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마실래요?”“아니, 화장실 자주 갈까 봐 안 마실래. 지금 화장실 한번 가기도 불편해.”하예정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전태윤은 도통 잠을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예정도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부분 전태윤이 얘기했고 그녀는 들어주기만 했다.이러쿵저러쿵 남의 흉을 보던 전태윤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천천히 꿈나라에 빠졌다.링거 한 병을 거의 다 맞자 하예정은 간호사를 불러 약을 갈아달라고 한 후 간병인 침대에 누워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저도 모르게 스르륵 감기면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혹시라도 잠이 들까 봐 휴대 전화도 내려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마스크를 벗고 찬물로 세수했다.그렇게 전태윤이 마지막 링거 한 병을 다 맞고 그를 깨워 약을 먹인 후에야 간병인 침대에 누워 밀린 잠을 보충했다.이튿날, 휴대 전화 벨 소리에 하예정이 눈을 떴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언니였다.“언니.”“예정아, 제부 괜찮아?”하예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하예정은 몸을 일으키고 앉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전태윤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직 깨지 않은 걸 보고는 다가가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런데 또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내가 자기 전까지만 해도 체온이 38도까지 떨어졌었는데 지금 또 뜨거워졌어.”“입원했잖아?”“독감이라서 의사 선생님이 열이 났다 내렸다 여러 번 반복한다고 했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 우빈이는 일어났어?”“아직 안 일어났어.”하예진이 신신당부했다.“너도 몸조심해. 무리하지 말고.”“알았어, 언니.”자매는 잠깐 얘기를 나눈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확인하던 하예정은 전태윤을 깨워 약을 챙겨주었다.의사가 회진하러 왔을 때 전태윤은 다행히 열이 내렸고 정신도 한결 맑아졌다.동권배가 두 사람에게 따끈따끈한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는데 아내에게 부탁하여 직접 만든 것이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의사가 회진을 마친 후 간호사가 와서 전태윤에게 링거를 꽂았다.하예정은 옆에서 전태윤을 살뜰히 챙겼고 동권배는 약을 지은 후 약국에 가져가 달여달라고 했다.전태윤은 링거를 빤히 올려다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어떻게 하면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태윤 씨, 왜 그래요?”전태윤이 멍하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링거를 올려다보자 하예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요?”“예정아.”전태윤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불쌍한 척했다.“다시 양약으로 바꾸면 안 돼? 나 한약 싫어, 너무 써.”“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양약의 부작용이 심하다고 한 건 태윤 씨예요. 그러니 한약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죠.”하예정은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빼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의 볼을 꼬집었다.“태윤 씨도 무서워하는 게 있네요.”전태윤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그윽하게 쳐다보았다.“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거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아무리 불쌍한 척하고 그윽하게 쳐다봐도 소용없어요. 한약으로 바꿔 달라고 의사 선생님한테 얘기한 건 우리니까 아무리 써도 마셔야 해요.”전태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냥 확 한 번 더 쓰러질까?’소정남이 그를 걱정한답시고 아플 때 하예정의 보살핌이라도 받으라고 여기까지 데려온 건 고맙지만 그만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소정남이 그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분명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챙겨주는 아내가 있는 걸 고맙게 생각해. 난 솔로라서 아내 말 듣고 싶어도 들을 아내가 없어.”그동안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참고 참아왔던 소정남이었다.“사과 먹을래요?”하예정이 물었다. 평소 사과를 좋아하지 않았던 전태윤이지만 하예정이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낸 걸 보고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그냥 한 조각만 줘.”하예정은 사과를 깨끗이 씻은 다음 네 조각으로 자른 후 전태윤에게 한 조각 건넸다. 전태윤이 사과를 받으며 말했다.“왜 사과 껍질 안 깎아?”“난 계속 껍질째
하예정은 그에게 컵을 건네며 눈웃음을 지었다.“그럼 스스로 마셔요. 30살이나 돼서 이 정도 쓴 것도 못 마셔요?”‘태윤 씨가 한약 마시는 걸 싫어하는구나.’앞으로 그녀를 화나게 했을 때 아프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다면 한약을 잔뜩 지어다가 그가 무서워할 때까지 맨날 달여 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가 뾰로통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자 하예정은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태윤 씨, 이 약 마셔요. 이 약 마시고 빨리 나아야 함께 첫날밤이라도 보내죠.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보살펴준 보람이라도 있게.”전태윤의 검은 두 눈이 반짝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이젠 허락한 거야?”하예정이 자세를 고쳐 앉고 방긋 웃었다.“태윤 씨가 퇴원할 때쯤이면 비슷할 것 같아요. 어쩔 거예요? 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전태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망설이더니 결국 손을 내밀어 한약을 받았다. 그러고는 큰 결심이라도 내린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약을 마셨다.마시는 와중에 속으로 연신 되뇌었다.‘이건 꿀물이야. 이건 꿀물이야. 독감이 다 나으면 예정이가 큰 상을 내려줄 거야.’하예정과 한층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특히 지난번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힌 후 잠도 제대로 자질 못 했다.아무런 표정 없이 억지로 한약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를 보며 하예정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절반만 마시면 돼요. 나머지 절반은 저녁에 밥 먹고 마셔요.”그가 절반 정도 마신 걸 보고 하예정이 귀띔했다. 전태윤이 움직임을 멈추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한꺼번에 다 마실게.”하루 한 번만 마시면 쓴 고통도 한 번이니 참을 수 있었다.말을 마친 전태윤은 계속하여 벌컥벌컥 마셨다.하예정은 말문이 막혀버렸다.‘하루 한 번만 마셔도 양이 충분하면 되겠지, 뭐.’그냥 한 번에 다 마시도록 내버려 두었다. 전태윤은 나머지 한약 찌꺼기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면서 찌푸린 얼굴로 하예정을 쳐다보았다.하예정은 그의 손에서 텀블
전태윤이 하예정을 먼저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의 감정도 더 깊었다. 하지만 하예정은 고작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상태라 언제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었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하예정이 자주 싸우는 건 감정이 덜 깊은 것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과 습관 탓도 있었다.그는 하예정이 그를 위해 변하길 기대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완전히 기대는 여자가 아니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일은 그에게 얘기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하여 그녀를 위해 변해야 하는 사람은 그였다.“왜 아무 말이 없어? 매번 할머니가 어떻게 예정이한테 잘해야 하고 감정을 키워나가는지 얘기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더라?”“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전태윤이 솔직하게 얘기하자 할머니가 말했다.“너 왜 이리 무뚝뚝해? 나머지 여덟 손자도 너처럼 이랬더라면 차라리 네 할아버지를 따라가려고 했을 거야. 따라가면 너희들 때문에 속 썩이지 않아도 되니까.”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들도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자들은 부모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릴 뿐 아예 귀담아들으려 하지도 않았다.하여 이 나이가 돼도 손자들의 혼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할머니는 자신이 전생에 중매쟁이일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도 업무 능력이 별로인 그런 중매쟁이 말이다. 그러니 이번 생에 손자들의 혼사 때문에 속을 썩이지.“할머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할머니는 증손녀 안기만 기다리세요.”“기다리다가 흰머리가 다 자라겠어.”“검은색으로 염색하면 되죠.”할머니는 어이가 없었다.“할머니 화를 돋우는 거 보니 괜찮은 모양이네. 이만 끊는다.”전태윤 때문에 화가 나서 남편을 만나러 저승에라도 갈까 두려웠다.할머니가 휴대 전화를 티테이블에 휙 던지자 휴대 전화가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지려 했다. 다행히 민첩한 전이진이 휴대 전화를 잡았다.“할머니, 새로 사신 휴대 전화잖아
하예진은 몸이 너무 뚱뚱한 탓에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그녀에게 맞는 드레스가 없어 맞춤 제작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새 옷에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 이경혜가 선물한 액세서리까지 하고 나니 복스럽고 귀티가 줄줄 흘러넘쳤다.주우빈은 아동 양복을 입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인데 양복까지 입으니 한층 더 멋져 보였다. 주우빈을 본 여자들은 저마다 한번 안아보려고 난리도 아니었다.주우빈은 처음에는 겁에 질린 듯하더니 곧장 잘 적응했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사람들이 멋지다고 칭찬할 때마다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했더니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사모님, 노씨 가문 사모님과 넷째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한 도우미가 다가와 이경혜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올 때마다 이경혜는 딸과 조카와 함께 직접 마중 나갔다.이경혜가 하예진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예진아, 이모랑 노씨 사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노씨 사모님은 노동명의 어머니셔. 노동명이 널 많이 도와줬었지?”이경혜가 간단하게 노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을 소개하자 하예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경혜가 이번 파티를 여는 목적은 하예진네 두 자매를 소개하고 배후에 성씨 그룹이 있다고 관성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이경혜는 딸과 조카와 함께 마중 나갔다가 마당 가운데서 별장으로 걸어오는 윤미라네 모자와 마주쳤다.“안녕하세요, 미라 씨. 안녕, 동명아.”“안녕하세요, 경혜 씨.”이경혜는 윤미라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윤미라도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나누었다.평소였더라면 그들은 인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씨 가문과 전씨 가문의 사이가 가까우니까.오늘 밤 윤미라가 성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한 건 작은 아들도 참석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일의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윤미라는 호기심을 안고 성씨 가문 파티에 참석했다.그녀는 작은아들이 흔쾌히 동행하려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죽어도 어머니와 그 어떤 파티도 참석하지 않으려
주우빈은 또다시 엄마 뒤에 쏙 숨어버렸다. 하예진이 돌아서서 아들을 안으며 말했다.“우빈아, 이분은 동명 아저씨야. 전에 본 적이 있잖아.”주우빈은 노동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 예의 바른 아이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노동명을 절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아이가 참 예쁘게 생겼네.”윤미라가 주우빈을 칭찬했다. 이경혜의 큰조카는 체구도 크고 뚱뚱하지만 아들은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동명아, 네가 무섭게 생긴 바람에 애가 놀라서 만지게 못 하는 거야.”윤미라가 작은아들을 디스했다.노동명이 사고로 얼굴을 다친 후 윤미라는 아들에게 성형수술을 하여 칼 흉터를 지우라고 권유했다. 그러면 예전의 잘생긴 얼굴로 다시 돌아오니까.하지만 노동명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사고 났을 때 윤미라는 너무도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노동명은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성형수술을 아무리 권유해도 하지 않으려 했다.여러 해가 지났지만 칼 흉터는 여전히 선명했다.원래 잘생겼던 사람이 얼굴을 다치고 나서 35살, 아니, 곧 36살이 되는데도 여전히 싱글이다. 다른 집 아들은 이 나이에 벌써 애가 두셋이나 되는데 그녀의 아들은 장가갈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그런 노동명이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을 본 윤미라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아들을 디스했다.노동명이 피식 웃었다.“우빈이가 절 자주 못 봐서 그래요. 앞으로 자주 보면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윤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자주 본다고?”“예진 씨가 제 가게를 임대해서 토스트 가게를 오픈하려고 하거든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 길을 지나가는데 당연히 우빈이를 매일 보겠죠.”노동명이 설명했다.“사모님, 그럼 전 성 대표님한테 인사하러 가겠습니다.”성기현네 부부는 따로 다른 손님을 맞이하느라 어머니와 함께하지 않았다.이경혜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노동명은 성기현 쪽으로 걸어갔다.하예진을 힐끗거리던 윤미라의 두 눈에 언짢음이 섞여 있었지만 별다른 내색 하진 않고
“걱정하지 마, 노씨 사모님이 날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할게. 너도 그만 진정해.”“언니는 너무 착해서 문제예요. 나 같았으면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봤다간 절대 가만 안 뒀어요.”하예진이 피식 웃었다.그녀와 성소현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성소현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집 딸이고 하예진은 일찍 부모를 여읜 외로운 딸인데.“아무튼 앞으로는 내가 언니를 지켜줄게요. 누가 언니한테 조금이라도 눈치를 주고 괴롭히면 당장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효진이 왔어.”심효진 남매를 본 하예진이 성소현에게 귀띔했다. 성소현은 그제야 하던 얘기를 멈췄다.심효진은 이번에도 남동생과 동행했다. 사실은 운전기사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파티에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으니까.그런데 아쉽게도 하예정이 관성에 있지 않았다.“효진아.”하예진과 성소현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효진 씨, 왜 이제야 왔어요.”성소현이 가까이 다가가 심효진의 팔짱을 꼈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더니 심효진인 걸 알아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김씨 사모님의 친정집 조카 아니에요? 오랜만에 보네요.”“성씨 사모님이 효진 씨가 만취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나 봐요. 그러니까 파티에 초대했겠죠. 지난번처럼 파티에서 드러누우면 어쩌려고.”“심효진 씨랑 성씨 사모님의 조카가 절친이래요. 초대하는 것도 당연하죠.”“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요. 저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오히려 우리가 놀림당해요.”심효진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많은 이의 이목을 끌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성소현에게 물었다.“내가 늦었어요? 초대장에 적힌 시간보다 일찍 온 것 같은데.”그러고는 하예진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 주우빈을 안으며 하예진을 칭찬했다.“예진 언니, 오늘 이렇게 입으니까 참 복스러워 보이네요.”“그냥 차라리 뚱뚱하다고 해도 괜찮아.”자신의 겉모습이 얼마나 뚱뚱한지 잘 알고 있었던 하예진은 다른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에 진작 익숙해졌고
하예진이 잔뜩 경계하기 시작하면서 싸늘하게 물었다.“누구한테서 들었어? 내가 결혼 후에 출근도 못 하고 아무런 수입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받아...”“네 시어머니가 그러더라. 예진아, 나 지금 사업이 잘 안 돼서 예전에 번 돈까지 전부 다 밑지는 바람에 자금이 부족하거든? 나한테 2억만 좀 빌려주라.”하예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너털웃음을 지었다.인간의 얼굴이 아무리 두꺼워도 어떻게 이 정도로 두꺼울 수가 있지?그 집 식구들은 하예진네 자매에게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달라붙는다.“지명 오빠, 오빠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거울 좀 봐봐. 우리 자매한테 뭘 잘해준 게 있다고 지금 뻔뻔스럽게 돈을 빌려달라고 해? 그래, 나한테 2억이 있어. 하지만 절대 안 빌려줘. 다른 사람한테 빌려줄지언정 오빠한테는 죽어도 못 빌려줘!”“이러지 마, 예진아. 아무리 그래도 난 네 사촌 오빠야. 그땐 너희 두 자매가 하도 고집을 부려서 네 남편 집에서 예물 돈도 주지 않고 널 데려갔잖아. 그래서 그 집 식구들이 네가 귀한 줄 모르는 거야. 나중에 재혼하면 꼭 남자 측에 예물 돈을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해.”“많은 돈을 주고 며느리를 들여야 귀한 줄 알고 함부로 버리지 않아. 너 지금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데도 없잖아. 나한테 먼저 2억 빌려줘.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 그때 돌려줄게. 그리고 내 사업이 이 지경이 된 게 다 너희 두 자매 때문이야. 너희 둘이 그런 글을 올려서 내 명성만 망가뜨리지 않았어도 내 사업이 휘청거리지 않았어. 너희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맨날 적자만 나.”하예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푼도 못 빌려줘!”“예진아...”하예진이 전화를 끊자 하지명은 냅다 욕설을 퍼부었다.“뭐래?”그의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예진이가 돈 빌려주겠대?”“아빠, 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걔가 안 빌려줄 거라는 걸 알겠어요. 아무리 관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누가 흔쾌히 2억이나 빌려주겠어요?”하지명이 짜증 섞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