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잘못 본 건 바로 전태윤이다.아니, 그녀는 전태윤의 가족에게 단단히 속은 케이스다.두 사촌 남매는 그렇게 수다를 떨며 곧장 소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다. 하예정은 별장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소정남은 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심효진 오누이와 함께 밖에서 훠궈를 먹고 있었다. 심효진은 절친 하예정이 몹시 걱정됐는데 소정남이 모든 걸 마련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았다.하예정이 소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효진이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해 별장에 간 걸 확인하더니 한시름 놓았다.“효진아, 오늘 밤엔 정남 씨한테 너무 큰 도움을 받았어. 나 대신 꼭 고맙다고 전해줘. 돌아오거든 꼭 정남 씨한테 제대로 고맙단 인사할 거야.”소정남은 전태윤의 동료이기에 전화 한 통으로 그쪽 직원들에게 분부하여 전태윤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 굳이 그녀가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하지만 하예정이 한사코 가겠다고 하니 소정남도 바로 전용기를 띄워 보냈다. 그녀는 이 은혜에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알았어, 넌 얼른 가서 태윤 씨 잘 보살펴줘. 정남 씨가 그러는데 의사 선생님더러 한약을 며칠 더 처방해서 한꺼번에 말끔히 치료하래. 그렇게 하면 다음에 또 감기 걸렸을 때 억지로 버티지 못 할거래. 태윤 씨는 한약 마시는 걸 엄청 질색해서 사약을 먹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한대.”하예정이 대답했다.“정남 씨 아이디어가 살짝 얍삽하긴 해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 태윤 씨 약점을 잡고 제대로 혼내야 두 번 다시 버티지 않을 거야.”하예정도 전태윤 때문에 너무 놀랐다.“효진아, 나 비행기 타야 해.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그래, 일 봐. 난 아직 훠궈 먹는 중이야.”“부러워.”하예정의 말에 심효진이 웃으며 답했다.“태윤 씨가 출장 다녀오면 우리 다 함께 훠궈 먹자.”“그래.”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은 소씨 일가에서 마련한 전용기에 올라탔다.“예정아, 도착하면 우리한테 문자 보내.”성기현이 그녀에게 당부
대표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본사에서 그를 신임하여 이곳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을 맡겼는데 큰일이 터진 바람에 대표님이 직접 오셔서 처리해야만 했다.대표님은 과로로 인한 독감에 걸려 고열까지 났다. 다행히 진작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뻔했다.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여긴 어디야?”전태윤이 일어나 앉으려 했다.“대표님, 일어나시지 말고 누워 계세요. 아직 열이 다 내리지 않아서 수액을 맞는 중이에요.”전태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새겼다.약국에서 산 감기약을 먹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고 도리어 몸이 점점 뜨겁게 끓어올라 고열에 기절해버렸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 하예정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와이프에게 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통화를 마쳤다.‘예정이가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너희들이 날 병원에 실어왔어?”전태윤은 누운 채로 이마를 짚어보았는데 여전히 열이 있었다.“소 이사님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비상키를 챙겨 오피스텔에 와서 문을 열었는데 대표님이 쓰러져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대표님을 모시고 병원에 오게 됐죠. 그 약을 먹어서 효과가 없으면 진작 병원에 가셨어야죠. 저희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전태윤을 병원에 실어왔을 때 열이 무려 41도까지 났었다.방금 열을 재본 결과 39도 좌우로 내려오긴 했다.의사 선생님은 그가 찬바람을 맞아 바이러스성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고열과 기침을 며칠 반복할 것이고 게다가 어젯밤에 고열로 기절하기까지 했으니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할 것을 권했다.대표이사는 이 말들을 감히 전태윤에게 전하지 못했다. 전태윤은 무조건 병원에 입원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소 이사님께서 사모님이 밤새 날아왔다고 하니 아마 거의 도착할 듯싶었다. 사모님이 오시거든 대표님의 상황을 낱낱이 알리고 사모님께 전적으로 대표님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대표님이 부디 사모님의 말을 듣고 병원에서 푹 휴식하며 병 치료를 하길 바랐다.계열사 대표이사는 생각을 마친
“안 돼요, 대표님. 간호사께서 이런 약은 꼭 천천히 맞아야 한다고 했어요. 속도를 너무 빨리 조절하면 안 돼요.”대표이사가 속도를 다그치려는 전태윤을 황급히 말렸다.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대표님, 저희는 사모님이 도착하시거든 그때 다시 돌아가겠습니다.”전태윤은 순간 고개 들어 두 사람을 쳐다봤다.“예정이가 왔어?”둘은 나란히 머리를 끄덕였다.“소 이사님이 말씀하시길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너무 걱정돼 이리로 와서 보살펴주겠다고 했대요. 사모님은 아마 이사님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오실 거예요. 곧 도착하겠네요.”전태윤이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대표님, 사모님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저한테 전화 올 겁니다. 이사님이 제 번호를 사모님께 드렸거든요. 그러니까 시름 놓으세요. 제가 사모님을 여기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게요.”전태윤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원래 날이 밝거든 다시 예정에게 연락하려 했는데 밤새 날아올 줄이야.‘예정이가 왠지 날 1순위로 생각하는 것 같아.’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아직 비행기 안인 듯싶었다.“지금 죽 살 수 있어? 흰 쌀죽이면 돼.”“제가 나가볼게요. 아마 살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 죽 드시고 싶으세요?”“응, 흰 쌀죽 한 그릇 포장해와. 그리고 신선한 과일도 좀 사 오고, 정교하게 포장된 디저트도 몇 개 사와.”대표이사가 말했다.“대표님... 아직은 디저트를 드실 수 없어요.”“우리 와이프 먹일 거야.”대표이사는 순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지금 바로 나가볼게요. 병원 입구 쪽 그 거리에 빵집이나 레스토랑이 꽤 많거든요.”어떤 식당은 24시간 운영하고 빵집도 24시간 운영하는 곳이 있다.대표이사는 부대표에게 몇 마디 분부한 후 얼른 밖에 나가 전태윤이 말한 흰 쌀죽 한 그릇, 신선한 과일 몇 종류, 정교한 포장의 디저트 몇 개, 그리고 선뜻 우유까지 사 왔다.물건을 가득 챙기고 병실에 돌아오니 마침 하예정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비행기에서 금방
하예정이 말했다.“그럼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며칠 더 입원시켜야겠어요. 거의 다 나으면 그때 퇴원하죠. 태윤 씨 업무랑... 월급은...”전태윤이 입원하는 동안 하예정은 그가 이참에 며칠 푹 휴식하길 바랐다.회사는 사장님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니 몸져누워서까지 사장님을 위해 목숨을 내걸 필요는 없으니까!대표이사가 서둘러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예정 씨. 전 대표님의 업무는 저희가 이어받을 거예요. 대표님이 입원해 계시는 동안 절대 업무상의 일로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출장 중이니 월급도 영향받지 않아요.”전씨 그룹 자체가 전태윤의 것인데 사모님이 의외로 그의 월급을 묻고 있다니, 입원하는 동안 월급을 안 줄까 봐 걱정하다니, 실로 어이없을 따름이었다.“고마워요.”하예정은 본인이 남편을 위해 병가도 챙기고 월급도 지켜냈다고 생각했다.“예정 씨, 저희가 계속 여기서 대표님을 챙겨드릴까요?”하예정이 물었다.“수액이 아직 몇 개 더 남았죠?”“이제 하나만 남았어요.”“그럼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대표이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대답했다.“예정 씨가 여기까지 친히 오셔서 대표님을 보살피니 저희도 훨씬 홀가분합니다.”그들은 비서를 보내 전태윤을 보살펴주기로 했는데 전태윤이 워낙 가족 이외의 젊은 여자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하다 보니 결국 비서를 데려오지 않았다.사모님이 대표님을 향한 사랑이 매우 깊어 여기까지 왔으니 다들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비록 전 대표가 언제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 소 이사가 말한 사모님이 무조건 전태윤의 아내일 거란 확신은 있었다.게다가 24시간 내내 병원에 있기 싫어하는 전 대표님을 마주하지 않아 다들 너무 홀가분했다.“예정 씨, 이건 대표님께서 친히 예정 씨를 위해 준비한 디저트들이에요. 신선한 과일도 있고 우유도 있어요. 아 그리고, 예정 씨가 개인 시간도 할애하며 전 대표님을 보살피니 제가 직접 예정 씨 수당을 정산해드릴게요. 나중에 대표님이 퇴원하시거
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이미 밤이 깊어져 다들 꿈속일 테니 바로 답장을 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이때 전태윤이 비스듬히 눈을 떴다.하예정을 본 순간 그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태윤은 수액을 맞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눈을 비비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내가 고열이 나서 머리가 잘못됐나? 왜 헛것이 다 보이지? 우리 예정이가 왜 눈앞에 나타난 건데?”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더니 손등을 세게 꼬집었다.“으악!”“아파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은 가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아파, 너무 아파.”“아프면 됐어요. 이거 꿈 아니고 현실이에요. 태윤 씨가 병원 안 가면 내가 바로 달려온다고 했잖아요.”전태윤이 자리에 앉으려 했다.“누워있어요. 지금 입원 중이에요. 열도 다 내리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버텨요?”하예정이 그를 짓눌렀다.“얌전히 누워있어요. 지금 좀 어때요?”“열이 좀 내린 것 같은데 아직도 미열이 있어. 목이 잠기고 너무 아파. 콜록콜록...”전태윤이 기침을 두어 번 해댔다.“기침도 나네. 예정아, 나가서 간호사한테 마스크 좀 달라고 해. 나 이거 바이러스성 감기야. 너한테 옮길 수 있어.”그는 침대 머리맡의 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말했다.“마스크 두 개 갖다 줄 수 있어요?”“환자분, 마스크는 왜요?”간호사가 본능적으로 물었다.전태윤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내 감기가 전염성이 있잖아요. 와이프가 날 챙기러 왔는데 옮길까 봐 마스크 씌워주려고요.”간호사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간호사가 노크하며 의료용 마스크를 두 개 가져왔다.“고마워요.”하예정이 깍듯이 인사한 후 마스크를 하나 꼈다.전태윤이 그녀에게 말했다.“날 밝으면 약국 가서 의료용 마스크를 두 팩 더 사와. 내가 다 낫기 전까지 마스크를 쭉 끼고 있어. 너까지 아프면 안 돼.”“알았어요. 이 죽은 태윤 씨 먹으려고 사 왔어요?”하예정이 포장된 흰 쌀죽을 보더니 그릇을 만져보
전태윤이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이 회사가 바로 내 거야.’하예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아까 그 동 대표님은 계열사 대표이사 맞으시죠? 본인 소개를 그렇게 하셨거든요. 동 대표님이 말씀하시길 태윤 씨가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해야 한대요. 요 며칠은 아무 생각 말고 푹 휴식해요. 평소엔 건강한 것 같아도 계속 이렇게 바삐 돌아치면 피로가 쌓여서 면역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지금처럼 몸져눕죠. 태윤 씨 지금 월급 그대로 받으면서 쉬는 중이에요. 동 대표님이 나한테도 수당을 주시겠대요.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와서 태윤 씨를 돌보니 당연히 줘야 한대요. 다들 참 주도면밀하게 고려한단 말이죠.”‘역시 대기업 계열사라 스케일이 남달라. 직원 가족이 입을 열기 전에 선뜻 수당을 주잖아.’전태윤은 죽을 먹으면서 구시렁댔다.‘결국 다 내 돈이야.’다만 그는 감히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나 며칠이나 더 입원해야 해? 그냥 고열에 독감일 뿐이니 날 밝으면 퇴원해서 오피스텔로 돌아가 휴식하면 돼. 기껏해서 매일 수액 맞으러 오면 되잖아.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아. 나 진짜 병원 너무 싫어.”하예정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누군 병원이 좋아서 와요? 몸이 아프니 치료받으러 왔죠. 약국에서 산 약을 먹고 아무 효과도 없을뿐더러 쓰러지기까지 했잖아요. 나 이리로 오면서 태윤 씨가 고열에 쓰러져 머리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단 말이에요.”전태윤도 본인이 바보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도 몰래 손을 파르르 떨었다.“나 지금 많이 좋아졌어. 바보 되지 않았어.”“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요!”“예정아...”“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요!”전태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병원에 입원하면 엄청 따분하단 말이야.”“내가 옆에 있잖아요. 나도 괜찮다는데, 안 귀찮다는데 태윤 씨가 무슨 불만이에요?”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소정남이 그녀를 여기까지 보내오며 정성껏 보살피게 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부부가 얼마 전에 또 한바탕 싸웠는데 아픈 걸 계기로
하예정은 곧바로 두 손 들어 항복했다.“태윤 씨, 그렇게 부르지 마요. 쉰 소리로 말끝까지 길게 끄니 너무 듣기 거북해요. 애교가 전혀 애교답지 않고 마치 변성기 소년 같아요. 뽀뽀해줄게요. 해주면 될 거 아니에요. 애교 그만 부려요. 더 부리다가 나 온몸에 닭살이 돋을 것 같아요.”전태윤이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그도 애교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애교를 부릴 줄도 모른다.다행히 지금 목소리가 잠겼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일부러 음성 변조하여 앵앵거린다고 하예정에게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안 해, 앞으론 안 하면 될 거 아니야.’하예정은 그의 요구대로 얼굴에 부드럽게 입맞춤하고는 넌지시 물었다.“만족해요?”그녀가 뽀뽀할 때 전태윤은 눈을 감고 가슴 깊이 그녀의 부드러운 키스를 느꼈다. 비록 마스크를 끼고 있어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순 없지만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만은 충분히 느껴졌다.그래, 바로 사랑하는 그 마음, 그것 하나면 전태윤은 충분했다.평소에 일부러 그를 유혹하며 진한 키스를 퍼붓는 것보다 지금처럼 마음을 다해 뽀뽀하는 것이 훨씬 와닿았다. 진한 키스는 그저 일부러 유혹하는 키스일 뿐이다.하예정이 손 내밀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속상한 눈빛으로 말했다.“서른이 넘었는데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해서 나 이렇게 걱정시켜요? 얼굴이 다 핼쑥해졌잖아요. 출장 온 며칠 동안 밥도 제때 챙겨 먹지 않았죠?”전태윤은 제 얼굴에 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나도 감기까지 걸릴 줄은 몰랐어. 널 일부러 걱정하게 하려던 건 아니야. 네가 없으니 입맛도 없고 업무가 워낙 바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살이 빠졌어.”사실 그는 살이 빠지지 않았다.다만 아내가 빠졌다고 하니 바로 수긍했다.아내의 말이 곧 진리이니까.“누군 뭐 감기 걸린다고 예상하고 걸리나요? 평상시에도 옷을 많이 챙겨입어요. 여긴 관성보다 훨씬 추워요.”전태윤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난 찬물에 샤워해서 그
전태윤은 줄곧 그녀만 쳐다봤다. 이에 하예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의 이마에 또 살짝 입맞춤했다.하예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자요 얼른.”그리고 또다시 그의 이마를 만져보았다.“체온계 있어요? 내가 열 체크해줄게요. 왜 아무리 만져도 계속 열이 있는 것 같죠. 수액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왜 안 내려요?”전태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나도 체온계가 있는지 잘 몰라.”“간호사한테 가서 여쭤봐야겠어요.”하예정이 휴대폰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그녀가 나가자마자 전태윤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소정남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전태윤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아직도 안 자고 뭐 해?”“한잠 자다가 깨났어. 깨나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봤는데 마침 네 와이프한테서 문자가 왔네. 무사히 도착했다는 내용이길래 잠도 깼겠다, 너한테 전화해서 상태나 물어보려고 했지. 열은 좀 내렸어?”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완전히 내리진 않았어. 의사가 며칠 입원하래. 이게 다 돈을 더 벌려는 수작이야.”환자는 이렇게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본인은 아무 문제 없는데 의사가 자꾸만 입원하라고 하니 돈을 벌려는 의도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전태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하예정이 안 왔다면 그는 날 밝아서 바로 퇴원했을 것이다.이젠 끝내 병실에 묶여 며칠 더 누워있어야 한다.전태윤은 단 한 번도 입원해본 적이 없다.“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며칠 더 입원하라면 하는 거지. 네 와이프까지 보내서 챙겨주고 있잖아. 이참에 부부가 서로 감정 회복도 하고 얼마나 좋아.”전태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부부는 늘 사이가 좋았어.”“그래?”소정남은 한사코 시치미를 떼는 전태윤의 모습에 진작 적응한 듯싶었다.‘누가 사소한 일로 아내랑 싸우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그러다가 정작 아내가 술집 가서 술 마신다고 하니 밤새 날아오고 말이야. 넌 지금 종일 네가 뱉은 말만 번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