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같은 두 눈동자는 물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고 물안개가 낀 듯 몽롱하기도 했다.속눈썹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단발에 맺혀 있던 채 닦지 못한 물방울이 불빛을 받아 반짝이더니,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쇄골로 똑- 떨어졌다. 쇄골에 떨어진 물방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가슴 압박붕대로 흘러 들어가…양준회는 이미 옆방에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책을 뒤적거리던 중이었다.그는 문소리를 듣고는 남서훈쪽을 보았고, 그 순간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감출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그는 쥐고 있던 책을 침대 옆의 탁자 위에 놓더니 몸을 일으키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몇 걸음 만으로 남서훈의 앞에 도착한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서 수건을 뺏어갔다.그는 키가 아주 컸고 남서훈은 고개를 한껏 올려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양준회는 고개를 내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남서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깊은 애정을 담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닦아 줄게.”“…”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가 양준회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치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남서훈의 머릿결을 닦아 주었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남서훈의 머리에 있던 물기는 점점 적어졌다.그러면서도 그는 시종일관 남서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던 남서훈은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눈길을 피했다.“서훈아.”양준회가 잠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그녀가 조막만 한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본 바로 그 순간, 양준회는 그대로 고개를 내리더니 아까부터 그를 유혹하던 입술에 입맞춤했다.이 밤, 그들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고 밝은 달빛만이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입맞춤을 하던 두 인영은 자기도 모르는 새 침대에 누웠다.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이었고, 정신은 점점 컨트롤을 잃어 가고 있었다.양준회의 손이 남서훈이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에 가
그는 커다란 손을 들어 남서훈의 이마에 가볍게 한번 툭 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날 속일 수 있어.”양준회가 약간의 책망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하지만 그 말속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흘러넘쳤다.남서훈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풍성한 속눈썹이 그녀의 눈을 전부 가렸다.“서훈아, 나 지금 너무 기뻐.”양준회가 이어서 말했다.그의 어두운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6년 전의 그 사람이 너라는 걸 알게 돼서 너무 기뻐. 난 처음부터 끝까지 너밖에 없었어.”“너는 내 여자고, 나나의 엄마야.”말을 끝마친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맞춤했다. 서로의 호흡이 얽히고설켰다.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자신이 얼마나 기쁜지 알려 주었다.밤은 길었다.남서훈의 고백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숨김없이 서로를 대했다.욕실에서 침대까지…양준회는 드디어 오랫동안 소망했던 것을 이룰 수 있었다.6년 전, 만취했던 그날 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밤과는 다르게 오늘은 모든 것이 또렷했다. 향기로운 약 냄새,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그녀... 몸아래에 있는 그녀...그는 뼛속까지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서훈아…”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녀는 귀가 더욱 빨개졌다.남서훈은 입을 여는 순간 자기의 속마음을 모두 말해 버릴 것 같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이 밤, 모든 것이 그토록 아름답고 완벽했다.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올 무렵, 남서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들 듯 말 듯 했다.“애기야, 씻으러 가야지.”양준회가 그녀를 번쩍 안더니 욕실로 들어가서 그녀를 깨끗하게 씻겨 주었다.그녀가 지쳐서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는 아마 계속해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남서훈을 안은 채 다시 방으로 돌아온 양준회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말려 주었다.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새근거리며 잠든 남서훈을 오랫동안
맹세를 어기면 할아버지는 저승에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남서훈은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맹세가 생각이 났고, 그때의 얘기를 빠짐없이 양준회에게 알려주었다.“저는 맹세를 했었어요.”“준회씨, 만약에 제 목숨을 걸고 한 맹세라면 전 정말 상관없어요. 기껏해야 편히 못 죽는 것뿐인데, 그 정도일 뿐이라면 저도 준회씨와 함께하고 싶어요.”“하지만 할아버지는...”남서훈이 이어서 말했다.“혹시라도 정말 맹세처럼 될까 봐 너무 두려워요.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절 아주 예뻐하셨다고요!”양준회는 남서훈을 이해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그럼 계속 남자로 살아.”남서훈이 그의 곁에만 있어준다면 그는 정말로 상관이 없었다.그렇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남서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자의 신분을 계속 유지했다.그리고 양준회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남서훈을 예뻐하고 애정했고, 둘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이날, 남서훈은 드디어 고독의 제3단계 해독약의 개발에 성공했다.양준회와 남서훈이 함께 강주환은 보러 왔고, 남서훈은 강주환이 제3단계 해독약을 다 먹는 걸 확인하고는 은침을 사용해 그의 몸속의 새끼 독충을 조금씩 몸 밖으로 빼냈다.“우욱...”주환이 피를 토해냈고, 그 핏덩이 속에서 한 마리의 통통한 벌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남서훈이 침으로 벌레를 찔렀지만, 생명력이 완강한 벌레는 고통스러운 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도 쉽게 죽지 않았다.침을 한번 찌르는 거로는 벌레를 죽일 수 없었다.조금만 방심하면 벌레는 바로 기를 써서라도 강주환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할 테고, 혹시라고 다시 들어가면 다시 빼내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봐야 했다.하지만 당연하게도 새끼 독충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남서훈은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알코올을 묻힌 약솜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불이 붙은 약솜을 벌레의 몸 위에 버렸다.그러자 새끼 독충이 더 격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남미자는 이 점을 이용해 언론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Z그룹이 비열한 수단을 이용해 남궁가문을 삼키려고 하네, Z그룹이 M국을 장악하려고 하네, Z그룹의 야심이 어느 정도로 크네... 등등의 내용을 위주로 다루는 기사를 작성했다.이 허위 사실 때문에 M국의 여러 주요 가문들과 중소기업이 두려움에 떨었다.그들은 남궁 가문이 무너지고 나면 다음 타깃이 혹시라도 자신이 되지 않을까 무척 염려했고, 그래서 서로 똘똘 뭉쳐 Z그룹을 적대하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M국의 백성들도 허위 사실에 농락당해 Z그룹에 장악된 M국이 다시 독재 정치를 하지는 않을지, 다시 예전의 봉건 통치제도를 도입하진 않을지 걱정하기 시작했다.그래서 그들은 Z그룹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길거리 시위도 하면서 항의했다.같은 시각, 윤성아는 김은우와 함께 종사에게 잡혀가 행방불명된 상태였다.“하하하...”남미자가 송태성의 보고를 듣고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잘했어! 일이 잘 풀리면 너랑 신명훈 몫은 섭섭지 않게 챙겨줄게. 종사는 큰 공을 세운 거야.”그 말은 들은 송태성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굽신거리는 모양새가 졸개가 따로 없었다.남미자는 송태성의 보고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까먹지는 않았다.그녀는 악독함으로 가득 찬 눈을 하고서는 송태성에게 명령했다.“그 여자를 잘 감시하도록 해.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되고, 도망가게 해서는 더더욱 안 돼!”“다른 건 알아서 해.”“나중에 강주환도 선물해 줄 테니 그놈도 알아서 하고.”명령을 들은 송태성이 자리를 떴다.M국, 어느 무인도.반년 전, 송태성과 신명훈은 이곳을 발견했다.그들은 당시 종사의 보스였던 장만석을 속이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과, 사람을 가두는 용도로 쓸 석실을 지었었다.장만석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 신명훈이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으며 이 무인도도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었다.하지만 지금, 윤성아와 김은우는 바로 이곳에 갇혀 있었다
“…”남미자는 할말을 잃었다.그녀 또한 부하에게서 저택이 모두 포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강주환이 방금 한 말이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젠장!’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당장이라도 기절 할 것 같았다. 남미자는 강주환이 젊은 시절의 남궁태문보다 훨씬 노련하고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남미자는 남궁태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남궁태문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지금 강주환에게서 똑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궁태문의 후손이 진짜로 미쳐 날뛰며 그녀를 박살 낼까 봐 두렵기도 했다.“좋아.”남미자가 동의하며 말했다.“무사하다는 걸 보여줄 순 있어! 하지만 남궁 그룹의 주식이 전부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그녀를 직접 만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전화를 끊은 남미자가 다급하게 송태성에게 전화 걸었다.“그 여자는? 그 여자한테 무슨 짓 한 거 아니지?”남미자의 전화를 받은 송태성은 석실 바깥으로 나오더니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 여자는 은밀한 곳에 갇혀 있어서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 할 거예요.”“그 여자한테 아무 짓도 안 했고요, 그저 몇 번 발로 찬 게 전부예요.”남미자가 다급하게 명령했다.“동영상 찍어서 나한테 보내.”“네, 알겠어요.”송태성이 다시 석실로 들어가더니 묶여 있는 윤성아를 찍었다.“잠깐.”남미자가 다시 분부를 내렸다.“혹시 몸에 상처나 핏자국 같은 게 있으면 다 가려. 동영상 화면에 안 잡히게 해. 알겠지?”송태성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강주환을 협박 할 생각이라면 윤성아가 심한 몰골일수록 효과가 더 좋은 것 아닌가?하지만 그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송태성은 윤성아가 손발이 묶인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동영상을 찍어서 남미자에게 보냈다.남미자는 동영상을 한번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송태성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마지막으로 당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이곳에서 그는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다.“내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저기서 들려오는 강주환과 윤성아의 이름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맞는지 그녀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 그 두 사람이 맞다면? 얼핏 듣기로 윤성아가 납치를 당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이곳을 폭파해 강주환과 윤성아를 죽일 계획이었다.여은진은 윤성아와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윤성아를 좋아하던 원이림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녀는 가슴이 저릿해 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여석진을 향해 말했다.“저기 납치된 사람을 구해야겠어.”“알겠어요.”어릴 적부터 누나가 하자는 대로 따랐던 여석진은 여전히 그녀의 결정에 망설임 없이 곁을 지켰다.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남자들이 폭탄을 땅에 묻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용한 곳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사람이 배를 타고 무인도를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멀어진 배가 보이지 않을 때쯤 여석진은 여은진을 부축하며 걸어 나왔다. 아까 폭탄을 묻을 때 전부 지켜보았기에 그들은 순조롭게 폭탄을 지나치며 석실로 향했다. 두 사람은 두꺼운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세히 주변을 살피던 여석진은 금방 스위치를 찾아냈다. 스위치를 누르자 두꺼운 석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여석진과 여은진은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 있는 윤성아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문을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낮이라 열린 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석실을 환하게 비췄다. “성아 씨, 정말 당신이군요.”윤성아도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았다.“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풀어줄게요.”여은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윤성아를 도와주려고 걸어왔다.“안돼요!”윤성아는 여은진이 석실로 들어설 때 이미 그녀의 배를 보고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제 몸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요. 은진 씨, 빨리
자신들의 딸이 억울함을 당했다는 생각에 여은진의 부모님은 원이림을 찾아 나섰고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F 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원이림은 자주 취한 채로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괴로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성아야, 나랑 그 사람한테는 미래가 없어. 그 사람한테도 미안하고 태어나지 못한 우리 아이한테도 너무 미안해.” “돌아와서 그 여자에게 작게나마 보상하고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필요 없어진 것 같아.”여은진과 여석진이 결혼했을 때, 원이림은 더욱 무너졌다. 윤성아는 이 모든 사실을 여은진에게 들려주었고 어두운 눈동자로 여은진을 응시하며 말했다. “은진 씨, 혹시 이림 씨를 향한 마음이 전과 같다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게 어때요?”“그럼 이림 씨도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두 사람도 함께 할 수 있어요.”여은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고집스럽게 키워오던 사랑도 냉담한 그의 태도와 흘러버린 시간으로 인해 이제는 실망감으로 얼룩져 있었다.그녀는 자신을 내던지며 또다시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남자에게서 조금의 사랑이라도 받았더라면 아마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사랑만 바라보는 어리석은 여자가 되기 싫었다. 그녀도 사랑받고 싶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그녀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석진이가 저한테 잘해줘요.”여은진의 담담한 눈동자가 따뜻하게 빛났다. 한편으론 개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는 그냥 제가 고집부렸던 것 같아요. 사실 부모님은 저를 아셨던 거죠. 진즉에 딱 맞는 사윗감을 찾아놓으셨어요.”“지금은 그저 이 혼인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에요.”그녀와 원이림은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결국은 이렇게 지나쳐간 것이다. 여석진은 그녀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었다. 윤성아는 웃으며 축복해주었다. 물론 원이림을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었지만 여은진의 선택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은진 씨, 앞으로 행복하
정말 윤성아가 풀려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강하게 들었다. ‘젠장, 송태성은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아무도 모르게 처리한다면서 이렇게 쉽게 풀려날 수 있어?’강주환의 차갑게 비틀린 입술 사이로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살벌한 기세로 천천히 남미자를 향해 걸어갔다. “너...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강주환의 살기에 남미자는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게 점점 뒤로 물러나다 결국 뒤에 있던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강 대표가 그 여자를 구했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M 국 여론은 이미 내 편이야. 내가 이쪽 바닥을 꽉 잡고 있단 말이야.”“강 대표 소문도 안 좋은데 감히 남궁 그룹을 삼킬 생각을 하다니,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하겠어? 아마 야심이 가득한 사람이라 수군대겠지. M 국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될 거야.”“만약 나를 죽이면...”남미자는 불안함에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지루해진 강주환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말을 끊었다.“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을 죽이진 않을 거예요.”그는 그저 이 칠십 먹은 늙은이의 꿈을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남은 생을 교도소에서 살게 할 것이다. 키가 큰 강주환은 남미자를 내려다보며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소문이 안 좋다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한번 핸드폰을 꺼내 지금의 여론 상태를 보시죠.”남미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냈다.포털 사이트로 들어가자 온통 남궁 그룹과 강주환의 이야기로 도배되었다.그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갑자기 열린 남궁 그룹의 기자회견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남궁태문과 오윤미가 같이 나와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어떻게 이럴 수 있어?”남미자는 눈앞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남궁태문은 이미 죽었어.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하지만 남궁태문이 살아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잘살고 있었다. 남궁태문은 기자회견에서 오윤미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