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데 하필 여기서 친구를 만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신분을 가진 친구를, 그녀 자신도 놀랍다고 생각했다"그러니까 이것도 무심코 꽂은 버들이 녹음을 이룬 셈이니 자기가 인복이 있는 사람이야."어쨌든 그는 안심했다. 적어도 이런 관계가 있으니 윌이 그녀를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을 것같다."복이라고! 나 지금 진퇴양난에 처해 있어. 이번 품평대회에서 내가 이기든 말든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야."비명을 지르고 그녀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두려워?"김서진은 의자를 돌려 한쪽 면의 통유리창을 마주하고, 밖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 야경이다. 깊은 밤이 다가오는데도 그는 집에 갈 마음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텅 비고 그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이 사무실에 남아서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두려울 게 뭐가 있어. 더 나쁜 일도 겪어봤는데! 입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는데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내가 어떻게 통제를 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돼!"그녀는 입으로는 불평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지금 상황이 이렇다. 그녀는 여태껏 어려움에 처해도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으며 설마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두려워서 기권하거나 일부러 대회에서 지겠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하면 되지. 그녀가 조향을 배워 이 바닥에 뛰어든 것은 좋아하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려고 한 것이 아니다.만약 이런 일에 신경 쓴다면, 이미 노형원과 강시유가 손을 잡고 그녀에게 뒤집어 씌울 때 이미 화가 나서 죽었을 것이다.그녀의 말에 김서진은 웃었다. "마음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 항상 내가 있어."이 간단한 한마디가 가장 큰 격려와 응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소은은 매우 위로가 되었다. 어쨌든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녀는 혼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한소은은 처
그녀는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알았어. 오빠 말대로 닫지 않을 게."그녀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방금 내려놓은 가방을 풀었는데, 안에는 커다란 보온 도시락이 있었다. "오빠가 일을 시작하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 또 밥을 안 먹었지?"그의 앞에 있는 커피를 흘겨보고는 바로 커피잔을 들고 가서 쏟아버렸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커피만 자꾸 마시면 위에 안 좋아. 오빠는 자기 몸을 챙길 줄 모르네!"그러면서 도시락을 열었는데 안에 따뜻한 음식이 들어 있었고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너무 매력적이었다.“내가 특별히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 닭고기 야채볶음을 만들었어. 얼른 먹어봐.”아주 열정적으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그의 앞에 놓고 두 손으로 볼을 받치고 숭배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김서진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만든 거야?""맞아. 빨리 내 요리 솜씨가 어떻는지 먹어봐."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그에게 먹으라고 재촉했다."네가 만든 거라고?"그는 다시 한번 물었지만,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냉담하고 투명하여 마치 그녀의 모든 생각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허우연은 입을 삐죽 내밀고 똑바로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내가 운상루에서 포장해 왔어.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됐고 시차적응도 잘 안 돼서 피곤해 죽겠어. 내가 요리하는 거 좋아해도 장을 볼 시간이 없었단 말이야!""내가 직접 하라고 말한 적이 없어."그는 도시락 뚜껑을 덮고 옆으로 놓았다. "그렇게 피곤하면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오빠 보고 싶었단 말이야!”도시락을 한쪽에 놓고 한 입도 먹지 않는 모습을 보며 허우연은 화가 났다."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지만 내가 직접 가서 사온 거잖아! 그냥 한 입만 먹어줘. 오빠가 이 집 음식을 제일 좋아하잖아?""배 안 고파."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시간이 늦었으니 서한 보고 데려다주
허우연은 김서진을 좋아하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고, 김서진이 그녀를 몇 번을 거절해도 그만두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비록 거절했지만, 곁에 다른 여자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도 자신을 좋아할지도 모르며 단지 두 집안이 너무 가깝게 지내서 그녀를 여동생으로 여기는 것이고 사실은 그게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이런 생각 때문에 그녀는 계속 좋아해왔고, 언젠가 그를 감동시킬 수 있고 결국 그녀의 남자가 될 거라고 믿고 있다.그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허우연도 조금 무서워서 아랫입술을 깨물고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알았어. 나는 그냥 오빠를 너무 오래 못 봐서 보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일부러 가서 야식을 사왔는데 먹지도 않고 나한테 야단을 치고그래.”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눈물이 핑 돌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김서진은 그녀를 곁눈질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이젠 어린애 아니야. 그렇게 제멋대로 굴면 안 돼. 반년 넘어 돌아오지 않았으니, 너네 부모님, 오빠도 많이 보고 싶을 거다. 일찍 집에 들어가.”"그 사람들은 내 생각 안 해. 사업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이야. 이젠 오빠까지도 그래. 다들 장사만 신경 쓰고 나한테 관심도 없어!"그녀는 말하면서 다시 도시락을 가져왔다. "집에 들어가도 돼. 그럼 먼저 이거 먹어, 먹으면 갈게."두 손을 그의 앞에 내밀며 그가 다 먹는 것을 보지 못하면 그만 두지 않을 기세였다."우연아, 고집 부리지 마!"그가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녀에게 조금의 희망도 줄 수 없다. 결말이 없는 희망은 가장 사람의 마음을 상처받게 하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 않는 것이 낫다.일어서서 외투를 집어들고 말했다. "서한......"“대표 님." 서한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소리를 듣고 바로 들어왔다."허우연 씨를 데려다줘."그가 말했다."오빠…" 허우연은 그 작은 소원 하나에도 그가 들어주지 않을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사온 밥에 독을
그가 추측한 것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 시간에 한소은은 확실히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원래 그냥 대충 먹으려고 했는데, 김서진의 추천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그녀에게 인생의 즐거움은 조향 외에 먹는 것이며 맛있는 음식을 저버릴 수 없다.한소은은 원래 비서를 데리고 가려고 이미 그녀의 문 앞까지 도착했으나 그녀의 잔소리하는 성격에 밥 먹는 동안 계속 귓가에서 잔소리할 것을 생각하니 그만 접기로 했다. 나중에 들어갈 때 그녀에게 포장해서 갖다 주면 된다.혼자서 천천히 걸어나가 택시를 잡고 그가 보낸 식당 중 한 곳의 위치를 불렀다.그녀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의사소통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며 단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아마 노형원을 포함해서 다들 그녀가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그녀는 공부에 있어서 뛰어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모두 취미로 시작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 평소에 외국의 조향 자료나 향신료 역사를 찾아볼 때 어렵지 않다. 그녀는 필요하니까 배운 것이어서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얘기한 적도 없다.혼자 식당에 가서 혼자 음식을 주문하니 혼자만의 여행처럼 느껴지며 자유롭지만 외로웠다.향긋한 와인을 마시며 그녀는 뜻밖에도 점점 더 김서진이 그리웠다."안녕, Han!"익숙한 호칭방식, 이어서 신나는 모습이 그녀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우리가 인연이 있다니까! 너도 여기 식사하러 온 거야?"한소은은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리사를 만날 줄 생각도 못했으며 정말 우연이다."응. 친구가 여기 괜찮다고 추천을 해서 한번 와 봤어."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기 당연히 괜찮지!"이 말을 할 때 리사는 약간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먹어 봤어? 맛이 어때?""괜찮네."그녀는 이곳의 메인 음식을 주문했으며 맛이 정말 좋았으나 그녀는 개인적으로 국내 음식을 더 좋아한다.리사는 그녀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계속 옆에 서서
그 여자의 옆에는 대여섯 살쯤 되는 남자아이가 앉아서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마치 어린 신사처럼 보였고 꽤 귀여웠다.그 아이는 누군가 그를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고 한소은 쪽을 쳐다보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으며 약간 수줍어하면서도 매우 착한 모습이 한소은은 한눈에 좋아했다.아이도 아주 귀엽네. 그를 보니 갑자기 전에 김서진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그녀가 목조품을 들고 집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녀가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고 생각했고, 또 1남 1녀가 좋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꾸지람했지만, 지금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녀와 김서진의 아이도… 분명 매우 귀여울 것이다.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휴대전화로 음식 사진을 찍은 뒤 김서진에게 보내며 '밤늦게 식욕 유혹'이라고 문자도 보냈다.시차를 계산해 보니, 그 쪽은 많이 늦어서 아마 벌써 잠들었을 것이다.꼭 답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고 싶었다. 문자 한 통 보내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생각 밖에 그는 얼마되지 않아 답장을 보냈고,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위에는 소고기쌀국수볶음 1인분과 우엉갈비탕 한 그릇, 그리고 그녀의 따라하면서 “답례”라는 두 글자도 같이 보냈다.한소은: !!!!!너무해! 이제 반격할 줄도 아네! 대표가 점점 서민적이고 점점 안 좋은 것만 배우네.가장 심했던 것은 사진속의 음식들은 전부 그녀가 즐겨먹는 맛있는 음식들이며, 그녀의 앞에 있는 크림 버섯 수프가 순식간에 맛이 없어졌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아예 두 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밤중에 혼밥하면 살 쪄.]【와이프까지 있는데 내가 살찌는 거 신경 쓸까봐?】그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답장했다.헐! 무서운 게 없다 이거지!한소은은 더 빠른 속도로 답장했다. [살찌면 반품할 거야.]【상품이 이미 출고되었으니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합니다.】헉! 이건 노골적인 도발이네!이 사람
한소은은 쪼그리고 앉아 살펴보니 아이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고, 다시 손을 뻗어 만져보니 등에도 땀이 흘렀고, 온몸에 땀이 뻘뻘 흘렀으며 손발도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며 떨고 있었고, 그것뿐만 아니라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드문드문 나타났다.“알레르기 같아요.”그녀는 말하면서 아이의 옷깃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뭐하는 거예요! 당신은 누구예요? 우리 아이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요!"옆에 있던 여자가 프랑스어로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알레르기 증상이예요.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어요!"한소은은 그녀에게 화를 낼 겨를도 없이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리사에게 말했다.그녀의 말에 리사는 마침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굽혀 그 여자를 막았다. "해준아, 이 사람은 내 친구야. 남윤을 구하려고 도와주고 있어. 걱정하지 마."너무 급해서인지, 리사의 말이 좀 효과가 있는지 해준은 여전히 대성통곡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막으려 하지 않았다.한소은은 재빨리 아이의 옷깃의 단추를 풀고 옷을 벗겨보니까 역시 가슴에 홍진이 있었으며 정말 알레르기였다.한소은은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쳐다보고 물었다. "이 아이가 뭐 먹었어요?!"말투가 너무 엄숙하고 눈빛도 유난히 날카로워서 울고 있는 여자를 놀라게 해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애가… 빵만 조금 먹고 오렌지 주스를 마셨어요. 왜요, 음식에 문제가 있나요?”이어서 해준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이 식당의 음식에 문제가 있어. 만약 우리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나 당신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 한마디에 다른 손님들은 모두 당황했고, 한소은은 설명할 겨를이 없어 큰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흩어지세요. 모두 여기 둘러서 있으면 이 아이가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그리고 큰 컵으로 물 한 잔 가져오세요. 빨리요!"어떤 종업원은 물 가지러 가고, 어떤 종업원은 손님들을 달래고 식당 전체가 혼란스러웠다.리사 역시 한소은이 해결할
그녀는 정말 아이의 엄마 맞아? 자기 아이가 알레르기 체질인 거 모른다고?의혹스러운 눈빛으로 리사를 보았는데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만 지었다.마침 구급차가 도착했고 의료진이 빨리 와서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구급차에 태웠다.한소은은 한숨을 돌렸다. 병원에서 그 다음의 처치를 진행해주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녀는 손을 닦고 계산을 하고 떠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해준이가 그녀의 옷을 잡았다. "당신은 가면 안 돼! 당신은 나와 함께 병원에 가야 돼!"“해준아!”리사는 깜짝 놀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너 이러면 안 돼! Han은 내 친구야!"해준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미안해, 리사. 이 여자가 네 친구라고 해도 나는 이 여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해. 남윤이 괜찮을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 방금 이 여자가 남윤에게 그런 짓을 했으니, 오히려 잘못될 지 누가 알아?""아니야. 나는 Han을 믿어!”리사는 확실하게 담보했으며 자신의 친구를 신뢰한다는 것이다.해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이 여자를 믿어도 소용없어. 너도 알다시피 만약 남윤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 임상언에게 설명할 수 없어. 안 그래도 오늘 내가 남윤을 몰래 데리고 나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나….""해준아, 너의 사정을 알겠는데, Han은 그러지 않아….""내가 같이 갈게요."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두 사람의 다툼에서 그녀도 알아들었다. 대놓고 말해서 그냥 그녀를 믿을 수 없으며 방금 그녀가취한 응급조치가 아이를 잘못되게 만들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솔직히 말해서,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심각한 음식 알레르기는 특히 어린이에게 쇼크를 유발할 수 있으며, 조금만 더 심해지고 제때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그녀는 아이가 질식해서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뭔가 해야 했다."Han…" 리사는 너무 미안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양쪽 다 그녀의 친구인데 해준은 정말 무례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았다."괜찮아. 엄마로서의 걱정을 이해해."
방금 그녀의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와 자신을 뿌리치려고 할 때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놀라움과 긴장감이 가득 찬 모습이었다.한소은은 호기심에 고개를 돌렸고 바로 맞은편에서는 몇 명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선두에 서있는 남자는 테가 없는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뒤에는 경호원과 조수가 그의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남자의 모습은 차분해 보였고 심지어 스마트해 보이기까지 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는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오셨군요! 제 설명 좀 들어봐요...”해준은 매우 당황했지만 그가 다가오자 눈물을 보이며 하소연했다.다만 그녀가 다가가기도 전에 남자 쪽 경호원이 그녀를 막아섰다. 남자는 차갑게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남윤은?”“남윤이는 아직도 안에 있어요. 저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오늘 재밌게 놀았고 그도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됐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전 모르는 일이에요... 흑흑흑...”그녀는 횡설수설하며 계속해서 울었다.한소은은 어이가 없었다.저 둘... 부부인가? 하지만 부부가 어떻게 이렇지? 뭔가 이상해 보이는데.리사는 고개를 돌린 채 한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해준, 제가 경고했죠. 남윤이랑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라고,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건가요?”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알아서 하세요.”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가 말하는 모든 단어는 잔인했다. 한소은은 떨고 있는 해준을 보니 자신의 마음이 너무 차가운 거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그의 말은 정도가 지나쳤다.“아냐, 당신이 저한테 이렇게 해서는 안되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난 그 아이의 엄마인데,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해서는 안 돼요!”그는 자신 앞에 주저앉은 여자를 보고는 빈정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한소은: “...”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