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네가 날 구해줬네!”한소은은 리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났다.하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좋은 마음에서 그런 거였다. 리사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별말씀을! 넌 나한테 향주머니 만드는 법만 알려주면 돼. 나 너무 마음에 들어, 네가 준 걸 보고 직접 만들어 보려고 해도 잘 못 만들겠더라고.” "네 아버지가 최고의 조향사인데 아버지가 만든 향수 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향이 없는 거야?”한소은은 생각을 하더니 이내 물었다. "있긴 한데, 향수는 네가 준 향주머니 하고는 달라. 그건 내가 가지고 다니면 향이 오래가면서 잘 때도 침대 머리맡에 놔둘 수 있어서 너무 좋더라고, 마음에 안정감도 주고 말이야. 소은아, 너 설마 안에 무슨 사람을 홀리는 약이라도 넣은 건 아니겠지? 나 정말 네가 준 향 주머니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하, 약이라도 넣었다면 네 아버지가 단번에 분별할 수 있었겠지!”한소은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볼 필요 없어, 우리 아빠는 얼굴을 보러 온 거야, 중요한 손님을 만나러 갔어.”한소은이 뭘 보려는지 아는 듯 리사가 대답했다. "응, 우리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가장 평범한 손님들이지.”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도 사실 윌의 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고, 차별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녀는 주최 측의 냉대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중요한 손님은 특별히 모셔야 하지만 평범한 손님들은 주최 측에서 초대를 했더라도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부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리사는 고개를 젖히고 웃기 시작했다."방금 너랑 아빠가 대화하는 걸 나도 들었어, 정말 존경해!” "존경한다고?” "응!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감히 누군가 우리 아빠한테 이렇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 방금 아빠 얼굴이 완전 파랗게 질린 걸 봤는데, 정말 웃기더라. 하하하……” 한소은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넌……”리사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고, 강시유는 오랜 친구처럼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야, 너무 기억력이 안 좋은 거 아니니? 나 강시유잖아!” “……”한소은과 리사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그 당시 강시유와 리사는 친분이 없었고, 확실히 말하자면 그녀의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으며 여학생들은 이익을 따지며 사귀었고 가치가 없으면 말도 섞지 않았다. 그때는 사회 경험이 별로 없어서 강시유가 이토록 험악한지 몰랐고, 강시유가 먼저 다가가 호의를 표하자 그녀가 천성적으로 이렇게 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진심으로 그녀를 친구로 여겼는데, 그녀는 일찍이 차근차근 계획을 짜고 있던 것이었다.지금은 아마 리사가 윌의 딸인 걸 보고 일부러 친한 척을 하는 듯했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강시유는 다소 어색했지만 주눅이 들지 않고 다시 한소은에게 시선을 돌렸다.“너 잊었어? 예전에 나랑 소은이랑 같은 기숙사였잖아. 우리 종종 같이 밥도 먹고 했는데, 교문 앞에 있는 식당 기억 안 나?” 먹는 얘기가 나오자 리사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교문 앞에 있는 식당 요리가 진짜 맛있었는데, 나 돌아온 이후로 계속 못 먹었잖아. 식당 얘기를 하니까 군침이 다 나네. 그 식당 아직도 있어?”강시유는 순조롭게 화제를 돌리며 그녀의 가장자리에 앉았다.“응, 있지. 사장님이 나이가 드셔서 아들한테 장사를 맡겼는데 맛은 똑같아. 언제 기회가 되면 내가 쏠게!” “정말이야?”리사는 매우 흥분한 듯했다.“나 지금이라도 당장 날아가서 먹고 싶어!” “하하, 그럼 같이 돌아가자! 안 간지 엄청 오래됐지, 소성도 많이 변했어. 네가 오면 여기저기 구경시켜 줄게, 그 식당 말고도 맛있는 게 많으니까 천천히 둘러보면서 같이 먹자.” 강시유는 말하면서 한소은의 안색을 살폈고, 그녀는 꽤 의기양양했다.어린 소녀와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관심을 끌면 그만이었다.어쩌면 리사가 그녀에게 가장
옆에 있던 강시유는 바쁘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아 카톡을 열고는 말했다.“그래, 그래, 카톡을 추가해 놓으면 연락하기 편하지.” 하지만 그녀가 리사를 추가하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가져가면서 말했다.“난 이제 돌아가야겠어, 아빠가 날 찾을 거야. 우리 다시 연락하자!”“리사, 난 아직……”강시유는 황급히 일어섰지만, 리사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며 한소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강시유는 리사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휴대폰를 꽉 움켜쥐었고, 휴대폰을 망가뜨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아무나 네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한소은이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디딤돌을 밟을 수 있는 것도 내 능력이야. 한소은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네가 거물급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나처럼 관계를 이용하고 있는 셈인데 나랑 무슨 차이가 있다고 고상한 척을 해!” 리사에게 철저히 무시당하자 강시유는 부끄러워 한소은에게 화풀이를 했다.그녀는 자신이 이번에 운이 없었기에 리사의 차를 타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괜찮았다, 상대방은 그저 어린 소녀에 불과했고 그녀는 자신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면 가장 직접적인 것을 찾으면 됐다. "마음이 검은 사람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사람만큼 마음이 검다고 생각을 하지.”한소은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너 거울은 본 적 있니?”“너……”강시유가 그녀를 향해 욕을 하려고 하기도 전에 한소은은 그녀의 비서와 함께 회장을 떠났다. 한참을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젠은 느릿느릿 다가와 말을 꺼냈다."당신이 정말 좋은 배를 탈 수 있는 줄 알았는데요.”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강시유가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해요! 서두르면 꼭 일을 그르치는 법이라고요.” "당신이 그렇게 서두르지 않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될까 봐서 그러죠!” 로젠은 조금도 숨김없이 그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인경은 계속 잔소리를 했다. "조향사님, 오늘 비록 별일 없이 그냥 넘어갔지만 저는 반드시 조향사님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조향사님의 행동은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조향사님의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회사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뻔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한소은은 그녀가 잔소리가 많은 것을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잔소리가 많은 줄은 몰랐으며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렇게 심각해요?"그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경은 더욱 진지해졌다. "조향사님, 왜 아직도 웃음이 나올 수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큰일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마침 조향사님이 윌 씨의 따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예요. 만약 조향사님이 모른다면요? 만약 윌 씨의 따님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또 만약 그분 따님이 조향사님이 자기 친구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으면요?""우리는 남의 구역에서 손님은 주인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법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주최 측이 미흡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후에 상대방에게 의견을 제기할 수 있잖아요. 대놓고 남을 비난하는 게 아니고요. 만약 상대방이 이것 때문에 우리의 참가 자격을 취소한다면….""상대방은 우리를 자격 있는 참가자 명단에 아예 넣지도 않았어요!"그녀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해 한소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인경 씨가 만약이 너무 많아요.”"저…"갑자기 디스 당하고 인경은 어리둥절해서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인 비서, 당신이 회사의 입장에서 염려한 것이고 확실히 좋은 마음이라는 것을 나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못 알아보겠어요? 여기에서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작은 나라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도 않아요. 우리가 이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다들 신경 쓰지도 않아요.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내가 이번 대회에서 상을 받더라도, 그 사람들은 내가 뒷거래를 해서 받았다고 말할 거예요.”원래 상대방이 우리에 대한 차별이 심했고, 게다가 지금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윌
하지만 몸을 뒤집고 생각하다가 참지 못하고 채팅 화면을 열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설마 여자가 그렇게까지 조신해야 하는가? 그녀가 적극적이고 그 사람이 보고 싶은데 어때서!"나 도착했어!"그녀는 재빠르게 다섯 글자를 입력하고 발송을 눌렀으며 자신에게 망설이고 후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하지만 이 다섯 글자가 발송된 후 마치 바다에 가라앉은 듯 아무런 답장도 없었고, 대충 이모티콘으로 답장도 하지 않아 순간적으로 기분이 다운되었다.그 다섯 글자를 지켜보고 있으니 창피했다.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보냈는데 그의 반응도 너무 평범해서 정말 창피했다!문자를 철회하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지나 철회할 수 없었다. 아씨!그녀가 우울해하고 있을 때, 전화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고 위에 김서진의 이름이 깜박이는 것을 보고 좋아서 날뛰며 곧 수신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그런데 터치하려는 순간, 억지로 브레이크를 밟았다.안 돼, 안 돼, 안 돼! 이렇게 빨리 받으면 자기가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3초 동안 멈췄다가 그녀가 자리에 없다고 생각해서 아예 끊어버릴까 봐 그녀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녀는 끝소리를 길게 끌어서 듣기가 좀 나른했다."7시간 28분."그가 말했다."뭐가?"한소은은 눈을 깜박이며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자기 7시간 28분 늦었어."김서진이 마치 시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비행기 시간으로는 7시간 28분 전에 벌써 도착했는데, 한 시간 반 길에서 보내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빼도 다섯 시간이나 늦었어."한소은: "… 그럼 자기도 7시간 28분이나 늦은 거네! 아니! 일곱 시간 반이야!"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분명 그는 그녀의 비행기 시간을 알고 있었고, 충분히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감히 그녀가 늦었다고 탓하고 있다."미안해. 회의 중이었어."콧대를 주무르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하루 종일 회의하고 중간에 이것저것 하느라 정말 바빴으며 이
"자기 캐리어 중간 포켓에 비밀번호가 없는 블랙 골드 카드가 있어. 가져가 써."뜻밖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한소은은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뒤졌다. 과연 그가 말한 곳에서 블랙 골드 카드를찾았는데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실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니 일반 카드가 아니었다."자기 언제 넣었어?"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언제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으면 돼."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밖에 나가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해. 내가 곁에 없으니 자기 몸을 잘 챙겨야 하는 거 잊지 말고.'”이 말에 한소은은 매우 감동받아 마음이 마치 제대로 마사지 받은 듯 아주 편안했다.어릴 때부터 그녀가 받은 교육, 그리고 배운 것은 자립하는 법, 자신을 챙기는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 사람이 자기를 걱정해주며 자기가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자기가 먹고 자는 일이 그의 눈에는 모두 하늘 같이 크고 중요한 일이 된 것 같다."알았어. 자기도."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살살 말하며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김서진은 입꼬리가 올라가며 무언가 생각이 났다. "참, 이번에 주최측에서 윌 씨를 초대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 좀 까다로워. 만약 마주치게 되면 가급적 정면충돌을 피하는 게 좋아."“......”그녀의 속시원한 대답도 기다리지 못하고 김서진은 불안해서 떠보았다. "설마 벌써 만났어?""응."그녀는 가볍게 대답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아예 다 쏟아냈다.그녀가 말을 다 하자 이번에는 김서진이 침묵할 차례였다."내가 어이없어 보여?"원래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방관자로서 모든 일을 한 번 설명하고 나니 오자마자 이렇게 중요한 인물에게 밉보였으니 그녀도 자신에게 매우 어이가 없었다.그런데 어이가 없는 건 어이가 없는 거고 되돌릴 수 있어도 자신은 똑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 조향사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꼭 그렇
그녀는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데 하필 여기서 친구를 만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신분을 가진 친구를, 그녀 자신도 놀랍다고 생각했다"그러니까 이것도 무심코 꽂은 버들이 녹음을 이룬 셈이니 자기가 인복이 있는 사람이야."어쨌든 그는 안심했다. 적어도 이런 관계가 있으니 윌이 그녀를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을 것같다."복이라고! 나 지금 진퇴양난에 처해 있어. 이번 품평대회에서 내가 이기든 말든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야."비명을 지르고 그녀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두려워?"김서진은 의자를 돌려 한쪽 면의 통유리창을 마주하고, 밖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 야경이다. 깊은 밤이 다가오는데도 그는 집에 갈 마음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텅 비고 그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이 사무실에 남아서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두려울 게 뭐가 있어. 더 나쁜 일도 겪어봤는데! 입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는데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내가 어떻게 통제를 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돼!"그녀는 입으로는 불평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지금 상황이 이렇다. 그녀는 여태껏 어려움에 처해도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으며 설마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두려워서 기권하거나 일부러 대회에서 지겠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하면 되지. 그녀가 조향을 배워 이 바닥에 뛰어든 것은 좋아하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려고 한 것이 아니다.만약 이런 일에 신경 쓴다면, 이미 노형원과 강시유가 손을 잡고 그녀에게 뒤집어 씌울 때 이미 화가 나서 죽었을 것이다.그녀의 말에 김서진은 웃었다. "마음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 항상 내가 있어."이 간단한 한마디가 가장 큰 격려와 응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소은은 매우 위로가 되었다. 어쨌든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녀는 혼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한소은은 처
그녀는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알았어. 오빠 말대로 닫지 않을 게."그녀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방금 내려놓은 가방을 풀었는데, 안에는 커다란 보온 도시락이 있었다. "오빠가 일을 시작하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 또 밥을 안 먹었지?"그의 앞에 있는 커피를 흘겨보고는 바로 커피잔을 들고 가서 쏟아버렸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커피만 자꾸 마시면 위에 안 좋아. 오빠는 자기 몸을 챙길 줄 모르네!"그러면서 도시락을 열었는데 안에 따뜻한 음식이 들어 있었고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너무 매력적이었다.“내가 특별히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 닭고기 야채볶음을 만들었어. 얼른 먹어봐.”아주 열정적으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그의 앞에 놓고 두 손으로 볼을 받치고 숭배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김서진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만든 거야?""맞아. 빨리 내 요리 솜씨가 어떻는지 먹어봐."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그에게 먹으라고 재촉했다."네가 만든 거라고?"그는 다시 한번 물었지만,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냉담하고 투명하여 마치 그녀의 모든 생각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허우연은 입을 삐죽 내밀고 똑바로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내가 운상루에서 포장해 왔어.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됐고 시차적응도 잘 안 돼서 피곤해 죽겠어. 내가 요리하는 거 좋아해도 장을 볼 시간이 없었단 말이야!""내가 직접 하라고 말한 적이 없어."그는 도시락 뚜껑을 덮고 옆으로 놓았다. "그렇게 피곤하면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오빠 보고 싶었단 말이야!”도시락을 한쪽에 놓고 한 입도 먹지 않는 모습을 보며 허우연은 화가 났다."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지만 내가 직접 가서 사온 거잖아! 그냥 한 입만 먹어줘. 오빠가 이 집 음식을 제일 좋아하잖아?""배 안 고파."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시간이 늦었으니 서한 보고 데려다주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