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연의 이상한 점을 눈치챈 한소은은 그녀를 끌어당겼다.“이연, 이렇게 감정적으로 사고하지 마. 이 일은 분명하게 말해야 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서진 씨가 서한 씨를 밀었다고 생각하는 건데? 누가 알려 준 거야? 지난번에 반지 사건 때를 생각해 봐. 누군가가 일부러 이간질하려고, 일부러 우리끼리 서로 의심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몰라.”‘틀림없이 그럴 거야! 그렇지 않다면 이연은 감정의 기복이 이렇게 심할 리가 없어. 어쩐지 선택이니 뭐니 물어 보더라니. 서진 씨를 살인자로 알았던 거야.’“아니, 이건 지난번과 달라!”오이연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부정했다.“다르긴 뭐가 달라. 저번엔 거짓말일 수 있으면 이번엔 맨입으로 것일지도 모르잖아.”한소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김서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서한이 직접 말해 준거죠?”한소은은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김서진을 바라보았다.“서진씨?!”한소은은 갑작스러운 김서진의 말에 깜짝 놀랐다.마찬가지로 오이연 역시 의아해하며 그가 자신의 입으로 인정할 줄은 몰랐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그래서 인정하는 건가요?”“당신이 이렇게 굳게 믿을 수 있는 건 서한이 직접 말했다는 거죠. 안 그러면 이렇게 확신하지 않을 테니까.”김서진은 그녀의 말에서 추측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인정하지는 않았다.“사실, 서한이 나를 만나주지 않을 때부터, 이 중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어야 했어요. 차라리 서한을 불러다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서한 씨는…….”한소은은 침실 쪽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복도 양쪽은 모두 침실이고, 방문은 모두 닫혀 있다. 만약 서한이 집에 있다면 그는 분명 거기에 있을 것이다.“서한 씨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오이연은 고개를 돌려 얼굴의 눈물 자국을 지우며 차갑게 말했다.“더 이상 말할 것도 없어요. 그만 가세요! 서한 씨가 당신의 보디가드였으니 진심으로 당신을 구하려 한 거예요. 하지만 당신
서한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김서진은 그 자리에 서서 더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언제 왔어? 어떻게 온 거야? 왜 내 연락처를 다 차단한 거지? 내가 널 찾는 걸 알고 있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신도 나도 잘 알고 있어요.”서한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그날의 일을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난 잘 모르겠어!”김서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위압적인 기운이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위아래로 서한을 자세히 바라보았다.“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줘!”“그날 우리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총격전을 겪었어. 그때는 네가 나보고 먼저 가라고 총알을 막아주기도 했지. 너의 은혜를 나는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어. 귀국한 후 빠른 시간안에 사람을 보내 너를 찾았는데, 줄곧 너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어. 그 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고, 너는 어떻게 돌아온 거야?”김서진은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오히려 회상에 잠긴 것 같았다.오이연은 그의 표정을 계속 쳐다보며 거짓말의 흔적과 허점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왠지 그의 말이 사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다른 것은 몰라도, 서한의 사람 됨됨이와 그가 이렇게 오랜 세월 김서진에 대한 충성을 다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를 위해 총알을 막았을 것이다.하지만…….오이연의 눈빛이 천천히 서한을 향해 움직였다. 서한은 그녀의 애인이었다.그녀는 서한의 몸에 난 상처를 보았고, 그의 피를 보았고,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알았다.만약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무엇이 진짜인가?“그렇게 말씀하시면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서한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획 돌렸고 김서진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만 가세요. 난 할 말이 없어요.”“서한, 네가 나와 함께 일한 세월이 짧지 않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난 너무 잘 알아. 내가
서한의 상태를 본 오이연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를 안쓰러워하며 서한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러고는 김서진을 옆으로 밀쳤다.“그만해요! 더 이상 서한 씨를 몰아붙이지 마요!”“서한 씨가 돌아왔을 때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어요. 지금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죠! 그의 지금 모습은,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제발 서한 씨를 찾아오지 마요. 그가 상처를 잘 치료할 수 있게 해줘요!”오이연은 거의 울면서 말했다.김서진이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오이연이 그렇게 슬프게 우는 것을 보고 한소은은 참을 수 없어 그를 말렸다.“됐어요. 일단 서한 씨에게 시간을 좀 줘요. 다들 좀 진정기 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김서진은 아직 할 말이 더 남았지만, 한소은이 멈추라는 눈짓을 보고 잠시 생각한 후 두 손을 풀고 서한 앞에서 비켜섰다.그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서서 서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서한, 나는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혹은 누가 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너와 나는 보스와 부하 사이기도 하지만 형제이기도 했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잘 생각해 봐.”그러나 서한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김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만 가세요. 우리도 진정이 필요한 거 같아요!”서한을 안고 그를 진정시키던 오이연이 말했다.한소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이연, 내가 서한 씨의 맥을 짚어 볼 수 있을까?”“맥을 짚는다고?”오이연은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그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의술을 할 줄 알아. 서한 씨는 너무 심하게 다쳤어. 상처가 어디까지 회복되었는지, 내상이 있었는지 보고 싶어.”이렇게 말하면서 한소은은 서한에게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그녀의 손이 닿기 직전, 서한은 불에 마치 덴 것처럼 재빨리 손을 거둬들였고, 차갑게 말했다.“필요 없어요!”“상처가 심한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
오이연은 서한을 바라보다 재빨리 얼굴을 돌려 한소은의 입술 모양을 보고, 막 두 마디 말했을 때, 서한이 귀찮은 듯 말했다.“왜 아직 가지 않은 거죠? 당신들이 가고 싶지 않다면 내가 나가죠!!”“아니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가요!”오이연은 황급히 말하면서 한소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을 닫았다.닫힌 방문을 보고 한소은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김서진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왜 그래요? 방금 뭐라고 말한 거예요?”“서한 씨를 피해 나에게 전화하라고 했어요. 이연이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오이연의 집 방향을 돌아보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보자, 한소은은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서한을 피해서 전화하라고요?”눈썹을 치켜세운 김서진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김서진을 보았다.“서한 씨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서한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내 곁에 그렇게 오랜 세월 있었어요. 만약 그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내 곁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김서진은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확인하며 덤덤하게 말했다.그는 서한에 대해 비할 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서한이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그러나 오늘 서한의 태도는 그가 아는 서한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러니까, 서한 씨가 지금 당신한테 이렇게 대하는데 화나지 않아요?”한소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서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말에는 조롱하는 말투가 좀 더 섞여 있었다.김서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화나지 않아요!”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뒤돌아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며 김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당신이 그의 맥을 짚어 보려고 했던 건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의심했던 것 아닌가요?”“네? 그게 무슨
방 안은 고요했다.오이연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서한을 쳐다보더니 소리 없이 한숨을 쉬며 앞으로 두 걸음 걸어가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있는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담요, 쓸려간 컵, 그리고 자질구레한 다른 것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한은 요즘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도 점점 더 난폭해졌다.오이연은 서한이 다쳤고 지금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인 데다가 김서진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겹치면 매우 큰 타격을 받은 것이라 여겼다.그래서 오이연은 그를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었지만 오늘은…….그녀는 말없이 컵의 파편을 주워 쓰레기통에 조심스럽게 던졌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한은 가만히 바라만 볼 뿐 말리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갑자기 서한이 눈썹을 찌푸리며 매우 답답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손에든 물건을 던지며 말했다.“줍지 마요!”물건은 크지 않았으나 오이연의 손등에 부딪혔고, 힘과 관성에 의해 그녀의 손에 탁 맞아 통증이 전해져 왔다.컵의 파편에 베인 자리에 피가 빠르게 흘러나왔다. 베인 자리는 크지 않았지만 날카로웠다.그녀는 무의식 적으로 “씀”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움츠리고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서한은 멈칫했다. 무심코 던진 물건에 그녀가 다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곧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줍지 말라고 했잖아요!”“반창고를 가져올게요.”오이연은 손을 부여잡고 일어나서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틀어 상처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흐르는 물이 피를 계속 씻어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찔한 아픔을 전해오기 시작했다.눈앞이 약간 흐려졌다. 오이연은 상처를 깨끗이 씻고 닦은 후, 반창고를 붙였다. 다행히도 상처가 그리 크지 않았다.반창고를 붙인 후에는 피가 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통증은 한 가닥 한 가닥 실처럼 가늘게 퍼져 나갔다. 잎의 맥락을 통해 진액이 천천히 뻗어나가듯이, 고통은 그 결의 맥락을 따라 사지에까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오이연은 다시 돌아와서 커다란 조
그 순간 오이연이 서한을 향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서한이 입을 열어 오이연에게 무엇을 하려는 건지 물어보려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돌진하는 것을 느꼈다.오이연은 휠체어를 잡아당겨 소파 앞으로 끌어당긴 다음 ‘탁’하고 소파에 앉았다.그러고는 다시 휠체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서한 씨, 이 말들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억눌려 있었어요. 줄곧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알코올이 용기를 줬는지 오이연은 한 손으로는 휠체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맥주 캔을 다시 들고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이번에 돌아오고 나서 성질이 많이 변했어요.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젖히고 또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그래요?”서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냉담하게 대답했다.“그래요가 아니라 맞아요!”오이연은 손가락을 세워 좌우로 흔들더니 이어서 말했다.“처음에 나는 당신이 다쳐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내가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당신의 성질은 점점 더 난폭해지고 있어요. 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잖아요!”“당신은 단 한 번도 나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이런 일 저런 일 하게 내버려두지도 않았고 날 울린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다친 걸 보고도 조금도 마음 아파하지 않잖아요!”오이연은 억울한 표정으로 다친 손가락을 서한 앞에 가져가 이리저리 흔들었다.“다치면 피를 흘리는 게 정상이잖아요.”그러나 서한은 여전히 그렇게 차가웠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몸을 바라보았다. “내가 입은 상처와 흘린 피를 당신도 봤잖아요.”‘서한 씨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지만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예전에는 오이연이 조금만 다쳐도 서한은 마음 아파했다다. 지금은 그녀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그래요, 그럼 이 얘기 말고 김서진 씨에 대한 얘기를 해봐요.”오이연은 손사래
그녀는 서한과 싸운 적이 없었다. 이전에 자신이 고의로 그를 놀리려고 화난 척하면 그는 매우 안달 났다.서한은 직설남이다. 그는 빙빙 돌리지는 않고 매우 직설적이며 낭만적인 세포도 별로 없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잘해줬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오이연은 늘 자신이 매우 행복하다고 느꼈다. 최근 서한의 성질이 급해진 것도 오이연은 참을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좌절 때문에 성격에 변화가 있어도 정상이었다.하지만 이 말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너무 상하게 했다!서한은 뜻밖에도 오이연더러 가라 하고 다른 사람과 살아라는 말을 하다니 그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인가!“너……, 다시 말해봐?!”오이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묻더니 한 손에 움켜쥔 맥주캔은 완전히 찌그러졌다.“…….”자신의 말이 좀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서한은 묵묵히 오이연을 한 번 보고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오이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서한을 바라보았다.“서한, 내가 다시 한번 묻겠는데 그날 남아시아에서 정말 김서진이 너를 밀어낸 거야? 확실히 잘못 기억한 거 아니야? 정말 그가 너를 내팽개치고 위험에 빠뜨리게 한 거야?”“난…….”서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오이연은 계속 말했다.“지금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네가 나에게 한 말을 난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너와 나만이 알 것이야.”“그러니 내 앞에서 네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오이연의 두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고 눈 밑은 매우 맑았다. 오이연은 서한에 대해 믿음이 가득하기에 그가 말하기만 하면 그녀는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서한은 오이연을 돌아보며 눈빛을 피하지 않았고 그녀의 눈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이연은 그의 눈빛에서 끝을 볼 수 없었고 그의 마음도 볼 수 없었으며 서한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욱 알 수 없다고 느꼈다.“내가 해야 할 말을 이
곧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어르신이 문을 열러 가자 마침 한소은이 문 앞에 이르렀다. 어르신께서 미리 문을 연 것을 보고 그녀는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고 눈썹을 치켜세웠다.“아직 시작하지 않았어요?”“너를 기다리고 있었어!”“그럼 만약 제가 오지 않았으면요?”“안 왔으면 내가 직접 시작했지!”“스승님께서 몇 년 동안 직접 손을 댄 적이 없으신데 빗나가는 것을 두렵지 않아요?”“빗나가면 다시 찌르면 되지. 어차피 우리 사람이니 두 바늘 더 찔러도 상관없어!”두 사람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듣던 원철수는 식은땀을 흘렸다.“???”‘이게 무슨 말이야? 자기 사람이니 두 바늘 더 찌르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설마???’“잠깐만요!”원철수는 몸을 일으켜 입구에서 잡담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도대체 누가 저한테 침을 놓아주는 건가요? 설마…….”한소은은 원철수를 한 번 보고는 이어서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스승님께서 그에게 말하지 않았어요?”“뭘 말해?”눈을 깜빡이자 어르신은 무고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환자인데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어?”“!!!!”‘왜 없어!’비록 몸은 아직 묶여 있고 힘도 별로 없지만 원철수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열심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둘째 할아버지, 만약 침술이라면 여전히 할아버지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안심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해 와서 한소은의 의술에 대해 원철수는 더 이상 이전처럼 편견을 갖지 않았고 또한 그녀가 진짜 능력이 있다고 믿었지만 침술은 달랐다.어렸을 때 둘째 할아버지가 침을 놓는 것을 보고 원철수는 매우 신기해했다. 그래서 남몰래 인체의 경혈도까지 모두 외웠다. 그러나 둘째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에게 침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침술은 보기에는 간단했지만 경혈을 만져서 위치를 확정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어디에 찔러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