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검색해 봤어요. 인터넷에서 그러는데 우리나라 여성은 대부분 한평생 오르가슴이 뭔지도 못 느껴본대요. 그리고 그걸 느끼기 어렵대요.”“그거로 병원까지 가기는 민망해서 계속 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방금 수호 씨랑 할 때 느꼈어요. 왕정민이 너무 못하는 거였어요.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던 거였어요.”애교는 말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애교가 왕정민과 결혼한 지 자그마치 7년이다.한 여자의 인생에 7년이 몇 번이나 올까?자기의 가장 예쁜 청춘과 아름다운 세월을 모두 왕정민한테 바쳤는데, 아내가 느껴봐야 할 즐거움조차 경험해 보지 못했고.항상 참으며 아무 말도 안 하고, 사사건건 왕정민을 위해 생각하고 왕정민의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주며 현모양처로 지냈는데, 오히려 배신으로 돌아왔으니애교는 자기 상황이 못내 슬펐다.워낙 보수적인 성격이라 항상 이런 걸 혼자 끙끙 앓기만 해왔으니.만약 태연 혹은 남주 같은 성격이면 이토록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지만 않았을 텐데 말이다.그걸 생각하니 애교는 더 괴로워 났고, 더 슬펐다.30이 넘은 나이에 이제 겨우 여자의 즐거움을 느껴보다니, 일전의 몇 년은 시간만 낭비한 셈이다.나는 그런 애교 누나가 너무 안쓰러워 품에 꼭 껴안고 말했다.“괜찮아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앞으로 누나 매일 행복하게 해줄게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먼저 내 위로 올라왔다.“수호 씨, 괜찮아요? 아직 힘 남아 있어요?”나는 애교 누나의 뜻을 단번에 이해하고 바로 대답했다.“당연하죠.”...그 시각, 애교네 집.남주는 비틀거리는 동성과 태연을 보며 숨을 헐떡거렸다.“힘들어 죽겠네. 수호야, 내가 너한테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이렇게 고생하니까 실망하게 하지 마.”술을 권하는 남주를 거절하지 못하고 잔뜩 취한 동성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고, 태연은 혼자 계속 들이붓다가 끝내 취해버렸다.오늘 수호와 애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에 그걸 생각하기도, 마주하기도 싫었으니까.그
“목소리가 왜 이상해요? 몸매도 아까랑 완전히 다른데.”이상함을 느낀 나는 곧바로 눈을 떴다.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내가 안고 있는 사람이 애교 누나가 아닌 남주 누나라는 걸 발견했으니까.하지만 취기가 남아 있어 머리가 여전히 맑지 못했다.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내가 안고 있던 애교 누나가 왜 갑자기 남주 누나로 변했다고 생각했다.한참 동안 어리둥절해 있던 나는 상황을 파악한 순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남주 누나, 누나가 왜 여기 있어요? 애교 누나는요?”나는 너무 당황했다.‘내가 방금 안았던 사람이 누구지? 설마 남주 누나였나?’남주 누나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나를 바라봤다.“어떨 것 같아?”누나의 그런 표정에 나는 점점 더 심하게 식은땀을 흘렸다.“애교 누나, 어디 있어요?”내가 다급히 불러대자 침실에서 애교 누나의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 요기 있어요. 너무 피곤해서 좀 쉴게요.”누나의 대답을 듣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교 누나도 있으면 됐어.’그렇다는 건 내가 겪은 게 환각이나 꿈은 아니니까.아까 나랑 같이 뒹굴던 사람도 애교 누나고.남주 누나의 옷차림을 다시 보니 처음부터 이런 차림새로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나는 그제야 겨우 안도했다.“남주 누나, 놀랐잖아요. 왜 한밤중에 여기까지 왔어요?”그때 남주 누나가 나한테 바싹 다가오더니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내 친구 어땠어? 기분 좋지?”“남주 누나, 왜 그런 물음을 물어봐요? 부끄럽지도 않아요?”남주 누나는 내 팔뚝을 힘껏 꼬집었다.“이미 다 잤으면서 부끄러워하긴. 얼른 말해. 애교랑 할 때 어땠어?”그 고통에 나는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심지어 술도 반쯤 깨 다급히 말했다.“당연히 좋죠. 어떻겠어요?”“내 말은 애교는 어땠냐고?”나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긴장해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는데 천천히 달래주니 점점 긴장을 풀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즐기기도 했고. 속궁
남주 누나는 기지개를 켜며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됐어. 나도 이제 가서 잘래.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인체학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자고.”이불을 몸에 걸친 채 남주 누나가 베란다를 넘는 걸 지켜본 나는 누나가 무사히 돌아가자 그제야 침실로 돌아왔다.애교 누나는 술에 너무 취해 안방으로 온 모양이었다.이에 나는 누나를 내 방으로 안아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그도 그럴 게, 우리는 술에 취한 듯한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그렇다면 이런 실수를 보여주는 게 오히려 더 좋다.결국 나는 이불 안으로 들어가 등 뒤에서 애교 누나를 꼭 안은 채 꿈나라에 들어갔다.그날 밤, 우리 두 집안 사람들뿐만 아니라 호텔에 묵고 있던 왕정민도 편안히 자지 못했다.아내가 다른 남자와 잤다는 것만 생각하면 기분이 언짢았으니.결국 고민 끝에 부원장 진일권한테 전화해 나를 자르라고 명령했다.“네? 뭐라고요? 여기 너무 시끄러워 안 들려요.”하지만 진일권은 마침 회식을 하고 있어 왕정민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그때 전화 건너편에서 드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왕정민은 갑자기 흥미가 생긴 듯 말했다.“지금 어디서 식사 중이죠? 제가 찾아갈게요.”진일권은 곧바로 왕정민에게 위치 정보를 공유했다.그 주소가 마침 왕정민이 묵고 있는 호텔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라 왕정민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하니 현장에는 진일권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자들도 있었다.심지어 대부분은 의대를 갓 졸업한 인턴 의사거나 인턴 간호사였다.이번 회식은 병원 내부에서 조직하는 회식이기에 병원 내부 직원만 참석했다.그중에 왕정민은 예쁘장한 어린 여자애 몇 명을 눈독 들였다.그러다 시선이 웬 차가운 인상을 한 여의사에게 멈춘 순간, 그대로 빠져들고 말았다.그 여의사는 바로 사사건건 나와 태클을 거는 윤지은이었다.왕정민은 진일권과 인사한 뒤 쪼르르 달려가 지은의 옆에 앉았다.“성함이 뭐예요? 전에 병원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그러고는 친한 척
“그래요? 그럼 시간 날 때 나도 한번 봐줘 봐요.”왕정민은 또다시 눈웃음을 치며 지은의 완벽한 몸매를 스캔했다.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여자는 자빠뜨리면 어떨지 생각했다.하지만 지은이 내내 싸늘하게 무시하는 바람에 목표를 웬 젊은 인턴 진소민으로 바꾸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밤 젊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성욕을 풀고 싶었으니까.그 인턴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순진무구한 여자애였는데 왕정민이 술을 권하자 거절하지도 못하고 계속 마셔댔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취해버렸다.그걸 지켜보고 있던 지은은 당연히 왕정민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병원 간부들은 모두 능구렁이들이라 한 명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그도 그럴 게, 병원과 왕정민의 거래가 잦으니 이렇게 더러운 일이 벌어져도 눈 딱 감을 수밖에 없었다.“전 이제 그만 먹을 테니, 식사들 하세요.”지은은 본인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차라리 안 보는 게 마음 상으로 편하니까.지은이 떠난 뒤에도 회식은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그러다 중도에 소민이 화장실을 향할 때 지은이 뒤따랐다.“눈치 못 챘어요? 그 사람이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윤 쌤, 가신 거 아니었어요?”소민은 놀란 듯 말했다.사실 지은은 확실히 떠났었다. 하지만 소민이 시름 놓이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적어도 귀띔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만약 소민이 오늘 밤 왕정민한테 끌려가면 앞으로 인생이 달라질 거다.그걸 지은은 두고 볼 수 없었다.“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왕 대표님과 가야 할 것 같아요.”지은은 눈살을 팍 구겼다.“왜요? 그 남자가 소민 씨한테 나쁜 마음 품고 있다는 거 몰라요? 그러면서도 따라가겠다고요?”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때 소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사실 모두가 왕 대표님이 저한테 술을 권해서 제가 마지못 해 마셨다고 생각하겠지만, 저 일부러 그랬어요. 왕 대표님 돈 많잖아요. 병원
지은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으며 마음은 너무 복잡해 무슨 기분인지도 알 수 없었다.결국 집에 도착한 지은은 한참 동안 뒤척였지만 끝내 잠이 들 수 없었다.오늘 겪은 일이 너무 충격이라서.지은은 대화할 사람을 찾으려고 연락처를 뒤졌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그러다가 한참 뒤 연락처에 있는 나를 보고는 실례된다는 생각도 안 느꼈는지 바로 문자 했다.[자요?]그 시각 나는 마침 한참 자다가 목이 말라 다시 깨어났다.그런데 마침 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리더니 지은이 보낸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새벽 3시가 넘었는데 이런 시간에 왜 전화했지?’‘설마 나를 일부러 시험하는 건가?’나는 문자를 무시하고는 물만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이번에도 역시 지은한테서 온 문자였다.[내가 어떤 여자인 것 같아요?]문자 소리에 깬 나는 눈이 뻑뻑해 더 이상 잠들기조차 어려웠다.결국 핸드폰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미쳤어요? 늦은 시간에 뭐예요? 이상한 질문이나 하고.][솔직히 대답하면 되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꼭두새벽에 문자로 남의 잠 방해했으면서 태도가 그게 뭐예요?][말할 거예요 말 거예요? 대답 안 할 거면 삭제할게요.]‘젠장. 지금 나 겁준다 이거야?’하지만 이제 이런 말 따위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오늘 이미 애교 누나를 완전히 내 여자로 만들었고, 앞으로 이 여자를 찾아갈 생각도 없었기에 삭제하든 말든 상관없었다.때문에 나는 아주 딱딱하게 대답했다.[마음대로 해요.]곧이어 나는 배운다는 목적으로 야동 사이트에 들어갔다. 더 많은 걸 배워 나중에 애교 누나와 함께 해보려고.하지만 얼마 못 가 지은의 문자 한 통이 또 도착했다.[감히 나한테 그런 테도로 말해요? 먹고 버리겠다는 거예요? 나한테 보낸 은밀한 사진들 다 프린트해서 동네방네 붙여놓는 수가 있어요.]지은의 문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미쳤어요? 그러면 그쪽한테 뭐가 좋
[뒤끝 있고 매몰차다고요? 그쪽이 뭔데 나를 그렇게 말하는 건데요?][아니에요? 남자 친구가 배신했다고 아무 남자랑 자는 거면 뒤끝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항상 나를 공제하려 하고 고고한 척하고, 내가 자기 기분 거스르면 바로 협박하는 게 매몰찬 거 아니면 뭐예요?]나는 더 이상 지은만 있는 게 아니기에 말하는 데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심지어 지은이 화를 내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안 그래도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고 결심했으니.한편, 문자를 본 지은은 저를 평가한 문장에 화가 치밀었다.“이 개자식, 감히 나를 이렇게 말해? 뭐 하자는 거지?”하루 사이에 갑자기 변한 나의 태도에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내가 무슨 생각인지 아무리 머리를 써봐도 답을 얻지 못했다.결국 말 없이 전에 받았던 나의 사적인 사진을 찾아 연속 몇 십 장 보내 버리고는 전화를 꺼버렸다.그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오히려 잠을 잘 수 없었다.난 혼자 한참 동안 우울해 있다가 결국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 침실로 돌아가 애교 누나를 끌어안고 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이 잠들어 버렸다.다음날.형과 형수 그리고 남주 누나는 모두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것처럼 나에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저들은 애교 누나네 집에서 자고 나와 애교 누나는 여기서 잤는지 물었다.분명 모든 걸 알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는 세 명을 보자 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만약 내가 계획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깜짝 속았을 거다.결국 나는 기억 안 난다며 연기했다.그러자 세 명은 애교 누나를 찾아갔다.애교 누나도 연기에 가담하여 고개를 저으며 너무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다들 너무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은데 동성 씨가 가서 아침 좀 사와. 난 숙취 때문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형수의 말에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먼저 나갈 테니까 다들 준비해.”형이 떠난 뒤 남주 누나와 애교 누나도 짐을 챙겨
형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실의에 빠진 듯 말했다.“그러니까 진작 애교랑 짜고 나를 속였던 거네요?”“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애교 누나를 해치는 일 하고 싶지 않아요.”“알겠어요. 다 알아요.”“형수...”“말하지 마요. 사실 수호 씨 선택이 맞아요. 그렇다는 건 수호 씨가 진심으로 애교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는 뜻이니까. 애교 좋은 여자예요, 애교랑 만난다면 축복해 줄게요.”왠지 모르게 형수는 이 말을 할 때 무척 고단해 보였다.심지어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그걸 보니 내 마음도 너무 괴로웠다.내가 형수를 속여 형수가 이렇게 속상해하는 것이니.하지만 뭐라 위로해야 할 지 도저히 몰랐다.그때 형수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싱긋 웃었다.“수호 씨 계획대로 해요. 나랑 형 생각은 하지 말고. 난 이미 원하는 걸 얻었어요.”“형수, 저...”“이젠 좋아하는 사람을 지킬 줄도 알고, 다 컸네. 오히려 대견해요.”“남자는 일을 할 때 이것저것 너무 가리면 안 돼요. 안 그러면 발목 잡힐 일이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 모질 때는 모질어야 하고, 밀고 나가야 할 때는 밀고 나가야 해요. 하루빨리 진정한 남자가 되길 바랄게요.”형수는 나를 보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이에 나 역시 진지하고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형수, 저 애교 누나도 사랑하지만 형수도 사랑해요. 누가 형수 괴롭히면 모든 걸 제쳐주고 지켜줄 거예요.”“하하, 말뿐이라도 고마워요. 됐으니 가서 씻어요. 왕정민도 이제 곧 올 시간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니까.”형수가 뭐라 말 하려 할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왕정민이 전화를 걸어왔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왕정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떻게 됐어요? 성공했어요?”형수가 나를 바라보며 의견을 묻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형수는 내 뜻대로 대답했다.“성공했어요.”“그럼 사진과 동영상은요? 나한테 보내와요.”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한편, 왕정민은 희색이 만면했다.그도 그럴 게, 이제 겨우 애교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손에 넣은 것도 모자라 어제 인턴이 그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해주었으니까.때문에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대놓고 소민을 곁에 두었다.“어제 아주 좋았어. 오늘도 나 기분 좋게 해주면 내가 진 부원장한테 말해서 정규직으로 만들어 줄게.”왕정민은 소민의 늘씬한 다리를 만지며 음탕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소민은 추행을 당했는데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신이 나서 말했다.“왕 대표님 너무 짓궂어요, 어떻게 하필 차에서. 그러다가 교통경찰한테 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해요?”“무서울 거 뭐 있어? 오솔길로 빠지면 교통경찰한테 잡힐 일도 없어. 어제 너무 무리했더니 오늘 피곤해서 그래. 나 기운 차리게 하지 않으면 잠들지도 몰라.”“대표님 정력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네요. 그럼 준비해요, 바로 가요.”소민은 말하면서 안전벨트를 풀더니 왕정민 쪽으로 기어갔다.그로부터 한 시간 뒤.왕정민은 소민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심지어 관계를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친근하게 팔짱을 낀 채로 말이다.그 시각,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던 우리는 갑자기 들리는 노크 소리에 안색이 변했다.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돌아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연기하는 우리 사이에, 형만 반갑게 왕정민을 맞이하러 달려 나갔다.“어, 정민아...”하지만 다음 순간 형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왕정민 옆에 있는 여자를 본 형은 멍하니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누구야? 왜 여기까지 데려왔어?”“내 친척 동생 소민이야. 단순한 사이니까 걱정 마. 자기 형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세 살짜리 애도 속지 않을 헛소리였다.하지만 이미 사람을 데려왔기에 동성도 뭐라 말할 수 없어 결국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왕정민이 소민을 데리고 집에 들어서자 애교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어제 하루종일 집에 안 오고 외박했던데, 동생이라는 이
“네놈이 형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진동성 난 단지 진실을 원해.”나는 진동성을 빤히 주시했다.진동성은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내 눈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진실은 바로 그 교통사고는 단순 사고였어. 나도 네 형수가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 몰랐어.”“좋아!”나는 더 이상 진동성과 말씨름하기 싫었다. 이런 인간과 얘기하는 건 입만 아프니까.나는 두말없이 육교 가장자리로 차를 이동했다.그때 윤지은의 차가 내 차를 따라잡았다.“정수호, 명령하는데 당장 차 세워!”나는 윤지은을 무시한 채 반대쪽 차선으로 차를 돌렸다.육교의 양쪽은 모두 공중에 떠 있어 어느 쪽으로 부딪히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진동성, 빌어!”나는 액셀을 밟으며 난간 쪽으로 부딪혔다.“아! 정수호, 이 미친놈! 말할게. 말할게!”차 바퀴는 이미 난간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고 공중에 반만 둥둥 떠 있었다.정신을 차린 뒤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알아챘다.방금 1초만 늦었어도 나와 진동성은 아래로 떨어졌을 거다. 솔직히 나도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물었다.“말해. 그때 상황이 어땠어?”진동성의 얼굴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제야 내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만약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육교 아래로 돌진했을 거다.진동성의 목소리는 떨림이 가득했고 몸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난, 난 그냥 네 형수랑 좀 다투다가 실수로 떨어진 거야.”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역시 그 사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하지만 고작 이게 다라고?고작 몇 마디 다툰 거로 차가 통제력을 잃고 육교 아래로 떨어졌다면 왜 운전석에 앉은 진동성은 고작 찰과상만 있고 형수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걸까?“진동성, 한꺼번에 다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같이 여기서 떨어질
우연히 그림자를 통해 진동성이 벽돌을 휘두르는 걸 발견한 나는 재빨리 피해 진동성을 세게 걷어찼다.진동성은 내 발에 차여 연신 뒷걸음치더니 이내 벽돌을 던져버리고 도망쳤다.그 순간 나는 곧바로 뒤쫓았다.그러자 진동성이 도망치면서 소리쳤다.“정수호, 이 개자식아. 꼭 나를 죽여야만 해?”“내가 네 놈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네 놈이 죽으려고 설치는 거잖아.”“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수호야. 우리 그래도 형제처럼 지냈잖아. 그러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봐줘.”나는 진동성의 말을 무시한 채 그를 잡자마자 또 주먹질했다. 그러고는 그의 다리를 잡은 채 질질 끌어 다시 원래 자리로 끌고 갔다.그 모습을 본 윤미화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수호 씨가 이런 거야?”“윤 사장님, 지은 씨, 왕정민은 두 분한테 맡길게요. 난 우리 형을 데리고 교통사고를 체험하러 가야 해서요.”말을 마친 나는 진동성을 끌고 차에 올라탔다.차를 금방 샀을 때만 해도 나는 이게 내 애마라고 애지중지했었다. 비록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산 인생 첫 차였으니까.하지만 지금은 단지 진동성을 태운 채 교통사고 체험을 시켜주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조수석에 앉은 진동성도 형수처럼 세게 다칠지 확인하고 싶었다.진동성을 차에 밀어 넣은 뒤 나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그러자 진동성은 겁을 먹었는지 버럭 소리쳤다.“수호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빨리 밟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나는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다.“맞아. 사고 내려는 거야. 이따가 육교에서 떨어지면 네 놈도 정말 형수처럼 크게 다칠지 확인해야겠어.”진동성은 다급히 조수석 위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정수호, 너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멈춰. 당장 멈춰!”나는 차를 멈춰 세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진동성은 핸들을 잡으려고 버둥댔지만 나는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그래. 잡아. 더 빨리 죽고 싶으면.”진동성은 형수가
나는 두 사람한테서 모든 빚을 천천히 받아낼 작정이었다.나는 한참 때리다가 손이 힘들어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어찌 됐든 형수가 혼수상태가 된 게 진동성 짓이라고 확신했으니까.그렇게 나는 힘이 모두 빠져서야 동작을 멈추었다.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진동성이 도망칠까 봐 그의 옷을 잡고 있었다.나도 내가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그저 형수가 혼수상태라는 생각만 하면 분노가 차올라 힘도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진동성에 대한 미움도 더해져 진동성을 죽여서라도 형수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시뻘게진 눈으로 반쯤 죽은 듯 누워 있는 진동성을 보며 또다시 물었다.“형수가 저렇게 된 거 너랑 관련 있는 거 맞지?”진동성은 여전히 잡아뗐다.“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사고였어.”나는 또다시 진동성을 주먹질했다.“말 안 해도 괜찮아. 내가 싹 다 조사할 거니까. 진동성, 만약 이 일이 네놈 짓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그 순간 진동성이 나를 보는 눈빛에 두려움이 더해졌다. 그는 내가 이토록 살기를 내뿜는 눈빛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진동성은 겁에 질려 머리를 마구 저었다.“정말 아니야. 정말 나 아니라고.”나는 진동성을 발로 걷어차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 왕정민은 어디 있는데?”“나, 난 왕정민 대신 물건 가지러 왔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나한테 연락한다고 했어.”“물건은 가졌어?”내가 따져 물었다.그때 윤지은과 윤미화도 다가왔다.진동성은 전전긍긍하며 목을 움츠렸다.“서, 서류야.”진동성은 대충 얼버무렸다.“무슨 서류?”윤미화가 따져 물었다.그 옆에서 윤지은이 보충했다.“혹시 모든 핵심 서류를 챙겨 오라고 했어?”그 서류만 챙기면 왕정민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윤지은은 평소 차갑기만 하고 사업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릴 때부터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나와 윤미화보다 맥을 더 잘 짚었다.그때
나는 다급히 일어섰다.“그런다고 이렇게 나간다고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때 윤미화가 뒤에서 말했다.“분명 계획이 있을 거야. 따라가 보자.”윤지은이 이미 계획이 있다니 순간 궁금했다.나와 윤미화는 윤지은을 따라 왕정민 회사 입구에 도착했다.현재는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매우 조용했다.순간 문득 궁금해 물어보려던 그때 그림자 하나가 살금살금 수풀 뒤에서 걸어 나왔다.하지만 그 사람은 왕정민이 아니라 진동성이었다.진동성은 우리를 발견하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냉소를 지었다.“정수호, 설마 이런다고 왕정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이를 갈며 진동성을 바라봤다.“왕정민은 언젠가 잡혀. 계속 왕정민과 협력하면 분명 불똥이 튈 거야. 진동성, 이제 벼랑 끝이니 그만 멈춰.”“벼랑 끝? 하하, 정수호.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진동성은 나를 비아냥거렸다.“넌 나랑 다를 것 같아? 너도 여자 덕에 여기까지 왔잖아. 넌 뭐 대단한 것 같아?”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해 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까.“마음대로 말해. 왕정민은 어디 있어?”내 질문에 진동성은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나는 두말없이 진동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내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건 진동성뿐만 아니라 윤지은과 윤미화도 몰랐다.내가 평소에 고분고분하고 나약한 인상을 줘서인지 누구도 내가 먼저 진동성을 때릴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준비도 없이 한 대 맞은 진동성은 이를 갈며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네가 감히 나를 때려?”나는 두말없이 또 한 번 달려들었다.요 며칠간 나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 비록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진동성을 상대하기엔 충분했다.진동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강해졌는지 모를 거다. 진동성은 몇 대 맞다가 내 발에 차여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곧장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해대며 그가
나는 다급히 반박했다.“아니에요. 저 예전에는 계속 다퉜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은 씨가 저를 도와주고 있으니까 양보한 거죠.”“때리고 욕하는 것도 다 사랑이야. 그걸 모르겠어?”윤미화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그리고 두 사람 싸울 때 인신공격을 한 적 있어? 상대를 해친 적 있어? 그냥 입씨름으로 상대의 기세를 꺾으려고 했을 뿐이잖아.”윤미화는 나와 윤지은이 싸울 때마다 옆에 있었던 것처럼 제대로 맥을 짚었다.나는 놀란 눈빛으로 윤미화를 바라봤다.“윤 사장님, 혹시 제 배속에서 나왔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윤미화는 으쓱한 듯 웃었다.“뭐든 제삼자가 더 잘 아는 법이야. 사람과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해. 서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짝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에는 밉다가 점차 좋아할 수도 있어. 심지어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내가 볼 때 두 사람이 지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스타일이야. 내가 이따가 수호 씨 팔짱 끼면 윤지은 씨가 분명 더 화낼걸? 심지어 수호 씨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수도 있어.”나는 윤미화가 한 말을 곱씹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은 너무 복잡했다. 살짝 의아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윤지은 눈에 나는 늘 인간쓰레기였다. 그런데 귀하게 자란 재벌가 아가씨가 세상에 훌륭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걸 좋아할까?나는 오히려 예전처럼 지내는 게 훨씬 좋았다. 이게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한다면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하다. 내가 그럴 자격도 없고. 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이건 그만 생각할래요. 앞으로 건드리지 않으면 그만이에요.”“그런데 난 저 재벌가 아가씨가 정말 수호 씨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은데?”윤미화는 말하면서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윤지은 쪽을 흘긋거렸다. 다행히 윤지은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다급히 윤지은의 손을 뿌리쳤다.“사장님, 장난치지 마요. 정말
윤미화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함께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얼마 뒤 윤지은도 나타났다.윤지은까지 직접 온 건 매우 의외였다.“왜 왔어요?”“네가 여기서 죽은 것도 모를까 봐.”윤지은은 언제 한번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하니 오히려 내 긴장감이 줄어들었다.게다가 윤지은이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용기와 마음에 무척 감사했다.“동준 형님은요? 같이 안 왔어요?”윤지은도 왔는데 양동준이 안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양동준이 나서면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낼까?”보아하니 양동준은 부근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양동준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홉뜨며 말했다.“갑자기 이렇게 예의 차린다고?”나는 너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진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윤 사장님도 너무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제 귀인이에요.”윤미화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나중에 밥 사.”“당연하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보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옆에 있던 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종마.”윤지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내 귀에 콕 박혔다.나는 순간 어이없어 반박했다.“갑자기 왜 또 욕하고 그래요?”“욕하면 뭐?”윤지은은 더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윤지은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하더니 갑자기 기차 통을 삶아 먹었는지 화를 내다니.나는 너무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에 끝까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됐어요. 싸우기 싫어요. 내가 남자니까 참을게요.”나는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옆에 있던 윤미화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한편 나는 또 실수로 윤지은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때 윤미화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저 아가씨가 수호 씨 좋아하는 것
전승빈이 제 딸을 속일 방법은 수백 가지도 더 된다. 왕정민 같은 쓰레기가 딸 옆에 없다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닌가?만약 내가 전승빈이라면 오히려 왕정민이 영원히 사라져서 평생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거다.전승빈은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건 묻지 말게.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윤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승빈에게 말했다.“좋아요. 왕정민을 찾는 걸 도와드리죠. 그러면 제가 빚진 건 없었던 겁니다.”말을 마친 나는 윤미화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회사를 나오자마자 윤미화는 나한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왕정민은 분명 전승빈이 두려워서 숨었을 거예요. 그러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건 거의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왕정민은 분명 제가 죽도록 미울 거예요.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미쳤어? 이 와중에 왕정민을 만났다가 왕정민이 진짜 살의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왕정민은 현재 나 때문에 궁지에 몰렸으니 분명 나를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를 만나면 확실히 화를 입을 수 있었다.다만 이게 왕정민을 끌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안돼. 그건 너무 위험해. 내가 동의 못해!”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방법이 떠올랐어요. 지금 왕정민은 버림받은 개나 마찬가지라 분명 진동성을 찾아갈 거예요. 제가 병원에서 진동성만 잘 감시하면 될 거예요.”‘안 되겠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해. 안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했다.“지금 외과 병동으로 가서 진동성이 있는지 봐줄래요?”[그럴 필요 없어. 진동성이 방금 가는 걸 봤거든.]“젠장. 결국 한발 늦었네.”나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지은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이내 전승빈이 나한테 왕정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을 듣고
왕정민은 자기가 고용한 놈들이 저에게 반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너희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반항해?”왕정민은 버럭 소리치며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그러자 꽃무늬 셔츠가 콧방귀를 뀌었다.“전 회장님이 오라고 하십니다.”왕정민이 아는 사람 중 전 회장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전승빈뿐이다. 때문에 그는 단번에 전승빈을 떠올렸다.왕정민은 그제야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내가 전승빈과 손을 잡고 판 큰 함정.아쉽게도 왕정민은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왕정민은 자신이 전승빈 손에 들어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거였고.“빌어먹을!”왕정민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꽃무늬 셔츠에게 던지고는 신속히 밴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었다.그 누구도 왕정민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제야 반응한 꽃무늬 셔츠는 다급히 소리쳤다.“당장 쫓아!”꽃무늬 셔츠는 필두로 한 무리는 다급히 밴을 쫓았다. 다만 사람이 차를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왕정민은 밴을 몰고 도망쳤다.“젠장.”꽃무늬 셔츠는 곧바로 전승빈에게 전화해 왕정민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제 무리를 데리고 떠났다.한참 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승빈이었다.[증거는 입수했나?]“네.”[왕정민은 왜 도망치게 뒀지?]전승빈은 화가 난 듯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저는 함정을 파서 왕정민이 뛰어들게 하는 것만 책임졌지 사람까지 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왕정민이 도망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왕정민이 도망치면 우리가 지금껏 한 게 뭔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내 부하 놈들과 협력해서 왕정민을 잡아와!]나는 전승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제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왜 왕정민을 잡는 것까지 도와줘야 하지?’그때 윤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전 회장
이로써 왕정민의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당장 저 자식 다리부터 분질러!”왕정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소리쳤다.그러자 건달들은 무기를 든 채 하나둘씩 나에게 달려들었다.그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이 나더러 벽 쪽으로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나는 얼른 구석진 벽 쪽으로 달려갔다.건달 놈들은 멋모르고 나에게 달려왔다. 꽃무늬 셔츠는 내 앞에 막아서면서 나와 싸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반항하기 시작했다.나는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모두 건달 놈들에게 풀었다.“아!”나는 소리 지르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해댔다.마음 같았으면 놈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내 기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점차 뒷걸음치기 시작했다.나는 감정이 폭발해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이봐. 죽일 테면 죽여 봐! 덤벼!”하지만 나에게 덤비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그러자 결국 왕정민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 비켜. 내가 직접 한다.”왕정민은 몽둥이를 들어 내 다리를 내리쳤다.그 기회를 봐 내가 반격하려 할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단번에 왕정민을 걷어찼다.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나타난 변석훈을 바라봤다.“석훈 형님, 여긴 어떻게 왔어요?”“넌 윤 회장님 사람이야. 윤 회장님이 널 죽이지 않는 한 다른 놈이 널 죽일 수는 없어.”변석훈은 간단하게 온 이유를 설명했다.그때 윤미화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수호 씨, 얼른 내려와. 이 증거로 저 자식들 잡을 수 있어.”나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매우 완벽했다. 특히 왕정민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좋아요. 우리 가요.”그제야 왕정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거기 서!”왕정민은 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결국 윤미화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윤미화, 감히 날 갖고 놀아?”윤미화는 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