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주 부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무슨 여자요?"‘진정기…… 새로운 여자를 찾는 거야?’"아니, 당신 매형은 당신 누나를 많이 사랑해서 평생 다른 여자는 찾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나요? 이제 겨우 몇 년이 지났다고 벌써 다른 여자를 찾는 건가요?"주현철은 짜증이 났다."나도 몰라, 그냥 동료일 수도 있고 뭔가를 부탁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라고!"주현철이 직접 두 눈으로 본 게 아니었기에 더욱 당황했다. 그는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전화해도 받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는다. 심지어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것은 불길한 징조였다.‘하지만 그날 분명 얘기가 다 끝났는데, 어디가 잘못된 게 분명해!’아무리 생각해도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몰랐던 주현철은 다시 한번 진정기를 찾아갔지만, 여전히 문전박대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딸도 자기에게 그렇게 차갑게 구니 쌓아두었던 화가 모두 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아무도 만나주지 않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주 부인은 곰곰이 생각한 후 남편을 위로했다."그게 무슨 말이야?"짜증이 가득 섞인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주현철은 아내의 말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이번에도 입찰을 따내지 못하면 큰 프로젝트 투자를 유치할 수 없을 것이다.주현철이 투자자들을 모을 때 이 프로젝트의 전망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있는 사실 없는 사실 다 꺼냈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기꺼이 그와 손을 잡고 이 프로젝트에 투자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만약 프로젝트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회사의 자금이 끊어지고 은행의 빚을 갚을 수 없어 하룻밤 사이에 빈털터리가 될 게 뻔하다.주현철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그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당신……."주현철 옆의 의자에 천천히 앉은 주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진정기는 당신만 만나주지 않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도 만나주지 않는 건가요?”"당신도 매형의 성
주현철은 평소 건방진 성격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죽은 누이의 체면이 아니었다면 진정기는 오래전부터 그와 연을 끊었을 것이다.그가 진정기 앞에서 자주 죽은 누나를 언급하는 것도 진정기가 자기의 누나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죽은 누나를 언급해야만 진정기 앞에서 조금이나마 얼굴을 들 수 있었다.만약 진정기가 정말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자기의 누나를 잊어버렸다는 증거다.그렇게 된다면 자기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당신이 진정기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말한 바람에 나도 그렇게 말한 거잖아요! 당신은 나보다 더 남자를 잘 알 거 아니에요! 아무리 사랑에 빠진 남자라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주 부인은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화를 내고 나서 진정이 된 주현철은 다시 생각해 보니 아내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그는 남자다. 전부터 아내를 잃고 지금까지 다른 여자를 찾지 않은 진정기가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기였다면 벌써 몇 명의 여자를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주현철은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모습은 모두 여자의 날카로운 두 눈을 피할 수 없었다."왜요, 나를 대신할 다른 여자를 찾고 싶은 거예요?"주 부인은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당신이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어!"말을 얼버무린 주현철은 아내를 한번 보고 말을 이어갔다."내가 아니라 진정기를 그렇게 칭찬하는 걸 보니, 내가 저세상으로 가면 주현철에게로 가려는 속셈이지?”"당연히 그러고 싶죠!"주 부인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바로 한마디 덧붙였다."그 사람은 당신보다 능력 있고, 당신보다 잘 생기고, 당신보다 지위가 더 높아요…… 하지만……."주현철이 폭발하려는 순간 주 부인인 바로 반전을 가져다주었다."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잖아요. 난 이 정도의 자각은 가지고 있어요!"아내의 말에 주현철은 할 말을 잃
진가연은 집에 귀한 손님이 온 줄 몰랐다.차가 집 앞까지 다 와서야 문 앞에 차가 한 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한 사람이 차 옆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좋은 몸매에 편하게 기대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갖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그런 스타일이었다.그 사람은 차를 문 앞에 세워 진가연이 들어갈 길을 막고 있었다.이건 분명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진가연은 차 문을 내려 고개를 쏙 내밀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주효영?”주효영은 진가연의 말을 듣자마자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자 원래도 길어 보였던 다리가 더욱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두 손을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 진가연을 향해 미소를 띠고 있었다.“이제 오는 거야?”“응. 나한테 볼일 있어?”진가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실 그녀가 왜 왔는지 알 거 같았지만, 그래도 물어보았다.“응.”주효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웃는 듯 마는듯한 표정으로 진가연을 위아래로 흘겨보았다.그런 시선에 진가연은 조금 불편함을 느꼈지만, 친척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몇 없는 사촌 언니이기도 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게다가 주효영은 자주 오지 않는 귀한 손님이다. 그래서 진가연은 예의 있게 주효영에게 말했다.“그럼……문 열라 할 테니 들어갈래?”“그래.”주효영이 바로 대답하며 차에 시동을 걸어 길을 비켜주었다.진정기와 진가연 모두 집에 없었기에 일하는 아주머니가 쉽게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주 부인처럼 자주 드나들고 진가연이 따로 막으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을 열어 주었어도, 주효영은 낯선 얼굴이어서 감히 문을 열어주지 못했다.그렇다고 해서 주효영이 진가연에게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대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진가연을 기다리고 있었다.벌써 날이 조금 어두워졌다. 진가연의 집은 따뜻한 노란 빛의 불이 켜져 아늑해 보였다."조명 바꾸었어?"주효영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지난번에, 이곳에 왔을 때 흰색 톤의 차가운 빛이었던 거
‘아마도 외숙모가 물어보라 했겠지.’진가연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키는 대로 먹었다고 말했다.사실 그 약 처방대로 약을 먹지 않았다. 한소은이 그 약이 효과가 없다고 해서 그녀의 말을 듣고 먹지 않았지만 외숙모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잔소리를 할게 뻔하다.주효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가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거짓말이구나!’만약 진가연이 그 처방대로 약을 먹었다면 기력이 이렇게까지 회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이 조금 빠졌을지는 몰라도 무기력하고 지친 모습일 것이다.‘가연이는 절대로 그 약을 먹지 않았어! 근데 내 앞에서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다니!’"그나저나 오늘은 왜 한가해? 외숙모가 언니 많이 바쁘다고 했는데! 무슨 연구소에 있다고?"진가연은 물 두 컵을 들고 다가와 손을 뻗어 그녀에게 한 컵을 건넸다.주효영이 물잔을 받을 때 의도적인 것인지 의도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가연의 손목을 슬쩍 스쳐 지나가면서 물잔을 받아 들었다.그 바람에 진가연은 너무 놀라서 물잔을 놓쳐 떨어뜨릴 뻔했다."응,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실험하는 중이야."주효영은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담담하게 말했다.그녀는 진가연이 물 반 컵을 다 마시는 것을 보며 궁금함에 물어보았다."넌 예전에 물 마시는 걸 가장 싫어했잖아. 물에 설탕을 넣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습관이 바뀐 거야?""살 빼려면 이 정도 변화는 있어야지."진가연은 컵을 들고 감격에 겨워 말했다.예전부터 그녀는 모든 종류의 음료, 특히 설탕이 든 과일 주스, 탄산음료와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물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식단을 통제 한 후에는 감히 마시지 못했지만 계속 먹고 싶어 했다. 이제 한소은이 그녀에게 물을 마시는 걸 익숙해야 하고 도저히 마시지 못하겠다면 레몬 조각이라도 추가해 천천히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어떤 실험인데?"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던 진가연은 궁금한 듯 물었다."
"맞아! 다 정리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드니 몸도 좀 더 편안해진 것 같아."진가연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며 이어 말했다."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정리하고 나니 시야가 훨씬 넓어지고 집이 밝아졌어, 언니도 느껴지지?"눈썹을 치켜든 주효영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아, 깜빡했어, 언니가 워낙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지 않아서 예전에는 어땠는지 잘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집이 이렇게 바뀐 게 꽤 마음에 들어.""아빠도 집이 넓어져서 훨씬 더 밝아졌다고 했어."진가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자기의 아버지를 언급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행복이 가득했다.그 미소는 너무나 밝고 찬란했지만, 주효영의 눈을 따갑게 했다.그녀에게는 자랑스럽게 언급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좋은 아버지가 있었고, 진정기는 그녀와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사랑과 애정을 쏟았다.어렸을 때 주효영의 부모님은 돈과 사업 때문에 자주 다투었고, 진가연이 집에 올 때마다 자기 부모님은 그녀를 공주처럼 대하고 종종 자신을 무시하고 좋은 것이 있을 때 모두 진가연에게 먼저 주었다.주효영이 친딸인데 진가연이 오기만 하면 항상 무시당하는 사람이 돼버렸다.하지만 진가연은 좋은 아버지가 있고 권력까지 높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야 했다.진가연을 너무 아끼다 못해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몇 마디를 말하기 위해서는 진가연에게 먼저 호의를 보여야만 하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모두의 초점이며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 있는 보물로 자랐다.주효영이 물컵을 쥔 손가락을 꽉 쥐고 무심하게 말했다."그래? 집에 녹색 식물이 많으면 몸에 좋다고 들었는데.""아마도."진가연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그렇지는 않아.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잖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고, 꽃 사이에서 자도 괜찮은 사람도 있잖아, 언니는 생물학을 공부했으니 이 부분에 대해 더 잘 알겠지?""들어
지금은 얼굴뿐만 아니라 내뿜는 기운까지 달라졌다. 사람에게 주는 전체적인 느낌도 예전 같지 않았다.진가연이 뚱뚱해지기 시작하고부터 주효영의 집에 거의 가지 않았지만, 갈 때마다 눈꺼풀이 처지고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날이 서 있었고 날카롭고 예민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눈에 행복이 서려 있었고 허리도 곧게 펴고 사람들의 눈을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주효영의 어머니도 여러 번 언급했고, 연구실에서도 원철수가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려웠다."아니, 그냥 가끔 저녁을 먹으러 소은언니 집에 방문하는 것뿐이야. 외숙모가 편견이 있는데 언니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어? 한소은은 좋은 사람이니까 나중에 소개해 줄게!”“둘 다 훌륭하니까 좋은 친구가 될 거야!"진가연은 외숙모의 말 때문에 주효영이 한소은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고 생각해 해명해 주었다."좋아!"주효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그럼 난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편히 쉬어!""이렇게 늦었는데 집에 안 가?"주효영이 집에 안 간다는 말을 들은 진가연은 한마디 덧붙였다."언니가 자주 집에 안 들어가서 외숙모가 보고 싶어 해!"주효영은 발걸음을 살짝 멈추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보고 싶어 한다고……"그 두 마디는 큰 의미가 있었지만, 주효영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갔다.진가연은 문 앞까지 따라가서 주효영이 차에 올라타서 멋지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며 부럽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예전부터 운전을 배우고 싶었지만, 몸무게 때문에 운전석에 앉으면 갑갑하고, 운전을 할 수 있어도 외출을 좋아하지 않으니, 어디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포기했었다.이제 분위기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으니 더 많이 나가서 걸어 다니고 싶었다. 한소은 집에 가는 것도 집의 기사가 운전해 주어야 갈 수 있었다. 만약 운전을 할 줄 안다면 분명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된다.진가연은 몇 년
"장유나 아줌마 많이 좋아해?"한소은이 부드럽게 아들에게 물으며 아이의 마음에 장유나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좋아!"아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한소은은 이어서 물었다."그래서 …… 얼마나 좋은데?""음 ……"그는 아직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렸다.그러자 한소은은 다른 방법으로 물었다."이렇게 하자, 장유나 아줌마가 더 좋아? 아니면 엄마 아빠가 더 좋아?""엄마, 아빠!"한소은이 이렇게 물으니, 김준은 단번에 대답할 수 있었다.아들의 말에 한소은은 마음이 약간 안도했다.“다행이야.’만약 그녀와 김서진보다 장유나를 더 좋아한다면 한소은은 정말로 자신을 반성해야 했다."그럼 장유나 아줌마가 언젠가는 우리 집을 떠날 거라고 말하면 넌 어떨 거 같아?"그러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요?""장유나 아줌마는 널 전적으로 돌보기 위해 고용한 베이비 시터이기 때문에 네 조금 더 커서 더 이상 그녀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거나 아줌마네 집에 일이 생긴다면 떠는 거지. 우리 가족의 다른 가정부 아줌마,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엄마 아빠가 고용한 사람이야. 다만……. 그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일하는 거라서 일이 끝나거나 하기 싫으면 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그녀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더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아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열심히 어머니의 말을 소화하려고 애썼다.한소은이 어떻게 다시 설명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김준이 다시 물었다."그러면 영원히 나를 돌봐주면 안 돼요?"일관된 문장으로 몇 단어 이상을 말하는 것이 꽤 어려웠던 아이에게 이 대답은 한소은을 놀라게 했다."엄마 아빠를 포함해 그 누구도 너를 영원히 돌봐줄 수는 없어. 넌 아직 어린애이지만 커서 큰 어른이 되면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해. 물론 네가 다 자라지 않았을 때 엄마 아빠가 돌봐줄 거야!"한소은은
장유나가 쪼그리고 앉아 부드러운 수건으로 김준의 작은 얼굴을 닦아 주었다.김준은 두 눈을 깜박거리며 장유나를 보고 있었다.그런 김준의 모습에 장유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하룻밤 안 봤다고 날 잊어버린 거야?""장유나 아줌마.""응."“아줌마, 갈 거야?”아이의 말에 장유나는 멈칫했다.그녀는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을 하고 말했다."네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응."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갈 거야?""아마도!"장유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느릿느릿하게 대답했다."그럼 나를 그리워할 거야?""응!"김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으로 말했다."그럼 내가 정말 가야 한다면 울지 마!"장유나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김준의 코를 톡 치고는 환하게 웃었다."안 울어!"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소은이 했던 말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엄마가 그랬어. 나는 용감한……아이야!"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정확하게 한소은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그러자 장유나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그래, 너는 용감한 아이야. 넌 정말 대단해! 그럼 용감한 우리 준이, 혼자서 바지 입을 수 있는 거지?""응!"말을 마친 김준은 침실로 몸을 돌려 침대에 놓아둔 옷을 들고 홀로 입으려 노력했다.어린 녀석이 열심히 옷을 입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유나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려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레포츠룩으로 갈아입은 김준은 멋있었다. 다만 작은 발은 아직 계단을 홀로 걸어서 내려오기에는 어려웠다.몇 걸음 걷다가 장유나에게 안겨 1층까지 내려와 다시 내려주었다."아침 먼저 먹고 엄마랑 갈 데가 있어."한소은이 그를 보며 말했다.김준은 호기심에 한소은에게 물었다."오늘 어디 가요?""놀러 가자."한소은이 가볍게 말하고는 장유나를 한 번 보았다."준이가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없으니 하루 휴가를 줄게. 하고 싶은 일 해도 되고, 차가 필요하면 기사에게 말해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