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들어온 가정부와 서시언이 동시에 물었다.“무슨 일이야?”서시언은 얼른 달려가서 신세희의 상황을 살폈다.“세희야, 누군데 그래? 누구랑 싸웠어? 놀랐잖아. 문밖에서 네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어.”서시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세희를 바라보았다.반호영이 물었다.“누가 왔어?”“우리 오빠.”“7년 전에 네 인생을 망칠 뻔한 그 자식?”반호영이 물었다.신세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오빠는 날 망친 적 없어. 그런 말하지 마.”“그 인간은 뭘 하지 않았지! 그런데 널 망칠 뻔했던 그 조의찬이 그 인간 친구잖아! 그 인간도 쓰레기야! 그 두 놈만 생각하면 부소경이 더 미워! 7년 전에 너 부소경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어? 남성 사람들이 너만 비난할 때 부소경은 널 지켜주지도 않았잖아!”“너 이번에도 임신했으니 그 인간은 예전과 똑같게 할 거야! 태어나기를 냉혈인간으로 태어난 놈이라니까?”“그냥 나가서 죽어!”옆에 있던 서시언이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 욕설을 퍼부었다.반호영은 순간 당황한 듯 말이 없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넌 또 누구야?”“나 세희 오빠야!”“서시언? 그 바람둥이?”반호영은 비아냥거리듯 물었다.서시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마음대로 떠들어! 하지만 세희 쉬는 거 방해하지 마! 다시는 전화 걸어서 기분 잡치게 하지 말라고! 지금 세희가 임신하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도주 생활하면서 몸이 많이 약해져서 힘들게 임신했단 말이야!”“유산기가 있어서 몇 달을 침대에서만 지냈어! 정말 세희를 생각한다면 이 상황에서 세희 자극하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임산부는 안정이 중요한 거 몰라?”“모르면 내가 지금 알려줄게! 경고하는데 앞으로 세희 자극하지 마!”서시언에게는 오늘이 정말 기분이 최악인 날이었다.성유미를 만나고 많이 털어냈지만 그래도 큰 상처였기에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그런데 이 순간에 반호영이 자꾸 신세희를 자극하는 말을 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반호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서시언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시언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씩씩거리며 신세희에게 말했다.“앞으로 저 인간 전화는 그냥 받지 마! 그냥 차단 해! 국내 번호도 아니고 딱 보면 알 수 있잖아? 왜 전화를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아?”신세희는 반호영이 부소경의 쌍둥이 동생이라서 그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반호영은 그녀가 존경하는 하숙민의 또다른 아들이었다.죽을 때까지 막내아들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하고 간 게 한이었을 하숙민이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부소경처럼 단호하고 냉철한 남자도 계속 동생에게 양보하고 관용을 베풀었다.그녀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반호영을 단호하게 내칠 수 없었다.하지만 이런 말을 서시언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아까… 반호영한테 한 말 뭐야? 남자구실을 못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오늘 가희 씨랑… 혼인신고하러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 가희 씨는?”사실 최가희가 서시언과 함께 오지 않았다는 것 하나로도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직접 듣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싫었다.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시언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가 답이 없자 눈물을 흘렸다.“오늘 병원에 건강검진도 간다고 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거야?”서시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고개를 돌리자 신세희가 탁자에 준비해 둔 흑요석 귀걸이가 보였다.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희야, 저 귀걸이 최소 10억은 하지 않아? 저거 소경이 형이 알프스산맥에 갔다가 가져온 원석인 걸로 기억하는데?”“오빠!”“그래도 돈 굳었네! 10억짜리 귀걸이는 그냥 네가 간직하고 있어. 나 가희랑 헤어졌어.”“오빠….”세희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화가 났다.“오빠,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오빠가 왜 남자구실을 못해? 오빠 혹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거야? 의사한테 직접 들었어? 이거 때문에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눈물을 흘리는 신유리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부소경이었다.신유리는 문이 열리자마자 서시언의 품에 안기며 엉엉 울었다.“삼촌, 미안해….”부소경도 서시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나도 다 알고 왔어.”서시언이 물었다.“뭘 다 알았다는 거예요?”“오늘 오후에 최가희가 갑자기 사표를 냈어. 이번 달 급여도 포기하겠다면서 말이야.”“엄선우가 왜 갑자기 그러냐고 말리니까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그 여자가 피식 웃더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평생 산 과부로 살 수는 없다는 거야!”부소경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시언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의사는 뭐래? 정말 평생 완치될 수 없는 거야?”부소경 일가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서시언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형, 저 정말 괜찮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그때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그랬잖아요.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요.”“그때 휠체어 생활할 때도 결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아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죠. 이젠 다리 나으니까 괜한 욕심이 생긴 거죠.”“지금 생각해 보면 세희나 유리나 나나 셋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축복이에요. 세희는 둘째를 가졌고 저는 걸을 수도 있게 됐잖아요. 그리고 원래 내 것이었던 회사도 되찾았고요. 이 정도면 완벽한 인생이죠. 괜찮아요.”“혼자 사는 게 더 자유로울 수도 있잖아요!”부소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널 치료해 줄 의사를 찾아 볼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형….”서시언은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신유리도 서시언을 붙잡고 울며 말했다.“삼촌, 걱정하지 마. 앞으로 더 좋은 여자친구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최가희는 원래 이기적인 여자였던 거야! 감히 우리 삼촌을 내치다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어린 아이는
그리고 남은 한몫은 여동생에게 주기로 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친동생이 나중에 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고 신세희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었다.‘이렇게 분배하면 안 되겠는데?’서시언은 밤새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 고민하다가 잠들었다.그날 밤, 그는 생각과 다르게 편하게 잠을 잤다.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그는 잠에서 깼다.어제보다 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대충 아침을 챙겨 먹은 뒤,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성유미의 병실은 텅 비어 있었다. 서시언은 화들짝 놀라며 바로 담당 간호사를 호출했다.간호사도 당황한 표정이었다.환자는 어디 갔지?그리고 이때, 성유미의 이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왔다.“이모님, 유미 누나는요? 아직 퇴원할 시기가 아닌데 어디 갔어요?”서시언이 물었다.사실 답은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최가희가 서시언의 돈을 많이 썼다고 미안함을 느낀 성유미가 더는 부담주지 말아야겠다고 독단적으로 퇴원한 게 틀림없었다.이모님이 울며 말했다.“서 대표, 난 유미를 말렸는데 유미가 꼭 가희를 찾아가야겠다고 하면서 나갔어요. 가희는 유미 말 듣지 않는데도 꼭 설득해서 대표님 돈이라도 돌려줘야 한다면서요. 대표님께 너무 미안하다며 아침에 나갔어요.”“그런데 가희가 과연 유미 말을 들을까요? 아직 뼈 부러진 거 제대로 붙지도 않았는데…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이모님은 구슬피 울었다.서시언도 조바심이 나서 이모님에게 다급히 물었다.“이모님, 그래서 유미 누님은 가희 만나러 어디에 가신 건가요? 집에 갔나요?”어르신은 멍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병원을 나가자마자 택시 타고 가버려서 어딜 갔는지는 나도 몰라요. 우리 유미 좀 도와주세요. 가희가 유미 딸이긴 한데 걔는 엄마를 인정하지도 않잖아요. 유미가 혹시라도 가희 만나고….”노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서시언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최가희는 친모인 성유미를 법정에 기소하겠다는
최가희도 손이 아픈지 인상을 쓰고 손을 문질렀다.그러더니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유미를 노려보았다. 그녀에게 성유미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악녀였다.최가희는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성유미! 이 뻔뻔한 여자야!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귀뺨 좀 때린 게 뭐? 누가 뻔뻔하게 나 찾아와서 훈수 두래? 성유미, 기억해!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야! 영원히 인정 못해! 평생 당신 안 만나고 싶어!”“그리고 내가 그 고자한테 왜 돈을 돌려줘야 하지? 당신도 그 고자가 마음에 들어? 호감이 없는데 왜 돈을 돌려주라고 하냐고? 그 멍청한 자식도 돈 돌려달란 말은 안 했는데 왜 당신이 집까지 찾아와서 이 난리냐고!”“성유미 당신이 뭔데?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명령해? 아빠 말이 틀린 것 하나 없어!”“당신은 그냥 싸구려야! 여우년이라고! 남자만 보면 다리 벌리기 급급하지? 내 남자친구였던 사람도 막 눈독 들이고? 정말 뻔뻔해!”“그 인간 고자래! 남자구실 못한대! 알아?”“그 인간과 결혼하면 평생 생과부로 늙어야 한대! 그래도 그 남자한테 마음이 있으면 그 선택 존중할게! 가서 그 남자 찾아가! 억만 부자라잖아!”최가희는 욕설까지 해가며 엄마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그녀는 더 이상 온화하고 귀여운 20대가 아니었다.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시언은 최가희가 예전의 민정아보다도 훨씬 막무가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다른 점이 있다면 최가희는 똑똑해서 자신의 그런 면을 잘 감춘다는 점이었다.그녀는 바닥에 앉아 이미 부어오른 얼굴을 붙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최가희를 바라보며 절망한 말투로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너 어떻게 엄마한테 귀뺨을 날릴 수 있어?”“나 열 달을 고생해서 널 낳았어. 조산이라 금방 태어났을 때 2kg도 되지 않았어. 난 모유가 부족해서 매일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먹었어. 너한테 모유 조금이라도 더 주기 위해서.”“난 너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고생을 많이 했어. 산후조리 끝나고
성유미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시언아, 미안해. 가희한테 돈 돌려주라고 했는데… 사실 난 헤어진 사이에 너한테 너무 많은 걸 받은 게 창피하고 미안하거든. 그런데….”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하다.”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뒤돌아섰다.“어디 가요?”서시언이 물었다.최가희는 순간 당황했다. 사람들 틈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최홍민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지켜보던 관중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성유미가 말했다.“앞으로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야. 다시는 가희 만나지 않을 거고 그 애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죽기 직전에라도 가희 안 만날 거야.”그녀는 정말 크게 상처를 받았다.나이 스물두 살이나 먹은 딸이 엄마의 사정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엄마를 모욕하는 말도 서슴지 않고 엄마에게 매까지 들었다.애를 낳은 게 너무 후회스러웠다.그냥 아이를 낳은 적 없다고 생각해야지!성유미는 더이상 딸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몇 걸음 걷던 성유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서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언아,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돼?”서시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나, 편하게 말해요.”성유미는 공허한 표정을 짓고서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가능하면 우리 이모 좀… 부탁해도 될까? 이모라고 해봐야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일은 할 수 있어. 가끔 괜찮나 한번씩 들여다봐 줘. 어차피 이제 돈도 있고 일도 할 수 있으니까 생활하는데 별로 문제는 없을 거야. 손자도 곧 중학교에 들어가니까.”“우리 이모 불쌍한 사람이야. 꼭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이 이모야.”서시언은 그 말을 들으며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누나,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성유미는 자기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 진작 죽었어야 했을지도 몰라.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지
서시언의 말을 들은 성유미를 포함 현장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최가희와 최홍민의 표정은 더 볼만했다.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최가희였다.“서시언 당신 지금 뭐라는 거야! 저 여자랑 결혼한다고? 저런 더러운 여자를? 그건 안 되지! 안 돼!”그녀는 증오로 가득한 눈빛으로 서시언을 쏘아보았지만 서시언은 덤덤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최가희, 내 결정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을 텐데? 그리고 당신 엄마한테 손가락질할 자격도 없어. 엄마가 뭘 하든, 어떤 결정을 하든 딸이 간섭할 권리는 없지!”최가희는 순간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서시언도 최가희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 역시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다.그는 불운한 사람끼리 뭉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서로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위로하면서 살고 싶었다.서시언은 다시 정중하게 성유미에게 말했다.“누나, 나랑 결혼할래요? 비록 앞으로 우리에게 아이가 태어날 일은 없겠지만 평생 지켜준다고 약속할게요. 결혼해 줘요.”“다시는 고생시키지 않고 밖을 떠돌며 살게 하지 않을게요. 이모님도 내가 다 보살필게요. 결혼해 주실래요?”성유미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너무 당황했다.그녀의 나이 40, 여자 나이 40이면 곧 할머니로 불릴 나이였다.딸이 벌써 22세였다.그런데 이렇게 잘생긴 재력가에게 청혼을 받다니!하늘이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해서 내려주신 축복인 걸까?조금 전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던 성유미였다. 그만큼 삶이 힘들고 의미가 없었다.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물었다.“지… 진심이니?”“당연하죠!”서시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곡현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뱉은 말은 꼭 지키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어요. 내 나이도 올해 32세예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 정도는 다 있다고요. 한순간 충동에 내뱉은 말은 아니에요.”아마도 요 며칠 성유미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이미 마음이 그녀에게 기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는 이미 자신과 최가희가 서로
최가희를 딸이라고 생각한 건 성유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고통을 참으며 살아가는 모든 이유가 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 22세나 되는 딸에게 뺨을 맞았다.사실 상 모녀의 정 같은 건 이미 끊어진 상황이었다.그녀에게는 이제 딸이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편히 기대고 쉴 수 있는 사람.마침 서시언도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상처받은 두 사람, 완전하지 않은 두 사람이 같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성유미는 기뻤다.“시언아, 난 나이도 많은데 정말 괜찮겠어? 내 나이 이제 40이야.”“누나는 예뻐요.”“하지만….”“알아요. 아이를 낳을 수 없으면 입양하면 되죠! 네 명 정도 입양할 수도 있어요. 어차피 돈은 부족하지 않으니까 아이는 많을수록 좋아요. 아이 입양하면 누나는 집에서 아이들 돌보고 나 퇴근하면 같이 돌볼게요. 그러면 애들이 커도 누나를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거예요.”“누나, 앞으로 누나에게도 아이가 생길 거예요. 그리고 다시는 자식에게 버림받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거예요.”“그래! 아이 입양하자. 많이 입양해. 열 명도 케어할 수 있어! 나중에 우리가 늙어도 자식들 보는 낙으로 사는 거지. 시언아, 넌 하늘이 내게 주신 축복 같아.”성유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서시언은 그런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성유미는 서시언의 품에 얼굴을 박고 오열했다.현장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구경꾼들마저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한참이 지난 뒤, 누군가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소리로 말했다.“참 지지리 복도 없는 여자네. 그래도 마흔 살이 돼서 복이 찾아왔으니 앞으로는 행복할 일만 남았겠어.”이건 그냥 구경꾼들 중 한 명의 탄식이었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서시언과 성유미의 뒤에서 누군가 죽일 듯한 기세로 고함을 질렀다.“성유미! 이 뻔뻔한 년아! 딸 남자친구 빼앗으니까 좋아? 너 같은 게 무슨 낯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야?”최가희의 목소리였다.그녀는 화가 나서 벽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