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효영은 우물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또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사기꾼! 너희들은 다 사기꾼이야!”남자의 정서는 매우 격동되고 매우 난폭했다.“너조차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있는데 한소은은 어떻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 아니야, 아닐 거야. 한소은은 분명히 후회할 거야!”남자는 종종 감정이 격해지고 변덕소럽지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남자는 깊이 격노했고 이번에는 외모와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노하였다.그렇다. 남자는 항상 자신이 매우 강하다고 느꼈고 자신이 비록 몸이 불완전한 상태일지라도 뇌와 수단을 의존하여 현재의 위치에 올라 세상을 홈켜쥐었다.하지만 오늘 한소은은 한마디로 남자를 까발렸다. 만약 등 뒤에 있는 사람을 떠난다면 사실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호가호위일 뿐이다!이 까발림은 남자의 마음을 깊이 찔렀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에 직면하게 했다.아니, 그렇지 않다. 자신이 성공하면 진정으로 이 세상의 왕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도 더 이상 자신을 얕보고 모욕해서는 안 될 것이다.남자는 두 손을 탁자 위에 얹이고 숨을 크게 쉬고 있었지만 한쪽에 있는 주효영의 표정도 영향받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주효영은 주먹을 꽉 쥐었고 남자의 “너조차도 아끼는 사람이 있다”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주효영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확실히 자신의 마음속에도 아끼는 사람이 있었다.주효영이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아무리 저항하고, 아무리 경멸해도 자신이 거짓으로 죽고 은신처에 숨어 있을 때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울음을 터뜨리고 함께 죽기를 원하는 것을 보고 마음 한구석이 움직였다.어렸을 때부터 주효영은 어머니가 편파적이고 진가연을 자신보다 더 잘 대해준다고 느꼈다. 비록 어머니도 가끔 고모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랬다고 얘기를 했지만 마음은 역시 편치 않았다.고모부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분명히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집안에 좋은 점은 하나도 주지
한소은이 말을 던지고 사무실을 떠나서 막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임상언이 쫓아왔다.“소은 씨, 소은 씨…….”한소은의 이름을 부르면서 임상언은 빠른 걸음으로 뒤에서 쫓아왔다.“방금 한 말이 사실인가요?”한소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임상언을 바라보았다.“뭐요?”“그러니깐…….”임상언은 머뭇거리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 말인가요?”임상언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한소은은 아예 도와서 말했다. 임상언은 아연실색하며 어색하게 웃었다.“당연히 아니죠.”선뜻 부인한 뒤 한소은은 계속 말했다.“이 세상에 어떻게 애인, 가족, 친구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저도 진심입니다. 부모로서 당연히 제 아이를 잘 보호하고 싶지만 가끔은 제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한소은의 얼굴에 약간의 쓸쓸함이 나타났다.“하지만 저는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임남을 구해낼 것입니다!”임상언은 인정하지 않았다. 할 수 없어도 해야 하고 할 수 없어도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했다!“그다음은요?”한소은은 담담하게 물었다. 이 질문은 임상언을 어리둥절하게 했다.“무슨 그다음을요?”“자신의 목숨을 걸고 임남을 한평생 보호할 수 있겠어요?”한소은은 다시 반문했다.“…….”이번에는 임상언이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이것은 임상언이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사람은 살면서 평생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힐 수 있고, 여러 가지 위험에 부딪힐 수 있는데, 스스로 목숨을 걸더라도 아이의 평생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하지만 제가 아직 볼 수 있을 때 반드시 임남을 보호해야 합니다!”잠시 멈춘 뒤 임상언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끼게 되고 창백하고 무기력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다.한소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임상언을 비웃지 않았다.“저는 믿어요”정상적인 부모로서
“혹시 착오가 있으신 거 아닐까요?”한소은은 생각해 보고 말했다.“?”“왜 이전에 어디에 두었는지를 생각해요? 지금 어디에 두었는지 알면 되지 않아요? 어쩌면 이전에는 줄곧 그 사람의 몸에 숨겨져 있었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그렇긴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이것은 그 사람의 일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중얼거리다가 임상언은 한소은이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또 그렇다고 아주 확실하지는 않았다.“그럼 지금 무슨 뜻인가요?”“계획은 그대로입니다.”한소은이 이어서 말했다.“당신이 전에 말한 대로 합시다.”“그럼 내일 정오쯤에 합시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위로 흘겨보더니 손을 들어 임상언을 누르며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표시했다. 임상언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뒤에서 조롱하는 소리가 들렸다.“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친할 줄은 몰랐네. 그 김 선생님도 아시는지를 모르겠네?”주효영의 목소리는 매우 귀에 거슬렸고 암시하는 의미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임상언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서 주효영을 보았다.“네가 죽은 척하는 일을 밖에서도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네.”“내가 너희들 앞에 나타났는데 너희들이 말할까 봐 두려울 것 같아?”주효영은 비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금 밖에는 이미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어찌 자그마한 나를 신경 쓰겠어?”“?”임상언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너희들이 이렇게 능력이 있으니 알아보면 알 수 있잖아.”주효영의 시선은 두 사람의 몸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어쩐지 네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했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경 쓰게 한 사람이 달라진 거 아니야?”임상언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변했다.“너의 말을 조심해! 너 자신도 여자인데 어떻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남을 헐뜯을 수 있어?”“그래? 내가 뭘 헐뜯었는데? 아니면 네가 켕긴 거 아니야?”주효영은 느릿느
더 이상 주효영을 보고 싶지 않아 한소은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났다.“한소은!”주효영은 이를 갈며 한소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멀리서 대답이 날아왔다.“제시간에 와서 실험하는 걸 잊지 마, 나의 조력자!”주효영은 화가 나서 얼굴이 변형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선 사장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에 지금은 잠시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개를 돌리자 옆에 서 있던 임상언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임상언, 넌 도우미를 찾았다고 생각하니?”주효영은 콧바람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임상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이 그런 뜻이 없음을 표시했다.입꼬리를 치켜세우고 웃자 주효영은 갑자기 교활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너는 왜 네가 실험의 진정한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는지 알아?”“나는 관심이 없어.”임상언은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내 아들한테만 관심이 있어.”“허…….”임상언의 대답에 개의치 않고 주효영은 계속 말했다.“그건 네가 R10의 진정한 비밀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야! 그런데 난…… 알고 있어!”“나는 관심이 없어!”임상언은 여전히 그 말만 했다.“나는 내 아들한테만 관심이 있어!”“R10의 비밀에 대해 한소은은 전혀 몰라. 만약 한소은이 알게 된다면 분명히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할 것이야!”주효영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일부러 임상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임상언은 마치 주효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은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효영을 바라보았다.“너 말 다 했어?”임상언이 말했다.“안녕!”“…….”“너희들은 언젠가는 후회할 거야! 언젠가는 이 세상의 새로운 법칙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낮은 울부짖음으로 얼굴의 아픈 곳을 잡아당기자 주효영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한소은은 자신이 쉬는 곳으로 돌아온 후에야 비로
아무 소리도 안 났고 발소리도 안 났지만 절대 자신이 착각한 것은 아니었다.한소은의 청각은 항상 예민한데다 무술을 익힌 사람의 통찰력까지 더해져서 임신했다고 해서 환청까지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한소은은 잠시 생각한 후 일어나 문 앞으로 가서 문을 사이에 두고 다시 물었다.“누구세요?!”여전히 소리가 없었다. 한소은은 문짝에 붙여 소리를 듣고 또 잠시 생각한 후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복도는 텅 비었고 아무도 없었다. 다시 고개를 내밀어 밖을 내다고 또 몇 걸음 나가 본 후 더 이상 구석에 아무도 숨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한소은은 그제야 돌아섰다.문을 들어서기 전 고개를 들고 무의식적으로 비스듬히 위쪽에 멀지 않은 CCTV를 보았다.‘여기 곳곳에 CCTV가 널려 있어서 누가 자신을 피하려고 해도 그 ‘사장님’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겠지.’한소은은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와서 막 문을 닫으려 할 때 고개를 숙이고 보니 바닥에 종이 한 장이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 마치 실수로 땅에 떨어진 종이 부스러기처럼 보였다.한소은은 멍해졌지만 바로 주우러 가지 않고 먼저 고개를 들어 밖을 다시 보고는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발밑이 무심코 밟힌 것처럼 하고 그제야 몸을 웅크리고 앉은 김에 종이를 손에 쥐었다.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곳이 어디인지 이미 꿰뚫었고 편안하게 앉은 후에야 손바닥 안에 있는 쪽지를 펼쳤다.아주 평범한 쪽지 한 장에 단지 삐뚤삐뚤한 몇 글자가 써져 있었다.[R10을 건드리지 마.]“…….”손가락을 천천히 움켜쥐고 다시 쪽지를 집어 들어서 구겨 뭉친 다음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버리고 떠밀려갔다.한소은에게 이 쪽지를 줄 사람이 누구인지 여전히 생각해 내지 못했다.‘여기서 누가 자신에게 이 실험을 시키지 않으려 하고 누가 자신더러 R10을 만지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임상언은 말할 것도 없이 분명히 이런 일을 하지 않고 무슨 할 말이 있으면 다 앞에서 말했을 거야. 같은 이
김서진이 전화를 끊자마자 또 한 통의 전화가 들어왔다. 번호를 보니 여전히 낯설었다.원래 김서진은 낯선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이 개인 번호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어서 1초 동안 망설이다가 손가락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아빠…….”안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고 맑으면서도 듣기 좋았다. 김서진의 마음은 한순간에 누그러지고 얼굴의 팽팽한 라인도 저절로 부드러워졌다.“준이야?”“아빠, 할아버지가 아파요.”“?”“지금 어디야? 누구 핸드폰으로 전화했어? 할아버지는?”예리한 감각으로 이상함을 알아챈 김서진은 급히 수화기를 틀어막고 일어나 사무실 한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전화기에서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김 선생님…….”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였고 귀에 매우 익었지만 김서진은 잠시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저는 원철수입니다.”상대방은 도리여 스스로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원철수가 이렇게 신원을 알리자 김서진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하여 잠깐 들렸던 마음을 내려놓고 넥타이를 당기며 말했다. “말씀하세요.”“이쪽은…… 지금 아드님이 있는 데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드님을 데려갈 수 있습니까?”상대방은 약간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고 잠시 머뭇거렸다. 이 한마디의 말도 모두 우물쭈물하며 끝냈다.“?”아이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르신께서도 돌보겠다고 약속하셔서 그제야 안심하고 자신의 바쁜 일을 처리하러 갔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다니.중요한 것은 이 말을 한 사람은 어르신이 아니라 원철수라니?어렴풋이 일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김서준을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일 있었어요?”“한두 마디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아드님이 계속 있게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둘째 할아버지께서도 이미 병으로 쓰러지셨으니 가능한 한 빨리 데려가 주세요. 알겠죠?”말이 끝
김서진의 눈썹은 더욱 깊게 찌푸렸고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멈추지 않았다.비상한 수단을 써서 문을 부수려고 할 때 문이 안에서 열렸다. 놀랍게도 문을 연 사람은 원철수였다.원철수는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김서진을 한 번 보고, 또 뒤따르는 경호원들을 보고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잠시만요. 제가 아드님을 데려올게요.”말을 마치고는 또 돌아서서 문을 닫으려 했다.“무슨 일이에요?!”김서진은 한 걸음 빠르게 문을 막고 원철수가 문을 닫기 전에 물었다.“당장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여전히 이 모호한 말로 원철수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 문을 닫고 가려고 했다.“그럼 들어가서 설명을 들을게요! 그리고 당신의 둘째 할아버지께서 아프시다면서요? 그럼 아무래도 어르신을 뵈러 가야 하지 않나요?”김서진은 일관되게 강인하게 말하면서 문을 힘껏 밀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당신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김서진이 들어가려는 말을 듣자 원철수는 크게 놀라 급히 김서진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또 김서진을 건드릴까 봐 두려운 듯 두 사람은 서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원철수의 힘이 크지 않아 단번에 바닥에 넘어졌다.김서진은 원철수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마음이 답답하여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들려고 하였다. 하지만 원철수는 기어올라 김서진을 안으려 했지만 바짓가랑이만 한 움큼 끌어안았다. “저는 진지합니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잠시 멈추자 갑자기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안에 전염병이 있어요!!!”“…….”김서진은 들어 올린 발을 다시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놀란 표정으로 원철수를 바라보았다.김서진의 발걸음을 막은 것을 보고 원철수는 서둘러 일어나 다시 문을 반쯤 닫고 김서진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눈빛 속의 간절함은 매우 진지해 보였고 다급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 주택에는 알지 못한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제 둘째 할아버지도
“제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그들에게 전염됐어요.”원철수는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자책했다. 김서진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듣고 말했다.“가면서 이야기해요!”마음속으로 아이가 염려가 되어 발걸음도 저절로 빨라졌다. 두 사람은 길에서 역시 하인을 만나지 못했다. 온 정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공기에는 숨 막히는 불안감이 감돌았다.김서진은 마당에 있는 식물들이 모두 시들한 듯 축 늘어져 있는 것을 관찰했다. 아마도 요즘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전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방안에 들어서자 한바탕 열기가 느껴졌다.김서진은 간이 방호복을 입었지만 그다지 두껍지 않아서 열기가 밀려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한약 냄새를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다.비록 어르신 댁에는 항상 한약 냄새가 흩날렸지만 이전에는 모두 옅은 향기였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짙어서 흩어질 수 없을 정도였다.“준이는요?”김서진은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아들을 보지 못하자 고개를 돌려 물었다.원철수는 위층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는 김준을 어린이 방에 배치하였습니다. 현재 그곳만이 가장 안전한 편입니다. 저는 매일 입구에서 소독을 한 번 하고 음식도 최대한 접촉하지 않도록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김준은 말을 잘 듣습니다. 다만…….”잠시 멈추자 원철수는 몸을 돌려 김서진을 바라보았다.“저는 김준이 여기에 더 있으면 조만간 우리한테 연루될까 봐 두렵습니다.”김서진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당신들이 여기서 전염병을 발견한 것은 언제의 일인가요?”“3일 전입니다.”원철수는 재빨리 대답했다.“3일 전?”‘그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여기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건가? 아니, 원철수가 다 자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더 일찍 시작했을 거야.’김서진의 의혹을 눈치챈 듯 원철수는 말을 이었다.“정확히 말하면 둘째 할아버지께서는 3일 전에 제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