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성은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그 해에 네 어머니가 서씨 가문에서 도망 나온 후 송주에 가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때 무언가를 남겼어.”“송주? 누구?”서강빈이 물었다. 아마 그 사건 이후로 어머니와 만난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조운성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아직 거기까지는 몰라. 그 사람의 별명밖에 못 알아냈어. 귀견수라고 해.”“귀견수?”서강빈의 표정이 굳어지고 미간을 찌푸렸다. 조운성이 충고했다.“천주의 세계는 보통이 아니야. 그해 네 어머니의 일에는 서씨 가문의 사람들이 나섰을 뿐만 아니라 많은 배후가 존재했어. 그들은 지금까지도 암암리에 다 숨어있어. 이번에 네가 돌아온 것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사람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 섣불리 행동하지 마. 그 사람들이 너에게 손을 쓸까 봐 걱정돼.”서강빈은 웃어 보이더니 이내 표정이 차갑게 변하여 말했다.“그럼 기다리고 있지 뭐! 그때 우리 모자를 서씨 가문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도록 핍박하고 내가 어머니를 잃게 만들고 내 목숨까지 빼앗아 갈뻔했던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지 똑똑히 봐야겠어. 이번에 천주로 돌아오면서 평온하게 지나가길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천주의 세상이 보통이 아니라고 했지? 그럼 한번 느껴볼 생각이야. 천주의 세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말을 마친 서강빈의 표정은 여전히 분노가 남아있었고 가슴에서는 분노의 불길을 억누르며 뒤돌아 호텔로 들어갔다. 조운성은 서강빈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 아들이 너를 아주 많이 닮았어.”이 말을 남기고 조운성은 라이트 호텔을 떠났다.한편, 백씨 가문 리조트 내에서는 백형만이 천주 최고의 의료단을 데리고 와서 백서준에게 사지를 잇는 수술을 진행했다. 이 수술은 장장 6시간 동안 지속하였다. 의사가 나오자 긴장한 기색이 다분한 백형만이 다급하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설마 우리 아들이 평생 장애를 갖고 살게 된 건 아니죠?”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백 가주,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은
도신회는 용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무사연맹으로서 국제 킬러 조직과 흡사하다. 구성원들은 모두 실력이 대단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무사들이다. 거기다가 도신회가 성립돼서 지금까지 임무의 성공률은 80%가 넘는데 거의 실수하는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 오른팔 부하가 떠난 후, 백형만은 리조트 홀의 문 앞에 서서 창백하게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서강빈! 네가 그 누구든 실력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도신회 앞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을 거야. ”한편, 용국 경내 끊임없이 이어진 어느 깊은 산속, 우거진 숲속에 있는 군사기지와 흡사한 건축물의 철문 앞에서 지프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백형만의 오른팔 부하였다. 그는 차에서 내린 뒤, 약속대로 전화를 걸었다.“도착했습니다.”원숭이의 모습 같은 그림자 두 개가 빠르게 숲속에서 뛰어나오더니 귀신처럼 번쩍 오른팔 부하의 앞뒤에 나타나서 그를 막아섰다.“무슨 임무입니까?”그중 청색 셔츠를 입은 남자는 사악한 얼굴을 한 채 차갑게 물었다. 그의 몸에서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부하는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말을 더듬었다.“200억으로 사람 한 명의 팔다리를 사겠습니다.”말하면서 부하는 서강빈의 사진을 꺼내 청색 셔츠를 입은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건네받은 사진을 훑어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임무를 맡겠습니다. 돌아가서 가주님한테 전하세요. 7일 뒤, 팔다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말이 끝나고 인기척이 몇번 들리더니 두 사람은 또 순식간에 마치도 나타난 적 없는 사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겁에 질린 부하는 얼른 차에 올라타서 당장 자리를 떴다.이튿날, 잠에서 깬 서강빈은 권효정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송주로 돌아갔고 어젯밤에 백씨 가문에서는 권효정과 파혼한다고 선언했다.이 소식은 손이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티를 내지 못했는데 이번 일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그녀와 권영준이 비밀리에 계획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르
서강빈은 굳은 얼굴로 권효정에게 몇 마디 하고는 만물상점을 나서 서구역의 탄한으로 향했다. 자기 일 때문에 송해인까지 피해를 보게 하면 안 된다. 이건 서강빈이 지키는 원칙이었다. 한편, 서구역의 한담은 숲속에 위치하여 있는데 깊은 연못을 하나 두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연못은 수심이 십 미터고 물이 차가웠기에 한담이라고 불렀다. 몇 년 전, 관광팀 하나가 여기로 와서 물놀이를 하다가 열몇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고 난 뒤로부터 여기는 출입을 금지하게 됐었다. 연못의 주위에는 노란색의 경계선이 쳐져 있었다.유명한 관광지였던 곳이 지금에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한담의 곁에는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는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곳이었지만 한담이 그렇게 된 이후로 이곳 역시 버려지게 되었다. 지금 이 버려진 사당 안에는 송해인이 두 손과 발이 묶인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무척 겁에 질려있었다. 반나절 전, 그녀가 회사에서 나왔을 때 할머니 한 분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좋은 마음에 가서 부축하려 했지만, 상대가 내뿜는 검은 연기를 마시고 정신을 잃게 되었는데 송해인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 낡은 사당에 묶여있었다. 주위는 아주 스산했고 공기 중에는 축축한 곰팡내가 났다. 거기다가 바닥과 벽에서는 벌레들이 꿈틀대고 있었다.송해인은 겁을 먹고 덜덜 떨고 있었다. 이때, 몸이 굽은 노순옥이 기침을 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송해인은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는데 눈앞에 있는 노인의 얼굴은 다 썩어있어 아주 징그러웠다.“애야, 걱정하지 마. 물건을 손에 넣기 전까지 너는 죽지 않을 거야.”노순옥은 서늘한 웃음을 지었고 계속해서 격렬하게 기침했다. 두려움에 떨던 송해인이 물었다.“당신, 당신은 누구야? 왜 나를 납치하는 거야? 돈이 필요해? 내가 줄게. 얼마가 됐든지 다 줄게.”“허허.”노순옥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악귀의 웃음 같은 을 짓더니 차갑게 말했다.“돈? 내가
노순옥은 낡은 사당의 문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당 안에서는 송해인이 고개를 들어 구멍 난 천장을 통해 바깥의 창백한 달빛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강빈이 자신을 위해 여기로 올까?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서강빈은 아마도 지금 천주에서 권효정을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송해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후회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서강빈을 자신의 곁에서부터 점점 밀어냈고 한번 또 한 번 서강빈을 실망하게 했다.송해인은 자신의 마음은 서강빈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서강빈과 자신 사이에 생긴 오해는 점점 더 깊어지고만 있었다.한때 모든 것이 자신이었고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던 남자는 지금 다른 여자를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송해인은 더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서러웠다.“서강빈, 이번 생에는 나 하나만 사랑하겠다며, 왜 나를 떠나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송해인은 목놓아 서럽게 통곡했다. 지금에야 그녀는 서강빈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갑자기 바람이 일자 노순옥은 사당 문 앞에 앉아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허허, 이 자식이 드디어 왔구나.”노순옥은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달빛이 비치며 서강빈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서늘한 눈빛으로 노순옥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송해인은 어디 있어?”이때, 사당 안에서 서럽게 울고 있던 송해인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퍼뜩 놀라면서 소리쳤다.“서강빈? 서강빈 정말 너야?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송해인은 감격하여 소리쳤다. 서강빈은 사당 안에서 들리는 송해인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으로 노순옥을 보면서 쌀쌀하게 말했다.“너 스스로 사람을 놓아줄래, 아니면 내가 너를 죽이고
노순옥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리석은 놈,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은 다음에 그런 말을 지껄여!”말이 끝나자마자 땅이 뒤집혔다. 꼭두각시 시체들이 땅을 뚫고 나왔고 몸에서는 썩은 악취가 풍겨왔다.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주위에 나타난 꼭두각시 시체들을 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꼭두각시 시체들은 노순옥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강빈을 향해 매섭게 덮쳐왔다.서강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몸에서는 무서운 기운이 폭발했다. 금빛 영기가 사방에서 가닥가닥 뭉쳐서는 서강빈을 향해 몰려들었고 그가 손짓하자 금빛 영기들은 어떠한 힘을 받고 허공에서 황금색의 부적으로 변하였다.“살기를 진압해!”서강빈은 기합을 지르며 손으로 허공을 내리쳤다. 금색 영기로 뭉쳐진 열몇 장의 노란색 부적은 눈부신 금빛을 번쩍이며 꼭두각시 시체들을 향해 날아갔다. 매 한 장의 부적이 시체와 부딪힐 때마다 철을 내리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한순간에 꼭두각시 시체들은 모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일부는 심지어 부적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고 연기로 변해 허공에 흩어졌다. 하지만 일부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서는 사나운 고함을 지르며 서강빈을 향해 달려갔다.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재밌네. 이렇게 끈질긴 시체도 있다니.”노순옥도 비웃듯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고작 이 정도 실력밖에 없다고 생각해? 이 꼭두각시 시체들은 내가 만든 시체왕이야! 절대 망가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지! 대종이 오더라도 이것들을 꿈쩍도 하지 못할 거야!”말을 하면 할수록 노순옥의 얼굴에는 사악한 기운이 점점 더 넘실댔다. 노순옥이 생각하기에 서강빈은 곧 죽을 사람이다. 서강빈이 죽으면 반드시 서강빈을 자신이 제일 마음에 드는 시체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달려오는 시체들을 보았다. 다른 시체들과 확실히 달랐고 몸에는 붉은색의 부호도 새겨져 있었다.“후...”서강빈은 숨을 내쉬고는 주위의 영기를 신속하게
한순간에 주변에 있는 모든 나무가 반 토막으로 잘렸다. 꼭두각시 시체들은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절반 잘린 채 바닥에 쓰러져서 연기로 사라졌다. 검의 기운이 흩어진 후, 서강빈은 그 자리에 서서 금빛 검을 들고 있었고 한 걸음 한 걸음 노순옥에게로 다가갔다.겁을 먹고 온몸을 덜덜 떨던 노순옥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치 신을 보듯 서강빈을 보면서 애원했다.“선생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반드시...”서강빈이 칼을 휘두르자 머리통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숨통이 끊어진 노순옥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이윽고 서강빈은 자신의 몸에 맴돌던 기운을 거두고 노순옥의 시체를 지나서 사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손발이 묶여있는 송해인이 보였다.“송해인.”서강빈은 그녀를 부르며 달려가서 바닥에 무릎 꿇고 묶여있는 송해인의 손발을 풀어주었다. 끈을 풀어주자 송해인은 서강빈을 끌어안고 두려움에 질린 채 서럽게 목놓아 울었다.“서강빈, 나 너무 무서웠어. 다시는 너를 만나지 못할까 봐 정말 무서웠어.”서강빈은 잠깐 멈칫하더니 송해인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달랬다.“이제 괜찮아. 내가 너 데리고 돌아갈게.”“응.”송해인은 눈물을 가득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강빈은 송해인을 부축해서 사당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서도 송해인이 몸을 아직도 떨고 있자 서강빈이 달래주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이 말을 들은 송해인은 불쑥 고개를 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팔을 잡고 물었다.“서강빈, 앞으로 나한테 무슨 일이 또 생겨도 오늘처럼 나 구하러 올 거야?”“당연하지.”서강빈이 웃었다. 서강빈의 웃음을 보면서 살짝 망설이던 송해인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너 아직 나 사랑해?”이 물음은 서강빈을 망설이게 했다. 그는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서강빈이 망설이는 것을 본 송해인의 눈빛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서강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송해인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됐어. 대답하지 마. 나
이상한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가서는 이상한 할아버지의 몸을 살폈고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지금 몸 전체의 경맥이 다 손상되어서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예요.”서강빈이 차갑게 말했지만, 이상한 할아버지는 웃기만 했다. 곁에 있던 염지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긴장한 기색을 띠었다. 서강빈은 자리에 앉아 이상한 할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면서 말했다.“제가 봐 드릴게요.”이윽고 서강빈은 이상한 할아버지의 맥을 짚었고 그의 체내에서 몇 가닥의 내력이 뒤죽박죽 날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내공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서강빈은 점점 더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몇 명이랑 싸운 거예요?”“많지 않아. 7, 8명 정도 되는 늙은이들이지.”이상한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서강빈은 굳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7, 8명이요?”이 할아버지가 정말 미친 건지, 동시에 7, 8명과 싸우다니. 할아버지가 다친 정도로 봐서 이 사람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 누구예요?”서강빈이 물었다. 이상한 할아버지는 고개를 젓더니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을 하였는데 각혈하기까지 했다. 염지아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서 닦아주었다.“묻지 마. 네가 천용전을 이어받지 않을 거라면 이 사람들이랑 접촉하지 않는 게 좋아.”이상한 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떠보듯이 물었다.“원수예요?”이상한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고 서강빈이 다시 물었다.“무술 문파의 사람들이에요?”할아버지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서강빈의 표정이 엄숙해졌다.“수도자예요?”서강빈이 물었다. 이게 유일한 답일 것이다. 이상한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강빈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더 묻지 마.”할아버지가 얘기하려 하지 않으니 서강빈도 더 묻지 않았고 염지아한테 침을
염지아가 대답했다.“틀림없어요.”그리고 염지아는 서강빈이 방금 자신에게 설명한 것을 한번 얘기해줬다.“칠색신꽃은 꽃의 일종인데 꽃잎이 되게 많고 7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어 무지개와 같다고 해요. 영로는 새벽에 해가 금방 떴을 때 49가지 약재에서 수집한 이슬이에요. 반드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이슬이어야 하고 조금의 먼지라도 섞이면 안 돼요.”말을 마친 염지아는 서강빈을 힐끔 보았다. 전화 저편의 염동건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그렇다면 영로는 얻기 쉬워. 약초재배원을 열 개 정도 사서 내일 아침부터 사람을 시켜서 지키라고 하면 영로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근데 칠색신꽃이라는 건 정말 들어본 적 없네. 서 선생한테 전화를 바꿔. 내가 직접 얘기를 나눠볼게.”염지아는 알겠다고 휴대폰을 서강빈에게 건네며 말했다.“주인님, 아빠가 찾으세요.”서강빈이 휴대폰을 건네받자 염동건은 자책하면서 말했다.“서 선생, 정말 미안해요. 칠색신꽃이라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괜찮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한테 알아봐달라고 하면 됩니다.”서강빈이 말했다. 염동건은 잠깐 생각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서 선생, 제가 알고 있는 곳이 있긴 한데 필요하신 칠색신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그게 어딥니까?”서강빈이 물었다. 회복 탕약을 달이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방금 이상한 할아버지에게 침을 놓아 경맥을 이어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3일 남짓밖에 유지하지 못한다. 3일이 지나도 약재를 얻지 못한다면 이상한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여 서강빈도 조바심이 났다. 염동건이 말했다.“서 선생도 아마 알 것입니다. 북쪽의 용성에 의약 종가가 하나 있는데 대종가라고 합니다. 그들은 아마도 서 선생이 필요한 칠색신꽃을 갖고 있을 겁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의 눈이 반짝였다. 이걸 잊고 있었다. 9종 18부 36문 중에 의약 대종가가 있었는데 만화종이라고 했다. 물론 천의문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둘째가는 의약 종가였다. 이 종가에는 칠색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