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등등한 하인들을 마주한 서강빈은 표정이 굳어지고 미간을 치켜들었다.“당장 꺼져! 안 꺼진다면 때리라고 명령을 내릴 거야!”집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지만, 서강빈은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권효정 씨를 만나야겠어.”“젠장! 네가 오늘 순순히 물러서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당장 저 자식을 내보내!”집사가 명령하자 뒤에 있던 하인들은 몽둥이를 들고 서강빈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서강빈이 손을 들자 몽둥이들은 내력에 의해 모두 부러졌고 하인들은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내력이 일으킨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그들은 모두 뒤로 고꾸라져서 신음이 끊기질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집사는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너, 너 뭐 하는 거야? 분명히 말하는데 여기는 천주 권씨 가문이야! 네가 감히 여기서 난리를 친다면 절대 살아서 천주를 나갈 생각을 하지 마!”서강빈은 한 걸음 다가가서 차갑게 말했다.“나는 당신네 아가씨를 만나야겠어.”서강빈의 몸에서는 살기가 넘실댔다. 그 모습을 본 집사는 놀라서 몸을 덜덜 떨며 황급히 소리쳤다.“알겠어. 지금 당장 가서 말을 전할게.”말을 마친 집사는 허겁지겁 마당을 가로질러 한걸음에 중당까지 달려가서 소리쳤다.“둘째 어르신! 어떤 놈이 밖에서 아가씨를 만나겠다면서 우리 하인들을 여럿이나 다치게 했습니다.”중당 안에는 넓적한 얼굴에 진한 이목구비를 한 중년 남자가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중년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자식 이름이 뭐야?”“모, 모르겠습니다...”집사가 대답하자 중년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사람들을 더 데리고 가서 쫓아내! 그래도 안 간다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강물에 던져버려!”“네, 둘째 어르신. 지금 당장 사람들을 부르겠습니다.”집사는 명령을 받고 중당을 나섰다. 이윽고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권효정의 엄마, 손이란이 옆문으로 들어와서 쌀쌀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에요?”중년 남자는 얼른
서강빈은 집사의 몸을 넘어 리조트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경보음이 울렸고 검은 정장을 입은 타자들이 곳곳에서 쏟아져나와 서강빈을 둘러쌌다. 대략 백여 명 정도 되었고 인원수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서강빈은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였다.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린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저 자식을 막아!”누가 낸 소리인지 모르지만, 타자들은 빠르게 서강빈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고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비수를 꺼내 서강빈을 겨누었다. 하지만 전혀 겁이 없는 서강빈은 힘을 들이지 않고 다가오는 타자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던지고 쓰레기를 발로 차는 것처럼 그들을 쉽게 날려버렸고 그들은 마당에 쓰러져서 앓는 소리를 냈다.이때, 중당에서는 권씨 가문의 둘째 아들인 권영준이 차를 마시고 있다가 하인의 보고를 받았다.“둘째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마당에서 지금 싸움이 났습니다!”하인이 다급하게 소리쳤고 권영준은 굳은 표정으로 쌀쌀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아까 아가씨를 만나러 왔다던 자식이 쳐들어왔습니다.”하인이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한 권영준이 테이블을 치자 테이블은 순식간에 부서졌다.“감히 권씨 가문을 쳐들어오다니 겁이 없구나! 가자, 가서 어떤 놈인지 봐야겠어!”권영준은 눈에서 불길을 내뿜을 듯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윽고 권영준은 부하들을 데리고 중당을 나와 마당으로 갔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마당에는 500명 정도가 되는 권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쓰러져 있었고 마당의 중간에는 사람 한 명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바로 서강빈이였다.“건방진 놈! 너 누구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여기는 천주 권씨 가문이야! 네가 함부로 난리를 피워도 되는 곳이 아니란 말이야!”권영준이 근엄한 목소리로 포효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서강빈은 담담한 표정을 하고 권영준을 보면서
창호가 필살기를 쓰면서 돌진해오는 것을 보고도 서강빈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러한 표정 변화를 창호는 서강빈이 겁먹었다고 생각했다. 역시 무식한 놈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너를 지옥에 보내줄게!”창호는 소리를 지르며 무시무시한 내력을 지닌 호랑이 발톱 같은 큰 손으로 서강빈의 심장을 도려내려 했다. 하지만 창호가 예상치 못한 것은 서강빈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에 대고 휘젓기만 했을 뿐인데 창호는 뺨을 맞은 것이었다.순간, 창호는 얼굴이 차에 치인 듯 고개를 뒤로 꺾은채 날아갔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부딪힌 것도 모자라 몇 번 튕겨 오른 다음 내동댕이쳐졌다.그 모습을 본 권영준과 이랑, 그리고 주위에 있던 권씨 가문의 나머지 타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대종인 창호는 권씨 가문 둘째 어르신의 오른팔로서 이랑과 함께 호랑이와 늑대의 콤비라고 불린다. 권영준은 창호가 뺨을 맞고 날아간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랑도 서강빈을 다시 훑어보았다. 이랑은 방금 서강빈이 손을 내민 순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이랑 자신도 대가를 뛰어넘은 대종인데 출신도 모르는 애송이 자식이 공격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이랑, 저 자식을 죽여!”권영준은 서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권영준이 제대로 화가 났다.이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팔짱 낀 채 늑대의 시선 같은 서늘한 눈길로 서강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온몸에서는 시리도록 차가운 살기가 넘실댔다. 이랑이 공격하려던 때, 창호가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고함을 지르며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분노하여 소리쳤다.“이랑, 저 자식은 내 것이야! 내가 직접 죽일 거야!”이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풀고 있는 창호를 보았다.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창호의 호랑이 문신도 함께 꿈틀대고 있었다.“야 이 자식아! 내가 너의 뼈 마디마디를 모조리 씹어줄 거야! 나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줄게!”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말을 마친 이랑이 허리춤에서 나비칼을 꺼내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은 등골 서늘하게 만드는 눈부신 한기를 내뿜으며 서강빈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고 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창호의 머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얼굴이 피범벅이 된 창호가 이랑의 나비칼을 향해 날아갔고 이 모습을 본 이랑은 깜짝 놀라 빠르게 칼을 거두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호를 받아 안았다. 가볍게 받아 안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랑은 뒤늦게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창호가 자신에게 부딪히는 순간, 이랑은 빠르게 달려오는 KTX에 부딪힌 것만 같았다. 이랑은 창호와 함께 뒤로 수 미터나 밀려났고 바닥에는 무섭게 생긴 자국만 두 줄이 길게 생겼고 잔디도 다 뒤집혔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고 나서야 이랑은 품에 있는 창호가 이미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강빈의 발길질 한 번에 창호가 죽었다. 이랑은 표정이 크게 변하더니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와 분노가 함께 터져 나왔다.“네가 창호를 죽였어?”이랑이 분노하여 소리쳤고 이 말을 들은 권영준의 표정도 확 변하였다.‘뭐라고? 창호가 죽었다고?’“그 자식의 실력이 나보다 못한 탓이야.”서강빈이 담담하게 말하자 이랑은 빨개진 눈으로 호통쳤다.“너는 죽어야겠다!”이랑이 앞으로 돌진했고 손에 들린 나비칼은 서강빈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 누구도 이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적이 없는 이랑의 필살기였다. 나비칼이 서강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자 권영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끼고 뒤돌아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 녀석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죽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하지만 이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척 놀라게 되었다. 그의 나비칼을 서강빈이 두 손가락으로 집었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랑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서강빈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단단한 나비칼을 단번에 부숴버렸다는 것이다.“이게...”이랑은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은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길래 손가락으로 나비칼을 부러뜨릴 수 있는가. 이랑이 놀란
십삼 살은 권영준이 비밀리에 키우고 있던 무술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13개의 문파에서 도망치거나 쫓겨난 버려진 제자들이었다. 음흉하고 포악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었다. 그들은 계속 권영준을 위해 거친 일들을 해왔고 암암리에서는 권씨 가문의 청소부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13개의 그림자가 리조트의 곳곳에서 다가왔고 그들의 몸에서는 무섭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몇몇은 얼굴에 무시무시한 낙인까지 찍혀있었다. 문신이 아니고 낙인이 피와 살에 새겨진 자국 같은 것이었다.“하하! 야들야들한 녀석이구나. 살결이 보드라운 게 맛이 참 좋겠어.”그중 걸음걸이가 경박한 여자 한 명이 음흉한 웃음을 띠고 립스틱을 붉게 칠한 입술을 핥으며 서강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몸매가 아주 좋았는데 앞뒤가 불룩하게 튀어나왔고 걸을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어 사람들이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블랙 위도, 그만해. 아직도 남자만 보면 흥분하고 있어.”피부가 검고 체격이 우람한 건장한 남자가 두 손을 팔짱 낀 채 불쾌하다는 듯 투덜거렸다.“표산범, 내가 흥분하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블랙 위도라고 불리는 여자는 바로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고 서늘한 시선으로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너를 토막 낼 수 있어!”이 말을 들은 표산범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포악한 기운이 내뿜으며 소리쳤다.“미친년! 내가 네 목을 벨 거야!”표산범이 소리를 지르며 공격하려고 하자 곁에 있던 권영준이 차갑게 말했다.“그만해!”그제야 표산범과 블랙 위도는 조용해졌고 권영준은 매서운 눈길로 서강빈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야 이 자식아, 지금 무릎 꿇고 빈다면 아직 살 기회는 있어. 이들이 공격한다면 너는 반드시 죽게 될 거야.”서강빈은 침착한 얼굴로 주위에 있는 십삼 살을 훑어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다 같이 덮치라고 해.”“정신 나간 놈! 표산범, 저 자식
큰 소리가 나면서 십삼 살과 권영준의 시야 속에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서강빈이 아닌 표산범이 부딪혀서 날아가 버렸고 표산범은 거대한 고깃덩어리처럼 바닥에 쓰러져서 수십 미터를 굴러가서야 멈췄다.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모두 잠깐 넋이 나갔는데 정신이 번쩍 들고 나서야 그들은 서강빈을 향해 부딪혔던 표산범의 몸 절반이 모두 부러져서 피가 낭자하고 표산범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서강빈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더니 혼탁한 기체를 내뱉으며 말했다.“패문산도 별것 아니네.”이 말을 들은 나머지 12명은 모두 경악한 눈빛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저 자식을 죽여! 당장 죽여!”권영준은 표정이 크게 어두워져서는 이렇게 명령했고 나머지 12명도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빠르게 서강빈을 둘러쌌다. 살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서강빈은 담담하게 이들을 훑어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다들 36문에서 버려진 제자들이구나. 이렇게 엉망인 데는 이유가 있었네.”“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그중 한 사람이 차갑게 말하고는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서강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살짝 꺾더니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정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을 죽일 수밖에.”서강빈의 말에 나머지 12명은 하나같이 분노했다. 이 말은 분명한 도발이었다.“다 같이 덤벼!”이윽고 12개의 그림자가 서강빈을 향해 달려갔고 모두 필살기를 내보이면서 서강빈의 목숨을 당장에 거두려고 했다. 하지만 서강빈은 이들의 공격을 샅샅이 꿰뚫어 보는 듯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하고 바로 반격했다.큰 소리가 몇 번 들리고 잠깐 새에 12명의 무사는 모두 팔이거나 다리가 부러진 채 바닥에 쓰러져서 울부짖었다. 이 광경을 본 권영준은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송주에서 온 애송이 녀석이 이토록 무서운 사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십삼 살까지도 그를 이길 수가 없다니. 이 13명의
서강빈은 권효정을 안고 권씨 가문을 떠나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갔다. 잠깐 휴식을 취한 권효정은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서강빈은 그제야 권효정에게 물었다.“왜 갑자기 백서준이랑 결혼식을 올리게 된 거예요?”“내가 결혼하려는 게 아니라 저희 엄마가 강제적으로 결혼시키려는 거예요!”권효정은 억울하고 분하여 소리쳤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초지종을 다 설명해줬다. 권효정의 엄마가 그녀와 백서준의 혼사를 추진하기 위해 권씨 가문에 사고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해서 권효정을 천주에 오게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권효정의 둘째 삼촌, 바로 권씨 가문의 둘째 어르신인 권영준을 시켜서 그녀를 감금시켰다.처음에는 반항하기도 했지만 이후 권영준이 권효정에게 힘을 빼는 약을 먹였다. 여기까지 들은 서강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당신 엄마도 참 독하네요.”“다시는 저희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권효정이 화를 내며 말했고 서강빈이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예정이에요?”“어떻게 하긴요. 절대 백서준이랑 결혼 안 해요!”진지하게 얘기하던 권효정은 서강빈을 보면서 갑자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니면 제가 강빈 씨한테 시집갈까요? 그럼 엄마도 어쩔 수 없잖아요.”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냥 집으로 다시 바래다 드릴게요.”“참나, 서강빈 씨는 사람이 왜 그래요...”권효정은 서강빈의 태도가 무척 불만이라는 듯 입을 삐죽하고 씩씩거렸다. 서강빈은 일어서며 숨을 길게 내쉬고 말했다.“푹 쉬고 있어요. 오늘 밤은 아마도 그렇게 평온하지 못할 거예요.”“왜요?”권효정이 묻자 서강빈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에 당신과 백서준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내가 신부를 데리고 왔잖아요. 그럼 백서준과 백씨 가문에서 어떻게 하겠어요?”이 말을 들은 권효정은 영문을 깨닫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어떡해요? 우리 지금 당장 천주를 떠나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우리 둘이서 사는 거 어때요?”서강빈은 미간을 치켜들고 권효정
“나도 아는 사람이라고요?”백서준이 미간을 찡그렸고 손이란은 계속해서 말했다.“송주의 서강빈이 방금 우리 권씨 가문에 쳐들어와서 효정이를 데리고 갔어.”이 말을 들은 백서준이 분노가 불같이 터져 나왔다.“젠장! 미친놈이 감히 천주에 와서 행패를 부려?”백서준은 분노로 얼굴이 험악해졌다. 송주에서 서강빈한테 당한 건 낯선 곳이었기 때문이지만 지금 여기는 천주다. 백씨 가문의 구역이라는 말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백서준은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이 곁에 있는 자신의 오른팔 부하에게 말했다.“사람들을 불러! 당장 효정이 찾으러 갈 거야!”“네, 도련님.”부하가 대답했다.“잠깐만!”백서준이 소리치자 부하가 물었다.“도련님, 다른 분부가 있으십니까?”백서준이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사람을 많이 불러. 그리고 가문에서 모시는 무사들을 다 데리고 가! 오늘 권효정을 데리고 오고 그 자식을 죽여버릴 거야!”“네!”부하는 명령대로 준비하러 갔다. 권영준은 손이란과 눈을 마주치고는 백서준에게 말했다.“서준 씨, 그럼 우리는 먼저 가볼게. 좋은 소식 기다릴게.”그리고 권영준과 손이란은 백씨 가문의 리조트를 나섰다. 리조트 대문을 나서자마자 손이란은 싸늘해진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될까요?”“형수님, 걱정하지 마세요. 백서준의 성격에 절대 이대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그저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권영준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백서준의 손을 빌려 이 일을 해결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약점 잡힐 일도 없게 된는 것이다. 백서준은 500여 명의 백씨 가문 경호원들과 백씨 가문에서 모시는 무사들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리조트를 나서 빠르게 서강빈과 권효정이 있는 호텔로 달려갔다.백서준은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는 상태였다. 서강빈이 권효정을 데리고 갔다는 사실은 백서준에게 두 사람이 바람을 피운 것처럼 느껴져서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다섯 명의 무사들은 모두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