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양주와 혼인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우양주는 원래 아랫도리를 마구 놀리는 바람둥이이니 남궁설하를 진심으로 좋아했을 리는 없고 결혼도 겉치레일 것이다.아마 그와 혼인하면 강하영은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아 세력을 넓히고 힘을 기를 수 있다.그리고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 우씨 가문의 아가씨가 된다면 시가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릴 수도 있다. 하여 선우월영이 그녀를 두려워하게 할 수도 있다.강하영은 잘 알고 있다. 선우월영이 이미 비밀리에 몇 번이나 그녀에게 손을 썼다는 사실을.그녀는 또 우양주와 운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구양주가 그녀에게 주었던 온정과 감동을 주었던 순간들.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그가 곁을 지켜주던 모습과 그의 온화함까지.그리고...강하영은 자신이 구양주를 상대할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이해득실을 자세히 따져본 뒤 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난 남궁설하를 대신할 수 있어.”한편.치료법 2단계인 해독제를 복용한 후 강주환은 건강을 많이 되찾았다. 이제 건강한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정고 탓으로 그의 눈에서 윤성아를 향한 사랑과 애틋함이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의 윤성아에 관한 기억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않으려고 할수록, 병마에 지지 않으려고 할수록 새끼 독충은 그의 몸에서 발악하며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매번 고통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그가 윤성아에 대해 점차 무관심해지고 소원해졌다.그리고 이제 이 모든 아픔은 지나갔다.강주환은 손을 뻗어 윤성아를 품에 꼭 안았다.그는 마음속 깊은 곳 뼛속까지 새겨넣었던 아리따운 용모를 한 그녀를 사랑스레 바라보았다.“성아야. 나 진짜 무서웠어.”“새끼 독충이 주는 고통은 괜찮았는데. 그 고통으로 죽는다 해도 상관없는데.”“널 잊을까 봐 겁났어.”강주환은 그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털어놓았다.그는 윤성아를 꼭 껴안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금씩 키스했다.“좋다
사막여우 같은 두 눈동자는 물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고 물안개가 낀 듯 몽롱하기도 했다.속눈썹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단발에 맺혀 있던 채 닦지 못한 물방울이 불빛을 받아 반짝이더니,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쇄골로 똑- 떨어졌다. 쇄골에 떨어진 물방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가슴 압박붕대로 흘러 들어가…양준회는 이미 옆방에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책을 뒤적거리던 중이었다.그는 문소리를 듣고는 남서훈쪽을 보았고, 그 순간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감출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그는 쥐고 있던 책을 침대 옆의 탁자 위에 놓더니 몸을 일으키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몇 걸음 만으로 남서훈의 앞에 도착한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서 수건을 뺏어갔다.그는 키가 아주 컸고 남서훈은 고개를 한껏 올려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양준회는 고개를 내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남서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깊은 애정을 담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닦아 줄게.”“…”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가 양준회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치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남서훈의 머릿결을 닦아 주었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남서훈의 머리에 있던 물기는 점점 적어졌다.그러면서도 그는 시종일관 남서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던 남서훈은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눈길을 피했다.“서훈아.”양준회가 잠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그녀가 조막만 한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본 바로 그 순간, 양준회는 그대로 고개를 내리더니 아까부터 그를 유혹하던 입술에 입맞춤했다.이 밤, 그들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고 밝은 달빛만이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입맞춤을 하던 두 인영은 자기도 모르는 새 침대에 누웠다.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이었고, 정신은 점점 컨트롤을 잃어 가고 있었다.양준회의 손이 남서훈이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에 가
그는 커다란 손을 들어 남서훈의 이마에 가볍게 한번 툭 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날 속일 수 있어.”양준회가 약간의 책망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하지만 그 말속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흘러넘쳤다.남서훈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풍성한 속눈썹이 그녀의 눈을 전부 가렸다.“서훈아, 나 지금 너무 기뻐.”양준회가 이어서 말했다.그의 어두운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6년 전의 그 사람이 너라는 걸 알게 돼서 너무 기뻐. 난 처음부터 끝까지 너밖에 없었어.”“너는 내 여자고, 나나의 엄마야.”말을 끝마친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맞춤했다. 서로의 호흡이 얽히고설켰다.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알려 주었다.밤은 길었다.남서훈의 고백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숨김없이 서로를 대했다.욕실에서 침대까지…양준회는 드디어 오랫동안 소망했던 것을 이룰 수 있었다.6년 전, 만취했던 그날 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밤과는 다르게 오늘은 모든 것이 또렷했다. 향기로운 약 냄새,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그녀... 몸아래에 있는 그녀...그는 뼛속까지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서훈아…”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녀는 귀가 더욱 빨개졌다.남서훈은 입을 여는 순간 자기의 속마음을 모두 말해 버릴 것 같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이 밤, 모든 것이 그토록 아름답고 완벽했다.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올 무렵, 남서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들 듯 말 듯 했다.“애기야, 씻으러 가야지.”양준회가 그녀를 번쩍 안더니 욕실로 들어가서 그녀를 깨끗하게 씻겨 주었다.그녀가 지쳐서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는 아마 계속해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남서훈을 안은 채 다시 방으로 돌아온 양준회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말려 주었다.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새근거리며 잠든 남서훈을 오랫동안
맹세를 어기면 할아버지는 저승에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남서훈은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맹세가 생각이 났고, 그때의 얘기를 빠짐없이 양준회에게 알려주었다.“저는 맹세를 했었어요.”“준회씨, 만약에 제 목숨을 걸고 한 맹세라면 전 정말 상관없어요. 기껏해야 편히 못 죽는 것뿐인데, 그 정도일 뿐이라면 저도 준회씨와 함께하고 싶어요.”“하지만 할아버지는...”남서훈이 이어서 말했다.“혹시라도 정말 맹세처럼 될까 봐 너무 두려워요.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절 아주 예뻐하셨다고요!”양준회는 남서훈을 이해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그럼 계속 남자로 살아.”남서훈이 그의 곁에만 있어준다면 그는 정말로 상관이 없었다.그렇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남서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자의 신분을 계속 유지했다.그리고 양준회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남서훈을 예뻐하고 애정했고, 둘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이날, 남서훈은 드디어 고독의 제3단계 해독약의 개발에 성공했다.양준회와 남서훈이 함께 강주환은 보러 왔고, 남서훈은 강주환이 제3단계 해독약을 다 먹는 걸 확인하고는 은침을 사용해 그의 몸속의 새끼 독충을 조금씩 몸 밖으로 빼냈다.“우욱...”주환이 피를 토해냈고, 그 핏덩이 속에서 한 마리의 통통한 벌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남서훈이 침으로 벌레를 찔렀지만, 생명력이 완강한 벌레는 고통스러운 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도 쉽게 죽지 않았다.침을 한번 찌르는 거로는 벌레를 죽일 수 없었다.조금만 방심하면 벌레는 바로 기를 써서라도 강주환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할 테고, 혹시라고 다시 들어가면 다시 빼내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봐야 했다.하지만 당연하게도 새끼 독충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남서훈은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알코올을 묻힌 약솜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불이 붙은 약솜을 벌레의 몸 위에 버렸다.그러자 새끼 독충이 더 격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남미자는 이 점을 이용해 언론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Z그룹이 비열한 수단을 이용해 남궁가문을 삼키려고 하네, Z그룹이 M국을 장악하려고 하네, Z그룹의 야심이 어느 정도로 크네... 등등의 내용을 위주로 다루는 기사를 작성했다.이 허위 사실 때문에 M국의 여러 주요 가문들과 중소기업이 두려움에 떨었다.그들은 남궁 가문이 무너지고 나면 다음 타깃이 혹시라도 자신이 되지 않을까 무척 염려했고, 그래서 서로 똘똘 뭉쳐 Z그룹을 적대하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M국의 백성들도 허위 사실에 농락당해 Z그룹에 장악된 M국이 다시 독재 정치를 하지는 않을지, 다시 예전의 봉건 통치제도를 도입하진 않을지 걱정하기 시작했다.그래서 그들은 Z그룹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길거리 시위도 하면서 항의했다.같은 시각, 윤성아는 김은우와 함께 종사에게 잡혀가 행방불명된 상태였다.“하하하...”남미자가 송태성의 보고를 듣고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잘했어! 일이 잘 풀리면 너랑 신명훈 몫은 섭섭지 않게 챙겨줄게. 종사는 큰 공을 세운 거야.”그 말은 들은 송태성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굽신거리는 모양새가 졸개가 따로 없었다.남미자는 송태성의 보고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까먹지는 않았다.그녀는 악독함으로 가득 찬 눈을 하고서는 송태성에게 명령했다.“그 여자를 잘 감시하도록 해.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되고, 도망가게 해서는 더더욱 안 돼!”“다른 건 알아서 해.”“나중에 강주환도 선물해 줄 테니 그놈도 알아서 하고.”명령을 들은 송태성이 자리를 떴다.M국, 어느 무인도.반년 전, 송태성과 신명훈은 이곳을 발견했다.그들은 당시 종사의 보스였던 장만석을 속이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과, 사람을 가두는 용도로 쓸 석실을 지었었다.장만석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 신명훈이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으며 이 무인도도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었다.하지만 지금, 윤성아와 김은우는 바로 이곳에 갇혀 있었다
“…”남미자는 할말을 잃었다.그녀 또한 부하에게서 저택이 모두 포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강주환이 방금 한 말이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젠장!’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당장이라도 기절 할 것 같았다. 남미자는 강주환이 젊은 시절의 남궁태문보다 훨씬 노련하고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남미자는 남궁태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남궁태문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지금 강주환에게서 똑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궁태문의 후손이 진짜로 미쳐 날뛰며 그녀를 박살 낼까 봐 두렵기도 했다.“좋아.”남미자가 동의하며 말했다.“무사하다는 걸 보여줄 순 있어! 하지만 남궁 그룹의 주식이 전부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그녀를 직접 만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전화를 끊은 남미자가 다급하게 송태성에게 전화 걸었다.“그 여자는? 그 여자한테 무슨 짓 한 거 아니지?”남미자의 전화를 받은 송태성은 석실 바깥으로 나오더니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 여자는 은밀한 곳에 갇혀 있어서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 할 거예요.”“그 여자한테 아무 짓도 안 했고요, 그저 몇 번 발로 찬 게 전부예요.”남미자가 다급하게 명령했다.“동영상 찍어서 나한테 보내.”“네, 알겠어요.”송태성이 다시 석실로 들어가더니 묶여 있는 윤성아를 찍었다.“잠깐.”남미자가 다시 분부를 내렸다.“혹시 몸에 상처나 핏자국 같은 게 있으면 다 가려. 동영상 화면에 안 잡히게 해. 알겠지?”송태성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강주환을 협박 할 생각이라면 윤성아가 심한 몰골일수록 효과가 더 좋은 것 아닌가?하지만 그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송태성은 윤성아가 손발이 묶인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동영상을 찍어서 남미자에게 보냈다.남미자는 동영상을 한번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송태성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마지막으로 당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이곳에서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다.“내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저기서 들려오는 강주환과 윤성아의 이름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맞는지 그녀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 그 두 사람이 맞다면? 얼핏 듣기로 윤성아가 납치를 당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이곳을 폭파해 강주환과 윤성아를 죽일 계획이었다.여은진은 윤성아와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윤성아를 좋아하던 원이림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녀는 가슴이 저릿해 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여석진을 향해 말했다.“저기 납치된 사람을 구해야겠어.”“알겠어요.”어릴 적부터 누나가 하자는 대로 따랐던 여석진은 여전히 그녀의 결정에 망설임 없이 곁을 지켰다.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남자들이 폭탄을 땅에 묻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용한 곳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사람이 배를 타고 무인도를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멀어진 배가 보이지 않을 때쯤 여석진은 여은진을 부축하며 걸어 나왔다. 아까 폭탄을 묻을 때 전부 지켜보았기에 그들은 순조롭게 폭탄을 지나치며 석실로 향했다. 두 사람은 두꺼운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세히 주변을 살피던 여석진은 금방 스위치를 찾아냈다. 스위치를 누르자 두꺼운 석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여석진과 여은진은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 있는 윤성아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문을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낮이라 열린 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석실을 환하게 비췄다. “성아 씨, 정말 당신이군요.”윤성아도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았다.“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풀어줄게요.”여은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윤성아를 도와주려고 걸어왔다.“안돼요!”윤성아는 여은진이 석실로 들어설 때 이미 그녀의 배를 보고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제 몸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요. 은진 씨, 빨리
자신들의 딸이 억울함을 당했다는 생각에 여은진의 부모님은 원이림을 찾아 나섰고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F 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원이림은 자주 취한 채로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괴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성아야, 나랑 그 사람한테는 미래가 없어. 그 사람한테도 미안하고 태어나지 못한 우리 아이한테도 너무 미안해.” “돌아와서 그 여자에게 작게나마 보상하고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필요 없어진 것 같아.”여은진과 여석진이 결혼했을 때, 원이림은 더욱 무너졌다. 윤성아는 이 모든 사실을 여은진에게 들려주었고 어두운 눈동자로 여은진을 응시하며 말했다. “은진 씨, 혹시 이림 씨를 향한 마음이 전과 같다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게 어때요?”“그럼 이림 씨도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두 사람도 함께 할 수 있어요.”여은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고집스럽게 키워오던 사랑도 냉담한 그의 태도와 흘러버린 시간으로 인해 이제는 실망감으로 얼룩져 있었다.그녀는 자신을 내던지며 또다시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남자에게서 조금의 사랑이라도 받았더라면 아마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사랑만 바라보는 어리석은 여자가 되기 싫었다. 그녀도 사랑받고 싶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그녀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석진이가 저한테 잘해줘요.”여은진의 담담한 눈동자가 따뜻하게 빛났다. 한편으론 개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는 그냥 제가 고집부렸던 것 같아요. 사실 부모님은 저를 아셨던 거죠. 진즉에 딱 맞는 사윗감을 찾아놓으셨어요.”“지금은 그저 이 혼인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에요.”그녀와 원이림은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결국은 이렇게 지나쳐간 것이다. 여석진은 그녀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었다. 윤성아는 웃으며 축복해주었다. 물론 원이림을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었지만 여은진의 선택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은진 씨, 앞으로 행복하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