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떠나자 형수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 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사실 형수도 동성과 사이가 틀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고, 가장 원하지 않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니 괴로울 뿐이었다.솔직히 형수는 형과의 관계가 애교 누나네 부부처럼 될까 봐 걱정됐다.형과 결혼한 몇 년 동안, 둘이 이 지경에 이를 거라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데 말이다.정말 그 지경에 이르면 양가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하고 초조했다.쾅쾅쾅-그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려왔다.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가 들어오자 형수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추스르고 가서 문을 열었다.“왔어? 얼른 들어와.”형수가 여상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기자 남주 누나가 헤실 웃으며 말했다.“푸들은 어디 있어?”“왜 자꾸 푸들이라고 하는 거야? 남의 동생한테, 정수호라고 불러. 최남주, 앞으로 다시는 수호 씨 그렇게 부르지 마.”형수는 여전히 나를 변함없이 지켜주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형수의 화를 돋우는 게 낙인지 계속해서 형수의 심기를 건드렸다.“수호가 푸들이랑 다를 게 뭐 있어? 맨날 발정 나면서 감히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그 말에 형수가 화가 난 듯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뭐라는 거야? 아니거든. 우리 수호 씨 엄청 점잖거든.”“점잖고 말고 상관없어. 난 지금 당장 수호 볼 거라고. 푸들, 어디 있어? 누나 왔다.”남주 누나는 목청껏 나를 불렀다.나는 진작 그 목소리를 듣고 모른 체하려 했지만, 말하지 않으면 남주 누나가 분명 찾아와서 나를 찢어 죽일 듯 굴 게 뻔했기에 결국 마지못 해 고개를 끄덕였다.“저 여기 있어요.”그러고 나서 나는 남주 누나의 발소리를 들었다.남주 누나는 내 침대에 앉자마자 내 바지를 내리려고 했다.“얼른 봐 봐. 회복 잘 됐나.”“남주 누나, 그만 좀 해요. 우리 형이 놀라겠어요.”내가 얼른 귀띔했지만 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
이렇게 정열적이고 여성미 넘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형한테는 왜 없나 무척이나 아쉬워했다.형이 밖으로 나갈 때 익숙한 그림자 하나가 언뜻 지나갔다.애교 누나는 오늘 저녁 너무 예뻤다. 하늘색 원피스가 늘씬한 몸매를 더 도드라지게 했고, 예쁘고 긴 다리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오늘 유달리 부드러워 욕망과 탐욕을 불러일으켰다.이런 여신 같은 여자가 내 여자가 된다는 것에 형은 무척이나 부러워했고 심지어 질투했다.남주 누나는 매일같이 내 곁에서 맴돌고, 애교 누나는 이제 곧 내 여자가 될 테니까.‘왜 모든 여자가 수호 곁에서만 맴돌지?’헛된 생각이 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형은 일부러 떠나갔다.그리고 애교 누나는 곧바로 나에게로 다가왔다.너무나도 아름다운 애교 누나를 보니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애교 누나, 오늘 너무 예뻐요.”그 말에 남주 누나가 언짢은 듯 내 다리를 꼬집었고 나는 순간 비명 질렀다.“남주 누나, 뭐 하는 거예요?”“너야말로 무슨 뜻이야? 애교만 예쁘고, 나는 안 예뻐?”“누나도 당연히 예쁘죠. 그런데 다른 스타일이에요.”“그 말인즉 내가 안 예쁘다는 거잖아. 내가 아까 들어올 때는 눈을 반짝이지도 않고 칭찬도 안 했으면서. 흥, 나 삐졌어. 앞으로 너랑 말 안 섞을 거야.”‘이러면 안 되는데? 요즘 이 요물 같은 누나가 나 건드리는 거에 꽤 재미 들였는데.’“그럼 지금이라도 칭찬할까요?”“늦었어. 누워서 절 받기도 아니고, 나한테 그런 거 안 통해. 뭐 내가 원하는 걸 해주면 모를까...”“원하는 거 뭐요?”나는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제 볼을 콕콕 찔렀다.“나한테 입 맞춰. 그러면 믿어줄게.”“네?”나는 무의식적으로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이거 어떡하지?’그때 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뒤돌아 떠나버렸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다급히 말했다.“입 맞출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나 지금 간다?”애교 누나가 떠나 그나마
‘젠장. 또 나를 놀리는 거잖아.’만약 이 집에 우리 둘뿐이라면, 나는 당장 남주 누나를 자빠뜨렸을 거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갑자기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라 나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게다가 남주 누나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또 나를 놀리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니까.이에 나는 다급히 남주 누나를 밀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싫어요.”“정말이야?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싫어?”남주 누나는 내 말이 충격이라는 듯 눈이 휘둥그레서 물었다.“제가 싫은 게 아니라, 감히 그러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동안 한 두 번 속였어야 말이지, 이번에도 또 놀리는 거면 어떡해요? 게다가 밖에 사람도 많은데, 아무리 원해도 저만 괴로울 거잖아요.”나는 약간 불만 투로 투덜댔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싱긋 웃었다.“그러고 싶은데 못하는 거라면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게. 하지만 싫다면 뭐, 없던 일로 하고.”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남주 누나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대체 무슨 뜻이지? 설마 진짜인가?’만약 진짜라면 정말 해보고 싶긴 했다.어쨌든 이렇게 풍만하고 매력 있는 여자라면 어떤 남자든 모두 안아보고 싶을 테니까.이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이에요? 그럼 이번에는 절대 놀리는 게 아니라고 약속해 줘요.”“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여? 응?”남주 누나는 곧바로 내 곁에 앉으며 말했다.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누나의 가슴이 내 가슴에 닿고 말았다.그 부드러운 감촉을 느낀 순간 내 가슴은 두근대기 시작했다.게다가 이번은 장난이 아니라고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나는 점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와 참지 못하고 남주 누나의 허리를 만져댔다.‘대박.’심지어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그때 남주 누나가 고개를 숙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더 해도 돼. 기대하고 있으니까.”‘정말 요물이네. 내 영혼마저 빼앗아 가려는 건가?’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남주 누나를 와락
“그럼 다 테스트 끝났어요?”“응. 커서 좋아.”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내 손을 끌어당겨 제 옆에 앉혔다.그러고는 내 그곳을 빤히 바라봤다.“너 오늘 밤 우리 애교 자빠뜨려야 하잖아. 안 그래?”‘어떻게 알았지?’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그때 남주 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늘 애교한테 전화한 거 옆에서 들었어. 너희 둘 진작부터 이상하다 생각했거든. 솔직히 말해 봐, 두 사람 어떻게 된 거야?”나는 너무 조마조마했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나와 애교 누나의 진짜 관계를 아직 모를 거다.그렇다면 내가 딱 잡아떼면 남주 누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거고.결국 나는 거짓말을 내뱉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저 애교 누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계속 거짓말 할래? 이젠 점점 말 안 듣네?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기회 못 얻을 줄 알아.”‘이거로 협박하다니.’나는 속이 너무 근질거렸다.한편으로는 남주 누나도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지만 또 애교 누나와의 관계는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남주 누나, 제가 애교 누나랑 무슨 사이인지가 중요해요?”내가 말머리를 돌리자 남주 누나는 싱긋 웃었다.“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지. 하지만 궁금해. 그냥 네가 애교랑 얼마나 가까워졌나 알고 싶어서.”그 말에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그걸 본 남주 누나는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헐, 정말 내 말 맞아? 두 사람 그 정도로 발전했어? 키스는 했어? 몸은 만져봤어?”나는 얼굴을 더 붉히며 난감한 듯 말했다.“그 정도 아니에요. 그저 우리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헐, 그러면서 전에 내 앞에서 순진한 척 귀여운 척했어? 난 또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지. 그것보다 우리 애교는 대체 무슨 수로 구워삶았어? 걔만큼 보수적인 애가 남편 외의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니 상상이 안 가는데.”사실 이건 나도 조금 아리송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아마 인연일지도?
“네?”‘온종일 나를 떠보더니 결론이 애교 누나를 차지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니? 이게 무슨 논리지?’내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남주 누나가 피식 웃었다.“의심하지 마. 내 목적도 예전과 같으니까. 네가 먼저 애교부터 공략하면 나도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나랑 애교 절친이야. 그건 내 남편도 잘 알고 있고. 내 남편이 애교한테 내 상황 캐낼까 봐 우선 애교부터 공략하라는 거야.”“우리가 같은 배를 타야 애교도 나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니까. 이제 내 뜻 알겠지?”순간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남주 누나가 이렇게 잘 설명했는데 모를 리 없었다.그와 동시에 내 모든 걱정도 배속으로 꺼져 들어갔다.남주 누나가 이번에는 진짜 나랑 뭔가 해보려던 거 같았다.그 전에 나랑 애교 누나의 진짜 관계가 궁금한 것뿐이지만.그래서 아까처럼 굴었던 거고.하지만 오늘 있은 일을 생각하니 나는 저도 모르게 조마조마했다.지금 애교 누나 외의 모든 사람이 나를 도와주고 있고, 내가 애교 누나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애교 누나는 준비됐는지 모르겠네.’내가 속으로 걱정하고 있을 때 밖에서 애교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호 씨, 남주야, 나 들어가도 돼?”“들어와. 내가 수호랑 뭘 한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무서워해?”애교 누나는 얼굴이 발그스름해서 걸어 들어왔다.너무 부끄러워하는 애교 누나의 모습에 남주 누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너 뭐 했어? 왜 그렇게 빨개?”그러자 애교 누나는 당황한 듯 얼른 부정했다.“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보면 안 도는 거라도 보게 될까 봐 부끄러웠던 거야.”“정말이야? 왜 자꾸 네가 부끄러운 짓 했다는 생각이 들지?”남주 누나는 일부러 애교 누나를 놀려댔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집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어떻게 그런 짓 할 수 있겠어?”사실 나는 애교 누나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간지 알고 있다.아마도 오늘 밤
애교 누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그럼 수호 씨가 힘들지 않아요?”“힘들죠, 하지만 누나를 위해서라면 그래도 좋아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그렇게 웃으니 애교 누나도 마음이 편해진 듯했다.나는 애교 누나의 등을 토닥였다.“사실 정말 뭘 꼭 하고 왕정민한테 말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 취한 척 연기하다가 같은 방에서 들어가 야릇한 소리 좀 내며 연기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면 아마 우리가 정말 관계를 가졌다고 믿을 거예요.”“그런데 왕정민이 수호 씨한테 증거를 요구하면요?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걸 요구할 거 아니에요.”그건 당연할 거다.그 증거가 있어야 애교 누나가 바람피웠다는 걸 증명할 거고, 그래야 빈털터리로 쫓아낼 수 있을 테니.그때 나에게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영상과 사진은 바로 내놓지 않을 거예요. 백을 내세워 저를 병원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는 등 요구를 제기할 거예요. 그때 애교 누나는 왕정민에게 압력을 가해 원하는 걸 손에 넣어요.”“그건 너무 위험해요. 수호 씨가 자기를 속인 걸 알면 왕정민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내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왕정민을 배신하는 게 되어버리고, 왕정민이 나중에 나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다.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이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요.”애교 누나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선명히 느껴지는 말캉한 느낌에 나는 애교 누나를 꼭 안았다. 품에 이토록 매력적이고, 그것도 내가 사랑하고 항상 내 거로 만들고 싶었던 여자가 안겨 있는데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에 뭐라 말하려 할 때, 애교 누나가 갑자기 나에게 입 맞추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나 결정했어요. 오늘 밤 나를 안아요. 오늘 이 옷 수호 씨 때문에 입은 거예요. 그리고 일부러 화장도 한 거 보여요?”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사실 진작 발견
밖에 나와 보니 형수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한 한 상을 준비했다.게다가 형마저 몇 년 동안 애장해 두었던 술을 꺼냈다.보아하니 모두 제대로 준비한 모양이었다.모두 자리에 앉자 형은 곧바로 술병을 따며 말했다.“오늘 정말 좋은 날이에요. 고생하고 돌아온 우리 수호,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할 거야. 자, 다들 원샷!”우리는 모두 잔을 들어 올렸다.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취하기 시작했다.심지어 애교 누나마저 얼굴이 발그스름해진 걸 보니 많이 취한 듯했다.그때 남주 누나가 형수와 형을 끌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더 마셔야지. 우리 나가서 더 마시자고요.”그러면서 나한테 윙크를 날렸다.그 뜻은 너무 명확했다. 방해꾼은 자기가 처리할 테니 나더러 힘내라는 뜻이었다.형도 알딸딸한 상태인 듯했으나 목적을 잊지 않고 나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형수는 더 말할 것 없이 남주 누나와 같은 목적이었다.결국 형과 형수, 그리고 남주 누나가 모두 나가 버리는 바람에 집에는 나와 애교 누나 둘만 남게 되었다.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한테 걸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애교 누나, 사람들 다 나갔어요. 이제 울 둘뿐이에요.”“수호 씨, 키스해 줘요.”애교 누나가 술기운을 빌어 용기 내 말하자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누나에게 힘껏 입 맞추었다.이 시각 우리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둘만의 세상에 빠졌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맞춰주는 애교 누나를 안아 거실 소파에 내려놓았다.“안 돼요. 아직 침실도 아니잖아요.”“집에 사람이 없어서 똑같아요.”내가 술 기운을 내뿜으며 말하자 애교 누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거, 거실에서 해본 적이 없어요. 너무 넓어서 꼭 누가 보는 것 같아요.”“그건 누나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커튼 치면 안 보여요. 그리고 새로운 경험해보고 싶지 않아요? 매번 침대에서만 하면 재미없잖아요.”나는 애교 누나가 마음을 열게끔 계속 유혹했다.그리고 마침내 애교
“나도 검색해 봤어요. 인터넷에서 그러는데 우리나라 여성은 대부분 한평생 오르가슴이 뭔지도 못 느껴본대요. 그리고 그걸 느끼기 어렵대요.”“그거로 병원까지 가기는 민망해서 계속 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방금 수호 씨랑 할 때 느꼈어요. 왕정민이 너무 못하는 거였어요.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던 거였어요.”애교는 말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애교가 왕정민과 결혼한 지 자그마치 7년이다.한 여자의 인생에 7년이 몇 번이나 올까?자기의 가장 예쁜 청춘과 아름다운 세월을 모두 왕정민한테 바쳤는데, 아내가 느껴봐야 할 즐거움조차 경험해 보지 못했고.항상 참으며 아무 말도 안 하고, 사사건건 왕정민을 위해 생각하고 왕정민의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주며 현모양처로 지냈는데, 오히려 배신으로 돌아왔으니애교는 자기 상황이 못내 슬펐다.워낙 보수적인 성격이라 항상 이런 걸 혼자 끙끙 앓기만 해왔으니.만약 태연 혹은 남주 같은 성격이면 이토록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지만 않았을 텐데 말이다.그걸 생각하니 애교는 더 괴로워 났고, 더 슬펐다.30이 넘은 나이에 이제 겨우 여자의 즐거움을 느껴보다니, 일전의 몇 년은 시간만 낭비한 셈이다.나는 그런 애교 누나가 너무 안쓰러워 품에 꼭 껴안고 말했다.“괜찮아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앞으로 누나 매일 행복하게 해줄게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먼저 내 위로 올라왔다.“수호 씨, 괜찮아요? 아직 힘 남아 있어요?”나는 애교 누나의 뜻을 단번에 이해하고 바로 대답했다.“당연하죠.”...그 시각, 애교네 집.남주는 비틀거리는 동성과 태연을 보며 숨을 헐떡거렸다.“힘들어 죽겠네. 수호야, 내가 너한테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이렇게 고생하니까 실망하게 하지 마.”술을 권하는 남주를 거절하지 못하고 잔뜩 취한 동성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고, 태연은 혼자 계속 들이붓다가 끝내 취해버렸다.오늘 수호와 애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에 그걸 생각하기도, 마주하기도 싫었으니까.그
“게다가 이제 곧 매년 열리는 서화 대회가 있는데, 연 선생님이 협회 회장으로써 무대 위에서 연설을 해야 하거든요.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있어요?”이 순간 중년 남자의 말투는 매우 날카롭고 엄숙했고 목소리도 살짝 높아졌다.그러자 연상철이 막아섰다.“태진 씨, 그만해.”중년 남자의 이름은 손태진이었다.나도 손태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진지하게 설명했다.“저도 손 선생님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충분한 확신이 없으면 저도 이런 말씀 안 드립니다.”“제 나이가 어리지만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곁에서 의학을 배웠어요.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의사는 맹목적으로 진료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고요.”“연 선생님 손목은 제가 자세히 봤는데 치료할 수 있어요. 심지어 100퍼센트 확신해요. 그렇게 많은 유명 한의사들은 안 되는데 제가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지 궁금하죠?”손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그 점이 걱정돼요.”나는 몸에 지니고 다니던 의서 복사본을 꺼내 연상철과 비슷한 증세를 설명한 페이지를 펼쳤다.“연 선생님, 손 선생님, 이것 보세요. 이건 저희 할아버지께서 남긴 의서의 복사본이에요. 이 위에 적힌 사례가 연 선생님 증상과 똑같죠?”“손목에 힘이 없고 흐린 날씨에 뼛속까지 시리고 아프고 붓기까지 하고, 붓도 들 수 없고...”연상철과 손태진은 그걸 보더니 놀란 듯 말했다.“정말 똑같네.”“수호 군, 혹시 이 의서 때문에 자신 있다고 말한 거예요?”연상철은 감격해서 물었다.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방금 진찰한 뒤 연 선생님 증상을 보니 의서에 기록된 증상과 똑같더라고요. 이 의서에 나온 치료 방법도 마침 제가 다 아는 거고 해서 자신 있다고 말한 거예요.”민우도 기뻤는지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그렇구나. 놀랐잖아. 난 네가 허풍 떠는 줄 알았어.”연상철은 참지 못하고 하하 웃었다.“좋아요. 하늘이 나를 돕네요. 정 선생, 내 팔목은 그럼 정 선생한테 맡길게요.”“안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지예 씨한테서 들었는데, 연 선생님이 오랫동안 허리와 다리 통증으로 고생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한의학을 전공하다가 함께 한약관을 꾸렸거든요. 그래서 대신 상태 좀 봐 드리러 왔어요.”“만약 저희 치료 효과가 괜찮다면 고객 좀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정말 목적을 내뱉으니 나는 왠지 좀 미안했다.하지만 연상철은 오히려 통쾌하게 웃었다.“그런 이유로 찾아왔군. 지예 그 계집애가 나를 다 기억하다니.”“마침 나도 요즘 팔목이 아팠는데 한번 봐줘요.”연상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친절했다.나는 얼른 도구를 꺼내 연상철의 맥을 짚었다.나는 이번 진찰에 매우 집중했다. 어찌 됐든, 이건 우리 천수당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지와 직결되어 있으니까.진찰을 마친 뒤 나는 속으로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연 선생님 팔목 통증은 오래 간 것 같네요. 1, 2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적어도 10년은 걸린 것 같아요.”“하하. 맞아요. 고질병이긴 하지. 어디 보자, 적어도 12년이 됐나?”“그렇게 오래됐다고요? 어쩌다 이렇게 됐는데요?”민우는 놀란 듯 물었다.그러자 연상철이 말했다.“우리처럼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매일 서예와 그림을 연습해야 하거든요.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병이 생긴 거고.”“처음 이런 증상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 봤는데 나으려면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그림을 안 그리면 두 손을 해서 뭐하겠나 싶어 아예 치료를 안 했죠.”“젊은 총각인 것 같은데, 내 손목을 치료하면서 그림도 계속 그리게 할 수 있나요?”“할 수만 있다면 치료를 맡기고, 만약 방법이 없다면 됐어요. 평생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인데, 그림도 못 그리면 차라리 손이 필요 없지.”나는 취미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처음 봤다. 그 때문에 너무 존경스러웠다.나는 연상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연 선생님, 제가 약속드릴게요. 그림도 그리면서 치료할 수 있어요.”연상철은 놀란 듯 눈을
나와 민우는 함께 서화협회에 도착했다.우리는 이런 곳에 처음 걸음 하는지라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겨우 정문을 찾았다.서화협회는 한 건물의 1층 전체를 차지했다. 우리는 서화협회가 이렇게 널찍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민우는 놀랐는지 가는 내내 작은 소리로 종알거렸다.“너무 큰 거 아니야? 그림 그리는 어르신들은 다 이렇게 돈이 많아?”나도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게 없기에 대충 얼버무렸다.“그렇겠지. 소설에서 보면 유명한 화가의 그림은 한 점에 수십억 수백억 하는 것도 있다더라. 현실에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마 비슷할 거야.”“우리 이따가 무조건 조심해야 해. 여기 있는 작품 망가뜨리면 우리 둘을 팔아도 안 돼.”민우는 내 말에 바짝 긴장하더니 그림이 걸려진 벽 쪽에 가까지 하지도 않았다.우리는 꼭 붙어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 모습은 우리 스스로 봐도 너무 웃겨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하지만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우스워지는 것쯤은 상관없었다.우리는 얼마 뒤 서화협회 내부에 도착했다.건물 내부에는 각양각색의 서화가 가득했다.나와 민우는 서화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이곳에 걸어놓은 작품이 절대 일반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서화 외에 이곳에는 많은 골동품들도 있었다. 때문에 나와 민우는 더욱 조심했다. 심지어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이곳은 다른 의미로 너무 무서웠다. 실수로 물건 하나라도 망가뜨리면 우리를 팔아도 배상하지 못하니까.“두 분, 혹시 누구를 찾아왔나요?”그때 한 중년 남성이 우리 쪽으로 걸어와 물었다.나는 다급히 명함을 꺼냈다.“연상철, 연 선생님 뵈러 왔습니다. 이 명함은 S시 서씨 가문 서지예 씨가 준 겁니다.”이곳 사람들은 책향기가 나는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너무 불편했다.왠지 우리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고, 이 사람들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중년 남성은 명함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연 선생님은 사무실에 계세요. 따라와요.”
“초대? 어디?”“다연 식당을 승호 도련님이 샀거든. 오늘 새로 개업하는 날이라 승호 도련님이 나더러 너 데려오래.”다연 식당을 구매한 사람이 연승호였다니.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연승호는 백연우 때문에 나랑 엮이게 되었고, 항상 찾아와서 시비를 걸며 자기의 우월함을 드러내곤 한다.그런데 내가 만약 순순히 가면 분명 또 한껏 들떠서 뽐낼 거다.때문에 나는 핑계를 둘러댔다.“안 될 것 같아. 가게에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여준휘는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요즘 천수당에 손님이 없다던데, 뭐가 그렇게 바빠?”민우는 그 말에 순간 욱해서 다가왔다.“개자식이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얼씨구,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설마 사람 때리게? 천수당은 영업 이렇게 하나?”여준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나는 얼른 민우를 막아섰다.“가게에 손님이 없지만 다른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해서 못 가.”“알았어. 그럼 승호 도련님한테는 그렇게 말할게. 천수당이 너무 바빠서 네가 올 시간이 없다고.”여준휘는 뒷짐을 쥔 채 떠나갔다.여준휘가 떠난 뒤 민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젠장. 그냥 잘난 체하러 온 거잖아.”“저 자식들이 다연 식당을 샀으면 우리 여기랑 거리도 가까운데, 앞으로 하루하루가 참 고역이겠어.”민우는 참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맞은편 가게에서 우리 손님 뺏는 것도 모자라 이젠 저 자식들까지 열받게 한다니. 앞으로 장사 어떻게 해?”“이런 풍파도 못 참고 어떡해?”나는 민우를 바라봤다.그러자 민우는 불만 섞인 투로 말했다.“못 차는 게 아니라 우리 이제 개업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너무 많은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장사 하다간 망할 것 같아.”“그런 말 하면 안 되지. 희망은 우리 스스로 가지는 거야. 우리가 포기하면 가게 정말 망해.”비록 조금 꼰대 같은 말이긴 하지만 사람이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말로나마 위로해야 버틸 수 있다.가게가 연달아
음식을 먹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목이 멜 뻔했다.다행히 물을 마셔 겨우 음식을 삼켜버렸다.나는 다급히 고수연을 바라봤다.“지금 장난해요? 저더러 아이들 아빠를 하라고요? 무슨 생각인 거예요?”고수연은 서둘러 설명했다.“제 아이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혼해서 아빠의 사랑이 부족하게 클까 봐 그래요. 매일 같이 있어 줄 필요는 없어요. 가끔 가서 아이한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면 돼요.”나는 힘껏 손사래를 쳤다.“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당분간 속일 수 있다고 평생 속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모든 걸 알게 되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사장님이 아이 아빠가 아니라는 거 알려줄 거예요.”“이건 억지잖아요.”고수연은 너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어쩐지 식사 대접까지 하면서 살갑게 군다 했더니 목적이 있어서였다.나는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밥은 됐어요. 그건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사장님, 우선 가지 마요.”고수연은 내 손을 잡았다.그 순간 나는 고수연의 손을 뿌리쳤다.“그만해요. 무슨 말을 하든 동의 안 해요.”“알았어요. 아무 말 안 할게요. 식사마저 해요.”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고수연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수연이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고수연은 계속 내 손을 잡아당겼다.“얼른 앉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요.”나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게 싫어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이내 경고를 날렸다.“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앞으로 하지 마요. 안 그러면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고수연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도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받을까 봐 그래요.”“다른 방법 많아요. 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 안 돼요. 그리고 나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마요.”고수연은 형수 동생이다. 그런데 내가
진용진이 나를 미워하는 건, 내가 전에 형수와 함께 그를 모함했기 때문이고, 고수연을 미워하는 건 아무 이유가 없다.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이혼할 때 원수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고수연과 진용진이 그런 축에 속했다.재판 현장에 나도 따라갔다.진용진은 바람피운 사실을 인정하고 고수연에게 보상해 줄 것도 약속했지만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양육권을 무조건 가지겠다고 요구했다.고수연이 아무리 발악해 봐도 달리 방법은 없었다. 이건 법률로 규정된 것이니까.“변호사님, 정말 방법이 없나요?”고수연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그 말에 연재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없어요. 인제 그만 싸워요. 의미 없어요.”고수연은 이를 악물고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결국 고수연은 진용진과 재산을 분할하고 아이도 한 명씩 키우기로 결정 났다.이건 가장 좋은 결과였다.고수연의 권익도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힘들게 살 필요도 없으니까.그리고 진용진이 고아다 보니 일 때문에 아이를 볼 여력이 없는 걸 고려해, 법원에서는 평소 고수연이 아이를 대신 돌봐주라고 판결했다.이렇게 되니 고수연은 자기가 받아야 할 재산도 받고, 아이도 동시에 키울 수 있게 되었다.재판이 끝난 뒤, 고수연은 나에게 4백만 원을 이체했다.“사장님, 이건 전에 빌린 돈이에요.”“힘들 텐데 먼저 써요. 전 급하지 않아요.”“아니에요. 쓸 거 충분해요. 진용진이 그동안 돈을 그렇게 많이 번 줄도 몰랐어요. 이혼하면서 받은 위자료만 해도 몇천만 원이에요.”진용진이 지금 사는 집을 고수연은 갖지 않았지만 모두 현금화해서 계산했다. 때문에 위자료와 집값을 합치면 족히 1억 6천만 원 정도 된다.이건 고수연한테 큰돈이나 다름없다.고수연은 연재혁에게 변호사 비용을 준 뒤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나섰다.“저는 됐어요. 따로 일이 있어 앞으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네. 그럼 조심히 살펴 가세요.”연재혁이 떠난 뒤, 고수연은 나를 바라봤다.“사장님, 우리끼리 식사하러 갈까요?”“
윤지은은 끝까지 나한테 관심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지만, 매번 삐지거나 화를 낼 때면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내곤 한다.부잣집 귀한 아가씨라 나처럼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만 윤지은의 마음을 알면 그만이다.윤지은은 아직 건드리지 않은 아침을 보며 살짝 망설였다.“그럼 이따 서지예가 와서 물어보면 어떡해?”“지은 씨가 먹은 건 지은 씨 거고, 내가 서지예 씨 걸 실수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할게요. 그럼 저를 탓하지 지은 씨를 의심하지 못할 거예요.”“그래. 그렇게 해.”윤지은은 그제야 아침을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맛없어. 길가에서 산 거야?”“저기요. 입원한 사람이 무슨 음식을 그렇게 가려요?”윤지은은 음식을 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일부러 반대로 말한 거다.윤지은은 평소 혼자 있을 때 항상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컵라면을 대충 먹곤 한다.하지만 이번에 입원해 있으면서 내 덕에 오히려 하루 세 끼 꼬박 챙겨 먹었고, 오늘 아침 식사도 사실 맛이 괜찮았다. 다만 윤지은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워낙 예쁨 받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라,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했으니까.윤지은이 한창 먹고 있을 때 서지예가 들어왔다.“어? 내 아침은 어디 갔지?”나는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실수로 떨어뜨렸어요. 직접 내려가서 사 먹어요.”서지예는 화가 나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봤다.“정수호, 일부러 그랬지?”“이런 걸 왜 일부러 그러겠어요? 정말 실수였어요...”“그럼 아가씨 잘 보살펴.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서지예는 씩씩거리며 병실을 나섰다.그 순간 눈이 마주친 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우리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서지예가 돌아온 뒤 나는 바로 병원을 떠났다.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몸이니까.그때 고수연이 법원에 혼자 가기 무섭다며 전화를 걸어왔다.고수연은 가게 직원이기도 하고 형수 동생
“왜 또 이러는데요? 내가 또 지은 씨 심기 건드렸어요?”나는 윤지은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어쩜 사람 기분이 이렇게 변덕스럽고 얼굴이 수시로 변하는지.그때 윤지은이 이상야릇하게 말했다.“넌 잘못한 거 없어. 내가 쓸데없는 희망을 품지 말았어야 했어.”“말 좀 제대로 해줄 수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저 지금 지은 씨 때문에 어지러워요. 내가 뭐 말실수했어요? 아니면 뭐 잘못했어요?”아마 대부분 남자는 나처럼 감정이 둔하고 여자처럼 섬세하지 못할 거다. 때문에 여자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삐질 때 남자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그동안 윤지은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기에 나도 어느 정도 윤지은의 성격을 파악했다. 윤지은은 화를 내지 않을 때는 속내를 알기 쉬운데, 삐지거나 화를 내면 분명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그것도 대부분 너무 작아서 예상치도 못한 이유.나는 방금 내가 한 행동을 모두 떠올려봤다.내가 서지예와 함께 나가기 전까지 윤지은의 태도는 그나마 좋았다. 그런데 내가 서지예와 얘기하고 돌아오니 윤지은은 이렇게 되었다.‘설마 내가 서지예와 몰래 나가서 얘기해서 삐졌나?’나는 웃으면서 윤지은 옆에 앉았다.“또 질투해요?”윤지은은 단번에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누가 질투했다고 그래? 내가 넌 줄 알아?”“모르죠. 제가 볼 때 지은 씨 분명 질투해요. 서지예 씨를.”나는 일부러 윤지은을 놀려댔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홱 쏘아봤다.“자기애가 대단하네! 얼굴이 벽보다 더 두꺼워.”“맞아요. 저 얼굴이 원래 벽보다 더 두꺼워요. 그래서 아무리 쫓아내도 안 갈 거예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사 올게요.”사내대장부는 여자와 싸우지 않는다고,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윤지은한테 따질 필요는 없었다.윤지은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보지 않았다.“안 먹어. 앞으로 네가 산 건 다 안 먹어.”“그럼 서지예 씨더러 사 오라고 하고 저는 여기서 지은 씨 돌봐 줄게요.”“네가 돌봐 줄 필요 없다고. 꺼져!”“안 가요. 난 지은 씨
윤지은의 상처는 제때 치료된 편이라 감염의 흔적은 없었다. 때문에 안정을 취하면 그만이었다.“이봐, 잠깐 와 봐. 할 말 있어.”서지예는 나를 병실 밖으로 불러냈다.한편 윤지은은 내가 오자마자 서지예에게 불러 나가자 기분이 언짢았다.다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서지예를 따라 나갔다.“무슨 일이죠?”“내가 아빠한테 얘기했어. 아빠가 오늘 오후 우리 언니를 강북에 데려온대.”“아, 그럼 도착하면 우리 한의관으로 와요.”나는 덤덤하게 말했다.그러자 서지예가 미간을 팍 구겼다.“우리 언니가 협조를 안 해. 우리 아빠가 이쪽에 별장 하나 빌렸거든, 그래서 그동안 수호 씨더러 그 별장에서 우리 언니 치료했으면 해.”“우리 미리 말했잖아요. 그쪽 언니를 우리 한의관에 불러서 치료받게 하자고.”나는 무엇보다 서씨 가문 사람과 비밀리에 접촉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서지예는 분명 약속했으면서 이제 와서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서지예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나도 약속 지키고 싶었는데 우리 언니 상황 알잖아. 언니가 사람 만나는 걸 거부해. 우리 언니가 환자인 걸 봐서 사정 좀 봐줘.”내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서지예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이 사람은 강북 서화계의 거장이야. 아래에 제자들도 많고. 오랫동안 허리로 고생했는데, 만약 이분 눈에 들면 강북 전체 서화계 쪽 유명 인사들이 수호 씨 고객이 될 거야.”서지예는 나를 잘 안다는 듯 너무나도 달콤한 제의를 해 거절할 수 없었다.나는 명함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 서지예가 손을 피하며 생글생글 웃었다.“우선 내 요구부터 응해. 내 요구에 응하면 명함 줄게.”나는 너무 어이없었다.“다른 선택지가 있어요? 언니가 오면 위치 보내줘요.”“좋아. 약속한 거야.”서지예는 곧바로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명함을 확인해 보니 위에 연상철이라고 적혀 있었다.“또 연씨네?”연승호도 연씨고, 연재혁도 연씨인데, 또 연상철이라니?‘설마 이 세 사람이 무슨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