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정은 이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붉어지더니 수줍어했다.아니겠지...서강빈이 그녀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짓다니, 설마 자신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권효정이 얼굴이 붉어진 채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서강빈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데리러 올게요. 전 먼저 가서 회사 일 처리 도와드릴게요.”권효정은 수줍은 표정으로 웃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급히 차에 들어가 이곳을 떠났다.서강빈은 멀어져가는 차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그 시각 하도운이 달려와 서강빈의 어깨를 치고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형, 저 예쁜 누나랑은 잘 지내요?”서강빈은 대답하기 귀찮아서 몸을 돌려 가게로 들어갔다.역시 전문직은 업무 효율이 높았다.반나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써 일 처리가 끝났다.그 다음은 리모델링을 해야 했다.시공대의 말에 따르면 3일 안에 무조건 새로운 가게로 바꿔준다고 했다.서강빈도 인색하지 않고 담배 몇 갑과 물 몇 병을 사왔다.시공대 팀원들도 허허 웃으며 더 열심히 일을 했다.오후에 공진 그룹의 유상진이 찾아와 비오 그룹의 미용 스파 프로젝트에 대한 여러 디테일들을 토론했다.“유 대표님, 전 비오 그룹의 대표가 아니고 현 대표와도 이미 이혼했습니다. 전 더 이상 이 프로젝트에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서강빈이 유상진에게 차를 따라주었고 유상진도 급히 일어나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차를 받으며 웃었다.“서강빈씨, 그럼 현재 이 프로젝트에 대해 주의할 점을 저한테 알려줄 수 있을가요?”서강빈은 자리에 앉아 유상진이 가져온 프로젝트 문서를 보며 담담하게 답했다.“프로젝트가 전체적으로는 괜찮은데 미용 스파의 원료가…”“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비오 그룹 연구개발팀에서 방금 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한번 보시죠.”유상진이 급히 휴대폰을 열어 원료를 보여주며 서강빈에게 건넸다.서강빈은 레시피 내용을 훑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송해인은 정말로 그의 레시피를 완전히 바꾸
권효정이 웃으면서 턱을 치켜들며 득의양양한 자세를 취했다.서강빈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이 상업 거리 88번지는 3년 전 송해인과 함께 가봤던 사무실이었다.그때 그곳의 위치, 주변 환경 그리고 옆에 있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었다.하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두 사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88번지 맞은편에 있는 작은 사무실 하나를 임대했다.이제 이 건물은 비오 그룹의 건물이 되었다.다시 말해, 권효정은 회사를 비오 그룹 맞은편에 연 것이다. 서강빈은 권효정을 두어 번 훑어 보고 물었다.“반대편이 비오 그룹인 거 모르는 건가요?”“네? 그래요? 저는 정말 몰랐어요. 그저 다른 사람이 추천해 줘서 임대한 거예요.”권효정도 깜짝 놀랐다.망했다.회사가 비오 그룹의 맞은편이라니.고의가 아니더라도 송해인이 어떻게 생각할까?무조건 서강빈이 그녀를 일부러 도발한다고 생각하겠지…“서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 정말 몰랐어요. 아니면 제가 지금 당장 자리를 바꿀게요. 송 대표님이 오해하시면 안 되니까요.”권효정은 중얼거리며 자책하듯 말했다.서강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됐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요. 어차피 그 사람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서강빈은 권효정이 좋은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한 것을 알고 있었다.서강빈이 화를 내지 않자 그제야 권효정도 안심했다.다행히 서강빈이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이렇게 권효정은 서강빈에게 더 빠지게 되었다. 이 남자는, 정말 다정하다.송해인은 어떻게 이런 남자와 이혼을 결심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하지만 송해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만약 두 사람이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권효정은 이렇게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서강빈의 미래는 꼭 밝을 것이다....그 시각.비오 그룹,송해인이 사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이세영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송 대표님, 상업 거리 88번지 사무실이요. 방금 누가 임대했다고 합니다.”그러자
송해인은 놀랐다.그녀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창가에 서서 맞은편의 상업 거리 88번지 건물을 응시했다.그 건물은 3년 전 서강빈과 함께 가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지금 비오 그룹인 이 건물을 선택했다.3년간 발전해 온 비오 그룹은 이미 현재의 건물을 매수했다.지금은 지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연스레 맞은편의 건물을 선택했다.하지만 반년간의 교류 끝에도 갖지 못했던 건물을 오늘 이렇게 서강빈에게 점령당할 줄은 몰랐다. 임대료가 6억이라고?그것도 매달...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나오는 거지?송해인은 지금 매우 혼란스러웠다.이세영이 물었다.“송 대표님, 알아보셨어요? 누가 임대했대요?”“서강빈.”송해인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쓸쓸한 눈빛으로 반대편의 건물을 바라보았다.”네? 서강빈이요? 그럴 리가요!”이세영도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그 건물은 그들이 반년 동안 노력했는데도 매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강빈이 이렇게 빨리 매수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왜 갑자기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 거지?“송 대표님, 뭔가 이상해요.”이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디가?”송해인은 고개도 안 돌리고 반대편 건물을 보며 물었다.이세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대표님, 생각해 보세요. 서강빈이 왜 갑자기 지금 회사를 차렸을까요? 게다가, 하필이면 저희 비오 그룹 맞은편에... 대표님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하는 걸까요? 아니면...” 송해인은 듣자마자 눈썹을 찡그리며 시선을 돌려 이세영을 보고 말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이세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대표님, 서강빈 그 나쁜 놈이 대표님이랑, 아니, 저희 비오 그룹이랑 경쟁하려고 이러는 거라고요!”송해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팔짱을 꼈다.얼마간 정적이 흐르더니 송해인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닐 거야.”“아니라고요? 대표님, 아니라면 왜 하필 저희 건물 맞은편에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 건데요?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88번
이세영은 차가운 눈빛을 하고 비웃는 듯이 말했다.“서강빈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두 그룹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확실하게 보여줘야죠. 만약 박여름 씨가 첫번째 라운드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서강빈이 어떤 표정을 보일지 너무 궁금해요. 그때 가면 서강빈도 대표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이번 오디션을 계기로 박여름 씨에 관한 홍보를 강화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회사에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해요. 이번 대회는 전에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직접 정성 들여 만든 거래요. 그때 되면 송주 당지 여러 채널과 온라인에서 선발대회를 라이브 방송 할거래요. 프로그램 리뷰가 좋으면 전국대회 이어서 라이브 방송을 할 가능성이 있대요. 그러면 한의학 대회 모든 경기가 플랫폼 전체에 24시간을 거쳐 전국적으로 생중계된단 말이죠. 만약 박여름 씨가 이번 기회에 이름을 널리 떨친다면 송주 시민들에게 우리 회사를 무료로 홍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요.”송해인이 눈살을 찌푸리고 고민하더니 이세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알아서 안배해.”“네.”이세영은 활짝 웃으며 답하고는 들뜬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그리고 그녀는 비오. 그룹에서 심혈을 기울여가며 배양하려고 하는 박여름에게 문자를 보냈다.「박여름 씨, 구역 선발대회 첫번째 라운드에 참가하게끔 안배해 두었어요. 명심하세요. 꼭 재능을 잘 발휘해서 압도적인 승리를 취득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뚜렷한 이목구비에 연한 메이크업을 하고 안경을 쓴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지금 제원당 한의원에게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그녀가 바로 비오 그룹에서 심혈을 기울여가며 배양하려는 한의학 천재 박여름이었다.그녀는 송주 한의학계에서 한의학 샛별이라고 불렸다.박여름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쉽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지적 미를 지닌 도도한 매력을 갖춘 미인이었다.그러나 그녀는 환자를 대할 때만은 매우 세심하고 열정적이며 부
“너!”이세영은 멈칫하더니 눈동자가 흔들렸다.‘전에 진짜 이런 말 한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파티 현장에서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서강빈 씨! 진짜 너무 혐오스럽네요. 당신처럼 인색하고 소심한 남자는 처음입니다!”이세영은 혐오하는 눈길로 서강빈을 쳐다보며 그를 욕했다.서강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이 비서님은 지금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겠다는 거죠?”“그만해, 서강빈. 너도 사람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 이 비서가 화난 김에 했던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송해인이 나서서 팽팽해진 분위기를 깨뜨렸다.송해인의 비서인 이세영이 만약 진짜 옷을 다 벗고 크루즈에서 뛰어내린다면 이세영의 체면이 깎일 뿐만 아니라 송해인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같았다.서강빈은 헛웃음을 치더니 말했다.“내가 너무 몰아붙인다고? 송 대표님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유별나네.”“너!”화가 난 송해인은 눈을 부릅뜨고 서강빈을 노려보는 동시에 그의 옆에 서 있는 기품 넘치는 권효정도 함께 째려보았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됐어, 너랑 말하기도 이젠 귀찮아.”서강빈도 더는 이 일로 그녀와 다투기 싫었는지라 조용히 권효정 옆에 서서 입장 시간을 기다렸다.옆에서 보고 있던 진기준은 속으로 깨고소해 했다.송해인과 서강빈이 더 심하게 다툴수록 그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그보다 서강빈, 회사 차린다면서?”이세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서강빈을 바라보면서 필요한 소식을 얻어내려고 했다.“네.”서강빈은 무덤덤하게 답했다.이세영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옆에 있는 송해인을 보았다. 송해인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서강빈에게 물었다.“왜 갑자기 회사를 차리려는 거야?”송해인은 서강빈이 자신을 겨냥하려고 일부러 회사를 차리는 게 아닌지 알고 싶었다.서강빈은 살짝 웃어 보이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차리고 싶어서 차리는 거지. 왜? 회사 차리는 것도 네 동의를 받아야 해?”“서강빈, 말 좀
서강빈은 권효정이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틈을 타 위스키 한 잔을 들고 갑판 위 구석진 곳에 있는 난간에 기대어 쓸쓸하게 혼자 호수 경치를 구경했다.수증기가 섞인 습한 호수 바람이 불어오면서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순간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진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또각또각.갑자기 뒤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서강빈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빨간 가슴 V라인 드레스를 입은 송해인이 피곤한 얼굴로 걸어왔다.너무 어두운 탓에 송해인은 서강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눈을 감은 채 얼굴을 젖히고는 호수 바람을 느꼈다.그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이 호수 바람에 흩날리면서 그녀의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너무 아름답네.’서강빈은 3년 전 송해인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3년 사이에 그녀는 많이 변했다.하지만 또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서강빈은 고개를 돌리고 더는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술 한 모금을 마셨다.송해인은 갑자기 옆에 있는 서강빈을 발견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서강빈도 여기 있는 거야?’송해인은 서강빈이 회사를 차리는 데 대해 불만이 있었는지라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 호수 면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호숫물처럼 요동쳤다.5분 후, 송해인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다.‘서강빈 이 자식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 연을 끊고 살겠다는 거야? 나쁜 자식!’또 몇 분이 지났는데도 서강빈은 여전히 말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송해인이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고자 말을 꺼냈다.“서강빈, 나한테 할 말 없어?”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송해인을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호수 면을 보면서 자신을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할 말이 뭐가 있겠어.”“나와 경쟁하려고 회사 차리는 거 아니야?”송해인은 불쾌한 표정을
서강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으로 진기준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러자 진기준은 배를 그러안고 바닥에 쓰러졌다.“그만, 그만 때려!”서강빈이 발을 드는 것을 본 진기준은 얼른 용서를 빌었다.“꺼져.”말을 마치자 진기준은 바로 기어서 일어나더니 도망갔다.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하는 수 없어서 그저 눈가만 문지르며 얘기했다.“서강빈, 너, 두고 보자.”얼마 지나지 않아 크루즈 일 층의 파티장. 송해인은 입구에 서서 진기준을 기다렸다. 진기준이 눈을 가리고 걸어오는 것을 본 송해인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눈은 왜?”“서강빈, 그 자식이 때려서.”진기준이 분에 차서 얘기했다.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퍼렇게 멍이 든 진기준의 눈을 보고 같이 화를 냈다.“서강빈,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어?!”말을 마친 송해인은 얼른 직원을 찾아서 아이스팩을 가져와 진기준에게 주었다.“해인아,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고마워.”진기준은 아이스팩을 건네받고 환한 표정으로 웃었다.아까 맞은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적어도 송해인의 관심을 받았으니까.송해인은 살짝 굳어서 변명했다.“오해하지 마. 서강빈이 널 때린 게 내 탓일지도 모르니까 그래. 먼저 가자. 지금은 그 일이 더 중요해.”진기준은 헤헤 웃더니 얘기했다.“그래, 가자. 이 한의학 포럼 송주 지부 대표님은 내가 정말 어렵게 모셔 왔거든.”송해인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진기준과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은 휴게실에 오게 되었다.소파 위에는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어림잡아 30대로 보였다. 금색 테의 안경을 쓴 남자는 꽤 점잖아 보였다.“소 대표님, 안녕하세요.”진기준은 달려가서 손을 내밀었다.소준섭은 시선을 들어 진기준이 오는 것을 보고 일어서지 않고 그대로 여유롭게 소파에 앉은 채 손을 들어 악수를 했다. 소준섭이 진기준을 얕잡아 본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진기준은 난감해하지 않았다.한의학 포럼이 국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소준섭은 야릇한 시선으로 송해인의 몸을 훑었다. 게다가 송해인의 새하얀 가슴께 피부와 기다란 다리를 봤을 때, 그의 시선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그 시선은 송해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하지만 또 뭐라고 할 수 없었다.“송 대표, 우리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냥 터놓고 얘기할게요. 아까 송 대표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어요. 송 대표가 내 방에 와서 같이 술이나 몇 잔 마시면서 어떻게 할지 얘기해 보는 건 어떤가요?”소준섭은 가식은 집어치운 채, 음란한 시선으로 송해인을 쳐다보았다.다른 손으로는 바로 송해인의 다리를 만졌다.놀란 송해인은 바로 짝 소리와 함께 소준섭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차갑게 얘기했다.“소 대표님,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는 알아요?”소준섭은 자신의 손을 뿌리친 송해인을 보는 시선이 바로 달라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도움을 받기 싫은가 봐요? 송 대표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한의학 포럼의 힘을 알 텐데요. 아까 말한 그 글이 계속 한의학 포럼에 남아있고, 또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인터넷에 올려버린다면, 그때 가서 어떤 악영향이 미칠지, 송 대표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협박이다. 노골적인 협박이다.“소 대표님, 이게 무슨 뜻이죠?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송해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소준섭은 손을 젓더니 혼자서 술 한 모금 들이켜고 얘기했다.“협박까지는 아니고, 그저 이해관계에 대해 알려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저 필요한 것만 주고받는 겁니다. 송 대표는 한의학 포럼에 있는 비오 그룹의 루머를 지우고 싶은 것이고 나는 그저 송 대표가 나랑 같이 술 한잔하고 같이 밤이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죠. 어떻게, 생각할 시간을 좀 드릴까요? 송 대표?”송해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몸을 일으킨 송해인이 화를 내며 얘기했다.“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말을 마친 송해인이 바로 가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소준섭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송 대표, 잘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