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의 눈썹은 더욱 깊게 찌푸렸고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멈추지 않았다.비상한 수단을 써서 문을 부수려고 할 때 문이 안에서 열렸다. 놀랍게도 문을 연 사람은 원철수였다.원철수는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김서진을 한 번 보고, 또 뒤따르는 경호원들을 보고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잠시만요. 제가 아드님을 데려올게요.”말을 마치고는 또 돌아서서 문을 닫으려 했다.“무슨 일이에요?!”김서진은 한 걸음 빠르게 문을 막고 원철수가 문을 닫기 전에 물었다.“당장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여전히 이 모호한 말로 원철수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 문을 닫고 가려고 했다.“그럼 들어가서 설명을 들을게요! 그리고 당신의 둘째 할아버지께서 아프시다면서요? 그럼 아무래도 어르신을 뵈러 가야 하지 않나요?”김서진은 일관되게 강인하게 말하면서 문을 힘껏 밀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당신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김서진이 들어가려는 말을 듣자 원철수는 크게 놀라 급히 김서진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또 김서진을 건드릴까 봐 두려운 듯 두 사람은 서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원철수의 힘이 크지 않아 단번에 바닥에 넘어졌다.김서진은 원철수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마음이 답답하여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들려고 하였다. 하지만 원철수는 기어올라 김서진을 안으려 했지만 바짓가랑이만 한 움큼 끌어안았다. “저는 진지합니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잠시 멈추자 갑자기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안에 전염병이 있어요!!!”“…….”김서진은 들어 올린 발을 다시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놀란 표정으로 원철수를 바라보았다.김서진의 발걸음을 막은 것을 보고 원철수는 서둘러 일어나 다시 문을 반쯤 닫고 김서진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눈빛 속의 간절함은 매우 진지해 보였고 다급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 주택에는 알지 못한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제 둘째 할아버지도
“제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그들에게 전염됐어요.”원철수는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자책했다. 김서진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듣고 말했다.“가면서 이야기해요!”마음속으로 아이가 염려가 되어 발걸음도 저절로 빨라졌다. 두 사람은 길에서 역시 하인을 만나지 못했다. 온 정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공기에는 숨 막히는 불안감이 감돌았다.김서진은 마당에 있는 식물들이 모두 시들한 듯 축 늘어져 있는 것을 관찰했다. 아마도 요즘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전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방안에 들어서자 한바탕 열기가 느껴졌다.김서진은 간이 방호복을 입었지만 그다지 두껍지 않아서 열기가 밀려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한약 냄새를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다.비록 어르신 댁에는 항상 한약 냄새가 흩날렸지만 이전에는 모두 옅은 향기였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짙어서 흩어질 수 없을 정도였다.“준이는요?”김서진은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아들을 보지 못하자 고개를 돌려 물었다.원철수는 위층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는 김준을 어린이 방에 배치하였습니다. 현재 그곳만이 가장 안전한 편입니다. 저는 매일 입구에서 소독을 한 번 하고 음식도 최대한 접촉하지 않도록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김준은 말을 잘 듣습니다. 다만…….”잠시 멈추자 원철수는 몸을 돌려 김서진을 바라보았다.“저는 김준이 여기에 더 있으면 조만간 우리한테 연루될까 봐 두렵습니다.”김서진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당신들이 여기서 전염병을 발견한 것은 언제의 일인가요?”“3일 전입니다.”원철수는 재빨리 대답했다.“3일 전?”‘그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여기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건가? 아니, 원철수가 다 자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더 일찍 시작했을 거야.’김서진의 의혹을 눈치챈 듯 원철수는 말을 이었다.“정확히 말하면 둘째 할아버지께서는 3일 전에 제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다만
김서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어쨌든 아이가 무사하니 모든 것이 괜찮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김서진은 무엇이 생각난 듯 장갑을 벗더니 아들의 이마를 만지고 목덜미 양쪽과 볼을 지켜보았다.“왜 그러세요?”김서진의 동작을 보고 원철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불안해하며 조마조마하게 물었다.“열이 나요.”김서진은 몸을 돌려 담담하게 말했다. 김서진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아이가 열이 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지금은 비상 시기이다. 게다가 김준의 몸은 항상 건강했고 이전에 전염병이 기승을 부렸을 때도 감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열이 나고 있었다.정체불명의 전염 바이러스로 가득 찬 이 집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감염된 공간에서 김준은 열이 났다.그러니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서준의 마음은 계속 무거웠고 정색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집을 나섰다.“열이…….”원철수는 멍해지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김서진이 아이를 안고 자신을 스쳐지나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아이를 데리고 가려는 건가요?”원철수는 쫓아가서 물었다.“그럼 만약에…….”원래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은 아이가 아직 감염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열이 나는데 감염된 건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김서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이를 소파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또 수건을 찾아 물에 적시고 꽉 짜서 아이의 이마에 놓았다.이 모든 일을 할 때 김서진은 이미 다른 한쪽의 장갑을 벗었고 겸사겸사 방호복도 벗었다.“당신…….”김서진이 한 이 모든 것을 보고 원철수는 깜짝 놀랐다.“당신 미쳤어요!”‘여기 전염 바이러스가 가득하다는 걸 알면서도 빨리 가지 않고 보호 조치를 다 벗어버리다니, 같이 감염되고 싶은 건가?’“미치지 않았어요.”눈꺼풀도 치켜올리지 않고 말한 후 김서진은 아들의 작은 얼굴을 열중히 바라보며 물었다. “온도계 있어요?”“있어요,
“뒷마당의 약초방에…… 계셔요.”뒷마당의 방향을 가리키자 원철수가 말했다.“제가 안내해 드릴게요.”김서진은 급하게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그럼 다른 하인들은요?”“모두 하인방에서 쉬고 있어요. 완전히 좋아지기 전에 누구도 일할 필요가 없고 모두 잘 쉬고 외출도 하지 말라고 이미 분부했어요!”원철수도 자신이 왜 그렇게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몰랐다. 다만 김서진이 질문하면 자신도 무의식중에 대답하게 된다. 고개를 끄덕이자 김서진은 조금도 의외 하지 않고 물었다.“당신의 둘째 할아버지께서 분부하신 거죠?”“맞아요!”원철수는 재빨리 대답하고 이어서 또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당신이 어떻게 알았어요?”‘이치대로라면 둘째 할아버지께서 앓아서 누워 계시니 자신이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둘째 할아버지게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지?’“당신은 그렇게 주도면밀하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니깐요.”김서진의 비웃 듯 말 듯 담담하게 한 한마디에 원철수는 순식간에 타격을 받았다.원철수는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말만 입가에 맴돌았을 뿐, 돌이켜 생각해 보니 김서진이 한 말이 맞았다.둘째 할아버지께서 고열로 기절하기 전에 내린 명령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하인들더러 외출하지 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둘째 할아버지께서 쓰러졌을 때 하인들은 아직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 3일 사이에 끊임없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당시 원철수는 둘째 할아버지께서 선견지명이 있다고 느꼈다. 마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하인들에게 외출을 금지하고, 외부인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가능한 한 하인방의 활동 범위 내에 있도록 하게 했다.“당신 말이 맞습니다.”원철수는 참다못해 이런 말을 했다. 김서진은 위아래로 원철수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당신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바라보자 원철수는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적거리고 또 한 줌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약간 괴로워하며 말했다.“
어린아이가 얼굴을 붉히고, 눈을 감은 채 이전처럼 활발하지 않으며 불쌍하게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원철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자신한테 뺨을 두 대 때렸다.“모두 제 탓이에요!”김서진은 일어서며 말했다.“흥분하지 마세요. 아직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몰라요. 저는 어르신을 보러 가겠습니다.”“저가 같이 가 드릴게요!”원철수가 바로 말했다. 그러자 김서진은 아이의 방향을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원철수는 곧 알아차렸다.“그럼 제가 남아서 아이를 돌볼게요.”“부탁드리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이자 김서진은 뒷마당 쪽으로 몸을 돌렸다.지금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원철수가 아이와 밀접하게 접촉했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원철수 자신은 발병의 현상이 없으니 남아서 아이를 돌보는 적임자였다.원철수는 뒷마당으로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었다.“너희들은 몇 사람을 남겨서 당직을 서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철수해. 그리고 철수한 사람들은 돌아간 뒤 3일 동안 외출하지 말고 집에서 어디 불편함이 없는지 관찰해.”“네?”바깥을 지키는 비서는 처음에는 사장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내 명령에 따라 행동해.”“네!”그쪽에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명령에 따라 처리하면 됐다.전화를 끊은 후 김서진은 한눈에 뒷마당의 구석에 있는 집을 보았다. 그곳은 약초방이었다. 전에 한소은이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어르신은 한약을 좋아하고 삶을 즐기셨다. 하여 이렇게 큰 곳에 온갖 진기한 풀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작은 집을 지어서 귀한 약재를 끓이는 데 쓰기도 하고, 그곳엔 온갖 진기한 물건도 있었다.무슨 약초 욕, 약초 사우나, 약초 찜질 등……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어르신께서는 모두 안에 준비해 두셨다.이른바 약초방이란 말 그대로 초라한 작은 초가집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아름다웠다. 김서진은 들어가자마자 짙은 한약 냄새를 맡았는데 다행히 이미 적응했다.방의 홀은 비어 있어서 김서진은 고개를 돌려 오른쪽에서 열이 발산되는 곳으로 걸어갔다.
“X!!!”애매모호하고 물이 섞인 말들이 어르신의 입에서 튀어나왔다.“무슨 말씀이세요?”“X…….”입이 움직이고 소리도 나는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김서진은 아예 몸을 웅크리고 앉았고 자신의 몸이 튀어나온 물보라에 젖어도 상관하지 않고 물통 옆에 엎드렸다.“어르신, 어르신께서…….”“X자식!”이 한마디는 유난히 또렷했고 매우 분명했으며 몹시 화가 나 보였다!비록 힘은 없었지만 욕은 유난히 뚜렷했다.“…….”눈썹을 찡그리고는 의외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어르신의 건강 문제가 그리 크지 않고 욕할 힘까지 있다는 뜻을 대표했기 때문이다.물통에 있는 물이 계속 따뜻하다는 것을 보고 또 옆에 있는 설비를 보았는데 분명 가열 장치가 없는 것 같은데 물에서는 계속 김이 나고 있었다.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방금 전에 김서진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아이를 보고 또 원철수와 그렇게 많은 말을 한 후 다시 약초방에 들어올 때까지 아무리 뜨거운 물이라도 이미 식었을 것이다.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어르신은 역시 즐길 줄 알았다. 이 물통은 평범한 나무통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온천 바닥이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도 각종 약재가 들어 있어 짙은 약 냄새가 났다.“일어나셨어요?”김서진이 물었다.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눈은 여전히 꼭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분명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알만 이리저리 움직일 뿐 여전히 매우 어려운 것 같았다.볼이 빨개진 걸 보니 여전히 열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방금 김서진이 어르신을 잡았을 때 손이 좀 뜨거운 것을 느꼈다.“뜰 수 없으시면 뜨지 마시고 좀 쉬세요.”김서진은 차마 어르신의 모습을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말했다.김서진의 말을 들은 어르신은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셨지만, 말을 잘 듣고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으며 눈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감았다.하지만 방금은 정말 화가 났는지 눈도 뜨지 못하는데 억지로 온몸의 힘을 다해 욕을 했다.물통 옆에 엎드
다만 여전히 피곤하고 허약해서 말을 할 때도 역시 목소리는 작았다.어르신의 목소리는 약간 쉰 상태였다. 만약 김서진의 주의력이 유난히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 다시 몸을 웅크리고 김서진은 좀 가까이 다가갔다.“느낌이 어떠세요?”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원 어르신은 입을 벌리고 띄엄띄엄 말했다.“아무도…… 나가게…… 하지 마.”말은 비록 끊어지고 완전하지 않았지만 김서진은 알아들었다.“전염성이 아주 강한가요?”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그럼 저도 감염될 수 있나요?”김서진은 생각했다.‘하여간 자신도 이 재난을 피할 수 없겠지?’김서진은 지난번의 역병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방금 일파를 견뎌냈는데 또 일파가 나타났다.그러나 상관없었다. 만약 지금 아들이 정말 감염됐다면 그 자신이 또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김서진은 반드시 아들의 곁을 지키고 함께 할 것이며 아들을 보살필 것이다.“꼭……그렇진 않아.”어르신은 숨을 헐떡이다가 힘겹게 자신의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봐봐!”어르신이 이 말을 할 때 팔을 이미 들었지만 물통 옆에 놓을 겨를도 없이 다시 아래로 처졌다. 마치 잡아당긴 듯 다시 수면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김서진은 멍해져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어르신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어르신은 살짝 몸을 돌려 피했다.“나를 건들지…… 마!”한 글자 한 글자 말하기가 힘겨운 듯 말을 마치자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미 혼신의 힘을 다했다.“건드리지 않을게요. 건드리지 않을게요!”두 손을 들자 김서진의 마음속의 의혹은 갈수록 심해졌다.‘보아하니 자신이 겉으로 본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구나. 원래 자신은 이미 대략적인 윤곽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어르신의 상황을 보면 전염병처럼 간단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X…….”어르신의 입에서 어렴풋이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잘 듣지 못했지만, 김서진은 이것이 또 한 마
김서진은 눈을 부릅뜨고 그 ‘물건’ 이 확실히 움직이고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착각도 아니고, 스스로 헛본 것도 아니고, 확실히 조금씩 앞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큰 장면을 경험한 김서진조차도 참지 못하고 솜털이 곤두섰다.“어르신, 이건…….”만약 어르신이 사전에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않았다면 김서진은 이미 참지 못하고 어르신의 팔을 눌렀을 것이다.“독충!”천천히 한 마디를 내뱉으며 긴 숨을 내쉬고 어르신은 자신의 팔을 힐끗 쳐다보았다. 마치 이렇게 무서운 일을 보지 못한 듯, 마치 그 팔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다시 물속에 넣었다.그 팔이 무겁게 물에 처져서 물보라가 튀자 김서진은 이미 방비가 되어 뒤로 물러섰다.“3시간…… 뒤에 원철수…… 그 녀석더러…… 나를 부축하라고 해!”말을 마친 후 어르신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김서진은 어르신이 지금 이미 힘을 다 써서야 이렇게 몇 마디 한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보니 비록 어르신이 기절한 것 같지만 사람은 당분간 큰 문제가 없었다. 김서진은 깊게 한 번 보고는 돌아섰다.현관으로 돌아와 보니 원철수는 조심스럽게 김준에게 이마에 얹은 수건을 갈아주고 있었다.원철수의 동작은 둔해 보였고, 수건을 접는 동작도 분명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또 엉망으로 만들어 김준의 작은 머리 위에 얹었고 눈까지 덮었다.아마 본인도 안 맞는 것을 느꼈는지 다시 조절을 하였는데 수건은 또 머리에서 미끄러 떨어졌다.“제가 할게요.”김서진은 말을 마친 후 걸어가 자연스럽게 수건을 받아들었고 아들의 이마를 만져보니 수건 때문인지 전보다 온도가 조금 낮아진 것 같았다.다만 방금의 기괴하고 불가사의한 일을 본 후 김서진은 더 이상 홀가분하지 않았다.이것은 일반적인 전염병도 아니고, 일반적인 발열도 아니었다. 어르신께서 ‘독충’이라고 하셨는데, 독충이란 또 무엇일까?이 물건은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고 소설에서 본 적이 있었으며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듣기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