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리높이 노래를 불렀다.그리고 다시 하객들을 바라보았다.“예식장의 다채로운 색깔과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노래를 부르자. 친척과 친구들을 위해 잔을 들자. 아름다운 연인과 배우자를 사랑하라! 오늘과 같은 좋은 날에 기쁨이 넘치기를!”흥겨운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결혼식 절차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강주환은 미리 준비한 방으로 안내되어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레드와 블랙이 어우러진 빈티지한 신랑 복장을 하고 있었다.“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나엽이 큰 소리로 소개했다.“다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신랑·신부 입장!”대문이 열렸다.윤성아는 유리 왕관을 쓰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보석으로 만든 왕관은 고급스럽고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안에는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이미 반년 전에 강주환이 장인을 찾아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그녀의 하얀 드레스에 수놓아진 금실 무늬도 마찬가지로 이미 오래전에 손수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들도록 부탁했다.드레스도 드레스지만 신부 자체가 너무 눈부셨다.윤성아의 용안은 마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듯 고혹적이고 매력적이었다.반듯하게 넘긴 머리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왕관이 유난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얼굴에 내려진 너울과 유리알 같은 액세서리들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오똑한 코, 붉은 입술, 반듯한 얼굴!요즘 시기에 이런 미모의 여자는 찾아보기 보기 힘들 정도로 윤성아는 태생적으로 이뻤다.그런 그녀를 강주환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영혼까지 모두 뺏길 것 같았다.윤성아도 시선이 그 남자를 향했다.핏된 양복을 입은 강주환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 차가워 보여서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하지만 지금 아래위 세트로 입은 정장은 그를 더욱 고급스러워 보이게 했다. 이런 모습은 그녀도 여태껏 본 적이 없던 터라 눈을 떼지 못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사랑스레 빤히 쳐다보았다.그리고 손을 잡고 많은 사람의 환호 속에 별
검은색 양복을 입은 강주환과 하얀색 순백 드레스를 입은 윤성아가 손에 부케를 든 채 나란히 식장의 한가운데 세워진 무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음은 축복된 오늘이 있기까지 아낌없는 사랑으로 길러주신 양가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남궁태문과 오윤미, 안진강과 서연우가 화려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을 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하객들은 큰 박수로 환호했다.나엽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는데 그래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부모님의 은혜는 바다와 같고, 매화의 향기처럼 고통과 추위를 잊게 합니다. 이제 만사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강주환과 윤성아는 사회자의 진두지휘 아래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따뜻하게 안아줬다.“이로써 이제 서로에게 평생 소중한 사랑임을 약속한 신랑·신부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객 여러분들은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입장 때보다 더 큰 박수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강주환은 우수에 찬 눈빛으로 윤성아를 바라보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두 손을 꼭 잡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여보.”강주환은 마침내 정정당당하게 이 호칭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드디어 너랑 결혼하게 되었네!”윤성아도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주환 씨, 평생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같이 늙어가요!”“그래.”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그렇게 두 사람은 예전의 힘들었던 일은 잊고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이때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중에는 원이림도 있었다.남서훈이 치료해 준 덕분에 원이림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수술 직후 회복 중이라 어쩔 수 없이 휠체어를 타고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따라다녔다.왜소해진 몸으로 변한 원이림은 일찍이 그렇게 목숨까지 바치며 좋아했던 윤성아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면 매우
그날, 여석진의 간절한 눈빛에 여은진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해야 했다.“잘 생각하고 판단했으면 좋겠어.”“모든 일을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야 하지만 후회될 일은 만들지 마.”특히 배희주가 임신한 일에 대해 여은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배 속의 아이는 네 친자식이고 네 핏줄이잖아. 아무리 그 여자가 속임수를 썼다고 해도 네 아이란 사실이 달라져?”“나는 네가 신중하게 고민한 뒤에 다시 결정했으면 좋겠어.”그날, 두 사람은 화해했다.그리고 예전의 가족 같은 사이로 돌아갔다.하지만 가족은 어디까지나 가족일 뿐이다!강주환과 윤성아는 결혼식에 여은진도 초대했다.그녀가 요한이를 데리고 온다는 사실을 알고 명의상 남편이 된 여석진도 따라오게 되었다. 역시나 그곳에서 원이림을 봤고 우연히 여은진에게 매달리는 모습까지 보게 된 것이다.결혼식이 끝나기도 전에 여석진은 여은진을 데리고 식장을 빠져나왔다.가는 도중, 갑자기 차가 세워졌다.그리고 아래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순식간에 차를 둘러쌌다. 그들은 배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는데 그중 우두머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당장 차에서 내려주세요.”여석진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졌다.그는 여은진과 아이가 놀랄까 봐 냉큼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하지만 여은진이 그를 말리면서 걱정스레 물었다.“저 사람들이 너를 다치게 하는 건 아니겠지?”여은진의 걱정에 그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괜찮아, 안 내릴 거야. 이따가 우리 쪽 사람들이 와서 처리할 거니까.”여석진은 진작에 배씨 가문의 움직임을 예상했다. 게다가 강주환과 윤성아의 결혼식에 누군가가 쳐들어올까 봐 당연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그들은 여석진의 부하들이었고 심지어 배씨 가문의 사람보다 머릿수가 더 많아 반대로 그들을 에워싸게 되었다.일촉즉발.이때 배씨 가문의 사람 중 한 사람이 말했다.“만약 저희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내일 희주 아가씨랑 아이는 싸늘한
핏줄의 이끌림 때문일까, 아이를 안는 순간 원이림은 아빠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그의 품에 안겨 있던 녀석은 아까까지 울다가 원이림이 안고 그에게 다정하게 묻자, 기적처럼 울음을 그쳤다.하지만 방금 너무 크게 운 탓인지 여전히 작게 흐느끼기만 했다.그리고 여전히 눈물이 맺힌 커다란 눈으로 원이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원이림은 그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졌다.순간 품 안의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원이림은 아이를 안은 채 다시 휠체어에 앉았다.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무릎에 앉히더니 손가락 하나를 아이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엄마가 말했지, 너는 사내대장부라고.”“때문에 쉽게 울어서는 안 돼.”“언제나 엄마를 보호해야지, 울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잖아.”“울고 싶으면 이 아빠 품에서 울어, 알겠지?”...여은진은 가만히 서서 원이림의 자상한 아빠다운 모습과 여요한과 놀아주는 모습에 가슴이 쓰리고 눈물이 났다.한참이 지난 뒤.여은진이 그에게 다가왔다.“너무 오래 안고 있었어요. 이제 저한테 주세요.”원이림은 여은진이 또 자기한테서 아이를 뺏으려 한다고 오해할까 봐 말이 끝나자마자 냉큼 아이를 그녀에게 넘겨줬다.그리고 한껏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들어가서 좀 앉았다가 가. 나랑 대화도 좀 하고.”여은진은 아까보다는 흥분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남자를 따라 별장 안 거실로 들어갔다.그녀는 여요한을 안고 거실 소파에 앉더니 휠체어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물었다.“무슨 대화를 나눌까요?”원이림이 대답했다.“너랑 여석진은 사실 진짜 부부가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어. 비록 그때 여석진이 너한테 프러포즈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지금까지 두 사람은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잖아.”여은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 남자가 설마 다 알게 되었나?역시나 원이림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사람을 시켜 구청에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당신과 여석
하지만 그때 그 여자에게 상처를 준 후에야 모든 게 오해라는 걸 알게 되었다. F국으로 쫓아온 그는 그녀와 여석진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심지어 그녀를 잃은 게 윤성아를 잃었을 때보다 더 아팠다.결국 원이림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어쩌면 이미 널 사랑하고 있을지도 몰라. 단지 네가 날 좋아해 주고 내 옆에서 날 위해 해주는 모든 것에 익숙해졌을 뿐이야. 우리의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거라고. 그래서 널 잃기 전까지는 내 마음을 몰랐어.”여은진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에 넋을 잃은 건 그녀였다. 그렇게 족히 1분 동안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그러니까 예전부터 날 좋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원이림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응!”여은진은 놀란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마음에 품은 이 남자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붓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한 지금에서야 드디어 그의 마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여은진은 진작 자신의 마음을 접고 포기했다.여은진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쓱 닦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내가 대표님을 비굴하게 사랑하고 모든 걸 쏟아부을 정도로 다가갈 때 대표님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잖아요. 겨우 마음 접고 포기했는데 인제 와서 언제부터 날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른다고요? 하하. 나와 대표님은 함께할 인연이 아닌가 봐요. 함께하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질 운명이에요.”여은진은 원이림의 마음을 거절했다. 다시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아들 곁을 지키고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만 보고 싶었다.그녀는 원이림에게 그녀와 아들을 F국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혼자서 아이와 함께 차에 올라타 여석진이 보내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돌
여은진이 아이를 안고 내려오자 원승진은 더는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를 보았다.“피부가 하얗고 보드라운 게 이림이 어렸을 때와 똑같네!”원승진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여은진을 쳐다보았다.“내가 아이를 안아봐도 될까?”여은진은 원승진이 아이를 안는 걸 꺼려서가 아니라 단지 조금 걱정되었을 뿐이었다.“요한이 인제 고작 두 달이긴 하지만 꽤 무거워요. 힘들지 않으시겠어요?”“힘들긴. 괜찮아.”원승진은 연신 괜찮다고 했다.그는 불혹이 돼서야 아들 원이림을 얻었다. 원이림은 올해 30살이 훌쩍 넘긴 원승진도 곧 8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몸 상태는 여전히 건강했다. 아들이 결혼하여 손자를 안겨주는 날만을 기대하며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했다.갑자기 귀여운 손자가 생겨 겨우 안을 수 있게 되었는데 칠팔 킬로그램이 아니라 그 배가 되어도 번쩍 안을 수 있었다.원승진은 여요한을 품에 안았다. 귀여운 손자를 보며 원승진은 입이 다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여요한은 평소에도 별로 울지 않았다. 원승진의 품에 안겨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원승진을 쳐다보았다. 원승진이 까꿍 하며 달래자 바로 활짝 웃었다.“웃었어!”원승진은 뭔가 대단한 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함께 온 집사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봤어? 우리 손주가 날 보고 웃었어.”그날 원승진은 한참 동안 그 집에 머물렀다. 떠날 때도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은진아, 앞으로 요한이 보러 자주 와도 될까?”원승진은 가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백발인 데다가 가여운 눈빛으로 쳐다봐서 여은진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 웃으며 허락했다.“요한이 보고 싶을 때 시간 되시면 언제든지 오셔도 돼요.”원승진이 말했다.“시간 되지. 혼자 사는 노인네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야.”원승진은 아들이 결혼하여 손주를 안겨주길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금 미안한 마음에 얼굴에 철판을 깔지 못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살고 싶었다.그날
비록 나중에 우양주는 강하영을 끌고 가서 혼인신고하고 합법적인 부부가 되긴 했지만 양준회처럼 강주환네 커플과 합동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우양주는 결혼식을 보는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번이나 환호를 질렀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강하영을 와락 끌어안았다.“하영 씨, 나도 하영 씨에게 이런 결혼식을 해줄 거예요.”강하영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우양주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결혼식 준비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 몰라요? 그리고 우리 평생 함께 살지도 모르는데 굳이 결혼식까지 올릴 필요 있나요?”순간 발끈한 우양주는 독설만 내뱉는 강하영의 입술을 키스로 벌했다. 어찌나 격정적인 키스였는지 입술이 다 터져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우양주는 멈추지 않았다.강하영은 그런 우양주를 힘껏 밀어낸 후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았다. 화가 난 바람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우양주 씨, 당신 미쳤어요? 개띠예요? 왜 갑자기 물어뜯고 그래요?”그러자 우양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누가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래요?”우양주는 강하영에게 말이 씨가 된다면서 퉤퉤 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이처럼 아주 진지하게 선포했다.“우린 평생 함께할 거예요. 그 누구도 우릴 갈라놓지 못해요. 그리고 다음 생, 다다음 생에도 당신은 내 여자예요.”강하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결혼식 분위기 때문인가? 씩씩거리면서 유치한 말을 진지하게 하는 우양주를 보며 강하영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에 잘생긴 얼굴까지 더해지니 가슴이 막 설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이러지?그날 결혼식이 끝난 후 두 사람은 강하영을 처음 데리고 왔던 별장으로 돌아왔다.차가 멈춰 서자마자 우양주는 차에서 내려 조수석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이미 조수석 차 문을 연 강하영을 보며 허리를 굽혀 번쩍 안아 올렸다.화들짝 놀란 강하영이 언성을 높였다.“미쳤어요? 당장 내려놔요. 이따가 엄마가 보면 어떡하려고.”강하영의 어머니 초희는 아직 남궁주철을 용서하지 않았고 현재
우양주는 정말 체력이 넘쳤다.신혼 첫날 밤에 시집온 여자가 강하영인 걸 알고 나서부터는 하룻밤도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거의 동이 틀 때까지 못살게 굴었다.비록 우양주는 매번 그녀의 기분을 고려하고 기술도 능숙하여 그녀도 즐긴 건 사실이지만 몸이 버티질 못했다. 이젠 여자인 그녀가 몸이 상하진 않을지 다 걱정할 정도였다.강하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그에게 말했다.“아까 해 질 때도 했잖아요. 그런데 또요? 계속 이러면 확 잘라버리는 수가 있어요?”우양주는 억울한 듯 가여운 눈빛으로 강하영을 쳐다보았다.“여보, 우리 신혼이잖아요. 부부 생활을 자주 갖긴 했지만 이게 정상 아닌가요?”강하영이 말했다.“정상은 무슨!”강하영이 솔직하게 말했다.“당신은 괜찮아도 내가 힘들어 죽겠다고요!”강하영은 침대 쪽으로 다가가 이불을 챙겼다. 매일 밤 반복되는 그 시간을 피하려고 오늘부터 게스트룸에 가서 잘 생각이었다.그런데 우양주가 그녀를 와락 안더니 귀여운 고양이처럼 그녀의 몸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여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신혼인데 벌써 각방 쓰려고요?”그러자 강하영이 싸늘하게 말했다.“이거 놔요!”우양주도 전혀 지지 않았다.“싫어요!”놓지 않는 건 물론이고 이참에 또 키스하려 했다.강하영은 재빠르게 그를 피하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고를 날렸다.“오늘 밤은 휴전이에요. 단순히 이불 덮고 잠만 잔다면 게스트룸으로 가지 않을게요. 내가 말하는 잠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예요, 알았어요? 그렇지 않으면...”강하영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당신과 계속 각방 쓸 거예요.”우양주는 그녀에게 빠져들어 갈 것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사랑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여보, 진짜 나와 각방 쓸 거예요? 당신도 좋아했잖아요.”강하영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다. 정말 이 남자를 어찌하면 좋을지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그와 협상하는 수밖에 없었다.“당신도 좀 쉬어요. 당신은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죽게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