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너무 싫네요, 도와주지도 않고요.”“제 도움이 필요해요? 지금 갈까요?”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만 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오지 마세요!”한소은이 다급하게 보낸 삼연타 거절 이모티콘, 그녀의 당황한 모습에 김서진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그는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진짜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밖에서 노형원은 그녀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그의 든든한 문자를 본 그녀는 달콤한 미소를 띠었다.노형원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를 알고 지낸 몇 년 동안, 그는 그녀가 그의 곁에 있는 모습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실험복을 입은 그녀가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냄새를 묻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익숙했고, 그녀의 무표정한 말투와 표정이 너무 익숙해 질려버렸다.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보지 못하였고 섹시한 모습도 보지 못했다. 다정다감한 모습은 그녀와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가 이렇게 재미없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녀의 조향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그의 사업에 큰 도움만 주지 않았다면 그녀와 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방금 전, 그녀의 웃음이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사랑스럽고 달콤한 웃음이 진짜 한소은이라고? 누구에게 보여준 웃음이지?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일까? 그녀 앞에는 내가 있는데 왜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휴대폰을 보고 환하게 웃는 것일까?노형원은 그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믿지 않았다. 답은 하나.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그가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고 싶었다면 그런 표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자신의 눈길을 끌려고 하는 행동이 확실하다.헛기침을 한 그는 손을 들어 책상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한소은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자 노형원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이것 봐! 연기하기는! 아직도 날 좋아하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한소은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노선생님, 저의 기억이 맞는다면 노선생님께서 회사 향수, 오일 레시피는 강시유 씨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대외에 발표하지 않았나요? 왜 제가 손을 댔다고 하시는 거죠? 그리고, 제가 레시피를 건드렸다고 해도 원작자 강시유 씨가 계신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제가 무슨 복수를 했다고 하세요?”한소은은 침착하게 그의 말에 반격했다.노형원은 그녀가 할 말을 예측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한소은, 우리끼리는 이런 말 하지 말자. 너와 나는 알고 있잖아. 레시피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래, 내가 너를 이용했어. 내가 미안해. 나도 너 때문에 망할뻔했잖아. 지금은 네가 신생 회사로 가서 더 좋은 기회도 만들어졌고. 강요는 하지 않을게. 앞으로 서로의 영역에서 깔끔하게 지내보자?”그는 이 방법이 그에게서 가장 큰 양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이것으로 끝이 나고 누구의 잘못도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가 아닐까?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앞에 서있는 이 남자를 본 한소은은 그런 그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그는 어떻게 이런 뻔뻔스러운 말을 당연하듯이 할 수 있을까? 그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이 피해자인 것 마냥 말을 하고 있었다!“그러니까, 인정하는 거야? 시원 웨이브에서 출시한 오일, 향수 다 내가 만든 거 맞지?”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그녀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노형원이 말을 하려던 그때, 그는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한소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한소은씨, 저 왔어요!”“......”입을 꼭 닫은 그는 한소은의 곁에 다가가는 사람을 보았다. 허리를 굽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그녀가 말했다.“딱 걸렸네요! 남자친구 빨리 소개시켜줘요...”웃으며 고개를 돌린 조현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노형원을 쳐다본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당신?!”그녀가 노형원의 얼굴을 본 순간 그가 한소은의 남자친구
“노 대표님, 여자친구 내버려 두고 왜 우리 한소은 씨를 집적거리고 있는 거예요? 소은 씨 지금은 우리 신생 사람이에요, 신생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괴롭히면 쓰나? 남자답게 예의 지키시죠, 자기 집 마당을 지킬 생각하셔야죠, 자꾸 남의 집 마당의 풀을 탐내다간 자기 집 마당에 자란 풀을 남에게 뜯기는 법이니까요.”한소은은 조현아가 누군가를 이 정도로 비꼬는 모습을 처음 봤다. ‘웬 마당? 그럼 노형원이 토끼고 내가 풀이라는 건가? 비유할 데가 그렇게 없었나?’자신과는 그 어떠한 접점도 없던 사람에게 억울하게 한소리 들은 노형원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 제가 소은 씨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생각났어요.”노형원을 향해 한바탕 퍼부은 조현아는 그제야 갑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기억이 났다.그 말을 들은 한소은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뭔데요?”“......”대답을 하려던 조현아는 이상함을 눈치채곤 고개를 돌려 노형원을 바라봤다. 노형원은 여전히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녀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노 대표님, 아직 하실 말씀이라도 남은 건가요? 없으면 잠깐 자리 좀 피해줬으면 좋겠는데, 소은 씨랑 할 얘기가 있거든요.”“하실 말씀이 있다면 다음 회의 때 말씀하시죠. 우리는 회사가 다르기도 하고 경쟁 대상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남의 회사 영업기밀을 엿듣는 거 안 좋잖아요.”노형원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조현아가 다시 덧붙였다.그 말을 들은 노형원은 어이가 없어졌다. 자신이 언제 남의 회사 영업기밀을 엿들으려고 했다는 건지! 그저 옛 친구를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인데 그것도 안 된다는 말인가?!하지만 노형원도 체면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조현아의 이런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어쨌든 앞으로도 시간이 많았기에 기회도 많았다.“두 여성분이 사적인 얘기를 나누겠다고 한다면 저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한소은, 기회 되면 나랑 얘기 좀 하자.”두 사람에
목소리를 낮춘 조현아가 비밀스럽게 말했다.“불륜 장면을 목격했어요!”조현아의 말을 들은 한소은이 고개를 저었다.“이런 기호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그 눈빛 뭐예요? 제가 무슨 일에나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줄 알아요? 소은 씨랑 연관된 일이 아니었다면 신경도 안 썼을 거라고요. 눈만 버리는 일을 뭐 좋다고.”한소은의 말을 들은 조현아가 발끈했다.“저랑 연관된 일이라고요?”한소은이 멍한 얼굴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물었다.“소은 씨 전 남친의 현 여친이니까 연관 있는 거 아니에요?”돌고도는 관계에 한소은은 하마터면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강시유를 말씀하시는 거예요?”조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설마 소은 씨 전 남친 여자친구 여러 명 달고 다니는 그런 사람 아니죠?”“뭘 봤는데요?”한소은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흥미진진한 얼굴을 한 조현아를 보니 왠지 장단을 맞춰줘야 할 것 같았다.“제가 방금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갔잖아요, 그래, 이건 중점이 아니지. 중점은 제가 배탈때문에 화장실에 조금 오래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와서 토를 했다는 거예요...”“중점만 골라서 얘기해 줄 순 없어요?”한소은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지금 말하고 있는 거 다 중점이에요.”조현아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토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이상한 건 제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에 변태가 들어온 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밖에서 서로의 입술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어요.”“그러니까 토를 한 사람이 강시유이고 그 남자는 로젠이라는 거예요?”“대박! 어떻게 알았어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비밀 아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발견한 거 아니었냐고요?!”조현아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그녀는 자신이 놀라운 비밀이라도 발견한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이미 모든 것을 추측해냈다.시무룩해진 조현아의 얼굴을 본 한소은이 다급하
조현아는 멀어지는 한소은을 보며 그녀가 참 털털하다는 생각을 했다. 옛정에 얽매이지 않고 내려놓을 줄 알 뿐만 아니라 금방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이야말로 진정 자유로운 인생이었다.레스토랑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한소은은 강시유가 자신과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줄도 모를 뻔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이 호텔이 그나마 좋은 호텔에 속했기에 품평회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이곳에 머물렀다. 그저 층수와 방 구조가 다를 뿐이었다.한소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홀로 김서진의 방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올라오고 보니 이 층이 유난히 조용하다는 것을 그녀는 발견했다, 마치 다른 방에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복도에는 두터운 카펫까지 깔려있어 그 위를 밟아도 거의 소리가 없었다.김서진은 문도 닫지 않고 한소은을 기다리고 있는듯했다.“이 층 전체를 예약한 거죠?”한소은이 문 앞에 서서 복도의 양쪽을 바라보며 확신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네, 조용히 해요.”김서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인 듯했다.“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예요?”김서진이 한소은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더니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벌을 내렸다.그러자 한소은이 간지러움에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다른 사람도 있어서 너무 가까이 붙어있기 좀 그랬어요, 다른 사람한테 들킬까 봐.”“다른 사람? 나는 못 봤는데, 비루먹은 개는 봤지, 짜증 나게.”그 말을 하는 김서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치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싫증 난다는 듯이.예전에는 기껏해야 무시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얼굴이 한소은 앞에 나타나면 김서진은 노형원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저 현아 씨 얘기하고 있는 건데.”한소은이 김서진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가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소은이 웃음을 참으며 다시 덧붙였다.“서진 씨가 가자마자 현아 씨가 왔어요. 그리고...
“잘 아네요?”한소은이 웃으며 김서진의 맞은켠에 앉았다. 그리고 턱을 괴곤 그를 올려다봤다.“모르는 게 뭐예요?”김서진은 여유롭게 포트의 물을 비워내며 말했다.“모르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면… 소은 씨가 나를 사람들에게 공개할 시간 같은 거?”김서진의 진지한 모습에 한소은이 웃었다.“김 대표님같이 겸손하신 분도 이런 걸 신경 쓰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겸손도 어느 방면인지 봐가면서 떨어야죠.”김서진이 찻잔을 그녀의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이런 방면에서는 겸손하기 힘드네요.”사랑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알려 모든 이들이 알게 해야 했다. 한소은은 자신의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탐 내지 말아야 했다. 다른 이는 그녀를 부러워할 권리밖에 없었다.김서진의 말을 들은 한소은이 두 손으로 찻잔을 움켜잡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아, 그리고 그 두 사람 옆에 요즘 로젠이라는 사람이 얼씬거리던데 소은 씨 그 사람 가까이하지 말아요.”김서진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뜨거운 차를 금방 입에 댔던 한소은은 그 말을 듣자마자 동작을 멈추곤 물었다.“왜요?”로젠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이상했다.요즘 어디에서나 로젠이라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노형원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생각해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강시유와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품평회에 특별 게스트로 등장하더니 지금 김서진은 로젠을 멀리하라고 일깨워주고 있었다. 이 사람, 도대체 무슨 신분일까?“해외에서 막 뜨기 시작한 조향사인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보이긴 해요, 상도 여럿 탔었고. 하지만… 말도 많은 사람이에요, 남의 걸 훔쳤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보도를 본 적도 있어요.”포트를 내려놓은 김서진이 자리에 앉더니 찻잔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반 년 사이에 해외에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던 이가 여기에 왔을 줄이야. 그리고… 도덕이 좋지 못한 사람이에요.”김서
이런 간사한 계략을 꾸미고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니.“그래서, 다시 한 번 해볼래요?”김서진이 눈썹을 들썩이며 웃었다.한소은은 어이가 없어졌다. 결국 이야기의 주제는 다시 전에 휴대폰에서 나누던 얘기로 넘어가고 말았다.“아니에요,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절대적으로 인정합니다!”한소은은 얼른 거절했다, 그녀는 김서진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이런 아첨은 김서진을 기쁘게 만들지 못했다. 한소은에게 눈길을 고정한 그가 말했다.“전에는 이렇게 말 안 한 것 같은데.”“그래요? 전에는 정신이 없었나 보네요, 제가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한소은이 어깨를 으쓱하며 시치미를 뗐다.“지금 그 말은 나한테 다시 기억나게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김서진이 찻잔을 내려놓더니 한소은에게 다가갔다.점점 가까워지는 김서진을 본 한소은이 도망가려 했지만 결국 다시 의자에 앉혀지고 말았다.“서진 씨…”두 손을 김서진의 가슴 앞에 둔 한소은이 갸냘픈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던 방금과는 달리 지금은 한 마리의 온순한 고양이 같았다.“겁내지 마요.”김서진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사이가 또 다른 발전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소은 씨한테 말해주고 싶어요, 소은 씨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 절대 소은 씨를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알겠죠?”장난을 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김서진이 진심 어린 눈길로 이런 말을 하자 한소은은 마음이 약해졌다.“서진 씨, 나도 서진 씨 원해요.”한소은이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김서진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알아요.”그는 알고 있었다. 김서진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확신할 수 있었기에 한소은이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무조건 멈출 생각이었다.자신이 소중하게 여기고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도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보다 행복한 일도 있을까.한소은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자신은 행운아라는
노형원은 진해에서 돌아온 후 강시유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고, 연구실에 접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연구실 안의 위험 물질이 배속의 태아에게 위험할 거라며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했다.그리고 로젠도 잠시 그들과 떨어지기로 했다, 다행히 떠나기 전, 로젠은 그녀에게 향수의 레시피를 두 개를 건넸다. 그것은 로젠이 새로 개발한 신제품으로 그녀에 대한 보답으로 건네는 것이라고 했다.강시유는 로젠이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여기고 레시피를 노형원에게 맡겼다. 연구원들이 그대로 향을 조합해서 만들고 나자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그녀는 한시름을 놓은 것 같았다, 어쨌든 헛수고를 하지 않았기에.물론, 로젠이 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다만, 로젠을 떠올리면 여전히 떨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적어도 자신의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자세히 고민해 보기로 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온 노형원이었다. 노형원은 지금 그녀를 최선을 다해 보살펴주고 있다.우유를 건네받은 강시유는 "아니, 이번 신제품은 연말 향수 콘테스트 맞춰서 개발될 거 같네. 3등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럼 회사에 도움이 될 텐데."라며 웃었다."나랑 생각이 통했네." 노형원 손가락으로 강시유의 코끝을 톡 건드렸다. "이미 내가 그 콘테스트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도 했거든, 향수 참가 신청이 다음 달 말까지이니까 우린 최대한 빨리 출시해야 해. 만약 결과물이 괜찮다면 우리에게 가산점이 적용될 거고. 내가 한번 시도해 봤는데 꽤 괜찮더라."라고 말했다."다행이네, 그동안 회사가 입은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너도 스트레스 좀 덜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노형원은 강시유가 임신한 몸으로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자신을 걱정하고 회사를 생각하는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시유야, 날 이렇게 생각해 주다니 너무 고마워.""바보야, 우리가 얼마나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