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하지 마요!”송해인이 말하기 전에 이세영이 먼저 나와서 말했다. 중년 기자는 차갑게 웃고는 우남기 어르신의 상황이 위독했을 때 사진을 꺼내며 말했다.“제가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들이 일부러 약물의 부작용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까? 사진 속의 이분은 당신들도 낯설지 않지요? 제가 이 사람의 신분을 공개해야 하겠습니까?”이세영은 사진 속의 노인을 훑어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멍하니 서 있었다. 증거가 빼도 박도 못 하게 있다. 다른 기자들도 장비를 내밀며 송해인에게 말했다.“송해인 씨, 비오 그룹에서는 금오단의 약효가 일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외적으로는 만병을 통치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일부러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것입니까?”이러한 커다란 누명 앞에서 송해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증거가 떡하니 앞에 나와 있었다. 예전에 우남기 어르신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 원칙적으로 보면 비오 그룹에서는 금오단의 판매를 중지하고 더 자세하게 임상시험을 해야 했다.하지만 그때 송해인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룹의 전체 프로젝트 자금이 다 금오단의 프로젝트에 묶여있었다. 하루라도 늦게 발매하면 비오 그룹은 수천만 원이 되는 손해비용을 지급해야 했다.“그게... 저희는 일부러 기만한 것이 아니라 금오...”“송 대표님, 그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우남기 어르신이 이걸 드시고 위독할 뻔한 사실이 있는데 당신들은 금오단의 복용설명서에 약을 먹으면 환자가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표기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는 것은 당신들이 일부러 부작용을 숨기고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분의 아버지는 그저 습진이 났을 뿐인데 당신들의 금오단을 먹고 지금은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요. 저는 송해인 씨가 우리에게 합리한 해명을 해줬으면 합니다.”중년 기자가 한 말들은 송해인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이 모습을 본 도정윤은 다급하게 앞으로 나아가 해명했다.“기자님, 저희 금오단은 침술을 실행
주위에 있던 기자들도 송해인이 갑자기 쓰러질 줄 예상하지 못해 한순간 어리둥절해 있었다. 도정윤과 이세영은 다급하게 송해인을 안고 응급실 방향으로 달려갔다.“선생님, 선생님, 사람 살려주세요!”의사들이 빠르게 달려와서 송해인을 응급실로 밀고 들어갔다. 십여 분이 지나고 응급실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빠르게 달려 나와서 복도에 있는 도정윤과 이세영을 향해 말했다.“환자의 가족분들은 어디 있습니까?”“저입니다!”“저예요!”도정윤과 이세영은 빠르게 다가왔다.“환자분께서 지금 상황이 아주 위급합니다. 언제든지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직계가족의 사인이 있어야 환자분한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어요.”말하면서 의사는 면책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꺼내 사인펜과 함께 도정윤에게 건넸다.“그게...”도정윤은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이건 송해인의 생사에 관여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여기에 사인할 자격이 없었다.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학 박사로서 그녀는 응급처리를 하는 과정이 극도로 위험하지 않고는 의사가 가족에게 이런 사인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왜 그래요? 환자의 직계가족이 아닙니까?”의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저는... 저는 해인이의 친한 친구입니다.”도정윤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그녀도 이렇게 위급한 상황은 처음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당황하고 있었다.“뭐라고요? 그럼 빨리 환자의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뭐 하는 거예요!”환자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응급실로 다시 들어갔다. 도정윤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휴대폰을 꺼내 양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곁에 있던 이훈은 사람의 목숨이 경각을 달리는 상황을 보고 도적이 제 발을 저리는 격으로 슬며시 휴대폰을 꺼내 진웅 어르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는 진웅 어르신에게 4000만 원 정도의 도박 빚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진웅 어르신의 협박을 받아 자신의 아버지에게 금오단을 먹인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빌려 송해인에
“해인이 어디 있어? 이게 무슨 일이야, 아침까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양미란은 응급실 문 앞에 허겁지겁 도착해서 도정윤의 손을 잡고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도정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세영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다 서강빈 그 자식 때문이에요! 그놈이 아니면 사건이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고 송 대표님도 지병이 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양미란은 서강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었다.“빨리 말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이세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부풀려서 얘기했다. 와중에 그녀는 송해인이 기자들에게 추궁을 당한 장면을 건너뛰고 모든 책임을 서강빈에게로 밀었다. 도정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몇 번이고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사실 이 사건은 모두 서강빈의 탓을 하기에는 억지였다. 하지만 이세영의 말처럼 만약 서강빈이 그 자리에서 도와주겠다고 승낙한다면 송해인도 이렇게 굴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쓰러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여 도정윤은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이세영의 말을 듣고 난 양미란은 분노하며 휴대폰을 꺼내 서강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양미란은 전화에 대고 화를 냈다.“서강빈! 지난 3년 동안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모자라지 않게 생활했잖아. 내 딸이 너한테 잘해 줬잖아! 이 사악한 놈,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도 살리지 않고 그것 때문에 내 딸이 지병이 발작하여 쓰러지게까지 해? 똑똑히 알아둬. 만약 해인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송씨 가문에서는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송태호고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서강빈, 만약 우리 누나를 살리지 못한다면 내가 너 가만 안 둬!”병원으로 오고 있던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송해인 체내의 한기가 또 발작한 거예요?”“한기는 무슨! 네 놈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거지!”양미란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서강빈은 한숨을 내쉬고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조급해하지 말아요. 제가 떠나기 전에 송해인한테 남겨준 단약이 있는데 제 약을
송태호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맞아요. 서강빈 그놈이 뭘 알겠어요? 그놈이 남긴 약이 어떻게 누나를 치료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이미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인만 하면 누나는 금방 수술을 할 수 있잖아요.”이 말을 들은 도정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난번의 일을 생각했다. 지난번 송해인이 비를 맞고 쓰러졌을 때도 결국에는 서강빈의 침술이 송해인을 살렸다.‘설마 서강빈의 말이 진짜인 건가? 해인의 몸속에 정말 한기가 있어?’이렇게 생각한 도정윤은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미란 이모, 저는 해인이 이 수술을 하는 걸 찬성하지 않아요. 지난번 해인이 비를 맞았던 일을 아직 기억하시죠? 만약 그때 병원의 말을 믿었다면 해인이는 진작에...”이 말을 들은 양미란은 마음이 철렁했다. 도정윤의 말대로 예전에 송해인은 이런 상황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양왕곡의 사람까지 모셔왔었지만 결국 송해인을 살린 건 서강빈이었다.이렇게 생각한 양미란은 살짝 망설이는 듯 말했다.“정윤아, 네 말은 서강빈을 한 번 더 믿어보라는 말이야?”도정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해인이의 상황이 지금 아주 위급하니까 서강빈을 한 번 더 믿어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해인이를 위해서라도요.”이 말을 들은 양미란도 찬성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해인이를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하지! 이 비서, 얼른 우리를 해인의 사무실로 안내해.”말을 마친 양미란은 또 고개를 돌려 송태호에게 말했다.“태호야, 너는 병원에 남아있어. 네 누나한테 필요한 게 있다면 당장 나한테 전화하고.”송태호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제가 꼭 누나를 잘 지키고 있을게요.”양미란은 서둘러 이세영과 도정윤을 데리고 병원 출입구로 걸어갔다. 송태호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한번 보고는 응급실 앞으로 와서 창문을 통해 겨우 숨이 붙어있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송해인을 보았다.지금 송태호는 더할 나
이 상황에서 비타민을 먹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송해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경찰까지 출동해서 그녀가 바꾼 것을 조사해 내게 된다면 송씨 가문에서는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무슨 약? 그 사람들이 송해인한테 먹이고 싶다면 먹이면 되잖아.”진기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진기준은 지금 진씨 가문의 어르신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과시하고 있었다. 오늘 백도현이 직접 자신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백씨 가문과 전략적인 사업 파트너가 될 희망도 보였다. 이는 진 씨 가문에게 커다란 기쁨이었다.“잊으셨어요? 지난번에 진 대표님이 저한테 바꿔놓으라고 했던 그 약 말이에요. 만약 송 대표님이 그 약을 먹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저를 제일 먼저 의심할 거예요.”이세영은 일부러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했다. 지난번 그녀가 송해인의 사무실에서 서강빈이 남긴 약을 발견하기 전부터 진기준은 그녀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다. 하여 이세영은 비타민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이 말을 들은 진기준도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정말 사건이 생기면 진기준도 벗어나지 못한다.“당황하지 말고 기억해. 무슨 일 생기면 절대 모른다고 해야 해.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인 거야! 내가 곁에서 너를 도와줄게. 빨리 말해. 송해인 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R 대학병원이요.”이세영은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한 뒤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정윤 씨, 사모님, 찾았어요?”이 말을 할 때 도정윤과 양미란은 이미 이세영과 5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도정윤은 이세영의 당황한 기색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 비서, 방금 누구랑 통화했어요?”“그게...”이세영은 우물쭈물하다가 얼른 웃는 얼굴로 말했다.“아, 그게요. 방금 진 대표님이 송 대표님한테 연회의 일로 연락을 했는데 송 대표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도정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
송태호의 손에서 약병을 건네받은 도정윤은 뚜껑을 열어 안을 살펴본 다음 냄새를 맡아보았다. 안에서는 약 냄새가 확 나기는 했지만 뒤이어 달달한 사탕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달달한 냄새?”도정윤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얼른 안에서 알약을 꺼내 손에 놓았다. 한참을 보다가 한 알을 집어 들더니 조심스레 입안에 넣었다.“아니에요! 이건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비타민이에요!”말하며 도정윤은 문득 고개를 돌려 이세영을 보았다. 만약 이 안에 든 게 서강빈이 송해인한테 준 약이라면 송해인은 절대로 안에 있는 약을 비타민으로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체 비오 그룹에서 유일하게 송해인과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세영뿐이었다.“정윤 씨, 왜 저를 그렇게 보는 거예요? 저는... 저는 송 대표님의 서랍을 건드린 적이 없어요. 설마 제가 약을 바꿨다고 의심하는 거예요?”이세영은 말을 얼버무렸다. 도정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세영을 훑어보았고 바로 이때 진기준이 서둘러 달려왔다.“아주머니, 해인이 지금 어떻게 됐어요? 방금 이 비서한테 들었는데 해인이 또 서강빈 때문에 화가 나서 쓰러졌다고요?”진기준은 양미란한테 인사를 건네고 이세영을 한번 힐끔거렸다.“그래, 기준아. 해인이는 왜 이렇게 인생이 고달픈 거야. 연회에 참가하는 일이 해결되고 회사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될 건데...”여기까지 말하고 양미란은 고개를 돌려 침대에서 미약하게 숨을 내쉬고 있는 송해인을 쳐다보았다.“그러게 말이에요. 서강빈은 이번에 송 대표님을 죽이기로 작정을 했네요.”이세영은 서둘러 모든 책임을 서강빈에게로 미뤘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진기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서강빈이 송 대표님의 화를 돋워 쓰러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송 대표님을 살릴 수 있는 척하면서 우리가 비타민을 송 대표님한테 먹이게 했어요. 송 대표님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하고 있어요.”이세영은 말하면서 자신을 의심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도정윤의 눈을 피했다.“이 빌어먹을
조금 전의 그 순간에 도정윤은 모든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정윤 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이세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무력하게 변명했다. 도정윤은 차갑게 웃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송해인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이 비서, 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까발릴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해인이는 저한테 제일 친한 친구고 저는 해인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당신과 진기준이 한 짓거리를 남김없이 다 고발할 겁니다. 송 씨 가문에게 해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만약 해인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송씨 가문에서 당신을 가만둘까요?”도정윤의 말에 이세영은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도정윤이 이 사실을 덮어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도정윤은 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을 때 서강빈에 관한 생각도 따라서 급격하게 변화했다. 만약 이 모든 게 일부러 설계된 함정이라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바로 서강빈의 의술이 진짜라는 것이다.서강빈 같은 사람은 의학계를 놓고 말할 때 거대한 보물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서강빈을 가까이해서 더 많은 값진 처방들을 얻는 것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동시에 자신도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이 와중에 서강빈의 눈에 들지도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인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반드시 전제조건이 하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송해인은 서강빈과 재결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한편, 양미란 등 사람들은 홀에 나오자마자 서강빈과 마주쳤다. 마침 간호사에게 금오단을 먹은 환자가 어느 병실에 있는지 물어보려고 하던 서강빈은 분노한 모습으로 다가온 송태호에게 가로막혔다.“서강빈, 무슨 낯짝으로 여기를 와? 너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 누나가 쓰러질 수 있겠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않는 것도 모자라 누나한테 네가 남긴 가짜 약까지 먹게 하고. 너는 우리 누나를 죽이려는 게 분명해.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송태호
서강빈이 응급실 쪽으로 가는 것을 본 진기준은 빠르게 다가가 서강빈의 앞을 막아섰다.“서강빈, 해인이는 내 예비신부야. 해인이한테서 멀리 떨어...”진기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강빈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내리쳤고 그는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서강빈은 진기준을 보지도 않고 응급실로 걸음을 옮겼다.서강빈을 본 이세영은 제 발이 저려서 문 앞으로 물러났지만, 도정윤은 앞으로 다가가서는 서강빈의 팔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그녀의 행동에 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 속의 도정윤은 항상 자신에게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늘 도정윤의 행동은 예전과 확연하게 달랐다.“서강빈, 해인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빨리 봐줘.”도정윤은 서강빈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서둘러 침대 앞으로 왔다. 서강빈은 자신의 팔을 잡은 도정윤의 손을 살짝 밀어내고는 고개를 숙여 침대에 누워있는 송해인을 보았다.“어? 왜 이러는 거야! 방금 이 사람한테 뭘 먹였어?”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송해인의 맥을 짚으며 물었다. 도정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기준은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을 움켜잡고 소리쳤다.“네가 무슨 낯짝으로 뭘 먹였는지 묻는 거야? 네가 해인이한테 남겨 준 그 불량 약품을 먹고 해인의 상태가 더 나빠졌잖아! 서강빈,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해인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진씨 가문에서는 너를 고소해서 감옥에 처넣을 거야!”서강빈은 미간을 치켜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준 약을 먹은 게 아니야!”“어디서 발뺌하고 있어? 이게 네가 준 게 아니라면 누가 준 거야?”양미란은 빠르게 병실로 들어와서는 서강빈이 송해인에게 남긴 약병을 던졌다. 서강빈은 약병을 받아들고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았다.“아니야. 안에 있던 약을 누군가가 바꿨어!”말하며 서강빈은 똑같은 약병을 꺼내서 뚜껑을 열고 도정윤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당신 의대 나왔잖아. 이 두 약이 같은 거야?”이는 서강빈은 송해인과 이혼하기 전에 만들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