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빠는 지금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아!”진가연이 다급하게 말했다.“아빠는 지금 나조차도 만나주지 않는걸. 그래서 내가 언니하고 형부 몰래 데리고 들어온 거잖아.”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더욱더 만나 봐야지.”“가능한 빨리 네 아버지를 낫게 하고 싶다면, 내가 얼굴을 봐야 해. 그래야 그가 도대체 어떤 약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지 알 수 있지.”한소은의 말에 진가연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결국은 한소은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그러면 조용히 날 따라와!”진가연이 방문을 열자 텅 빈 복도가 보였다.집 전체가 유난히 고요하고 괴이하게 느껴졌다.그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곧바로 서재 입구에서 멈추었다.진가연은 몸을 돌려 작은 손짓을 한 다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요즘 우리 아빠가 한번 서재에 들어가면 도통 나오지 않으셔. 한 번 들어갔다 하면 반나절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지시했어. 때로는 밥도 먹지 않고…….”진가연이 자기의 아버지를 매우 걱정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현재로서는 한소은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한소은은 고개를 살짝 들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방안에서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밖에 누구야!?”순간 진가연은 깜짝 놀라서 흠칫했지만 이내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아빠, 나야!”“꺼져!”하지만 방안의 진정기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전의 진정기는 단 한 번도 진가연에게 이렇게 꺼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엄숙한 얼굴을 하고 딱딱한 말투로 말했지만 진가연을 아낀다는 건 누구나 다 보았던 것들이다.오늘처럼 그가 거친 말로 딸을 쫓아내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하도 진정기에게 거친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진가연은 화를 내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그저 집요하게 진정기에게 말했다.“아빠, 내 친구들이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해. 잠깐 들어가도 될까?”“꺼지라고 해!”진정기는 여전히 허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손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거친 말로 내쫓는 건 그들의
“최근, 진 부장님은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었고 매번 발작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죠? 그런데 지금,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축하할 일이 아닌가요?”한소은이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녀는 표정은 침착했고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니 옆에서 보는 사람이 의아해했다.진정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소은을 바라보았다.“누가 그래요? 내가 지금 육체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내 몸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문 앞을 막아선 진정기는 좀 야위어 보이고 얼굴도 초췌해졌지만, 사실 어디가 이상하다는 걸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특히 그의 눈은 더욱 그러하였다.한소은은 줄곧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진정기의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고 자기를 훑어보고 있었지만 눈빛은 흐릿하지 않았다.만약 그가 약물에 의해 정신을 통제받았다고 한다면, 지금 이 눈빛은 확실히 특별하다.“그래요?”한소은은 살짝 웃으며 갑자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진정기는 흠칫 놀라며 빠르게 옆으로 몸을 돌려 한소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하지만 한소은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지 않고 그대로 다시 거두며 다른 한 손으로 진정기의 갈비뼈 쪽을 타격했다.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게다가 한소은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타격한 것이기에 진정기는 피하지도 못했다.순간 진정기의 안색이 검게 바뀌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당신!”진정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색이 다시 퍼렇게 변하면서 맞은 부위를 움켜쥐고 고통으로 인해 허리를 숙으렷다.“억…….”“아빠!”진가연은 깜짝 놀라서 얼른 앞으로 나가 진정기를 부축했다.“왜 그래?”“너…….”진정기는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키고 한소은을 쳐다보았다.그의 이마에는 벌써 땀방울이 스며 나왔다.너무 아파서 욕도 나오지 않았다.“소은 언니…….”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진가연도 조급해하며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진정해요!”반면, 김서진은 오히려 침착했다.“가연 씨, 지금 당신
한소은은 손을 들어 진정기의 뒤통수를 만져보다 문득 멈추었다.이윽고 그녀의 손이 점차 진정기의 뒤통수에서 멀어지더니 두 손가락 사이에 길고 반짝이는 무언가 딸려 나왔다.서재의 빛에 반사되지 않았다면 무슨 물건인지 한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늘었다.“이게 뭐야?”진가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두 눈으로 직접 한소은이 자기 아버지의 머리에서 이런 걸 빼내는 모습을 보니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한소은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정기가 갑자기 몸을 곧게 펴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무슨 자극을 받은 사람처럼 무슨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그러더니 순간 몸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넘어지려 했다.옆에 서 있던 진가연이 그를 부축하지 않았다면 몸이 중심을 잃고 의자에서 바닥으로 넘어졌을 것이다.“아빠, 아빠!”진가연은 다급하게 진정기를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눈꺼풀은 힘없이 내려있고 머리도 툭 늘어뜨린 상태에서 진가연이 아무리 불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대답하지 않았다.“소은 언니, 우리 아빠 왜 이래?”아무리 불러도 진정기의 응답이 없자, 진가연은 한쪽에 있는 한소은에게 얼른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김서진은 그녀의 손에 있는 가늘고 긴 은침을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건 침술용 은침이죠?”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맞아요.”“은침?!”이 두 글자를 듣고 진가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우리 아빠는 최근에 침을 놓아본 적이 없잖아. 침을 맞는 습관도 없는데 어떻게 은침이 아빠의 머리에 있을 수 있지? 설마?!”무언가 생각한 듯 진가연은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얼굴에 매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그런 진가연을 바라보던 한소은은 작은 수건을 꺼내어 은침을 조심스럽게 싸서 챙겼다.“네 아버지의 정기가 많이 손실되었어. 숨도 고르지 않고. 하지만 이 은침을 뽑아냈으니 적어도 그의 뇌의 기혈에는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우선 그를 방으로 데려가 푹 쉬게 하고, 다른 것들은 차
“그럼 저 은침…….”자기 아버지의 머리 뒤에서 그 은침이 꺼져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시각적 충격은 너무나 강해서 진가연은 그 모습을 잊지 못했다.“그건 침술용 침이야. 이 은침이 네 아버지 머리 뒤의 혈에 박힌 거지.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주효영은 이 은침에 독을 발라 네 아버지를 컨트롤했을 거야. 이런 사술은 예전에 고서에도 기록되어 있었어. 당시에는 은침으로 혈을 봉한 후 사람을 조종했지. 조종당한 사람은 마치 인형이 된 것처럼 자기의 의식은 없게 돼.”한소은은 대충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생각에 잠겼다.“하지만 네 아버지처럼 자기 주관이 있고, 정상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독은 본 적 없어. 고서에도 언급된 적이 없고. 내 생각에 그들이 약을 융합하고 개선한 거 같아.”“그러면 우리 아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진가연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었다.어떤 침이든 어떤 독이 든 아버지가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가 그녀의 곁에 있어 준다면 상관없다.한소은이 시키는 대로 다 할 기색이었다.“그건…… 나도 확답을 줄 수 없어.”진가연의 초조한 눈빛을 보며 한소은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감히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현재 상황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독인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어떤 부작용과 후유증이 있는지 말하기 어려웠다.한소은의 말에 진가연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빠…….”그녀는 고개를 돌려 침대에 누워 있는 진정기를 바라보았는데,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나는 최선을 다해 치료할게.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의 생명에 지장은 없어.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한소은이 진가연을 위로하며 말했다.“응.”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런데 지금 진정기가 이런 모습인데 누가 찾아온다면…….”옆에 서 있던 김서진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아빠가 아프셔서 안정을 취해야 하니 대외적으로 아무도 찾아
김서진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방금 주효영이 죽어서 근원을 찾기 힘들다는 말 때문에요. 만약 주효영이 죽지 않았다면 힘이 덜 들었겠죠?”“주효영이 죽지 않았다고요?”한소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만약에 라고요.”김서진은 멈칫하며 말끝을 흐렸다.“주효영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럽고 수상쩍어요.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부러 자기가 죽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에요.”김서진의 이 말에 한소은도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전에 주효영과 몇 번 말했던 적이 있어요. 그녀는 매우 냉정하고 냉혈에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그녀는 해외에서 성적이 뛰어나고, 많은 상도 받은 적이 있어요. 크고 작은 실험 횟수가 절대 나보다 적지도 않은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심각한 폭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죠?”“설사 정말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녀가 도망갈 틈도 없이 시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탔을까요?”한소은은 경찰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주효영이 실려 나왔을 때 이미 얼굴이 완전히 훼손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욱 의심했다.‘만약 일부러 무엇을 숨기려 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모든 것이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지?’“하지만 지금 그 시신이 주효영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어요. 모든 것은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김서진은 한숨을 쉬며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근심스러운 듯 보였다.한소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김서진에게 물었다.“왜요?”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팔을 벌려 한소은의 한쪽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안았다.“요즘 당신이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서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하고 또 위험천만한 바이러스를 상대하고. 일들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최근에 일어난 이런 일들을 생각하니, 김서진은 한소은을 자신의 품속에 숨겨서 그녀를 위해 모든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한소은이 이런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김서진의 얼굴에는 서한을 찾았다는 기쁨이 없었다.심지어 어두운 안색이 어려있었다.“보름 전쯤에 서한의 소식이 있었어요. 다만 당신이 바빴기 때문에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어요.”김서진은 천천히 한소은에게 설명했다.“서한은 아직 살아있어요. 지금은 안전한 상태고.”“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한숨을 돌리고 한소은은 뭔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뭐 하려고요?”김서진이 한소은의 손을 멈추며 물었다.한소은은 핸드폰을 잡고 김서진의 손을 피해 가며 말했다.“이연에게 전화해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요! 참, 보름이나 지났는데 이연에게 알렸나요?”‘서한 씨가 아직 살아있고 지금 안전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연이는 분명 기뻐할 거야!’“알릴 필요 없어요. 이미 알고 있어요.”김서진은 두 손으로 한소은의 손을 꼭 잡으며 전화를 걸지 못하게 했다.이 순간이 되어서야, 한소은은 그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기다릴 수 없이 마음이 벅찬 것도 아니고 오히려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한소은은 주저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말을 물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설마 상처를 입은 것일까? 장애를 가지게 되었나? 아니면 얼굴을 많이 다쳤나? 그렇지 않다면, 왜 서진 씨의 반응이 이렇게 무거운 거지?’김서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약 보름 전에 내 사람들이 서한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언제 돌아왔는지 오이연과 그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내 옆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 해요.”“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니요?”한소은은 멈칫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내 부하들이 그를 데리러 갔다가 쫓겨났어요. 나중에 그에게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날 차단했더라고요.”김서진이 멈칫하다 한소은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당신을 차단했다고요?!”한소은은 매우 놀랐다.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서한이 이
오이연의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두 사람은 곧 오이연의 집 아래층에 도착했다.한소은은 이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었다. 다만 차에서 내리기 전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연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왔다고 알려줄까요?”그러나 김서진은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지금 전화하면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왜요?!”김서진의 말에 한소은은 어리둥절했다.“나도 왜 그런지 알고 싶어요. 그러니 직접 물어봐요!”김서진이 턱을 들어 위층 방향을 가리키며 한소은이 내려오도록 차 문을 열었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오이연의 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선 한소은은 여전히 김서진이 한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전화를 하면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거지?’최근 들어 오이연의 연락이 뜸해지긴 했다. 심지어 두어 번은 낯선 연락처로 연락이 왔었다.전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이메일도 사용했었다.한소은이 손을 들어 초인종을 누르자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문을 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두 번 더 누른 후에야 오이연의 목소리가 물었다.“누구세요?”김서진이 한소은에게 눈빛을 보내자, 한소은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이연, 나야! 널 보러 왔어. 나랑…….”김서진과 함께 왔다고 말하려던 그녀는 김서진의 눈빛을 보고 다시 말을 바꿨다.“나도 서진 씨도 네가 걱정돼서 와봤어. 문 좀 열어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그녀의 말을 듣고 문 뒤의 사람이 침묵했다.“이연아?”한소은은 다시 물었다.“기다려 봐.”한참 더 소리가 없다가 오이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어서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갔다.한소은은 오이연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서 문을 여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궁금해했다.다행히도 이번에는 문이 열렸다.오이연은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했고 누가 보기에도 많이 여위었다. 그래서인지 배가 더욱 튀어나와 보였다.그런 오이연의 모습을 보고 한소은은 안쓰러워했다.“너 왜 이렇
더 이상 자기를 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소은도 따라 들어갔다.그러고는 뒤로 돌아 김서진에게 들어오라고 눈짓했다.집 안으로 들어와 둘러보니 집안이 어수선했다.오이연은 매우 깨끗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집안을 깨끗하게 치웠다. 그러나 지금, 바닥의 카펫은 비뚤어졌고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가 가득 차서 넘쳤다.테이블 위의 컵도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소파 위에는 누가 누운 흔적이 뚜렷하고 쿠션도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집에는 그녀 혼자 뿐이었고 서한을 어디에도 없었다.아래층에 있던 한소은은 서한의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오이연의 비정상적인 태도를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이연, 요즘 전화도 잘 안 하고 작업실 쪽도 바쁠 게 없었잖아. 그렇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잠시 숨을 고르고 물을 붓는 오이연의 뒷모습을 보며 한소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서한 씨 때문이야?”비록 한소은을 등지고 있었지만, 한소은은 오이연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몇 초 후에 오이연은 물컵을 들고 다가와서 한소은에게 한 잔 건네주었고 김서진에게는 주지 않았다.그러나 오이연의 눈은 김서진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증오감과 떨림이 있었다.“언니, 이 물음은 김서진 씨에게 물어보는 게 맞는 거 같아!”오이연의 말에 김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지난번에도 내게 비슷한 질문을 했지? 서진 씨와 맞서게 되면 누구를 선택할 거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서진 씨랑은 또 무슨 상관인데?”한소은이 이어서 물었다.“그래! 서한 씨는 서진 씨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친 거야. 또한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위험에 빠진 거 인정해. 만약 이것 때문에 서진 씨를 미워한다면 무슨 뜻인지 알겠어.”한소은의 말을 듣고 김서진은 더욱 어리둥절 해졌다.만약 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는 오이연이 한소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두 사람 사이에서 선택하라니? 무엇을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