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서한과 싸운 적이 없었다. 이전에 자신이 고의로 그를 놀리려고 화난 척하면 그는 매우 안달 났다.서한은 직설남이다. 그는 빙빙 돌리지는 않고 매우 직설적이며 낭만적인 세포도 별로 없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잘해줬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오이연은 늘 자신이 매우 행복하다고 느꼈다. 최근 서한의 성질이 급해진 것도 오이연은 참을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좌절 때문에 성격에 변화가 있어도 정상이었다.하지만 이 말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너무 상하게 했다!서한은 뜻밖에도 오이연더러 가라 하고 다른 사람과 살아라는 말을 하다니 그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인가!“너……, 다시 말해봐?!”오이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묻더니 한 손에 움켜쥔 맥주캔은 완전히 찌그러졌다.“…….”자신의 말이 좀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서한은 묵묵히 오이연을 한 번 보고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오이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서한을 바라보았다.“서한, 내가 다시 한번 묻겠는데 그날 남아시아에서 정말 김서진이 너를 밀어낸 거야? 확실히 잘못 기억한 거 아니야? 정말 그가 너를 내팽개치고 위험에 빠뜨리게 한 거야?”“난…….”서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오이연은 계속 말했다.“지금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네가 나에게 한 말을 난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너와 나만이 알 것이야.”“그러니 내 앞에서 네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오이연의 두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고 눈 밑은 매우 맑았다. 오이연은 서한에 대해 믿음이 가득하기에 그가 말하기만 하면 그녀는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서한은 오이연을 돌아보며 눈빛을 피하지 않았고 그녀의 눈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이연은 그의 눈빛에서 끝을 볼 수 없었고 그의 마음도 볼 수 없었으며 서한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욱 알 수 없다고 느꼈다.“내가 해야 할 말을 이
곧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어르신이 문을 열러 가자 마침 한소은이 문 앞에 이르렀다. 어르신께서 미리 문을 연 것을 보고 그녀는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고 눈썹을 치켜세웠다.“아직 시작하지 않았어요?”“너를 기다리고 있었어!”“그럼 만약 제가 오지 않았으면요?”“안 왔으면 내가 직접 시작했지!”“스승님께서 몇 년 동안 직접 손을 댄 적이 없으신데 빗나가는 것을 두렵지 않아요?”“빗나가면 다시 찌르면 되지. 어차피 우리 사람이니 두 바늘 더 찔러도 상관없어!”두 사람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듣던 원철수는 식은땀을 흘렸다.“???”‘이게 무슨 말이야? 자기 사람이니 두 바늘 더 찌르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설마???’“잠깐만요!”원철수는 몸을 일으켜 입구에서 잡담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도대체 누가 저한테 침을 놓아주는 건가요? 설마…….”한소은은 원철수를 한 번 보고는 이어서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스승님께서 그에게 말하지 않았어요?”“뭘 말해?”눈을 깜빡이자 어르신은 무고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환자인데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어?”“!!!!”‘왜 없어!’비록 몸은 아직 묶여 있고 힘도 별로 없지만 원철수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열심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둘째 할아버지, 만약 침술이라면 여전히 할아버지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안심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해 와서 한소은의 의술에 대해 원철수는 더 이상 이전처럼 편견을 갖지 않았고 또한 그녀가 진짜 능력이 있다고 믿었지만 침술은 달랐다.어렸을 때 둘째 할아버지가 침을 놓는 것을 보고 원철수는 매우 신기해했다. 그래서 남몰래 인체의 경혈도까지 모두 외웠다. 그러나 둘째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에게 침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침술은 보기에는 간단했지만 경혈을 만져서 위치를 확정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어디에 찔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이미 원철수의 앞에 와서 한 손으로 그의 팔을 누르고 다른 한 손을 집어 들었다가 곧이어 벼락같이 귀를 가릴 기세로 떨어졌다.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원철수는 심지어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은색 바늘은 이미 몸에 박혔다.“???”“…….”소리 없이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한 바늘이 원철수의 입을 막았는지, 아니면 한소은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잠시 반응할 수 없었는지 원철수는 오히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묵묵히 그녀의 손이 들었다가 다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한소은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사실, 한소은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침술을 놓은 것이 아니었다. 방금 한 말들은 단지 원철수를 놀라게 하기 위했을 뿐이었다.게다가 오기 전에 그녀는 다시 고대 의서를 뒤져보고, 침술과 경혈을 다시 한번 복습했다. 그리고, 이 침술은 결코 보통처럼 간단하지 않았고 모든 은색 바늘에는 약이 묻혀 있었다.다만 이런 것들은 원철수에게 그렇게 많이 말하지 않았다. 때로는 너무 많이 말하면 오히려 더 큰 심리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어서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처음에 원철수는 긴장했지만 나중에 몸에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고 자신도 아직 멀쩡하다는 것을 발견하자 점차 긴장을 풀었다.하지만 긴장이 풀리자 몸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마치 몸속의 단전에서 온기가 솟아올라 사지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았고 이 온기는 이전에 독성이 발작했을 때의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과는 달랐다.이전의 그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은 마치 그를 온통 증발시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따뜻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모든 모공이 열려져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푹 쉬고 싶었다.그리고 원철수도 확실히 자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 했다.눈을 감고 뇌를 비우면 영혼은 둥둥 떠있는 것 같았고 팽팽하던 피부도 풀리고 사람도 한결 편해졌다.원철수는 자신이 곧
원철수는 한소은을 힐끗 보았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힘이 없었다.“계속할까요?”한소은이 물었다.“당신 뜻대로 하세요!”모처럼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예전에 원철우는 한소은에 대해 의심이 많았다. 그녀에게 다소 승복한 후에도 여전히 말다툼을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치 이렇게 해야만 그의 학식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단지 이번 한 번, 심지어 그 자신의 목숨까지 걸렸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어쨌든 한소은의 능력을 그가 이미 알게 되었고, 자신의 몸의 반응은 더욱 직관적이었으니 그는 한소은을 믿고 싶어 했다.한소은은 입술을 오므리고 마스크를 다시 착용한 후 계속 침을 놓기 시작했다.그리고 어르신은 소독 장비를 가져와 집안 곳곳에 뿌리기 시작했고 미세한 소독 스프레이가 구석구석에 뿌려졌으며 방안에는 스프레이 소리 외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원철수는 사실 좀 이상해했다.‘자신은 중독된 거지 바이러스를 옮은 것은 아닌데 왜 둘째 할아버지께서 여기서 소독을 하는 것인가?’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도 더 묻고 싶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몸속의 따뜻함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방금의 기침은 그의 많은 체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사람도 지금 매우 허약했다. 그는 이렇게 그곳에 누워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얼마 후, 원철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한소은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어르신 혼자 가장자리에 앉아 손에 책을 들고 보고 있었다. 어르신은 돋보기를 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으며 매우 조용하고 진지했다.“둘…….”입을 벌리자 목이 좀 건조했고 피비린내가 나기도 했지만 사람은 오히려 힘이 많이 나서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둘째 할아버지…….”어르신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흥, 깼어?”“저…… 얼마나 잤어요?”그가 보니 바깥의 날이 이미 어두워진 것 같았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몰랐다. 다만 몸에 묶인 물건은 모두 풀어졌고 은색 바늘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다
둘째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원철수도 당연히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발했다.이렇게 많은 날 동안 그는 줄곧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감옥에 있었을 때의 밤낮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돌아온 후에도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오랫동안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네, 할아버지 뜻대로 할게요!”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은 일어나서 맥을 짚고 잠시 중얼거리다가 몸을 돌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래층에 와서 손을 씻고 소독액을 좀 뿌린 후에야 뒷마당으로 돌아갔다.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뒷마당은 환한 불빛으로 넓은 약초밭을 비추고 있어 고요하고 아름다워 보였다.어르신은 따뜻한 꽃집에 오자마자 그의 보배로운 제자가 허리를 굽혀 그 약초들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았다. 배 때문에 쪼그려 앉기가 불편하여 그녀는 단지 허리를 약간 굽히고 손을 뻗어 필요한 약초를 따고 있었다.“부족한 거 있어?”어르신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는 한소은을 놀라게 하는 것을 전혀 두렵지 않았다.한소은은 토끼처럼 예리해서 자신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벌써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역시나 한소은은 머리도 돌리지 않았다.“아마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그렇게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그건 꼭 그렇지는 않아! 뭐가 부족하면 말해. 이 늙은이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을 수 없는 약초가 별로 없어!”자신의 제자 앞에서 어떻게 체면을 구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가 있는 곳은 백초원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바깥의 일반 약초 재배보다 품종이 훨씬 풍부했다. 만약 그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배일 것이다.몇 그루를 따고 나서 줄곧 일어서자 한소은은 비로소 어르신을 바라보았다.“향료!”“향…….”어르신은 방금까지도 의욕이 넘쳤지만 순식간에 숨죽였다.“향료를 왜 나한테 말을 하는 것이야. 너는 내가 그런 것을 키우지 않고 그것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리고 그것을 왜 원하는 건데. 옛 사
“그럼…… 천천히 익숙하세요!”한소은이 웃었다.깊은 밤.방안은 조용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마치 깊이 잠든 듯 고른 숨소리를 냈다.갑자기 이불 한구석을 젖히자 남자는 일어나 앉았으나 서두르지 않고 뒤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가 등을 돌리고 깊이 잠들어 그가 일어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을 보고 천천히 두 발을 내려 양손에 힘을 주고 가볍게 일어나더니 이어 방문을 열고 가볍게 걸어나갔다.그러나 그가 나가는 순간 침대 위의 여자는 두 눈을 뜨고 이미 닫힌 방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은 맑았지만 눈물이 고였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침대 옆에 있는 휠체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뒤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은 사라지고 가슴은 계속 가라앉았다.‘그는 역시 자신을 속이고 있었어!’‘분명히 그의 두 다리는 이미 걸을 수 있는데 왜 휠체어에 앉아 거동이 불편한 척을 하는 것일까?’숨을 깊이 들이쉬며 격한 마음을 가라앉힌 오이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손에 쥔 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나갔다.거실에 들어서자 방안이 텅 비어 아무도 없었다. 다시 입구 방향을 바라보니 남성용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분명히 사람은 이미 나갔다.‘이 한밤중에 그는 혼자 몰래 일어나서 그녀 몰래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오이연은 생각을 하고 신발을 갈아 신고 따라서 나갔다.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단지에서 나올 때 마침 자신의 차가 모퉁이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놀랐다.서한은 다리에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스스로 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이연은 전혀 몰랐다. 그녀는 또 서한의 몸이 큰 상처를 입고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한밤중에 서한은 운전을 하고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한소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소은은 전화를 받았을 때 방금 어르신 댁에서 긁어온 진기한 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온몸이 매우 피
그녀는 멈추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 부드러운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이연아, 왜 그래?”사실 한소은은 마음속으로 예감이 있었다. 그들한테서 떠난 후 한소은은 오이연이 반드시 스스로 그녀를 찾을 것이라고 느꼈다.오이연은 머리가 없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비록 서한을 매우 사랑하지만 오늘 대질한 후에 그녀는 분명히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전화에서 오이연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하고 숨소리도 매우 가빴으며 또 긴장했다.[소은 언니, 서한이가…… 외출했어.]“외출? 그게 무슨 뜻이야?”한소은은 무의식중에 김서진을 힐끗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우유를 데우고 있었고 마치 감지한 것처럼 그녀 쪽으로 쳐다보았다.[그는 내가 잠든 틈을 타서 일어났고 그리고 혼자 몰래 나갔어. 지금 운전하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소은 언니 나…… 나 좀 무서워!]오이연의 목소리는 떨렸고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일, 서한이 그녀를 숨긴 것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두려운 것이었다.한소은은 눈썹을 찡그리며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혼자 운전을 하고 외출했다고? 잠깐만, 그는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야 하지 않아?”이 얘기를 꺼내자 오이연도 민망해했다.[그의 다리는 괜찮아. 나도 이제 알았어. 도대체 나한테 얼마나 많은 일을 숨겼는지,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 소은 언니, 미안해…… 언니를 의심했었는데, 난…….]“됐어.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지금 너무 당황하지 마. 내가 곧 다른 사람에게 그의 행방을 조사하게 할 테니, 너는 먼저 집에 돌아가서 안심하고 나의 소식을 기다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너는 아직 임신 중이어서 자신의 몸을 주의해야 해. 알았지?”한소은이 엄숙하게 말하자 반대쪽에서 오이연이 망설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알았어, 언니의 말을 들을게. 나는 집에 가서 소식을 기다릴게. 하지만…….]잠시 멈칮하다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소은
“나???”한소은은 이해하지 못하고 멍해졌다.“그한테 임신 중이니 자신의 몸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너는? 너도 자신이 같은 임산부라는 것을 잊었어?”김서진이 부드럽게 말하면서 한 손을 한소은의 불룩한 아랫배에 가볍게 얹었다.한소은이 이렇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팠다. 김서진은 그녀를 위해 최대한 많이 나눌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한소은은 아연실색하여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려 하였으나 김서진의 관심 어린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의 말을 들을게!”김서진은 그제야 안심하고 일어나 전화를 걸어 서한의 행방을 추적하도록 사람을 보냈다.이와 동시에 서한은 이미 운전을 하고 떳떳하게 대문으로 들어가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갔다.차에서 내린 서한은 시동이 꺼지지 않은 다른 검은색 지프를 향해 걸어갔고 이어서 차에 올라탔다. 차에는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시동을 걸고 떠났다.김서진은 한소은에게 좀 자라고 권했다. 결국 아무도 서한이 언제 집에 돌아갈지, 아니면 집에 돌아갈지 안 갈지를 모르기 때문이다.그의 행방을 찾으러 보낸 사람도 아직 회신이 없으니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한소은은 위층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누워만 있었을 뿐 잠을 잘 수 없었다. 일이 너무 많아 뇌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사람은 매우 피곤했다.자신도 모르게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졸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김서진이 아직 방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다시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 갔다.시간은 이미 이렇게 늦었다.한소은은 일어나서 옷 한 벌을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서재의 등불은 아직 켜져 있었고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은 서재에 있는 것 같았다.살금살금 걸어갔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손으로 살짝 문을 열자 김서진이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온몸은 뒤로 젖혀지고 눈을 감은 채 잠이 든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한 손은 책상에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