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머니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라졌다고 여기지 않았다.그해에 딸을 낳고서 외할머니에게 맡겼는데 남궁주철에 대한 일편단심 하나로 과감하게 M국으로 돌아간 초희였다.남궁주철이 선우월영과 이혼하겠다는 말만 믿고서 말이다.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명망 높은 천재 화가가 사랑하는 남자를 뺏긴 것도 모자라 상간녀라고 불렸다.또한 남궁주철과 지금의 아내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도 화낼 명분 하나 없었다.그러다가 남궁주철의 아내가 부탁을 해왔다.강하영은 선우월영이 통곡하면서 초희한테 가정을 지키게 해달라는 둥, 아빠 없는 아이가 얼마나 불쌍하냐는 둥 애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선우월영은 초희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빌었을 것이다.요셉 말로는 초희는 부드럽고 얌전하며 착한 여자라고 했다.거기에다 실력도 뛰어난 사람이다.모든 사람이 초희가 귀국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아니었다.강하영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본 적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관한 기억조차 없었다.외할머니는 누군가에게 협박받은 후에야 초희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강하영의 출신과 초희의 진심을 저버린 쓰레기 같은 아버지에 대해서 말했다.외할머니는 초희한테 그 남자를 다시 찾아가지 말라고 말렸다.그러면서 아주 독한 말을 뱉었다.만약 정말 떠난다면 모녀 관계를 끊자고 말이다. 완전히 남남처럼 지내자고 말했다.떠날 거면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초희는 강하영의 외할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에도 돌아오지 않았기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외할머니가 눈을 감기 전,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딸이 M국에서 또 그 남자한테 버림받았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전화 한 통도 없으니 무슨 일을 당한 줄 알았다.초희가 걱정됨과 동시에 어릴 적부터 무럭무럭 자란 강하영한테 이제는 가족이 없으니 더 마음이 아팠다.그러나 지금...인자한 미소로 안아주던 외할머니가 생각 난 강하영은 눈물로 뺨을 적셨다.“할머니…”그녀는 울먹거리면서 불러보았다.차오르는 눈물
그러면 어머니도 함께 말을 들을 수 있다.남궁설하 성격에 사생아한테 밀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이때 선우월영이 들어왔다.“설하야, 뭐 하는 짓이니?”그녀는 다급히 걸어오더니 남궁설하의 높게 들린 팔을 붙잡았다.혼내는 대신 강하영한테 말했다.“내가 설하를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그래. 지금 당장은 아빠한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 하영아, 네가 언니잖아. 이런 일로 설하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라 믿는다. 아줌마 말이 맞지?”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우월영을 쳐다보았다.“동생이니 이해해 줘야죠. 그래서 저를 때리려 할 때 막은 거예요. 괜히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려서 말 듣지 말라고요.”선우월영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남궁설하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저녁 식사를 할 때, 남궁설하는 일부러 화가 난척하면서 밥 먹으러 내려오지 않았다.남궁주철은 선우월영에게 물었다.“설하는 왜 안 내려왔어?”선우월영은 강하영을 쳐다보더니 부드럽게 대답했다.“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밥도 못 먹겠대요.”남궁주철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관심하거나 어떠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럼 먼저 식사하지.”식탁 앞에 앉은 남궁주철은 자상한 아빠였는데 강하영에게 반찬을 집어주면서 입에 맞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물어보고는 고용인에게 알려주었다.두 사람은 사이좋은 부녀 같았는데 선우월영은 그 자리가 불편했다.보다못한 선우월영이 식사 도중에 벌떡 일어났다.남궁주철은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설하가 철들지 않은 건 그렇다 쳐도 당신은 왜 그래? 그 나이 먹고 애랑 똑같이 굴다니. 집안 꼴 잘 돌아간다.”선우월영은 화가 솟구쳐 올랐지만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는 가버렸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남궁주철은 강하영에게 진로에 관해 물었다.전시회 알바를 하는 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지, 앞으로 어머니처럼 화가가 될 건지.그는 웃으면서 말했다.“넌 초희를 닮아서 그림에 소질이 있을 거야. 하
선우월영은 눈썹을 찌푸렸다.우씨 가문에 시집가서 우씨 가문 상속자의 아내로 살 좋은 기회를 사생아 따위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엄마, 좋은 기회라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봐봐요, 사생아가 집에 있으니 저랑 엄마는 매일 화밖에 안 내잖아요. 시집보내면 앞으로 마주칠 일도 없고요. 또한 우양주는 바람둥이라 그 버릇 남 못 줘요. 결혼한다 해도 다른 여자를 안고 살 거예요. 맞죠? 그러면 사생아는 시집가서 매일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그 여자한테 된통 당할지도 몰라요. 그리고...”남궁설하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우양주가 여자를 밥 먹듯이 갈아치웠는데, 성병이 있을지 누가 알아요? 엄마, 저는 친딸이니 낭떠러지로 밀지 말아주세요. 밀어도 사생아 그년을 밀어야죠!”선우월영이 망설이자 남궁설하가 쐐기를 박았다.“초희라는 사람 때문에 엄마는 아빠한테서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그 벌을 초희의 딸에게 물어야죠. 남편한테 사랑받지 못한 채 다른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 벌을 줘야 해요. 인과응보니까요!”선우월영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는데 이는 남궁설하의 말에 설득당했다는 뜻이다.그래서 남궁설하 대신 강하영을 시집보내기로 했다.선우월영은 강하영을 찾아 맞선자리에 관해 말했지만 그녀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엄마를 찾아 누가 운성 시에 사람을 보내 외할머니를 죽였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결혼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다.선우월영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그녀는 남궁주철 몰래 혼약을 맺을 생각이었다. 그가 알게 되면, 강하영은 허영심 때문에 우양주한테 시집가서 우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할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선우월영이 먼저 남궁주철한테 말을 꺼내야 했다.남궁설하 대신에 강하영을 우양주와의 맞선자리에 내보내서 두 사람을 결혼시키겠다는 말에 남궁주철은 완강하게 거절했다.“안돼! 애초에 우씨 가문과 혼담이 오간 건 설하야.”선우월영이 다급히 대답했다.“우씨 가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한 데다가 이른바 가문을 위한 결혼 때문에 어머니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고 실종되게 했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제는 강하영에게도 들키고, 선우월영에게도 완전히 속아버린 어리석은 아버지!강하영은 이미 모든 용건을 끝마쳤다.그가 믿지 않는 이상 그녀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그녀의 어머니는 스스로 찾으면 될 것이다.남궁설하를 대신하여 소개팅하기 위한 조건은 그녀 역시도 동의하는 바였다. 바로 남궁주철이 직접 그와 초희, 선우월영 사이에 발생한 모든 일을 직접 말하는 것이다.“에휴...”남궁주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결국 어쩔 수 없이 강하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비록 딸 앞에서 부끄러운 아비지만 강하영이 우양주와 소개팅을 원만히 하도록 하기 위해 조금의 숨김없이 초희와 선우월영과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었다.강하영은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그녀는 더욱더 자신의 어머니가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무능했고 할머니 말씀대로 그에게 어머니는 과분한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동시에 선우월영은 교활한 꽃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영아, 실은 네가 설하를 대신해 소개팅에 나가는 것은 잘된 일이야.”“우씨 가문은 M 국에서 세력이 매우 커. 남궁 가문과 거의 비슷하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지.”“하지만 남궁 가문은 너무 복잡해. 대가족인 데다 자식이 너무 많아.”“우씨 가문은 다르지.”남궁주철이 강하영에게 알려주었다.“우씨 가문은 현재 아들 한 명뿐이야. 그 아이는 우씨 가문의 미래 후계자인 동시에 미래 가주야. 그와 혼인하게 된다면 좋은 일이지.”“다만...”남궁주철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곤 잠시 생각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아이가 자유분방한 편이라 평판이 좋지 않아.”“하지만 어쩌면 네가 붙잡아둘 수 있을지도 모르지.”“하영아, 그 아이가 널 좋아하게 되더라도...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아마...”강하영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강하영의 눈빛이 어딘가를 오랫동안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그리고 우씨 가문의 도련님이 밖에 다른 여인을 몇 명 두고 있을지라도 싫지 않아요.”“오늘 선을 보러 온 것도 이 혼사에 만족하기 때문에 나온 거예요. 우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다면 부귀영화를 누릴 테니까요.”“우양주 씨는요?”강하영이 그에게로 몸을 바싹 기울이며 일부러 긴 곱슬머리를 쓸어 넘겨 보였다.그리고 우양주를 바라보며 고의로 교태를 부렸다.“도련님께서도 제가 마음에 드실까요?”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으며 마음속으로는 징그럽다고 생각했다.우양주 역시 그녀에게서 역겨움을 느꼈다.그는 번개처럼 뒤로 물러나 강하영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다가오는 것을 피했다.그는 강하영의 행동에 못마땅해하며 냉담하게 말했다.“꿈도 꾸지 마요. 당신 같이 시비나 걸고 다니는 추한 사람이랑 저는 혼인 절대 안 하니까.”“그러니까, 부귀영화 누릴 생각은 버리세요.”강하영. “그렇군요.”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했다.“전 제가 우씨 가문 아가씨가 될 줄 알았지, 뭐예요.”그러나 그녀는 빠르게 마음을 내려놓았다.“뭐, 상관없어요.”강하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우양주를 바라보며 말했다.“남궁 가문의 아가씨인 제가 굳이 당신에게 매달릴 이유는 없죠. 우양주 씨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니 어쩔 수 없네요.”“전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버렸다.그녀의 떠나는 모습은 조금의 미련도 없어 보였다. 마치 중요한 임무를 완성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가벼운 모습이었다.우양주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여인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익숙함을 느꼈다. 마치 그가 그리움에 대한 일념으로 M 국으로 달려왔으나 아직 찾지 못한 그 여인 같았다.심지어 방금 아양스럽게 머릿결을 넘기던 모습까지도.곰곰이 생각해 보니 싸구려 향수 속에 동백꽃 향기가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그리고 과장된 아이섀
집사는 흥분한 어르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르신이 이 일을 알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슬기로운 어르신에게 들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어르신, 흥분하지 마세요.”“이제 막 깨어나셨잖아요.”“도련님께서 이번에 너무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마 어르신께서 부인과 결혼하셨으니 친어머니께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물론 어르신도 이러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사실 그와 연화는 줄곧 아들에게 숨기던 것이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알려줘야 할 듯했다.알려주지 않으면 자신이 죽고 난 후 연화가 그 화를 모두 감당해야 할 테니.어르신은 편치 않은 몸을 겨우 가누었다.그는 사람을 시켜 우양주를 불러오라 명령했다.이것은 어르신이 처음으로 우양주에게 그들 옛 세대의 과거를 알려준 때였다.사실 어르신과 지금의 아내야말로 처음 만난 인연이었다. 그러나 우양주 친어머니가 어르신에게 첫눈에 반한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그러나 결국 어르신과 지금의 아내가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양주의 친어머니는 현실을 부정했다.감당할 수 없는 사실에 상사병에 걸리고 이성을 잃었다.그는 종일 우양주를 끌고 다니며 어르신이 그녀를 배신했다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자기 사촌 여동생을 욕하여 밉보이게 하며 염치도 모르고 자기 남편을 앗아간, 자신의 가정을 파탄 낸 년이라고 했다.우양주 역시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저주하고 욕설을 퍼붓는 모습을 봐왔다.원한 깊은 어머니의 얼굴 역시 봤었다. 그녀는 얻지 못할 사랑에 절망하여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이 몇 년간 우양주는 어머니의 일로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릴 적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하던 이모라는 사람도 원망했다.그런데 오늘 아버지께서 생전 처음 듣는 과거 이야기를 하셨다.“그럴 리가 없어요!”우양주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분노하며 아버지를 보았다.“어머니께선 이미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그 여자
그녀가 우양주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그래. 네 말대로 해.”“그래도 양주야, 결혼인데 혼인신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우양주가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여인을 제외하고 그는 누구와도 혼인신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없는 결혼에 혼인신고까지 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분이 알아서 하시면 돼요.”우양주가 드디어 장가를 가겠다고 약속했다.기분이 좋았던 어르신은 일주일 뒤 바로 퇴원 절차를 밟았다.그 사이에 남궁주철이 병문안을 왔다.어르신은 한바탕 남궁주철을 나무란 뒤 그에게 말했다.“우리 양주의 며느리는 남궁설하이지 사생아가 아니야.”“그쪽에서 동의하면 빨리 약혼하고 결혼시키자고.”“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 가문 사이의 혼사는 없던 일로 해.”“우씨 가문은 M 국에서 꽤 지위가 높단 말일세. 내 아들이 결혼하겠다 말만 하면 줄 설 여자들이 한가득해.”“결혼은 무르지 않습니다.”“두 가문이 정한 혼사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습니까?”남궁주철은 가문을 지극히 아끼는 사람이니 절대 결혼을 무르지 않는다.그는 병문안 선물과 함께 사과하며 어르신에게 말했다.“전의 일은 설하가 너무 소란을 피워서 그런 겁니다. 둘 다 제 딸아이기도 하니 그래서...”남궁주철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하지만 안심하세요.”“양주도 설하를 마음에 들어 하니 설하가 우씨 가문으로 시집가야죠.”집에 돌아온 남궁지철은 바로 선우월영과 남궁설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는남궁설하의 동의 여부는 안중에도 없었다.이에 남궁설하는 당연히 화가 났다.그녀는 본인의 혼인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생일대에서 중요한 결혼이 이렇게 다급하게 자기 의사도 없이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가출했고 남궁주철은 즉시 분부했다.“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설하를 찾아와. 강압적으로 끌고 와도 상관없어. 난 꼭 설
그러니까 우양주와 혼인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우양주는 원래 아랫도리를 마구 놀리는 바람둥이이니 남궁설하를 진심으로 좋아했을 리는 없고 결혼도 겉치레일 것이다.아마 그와 혼인하면 강하영은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아 세력을 넓히고 힘을 기를 수 있다.그리고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 우씨 가문의 아가씨가 된다면 시가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릴 수도 있다. 하여 선우월영이 그녀를 두려워하게 할 수도 있다.강하영은 잘 알고 있다. 선우월영이 이미 비밀리에 몇 번이나 그녀에게 손을 썼다는 사실을.그녀는 또 우양주와 운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구양주가 그녀에게 주었던 온정과 감동을 주었던 순간들.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그가 곁을 지켜주던 모습과 그의 온화함까지.그리고...강하영은 자신이 구양주를 상대할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이해득실을 자세히 따져본 뒤 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난 남궁설하를 대신할 수 있어.”한편.치료법 2단계인 해독제를 복용한 후 강주환은 건강을 많이 되찾았다. 이제 건강한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정고 탓으로 그의 눈에서 윤성아를 향한 사랑과 애틋함이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의 윤성아에 관한 기억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않으려고 할수록, 병마에 지지 않으려고 할수록 새끼 독충은 그의 몸에서 발악하며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매번 고통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그가 윤성아에 대해 점차 무관심해지고 소원해졌다.그리고 이제 이 모든 아픔은 지나갔다.강주환은 손을 뻗어 윤성아를 품에 꼭 안았다.그는 마음속 깊은 곳 뼛속까지 새겨넣었던 아리따운 용모를 한 그녀를 사랑스레 바라보았다.“성아야. 나 진짜 무서웠어.”“새끼 독충이 주는 고통은 괜찮았는데. 그 고통으로 죽는다 해도 상관없는데.”“널 잊을까 봐 겁났어.”강주환은 그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털어놓았다.그는 윤성아를 꼭 껴안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금씩 키스했다.“좋다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