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하지 말아요. 일단 빨리 걸어서 마을에 도착하고 다시 얘기해요.”“진수 씨, 내 말 들어봐요.”고윤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진수에게 말했다.“일단 산으로 다시 올라가는 게 어때요? 깊은 산속일수록 좋아요.”한진수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안 돼요, 윤희 씨. 윤희 씨는 잘 먹어야 하는데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잖아요.”고윤희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남성에 있을 때도 산에서 생활했잖아요. 공기도 좋고 야생 열매도 있고 꿩도 있잖아요. 낮에 근처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요.”한진수는 묵묵히 걷기만 했다.어머니가 있는 곳까지 걸어간 두 사람은 어머니의 의견을 물었다. 어머니도 고윤희의 의견에 동의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다시 산속으로 숨어들었다.하지만 과일도 많고 나무도 많던 남성의 산과 달리 이곳의 산은 길도 험하고 황폐했다.다행히 그들은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잠시 머무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한진수는 밖에서 나무와 마른 풀을 구해서 어머니와 고윤희를 위해 누울 곳을 마련했다.모든 일을 마친 뒤, 한진수는 다시 밖으로 나와 근처를 돌아다녔다.하지만 근처를 샅샅이 뒤져도 먹을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나이든 어머니와 임신한 여자는 그대로 굶을 수밖에 없었다.여차여차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한진수는 혹시나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산을 내려갔다.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해서 전방에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차가 멈추더니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고 그들은 근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놀란 한진수는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돌아온 한진수를 보자 고윤희는 지나가던 차량을 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진수 씨, 차 발견했어요?”“밖에 사람들이 왔는데 산을 수색하려나 봐요.”“뭐… 뭐라고요?”“무슨 일을 하는 자들인지는 모르는데 산을 수색하려는 것 같아요.”한진수가 또 말했다.“진수 씨, 빨리 숨을 곳을
말을 마친 그녀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자신과 신세희의 삶이 닮았다고 생각했다.6년 전, 신세희가 남성에서 도망칠 때도 산에서 굴러떨어져 죽을 뻔한 적 있다고 했다. 그때의 신세희도 임신 중이었다.얼마나 힘들었을까?과거의 고윤희는 신세희가 참 강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직접 이런 경험을 해보니 강단 하나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생 속에서도 낙관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해야 한다.신세희가 남성에서 도망친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부소경은 사람을 보내 그녀를 쫓지도 않았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상황은 그때와는 달랐다.고윤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구경민의 별장에서 나왔을 때, 분명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1년이나 사용한 핸드폰도 두고 나왔다.명품 옷과 액세서리도 챙기지 않았다. 유일하게 가지고 나온 것이 있다면 그가 준 카드였다. 그건 그냥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카드도 그의 약혼녀가 빼앗아갔다.고윤희는 구경민이 왜 이렇게 자신을 증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만 보면 그는 더 이상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좋아하는 여자가 돌아왔다고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했던 사람, 심지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고윤희는 고개를 들고 한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진수 씨, 나 때문에 정말 미안해요. 진수 씨는 어머니 모시고 산을 내려가요. 구경민 그 사람은 무고한 사람까지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한진수는 고윤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그 사람이 왜 이렇게 윤희 씨를 쫓는 걸까요? 이유라도 있어야 하잖아요?”고윤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모르겠어요. 그 사람 옆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 사람에게서 이득을 취한 적은 없어요. 그 사람한테서 받은 돈 20억도 약혼녀가 가져갔거든요. 그 사람 약혼녀
고윤희는 한진수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며 말했다.“네, 진수 씨. 이렇게 만난 것도 참 인연이네요. 그래요. 가지 말고 이대로 숨어 있어요. 운 좋게 살아 남으면 우리가 이긴 거죠!”그렇게 세 사람은 다시 동굴에 몸을 숨겼다.그들은 비좁은 동굴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또 하룻밤을 보냈다.고윤희는 이미 이틀이나 굶은 상태였다.입술은 바짝 말라 비틀어졌고 정신상태도 좋지 않았다. 한진수의 어머니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한진수는 걱정스럽게 어머니를 불렀다.“엄마….”그럴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엄마 괜찮아. 그냥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한진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한진수는 배가 고파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그는 어지럼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러다가 다 같이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나가서 뭐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산을 수색하던 사람들은 돌아갔을까?하지만 입구로 나가 바깥을 살펴 보니 근처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한진수는 바로 동굴로 다시 들어왔다.그는 숨을 죽이며 두 여자에게 말했다.“그들이 왔어요. 숨 죽이고 소리 내지 말아요.”입구가 비좁은 동굴이었기에 밑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틈새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수색 대원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말로는 이 근처를 지나가던 차에서 사람이 내린 적 있다고 했어. 하지만 마을에 알아봤는데 그들이 마을로 들어간 흔적은 없어. 산에서 생활한 경험도 있다고 했으니까 빨리 찾아야 해! 찾는 사람한테 거액의 보너스를 준다고 하셨어!”그러자 팀원 중 한 명이 다급히 물었다.“형님, 대표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자 한 명 찾는다고 이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한 걸까요?”다른 직원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약혼녀가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듣기로는 우리가 찾는 여자와 갈등이 있었다고 하던데?”“당연한 소리를!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이 없이 친
고개를 든 고윤희는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비좁은 동굴 입구 바깥 쪽에 정장을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은 남자가 서 있었다.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키는 180cm 정도로 보였는데 건장한 체구를 가졌다.싸움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한진수였지만 남자가 만만한 상대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요?”한진수가 물었다.고윤희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요. 저 사람은 구경민이 아니라… 그 사람 경호원이에요.”한진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어쩐지 체격도 건장하고 싸움을 잘할 것 같더라니….’그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지낸지 벌써 3일이 지났다.물론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라도 이 남자에게 잡히면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눈앞의 남자는 고윤희도 아는 사람이었다.그의 이름은 주광수, 구경민 신변의 능력 있는 경호원이었다. 구경민이 그를 찾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를 불렀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뜻했다.고윤희는 3년 전, 주광수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문안을 간 적도 있었다. 경호원 일을 하는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자신의 가족을 알리지 않는다. 그래서 주광수가 아이 아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혼자 문안을 간 그녀는 주광수와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구 대표님이 보내서 왔어요. 그 사람은 요즘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대신 왔어요.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면 두 사람의 신변 안전에 별로 좋을 것 같지도 않고요.”부드러운 말투와 온화한 표정, 겸손한 행동. 이게 고윤희에 대한 주광수의 첫 인상이었다.그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많은 신생아용품을 선물했다.옷부터 장난감까지 없는 게 없었다.심지어 아기 기저귀까지 준비했다.그때 주광수의 아내는 무척 고마워하며 고윤희에게 인사했다.“사모님,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고윤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아이를 키워본 적 없어서
그녀는 아름답지만 오만하고 까탈스러운 여자였다.하지만 구경민의 마음을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인 건 사실이었다.구경민과 함께 자란 여자였고 아무도 그녀의 위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고윤희 역시 마찬가지였다.주광수는 마음이 아팠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그는 경호원이었고 상사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직원에 불과했다.주광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순박해 보이는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품에 안긴 여자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순수하고 온화하던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절망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그들의 옆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도 있었다.노인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고윤희와 한진수의 앞을 막아섰다.노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를 데려가게. 나를 데려다가 분풀이로 때리고 죽여도 좋아. 젊은이, 나를 데려가.”주광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고윤희를 바라볼 뿐이었다.고윤희는 눈물을 머금고 주광수를 바라보며 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정말 구경민 씨한테 빚진 거 없어요. 그 사람 돈을 가져가지도 않았어요. 그 사람이 준 돈 20억은 그 사람 약혼녀가 가져갔어요. 그 여자한테 맞아서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니까요.”“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제발 나 좀 놓아주세요! 나도 살고 싶어요. 다시는 구경민 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평생 그 사람을 피해서 살게요. 돈도 필요 없고 그냥 살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네?”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의 바른 미소를 유지했다.“나는 진짜로 구경민 씨의 물건을 건드린 적 없어요. 사실이에요. 아무한테도 그 사람과 아는 사이라고 얘기하지 않을게요.”애원하면 애원할수록 고윤희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그녀는 구경민에게 잡혀가서 온몸이 묶인 채, 최여진을 마주하면 최여진은 자신을 절대 살려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난 살아야 해! 아이도
상사의 음침한 얼굴을 본 주광수는 구경민이 당연히 고윤희를 잡아 죽일 생각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명분도 없이 구경민의 곁을 지켰던 여자에게 연민을 느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매정할 수 있을까?그와 동시에 상사의 일편단심에 탄복하기도 했다.주광수는 속으로 생각했다.‘한 여자와 그렇게 많은 밤을 보내고도 마음은 다른 여자를 잊지 않고 있다니. 그 여자가 불쌍하긴 하지만 대표님도 일편단심인 사람이야. 고윤희 씨만 안타깝게 됐네.’그 가련한 여자가 떠오르자 주광수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대표님, 전에 수색하던 마을에서 의사가 그랬잖아요. 멀리는 못 갔을 거라고요. 혹시 우리가 놓친 단서가 있지 않을까요?”주광수의 진지한 표정을 말없이 바라보던 구경민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가자.”“어… 어디로요?”“다시 돌아가야지! 그 마을로 가서 다시 수색해! 어떤 단서도 놓쳐서는 안 돼!”구경민이 말했다.“네, 대표님!”잠시 후, 주광수는 다시 조심스럽게 이런 제안을 했다.“대표님, 애들도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데 정신 좀 차리라고 사이렌이라도 울리는 게 어떨까요?”그는 산에 숨어 잇는 세 사람에게 자신들이 떠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구경민이 이곳을 떠났다는 사인이었다.구경민이 힘없이 말했다.“마을 사람들 쉬는데 방해하지 말고 짧게 울려.”“네, 대표님!”말을 마친 주광수가 뒤돌아서서 명령하자 차들은 일제히 유턴을 하고는 사이렌을 울리며 사라졌다.그 우렁찬 사이렌은 산 깊은 곳까지 전해졌다.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동굴에 숨은 고윤희 일행은 그제야 구경민이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가 드디어 갔다.고윤희는 힘없이 동굴 입구에 쓰러져서 바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광수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요.”뒤에 있던 한진수가 물었다.“우리를 살려준 사람 이름이 광수인가요?”고윤희는 울며 대답했다.“예전에 광수 씨 와이프가 출산했을 때 문안간 적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한
역시 아이를 밴 여자는 달랐다.배가 부르자 그들은 그 길로 택시를 잡아 한진수의 고향으로 향했다.다시 차에 오른 고윤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녀는 한진수의 품에 기댄 채, 노곤한 표정으로 감탄하듯 말했다.“진수 씨, 사실 구경민 씨는 줄곧 나한테 잘해줬어요. 그 집에 있을 때도 한 번도 나를 홀대한 적은 없었죠. 그 사람은 항상 나한테 좋은 것만 줬어요.”한진수는 턱을 그녀의 머리에 기댄 채, 부드럽게 말했다.“윤희 씨는 좋은 여자니까요.”고윤희는 계속해서 말했다.“모든 잘못은 내가 했어요. 내가 처음부터 잘못한 거예요. 그 사람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내가 필사적으로 매달렸어요. 나중에 그 사람이 나한테 예쁜 옷을 사주고 모임에 데리고 나가면서 내 처지를 망각했죠. 사실 나는 처음부터 가정부였다는 것을요. 그 사람이 나를 좀 띄워준다고 나는 그 사람의 여자가 되었다고 착각한 거에요. 하지만 그 사람은 계속 그 때처럼 나를 띄워줄 사람은 아니었어요.”“그 사람이 나한테 줬던 관심과 애정을 거두면 결국 내가 가졌던 모든 건 꿈처럼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하는 느낌이었죠. 그러니까 앞으로 더 이상 그런 헛된 꿈은 꾸지 않을 거예요.”“사람은 주제파악을 할 줄 알고 독립적이어야 해요. 누군가에게 기대서 삶을 영위하는 건 옳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도 놀고 먹기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직장을 찾아서 일할 거예요.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요. 어때요?”그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한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한진수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윤희 씨는 임신 중이잖아요. 윤희 씨 힘든 건 내가 원하지 않아요.”하지만 고윤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러울 거예요. 내 친구 중에 신세희라는 친구가 있는데… 지난 번에 나한테 돈을 빌려줬던 친구요. 그 친구도 갖은 고생을 했지만 스스로 힘든 상황을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오늘에 와서야 알았어요. 그
부하직원에 의해 잠에서 깬 구경민은 짜증스럽게 주광수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죽고 싶어? 잘 자고 있는데 왜 깨워? 꿈을 꾸고 있었다고! 내 꿈 돌려내!”그의 꿈.꿈속에서 그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윤희를 만났다.항상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여자, 그를 배려해 줬던 바보 같이 착한 여자.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가 볼록 나온 배를 감싸 안고 그에게서 울며 도망치고 있었다.조금만 더 가면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었는데 주광수 때문에 깼으니 기분이 너무 나빴다.구경민은 미친 사람처럼 주광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내 꿈 돌려내라고!”하지만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주광수는 집요하게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혹시… 방금 전에 뭐라고 하셨어요? 그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최여진 씨는 이제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대표님이 사랑하는 여자가… 고윤희 씨라고 하셨나요?”“너 정말 죽고 싶어? 윤희가 내 옆을 지킨 지가 몇 년인데! 사랑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아? 그리고 너! 네 마누라가 임신했을 때, 나는 문안 갈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윤희가 꼭 가야 한다고 고집 부리고 간 거잖아!”주광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그는 울며 구경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대표님! 저를 죽여 주세요! 제가 죽을 짓을 했어요! 그냥… 저를 죽여요.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졌어요….”주광수는 계속 사과하며 통곡했다.그의 울음 소리에 주변을 지키던 경호원들도 놀라서 이쪽을 바라보았다.구경민은 다급하게 그에게 물었다.“말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주광수는 눈을 질끈 감고 절망한 말투로 말했다.“제가… 산을 수색할 때… 사실은 사모님을 만났어요.”“뭐라고?”구경민은 다시 주광수의 멱살을 잡고 격분한 말투로 물었다.“그때 사모님이… 애절한 눈빛으로 저에게 애원하셨어요. 앞으로 다시는 대표님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달라고요. 최여진 씨한테도 사과할 테니 제발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했어요.”“최여진 씨한테 맞아서 죽을 뻔한 적도 있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