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실의에 빠진 듯 말했다.“그러니까 진작 애교랑 짜고 나를 속였던 거네요?”“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애교 누나를 해치는 일 하고 싶지 않아요.”“알겠어요. 다 알아요.”“형수...”“말하지 마요. 사실 수호 씨 선택이 맞아요. 그렇다는 건 수호 씨가 진심으로 애교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는 뜻이니까. 애교 좋은 여자예요, 애교랑 만난다면 축복해 줄게요.”왠지 모르게 형수는 이 말을 할 때 무척 고단해 보였다.심지어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그걸 보니 내 마음도 너무 괴로웠다.내가 형수를 속여 형수가 이렇게 속상해하는 것이니.하지만 뭐라 위로해야 할 지 도저히 몰랐다.그때 형수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싱긋 웃었다.“수호 씨 계획대로 해요. 나랑 형 생각은 하지 말고. 난 이미 원하는 걸 얻었어요.”“형수, 저...”“이젠 좋아하는 사람을 지킬 줄도 알고, 다 컸네. 오히려 대견해요.”“남자는 일을 할 때 이것저것 너무 가리면 안 돼요. 안 그러면 발목 잡힐 일이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 모질 때는 모질어야 하고, 밀고 나가야 할 때는 밀고 나가야 해요. 하루빨리 진정한 남자가 되길 바랄게요.”형수는 나를 보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이에 나 역시 진지하고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형수, 저 애교 누나도 사랑하지만 형수도 사랑해요. 누가 형수 괴롭히면 모든 걸 제쳐주고 지켜줄 거예요.”“하하, 말뿐이라도 고마워요. 됐으니 가서 씻어요. 왕정민도 이제 곧 올 시간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니까.”형수가 뭐라 말 하려 할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왕정민이 전화를 걸어왔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왕정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떻게 됐어요? 성공했어요?”형수가 나를 바라보며 의견을 묻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형수는 내 뜻대로 대답했다.“성공했어요.”“그럼 사진과 동영상은요? 나한테 보내와요.”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한편, 왕정민은 희색이 만면했다.그도 그럴 게, 이제 겨우 애교가 바람피웠다는 증거를 손에 넣은 것도 모자라 어제 인턴이 그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해주었으니까.때문에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대놓고 소민을 곁에 두었다.“어제 아주 좋았어. 오늘도 나 기분 좋게 해주면 내가 진 부원장한테 말해서 정규직으로 만들어 줄게.”왕정민은 소민의 늘씬한 다리를 만지며 음탕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소민은 추행을 당했는데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신이 나서 말했다.“왕 대표님 너무 짓궂어요, 어떻게 하필 차에서. 그러다가 교통경찰한테 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해요?”“무서울 거 뭐 있어? 오솔길로 빠지면 교통경찰한테 잡힐 일도 없어. 어제 너무 무리했더니 오늘 피곤해서 그래. 나 기운 차리게 하지 않으면 잠들지도 몰라.”“대표님 정력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네요. 그럼 준비해요, 바로 가요.”소민은 말하면서 안전벨트를 풀더니 왕정민 쪽으로 기어갔다.그로부터 한 시간 뒤.왕정민은 소민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심지어 관계를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친근하게 팔짱을 낀 채로 말이다.그 시각,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던 우리는 갑자기 들리는 노크 소리에 안색이 변했다.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돌아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연기하는 우리 사이에, 형만 반갑게 왕정민을 맞이하러 달려 나갔다.“어, 정민아...”하지만 다음 순간 형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왕정민 옆에 있는 여자를 본 형은 멍하니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누구야? 왜 여기까지 데려왔어?”“내 친척 동생 소민이야. 단순한 사이니까 걱정 마. 자기 형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세 살짜리 애도 속지 않을 헛소리였다.하지만 이미 사람을 데려왔기에 동성도 뭐라 말할 수 없어 결국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왕정민이 소민을 데리고 집에 들어서자 애교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어제 하루종일 집에 안 오고 외박했던데, 동생이라는 이
형은 무척 당황한 기색을 했다.“수호야, 너 무슨 말이야? 너 전에 분명 애교 씨가 너를 자꾸 유혹한다며 왕정민을 도와 증거 수집하겠다고 했잖아. 증거는? 얼른 가져와.”형의 모함에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형, 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어?”내 싸늘한 물음에 형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가 몰래 내 팔을 쿡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수호야, 너 왜 그래? 왕정민이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왜 중요한 타이밍에 그래?”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왕정민이 애교 누나를 모함하려고 할 때, 왕정민과 형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애교 누나를 지켜주고 있었다.왕정민은 애교 누나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싫어 그런다 쳐도 형은?어릴 때부터 우상으로 여겨왔던 형은 항상 정직하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나를 지켜주던 사람이다.때문에 나중에 커서 꼭 형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애교 누나를 해치려 할 때부터 형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착하고 정직하던 사람이 아니다.그럼에도 나는 형이 이 나쁜 길을 끝까지 가기를 원치 않기에 형한테 다시 희망을 걸었다. 형이 예전 모습대로 돌아오리라고.때문에 나는 형한테 진지하게 말했다.“형, 미안해. 내가 형 속였어.”그 말을 들은 순간 형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빠진 상태로 변했다.머리는 백지장이 되어버렸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동성아, 둘이 대체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그때 인내심을 잃은 왕정민이 형을 다그쳤다.나는 너무 당황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형을 내 자리에 앉히고 대신 일어나 왕정민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속였어요. 사실 애교 누나랑 같이 잔 적 없어요.”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정민의 낯빛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내가 저를 속였으니 왕정민이 내 껍질을 벗겨버릴 듯 구는 것도 당연했다.왕정민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나더니 마치 눈에서 불을 내뿜을 것처럼 나
애교 누나는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좋아 젊을 때 조금만 깨어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고 우아한 생활을 했을 거다. 적어도 지금처럼 엉망은 아닐 거다.이런 경험을 하면 그 어떤 여자라도 후회할 거다.나는 애교 누나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너무 마음 아팠다.매일 베개를 베고 자는 남편한테 모함당하다니.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을 거다.“애교야, 슬퍼하지 마. 우리 이제 저 쓰레기 자식이 바람피운 증거도 모았으니까 이혼하면 그만이야.”남주 누나가 냉정하게 애교 누나를 위로했다.그때 왕정민이 주위를 둘러보며 숨을 씩씩거리더니 버럭 화를 냈다.“다들, 다들 나를 속였다 이거야? 진동성, 고태연, 내가 두 사람 얼마나 믿었는데, 감히 이렇게 날 배신해?”그 말에 형이 다급히 일어나 해명했다.“정민아, 나 너 속인 적 없어. 이 일은 나도 모르는 거야. 수호야, 형 대신 말 좀 해줘.”하지만 나는 형을 도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형과 왕정민이 내 눈앞에서 꺼졌으면 좋겠으니까.그때 형수가 나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동성 씨는 정민 씨 안 속였어요. 내가 속였지.”“젠장! 뭐라고? 나를 속였다고?”왕정민은 형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나는 형수가 이러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형수가 화를 낼 때 이토록 무서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때 형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정민 씨가 한 짓이 너무 비겁해서요. 한 여자가 자기 청춘을 바쳤는데 정민 씨는 뭘 했죠? 미색을 취하고 뽑아 먹을 대로 다 뽑아 먹고는 뻥 차버렸잖아요. 정민 씨는 진짜 인간도 아니에요.”형수의 말에 왕정민은 끝내 폭발했다.“고태연, 너 뭐라고 했어?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살고 싶지 않나 봐?”솔직히 지금의 왕정민은 무척 무서웠다. 심지어 남자인 나조차도 겁이 나는데 형수는 오히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심지어 왕정민의 뺨까지 후려갈기는 바람에 왕정민은 순간 넋을 잃었다.왕정민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고 한참
“진동성, 너 대단하네. 내일 너희 회사 부도날 줄 알아.”왕정민의 말에 형은 심장이 철렁했다.“정민아, 난 정말 몰랐어. 나 좀 믿어줘. 우리 회사 네 도움 없으면 안 돼. 우리 몇 년지기 친구잖아, 나 좀 도와주라.”형은 마치 방향을 잃은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심지어 무릎이라도 꿇고 빌려고 했지만 형수가 마침 막아 나섰다.“무릎 꿇을 필요 없어. 계약서는 내 손에 있으니까. 계약을 어기면 몇억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해.”“뭐? 자기 계약서 손에 넣었어?”그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형은 형수의 말을 듣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형수는 핸드폰을 켜 형에게 계약서를 보여주었다.그걸 본 형은 울다 웃다 마치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처럼 굴었고, 옆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왕정민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애초에 형수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계약서를 미리 줬는데, 형수가 그걸 손에 넣은 뒤 배신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그때 형수가 형에게 말했다.“진동성, 당신도 알고 있지? 왕정민은 한 번도 당신 친구로 생각한 적 없어. 그저 자기를 떠받들어주는 걸 즐기는 것뿐이야. 그동안 왕정민을 도와준 게 회사 때문이라는 거 알아. 이제 계약서도 손에 넣었으니 당분간 회사도 문제없을 거야. 그러니 왕정민과 관계 끊고 영원히 왕래하지 마. 할 수 있겠어?”형수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형은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없었다.게다가 일이 이 지경으로 발전할 걸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형수는 형을 몰아붙이는 대신 덤덤하게 말했다.“생각할 시간 줄게. 하지만 한 가지는 꼭 알아둬. 앞으로 절대 왕정민과 왕래하지 마.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당신도 언젠가 나쁜 물 드니까. 내가 애초에 당신과 결혼한 건 당신이 정직하고 착해서 같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야.”“그런데 지금 너무 변했어. 내가 못 알아볼 만큼. 그렇다면 우리 결혼생활을 더 이어 나가야 할지도 고민해 볼 거야.”형수의 말에 놀란 건
이번 식사가 끝날 때 형수가 상황을 완전히 장악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그리고 나도 형수에게서 카리스마 있는 면을 보았다.예전에 나는 줄곧 형수가 가정주부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제야 형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형수가 왕정민을 바라보며 계속 차갑게 말했다.“애교와 이혼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애교에게 줘야 할 것은 한 푼도 차이 나서는 안 돼요.”애교 누나는 형수가 저를 도와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눈시울을 붉힌 채 형수를 바라봤다.그러자 남주 누나도 맞장구치며 일어서서 말했다.“맞아요, 이혼은 해야 하지만 회사 주식의 절반을 애교에게 나눠줘야 해요.”“애교 누나, 뭘 망설이고 있어요? 얼른 계약서 꺼내지 않고요?”나도 얼른 애교 누나에게 귀띔했다.그러자 애교 누나는 서둘러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왕정민 앞에 내놓았다.“이건 집 명의변경 계약서이고, 이건 회사 주식 양도 계약서야. 지분은 50대 50.”왕정민은 눈이 빨개져서 쳐다보지도 않고 계약서를 모두 찢어버렸다.“이애교! 꿈도 꾸지 마! 회사는 내가 힘들게 일궈낸 것이고, 내가 직접 경영한 것인데 무슨 이유로 너에게 반을 나눠주겠어?”애교 누나는 순간 너무 역겨워 참다 못하고 왕정민의 뺨을 때렸다.“사람 참 뻔뻔해. 어떻게 그런 말을 수 있어? 그때 내가 아니었다면 회사 차릴 수나 있었어?”왕정민은 워낙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공은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이기적으로 말했다.“맞아, 회사의 창업 자금은 당신이 방법을 생각해 주었지만, 이후의 모든 일은 모두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거야. 힘들게 회사를 여기까지 성장시켰고, 나로 인해 지금 좋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거잖아. 당신이 다른 사람과 결탁해서 나를 속일 줄은 정말 몰랐어!”왕정민처럼 이기적이고 자신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든 완전히 어불성설이었다.애교 누나는 이제야 자신이 여태껏 어떤 남자와 살았는지 깊이 깨달았다.심지어 너무 억울해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난 젊고 힘이 세기에 뚱뚱한 중년 남자인 왕정민은 전혀 내 상대가 아니다.왕정민이 덤벼들었을 때 나는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러자 곧이어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그제야 형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형수가 방금 나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곧이어 왕정민에게 삿대질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냥 빨리 가지 그래요. 여기에 그쪽 반기는 사람이 없어요. 만약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운다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내 말에 왕정민은 피가 멈추지 않는 코를 틀어막으며 떠났고 소민도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 도망쳤다.좀 벌레 같은 사람이 사라지자 방안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다들 기진맥진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특히 애교 누나는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고 두 눈은 빛을 잃은 듯 텅 비었다. “애교야, 너 괜찮아?”남주 누나가 걱정하며 물었다.그도 그럴 게 애교 누나의 상태가 너무 이상했으니.“괜찮아, 조금 쉬면 돼.”“그럼 내가 부축해 줄까?”“응.”남주 누나는 애교 누나를 부축해 자리를 떴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애교 누나의 상태가 마음에 걸렸으니까. 애교 누나는 사실 큰 문제가 없었다. 그저 방금 싸운 상태라 마치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듯했다. 심지어 기진맥진해서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것도 어느 정도 이해됐다.어떤 부부든 이혼할 지경에 이르면 모두 비슷할 거다.그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 친절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사이가 틀어지기만 하면 결국 사람들은 자신만 생각하니까. “애교 누나, 저는 오히려 지금이 좋은 것 같아요. 누나도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 없고 왕정민한테 연기를 할 필요도 없잖아요. 이제 드디어 진짜 누나의 삶을 살 수 있잖아요.”이것은 내 진심이었다. 애교 누나가 힘없이 말했다. “말은 그렇지만 실패한 결혼은 여자에게 불공평한 일이에요.
형은 형수의 눈을 피하며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형수는 물러서지 않고 형에게 답을 요구했다. “그 일은 정말 나와 상관없어. 자기는 내 아내야. 내가 어떻게 왕정민더러 자기를 다치게 하는 일을 시킬 수 있겠어?”곰곰이 생각한 형은 끝내 인정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도 그럴 게,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니까. 형의 집, 차, 등 모든 재산은 형수가 쥐고 있기에 만약 형수가 형을 빈털터리로 내쫓는다면 형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혼인 관계를 만류할 선택지는 아예 없었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거대한 이익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한다. 형수는 형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그 전에 형수는 줄곧 형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형의 허락 없이는 왕정민이 그렇게 대담하게 행동하지 못했을 거니까. 하지만 형이 무릎 꿇고 눈물 콧물 흘리며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형수의 마음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일은 정말 동성과 아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고.하지만 형수의 마음속에는 또 한 가지 의혹이 있었다. 왜 형이 평소 혼자 해결할지언정 저를 건드리지 않는지.“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대로라면 우리 애는 어떻게 가지겠어? 아이가 없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이 안정될 수가 있을까? 오래 갈 수 있을까?”“진동성! 난 한 번도 당신 싫어한 적 없어. 설마 당신은 내가 싫어졌어?”형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형이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그때 형이 급히 설명했다. “내가 자기를 만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 난 지금 자기를 마주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반드시 다른 여자를 상상해야만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이렇게 한다고 해도 느낌이 강렬한 것도 아닌 데다 자기가 자꾸 욕해서 상처받았어. 이럴수록 힘이 달리는 느낌이야. 나도 무심코 발견했는데 스스로 영상을 볼 때는 아무런 문제도
“네놈이 형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진동성 난 단지 진실을 원해.”나는 진동성을 빤히 주시했다.진동성은 눈을 이리저리 피하며 내 눈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진실은 바로 그 교통사고는 단순 사고였어. 나도 네 형수가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 몰랐어.”“좋아!”나는 더 이상 진동성과 말씨름하기 싫었다. 이런 인간과 얘기하는 건 입만 아프니까.나는 두말없이 육교 가장자리로 차를 이동했다.그때 윤지은의 차가 내 차를 따라잡았다.“정수호, 명령하는데 당장 차 세워!”나는 윤지은을 무시한 채 반대쪽 차선으로 차를 돌렸다.육교의 양쪽은 모두 공중에 떠 있어 어느 쪽으로 부딪히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진동성, 빌어!”나는 액셀을 밟으며 난간 쪽으로 부딪혔다.“아! 정수호, 이 미친놈! 말할게. 말할게!”차 바퀴는 이미 난간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고 공중에 반만 둥둥 떠 있었다.정신을 차린 뒤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알아챘다.방금 1초만 늦었어도 나와 진동성은 아래로 떨어졌을 거다. 솔직히 나도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이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물었다.“말해. 그때 상황이 어땠어?”진동성의 얼굴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제야 내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만약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육교 아래로 돌진했을 거다.진동성의 목소리는 떨림이 가득했고 몸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난, 난 그냥 네 형수랑 좀 다투다가 실수로 떨어진 거야.”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역시 그 사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하지만 고작 이게 다라고?고작 몇 마디 다툰 거로 차가 통제력을 잃고 육교 아래로 떨어졌다면 왜 운전석에 앉은 진동성은 고작 찰과상만 있고 형수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걸까?“진동성, 한꺼번에 다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같이 여기서 떨어질
우연히 그림자를 통해 진동성이 벽돌을 휘두르는 걸 발견한 나는 재빨리 피해 진동성을 세게 걷어찼다.진동성은 내 발에 차여 연신 뒷걸음치더니 이내 벽돌을 던져버리고 도망쳤다.그 순간 나는 곧바로 뒤쫓았다.그러자 진동성이 도망치면서 소리쳤다.“정수호, 이 개자식아. 꼭 나를 죽여야만 해?”“내가 네 놈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네 놈이 죽으려고 설치는 거잖아.”“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수호야. 우리 그래도 형제처럼 지냈잖아. 그러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봐줘.”나는 진동성의 말을 무시한 채 그를 잡자마자 또 주먹질했다. 그러고는 그의 다리를 잡은 채 질질 끌어 다시 원래 자리로 끌고 갔다.그 모습을 본 윤미화는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수호 씨가 이런 거야?”“윤 사장님, 지은 씨, 왕정민은 두 분한테 맡길게요. 난 우리 형을 데리고 교통사고를 체험하러 가야 해서요.”말을 마친 나는 진동성을 끌고 차에 올라탔다.차를 금방 샀을 때만 해도 나는 이게 내 애마라고 애지중지했었다. 비록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산 인생 첫 차였으니까.하지만 지금은 단지 진동성을 태운 채 교통사고 체험을 시켜주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조수석에 앉은 진동성도 형수처럼 세게 다칠지 확인하고 싶었다.진동성을 차에 밀어 넣은 뒤 나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그러자 진동성은 겁을 먹었는지 버럭 소리쳤다.“수호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빨리 밟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나는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다.“맞아. 사고 내려는 거야. 이따가 육교에서 떨어지면 네 놈도 정말 형수처럼 크게 다칠지 확인해야겠어.”진동성은 다급히 조수석 위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정수호, 너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멈춰. 당장 멈춰!”나는 차를 멈춰 세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진동성은 핸들을 잡으려고 버둥댔지만 나는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그래. 잡아. 더 빨리 죽고 싶으면.”진동성은 형수가
나는 두 사람한테서 모든 빚을 천천히 받아낼 작정이었다.나는 한참 때리다가 손이 힘들어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어찌 됐든 형수가 혼수상태가 된 게 진동성 짓이라고 확신했으니까.그렇게 나는 힘이 모두 빠져서야 동작을 멈추었다.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진동성이 도망칠까 봐 그의 옷을 잡고 있었다.나도 내가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그저 형수가 혼수상태라는 생각만 하면 분노가 차올라 힘도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진동성에 대한 미움도 더해져 진동성을 죽여서라도 형수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시뻘게진 눈으로 반쯤 죽은 듯 누워 있는 진동성을 보며 또다시 물었다.“형수가 저렇게 된 거 너랑 관련 있는 거 맞지?”진동성은 여전히 잡아뗐다.“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사고였어.”나는 또다시 진동성을 주먹질했다.“말 안 해도 괜찮아. 내가 싹 다 조사할 거니까. 진동성, 만약 이 일이 네놈 짓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그 순간 진동성이 나를 보는 눈빛에 두려움이 더해졌다. 그는 내가 이토록 살기를 내뿜는 눈빛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진동성은 겁에 질려 머리를 마구 저었다.“정말 아니야. 정말 나 아니라고.”나는 진동성을 발로 걷어차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 왕정민은 어디 있는데?”“나, 난 왕정민 대신 물건 가지러 왔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나한테 연락한다고 했어.”“물건은 가졌어?”내가 따져 물었다.그때 윤지은과 윤미화도 다가왔다.진동성은 전전긍긍하며 목을 움츠렸다.“서, 서류야.”진동성은 대충 얼버무렸다.“무슨 서류?”윤미화가 따져 물었다.그 옆에서 윤지은이 보충했다.“혹시 모든 핵심 서류를 챙겨 오라고 했어?”그 서류만 챙기면 왕정민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윤지은은 평소 차갑기만 하고 사업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릴 때부터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나와 윤미화보다 맥을 더 잘 짚었다.그때
나는 다급히 일어섰다.“그런다고 이렇게 나간다고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때 윤미화가 뒤에서 말했다.“분명 계획이 있을 거야. 따라가 보자.”윤지은이 이미 계획이 있다니 순간 궁금했다.나와 윤미화는 윤지은을 따라 왕정민 회사 입구에 도착했다.현재는 새벽 2시가 넘는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매우 조용했다.순간 문득 궁금해 물어보려던 그때 그림자 하나가 살금살금 수풀 뒤에서 걸어 나왔다.하지만 그 사람은 왕정민이 아니라 진동성이었다.진동성은 우리를 발견하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냉소를 지었다.“정수호, 설마 이런다고 왕정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나는 이를 갈며 진동성을 바라봤다.“왕정민은 언젠가 잡혀. 계속 왕정민과 협력하면 분명 불똥이 튈 거야. 진동성, 이제 벼랑 끝이니 그만 멈춰.”“벼랑 끝? 하하, 정수호.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진동성은 나를 비아냥거렸다.“넌 나랑 다를 것 같아? 너도 여자 덕에 여기까지 왔잖아. 넌 뭐 대단한 것 같아?”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해 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까.“마음대로 말해. 왕정민은 어디 있어?”내 질문에 진동성은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알고 싶으면 직접 찾아.”나는 두말없이 진동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내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건 진동성뿐만 아니라 윤지은과 윤미화도 몰랐다.내가 평소에 고분고분하고 나약한 인상을 줘서인지 누구도 내가 먼저 진동성을 때릴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준비도 없이 한 대 맞은 진동성은 이를 갈며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네가 감히 나를 때려?”나는 두말없이 또 한 번 달려들었다.요 며칠간 나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 비록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진동성을 상대하기엔 충분했다.진동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강해졌는지 모를 거다. 진동성은 몇 대 맞다가 내 발에 차여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곧장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해대며 그가
나는 다급히 반박했다.“아니에요. 저 예전에는 계속 다퉜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은 씨가 저를 도와주고 있으니까 양보한 거죠.”“때리고 욕하는 것도 다 사랑이야. 그걸 모르겠어?”윤미화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그리고 두 사람 싸울 때 인신공격을 한 적 있어? 상대를 해친 적 있어? 그냥 입씨름으로 상대의 기세를 꺾으려고 했을 뿐이잖아.”윤미화는 나와 윤지은이 싸울 때마다 옆에 있었던 것처럼 제대로 맥을 짚었다.나는 놀란 눈빛으로 윤미화를 바라봤다.“윤 사장님, 혹시 제 배속에서 나왔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윤미화는 으쓱한 듯 웃었다.“뭐든 제삼자가 더 잘 아는 법이야. 사람과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해. 서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짝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에는 밉다가 점차 좋아할 수도 있어. 심지어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내가 볼 때 두 사람이 지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스타일이야. 내가 이따가 수호 씨 팔짱 끼면 윤지은 씨가 분명 더 화낼걸? 심지어 수호 씨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수도 있어.”나는 윤미화가 한 말을 곱씹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은 너무 복잡했다. 살짝 의아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윤지은 눈에 나는 늘 인간쓰레기였다. 그런데 귀하게 자란 재벌가 아가씨가 세상에 훌륭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걸 좋아할까?나는 오히려 예전처럼 지내는 게 훨씬 좋았다. 이게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한다면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하다. 내가 그럴 자격도 없고. 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이건 그만 생각할래요. 앞으로 건드리지 않으면 그만이에요.”“그런데 난 저 재벌가 아가씨가 정말 수호 씨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은데?”윤미화는 말하면서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윤지은 쪽을 흘긋거렸다. 다행히 윤지은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다급히 윤지은의 손을 뿌리쳤다.“사장님, 장난치지 마요. 정말
윤미화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함께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얼마 뒤 윤지은도 나타났다.윤지은까지 직접 온 건 매우 의외였다.“왜 왔어요?”“네가 여기서 죽은 것도 모를까 봐.”윤지은은 언제 한번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하니 오히려 내 긴장감이 줄어들었다.게다가 윤지은이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용기와 마음에 무척 감사했다.“동준 형님은요? 같이 안 왔어요?”윤지은도 왔는데 양동준이 안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양동준이 나서면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낼까?”보아하니 양동준은 부근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양동준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홉뜨며 말했다.“갑자기 이렇게 예의 차린다고?”나는 너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진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윤 사장님도 너무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제 귀인이에요.”윤미화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나중에 밥 사.”“당연하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보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옆에 있던 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종마.”윤지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내 귀에 콕 박혔다.나는 순간 어이없어 반박했다.“갑자기 왜 또 욕하고 그래요?”“욕하면 뭐?”윤지은은 더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윤지은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하더니 갑자기 기차 통을 삶아 먹었는지 화를 내다니.나는 너무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에 끝까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됐어요. 싸우기 싫어요. 내가 남자니까 참을게요.”나는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옆에 있던 윤미화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한편 나는 또 실수로 윤지은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때 윤미화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저 아가씨가 수호 씨 좋아하는 것
전승빈이 제 딸을 속일 방법은 수백 가지도 더 된다. 왕정민 같은 쓰레기가 딸 옆에 없다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닌가?만약 내가 전승빈이라면 오히려 왕정민이 영원히 사라져서 평생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거다.전승빈은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건 묻지 말게.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윤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승빈에게 말했다.“좋아요. 왕정민을 찾는 걸 도와드리죠. 그러면 제가 빚진 건 없었던 겁니다.”말을 마친 나는 윤미화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회사를 나오자마자 윤미화는 나한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왕정민은 분명 전승빈이 두려워서 숨었을 거예요. 그러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건 거의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왕정민은 분명 제가 죽도록 미울 거예요.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미쳤어? 이 와중에 왕정민을 만났다가 왕정민이 진짜 살의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왕정민은 현재 나 때문에 궁지에 몰렸으니 분명 나를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를 만나면 확실히 화를 입을 수 있었다.다만 이게 왕정민을 끌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안돼. 그건 너무 위험해. 내가 동의 못해!”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방법이 떠올랐어요. 지금 왕정민은 버림받은 개나 마찬가지라 분명 진동성을 찾아갈 거예요. 제가 병원에서 진동성만 잘 감시하면 될 거예요.”‘안 되겠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해. 안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했다.“지금 외과 병동으로 가서 진동성이 있는지 봐줄래요?”[그럴 필요 없어. 진동성이 방금 가는 걸 봤거든.]“젠장. 결국 한발 늦었네.”나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지은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이내 전승빈이 나한테 왕정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을 듣고
왕정민은 자기가 고용한 놈들이 저에게 반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너희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반항해?”왕정민은 버럭 소리치며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그러자 꽃무늬 셔츠가 콧방귀를 뀌었다.“전 회장님이 오라고 하십니다.”왕정민이 아는 사람 중 전 회장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전승빈뿐이다. 때문에 그는 단번에 전승빈을 떠올렸다.왕정민은 그제야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내가 전승빈과 손을 잡고 판 큰 함정.아쉽게도 왕정민은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왕정민은 자신이 전승빈 손에 들어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거였고.“빌어먹을!”왕정민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꽃무늬 셔츠에게 던지고는 신속히 밴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었다.그 누구도 왕정민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제야 반응한 꽃무늬 셔츠는 다급히 소리쳤다.“당장 쫓아!”꽃무늬 셔츠는 필두로 한 무리는 다급히 밴을 쫓았다. 다만 사람이 차를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왕정민은 밴을 몰고 도망쳤다.“젠장.”꽃무늬 셔츠는 곧바로 전승빈에게 전화해 왕정민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제 무리를 데리고 떠났다.한참 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승빈이었다.[증거는 입수했나?]“네.”[왕정민은 왜 도망치게 뒀지?]전승빈은 화가 난 듯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저는 함정을 파서 왕정민이 뛰어들게 하는 것만 책임졌지 사람까지 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왕정민이 도망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왕정민이 도망치면 우리가 지금껏 한 게 뭔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내 부하 놈들과 협력해서 왕정민을 잡아와!]나는 전승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제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왜 왕정민을 잡는 것까지 도와줘야 하지?’그때 윤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전 회장
이로써 왕정민의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당장 저 자식 다리부터 분질러!”왕정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소리쳤다.그러자 건달들은 무기를 든 채 하나둘씩 나에게 달려들었다.그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이 나더러 벽 쪽으로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나는 얼른 구석진 벽 쪽으로 달려갔다.건달 놈들은 멋모르고 나에게 달려왔다. 꽃무늬 셔츠는 내 앞에 막아서면서 나와 싸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반항하기 시작했다.나는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모두 건달 놈들에게 풀었다.“아!”나는 소리 지르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해댔다.마음 같았으면 놈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내 기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점차 뒷걸음치기 시작했다.나는 감정이 폭발해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이봐. 죽일 테면 죽여 봐! 덤벼!”하지만 나에게 덤비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그러자 결국 왕정민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 비켜. 내가 직접 한다.”왕정민은 몽둥이를 들어 내 다리를 내리쳤다.그 기회를 봐 내가 반격하려 할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단번에 왕정민을 걷어찼다.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나타난 변석훈을 바라봤다.“석훈 형님, 여긴 어떻게 왔어요?”“넌 윤 회장님 사람이야. 윤 회장님이 널 죽이지 않는 한 다른 놈이 널 죽일 수는 없어.”변석훈은 간단하게 온 이유를 설명했다.그때 윤미화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수호 씨, 얼른 내려와. 이 증거로 저 자식들 잡을 수 있어.”나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매우 완벽했다. 특히 왕정민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좋아요. 우리 가요.”그제야 왕정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거기 서!”왕정민은 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결국 윤미화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윤미화, 감히 날 갖고 놀아?”윤미화는 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