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희는 한진수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며 말했다.“네, 진수 씨. 이렇게 만난 것도 참 인연이네요. 그래요. 가지 말고 이대로 숨어 있어요. 운 좋게 살아 남으면 우리가 이긴 거죠!”그렇게 세 사람은 다시 동굴에 몸을 숨겼다.그들은 비좁은 동굴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또 하룻밤을 보냈다.고윤희는 이미 이틀이나 굶은 상태였다.입술은 바짝 말라 비틀어졌고 정신상태도 좋지 않았다. 한진수의 어머니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한진수는 걱정스럽게 어머니를 불렀다.“엄마….”그럴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엄마 괜찮아. 그냥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한진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한진수는 배가 고파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그는 어지럼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러다가 다 같이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나가서 뭐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산을 수색하던 사람들은 돌아갔을까?하지만 입구로 나가 바깥을 살펴 보니 근처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한진수는 바로 동굴로 다시 들어왔다.그는 숨을 죽이며 두 여자에게 말했다.“그들이 왔어요. 숨 죽이고 소리 내지 말아요.”입구가 비좁은 동굴이었기에 밑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틈새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수색 대원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말로는 이 근처를 지나가던 차에서 사람이 내린 적 있다고 했어. 하지만 마을에 알아봤는데 그들이 마을로 들어간 흔적은 없어. 산에서 생활한 경험도 있다고 했으니까 빨리 찾아야 해! 찾는 사람한테 거액의 보너스를 준다고 하셨어!”그러자 팀원 중 한 명이 다급히 물었다.“형님, 대표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자 한 명 찾는다고 이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한 걸까요?”다른 직원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약혼녀가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듣기로는 우리가 찾는 여자와 갈등이 있었다고 하던데?”“당연한 소리를!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이 없이 친
고개를 든 고윤희는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비좁은 동굴 입구 바깥 쪽에 정장을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은 남자가 서 있었다.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키는 180cm 정도로 보였는데 건장한 체구를 가졌다.싸움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한진수였지만 남자가 만만한 상대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요?”한진수가 물었다.고윤희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요. 저 사람은 구경민이 아니라… 그 사람 경호원이에요.”한진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어쩐지 체격도 건장하고 싸움을 잘할 것 같더라니….’그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지낸지 벌써 3일이 지났다.물론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라도 이 남자에게 잡히면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눈앞의 남자는 고윤희도 아는 사람이었다.그의 이름은 주광수, 구경민 신변의 능력 있는 경호원이었다. 구경민이 그를 찾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를 불렀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뜻했다.고윤희는 3년 전, 주광수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문안을 간 적도 있었다. 경호원 일을 하는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자신의 가족을 알리지 않는다. 그래서 주광수가 아이 아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혼자 문안을 간 그녀는 주광수와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구 대표님이 보내서 왔어요. 그 사람은 요즘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대신 왔어요.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면 두 사람의 신변 안전에 별로 좋을 것 같지도 않고요.”부드러운 말투와 온화한 표정, 겸손한 행동. 이게 고윤희에 대한 주광수의 첫 인상이었다.그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많은 신생아용품을 선물했다.옷부터 장난감까지 없는 게 없었다.심지어 아기 기저귀까지 준비했다.그때 주광수의 아내는 무척 고마워하며 고윤희에게 인사했다.“사모님,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고윤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아이를 키워본 적 없어서
그녀는 아름답지만 오만하고 까탈스러운 여자였다.하지만 구경민의 마음을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인 건 사실이었다.구경민과 함께 자란 여자였고 아무도 그녀의 위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고윤희 역시 마찬가지였다.주광수는 마음이 아팠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그는 경호원이었고 상사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직원에 불과했다.주광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순박해 보이는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품에 안긴 여자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순수하고 온화하던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절망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그들의 옆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도 있었다.노인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고윤희와 한진수의 앞을 막아섰다.노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를 데려가게. 나를 데려다가 분풀이로 때리고 죽여도 좋아. 젊은이, 나를 데려가.”주광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고윤희를 바라볼 뿐이었다.고윤희는 눈물을 머금고 주광수를 바라보며 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정말 구경민 씨한테 빚진 거 없어요. 그 사람 돈을 가져가지도 않았어요. 그 사람이 준 돈 20억은 그 사람 약혼녀가 가져갔어요. 그 여자한테 맞아서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니까요.”“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제발 나 좀 놓아주세요! 나도 살고 싶어요. 다시는 구경민 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평생 그 사람을 피해서 살게요. 돈도 필요 없고 그냥 살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네?”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의 바른 미소를 유지했다.“나는 진짜로 구경민 씨의 물건을 건드린 적 없어요. 사실이에요. 아무한테도 그 사람과 아는 사이라고 얘기하지 않을게요.”애원하면 애원할수록 고윤희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그녀는 구경민에게 잡혀가서 온몸이 묶인 채, 최여진을 마주하면 최여진은 자신을 절대 살려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난 살아야 해! 아이도
상사의 음침한 얼굴을 본 주광수는 구경민이 당연히 고윤희를 잡아 죽일 생각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명분도 없이 구경민의 곁을 지켰던 여자에게 연민을 느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매정할 수 있을까?그와 동시에 상사의 일편단심에 탄복하기도 했다.주광수는 속으로 생각했다.‘한 여자와 그렇게 많은 밤을 보내고도 마음은 다른 여자를 잊지 않고 있다니. 그 여자가 불쌍하긴 하지만 대표님도 일편단심인 사람이야. 고윤희 씨만 안타깝게 됐네.’그 가련한 여자가 떠오르자 주광수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대표님, 전에 수색하던 마을에서 의사가 그랬잖아요. 멀리는 못 갔을 거라고요. 혹시 우리가 놓친 단서가 있지 않을까요?”주광수의 진지한 표정을 말없이 바라보던 구경민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가자.”“어… 어디로요?”“다시 돌아가야지! 그 마을로 가서 다시 수색해! 어떤 단서도 놓쳐서는 안 돼!”구경민이 말했다.“네, 대표님!”잠시 후, 주광수는 다시 조심스럽게 이런 제안을 했다.“대표님, 애들도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데 정신 좀 차리라고 사이렌이라도 울리는 게 어떨까요?”그는 산에 숨어 잇는 세 사람에게 자신들이 떠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구경민이 이곳을 떠났다는 사인이었다.구경민이 힘없이 말했다.“마을 사람들 쉬는데 방해하지 말고 짧게 울려.”“네, 대표님!”말을 마친 주광수가 뒤돌아서서 명령하자 차들은 일제히 유턴을 하고는 사이렌을 울리며 사라졌다.그 우렁찬 사이렌은 산 깊은 곳까지 전해졌다.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동굴에 숨은 고윤희 일행은 그제야 구경민이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가 드디어 갔다.고윤희는 힘없이 동굴 입구에 쓰러져서 바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광수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요.”뒤에 있던 한진수가 물었다.“우리를 살려준 사람 이름이 광수인가요?”고윤희는 울며 대답했다.“예전에 광수 씨 와이프가 출산했을 때 문안간 적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한
역시 아이를 밴 여자는 달랐다.배가 부르자 그들은 그 길로 택시를 잡아 한진수의 고향으로 향했다.다시 차에 오른 고윤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녀는 한진수의 품에 기댄 채, 노곤한 표정으로 감탄하듯 말했다.“진수 씨, 사실 구경민 씨는 줄곧 나한테 잘해줬어요. 그 집에 있을 때도 한 번도 나를 홀대한 적은 없었죠. 그 사람은 항상 나한테 좋은 것만 줬어요.”한진수는 턱을 그녀의 머리에 기댄 채, 부드럽게 말했다.“윤희 씨는 좋은 여자니까요.”고윤희는 계속해서 말했다.“모든 잘못은 내가 했어요. 내가 처음부터 잘못한 거예요. 그 사람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내가 필사적으로 매달렸어요. 나중에 그 사람이 나한테 예쁜 옷을 사주고 모임에 데리고 나가면서 내 처지를 망각했죠. 사실 나는 처음부터 가정부였다는 것을요. 그 사람이 나를 좀 띄워준다고 나는 그 사람의 여자가 되었다고 착각한 거에요. 하지만 그 사람은 계속 그 때처럼 나를 띄워줄 사람은 아니었어요.”“그 사람이 나한테 줬던 관심과 애정을 거두면 결국 내가 가졌던 모든 건 꿈처럼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하는 느낌이었죠. 그러니까 앞으로 더 이상 그런 헛된 꿈은 꾸지 않을 거예요.”“사람은 주제파악을 할 줄 알고 독립적이어야 해요. 누군가에게 기대서 삶을 영위하는 건 옳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도 놀고 먹기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직장을 찾아서 일할 거예요.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요. 어때요?”그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한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한진수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윤희 씨는 임신 중이잖아요. 윤희 씨 힘든 건 내가 원하지 않아요.”하지만 고윤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러울 거예요. 내 친구 중에 신세희라는 친구가 있는데… 지난 번에 나한테 돈을 빌려줬던 친구요. 그 친구도 갖은 고생을 했지만 스스로 힘든 상황을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오늘에 와서야 알았어요. 그
부하직원에 의해 잠에서 깬 구경민은 짜증스럽게 주광수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죽고 싶어? 잘 자고 있는데 왜 깨워? 꿈을 꾸고 있었다고! 내 꿈 돌려내!”그의 꿈.꿈속에서 그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윤희를 만났다.항상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여자, 그를 배려해 줬던 바보 같이 착한 여자.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가 볼록 나온 배를 감싸 안고 그에게서 울며 도망치고 있었다.조금만 더 가면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었는데 주광수 때문에 깼으니 기분이 너무 나빴다.구경민은 미친 사람처럼 주광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내 꿈 돌려내라고!”하지만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주광수는 집요하게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혹시… 방금 전에 뭐라고 하셨어요? 그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최여진 씨는 이제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대표님이 사랑하는 여자가… 고윤희 씨라고 하셨나요?”“너 정말 죽고 싶어? 윤희가 내 옆을 지킨 지가 몇 년인데! 사랑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아? 그리고 너! 네 마누라가 임신했을 때, 나는 문안 갈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윤희가 꼭 가야 한다고 고집 부리고 간 거잖아!”주광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그는 울며 구경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대표님! 저를 죽여 주세요! 제가 죽을 짓을 했어요! 그냥… 저를 죽여요.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졌어요….”주광수는 계속 사과하며 통곡했다.그의 울음 소리에 주변을 지키던 경호원들도 놀라서 이쪽을 바라보았다.구경민은 다급하게 그에게 물었다.“말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주광수는 눈을 질끈 감고 절망한 말투로 말했다.“제가… 산을 수색할 때… 사실은 사모님을 만났어요.”“뭐라고?”구경민은 다시 주광수의 멱살을 잡고 격분한 말투로 물었다.“그때 사모님이… 애절한 눈빛으로 저에게 애원하셨어요. 앞으로 다시는 대표님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달라고요. 최여진 씨한테도 사과할 테니 제발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했어요.”“최여진 씨한테 맞아서 죽을 뻔한 적도 있
그런 그녀를 매몰차게 내쫓았던 그날의 순간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그녀는 어디 하나 최여진에 비해 빠지는 게 없었다.‘이런 멍청한 자식! 다 너 때문이야!’“돈은 좀 줬어?”갑자기 웃음을 멈춘 구경민이 주광수에게 물었다.주광수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수색을 하러 나가느라 소지품은 다 차에 두고 내렸는데 언제 돈을 챙길 여유가 있었을까?하지만 주광수는 핑계조차 댈 수 없었다.지금 구경민이 가장 죽이고 싶은 건 자기 자신일 것이다.“돈 좀 줬냐고?”“아… 아니요.”“이런 나쁜 자식이! 돈이라도 좀 주지 그랬어! 왜 돈을 안 줬어!”구경민은 미친 사람처럼 주광수에게 주먹질을 해댔다.바닥에 쓰러진 주광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그러다 지친 구경민이 주광수를 부축해서 일으키더니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대표님, 이게 나쁜 소식만은 아니에요. 사모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걸 확인했으니 수색 범위를 천천히 좁히면 돼요. 근처를 다 뒤졌는데 한곳만 안 갔잖아요. 지금부터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 가는 거죠.”“그렇게 찾다 보면 언젠가는 사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구경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주광수가 말했다.“이 일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사모님을 찾을게요. 찾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겠습니다!”구경민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사실 그는 이곳에서 4일 정도 머물다가 다시 남성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그랬다. 구경민은 서울이 아닌 남성을 택했다.서울에 계신 그의 부친이 매일 전화로 돌아오라고 재촉했지만 그는 무시로 일관했다.서울에 돌아가면 처리해야 할 업무가 태산이었지만 이런 것들은 그의 절친인 부소경이 맡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다.그렇게 4일 뒤, 구경민은 다시 남성으로 돌아왔다.그날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 끼었고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듯, 날씨는 쌀쌀하고 음침했다.신세희도 기분이 좋지
구경민은 힘없이 웃으며 받아쳤다.“세희 씨처럼 강한 여자가 귀신도 믿어요?”신세희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온 몸에서 악취가 풍기는 남자를 보자 말을 잇지 못했다.“마지막으로 언제 씻은 거예요?”“일주일 전이요.”구경민이 말했다.신세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일주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편히 눕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잠을 자본 적도 없어요. 면도는 당연히 안 했고… 양치도요.”구경민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신세희는 코를 틀어막으며 짜증스럽게 구경민을 쏘아보았다.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냉철하고 깔끔한 이미지의 남자가 이 사람이 맞나 싶었다.“윤희 언니는 찾았어요?”신세희는 답을 뻔히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물었다.구경민은 묻는 말에 대답 대신, 그녀에게 물었다.“이 꼴도 보였으니 이제 나 좀 용서해 줄래요?”“지금도 화가 안 풀렸으면 마당에서 비를 맞으며 화 풀릴 때까지 기다릴게요.”잔뜩 기가 죽은 말투였다.고윤희는 그와 함께한 뒤로 거의 외부와 접촉하지 않았다.그녀는 모든 시간과 애정을 구경민에게 쏟았다.그러다가 신세희라는 친구를 만났다.신세희는 믿음을 받아 마땅한 친구였다.그래서 구경민은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돌아오자마자 신세희를 찾았다.신세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잘못을 꼬집고 끝까지 추궁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게다가 구경민과 고윤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고 타인인 그녀가 간섭할 권리는 없었다.신세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구 대표님, 언니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지금 잘 지내고 있을 수도 있죠. 그냥 대표님을 만나기 싫어서 숨어버렸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구경민은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미 애들한테 지시를 내렸어요. 산으로 둘러싸인 지방이고 면적도 넓어서 찾는데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10년이 걸리든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