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그에게 컵을 건네며 눈웃음을 지었다.“그럼 스스로 마셔요. 30살이나 돼서 이 정도 쓴 것도 못 마셔요?”‘태윤 씨가 한약 마시는 걸 싫어하는구나.’앞으로 그녀를 화나게 했을 때 아프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다면 한약을 잔뜩 지어다가 그가 무서워할 때까지 맨날 달여 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가 뾰로통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자 하예정은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태윤 씨, 이 약 마셔요. 이 약 마시고 빨리 나아야 함께 첫날밤이라도 보내죠.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보살펴준 보람이라도 있게.”전태윤의 검은 두 눈이 반짝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이젠 허락한 거야?”하예정이 자세를 고쳐 앉고 방긋 웃었다.“태윤 씨가 퇴원할 때쯤이면 비슷할 것 같아요. 어쩔 거예요? 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전태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망설이더니 결국 손을 내밀어 한약을 받았다. 그러고는 큰 결심이라도 내린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약을 마셨다.마시는 와중에 속으로 연신 되뇌었다.‘이건 꿀물이야. 이건 꿀물이야. 독감이 다 나으면 예정이가 큰 상을 내려줄 거야.’하예정과 한층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특히 지난번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힌 후 잠도 제대로 자질 못 했다.아무런 표정 없이 억지로 한약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를 보며 하예정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절반만 마시면 돼요. 나머지 절반은 저녁에 밥 먹고 마셔요.”그가 절반 정도 마신 걸 보고 하예정이 귀띔했다. 전태윤이 움직임을 멈추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한꺼번에 다 마실게.”하루 한 번만 마시면 쓴 고통도 한 번이니 참을 수 있었다.말을 마친 전태윤은 계속하여 벌컥벌컥 마셨다.하예정은 말문이 막혀버렸다.‘하루 한 번만 마셔도 양이 충분하면 되겠지, 뭐.’그냥 한 번에 다 마시도록 내버려 두었다. 전태윤은 나머지 한약 찌꺼기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면서 찌푸린 얼굴로 하예정을 쳐다보았다.하예정은 그의 손에서 텀블
전태윤이 하예정을 먼저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의 감정도 더 깊었다. 하지만 하예정은 고작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상태라 언제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었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하예정이 자주 싸우는 건 감정이 덜 깊은 것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과 습관 탓도 있었다.그는 하예정이 그를 위해 변하길 기대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완전히 기대는 여자가 아니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일은 그에게 얘기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하여 그녀를 위해 변해야 하는 사람은 그였다.“왜 아무 말이 없어? 매번 할머니가 어떻게 예정이한테 잘해야 하고 감정을 키워나가는지 얘기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더라?”“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전태윤이 솔직하게 얘기하자 할머니가 말했다.“너 왜 이리 무뚝뚝해? 나머지 여덟 손자도 너처럼 이랬더라면 차라리 네 할아버지를 따라가려고 했을 거야. 따라가면 너희들 때문에 속 썩이지 않아도 되니까.”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들도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자들은 부모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릴 뿐 아예 귀담아들으려 하지도 않았다.하여 이 나이가 돼도 손자들의 혼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할머니는 자신이 전생에 중매쟁이일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도 업무 능력이 별로인 그런 중매쟁이 말이다. 그러니 이번 생에 손자들의 혼사 때문에 속을 썩이지.“할머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할머니는 증손녀 안기만 기다리세요.”“기다리다가 흰머리가 다 자라겠어.”“검은색으로 염색하면 되죠.”할머니는 어이가 없었다.“할머니 화를 돋우는 거 보니 괜찮은 모양이네. 이만 끊는다.”전태윤 때문에 화가 나서 남편을 만나러 저승에라도 갈까 두려웠다.할머니가 휴대 전화를 티테이블에 휙 던지자 휴대 전화가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지려 했다. 다행히 민첩한 전이진이 휴대 전화를 잡았다.“할머니, 새로 사신 휴대 전화잖아
하예진은 몸이 너무 뚱뚱한 탓에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그녀에게 맞는 드레스가 없어 맞춤 제작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새 옷에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 이경혜가 선물한 액세서리까지 하고 나니 복스럽고 귀티가 줄줄 흘러넘쳤다.주우빈은 아동 양복을 입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인데 양복까지 입으니 한층 더 멋져 보였다. 주우빈을 본 여자들은 저마다 한번 안아보려고 난리도 아니었다.주우빈은 처음에는 겁에 질린 듯하더니 곧장 잘 적응했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사람들이 멋지다고 칭찬할 때마다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했더니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사모님, 노씨 가문 사모님과 넷째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한 도우미가 다가와 이경혜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올 때마다 이경혜는 딸과 조카와 함께 직접 마중 나갔다.이경혜가 하예진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예진아, 이모랑 노씨 사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노씨 사모님은 노동명의 어머니셔. 노동명이 널 많이 도와줬었지?”이경혜가 간단하게 노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을 소개하자 하예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경혜가 이번 파티를 여는 목적은 하예진네 두 자매를 소개하고 배후에 성씨 그룹이 있다고 관성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이경혜는 딸과 조카와 함께 마중 나갔다가 마당 가운데서 별장으로 걸어오는 윤미라네 모자와 마주쳤다.“안녕하세요, 미라 씨. 안녕, 동명아.”“안녕하세요, 경혜 씨.”이경혜는 윤미라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윤미라도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나누었다.평소였더라면 그들은 인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씨 가문과 전씨 가문의 사이가 가까우니까.오늘 밤 윤미라가 성씨 가문의 파티에 참석한 건 작은 아들도 참석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일의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윤미라는 호기심을 안고 성씨 가문 파티에 참석했다.그녀는 작은아들이 흔쾌히 동행하려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죽어도 어머니와 그 어떤 파티도 참석하지 않으려
주우빈은 또다시 엄마 뒤에 쏙 숨어버렸다. 하예진이 돌아서서 아들을 안으며 말했다.“우빈아, 이분은 동명 아저씨야. 전에 본 적이 있잖아.”주우빈은 노동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 예의 바른 아이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노동명을 절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아이가 참 예쁘게 생겼네.”윤미라가 주우빈을 칭찬했다. 이경혜의 큰조카는 체구도 크고 뚱뚱하지만 아들은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동명아, 네가 무섭게 생긴 바람에 애가 놀라서 만지게 못 하는 거야.”윤미라가 작은아들을 디스했다.노동명이 사고로 얼굴을 다친 후 윤미라는 아들에게 성형수술을 하여 칼 흉터를 지우라고 권유했다. 그러면 예전의 잘생긴 얼굴로 다시 돌아오니까.하지만 노동명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사고 났을 때 윤미라는 너무도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노동명은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성형수술을 아무리 권유해도 하지 않으려 했다.여러 해가 지났지만 칼 흉터는 여전히 선명했다.원래 잘생겼던 사람이 얼굴을 다치고 나서 35살, 아니, 곧 36살이 되는데도 여전히 싱글이다. 다른 집 아들은 이 나이에 벌써 애가 두셋이나 되는데 그녀의 아들은 장가갈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그런 노동명이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을 본 윤미라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아들을 디스했다.노동명이 피식 웃었다.“우빈이가 절 자주 못 봐서 그래요. 앞으로 자주 보면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윤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자주 본다고?”“예진 씨가 제 가게를 임대해서 토스트 가게를 오픈하려고 하거든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 길을 지나가는데 당연히 우빈이를 매일 보겠죠.”노동명이 설명했다.“사모님, 그럼 전 성 대표님한테 인사하러 가겠습니다.”성기현네 부부는 따로 다른 손님을 맞이하느라 어머니와 함께하지 않았다.이경혜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노동명은 성기현 쪽으로 걸어갔다.하예진을 힐끗거리던 윤미라의 두 눈에 언짢음이 섞여 있었지만 별다른 내색 하진 않고
“걱정하지 마, 노씨 사모님이 날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할게. 너도 그만 진정해.”“언니는 너무 착해서 문제예요. 나 같았으면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봤다간 절대 가만 안 뒀어요.”하예진이 피식 웃었다.그녀와 성소현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성소현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집 딸이고 하예진은 일찍 부모를 여읜 외로운 딸인데.“아무튼 앞으로는 내가 언니를 지켜줄게요. 누가 언니한테 조금이라도 눈치를 주고 괴롭히면 당장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효진이 왔어.”심효진 남매를 본 하예진이 성소현에게 귀띔했다. 성소현은 그제야 하던 얘기를 멈췄다.심효진은 이번에도 남동생과 동행했다. 사실은 운전기사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파티에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으니까.그런데 아쉽게도 하예정이 관성에 있지 않았다.“효진아.”하예진과 성소현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효진 씨, 왜 이제야 왔어요.”성소현이 가까이 다가가 심효진의 팔짱을 꼈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더니 심효진인 걸 알아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김씨 사모님의 친정집 조카 아니에요? 오랜만에 보네요.”“성씨 사모님이 효진 씨가 만취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나 봐요. 그러니까 파티에 초대했겠죠. 지난번처럼 파티에서 드러누우면 어쩌려고.”“심효진 씨랑 성씨 사모님의 조카가 절친이래요. 초대하는 것도 당연하죠.”“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요. 저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오히려 우리가 놀림당해요.”심효진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많은 이의 이목을 끌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성소현에게 물었다.“내가 늦었어요? 초대장에 적힌 시간보다 일찍 온 것 같은데.”그러고는 하예진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 주우빈을 안으며 하예진을 칭찬했다.“예진 언니, 오늘 이렇게 입으니까 참 복스러워 보이네요.”“그냥 차라리 뚱뚱하다고 해도 괜찮아.”자신의 겉모습이 얼마나 뚱뚱한지 잘 알고 있었던 하예진은 다른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에 진작 익숙해졌고
하예진이 잔뜩 경계하기 시작하면서 싸늘하게 물었다.“누구한테서 들었어? 내가 결혼 후에 출근도 못 하고 아무런 수입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받아...”“네 시어머니가 그러더라. 예진아, 나 지금 사업이 잘 안 돼서 예전에 번 돈까지 전부 다 밑지는 바람에 자금이 부족하거든? 나한테 2억만 좀 빌려주라.”하예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너털웃음을 지었다.인간의 얼굴이 아무리 두꺼워도 어떻게 이 정도로 두꺼울 수가 있지?그 집 식구들은 하예진네 자매에게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달라붙는다.“지명 오빠, 오빠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거울 좀 봐봐. 우리 자매한테 뭘 잘해준 게 있다고 지금 뻔뻔스럽게 돈을 빌려달라고 해? 그래, 나한테 2억이 있어. 하지만 절대 안 빌려줘. 다른 사람한테 빌려줄지언정 오빠한테는 죽어도 못 빌려줘!”“이러지 마, 예진아. 아무리 그래도 난 네 사촌 오빠야. 그땐 너희 두 자매가 하도 고집을 부려서 네 남편 집에서 예물 돈도 주지 않고 널 데려갔잖아. 그래서 그 집 식구들이 네가 귀한 줄 모르는 거야. 나중에 재혼하면 꼭 남자 측에 예물 돈을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해.”“많은 돈을 주고 며느리를 들여야 귀한 줄 알고 함부로 버리지 않아. 너 지금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데도 없잖아. 나한테 먼저 2억 빌려줘.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 그때 돌려줄게. 그리고 내 사업이 이 지경이 된 게 다 너희 두 자매 때문이야. 너희 둘이 그런 글을 올려서 내 명성만 망가뜨리지 않았어도 내 사업이 휘청거리지 않았어. 너희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맨날 적자만 나.”하예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푼도 못 빌려줘!”“예진아...”하예진이 전화를 끊자 하지명은 냅다 욕설을 퍼부었다.“뭐래?”그의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예진이가 돈 빌려주겠대?”“아빠, 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걔가 안 빌려줄 거라는 걸 알겠어요. 아무리 관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누가 흔쾌히 2억이나 빌려주겠어요?”하지명이 짜증 섞인
그리고 하지문이 아무리 물어도 성씨 그룹 말고 또 누가 그들에게 복수하려는지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하지문은 하예정네 자매의 배후에 있는 조력자라고 확신했다. 처음에는 성소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보니 성소현 말고 더 엄청난 사람이 두 자매의 배후에 있는 것 같다.그 사람이 대체 누굴까?누구길래 그가 관성에서 일자리 하나도 못 찾게 만든 걸까?충격받은 하지문은 자신감이 밑바닥을 드러냈다. 일단 할머니가 퇴원하신 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본가로 모시고 간 다음 구정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그럼 어떡해?”하순재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예정네 자매 뒤에 대체 누가 있길래 이리 엄청난 거야? 일자리도 잃고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잖아. 네 사업이 그리 큰 사업이 아닌데도 엄청난 영향을 받았어. 지명아, 할머니가 퇴원하신 후에 우리 다시 얘기해보자. 예정이 요구대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화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그들이 두 자매를 어떻게 모함하고 명성을 어지럽혔으며 인터넷 악플 세례를 당하게 했으면 그대로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하예정이 말했었다.하지명이 머뭇거렸다.“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 인터넷에 공개 사과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다음에 귀한 선물도 준비해서 예진네 자매한테 찾아가자. 이번에는 우리 전부 성질을 죽이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해. 걔네 둘이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 일도 없게 되는 거야.”하지명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예진이랑 예정이 참 독한 애들이에요. 우리가 먼저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잖아요? 고작 인터넷에 글을 올려 댓글 알바를 구해서 악플 좀 달았을 뿐인데, 그리고 걔네들도 반격했잖아요. 요 두 달 우리도 힘들었고 손해가 엄청나단 말이에요. 이젠 비긴 거나 마찬가지인데 아직도 물고 늘어지네요. 우리를 벼랑 끝까지 내몰 생각인가 봐요.”하지명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걔네 둘 우리를 아직도 원망하고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빠, 아무래도 걔네 둘이
하예진과 하지명의 통화 내용을 전부 다 들은 성소현이 분노를 터뜨렸다.“아직도 언니한테 돈을 요구해요?”“나한테 돈 빌려달래. 요즘 사업이 잘 안 돼서 엄청 밑졌다면서 2억 빌려달래.”“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요? 관성에 나보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 없는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뻔뻔하게 전 대표님을 쫓아다닌다는지, 파렴치하다는지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척들에 비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요.”하예진이 되레 성소현을 달랬다.“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내지 마, 소현아. 나랑 예정이 평생 그 사람들이랑 화해 안 해. 죽든 말든 알 게 뭐야.”그 집 식구들이 지금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건 다 인과응보이다.“가요,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셔요. 소현 씨네 집 파티셰가 만든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요. 나 오늘 밤 배터지게 먹을 거예요.”심효진이 화제를 돌리자 성소현이 웃으며 말했다.“단 거 많이 먹으면 살쪄요... 아, 예진 언니 말하는 건 아니었어요.”하예진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단 거 먹으면 살이 많이 찌긴 해. 그래서 나 단 거 끊었어.”“난 매일 뛰며 운동해서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 쪄요.”심효진은 성소현의 팔짱을 끼며 하예진네 모자에게도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하예진은 이번에 큰 결심을 한 듯싶다. 파티의 맛있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꾹 참았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만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소정남이 도착했을 때 심효진은 이미 배부르게 먹었고 취기도 올라왔다.누나의 귀가를 책임지려고 따라온 심서준이 만취한 누나를 부축하여 나가던 그때 마침 소정남과 딱 마주쳤다. 많은 이들이 소정남을 둘러싸고 한껏 아부하고 있었다.소정남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려고 일부러 늦게 도착했는데 심효진이 먼저 가려 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는 인제야 도착했는데...“소정남 씨.”심서준이 소정남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효진 씨 왜 이래요?”“우리 누나 취했어요.”소정남은 말문이 막혀버렸다