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입술을 앙다문 채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윤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윤아는 하는 수 없이 힘으로 손을 빼는 수밖에 없었다.수현이 어딘가 상처받은 듯한 눈빛으로 윤아를 바라봤다.“...”윤아가 계속 손을 빼고 있는데 주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수현 씨, 윤아 씨, 우리는 비행기 타러 가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이 말을 뒤로 주한은 자기와 악수해준 현아의 손을 고쳐잡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어어...”현아는 주한에게 이렇게 끌려갈 줄은 몰랐기에 당황하다가 이내 반응하고는 윤아에게 말했다.“윤아야, 그럼 귀국하면 보자. 일 처리 끝나면 찾으러 갈게.”윤아가 현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래, 귀국해서 보자.”현아는 그렇게 주한에게 끌려갔다.그리고 남은 건 수현과 윤아뿐이었다.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제 갔는데 이거 놓지?”이를 들은 수현이 고개를 숙여 맞잡은 두 손을 보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놓긴? 사람들 있어야 잡을 수 있는 거야?”윤아도 꼭 잡은 두 손을 보고는 한참 침묵하더니 말했다.“고작 악수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호들갑 떨어야지.”수현은 윤아를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난 다른 남자가 너 건드리는 거 싫어.”윤아가 강조했다.“그건 건드리는 게 아니라 예의상 하는 악수야. 그건 건드리는 범주에 속하지 않아.”하지만 수현은 여전히 굽히려 하지 않았다.“그래도 안 돼. 악수하는 것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야.”“...”윤아도 더는 입씨름할 힘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이때 수현이 윤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이 비서가 그러는데 선우에 관해서 물어봤다며.”이를 들은 윤아가 멈칫했다. 수현이 아는 게 싫어서 민재에게 확인한 건데 민재가 돌아서자마자 수현에게 보고할 줄은 몰랐다.그러니 지금 수현이 이렇게 그녀에게 확인하는 것이다.앞뒤로 지난 시간이 겨우 한 시간도 되지 않을 것이다.“이럴 줄 알았으면 안 물어보는 건데. 이렇게 바로 일러바친다고? 그
윤아는 선우도 자기를 납치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수현의 말을 듣고 많이 놀랐지만 이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이렇게 계속 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세상에 만약이 어디 있어. 수현 씨가 예로 든 상황은 아예 말이 안 되잖아.”윤아의 대답에 수현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상황이 말이 안 되는 건 맞지만 넌 아예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하잖아.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그 답이 맞다 거나.”이에 윤아가 입을 앙다물었다.머릿속에 그 장면을 떠올려봤다. 수현이 그녀와 아이들을 납치해 앞으로 그의 옆에만 있으라고 한다면 그게 수현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누구든, 얼마나 친한 사람이든 윤아는 법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수현이 상처 받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수현 씨가 생각한 그대로야. 만약 수현 씨가 나를 납치했다면 당신 곁에 남아있지는 않았겠지.”수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하지만 당신 곁을 떠난다 해서 선우 곁으로 가는 건 아니야. 당신 곁에 남는 전제는 내가 원해서지 강박은 절대 용납 못해.”이미 알아듣게 잘 얘기했으니 앞으로 수현이 어떻게 생각하든 수현의 일이다.윤아도 더는 수현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혼자 남겨두고 돌아섰다.윤아가 나가도 한참이 지나서야 수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충동을 못 이기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챘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후회되기 시작했다.이성을 잃고 할 말 못 할 말 다 한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얼른 윤아를 따라나섰다.다행히 윤아는 멀리 가지 못했고 수현은 몇 걸음 만에 따라잡아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그녀를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미안해.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어. 화내지 마.”윤아는 그를 밀쳐냈다. 그러다 상처를 건드렸는지 수현이 신음했다.순간 급해서 수현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잠깐 깜빡한 윤아는 얼른 하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괜찮아?”수현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
핸드폰을 뺏긴 윤아는 어쩔 바를 몰라 했다.뺏자니 그러다 상처가 더 찢어질까 봐 무서웠다.“벌은 무슨 벌? 말을 잘못했다고 해도 상처랑은 상관 없어.”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말하든 수현은 들리지 않는 듯 어떻게든 자기를 벌 주려고 했고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수현을 보고 윤아는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다른 방법으로 벌받으면 되지.”다른 방법?끝내 수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그럼 말해 봐. 어떻게 벌 줄 건데?”윤아는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말했다.“벌 줄 방법은 많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상처 다 나으면 그때 보자.”“그럼 벌 주고 나면 나 용서해줄 거야?”“그것도 그때 가서 보고.”오늘 수현이 한 말은 정말 윤아를 화나게 했다.이를 들은 수현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핸드폰 이리 줘. 의사 선생님께 상처 다시 처치해달라고 할 거야.”한참 침묵하던 수현이 끝내 윤아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윤아는 핸드폰을 건네받더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나 끼어드는 바람에 현아를 데려다주지도 못했다.하지만 현아의 곁에 주한이 있으니 윤아가 걱정할 건 딱히 없었다.전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달려와 수현의 상처를 다시 치료해 주었다.상처를 처치하면서 의사는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 상처 어떻게 된 거예요? 이미 어제 다 낫지 않았어요? 왜 오늘은 상태가 더 심각해 보이죠?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옆에 서 있던 윤아는 할말을 잃었다.오히려 수현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실수로 부딪혔어요.”이를 들은 의사가 약간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진수현 씨, 이 상처... 치명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함부로 장난할 정도는 아니에요. 조심히 잘 다뤄야지 이러다 다른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진수현 씨는 본인 몸이라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윤아 씨는 어떡해요? 자녀분들은 또 어떡하고요?”이 말에 수현은 어떤
수현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봤다.“힘든 게 아니라 수현 씨도 다쳤으니까 쉬어야 할 거 아니야.”“그렇긴 하지.”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근데 네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윤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제 밤새 같이 있었잖아.”여기서 계속 수현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겐 돌봐야 할 아이들도 있었다.“공주.”수현은 윤아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나 환자야. 옆에서 오랫동안 보살펴줬으면 좋겠어.”화윤아가 반박하지 않자 수현은 아예 그녀를 끌어 다리 위에 앉히더니 자연스럽게 허리를 휘감았다.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미 수현의 품에 안겨 있었다.수현은 고개를 숙여 머리를 윤아의 어깨에 파묻더니 게걸스럽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체취를 갈구했다.날숨으로 뿜어내는 뜨거운 기운이 빠짐없이 윤아의 어깨로 향했고 원래도 민감한 윤아는 이에 온몸을 몇 번 부르르 떨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드러운 입술을 그녀의 목에 갖다 댔다. 촉촉한 느낌에 윤아는 화들짝 놀라더니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그를 밀어냈다.“하지마...”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던 윤아의 손은 하마터면 수현의 상처를 다시 건드릴 뻔했고 이에 윤아는 그와 살이 닿자마자 바로 아래로 손을 뻗어 그의 아랫배를 쿡쿡 찔렀다.“읍...”상처를 건드린 건 아니지만 윤아가 건드린 위치에 수현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뱉어냈다.이 소리는...윤아는 듣자마자 바로 귀가 빨개졌다.“수현 씨... 그런 소리는 왜 내는 거야?”하지만 수현은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 불을 지르는 윤아의 손을 덥석 잡더니 못 견디겠다는 말투로 말했다.“내 탓인가? 네가 손을 아무렇게나 놓지 않았으면 내가 이러겠어?”윤아는 놀라기도 했고 약도 올랐기에 얼른 팔을 거두었다.수현은 빨개진 윤아의 귀를 보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왜? 쑥스러워?
수현은 윤아에게 우진의 상태까지 포함해 다 조사해 보겠다고 했다.수현 쪽 사람은 일 처리가 매우 빠른 편이었다.이튿날 윤아는 바로 선우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선우도 다쳤고 우진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했다.“행방이 묘연하다고?”윤아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에 선우 쪽에 있을 때도 우진은 연속 며칠 보이지 않다가 윤아가 근황을 물어서야 나타났고 나타났을 땐 이미 심한 상처를 입은 뒤였다.문제는 얼마나 다쳤는지, 어디를 다쳤는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우진의 옷을 벗기고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거기다 윤아를 풀어주려고 데리고 나오기까지 했으니 돌아가도 선우가 절대 가만둘 리가 없다.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다.선우도 다친 마당에 모든 화를 우진에게 쏟은 건 아닐까?게다가 여긴 외국인데 그러다...무시무시한 가능성이 떠올라 윤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수현이 윤아의 손을 꼭 잡아주더니 말했다.“일단 진정해.”수현의 말에 윤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흥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도울 수 있는 게 뭘까?“그럼 지금은... 어떡하지?”윤아는 수현의 생각을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수현은 입을 앙다물더니 말했다.“진우진 씨가 당신을 도왔으니 나를 도운 거나 마찬가지야. 걱정하지 마. 구해낼 방법은 내가 생각해 볼게.”민재도 옆에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래요, 윤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계속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윤아는 그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부탁드릴게요.”...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그들에게서 우진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말이다.윤아는 그런 우진이 너무 걱정되어 밥도 잘 먹지 못했다.5년간 우진이 그녀의 뒤를 따르던 게 생각났다.“윤아님, 대표님이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퇴근하세요?”“윤아님, 대표님이 부탁한 물건이 있는데 시간 될 때 가져다드릴까요?”“윤아님, 이건
이를 들은 민재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윤아님.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무소식이 제일 좋은 소식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계속 알아볼게요. 그러다 기회 봐서 구해내도록 노력도 해볼게요. 온 힘을 다해 찾아내겠다고 약속해요.”두 사람이 윤아를 애써 다독였지만 윤아의 기분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창가에 기대 조용히 먼 곳만 바라봤다.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본인의 템포에 맞춰 잘 살아갈 수 있었는데 왜 갑자기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지 모르겠다.“엄마, 왜 그래요?”두 녀석의 목소리에 윤아가 사색을 멈추었다.정신을 차려보니 두 녀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하윤아, 서훈아.”두 녀석은 동시에 윤아에게 기댔다.“엄마, 요새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하긴 이미 거기서 탈출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 걸까? 아마도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하지만 아이들 앞이라 윤아도 너무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아니야. 그냥 생각에 잠겨서 그래.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야. 아이고, 내 새끼들, 걱정했구나?”두 녀석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대꾸하지 않았다.하윤이 오히려 더 바짝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엄마, 우리 앞으로 선우 아저씨 못 보는 거야?”갑자기 들어온 물음에 윤아가 멈칫했다.“뭐?”윤아는 이 질문에 마음이 철렁했다. 아이들이 먼저 선우의 이름을 꺼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하윤은 윤아가 대답 대신 되물어보자 혹시 잘 안 들린 줄 알고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엄마, 우리 앞으로 선우 아저씨 못 보는 거예요? 선우 아저씨가 엄마한테 뭐 잘못한 거 맞죠?”“...”윤아는 자신에게 기대있는 하윤을 보며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서훈은 하윤보다 눈치가 빠른지라 하윤이 질문을 다시 한번 반복하자 얼른 하윤을 잡아당겼다.“하윤아, 엄마 일은 인제 그만 물어보자
윤아의 설명을 들은 두 아이는 선우가 지금 아프고, 곧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까지도 선우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선우 아저씨였다.이 소식을 들은 후, 두 아이의 기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때 마침 수현이 오자 두 아이는 수현에게 매달렸다. 물론 두 꼬마가 수현을 부르는 호칭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고독현 밤’ 아저씨라고 불렀다. 훈이는 괜찮지만, 윤이는 해맑게 수현에게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윤이가 안아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수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윤아는 다급히 다가갔다.“윤이야, 아저씨 다쳤잖아.”윤아의 말 한마디에 윤이는 동작을 멈추고 수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을 얼른 거두었다. 갑자기 멈춰 서서 말을 하지 않더니 수현이 닿지 못하도록 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윤이의 모습에 수현은 경악했다. 잠시 후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작은 상처일 뿐이야. 그리고 윤이가 작아서 내 상처에 데미지 안 줄 거야.”하지만 윤아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안돼. 윤이는 장난이 심하고 가만히 못 있잖아.”비록 윤이가 무겁지 않지만 안고 있으면 무게가 꽤 나간다. 게다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다가 상처를 건드리면 어떡해?요즘 잘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처가 깊어서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매우 아플 것이다.윤아의 말을 들은 윤이도 더 이상 수현에게 안아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오히려 수현이 계속 괜찮다고 하자 윤이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이제 상처가 다 나으면 안아주세요.”수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허탈해했지만, 마지못해 말했다. “알았어. 며칠 후에 다시 안아줄게.”비록 두 사람이 수현을 부르는 호칭을 아직 바꾸지 않았고 아마 친아빠인 줄도 모르겠지만 수현은 늘 자기 아들, 딸과 가까이 하려고 했다.윤이는 적극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반면 훈이는 달랐다. 이 생각에 수현의 시선은 훈이를 향했다. 훈이의 경계심이 수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
“훈이는 아저씨가 너랑 윤이의 아빠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수현은 훈이가 원하느냐가 아니라 본인의 자격이 충분한지 물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똑똑한 훈이는 곧 수현의 말뜻을 이해했다. 한참 동안 멍해 있던 훈이가 대답했다 “그건... 엄마가 동의하시는지 봐야죠.”“아저씨의 뜻은, 엄마가 아니라 너 자신만 볼 때 아저씨가 너랑 윤이의 아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거야. 아저씨는 네 가장 솔직한 생각이 궁금해.”훈이는 말이 없었다.“두려워하지 마.”수현은 훈이의 어깨에 큰 손을 얹으며 모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을 말하면 돼.”비록 그동안 고독현 밤 아저씨가 많은 것을 해주고 항상 라이브까지 보러 오곤 했지만 훈이가 하려는 말은 아마 수현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다. ‘고독현 밤'이라는 이름은 두 어린아이에게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낯선 사람, 설령 그들의 친아빠라고 할지라도, 만약 ‘고독현 밤'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빨리 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아니, 큰 거리감이 있었을 것이다.거리감이란, 아주 치명적인 것이고 습관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치 두 아이가 매번 라이브 때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독현 밤이라는 남자가 달려와 그들의 라이브를 보고 선물을 주는 것에 익숙해진 것처럼. 아이들은 이미 생활에 고독현 밤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그래서 당시 수현이 고독현 밤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두 녀석의 마음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했다.하지만 그렇다고 쳐도...훈이는 그래도 고개를 가로저었다.“고독현 밤 아저씨, 솔직하게 말하면 안 돼요.”답은 수현의 예상대로였다.훈이가 안 된다고 말 할 것을 예상한 듯 수현의 마음속에는 실망이나 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훈이를 담담히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저씨가 뭘 더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어?”그 말은 들은 훈이는 수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