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으로 진기준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러자 진기준은 배를 그러안고 바닥에 쓰러졌다.“그만, 그만 때려!”서강빈이 발을 드는 것을 본 진기준은 얼른 용서를 빌었다.“꺼져.”말을 마치자 진기준은 바로 기어서 일어나더니 도망갔다.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하는 수 없어서 그저 눈가만 문지르며 얘기했다.“서강빈, 너, 두고 보자.”얼마 지나지 않아 크루즈 일 층의 파티장. 송해인은 입구에 서서 진기준을 기다렸다. 진기준이 눈을 가리고 걸어오는 것을 본 송해인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눈은 왜?”“서강빈, 그 자식이 때려서.”진기준이 분에 차서 얘기했다.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퍼렇게 멍이 든 진기준의 눈을 보고 같이 화를 냈다.“서강빈,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어?!”말을 마친 송해인은 얼른 직원을 찾아서 아이스팩을 가져와 진기준에게 주었다.“해인아,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고마워.”진기준은 아이스팩을 건네받고 환한 표정으로 웃었다.아까 맞은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적어도 송해인의 관심을 받았으니까.송해인은 살짝 굳어서 변명했다.“오해하지 마. 서강빈이 널 때린 게 내 탓일지도 모르니까 그래. 먼저 가자. 지금은 그 일이 더 중요해.”진기준은 헤헤 웃더니 얘기했다.“그래, 가자. 이 한의학 포럼 송주 지부 대표님은 내가 정말 어렵게 모셔 왔거든.”송해인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진기준과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은 휴게실에 오게 되었다.소파 위에는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어림잡아 30대로 보였다. 금색 테의 안경을 쓴 남자는 꽤 점잖아 보였다.“소 대표님, 안녕하세요.”진기준은 달려가서 손을 내밀었다.소준섭은 시선을 들어 진기준이 오는 것을 보고 일어서지 않고 그대로 여유롭게 소파에 앉은 채 손을 들어 악수를 했다. 소준섭이 진기준을 얕잡아 본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진기준은 난감해하지 않았다.한의학 포럼이 국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소준섭은 야릇한 시선으로 송해인의 몸을 훑었다. 게다가 송해인의 새하얀 가슴께 피부와 기다란 다리를 봤을 때, 그의 시선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그 시선은 송해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하지만 또 뭐라고 할 수 없었다.“송 대표, 우리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냥 터놓고 얘기할게요. 아까 송 대표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어요. 송 대표가 내 방에 와서 같이 술이나 몇 잔 마시면서 어떻게 할지 얘기해 보는 건 어떤가요?”소준섭은 가식은 집어치운 채, 음란한 시선으로 송해인을 쳐다보았다.다른 손으로는 바로 송해인의 다리를 만졌다.놀란 송해인은 바로 짝 소리와 함께 소준섭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차갑게 얘기했다.“소 대표님,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는 알아요?”소준섭은 자신의 손을 뿌리친 송해인을 보는 시선이 바로 달라졌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도움을 받기 싫은가 봐요? 송 대표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한의학 포럼의 힘을 알 텐데요. 아까 말한 그 글이 계속 한의학 포럼에 남아있고, 또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인터넷에 올려버린다면, 그때 가서 어떤 악영향이 미칠지, 송 대표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협박이다. 노골적인 협박이다.“소 대표님, 이게 무슨 뜻이죠?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송해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소준섭은 손을 젓더니 혼자서 술 한 모금 들이켜고 얘기했다.“협박까지는 아니고, 그저 이해관계에 대해 알려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저 필요한 것만 주고받는 겁니다. 송 대표는 한의학 포럼에 있는 비오 그룹의 루머를 지우고 싶은 것이고 나는 그저 송 대표가 나랑 같이 술 한잔하고 같이 밤이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죠. 어떻게, 생각할 시간을 좀 드릴까요? 송 대표?”송해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몸을 일으킨 송해인이 화를 내며 얘기했다.“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말을 마친 송해인이 바로 가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소준섭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송 대표, 잘
권효정은 살짝 의아했다. 서강빈이 이렇게 바로 송해인을 잘라낼 줄은 몰랐다.“강빈 씨, 정말 안 도와줘도 돼요? 송 대표님께 큰일 난 것 같던데요.”권효정이 다시 한번 넌지시 물었다.서강빈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시선을 살짝 돌려보니 송해인은 이미 상대와 싸우고 있었다.그 보디가드들은 송해인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그리고 흐트러진 모습의 소준섭이 달려가 송해인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채고 악랄하게 소리쳤다.“젠장, 이 천한 년! 네가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오늘 밤 내 시중을 제대로 들지 않으면 넌 이 크루즈를 벗어날 수 없어!”“손 놔요! 경고하는데, 계속 이렇게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송해인도 화가 나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녀는 남자를 힘으로 이길 수 없었기에 벗어날 수 없었다.“신고? 어디 한번 해봐!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크루즈야! 내가 지금 널 당장 침대에 눕혀도 다 모른다고!”소준섭은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음란하게 웃었다.그 모습을 본 진기준이 황급하게 달려와 소리쳤다.“저기, 소 대표님! 제 체면을 봐서라도 일단 놔주세요. 여자가 필요한 거라면 제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꼭 소 대표님이 만족할 수 있게 말입니다!”퍽.소준섭이 주먹을 진기준에게 뻗자 진기준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소준섭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진기준, 내가 너를 봐줘서 진 대표라고 불러줬더니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저 자식을 잡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보디가드가 나서서 진기준을 바닥에 눌러 제압했다.그런 상황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본인들과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지금 화가 난 남자는 한의학 포럼 송주 지사의 대표, 소준섭이다.그의 권세는 매우 높았다.특히는 여론을 잘 장악한 사람이었다. 소준섭은 각종 플랫폼의 책임자와 파파라치, 유령회사 등을 잘 알고 있었다.소준섭이 그 사람들을 이용한다면 한 사람을 한순간에
“내가 저 사람 전남편이다.”차갑게 대답하는 서강빈의 시선에는 차가운 살기가 엿보였다.소준섭의 심장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 눈앞의 서강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가를 닦고 잔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이 년의 전남편이라고? 좋네, 아주 좋아! 감히 날 건드리다니, 그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서강빈은 미간을 좁히더니 물었다.“그래? 어디 한번 해봐.”서강빈은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시선은 얼마나 날카로운지 사람을 벨 것만 같았다.소준섭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X발,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그딴 태도로 내게 얘기해?!”“네가 누군지 내가 알아야 하나? 지금 기회를 줄게. 무릎 꿇고 송해인한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후과는 참담할 거야.”그 말에 현장의 사람들이 술렁였다.송해인도, 진기준도, 그리고 권효정까지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서강빈이 이때 나서줄 줄은 몰랐다.송해인의 예쁜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음이 복잡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한편의 권효정은 괜스레 질투가 났다.서강빈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송해인이 있는 모양이다.진기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웠다.그는 한 보디가드에게 깔려 바닥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멋있게 나선 서강빈에 비하면 진기준은 정말 못 봐줄 꼴이었다.‘젠장, 개자식 같은 놈! 영웅 놀이를 하겠다는 거지? 소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이따가 어떻게 죽는지나 지켜봐 줄게!’진기준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내가 꿇고 사과를 하라고?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송주에서 어떤 권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인지 모르는 거야?”소준섭이 음산하게 웃으며 얘기했다.“저 새끼도 쓰러뜨려! 무릎 꿇게 만들어! 감히 내 앞에서 허세를 부려? 나, 소준섭은 오늘 네 앞에서 바로 네 전처를 갖고 놀 거야!”소준섭이 소리치고 손을 흔들자 뒤에 있던 보디가드들이 바로 달려가 서강빈을 둘러쌌다.이 보디가드들은 모두 프로페셔널한 사람이었다. 몸집이 거대하
서강빈이 차갑게 말하고 한발, 한발 소준섭에게로 다가갔다.그 위압감 앞에서 소준섭은 숨도 쉬지 못했다.털썩 소리와 함께 소준섭은 그대로 놀라서 바닥에 앉아버렸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서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송해인,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비오 그룹은 여론 압박을 받을 줄 알아!”그 말을 들은 송해인은 정신이 번뜩 들어서 급하게 달려가 서강빈을 막으려고 했다.서강빈은 표정을 굳히고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돌리고 송해인을 쳐다보았다.“저 사람이 아까 널 그렇게 대했는데, 저 사람 편을 들어주려는 거야?”서강빈은 매우 불쾌했다.“난...”송해인은 잠시 굳어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이건 나 혼자만의 일이야! 네가 나서줄 필요 없어. 하지만 이 사람은 확실히 벌을 받아야해...”“뭐라고 했어! 송해인! 정말 비오 그룹이 망하는 걸 보고 싶어서 작정한 거야?!”소준섭이 놀라서 소리쳤다.“해인아, 흥분하지 마! 이분은 건드리면 안 돼!”진기준은 그 모습을 보고 빨리 기어 일어나려고 했다.“서강빈, 남의 일에 신경 꺼! 넌 지금 소준섭 대표님을 상대하고 있다고!”진기준이 빠르게 달려가 소준섭을 부축해서 일어나고 얼른 죄를 서강빈에게 뒤집어씌웠다.“소 대표님, 이 일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에요! 다 서강빈, 저 자식이 혼자서 한 일이에요! 복수를 하려거든 저 자식한테 하세요!”소준섭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말하는 데, 오늘 네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박지 않는다면 난 너를 죽여버릴 거야!”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좁혀진 미간 사이로 차가운 한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서강빈, 멍하니 서서 뭐 해! 죽고 싶지 않으면 이리 와서 무릎 꿇고 소 대표님께 사과해! 우린 너한테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아!”서강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겁을 먹었다고 판단한 진기준이 한편으로 기뻐하며 얘기했다.아까 아주 멋있게 등장하던 서강빈이 겁을 먹다니. 진기준은 그
그러자 서강빈은 손을 휘둘러 소준섭을 멀리 던져버렸다. 소준섭은 벽에 쾅 부딪힌 후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그 순간, 소준섭은 마치 트럭에 치인 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신음을 뱉었다.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서강빈은 달려들어 발로 소준섭의 팔을 콱 밟았다.우두둑.소리와 함께 팔이 그대로 부러졌다.“으아악!”비명이 크루즈를 뒤덮었다.현장의 사람들은 놀라서 숙연해졌다.서강빈의 수단에 놀라서 말도 하지 못했다.저건 소준섭 대표다.이 자식은 소준섭 대표가 두렵지도 않은 건가?!“너 미쳤어?!”아연실색한 송해인이 서강빈을 밀며 급하게 물었다.“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너 지금 큰일 난 거야!”사실 일은 매우 작았기에 돌이킬 여지가 있었다.하지만 서강빈이 이렇게 나온 순간, 사건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팔을 부러뜨렸는데 소준섭이 서강빈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내가 사고를 친 것 같아?”서강빈이 되물었다.송해인은 화가 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바닥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준섭을 한번 훑어보고 화를 억누르며 얘기했다.“됐어! 얼른 도망가! 이 일은 내가 해결해 볼 테니까!”송해인은 서강빈이 이곳에 남아 있으면 일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도망가? 송해인, 너 미쳤어? 서강빈이 도망 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 서강빈이 때린 건 소준섭 대표님이야! 말 한마디로 비오 그룹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진기준은 서강빈을 막아 나서며 소리쳤다.“그래요, 송 대표님. 서강빈을 보내서는 안 돼요!”소리를 듣고 달려온 이세영도 황급하게 얘기했다.“서강빈이 도망가면 우리는 끝장이에요!”“너희 뭐 하는 거야! 서강빈은 나를 구해주기 위해서 나선 거야. 난 서강빈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어!”송해인이 미간을 찌푸리고 소리쳤다. 진기준과 이세영의 말에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누가 나서달라고 했어요? 그저 오지랖일 뿐이에요. 도움도 안 됐고 오히
규성 어르신은 별명이 염라대왕이었다.그는 송주에서 조직의 왕으로 유명하고 밑에 수백 명의 부하가 있었다.잔인하고 악독하기로 소문났는데 복수는 끝까지 하는 성격이었다.황규성은 많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대출과 살롱 같은 무법지대의 변두리에 있는 사업들이다.요즈음 황규성은 바뀌면서 적지 않은 자선 사업을 하고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나 적지 않은 영예도 안았다.하지만 송주에서 그의 잔인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의 얘기만 나와도 벌벌 떨 정도였다.그런 황규성을 건드리는 건 정말 염라대왕에게 나 잡아가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과 같았다.“너 이 자식, 왜 아무 말이 없어. 무서워? 그러면 얼른 무릎을 꿇어!”소준섭이 허세를 부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얘기했다.진기준이 바로 달려 나와 얘기했다.“소 대표님, 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 저도 그저 엮인 거라고요! 소 대표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세요.”진기준은 두려웠다.황규성을 건드리다니, 진기준에게 목숨을 열 개 줘도 하지 못할 일이다.소준섭은 진기준을 보며 눈을 흘기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얘기했다.“난 널 상관할 생각도 없어. 얼른 꺼져!”진기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무표정의 송해인을 보더니 작게 얘기했다.“해인아, 급해하지 마. 내가 지금 나가서 아는 사람한테 연락할게. 곧 해결될 거야.”말을 마친 진기준은 바람처럼 사라졌다.송해인은 진기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관심도 없었다.이세영은 도망치는 진기준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송 대표님, 우리 이제 어떡해요? 정말 서강빈, 이 자식이랑 같이 남아서 죽음을 기다려요?!”송해인은 이세영을 흘려보고 앞으로 나서서 차갑게 얘기했다.“서강빈, 지금이라도 도망가. 난 네가 날 도와주는 걸 기대하지 않아. 네가 도와준다고 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일부러 도발하는 거다.3년 부부 생활을 했으니 송해인은 서강빈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그는 결정을 내리면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지금처럼 말이다.서강빈은 자조적으
그리고 그는 서강빈을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네가 그렇게 대단해?! 죽는 게 두렵지 않으면 갑판으로 와!”말을 마친 소준섭은 갑판 위로 올라갔다.송해인은 그 말을 듣고 눈앞이 까매져서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황규성 어르신이라니...송주의 황규성 어르신이다!이세영도 놀라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어르신은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황규성 어르신은 잔인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아니던가.끝장이다.오늘 밤은 정말 서강빈, 저 새끼 때문에 모든 일이 틀어진 것이다.“송 대표님, 어떡해요? 규성 어르신이 오신다고...”이세영은 두려움에 발을 구르며 얘기했다. 심장이 어찌나 빨리 뛰는지, 당장 뛰쳐나올 것 같았다.송해인도 겁이 났다.입술은 핏기가 없이 하얗게 질렸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작은 손은 차가웠고 두 다리는 바르르 떨렸다.눈앞의 이 갑판으로 가는 길이 그녀에게는 지옥으로 향하는 길 같았다. 깊이 숨을 들이쉰 송해인이 이세영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괜찮아, 겁먹지 마. 아무리 그래도 규성 어르신이 법을 벗어나서 우리를 어쩌지는 못할 거야.”입으로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송해인도 겁이 났다.서강빈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두려우면 이곳에 남아. 나가지 않아도 돼.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도움도 되지 않는, 비웃는 듯한 말을 들은 송해인은 화를 내며 얘기했다.“흥, 난 겁이 난 게 아니야. 네가 여기 남던가 해!”말을 마친 송해인은 이를 꽉 물고 갑판으로 걸어 올라갔다.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녀의 힘과 용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입구에 가자마자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서강빈은 담담하게 그녀 옆을 지나치며 차갑게 송해인을 쳐다보고 얘기했다.“죽어도 허세를 부리겠다는 거지. 그냥 여기 있으라니까. 이 밖은 남자들의 싸움이야. 너 같은 여자가 낄 곳이 아니야.”말을 마친 서강빈은 갑판으로 움직였다. 송해인은 그저 차가운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