윤지은과 윤미화도 몰랐다.내가 평소에 고분고분하고 나약한 인상을 줘서인지 누구도 내가 먼저 진동성을 때릴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준비도 없이 한 대 맞은 진동성은 이를 갈며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네가 감히 나를 때려?”나는 두말없이 또 한 번 달려들었다.요 며칠간 나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 비록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진동성을 상대하기엔 충분했다.진동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강해졌는지 모를 거다. 진동성은 몇 대 맞다가 내 발에 차여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곧장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해대며 그가
나는 다급히 반박했다.“아니에요. 저 예전에는 계속 다퉜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은 씨가 저를 도와주고 있으니까 양보한 거죠.”“때리고 욕하는 것도 다 사랑이야. 그걸 모르겠어?”윤미화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그리고 두 사람 싸울 때 인신공격을 한 적 있어? 상대를 해친 적 있어? 그냥 입씨름으로 상대의 기세를 꺾으려고 했을 뿐이잖아.”윤미화는 나와 윤지은이 싸울 때마다 옆에 있었던 것처럼 제대로 맥을 짚었다.나는 놀란 눈빛으로 윤미화를 바라봤다.“윤 사장님, 혹시 제 배속에서 나왔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윤미화는 으쓱한 듯 웃었다.“뭐든 제삼자가 더 잘 아는 법이야. 사람과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해. 서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짝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에는 밉다가 점차 좋아할 수도 있어. 심지어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내가 볼 때 두 사람이 지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스타일이야. 내가 이따가 수호 씨 팔짱 끼면 윤지은 씨가 분명 더 화낼걸? 심지어 수호 씨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수도 있어.”나는 윤미화가 한 말을 곱씹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은 너무 복잡했다. 살짝 의아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윤지은 눈에 나는 늘 인간쓰레기였다. 그런데 귀하게 자란 재벌가 아가씨가 세상에 훌륭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걸 좋아할까?나는 오히려 예전처럼 지내는 게 훨씬 좋았다. 이게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한다면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하다. 내가 그럴 자격도 없고. 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이건 그만 생각할래요. 앞으로 건드리지 않으면 그만이에요.”“그런데 난 저 재벌가 아가씨가 정말 수호 씨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은데?”윤미화는 말하면서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윤지은 쪽을 흘긋거렸다. 다행히 윤지은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다급히 윤지은의 손을 뿌리쳤다.“사장님, 장난치지 마요. 정말
윤미화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함께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얼마 뒤 윤지은도 나타났다.윤지은까지 직접 온 건 매우 의외였다.“왜 왔어요?”“네가 여기서 죽은 것도 모를까 봐.”윤지은은 언제 한번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하니 오히려 내 긴장감이 줄어들었다.게다가 윤지은이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용기와 마음에 무척 감사했다.“동준 형님은요? 같이 안 왔어요?”윤지은도 왔는데 양동준이 안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양동준이 나서면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낼까?”보아하니 양동준은 부근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양동준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홉뜨며 말했다.“갑자기 이렇게 예의 차린다고?”나는 너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진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윤 사장님도 너무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제 귀인이에요.”윤미화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나중에 밥 사.”“당연하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보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옆에 있던 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종마.”윤지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내 귀에 콕 박혔다.나는 순간 어이없어 반박했다.“갑자기 왜 또 욕하고 그래요?”“욕하면 뭐?”윤지은은 더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윤지은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하더니 갑자기 기차 통을 삶아 먹었는지 화를 내다니.나는 너무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에 끝까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됐어요. 싸우기 싫어요. 내가 남자니까 참을게요.”나는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옆에 있던 윤미화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한편 나는 또 실수로 윤지은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때 윤미화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저 아가씨가 수호 씨 좋아하는 것
전승빈이 제 딸을 속일 방법은 수백 가지도 더 된다. 왕정민 같은 쓰레기가 딸 옆에 없다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닌가?만약 내가 전승빈이라면 오히려 왕정민이 영원히 사라져서 평생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거다.전승빈은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건 묻지 말게.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윤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승빈에게 말했다.“좋아요. 왕정민을 찾는 걸 도와드리죠. 그러면 제가 빚진 건 없었던 겁니다.”말을 마친 나는 윤미화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회사를 나오자마자 윤미화는 나한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왕정민은 분명 전승빈이 두려워서 숨었을 거예요. 그러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건 거의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왕정민은 분명 제가 죽도록 미울 거예요.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미쳤어? 이 와중에 왕정민을 만났다가 왕정민이 진짜 살의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왕정민은 현재 나 때문에 궁지에 몰렸으니 분명 나를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를 만나면 확실히 화를 입을 수 있었다.다만 이게 왕정민을 끌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안돼. 그건 너무 위험해. 내가 동의 못해!”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방법이 떠올랐어요. 지금 왕정민은 버림받은 개나 마찬가지라 분명 진동성을 찾아갈 거예요. 제가 병원에서 진동성만 잘 감시하면 될 거예요.”‘안 되겠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해. 안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했다.“지금 외과 병동으로 가서 진동성이 있는지 봐줄래요?”[그럴 필요 없어. 진동성이 방금 가는 걸 봤거든.]“젠장. 결국 한발 늦었네.”나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지은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이내 전승빈이 나한테 왕정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을 듣고
왕정민은 자기가 고용한 놈들이 저에게 반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너희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반항해?”왕정민은 버럭 소리치며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그러자 꽃무늬 셔츠가 콧방귀를 뀌었다.“전 회장님이 오라고 하십니다.”왕정민이 아는 사람 중 전 회장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전승빈뿐이다. 때문에 그는 단번에 전승빈을 떠올렸다.왕정민은 그제야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내가 전승빈과 손을 잡고 판 큰 함정.아쉽게도 왕정민은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왕정민은 자신이 전승빈 손에 들어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거였고.“빌어먹을!”왕정민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꽃무늬 셔츠에게 던지고는 신속히 밴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었다.그 누구도 왕정민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제야 반응한 꽃무늬 셔츠는 다급히 소리쳤다.“당장 쫓아!”꽃무늬 셔츠는 필두로 한 무리는 다급히 밴을 쫓았다. 다만 사람이 차를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왕정민은 밴을 몰고 도망쳤다.“젠장.”꽃무늬 셔츠는 곧바로 전승빈에게 전화해 왕정민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제 무리를 데리고 떠났다.한참 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승빈이었다.[증거는 입수했나?]“네.”[왕정민은 왜 도망치게 뒀지?]전승빈은 화가 난 듯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저는 함정을 파서 왕정민이 뛰어들게 하는 것만 책임졌지 사람까지 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왕정민이 도망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왕정민이 도망치면 우리가 지금껏 한 게 뭔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내 부하 놈들과 협력해서 왕정민을 잡아와!]나는 전승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제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왜 왕정민을 잡는 것까지 도와줘야 하지?’그때 윤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전 회장
이로써 왕정민의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당장 저 자식 다리부터 분질러!”왕정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소리쳤다.그러자 건달들은 무기를 든 채 하나둘씩 나에게 달려들었다.그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이 나더러 벽 쪽으로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나는 얼른 구석진 벽 쪽으로 달려갔다.건달 놈들은 멋모르고 나에게 달려왔다. 꽃무늬 셔츠는 내 앞에 막아서면서 나와 싸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반항하기 시작했다.나는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모두 건달 놈들에게 풀었다.“아!”나는 소리 지르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해댔다.마음 같았으면 놈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내 기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점차 뒷걸음치기 시작했다.나는 감정이 폭발해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이봐. 죽일 테면 죽여 봐! 덤벼!”하지만 나에게 덤비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그러자 결국 왕정민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 비켜. 내가 직접 한다.”왕정민은 몽둥이를 들어 내 다리를 내리쳤다.그 기회를 봐 내가 반격하려 할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단번에 왕정민을 걷어찼다.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나타난 변석훈을 바라봤다.“석훈 형님, 여긴 어떻게 왔어요?”“넌 윤 회장님 사람이야. 윤 회장님이 널 죽이지 않는 한 다른 놈이 널 죽일 수는 없어.”변석훈은 간단하게 온 이유를 설명했다.그때 윤미화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수호 씨, 얼른 내려와. 이 증거로 저 자식들 잡을 수 있어.”나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매우 완벽했다. 특히 왕정민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좋아요. 우리 가요.”그제야 왕정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거기 서!”왕정민은 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결국 윤미화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윤미화, 감히 날 갖고 놀아?”윤미화는 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