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넌 내가 보답해야 하는 사람이야.”그는 조예리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조예리는 그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유일하게 곁에 있어 주며 그를 달래주고 응원해준 사람이었던지라 꽁꽁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인 유일한 사람이었다.예전에 그는 조예리를 짝사랑하면서 그 마음을 일기에도 끄적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날, 윤윤서를 안고 나서 모든 것이 변했다.처음에 그는 치욕스러웠다. 자신이 조예리에게 더욱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서 화가 났다.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그의 꿈속에 하얀 치마를 입은 조예리가 아닌 윤윤서가 어김없이 나타났다.윤윤서는 꼭 예쁜 요괴처럼 그의 몸에 들러붙어 그를 무한의 쾌락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구재건은 원망스러웠지만, 그 방법이 없었다.나중에 그는 부단히 노력하여 끝내 성공하게 되었다.구재건이 조예리를 찾은 건 고마워서, 어떻게든 보답하기 위함이었다.조예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구재건은 그때 아주 기뻤다.그는 드디어 윤윤서에게서 벗어나 걱정할 것 없이 조예리와 잘 될 줄 알았다.하지만 조예리를 향한 마음을 전부 표현하기도 전에 그 마음은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점차 옅어졌다.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그럼에도 구재건은 조예리에게 잘해주었다. 마음속 1순위 자리도 조예리로 했다.다만 조예리에게 잘해주는 행동엔 더 이상 그녀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지 않았다.그의 말에 조예리는 흥분했다.“난 너의 보답도, 고마운 마음도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건 나한테만 관심이 있고, 나한테만 신경 쓰는 거야!”구재건은 조예리의 손을 꼭 잡으며 달랬다.“난 너한테만 관심이 있고 너만 신경 쓰고 있어.”조예리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물었다.“그러면 나 좋아해? 날 좋아해 줄 수는 없어?”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피라미드 최상층에 있는 구재건이 얼마나 냉철한 사람인지. 그런데 유독 조예리에게만 다정하고 인내심이 있었
초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었다.조예리와 구재건에게 버려진 윤윤서는 길가에 서서 한참 기다렸다.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갔다.따듯한 물로 샤워한 뒤 침대에 누웠다.이불을 몸에 꽁꽁 두른 후 텅 빈 옆자리를 보았다. 구재건이 오늘은 조예리와 밤을 보낼 것이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은행에서 보내온 알림 문자였다.구지오가 그녀의 계좌로 46.6억을 입금했다.뒤로 가득한 0의 개수를 보며 윤윤서는 순간 멍해졌다.곧이어 병원에서도 문자가 왔다. 어머니 병원비로 2억이 입금되었다는 알림 문자였다.그녀는 그저 20억을 빌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구재건은 그녀에게 이렇듯 많은 돈을 주었다.윤윤서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기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두 사람의 원한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구재건이 보여준 행동은 확실히 설렐 만했다.잘생기고, 몸매도 좋고 체력도 좋았다.돈도 많았을 뿐 아니라 권력도 있었고 씀씀이도 컸다.대부분 그는 냉철한 사람이었지만 조금만 잘해주면 그녀는 정신을 잃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만약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윤윤서는 아직 평평한 배를 만졌다.다시 한번 확신했다.구재건의 곁을 떠나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그녀는 반드시 자신의 딸을 지킬 생각이었다.윤윤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에 숨겨둔 태아 도플러를 꺼냈다.날짜를 계산하니 임신한 지 어느덧 6주가 되었다. 태아의 심박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최근 구재건이 자주 집으로 들어왔기에 그녀는 병원에 가서 검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오늘 마침 들어오지 않았으니 전에 사둔 태아 도플러를 사용해보려고 했다.윤윤서는 설명서대로 배에 젤을 바른 뒤 기계를 꺼내 천천히 배 위에 올려놓았다.“두근, 두근, 두근...”아기의 심장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순간 윤윤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이 심장 소리는 그
구재건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자신의 허리에 올린 윤윤서의 손을 보았다. 조심스럽고도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녀의 예쁜 쇄골엔 어젯밤 그가 남긴 흔적이 가득했다.몸이 점점 후끈 달아오른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지만, 벨트 착용을 마친 윤윤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의 입가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닿으면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구재건은 혀를 찼다.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윤윤서는 고개를 들며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대표님, 저 오늘 오후부터 출근해도 될까요”구재건은 눈썹을 꿈틀거렸다.“어디 아파?”윤윤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민망한 얼굴로 답했다.“어젯밤에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머리가 조금 아프네요.”구재건은 다른 대답을 했다.“최근에 많이 나약해졌네. 툭 하면 아프고 말이야.”윤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어젯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건만 오전 휴가를 허락받지 못했다.확실히 어젯밤 구재건은 너무도 거칠게 그녀를 대했다. 배가 아직도 살짝 아팠다.행여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조금 푹 쉬고 싶었지만 구재건은 그녀에게 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윤윤서는 고개를 숙이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옷을 갈아입은 후 구재건과 함께 출근하려고 했다.그런데 구재건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먼저 현관으로 가면서 한마디 했다.“오후에 지각하지 마.”“...”윤윤서는 사실 놀랐다.고개를 들었을 때 구재건은 이미 나가버린 상태였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려왔다.그녀는 들고 있던 겉옷을 내려놓았다. 다소 기쁘기도 하면서 섭섭하기도 했다.드디어 휴식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조예리가 돌아온 뒤로 구재건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기에 조금 섭섭했다.아마 이것이 첫사랑의 위력일 것으로 생각했다.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마왕 같은 존재가 갑자기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다.윤윤서는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에 든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그녀는 일단 태아 도플러부터 다시 숨긴 후 아침을 먹었다.대략 2시간쯤
아기를 낳아본 사람으로서 지수연은 아주 능숙하게 윤윤서에게 굽이 낮은 신발 몇 켤레 골라주고 편한 옷과 임산부가 써도 무해한 화장품을 사주었다.지수연은 옷과 신발, 화장품 전부 윤윤서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지금 얼른 갈아입고 와. 8cm나 되는 하이힐 신고 내 앞에서 비틀대지 말고. 보기만 해도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니까.”윤윤서는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웠기에 옷과 신발을 갈아입은 후 화장도 지우고 립밤 하나만 발랐다.지수연은 이런 윤윤서의 모습을 보곤 그제야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렇게 입었어야지. 임신했으니까 굽 낮은 신발만 신어. 하이힐은 위험해서 안 돼.”윤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답으로 다온이의 장난감을 잔뜩 사주었다.다온이는 기쁜 듯 윤윤서의 얼굴에 뽀뽀 세례를 했고 나중에 그녀의 딸이 태어나면 오빠로서 커다란 선물을 주겠다며 말했다.윤윤서는 이렇게나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적 별로 없었다. 지수연과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점심까지 다 먹은 후였고 그제야 헤어졌다.회사로 출발하려고 할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윤윤서는 다소 수상해 하며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다음 순간 기고만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윤서 씨 맞죠? 전 조예리 매니저예요.”윤윤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무슨 일이죠?”매니저는 뻔뻔스럽게 큰소리를 쳤다.“우리 예리 계약서 때문에 연락했어요. 윤윤서 씨가 작성한 거 맞죠? 계약서에 문제가 있으니까 빨리 와서 확인하세요.”윤윤서는 차갑게 웃었다. 속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그녀는 구재건의 전담 비서로 몇 년 동안 일했던지라 업무에 아주 능숙했고 계약서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조예리가 그녀를 부른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미였다.다만 설령 조예리의 목적이 불순하여 거부한다고 해도 다음번에 또 다른 수를 쓰며 그녀를 불러내려 할 것이다.그러니 차라리 속아 넘어가 주어 조예리의 목적을 파악하는 것이 나았다.이렇게 생각한 윤윤서는 지수연과 작별 인사를 한
윤윤서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조예리가 이렇듯 연기를 하는 것은 구재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를 원한 것이다.구재건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조롱하고 불신하는 것을 말이다.모든 사람들에게 구재건이 그녀를 얼마나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고 있나 보여주고 싶어 했다.그럼에도 윤윤서는 조예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그녀는 고래를 들어 대기실 구석에 있는 카메라를 보았다.“그럼 CCTV를 돌려보죠.”CCTV는 거짓말할 리도 없고 편애할 리도 없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조예리는 멈칫했다.그저 윤윤서를 모함할 생각만 했을 뿐이지 대기실에 CCTV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조예리는 황급히 구재건에게 말했다.“됐어, 재건아. 어쨌든 윤윤서는 재건아 비서잖아. 재건이를 봐서라도 내가 용서해 줄게.”윤윤서는 여전히 연기하고 있는 조예리를 무시하곤 다시 구재건에게 말했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CCTV를 돌려보면 전부 알게 될 거예요.”구재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윤윤서를 빤히 보았다.윤윤서는 오늘 하이힐이 아닌 굽 낮은 신발을 신고 있었던지라 평소보다 고개를 좀 더 숙여 그녀를 봐야 했다.항상 잔머리 없이 올려 묶었던 포니테일도 낮게, 편하게 묶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차갑기만 했던 윤윤서의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 꼭 지켜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그녀의 주위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 적 없었다.딱히 별다른 일도 없었다.윤윤서는 대체 그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필요 없어.”구재건은 시선을 거두며 윤윤서의 요구를 거부했다.“난 예리 너를 믿어.”“고마워, 재건아.”조예리는 구재건의 소매를 잡으며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구재건은 조예리의 손을 잡고 계속 윤윤서를 압박했다.“사과해.”“...”윤윤서는 이를 악물었다. 입을 열지 않았다.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하는 걸까?조예리는 허리를 빳빳이 펴고 절대 고
“네? 그러지 말아요. 제 말 들어요. 사랑보다 중요한 건 뭐다? 바로 일이고 돈이죠.”강우진은 화제를 돌렸다.“사랑은 사람은 슬픔에 빠지게 하지만 일을 하면 돈이 생기죠. 최근에 날도 추워졌는데 제가 월급 받은 김에 맛있는 거 한턱낼게요.”다른 사람들이 윤윤서와 조예리의 일을 수군대고 있을 때 그는 괴롭힘을 당하는 윤윤서가 불쌍해 죽을 것 같았다.‘자랑질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그렇게 사모님이 하고 싶으면 대표님이나 열심히 꼬시지 왜 자꾸 윤서 씨를 괴롭히는 거야!'강우진은 화가 났지만, 안으로 굽는 팔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이렇게 윤윤서를 위로해주는 수밖에 없었다.윤윤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다음에 사줘요. 전 이미 저녁으로 국수를 먹고 있었거든요.”강우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국수가 뭐가 맛있다고 그래요. 얼른 준비하고 나와요. 제가 데리러 갈 테니까요.”윤윤서가 망설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면서 구재건이 보낸 문자를 받게 되었다.[해장국 끓여서 20분 내로 가져와.]뒤이어 호텔 주소를 보내왔다.윤윤서는 해장국이라는 세글자에 저도 모르게 차갑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녀는 해장국을 끓일 줄 몰랐고 구재건에게 끓여준 적도 없었다.집안이 망하기 전에 윤윤서는 귀하게 자란 부잣집 딸이었고 음식도 전부 전용 영양사가 만들어서 주었다.그랬기에 그녀는 주방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나중에 집안이 망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재건의 전담 비서로 취직했다.매일 그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업무를 처리하느라 앉을 새도 없었기에 요리를 배울 시간은 더욱 없었다.배고프면 레스토랑에서 배를 채우거나 배달을 시켜 먹었다.시간이 없으니 매끼 대충 먹었다.구재건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윤윤서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구재건은 있는 집안에서 귀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결벽증, 위염, 불면증 등 이런 귀하게 자란 부잣집 아들이 앓고
모든 사람들이 구재건에게 집중하면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구재건은 고개를 들자 창백한 윤윤서의 안색을 발견했다.아무리 룸의 조명이 어둡다고 해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창백했다.구재건은 이상하게도 짜증이 치밀었다.미간을 팍 구기며 윤윤서에게 명령했다.“앉아.”“...”오전에 그 일이 있은 뒤로 윤윤서는 구재건이 조예리를 편을 들고 있어도 딱히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그녀는 대충 구석 자리에 앉았다.다음 순간, 머리가 어질거렸다.지수연이 말하길 임신 초기에 태아의 발육은 모체에 의지하여 성장한다고 했다.그랬기에 많은 임산부들이 빈혈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그녀는 임신한 순간부터 입덧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래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더구나 오늘 하루 동안 먹은 것이라곤 이곳으로 오기 전 대충 끓인 국수 두 입이었던지라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누구도 그런 그녀의 상태를 발견하지 못했다.다들 구재건과 조예리 곁에 모여서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구 대표랑 조예리는 그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거야?”“아니, 그냥 같은 고향 사람이야. 대학교 입학 하기 전까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구재건은 담담하게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윤윤서에게 눈길을 돌렸다.윤윤서는 구석에서 몸이 불편한지 한 손으로 벽을 지탱하며 다소 괴로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다른 사람들은 계속 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구 대표 대학교 때 엄청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에이, 그래도 그런 말이 있잖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맞아, 구 대표의 고생은 끝났으니 이젠 낙이 올 차례지!”“재건이는 지금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예전 일은 그만 언급해. 괜히 분위기만 망치니까.”조예리는 굳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하곤 윤윤서가 가져온 해장국을 열어 맛을 보았다.그러더니 탁 소리를 내며 다시 테이블 위로 거칠게 던졌다.“세상에, 윤 비서. 해장국을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이거 정말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윤윤서는 머리가 너무도 어지러웠다.조예
구재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조예리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시간도 늦었으니까 대충 마무리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조예리는 설득이 통하지 않자 이를 빠득 갈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구재건!”구재건은 고개를 돌리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누군가를 불렀다.“구지오!”경호원들과 담배를 태우고 있었던 구지오는 구재건의 부름에 바로 달려왔다.정신을 잃은 윤윤서와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조예리가 보였다.멍하니 상황 파악하고 있던 찰나에 구지오는 구재건의 지시를 듣게 되었다.“얼른 차 끌고 와. 병원으로 갈 거니까.”“응, 형.”구지오는 조예리를 힐끗 보곤 얼른 차를 끌고 왔다.구재건은 윤윤서를 안은 채 걸음을 옮겨 차에 올라탔다.차가 떠나간 이곳에 먼지만 남았다.조예리의 안색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윤윤서 이 여우 같은 X!'‘꾀병을 부려?!'‘구재건을 꼬시려고 별짓을 다 하고 있잖아!'룸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지라 조예리는 이를 빠득 갈며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에 관해 의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구재건이 조예리를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을 줄은 몰랐네.”“그러게. 윤윤서가 쓰러진 것도 난 못 봤는데 구재건이 먼저 발견하고 달려나갔잖아. 그때 그 속도 얼마나 빠르던지, 순간이동이라도 한 줄 알았다니까.”“솔직히 윤윤서 몇 년 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지 않냐?”“윤윤서 별명 모르는 사람 없잖아. 우리 학교 여신은 역시 달라. 몇 년 직장 생활 좀 했다고 기품이 더 달라졌잖아.”“뭐야, 네가 웬일로 칭찬을 후하게 하냐. 혹시, 좀 꼬셔보려고?”“뭐라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 그런 생각 절대 하지 않았으니까!”사람들은 웃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조예리를 발견했다.파리해진 그녀의 안색은 꼭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룸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뭐가 어찌 되었든 구재건이 조예리를 아낀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누구도 멍청하게 조예리에게 밉보이는 짓을 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