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방금 뭐라고 그랬지?’‘왕정민이 형수를 안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형수는 형의 아내인데, 자기 아내를 남의 남자에게 바친다고?’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더욱이 항상 정직하기만 하던 형이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내 마음은 복잡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너무 고민되었다.저 남자는 분명 내 형인데. 분명 내가 어릴 때부터 친형처럼 따르던 형인데.나는 당장이라도 형한테 달려가 왜 이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형이 평소에 나한테는 정말 잘해줬으니까.때문에 나는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형은 왕정민과 통화를 끝낸 뒤 떠났지만 나는 화장실 문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어쩐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니.’형수를 생각하니 왕정민에 대한 증오가 극에 치달았다.‘이 쓰레기가 애교 누나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형수까지 넘봐?’나는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죽이고 싶었다.‘절대 이렇게 왕정민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할 수 없어.’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왕정민이 형수를 노린다는 걸 애교 누나에게 말했다.게다가 화가 잔뜩 나서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누나, 왕정민과의 이혼을 서둘러요. 그렇지 않으면 왕정민 그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리고 누나랑 남주 누나도 조심해요. 왕정민은 인간도 아니에요.]그 시각, 남주와 함께 법무사 사무소에서 명의이전 절차에 관해 물어보고 있던 애교는 저한테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남주는 애교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그러자 애교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남주에게 건넸다.그걸 본 남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왕정민 이 개 같은 자식, 이건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난 그래도 왕정민이 어느 정도 선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
“전에 나한테 집 명의이전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오늘 집 나서면서 모든 자료 준비했으니 그냥 와서 사인만 하면 돼.”‘사인은 개뿔.’애교와 남주가 짜고 자기에게 덫을 놓은 걸 알고 있었던 왕정민은 이를 갈았다.‘이 두 여편네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려는 걸 모를 줄 알고.’왕정민은 당연히 갈 리 없다. 물론 집 한 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애교에게 그냥 주는 건 너무 싫었다.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애교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계속 잡지 못해 아직은 애교와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된다는 거다.이에 왕정민은 거짓말로 무마하려 했다.“나 지금 밖에 있어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에 하자.”“지금 어디 있는데?”왕정민은 애교가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일부러 먼 곳을 댔다.하지만 애교는 여전히 제 뜻을 고수했다.“지금 보는 일 스톱하고 여기 와서 사인해. 그러고 나서 일 보러 다시 가. 집 명의 이전해 주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설마 지금 후회해?”“그럴 리가. 당신한테 주겠다고 했으면 당연히 줘야지. 하지만 나 지금 정말 너무 바쁜데.”이윽고 뭐라고 더 말하려 할 때 갑자기 문 앞에서 철컥거리는 문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왕정민은 너무 놀라 소파에서 펄쩍 뛰어 일어났다.‘뭐야? 이애교가 돌아왔나?’‘설마 아예 문제를 단절하려고 진작 준비해 두었나?’‘안 돼. 이대로 잡힐 수 없어, 안 그러면 내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돼.’결국 왕정민은 다급히 베란다를 넘어 애교네 집으로 넘어갔다.그리고 얼마 뒤,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애교가 아니라 남주였다.남주는 일부러 소리를 죽인 채 몰래 들어와 증거를 잡으려 했다.하지만 놀랍게도 집안에는 왕정민이 없었다.결국 남주는 이곳 상황을 애교에게 알려주었고, 잠깐 생각하던 애교는 끝내 입을 열었다.“아직 안 갔을 거야. 태연 집에 가서 찾아봐.”“그렇지. 너희 집이 태연네 집과 이어졌지. 이 개자식이 분명 베란다로 넘어갔을 거야. 당장 가볼게. 좋은 소식 기다려.”남주는 곧장 태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온종일 노크했는데 왜 문은 안 열어? 설마 혼자 집에서 했어?”남주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그에 반해 태연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말 한번 제대로 하는 걸 못 봤네. 우리 집엔 왜 왔어?”“왕정민 너네 집에 있어?”남주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태연은 심장이 철렁해 거짓말했다.“미쳤어? 왕정민이 왜 여기 있어?”남주는 얼른 태연의 팔짱을 끼고는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애교가 왕정민 집을 자기 거로 명의이전 하려고 하거든, 하지만 그 개자식이 계속 숨어서 나타나지 않아. 애교랑 내가 모두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밖에서 일 본다고 하더라고.”“아까 애교 집에 쳐들어갔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 여전히 뜨거운 걸 봐서는 멀리 못 간 것 같은데. 너희 집이랑 애교네 집 베란다가 연결되어 있으니 분명 여기로 넘어왔을 거야.”“만약 왕정민이 여기 있으면 절대 숨겨주면 안 돼. 우리 수호한테서 들었거든, 왕정민이 너한테 몹쓸 짓 하려고 했다면서? 그런데 뭐 하러 감싸줘?”남주의 말을 듣는 내내 애교는 마음이 흔들리고 복잡하고 무거웠다.자기가 왕정민한테 당할뻔한 일이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졌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고, 다음으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애교와 남주의 목표는 아주 명확하다. 왕정민을 절대 편하게 살게 두지 않는 거.‘하지만 나는?’태연은 마치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방향을 잃고 앞길이 막막해 도무지 선택할 수 없었다.‘아예 왕정민과의 관계가 틀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지, 아니면 먼저 참고 동성과의 혼인을 ㅇ지할지.’“네가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베란다에서 직접 찾아보지 뭐.”남주는 말하면서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그때, 태연은 뜻밖에도 왕정민이 애교의 방문 뒤에 숨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 위치는 노출되기 매우 쉬웠다.그때 왕정민이 태연에게 손짓을 하며 당장 남주를 쫓아버리라고 명령했다.하지만 태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직 막막했으니까.그때
남주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담이 10개라도 내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걸. 우리 남편이 죽지 못해 살게 해줄 테니까. 그 인간이 정말 너네 집에 안 왔어? 내가 아까 꼼꼼히 살피지 못했나? 다시 찾아볼게.”“내가 도와줄까?”“그래, 찾아면 나랑 같이 끌고 법무사 사무소로 가자고.”태연은 외투 한 벌을 챙겨 남주와 함께 문을 나섰다.남주를 밖으로 유인하는 동시에 왕정민이 숨을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게다가 집에 남아 있다가 왕정민이 또 저를 노리면 큰일이니까.‘남자는 정말 하나 같이 믿으면 안 된다니까.’결과는 당연하게도 왕정민을 찾지 못했다.결국 남주는 풀이 죽어 애교에게 전화했다.“다 찾아봤는데 없어, 언제까지 숨어 지내는지 두고 보자고.”...왕정민은 태연의 집에 숨어 있다가 태연과 남주가 떠난 뒤 몰라 애교의 집을 떠났다.하지만 집도 소희한테도 아닌 호텔로 향했다.그러고는 동성에게 전화해 방법을 생각하도록 닦달했다.“방법 좀 제대로 생각해 봐. 우리 지금 상황 엄청 불리해. 애교는 나더러 진심을 증명해달라며 월급 카드를 바치라고 하고, 집 명의도 제 명의로 이전해달라고 해, 심지어 우리 회사까지 노리고 있다고.”“나 더 이상 못 기다려. 당장 우리 와이프가 바람피운 증거 찾아. 네 동생더러 오늘 밤에 움직이라고 해.”전화 건너편에서 동성은 순간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전에 분명 수호가 안 되면 나더러 나서라고 했으면서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데?’‘아직도 왕정민과 아내 바꾸기 게임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 왜 또 이러는 건데?’‘내가 오늘 내 마누라까지 바칠 뻔했는데, 뭔가 좀 성의 표시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동성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수호가 다리를 다쳐서 아마 힘들 것 같아. 낮에 나더러 시도해보라고 했잖아, 나도 돼? 아니면 내가 해볼까?”“왜? 너 설마 우리 마누라한테 침 흘리고 있었어?”왕정민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 말에 동성은 얼른
하지만 동성은 왠지 모르게 왕정민의 목적이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자기 마누라한테 손대지 말라는 것처럼.그런 기분은 왠지 미묘하게 짜증이 났다.하지만 자기 회사를 위하여, 왕정민과 협력하기 위하여 동성은 의심이 들어도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그저 예전처럼 헤실 웃으며 말했다.“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따가 내 동생한테 말해볼게.”전화를 끊은 형은 다시 내 병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낯빛은 조금 어두웠다.그걸 본 나는 무의식중에 물었다.“형,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수호야, 방금 왕정민이 전화 왔는데 애교 씨가 자기를 협박하고 있대. 그러니 오늘 밤 무조건 애교 씨 자빠뜨리라고 하네.”형의 말에 내 마음은 순간 철렁했다.‘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나? 어떡하지?’형은 나랑 애교 누나가 이미 한 편이 되어 있다는 걸 모르기에 왕정민이 맡겨준 임무를 한시 빨리 완수할 생각뿐이었다.“수호야, 내가 이따 곧 퇴원 수속 밟을 테니 우리 먼저 돌아가. 오늘 밤 내가 기회 만들어 줄게.”형은 자기 계획만 생각하느라 내 표정은 아예 눈치채지 못했다.이에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병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퇴원 수속을 밟으러 간 사이, 나는 얼른 애교 누나한테 전화해 방금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랬더니 애교 누나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왕정민 이 개가식, 인간도 아니야.”“애교 누나, 지금 왕정민을 욕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얼른 방법 생각해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머리 아픈 듯 말했다.“아직 생각 못 해봤는데 어떡해요? 왕정민이 계속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애교 누나,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내 말에 애교 누나는 이내 흥분한 듯 물었다.“무슨 방법인데요? 말해봐요.”“왕정민이 지금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건 저한테 기회를 주려는 거잖아요. 제가 애교 누나를 자빠뜨려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잡으려고. 그럼 증거 잡혀줘야죠.”말을
“왕정민도 분명 경계를 늦출 거예요. 그러면 그 사이, 누나는 집 명의를 이전하고 회사 지분 절반을 차지해요.”애교 누나는 곧바로 내 뜻을 이해하고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러니까 나더러 직접 오픈하라는 뜻이죠?”“맞아요. 왕정민은 누나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만 잡으면 당연히 누나를 빈몸으로 쫓아내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그건 절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기회에 누나가 원하는 걸 말해요.”“누나가 왕정민을 어떻게 구슬리는지에 달렸어요. 하지만 뭐가 됐든 왕정민은 분명 경계가 느슨해질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그 때가 바로 기회에요. 왕정민의 경계만 무너지면 사인을 하게 하든 도장을 찍게 하든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전화 건너편에서 애교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수호 씨 말이 맞아요. 내가 왕정민과 사이가 틀어진 뒤 내가 원하는 걸 빼앗아 오는 건 불가능해요. 유일한 기회는 왕정민이 경계를 늦출 때예요.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요. 됐어요, 이만 말해요. 남주가 왔으니까.”전화를 끊은 뒤, 나는 침대에 앉아 오랫동안 진정할 수 없었다.이제 곧 폭풍우가 닥칠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죽는지 사는지는 오늘 밤에 달렸다.“수호야, 퇴원 수속 끝났으니 우리 이만 가자.”형의 초조해하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차에서 오는 내내 형은 형수에게 전화해 내 퇴원 사실을 알렸다.그러고는 형수더러 상을 차려 내 퇴원을 축하하자고 제안했다.물론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도 함께 불러서.나는 순간 형이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겠다던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집에 도착하자 형은 모든 일을 형수에게 말했고, 형수는 늘 그랬듯 오픈 된 마음으로 형과 얘기 나누었다.형수는 계약에 관한 얘기는 입밖에도 내지 않은 채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왕정민 이 개자식, 오늘 나를 겁탈하려 한 것도 모자라. 나 이제 도와줄 마음도 없어.”“태연아, 낮에 일은 잠시 언급하지 말자. 지금 고비를 넘기는 게
형이 떠나자 형수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 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사실 형수도 동성과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고, 가장 원하지 않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니 괴로울 뿐이었다.솔직히 형수는 형과의 관계가 애교 누나네 부부처럼 될까 봐 걱정됐다.형과 결혼한 몇 년 동안, 둘이 이 지경에 이를 거라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데 말이다.정말 그 지경에 이르면 양가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하고 초조했다.쾅쾅쾅-그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려왔다.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가 들어오자 형수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추스르고 가서 문을 열었다.“왔어? 얼른 들어와.”형수가 여상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기자 남주 누나가 헤실 웃으며 말했다.“푸들은 어디 있어?”“왜 자꾸 푸들이라고 하는 거야? 남의 동생한테, 정수호라고 불러. 최남주, 앞으로 다시는 수호 씨 그렇게 부르지 마.”형수는 여전히 나를 변함없이 지켜주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형수의 화를 돋우는 게 낙인지 계속해서 형수의 심기를 건드렸다.“수호가 푸들이랑 다를 게 뭐 있어? 맨날 발정 나면서 감히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그 말에 형수가 화가 난 듯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뭐라는 거야? 아니거든. 우리 수호 씨 엄청 점잖거든.”“점잖고 말고 상관없어. 난 지금 당장 수호 볼 거라고. 푸들, 어디 있어? 누나 왔다.”남주 누나는 목청껏 나를 불렀다.나는 진작 그 목소리를 듣고 모른 체하려 했지만, 말하지 않으면 남주 누나가 분명 찾아와서 나를 찢어 죽일 듯 굴 게 뻔했기에 결국 마지못 해 고개를 끄덕였다.“저 여기 있어요.”그러고 나서 나는 남주 누나의 발소리를 들었다.남주 누나는 내 침대에 앉자마자 내 바지를 내리려고 했다.“얼른 봐 봐. 회복 잘 됐나.”“남주 누나, 그만 좀 해요. 우리 형이 놀라겠어요.”내가 얼른 귀띔했지만 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
이렇게 정열적이고 여성미 넘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형한테는 왜 없나 무척이나 아쉬워했다.형이 밖으로 나갈 때 익숙한 그림자 하나가 언뜻 지나갔다.애교 누나는 오늘 저녁 너무 예뻤다. 하늘색 원피스가 늘씬한 몸매를 더 도드라지게 했고, 예쁘고 긴 다리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오늘 유달리 부드러워 욕망과 탐욕을 불러일으켰다.이런 여신 같은 여자가 내 여자가 된다는 것에 형은 무척이나 부러워했고 심지어 질투했다.남주 누나는 매일같이 내 곁에서 맴돌고, 애교 누나는 이제 곧 내 여자가 될 테니까.‘왜 모든 여자가 수호 곁에서만 맴돌지?’헛된 생각이 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형은 일부러 떠나갔다.그리고 애교 누나는 곧바로 나에게로 다가왔다.너무나도 아름다운 애교 누나를 보니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애교 누나, 오늘 너무 예뻐요.”그 말에 남주 누나가 언짢은 듯 내 다리를 꼬집었고 나는 순간 비명 질렀다.“남주 누나, 뭐 하는 거예요?”“너야말로 무슨 뜻이야? 애교만 예쁘고, 나는 안 예뻐?”“누나도 당연히 예쁘죠. 그런데 다른 스타일이에요.”“그 말인즉 내가 안 예쁘다는 거잖아. 내가 아까 들어올 때는 눈을 반짝이지도 않고 칭찬도 안 했으면서. 흥, 나 삐졌어. 앞으로 너랑 말 안 섞을 거야.”‘이러면 안 되는데? 요즘 이 요물 같은 누나가 나 건드리는 거에 꽤 재미 들였는데.’“그럼 지금이라도 칭찬할까요?”“늦었어. 누워서 절 받기도 아니고, 나한테 그런 거 안 통해. 뭐 내가 원하는 걸 해주면 모를까...”“원하는 거 뭐요?”나는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제 볼을 콕콕 찔렀다.“나한테 입 맞춰. 그러면 믿어줄게.”“네?”나는 무의식적으로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이거 어떡하지?’그때 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뒤돌아 떠나버렸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다급히 말했다.“입 맞출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나 지금 간다?”애교 누나가 떠나 그나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
“그럼 왜 진작 데려오지 않았어?”소여정은 나를 나무라는 듯 노려봤다.“저도 어제저녁에 갑자기 생각난 거예요. 외지에서 학교 다니다 보면 고향에 내려갈 일이 적잖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그때 소여정이 크게 하품했다.“하, 피곤해. 난 먼저 휴식하러 테니 여기 지키고 있어.”“네, 먼저 들어가 쉬세요.”소여정은 정말 피곤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사실 소여정도 따지고 보면 참 좋은 사람이다. 친구 남편이 아프다고 이렇게 고생도 마다하고 밤새도록 환자 곁을 지켜줬으니 말이다. 그것도 임천호한테 그렇게나 예쁨 받는 사람이.이렇게 의리 있는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소여정이 가니 정태곤도 따라 나갔다.정태곤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수문장처럼 꿋꿋이 소여정을 지키기만 한다.다행히 요즘 두 번이나 만났는데 정태곤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아, 나도 정태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나는 얼른 병상 앞에 와서 진료 과정을 묵묵히 관찰했다.어르신이 진료할 때 우리 할아버지와 매우 닮았다. 모두 진지하고 엄격해 나는 감히 뭘 물어보지도, 방해하지도 못했다.나도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한의사가 환자의 맥을 짚어보는 과정에 누군가 물어보면 짜증 난다는 걸 잘 안다.얼마 뒤 어르신이 맥을 짚던 손을 내리자 나는 얼른 물었다.“할아버지, 어때요?”어르신은 제 수염을 한번 쓸며 말했다.“상황이 좋지 않아. 만약 계속 서의학 방법으로 치료하면 상태가 더 나빠질 거야.”나도 사실 처음에 똑같은 의견이었다. 다만 이제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한 말에 얼마나 힘이 있을까? 아마 말해도 믿는 사람이 없을 거다.그런데 어르신의 말이 내 추측을 증명한 셈이다.“침술과 한약 치료를 병행하는 게 더 좋은 거죠? 그래야 근본을 다지고 원기를 북돋울 수 있어 간의 손상을 줄일 수 있는 거죠?”나는 내 견해를 말했다. 무엇보다 어르신처럼 의술이 대단한 분이 앞에 계시는데, 이 기회에 잘 배워둘 작정이었다.그때 어르
어르신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너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도 한의학을 배울 좋을 인재라고 하면서 나더러 나중에 많이 도와주라고 한 적도 있어.][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이 이리저리 떠돌며 의학을 배운 사람을 믿지 못하잖니. 대부분 학교에서 정식적인 교육을 받아서. 하지만 나한테 있는 방법이 민간요법이고 이상한데 받아들일 수 있겠어?]“우리 사장님 병만 고칠 수 있다면...”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이 끼어들었다.[고칠 수는 없어. 간병은 억제할 수 있을 뿐이지 완치는 어려워.]내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억제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고통을 줄여 주시면 돼요.”[그래. 날 믿으면 됐어.]나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다급히 말했다.“그럼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어르신은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주소는 유미 사모님 집과 그리 멀지 않았다.나는 이 소식을 서둘러 사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어르신이 정말 사장님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지 아직은 몰랐으니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지금 말해봤자 오히려 실망만 할 거다. 게다가 사모님께 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다.때문에 나는 아침을 사러 가는 척 말하고 차를 몰고 어르신을 모시러 갔다.20분 뒤, 나는 어르신을 만났다.하지만 어르신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90이 넘는 노인이었는데 놀랍도록 정정했다. 이러니까 이 어르신이 선단을 드셨다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 댄 거였다.물론, 나는 사람을 장생불로 하는 선단 같은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르신은 그저 보양할 줄 아는 거다. 게다가 자식들이 모두 효도하니 뭘 해도 기분이 좋을 거고, 그러니 자연스레 고민 없이 사는 거다.“봉섭 할아버지, 저 정수호예요.”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르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위라래로 살펴봤다.“네가 어릴 적에 네 할아버지가 너를 우리 집에 자주 데려왔었는데, 눈 깜짝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용주가 까라면 까야지.”윤미화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한순간 집에는 나와 사모님 둘만 남게 되었다.나는 사모님 방 쪽을 한번 확인했다. 문이 꼭 닫혀 있는 데다 아무 인기척도 안 들리는 걸 봐서는 이미 자는 모양이었다.나는 다시 객실로 가지 않고 아예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소파에 누운 지 얼마되지 않아 사모님 방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얼른 사모님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야심한 밤에 여자 방을 들락거리는 건 좀 아닌 듯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못들은 척하자니 또 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려 순간 모순이 됐다.결국 나는 결심을 내리고 노크했다.“사모님, 괜찮아요?”“괜, 괜찮아요. 상환 말고 얼른 자요.”사모님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울지 마요. 더 울면 몸 상해요. 그러면 사장님은 어떡해요?”내 말에 큰 힘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다.그때 안에서 ‘네’라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내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소파 쪽으로 돌아갔다.이 상황에서 아무리 위로해 봤자 소용이 없다.하지만 그 순간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그분은 나와 한 동네에 살았던 어르신인데, 젊을 적에 내 할아버지와 어울려 지내며 의술을 익혔다.올해로 90살쯤 됐는데 이상하게 그분은 한 번도 앓은 적이 없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그 어르신이 스스로 몸조리해서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그 어르신한테 사장님을 고칠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나 나는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시도해 보는 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다음 날 아침,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해 사장님 상황을 대충 말씀드리고 어머니더러 그 어르신한테 슬쩍 물어보라고 부탁했다.어머니도 우리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침 일찍 식사도 하지 않고 어르신
‘장난하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시 토해내라니. 절대 안 돼.’나는 돈도 없는 주머니를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그건 안 돼요.”“그럼 얌전히 여기 있다가 내가 없을 때 유미 대신 좀 돌봐 줘.”난 여전히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윤 사장님, 제가 싫은 게 아니라, 유미 사모님 평판이 나빠질 거예요.”“수호 씨가 유미를 노리지 않는 이상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잖아. 오래전부터 유미를 노리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나는 얼른 도리질했다.“그런 적 없어요. 전 사모님을 항상 존경해 왔어요.”“그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남아.”윤미화의 태도가 너무 강경한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두 사람은 나에게 객실을 내주었다.유미 사모님의 집은 윤미화 집 못지않게 널찍하고 사치스러웠다. 방 4개에 거실 2개인 데다 인테리어가 화려했다.객실 침대에 누워 보니 평범한 침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아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았다.천수당, 이태웅, 왕정민이 하나하나 내 뇌리를 스치다가 결국에는 동성 형까지 떠올랐다.동성 형을 떠올리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용천 호텔에서 돌아온 뒤로 동성 형과는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형수는 동성 형이 이제는 대놓고 밖으로 나돌고 있다고 했었다.형수도 지금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거다.나는 얼른 문자로 형수 동생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한테서 답장이 왔다.[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이제는 아예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에요.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난 집에 돌아왔고요.][그럼 형은요? 형은 요즘도 집에 안 들어와요?][들어왔어요. 하지만 계속 각방 써요.]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왜요?][왜긴요, 요즘 일이 바쁘다면서 밤 늦게 들어오는데, 나를 방해하기 싫다면서 따로 자요.]그건 다 핑계일뿐이다. 사실 형수는 누구 보다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티를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