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도 굳이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간 묻게 될 테니.“정말 내 약혼자 맞아?”의문을 품은 그녀의 눈빛이 선우의 눈에 정확히 꽂혔다.이 질문은 좀 의외였던지라 선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상 못 할 질문은 아니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그녀가 바보가 된 건 아니니 말이다.이미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상태에선 맞다고 해도 쉽게 믿진 못할 거다. 오히려 그에 대한 거부감만 커질 뿐.윤아가 기억을 잃은 지금은 선우에게는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기회다.이런 기회를 쉽게 놓아줄 순 없지.“아니야.”선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약혼자라고 한 건 내 사심이었어.”역시나.윤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사심? 그러니까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사귀는 사이 맞아. 다만 아직 내 프러포즈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뿐. 넌 나와 헤어지고 싶어 했어. 그 이유가 뭔지 난 알 수 없지만.”눈을 내리까는 선우의 얼굴에 속상한 기색이 비치였다.그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슬펐으니까.게다가 선우는 사실 윤아와 함께 있었던 그 5년 동안 줄곧 그녀를 애인처럼 생각하고 대했었다.그러니 전부 거짓말인 셈은 아니었다.윤아는 그의 말을 듣고 믿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름의 생각에 빠졌다.그렇게 한참 후, 드디어 윤아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경찰한테 뭐라고 하면 돼?”윤아는 그 정도 도움은 줄 수 있겠다고 판단을 했다. 일단 선우가 그녀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건 믿을 수 있었다. 비록 사심이 넘쳐서 그녀를 옆에 잡아두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그리고 윤아는 줄곧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이곳에 와서부터 계속해야 할 일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만은 뚜렷이 들었다.일단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 경찰 쪽에도 협조하는 수밖에.“간단해. 뭐 특별히 할 말은 없고 그저 묻는 말에
그 말에 두 사람의 의문 가득한 눈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윤아는 들어와서부터 조사과정까지 줄곧 협조적인 태도였다. 묻는 말에 있는 그대로 대답하는 건 물론이고 태도도 좋았다.경찰도 윤아와 그 여대생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니 확실히 접점은 있지만 달리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그런데 그 모든 게 한순간 무너지고 말았다.이제 막 철수하려 할 때 기억을 잃었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경찰이 멀뚱멀뚱 쳐다만 보자 윤아가 말했다.“긴장할 거 없어요. 저 그 사람이랑 친구예요. 협박 같은 것도 받은 적 없고요.”“그럼?”“전 지금 혼란스럽고 모르는 것투성이예요. 그러니 절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_한편, 선우는 몇 명 사람을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생각보다 오래 이어지는 심문에 기다리다 못한 선우의 부하 중 한 명이 물었다.“대표님. 윤아 아가씨가 경찰과 이렇게 오래 함께 계시게 해도 됩니까?”선우는 대답이 없었고 그의 침묵은 옆 사람을 더더욱 안달 나게 했다.“대표님. 윤아 아가씨께서 혹시나...”“뭘 그리 조급해해요?”선우는 그를 힐긋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시다니.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건가? 하긴 이곳 사람 중 윤아 아가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대표님이실 테니. 별일 없겠지.’부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는 너무 긴장한 모양이다.그가 아직 생각에 잠겨있는데 마침 문이 열리더니 경찰이 걸어 나왔다.그는 선우보다 한발 앞서 경찰을 맞이했다.“두 분 수고가 많으십니다. 조사는 잘 되었습니까? 제가 말했잖습니까. 그 여대생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일 거라고요. 윤아 아가씨가 저희 대표님과 몇 년 지기 친구인데 납치라뇨?”두 경찰은 잠깐 눈을 맞췄다.비록 윤아가 지금 기억을 잃은 상태지만 선우와 오래된 친구라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그녀를 구해준 것도 선우이고 가장 좋은 병원 VIP 병실에서 치료를 받게 해주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납치 같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윤아는 선우와 마침 눈이 마주쳤다.윤아는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아 있음을 느끼며 입을 뗐다.“경찰한텐 내가 아는 대로 다 말했어.”꼭 네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것 같이 들리는 그녀의 말.선우는 입술을 앙다물었다.“잘했어.”그 말에 윤아가 되물었다.“칭찬 받은 건가?”“응. 맞아.”“그럼 상도 받아야겠지?”윤아가 다시 물었다.그러자 선우는 입술을 깨문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뭘 원하는데?”“밖에 나가고 싶어.”선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윤아는 말을 보탰다.“혼자서.”그 말에 선우는 수락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 윤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넌 지금 기억을 잃어서 혼자는 위험해.”“기억을 잃은 거지 지력을 잃은 건 아니잖아. 위험할 게 뭐가 있어?”“넌 여기 길도 모르잖아.”“요즘은 내비게이션 다 있어서 그거 쓰면 돼.”그러나 선우의 대답은 여전했다.“안 돼.”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내비게이션 쓴다 해도 밖은 위험해. 너 기억 잃은 뒤로 여기가 익숙하지도 않고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까.”“고민환 씨가 날 따라다니는 게 감시랑 뭐가 달라?”“그 사람이 싫으면 내가 같이 가줄게. 어딜 가보고 싶은데?”선우와 함께 가나, 고민환과 함께 가나 그게 그거지.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이선우라고 했지?”그녀는 선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그저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싶다는 건데 왜 이리 겁을 먹어? 혹시 약혼자라는 것 말고도 나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거야?”윤아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선우는 담담했다.“없어. 그것 말고 다른 건 모두 진짜야. 너 혼자 나가게 하지 않는 이유는 너도 알 거야. 난 네가 걱정돼. 그러니 고민환이 싫다면 나라도 함께 가게 해줘. 그것도 싫다면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 한 명을 골라 데리고 나가도 좋아. 어쨌든 네 곁에 누군가 한 명은 꼭 있어야 해.”그의 강경한 태도에 윤아는 혼자 밖에 나가는 건 힘들 것 같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다행히 그녀의 계
게다가 애인 사이라기엔 선우가 그녀를 대하는 게... 진짜 연인들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윤아는 그와의 작은 터치도 조금 불편하다고 느껴졌으니 말이다.“응. 알겠어.”윤아는 자기 또래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을 택했다. 그녀는 이 별장의 유일한 동양인인 데다가 키도 윤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고민환은 그 일을 알게 된 후 선우에게 곧장 이의를 제기했다.“대표님. 윤아 아가씨가 고른 저 여자는 이 별장에서 체구가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윤아 아가씨와 동행했다가 괜히...”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우가 싸늘하게 그를 흘겨봤다.“내가 고르라고 했어. 문제 있나?”그의 눈빛에 민환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났다.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우가 부드럽게 온화한 선비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가 사람 목숨을 돌같이 보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할 것이다.그 여자가 아마 선우가 인내심을 발휘하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민환은 선우를 말리고 싶었지만 그의 냉담한 태도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이윽고 선우의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현수아는 인정했나?”현수아란 말에 민환이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아뇨. 윤아 아가씨를 민 적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허.”선우가 코웃음을 터뜨렸다.“아니다? 그래서 넌 그날 못 봤고?”그러자 민환의 안색이 변하더니 잠시 머뭇대다 말했다.“대표님. 수아 아가씨 잘못도 있다지만... 지금 이 상태도 나쁘지 않지 않습니까? 윤아 아가씨가 기억을 잃은 것이 어쩌면 대표님께는 더 유리한 상황이니까요.”그의 말이 끝나자 싸늘한 냉기가 그들 주위를 감돌았다.“기억을 잃은 게 나한테 유리하다? 그래서?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어디 잘못되기라도 했다면?”윤아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차디찬 바닥에 쓰러져있을 때 선우가 그녀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누군들 가늠할 수나 있을까. 지금은 그저 기억을 잃은 것뿐이지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면 선우는 후회의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그
하지만 그를 다시 고용하는 대신 전에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우진도 선우가 자신을 다시 불러올 줄은 몰랐다.윤아의 일을 들은 후 사실 그도 매우 걱정했다. 하지만 선우 쪽에서는 그는 이미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 아무리 걱정해도 당분간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그는 이렇게 포기하지 않았고 요 며칠 동안 줄곧 몰래 수단을 취했다.이럴 때 선우가 다시 연락할 줄은 몰랐고 더군다나 윤아의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윤아는 지금 기억이 없어요. 곁에서 보호해 주세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본인도 알겠죠?”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앞에 서 있었다.“윤아 님 이제 기억도 잃었는데 대표님은 여전히 그만두실 생각이 없는 거죠?”그 말에 선우는 눈을 붉히며 사납게 떨었다.“제가 진 비서를 다시 부른 건 윤아를 지키라고 한 겁니다.”“보호는 할 수 있지만 24시간 지켜볼 수는 없어요. 저희 눈에 닿지 않는 다른 모든 시간에도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진 비서는 해야 할 일만 잘하세요.”“대표님. 예전에 윤아 님에게 잘 대해주셨던 때가 있으니 윤아 님의 성격으로 보아 지금 그만두신다면 앞으로 기억을 되찾더라도 화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우진은 이런 상황에서도 최대한 선우가 그만둘 수 있도록 설득하려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은 통하지 않았다. 선우는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냉소를 지으며 할 일을 맡기고 떠났다.우진은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선우의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안 되는 건가?’사실 그는 산우가 윤아에게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녀가 털끝 하나라도 다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그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윤아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_ 윤아는 그 동양 얼굴의 사람을 고른 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그 여자 이름은 허정윤이고 윤아보다 몇 살이나 어렸
그러나 정윤의 생각은 남들과 달랐다. 그녀가 이곳에서 일해본 바로는 무서운 걸 따지자면 역시 이선우가 더 무서웠다.그런 선우를 안심시킬 수 있는 여자는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윤아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냥했고 따뜻했다. 하지만 가십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아직은 무서움을 피할 수 없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후에 어디 좀 둘러볼까 하는데, 이 근처를 잘 알아요?”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잘 알고 있어요. 저는 이 근처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이든 함께 가요.”“고마워요.”정윤은 짐을 싸러 가는데 윤아는 정리할 게 없어 핸드폰만 들고 외출하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본 정윤이 대신 걸칠 외투와 장갑, 모자와 마스크를 챙겼다.“오늘 일기예보는 맑음이었지만 제가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언제 갑자기 눈이 올지 모르는 곳이에요. 춥지 않게 장비를 잘 갖추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윤은 윤아에게 모자와 장갑을 끼게 한 뒤 목도리를 매주었다.거울을 보니 윤아는 두꺼운 옷에 둘둘 둘려 만두 같은 모양새가 되어있었다.“고마워요.”정윤의 행동은 선우도 만족스러워했다. 잘 챙기라고 미리 말해뒀지만 정윤은 그의 예상보다 더 잘해주었다..“나갈 때 같이 가줄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떠날 준비를 하던 윤아는 난데없는 소리에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지금 결정을 번복하는 거야? 한 명만 데리고 나가게 해준다더니. 인제 와서 한 사람을 더 붙인다고?’윤아의 표정은 눈에 보일 정도로 안 좋아졌다.선우는 그런 윤아를 보며 한숨만 쉬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아는 분이실 거예요.”‘아는 사람?’윤아는 의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기억을 잃은 그녀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내가 데려다줄게. 직접 봐.”그때, 선우가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고 데리고 나갔다.윤아가 그를 따라 문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문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똑똑히
우진을 보고도 반항하지 않는 윤아를 보며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조금 씁쓸하긴 했다. 기억을 잃어도 무의식중에서는 우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진 비서도 같이 가게 해줘. 응?”입술을 오므리고 정신을 차린 윤아는 눈앞의 우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그럼 계속 따라다닌다고? 내 쇼핑에 방해가 될 것 같은데.”“아냐. 그때 가서는 멀리하라고 할게. 그래도 너랑 같이 다니는 건 저 여성분이야.”윤아는 그제야 대답했다.준비를 마친 후 그들은 각자의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정윤과 우진이 곁을 지켰기에 선우는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너무 오래 있지 말고 일찍 들어와.”선우의 당부에 윤아도 알았다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차에 오른 윤아, 그녀의 시선은 옆에 있는 정윤을 스쳐 침묵하는 우진, 그리고 운전석의 기사에게 이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원래는 혼자 나오려고 했는데 결국 그녀까지 포함해서 4명이 외출하게 되었다.윤아는 어이가 없는 상황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정윤이 데리고 간 곳은 근처 그리 멀지 않은 쇼핑센터였다. 안에는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윤아 님. 대표님이 나가기 전에 사고 싶은 건 마음껏 사라며 이 카드를 주셨어요.”윤아는 물건을 살 생각이 없어 그리 기쁘지 않았지만 정윤이 신나서 말하니 습관적으로 대꾸해주었다.“그래요.”다행히 운전기사는 운전만 할 뿐 함께 마트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의 곁에는 정윤만 따라다녔다. 그리고 진우진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따라다녔다.잠시 둘러본 뒤 윤아는 정윤에게 말했다.“배고파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아.”그러자 정윤이 곧바로 말했다.“그럼 3층으로 올라가실래요? 저기 맛있는 게 많아요.”“미안한데 지금은 갈 힘이 없어요.”말을 마친 윤아는 근처 벤치에 앉았다.정윤은 윤아가 갈 생각을 않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다.그때, 윤아가 말했다.“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길가에서 누가 먹거리를 파는 것 같았는데 그게 뭐죠?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은 몰랐는데. 윤아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바로 입을 열었다.“저랑 아는 사이죠? 제가 누구인지도 알고요.”우진은 그녀가 그렇게 물을 줄 몰랐다는 듯 어리둥절해 하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억을 잃었는데 선우가 나더러 약혼녀래요. 사실인가요?”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선우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윤아는 이미 기억을 잃었고 선우는 그녀를 그의 곁에 두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말한 것도 영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긴 했다.게다가...우진은 눈을 들어 윤아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표정을 보니 아닌가 봐요?”우진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의 눈빛만 봐도 윤아의 말을 묵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이 질문으로 윤아는 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우진이 자기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선우 편은 아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약혼녀에 관해 물었을 때 바로 그렇다고 말했을 거다.어차피 그녀는 지금 기억이 없는 상태이니.생각 끝에 윤아는 다시 물었다.“아까 왜 미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셨어요? 저한테 미안할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그러자 우진은 고개를 들며 여전히 그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해줘요. 곧 정윤 씨가 돌아올 거니까.”그가 항상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자 윤아는 소리 내 주의를 시킬 수밖에 없었고 어찌 보면 그를 재촉한 셈이었다.역시 그렇게 말하자 우진도 모처럼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하게 말을 짜내었다.“윤아 님.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세요?”멍해진 윤아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말했다.“제가 뭘 기억해야 하는 거죠?”“정말 모든 걸 잊은 거예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그의 말을 들은 윤아는 무의식적으로 생각에 잠겼다.‘중요한 거?’그녀의 모든 기억은 정말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았다.하지만 잊고 싶지 않은 중요한 거라면 한 가지 있긴 하다.그게 무엇인지 그녀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